지난 27일의 인사동은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미국서 온 최정자 시인이 ‘귀천’에 계신다는 전갈로 나왔으나, 인사동 나올 형편은 아니었다.

요즘 신경을 너무 곤두세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데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인사동 길을 걸었으나, 마치 술 취한 듯 비틀거렸다.

카메라를 꺼내, 비오는 거리도 찍었으나, 대부분 흔들려 있었다.

‘귀천’에 계신 최정자씨는 고향친구들과 계셨고, 그 옆에는 정영신씨가 책을 보고 있었다.

내가 나타나자 최선생 친구 분들께서 서둘러 일어나셨는데, 핸드폰의 요금충전도 해야 하고,

미국에 보낼 화물 박스를 구하는 등, 할 일이 많단다.

일보러 나간 사이 혼자 꾸벅꾸벅 졸다 정신 차리려 잠시 나갔는데, 지나가던 ‘민예사랑’ 장재순씨를 만났다.

화가 문영태씨와 사별해 힘들지만, 항상 밝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최정자 시인은 경주에서 열린 국제펜클럽대회 초청으로 잠시 귀국하셨는데, 몇 일전 ‘유목민’에서 만났다,

그 자리엔 공윤희, 정영신, 김수길씨가 함께 했으나, 뒤늦게 사진가 박진호씨도 합류했다.

술이 취한 뒤에는 장경호씨가 등장한 것 같으나, 박진호씨와 이야기 나누는 사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날따라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아,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 것이 죄가 되어, 힘들어도 다시 나온 것이다.

뒤늦게, 국수 좋아하는 최정자씨를 모시고 ‘안동국시’에 들려 마지막일지도 모를 만찬의 시간을 가졌다.

미국 이민가기 전인 8-90년대 자주 다녔던 인사동의 ‘누님칼국수’를 그리워하며,

밥값보다 더 비싼 9천 원짜리 안동국시를 먹었는데, 다들 맛있다니 다행이다 싶다.

최정자씨는 모래 미국으로 돌아가신다는데, 다들 몸이 편치 못하니 다시 뵐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외로움을 시로 달래며 사시니, 살아 계시는 동안 건강하고 보람된 여생을 보내길 빌 뿐이다.

그 날은 인사동에 나와 술 한 잔 마시지 못한 채, 돌아와야 했다.
이별에 대한 아쉬움인지, 삶에 대한 피로감인지, 떨어지는 빗물이 눈물 같았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1일의 일이다.

전통시장에 문화의 옷을 입히는 하재은씨와 ‘눈빛출판사’ 이규상씨를 인사동에서 만났던 일을 깜빡 잊어버렸다.

요즘 정신이 빠져서인지,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진파일을 들여다보니 정리하지 않은 사진들이 너무 많았다.

이까짓 사진들을 정리하면 뭐하고, 블로그에 올리면 뭐하냐는 생각도 들지만,

일기처럼 찍어 온 사진들을 그냥 버릴 수는 없었다.

미국, 캐나다 등 세계 10대 글로벌명품시장을 연구 분석하여 사진집을 만들고,

전시회를 열려는 하재은씨의 부탁으로 이규상씨와 만찬의 시간을 마련했던 것이다.

각종 전시들이 시작되는 수요일의 인사동은 관람객들로 전시장마다 붐볐다.
아내와 함께 약속장소인 ‘귀천’에 갔더니, 탐스러운 국화꽃이 반겨주었다.
‘귀천’은 천상병선생의 사모님이신 목순옥여사께서 좋아한 꽃들이 가득했다,

이젠 조카가 이어받아 꽃밭을 만들어 놓았는데, 꽃을 보니 돌아가신 목여사가 그리워졌다.

모과차로 추억을 달래고, ‘부산식당’으로 옮겨 생태찌개를 안주로 술 한 잔했다.
하재은씨가 이번에 다녀 온 맨하탄의 파머스마켓, 캐나다 토론토의 쎄인트로렌스 마켓 등

선진시장의 모범사례들을 귀동냥하며 오붓한 만찬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하재은씨는 사진가이기 전에 시장경영을 연구하는 박사로 신한경영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전통시장 특성화 육성사업에 많은 사업 실적을 가지고 있다.

세계10대 글로벌 명품시장을 대상으로 연구 촬영한 사진으로

올 11월 초순경 전시회와 사진집을 출판한다니, 기대하는바가 크다.


돌아오는 길에 ‘유목민’에 잠시 들렸더니, 임경일씨가 반겨주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아라아트’ 김명성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조준영 시인이 교통사고를 당해, 큰 일 날 뻔 했다는 것이다.
대형 트레일러에 받힌 큰 사고였으나, 다행히 운이 좋았다고 한다.
함께 다친 아내와 50일간이나 병원에 있었다는데, 그동안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남의 경조사엔 빠지지 않고 챙긴 그가, 정작 자신의 일엔 입을 다문 것이다.

걱정스러워 인사동에 나갔더니, 청진동 ‘청일옥’으로 오라했다.

피맛 골 화재로 그 쪽 방향의 길이 확 바뀌었던데,
시골노인 서울 김서방 집 찾듯, 얼마나 돌고 돌았는지 다리가 아프더라.

지금은 집에서 가료중이나, 근일간 인사동에 한 번 나온다 했단다.

'청일옥'에는 황명걸시인을 비롯하여 양평의 송화백, 횡성의 김영호선생,
김명성, 이희종씨 등 여러 명이 계셨는데, 몇 분은 먼저 가셨다고 했다.
어떤 모임이었는지는 모르나, 다들 일찍부터 거나하셨다.


황명걸선생은 마시다 졸기를 반복하셨는데,
김명성씨가 쓴 민병산선생을 기리는 시에다, 초상화를 그려 오셨더라.
김영호선생은 모든 게 양면성이 있다며,
알려진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가짜라고 목소리를 높이셨다.

나 때문에 술자리가 지연되는 것 같아, 급히 몇 잔 들고
인사동 ‘여자만’으로 넘어왔는데, 그 곳에서 신상철씨를 만났다.
나오는 길에 ‘귀천’을 들여다보니 심우성선생께서 맥주를 드시고 계셨다.
오는17일 오후4시, 강남 ‘한국문화의집’에서 ‘귀천하는 마음’이란
넋전 공연이 있다는 말씀을 주신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 의존하다보니, 아날로그 소식이 너무 어두웠다.
인사동을 그렇게 들락거리지만, 모든 소식이 깡통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이틀 전 장흥의 사진가 마동욱씨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전시장 계약하러 인사동에 가야하니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날은 김정헌씨 전시오프닝과 겹쳤으나, 한 시간 늦추어 오후7시로 정하고,

구기동 아트스페이스 풀에서 열리는 김정헌씨 전시장부터 들렸다.

그 깊은 골짜기에 반가운 분들이 엄청 많이 모였더라.

그 분들 만나 사진 찍으랴, 작품 보랴, 술 마시랴, 혼자 바빴다.

 

통풍으로 술을 자제하려 했으나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급히 몇 잔 먹었더니, 대번 취해버렸다. 아예 술잔을 들고 다니며 사진 찍었다.

뒤풀이에서 한 잔 더하고 싶었지만, 머뭇거릴 겨를이 없었다.

급히 인사동 약속장소로 달려갔더니, 사진가 전민조씨와 엄상빈씨도 와 있었다.

늦어 미안함도 잠시뿐, 뜻밖의 반가움에 횡설수설했다.

 

된장 비빔밥집 툇마루로 자리를 옮겼다.

마동욱씨는 615일부터 일주일간 토포하우스 전시계약을 했다고 했다.

하늘에서 본 장흥이란 주제의 사진전이라는데, 드론으로 촬영하였단다.

시골양반이 첨단을 걷고 있었는데, 아무튼 이런 저런 이야기에 섞어

밥 비벼먹으며 반주도 한 잔 곁들였다.

 

귀천으로 자리를 옮겨 모과차와 커피도 한 잔씩 시켰다.

술이 취해 생각 없는 말들을 마구 지껄였으니, 왜 실수를 하지 않았겠나.

술 못 끊듯이 버릇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냥 죽는 수밖에...

뒤늦은 자책감에 더 이상 자리할 수 없었다.

마누라 핑계대고 도망쳐, 독주를 퍼 마셨다.

 

 사진,글 / 조문호 




































 

▲ 2006년 인사동 카페 귀천에서 만난 목순옥 여사 / 사진=최상진 기자

 

[미디어펜=최상진 기자]

벌써 10년 전 이야기다. 대학시절 한 언론사에서 인턴기자로 갓 언론사에 발을 디딜 때 ‘현장에서 기사를 만들어 오라’는 데스크 지시로 생전 한번 가본적 없는 인사동에 혼자 떨어졌다. 모바일 인터넷도 변변치 않던 시절이라 PC방에서 인터넷으로 ‘인사동’을 검색하던 중 흥미로운 곳을 찾았다. 천상병 시인의 아내 목순옥 여사가 운영하던 카페 귀천이었다.

귀천은 인사동 중심가에서 흔치 않았던 신식건물, 밖이 잘 보이지 않는 1층 한 구석에 있었다. 테이블은 고작 4~5개에 불과했다. 손님은 고작 한 팀이었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손님들은 ‘천상병 시인 사모님이 운영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차를 내오던 목순옥 여사와 눈이 마주쳤다. “기자입니다”라는 얼떨떨한 소개에 특유의 포근한 미소를 건넸다.

 

천상병의 시와 목여사의 사랑과 동백림 사건의 뒷 이야기 등 물어볼 것은 많았다. 그러나 고작해봐야 ‘귀천’과 인터넷에서 급히 검색한 수박 겉핥기식 지식만 가진 갓 스무살이 넘은 청년은 쉽사리 이야기에 접근하지 못했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바뀌는건 순식간이었다. 결국 물 흐르듯 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카페에 전화 한 통이 왔다. 5분쯤 흘렀을 때 목여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10분쯤 흘렀을 때 그녀는 “감사하다. 다음에 꼭 한번 찾아달라”며 전화를 끊었다. 자리로 돌아온 그녀는 “서해교전에 전사한 병사 아버지네요. 아들이 수양록 앞장에 ‘귀천’을 적어놨는데 다시 돌려보다 생각이 나 전화하셨대요”라며 “귀천이라는 시가 아직도 참 많은 사람들한테 힘이 되고 있나봐요”라고 웃어보였다. 눈앞에 있는 그녀가 수녀로 보였다.

 

회사로 돌아오는길 문득 ‘교과서에 실린 귀천을 본적 있느냐’는 질문에 “출판사 연락은 받았는데 본 적은 없다”는 목여사의 대답이 떠올랐다. 퇴근길 광화문 교보문고를 뒤져 교과서를 사다가 앞장에 “제대로 된 기자가 되면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퇴근길 다시 카페를 찾아 교과서를 선물했다. 그녀는 뛸 듯이 좋아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동백림사건의 피해자인 ‘이응노·윤이상·천상병 추모 문화제’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목여사는 두 손을 잡으며 “금방 이렇게 다시 만났네요”라고 말했다. 손님이 많아 길게 인사는 하지 못했다. 그저 “다음엔 공부를 많이 해서 찾아갈게요”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그게 마지막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10년 군대에서 한창 더위와 씨름하던 시절, 인터넷을 통해 목여사가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슬프기보다는 서운했다. 아직 그녀와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많았다. 직업기자가 되면 반드시 찾아가겠다고 다짐했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줄 수는 없었는지 서운했다.


 

 

▲ 2006년 인사동 카페 귀천 / 사진=최상진 기자

 

 

 

그래서였을까 직업기자가 된 이후 인사동을 한번도 찾지 않았다. 인사동 부근으로 회사를 옮긴 올해서야 그때 귀천이 있던 자리를 찾았다. 이미 카페는 사라진지 오래된 것으로 보였다. 날씨는 추운데 그녀가 직접 담갔다는 모과차가 그리운데 정작 그녀는 없었다.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회사로 돌아오던 길 우연치 않게 수운회관에서 천상병 시인의 시화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죄인이 된 것 같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쉽게 들지 않았다. 몇 시간을 고민한 끝에서야 무거워진 발걸음을 한발 한발 옮길 수 있었다.

 

경운동 수운회관 13층, 조심스럽게 찾은 유카리 화랑은 조그마했다. 과거 목여사의 찻집과 비교해도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창문으로 스미는 햇살이 천상병 시인의 웃음에 미치자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 했다다. 10년 전 목 여사가 건넸던 모과차의 향기처럼.

 

전시 관계자는 “‘천상병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하며 23명의 미술작가 5명의 사진작가가 힘을 모아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며 “전시회 기간도 당초 6일까지에서 17일까지 연장할 예정이다. 많이 찾아주셨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돌아오는 길, 시인 천상병과 평생 그를 보듬은 목순옥이 걸었을 인사동 거리를 오랜만에 다시 걸었다. 코끝 찡한 추위 사이 어딘가에서 전설로 남은 시인과 그의 아내가 소탈하게 웃으며 반겨줄 것만 같았다. 천상병의 해맑은 미소와 목순옥의 따뜻한 차 한잔이 무척이나 그리웠다.

인사동에서 유명한 대표적인 찻집들

 

귀천(歸天) : (02)3210-2288

 

 

 

유자차, 쌍화차, 모과차 등 다양한 차들이 있으나 모과차가 가장 유명한 집이다.

천상병시인의 아내 목순옥씨가 운영했던 찻집이지만, 목여사가 돌아 가신 후 조카가 운영하고 있다.

이즈갤러리옆 '인사동14길' 골목으로 80미터쯤 들어가면 오른편에 있다. 맡은 편은 '여자만'이다.

 

 

 

볼가 : (02)739-3652

 

 

인사동에서 인테리어로는 첫손에 꼽히는 카페이다. 입구의 담쟁이덩굴부터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는데 내부 역시 다양한 소품과 독특한 색상으로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어 사진 찍는 사람들이 인사동 포토존 1호로 꼽는 분위기 있는 집이다. 저녁 시간에 와인이나 칵테일을 마시는 사람이 많지만, 해산물 스파게티와 해산물 도리아도 맛이 괜찮은 편으로 알려진 집이다. 가볍게 커피 한 잔을 즐기기에도 좋다. 쌈지길 옆 수도약국 골목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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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미술관 다원 : (02)730-6305

 

 

작은 도심 속 숲인 경인미술관의 한옥과 그 한옥 앞마당에서 전통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다. 한옥 안채의 방이나 건물 마당에서 차를 마실 수 있어 인사동에서 느끼기 힘든 상쾌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전시장도 돌아보며 여유 있게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대추차, 모과차 등의 전통차도 오랫동안 우려낸 차여서 맛이 깊고 진하다. 인사동 경인미술관 안에 있다.

 

 

 

 

차이야기 : (02)735-8552

 

 

녹차대나무밥으로 유명한 집이다. 녹차 우린 물로 밥물을 하고 대나무통에 넣어 밥을 하는 집이다. 이 밥맛이 좋기로 유명해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는 집이다. 메뉴는 다양해서 간단한 녹차대나무통밥부터 갈비살 정식, 쌈밥 정식, 너비아니가 함께 나오는 차이야기 정식까지 다양한 가격대가 있다. 또 이 집의 쌈장이 유명한데 땅콩이 들어 있는 특이한 쌈장 맛이 일품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약국 옆 골목인 석정길로 들어가면 오른쪽 골목 초입에 있다.

 

 

 

민가다헌 : (02)733-2966http://www.minsclub.co.kr 

 

 

민가다헌은 구한말 명성황후의 친척이었다는 민병옥의 저택을 그대로 음식점으로 쓰는 집이다. 민병옥 저택은 당시로는 파격적이어서 서양식 한옥이라 불릴 만한 집이었다고 한다. 집의 골격은 한옥이고 내부 시설은 당시의 서양식으로 만든 집이다. 그렇다 보니 민가다헌은 음식점 자체가 우리 근대사를 보여주는 유물이라 할 수 있어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빼어난 곳이다. 이곳의 음식은 한식과 양식이 결합된 퓨전 음식이다. 메뉴를 보면 ‘다진 쇠고기 허브 비빔밥과 장국’. ‘오늘의 파스타’, ‘청경채와 제주산 흑돼지 삼겹살찜’, ‘감자조림과 생강 데리야끼 소스의 흑대구찜’, ‘민트젤리와 레드와인 소스의 양갈비구이’ 등이다. 직접 먹어봐도 평을 하기 힘든 음식들이니 설명이 필요없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직접 찾아가 맛을 봐야 한다. 음식의 양은 적은 편이고 가격은 그리 비싼 편은 아닌 것 같다. 수도약국 옆 골목인 석정길을 따라가면 왼쪽으로 주차장 건너편에 있다.

 

 

 

별다방 미스리 : (02)739-0939,   http://www.missleecafe.com 

 

 

별다방 미스리는 전통찻집이다. 모과차, 오미자차, 유과차 등 다양한 전통차가 있다. 전통차를 주문하면 한과도 푸짐하게 따라나온다. 그리고 이 집에는 ‘추억의 도시락’이라는 특별한 메뉴가 있다. 옛날 학창시절 도시락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메뉴로, 양은 도시락에 밥과 계란후라이, 소시지, 김치 등을 담아 주는 메뉴로 의외로 젊은층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로 나가 인사동길로 접어들자마자 길 오른쪽에 있다.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따뜻했던 순간들도 세월에 차곡차곡 쌓여 순도 높은 추억을 만들곤 한다 . 오랜 시간이 흘러도 늘 같은 자리에서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별다방과 콩다방도 흉내 낼 수 없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 .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쉴 수 있도록 ' 차 ' 를 파는 곳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흉내 낼 수 없는 마력을 더하고 있었던 오래된 다방 . 소개하고 싶은 세 곳 모두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해 있어 부담 없이 다녀올만한 지리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 그렇다면 잠시 그곳으로 떠나볼까 ?

 

통인동 이상의 집 ( 구 . 제비다방 )


 

천재적 작가 이상이 살았던 집 ' 터 ' 의 일부에 자리하고 있어 그가 밟고 지나던 땅이었다는 점과 스물일곱 짧은 생을 마감했던 그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 되겠다 . 건물 정면의 일부분이라도 거울을 설치해 거울을 바라보며 '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의 나를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

소통의 공간으로 변신한 이상의 집

 

 

' 제비다방 ' 이라는 이름 대신 ' 이상의 집 ' 으로 여행자들의 쉼터가 되고 있는 공간이다 . 지나가며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커다란 유리로 마감하였고 ,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자리에서 40 여 권의 관련 도서를 열람할 수 있도록 놓아두었다 . 또한 ,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도록 이동이 가능한 구조였다 . 이상과 관련된 영상을 상영하고 있는 비밀공간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

이상의 집 그리고 셀프 커피

 

아울러 방문자를 위해 도슨트 부스에 놓여있는 기본 티백 음료와 원두커피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니 서촌마을을 탐방하는 여행자들이 잠시 머물다 가기 좋은 조용한 쉼터로 생각하면 되겠다 .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기에도 좋다 . 다만 머물다 떠난 흔적을 남기지 말고 , 기부로 마련된 책들은 책장에 반납하는 센스를 잊지 말자 .

휴무 : 일요일 , 월요일

날개

 

날개야 다시 돋아라 .

날자 . 날자 . 날자 . 한 번만 더 날자꾸나 .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


인사동 골목길

 

종로보다는 율곡로와 가까이 있는 어느 골목길 . 올바른 시작점을 찾는데 큰 도움을 주는 이정표가 있어 ' 카페 귀천 ' 을 찾아가는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다 . 서울에 남아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기도 해서 맵 정보를 통해서도 그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 이번엔 인사동 14 길을 통해 미래유산으로 남길만한 소중한 흔적들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

인사동 카페 귀천

 

전통찻집과 어울리는 내부 공간은 아니었지만 손님이 없어 빈자리만 남았다는 것이 더 슬펐다 . 차를 반 정도 마시고 있었을 때 이곳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손님들이 안으로 들어와 다행이었지만 . 그땐 주인만큼이나 반가운 마음에 내가 주문을 받을 뻔했다 .

먼저 입장한 이유로 창문이 있는 자리를 선점하게 되었는데 좁은 골목길을 따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하고 , 출입구에 놓인 커다란 통을 보고는 숙성과정을 거치는 것이 무엇인지 주인에게 물어보기 편한 자리에서 메뉴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

쌍화차

 

테이블 위에 한지로 만든 메뉴판을 놓고 가게 주인은 있던 자리로 다시 돌아간다 . 유리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가게에 은은하게 남아있는 향은 미리 생각해두었던 메뉴를 하얗게 지우게 만들었다 . 쌍화차를 주문해버렸다 . 마음이 정해버린 메뉴였고 , 기다리면서 작은 카페 내부를 살펴보고 있었다 . 음식을 주문하듯 주문과 함께 메뉴가 만들어지는 작은 소리들이 들렸다 . 완전한 100 도가 되기까지의 기다림 .

주문했던 차가 놓였다 . 새롭게 알게 된 쌍화차의 단짝 친구 설탕에 절인 생강 . 겨울이 시작되고 추위가 몇 번을 반복하면 설탕에 절인 생강이 생각나서 다시 찾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

천상병 시인의 그림과 사진

 

책장에서 꺼낸 그의 시집을 펼쳐보다가 ' 간의 반란 ' 을 읽어보게 되었다 . 시의 일부를 발췌해보면 이렇다 .

' 내 간이 괘씸하게도 쿠데타를 일으켰다 .

그 쪼무래기가 뭘 할까만은 아직도 살고픈 목숨 가까이 다가온다 .'

낙천적인 그를 끝까지 괴롭혔던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 벽에 걸린 액자 속 천상병 시인의 그림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 가난이 내 직업이라고도 표현했던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아름다운 시 구절을 생각나게 했다 .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방명록

 

스프링 노트가 제법 많이 쌓여있었다 . 가끔은 종이에 남긴 누군가의 글들을 훔쳐보는 맛에 펼쳐보았는데 글을 남기는 날짜와 누군가의 손글씨로 남겨진 글들을 읽다보면 뭉클하게 만드는 사연에 진심의 깊이를 느끼게 만든다 . 온라인으로 남기는 댓글처럼 색이 다른 펜으로 지금은 그때보다 좀 더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지 ,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남기고 싶었다 .

학림다방 앞 횡단보도

 

산책하기 좋은 날씨라면 가끔씩 혜화역에 도착해 대학로 주변을 걸어본다 . 소극장들이 반짝이는 별들처럼 모여 있는 길을 지날 때면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었는데 동물원의 ' 혜화동 ' 이었다 . 나에게 말하는 듯 담긴 그 노래는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라는 가사를 담고 있었다 .잊는다는 것은 어쩌면 구속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일일 수도 있고 ,반대로 결국은 찾지 못해 커다란 아쉬움을 남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 .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횡단보도에서 2 층에 있는 학림다방을 바라본다 . 같은 시기에 개업을 했을 책방과 음반 매장들은 쓸쓸하게 그 흔적마저 지워버렸음에도 학림다방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신호등에 청춘 불이 들어왔다 .

학림다방 출입구

 

계단을 따라 2 층 출입문 앞에 도착하기까지 . ' 오래된 시간 ' 을 압축한 터널을 지나는듯한 느낌을 전하는 것은 바닥에 벗겨지고 닳아버린 흔적들이었다 . 반갑게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삐걱댄다는 것이 은근히 잘 어울리는 나무계단을 하나씩 밟아가며 나를 위한 빈자리를 기대하고 있었다 .

학림다방

 

문을 열고 보니 한눈에 내부 공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 왠지 누런색 대봉투 하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어울릴 것 같은데 실시간 검색순위를 파악할 수 있는 스마트 폰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 찾아오는 젊은 손님들을 ' 우리 또래 ' 가 아닌 ' 요즘 애들 ' 로 불러도 괜찮은 내 나이가 이 공간 안에서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졌다 .

다행히 구석에 빈자리가 있어 앉았다 . 주문을 마치고 카메라만 들고 갤러리를 구경하듯 느긋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 안쪽으로 계단을 두어 복층구조로 생긴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었다 . 그런 공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내 마음을 더 설레게 만든다 . 이미 그곳은 빈자리가 없었지만 가끔씩 내 생각들을 표현하는 감성 작업공간으로 이용해 볼 생각이다 .

레귤러커피와 크림치즈케이크

 

찻잔 위에 놓인 스틱형 설탕에게 달달함을 요청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나는 커피의 쓴맛에 익숙해 있었다 . 같이 주문했던 블루베리 잼을 곁들여 먹는 크림치즈케이크가 달콤함으로 위로를 하겠지만 ...

명륜동 학림다방

 

시간이 흐르고 빈자리가 생기면 다시 누군가 찾아와 새롭게 온기를 남기는 학림다방 .

오래된 소파나 테이블들은 오래된 시계가 고장 난 것처럼 정지된 듯 보이지만 2014 년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고 벽면에 보관되어 있는 엘피 레코드 판들이 턴테이블 위에 올려지면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커피향기와 함께 퍼져나간다 . 소파에 앉아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을 하는 공간은 몇 년 뒤면 60 주년을 맞이한단다 .

부르면 편안하게 느껴지는 ' 학림 ' 이라는 이름과 그 공간이 먼 훗날에도 잊히지 않고 자랑스러운 미래유산으로 남아있길 바라며 찻잔에 남겨진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며 자리를 정리했다 .

[중앙일보] 외부 필진 : 이웃집 블로거 빌시 , 이진형

■ 인사동 찻집
과실 발효한 진한 맛 찻집 즐비
귀천, 전통다원, 달새, 소금인형 등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는 표현이 있다. 한양 도성의 남쪽 사람들은 술을 잘 마시고 북쪽 사람들은 떡을 잘 먹는다는 이야기다.

남북을 가르는 경계는 청계천이다. 한양의 남쪽 끝은 청계천이었다. 남쪽은 남산 기슭이다. 도성 밖, 무반(武班)들이나 딸깍발이 선비들이 살았던 곳이다. 가난한 곳. 예나 지금이나 벼슬이 낮거나 가난한 사람들은 가슴에 맺힌 한이 많다. 술로 풀 수밖에 없다.

북쪽은 경복궁 일대를 말한다. 오늘날 삼청동 일대는 북촌이다. 고위직 관리들을 비롯하여 행세하는 이들이 살았다. 넉넉한 이들은 떡 상을 받았다. 떡은 반가에서 나온다. 낙원동 일대에 떡집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북촌에 가깝기 때문이다. 수요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인사동도 북촌, 경복궁과도 가깝다.

떡은 차와 어울린다. 밀가루에 비해 화려한 맛이 부족하고 빵이나 케이크에 비하면 심심하다. 그래서 케이크는 커피와, 떡은 차와 어울린다. 케이크는 강하고 맛이 짙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떡은 은은한 맛이 깊다. 차도 그러하다. 북촌, 떡집과 가까운 인사동에 찻집들이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한국의 차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표현은 틀렸다. 한국의 차 문화는 나름 그 독특함이 있다. 차를 덖고 말리고 찌는 과정은 일본이나 중국보다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간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차는 가볍게 발효한다. 중국의 우롱차나 일본의 말차보다 은은하고 부드럽다. 일상적으로 차를 마시는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국수주의적이거나 자학적인 사관으로 분석할 일이 아니다. 한국의 음식에 맞는 차 문화가 있었을 뿐이다. 김치, 된장, 청국장을 먹고 차를 마셔도 입이 개운해지지는 않는다. 발효음식이 많은 한식을 먹고 나서 차로 입가심을 하면 아무래도 부족하다.

우리의 전통적인 후식은 숭늉, 곡차다. 곡물을 익히고 태워서 만든, 그 무엇보다 심심하지만 깊은 맛을 낸다. 된장찌개를 먹고 난 후에는 숭늉이 제격이다. 그래서 전통찻집이 많은 인사동에서도 맑은 녹차보다는 과실을 직접 발효한 진한 맛의 찻집들이 많고 인기 있다. 굳이 한국식 차 문화를 이야기하자면 "맑은 음식을 원했던 불교와 가깝다"고 표현해야 한다.

'경인미술관전통다원'은 인사동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단순한 미술관은 아니다. 그 안에 차를 마실 수 있는 실내 공간과 야외 공간이 널찍하게 있다. 인사동 마니아들은 전통다원의 야외에서 차 한 잔 마시는 걸 인사동 나들이 주요 목표(?)로 삼기도 한다. 전통 한옥이 갤러리와 찻집을 겸한다. 겨울을 제외하고는 야외석이 늘 인기 있다. 차를 주문하면 간단한 다과와 함께 나온다. 전통 차는 강하고 진한 맛 보다는 깨끗하고 깊은 맛이다. 구석구석 볼거리도 넉넉하다. 여러 전시회가 동시에 열리기도 한다. 가족단위로 방문하여 따로 관람을 해도 좋다. 널찍하면서 은은한 경치들은 덤이다.

'인사동'은 동네 이름 인사동을 그대로 가게 이름으로 정했다. 입구는 좁지만 내부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넓어진다. '좁은 입구-좁은 실내-자그마한 마당-한옥 공간'으로 이어지는 특이한 구조다. 내부 공간은 꽤 넓고 특히 정원보다는 마당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뒷마당이 아주 좋다. 전체적으로 분위기도 요란하지 않고 은은하다. 나무를 잘 사용한 공간이 아주 좋다. 실내의 따뜻하고 노란 조명이 공간을 밝힌다. 모과차, 대추차 등의 진한 맛을 내는 과실발효차들이 있다. 날이 따뜻한 봄철부터 가을까지는 실내 공간 뒤의 뒷마당이 좋고, 추운 계절에는 아늑한 한옥이나 앞의 좁은 실내 공간이 좋다.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는 널리 알려진 로맨틱한 이름이다. 여기저기 인용도 많이 되고 있다. 제목은 류시화 시인의 산문집에서 이름을 따왔다. '달새'는 특정한 새의 이름은 아니다. 그저 종달새의 '달새'다. 1990년대 후반에 개업한, 제법 내력 있는 찻집이다. 쌈지길 뒤 작은 골목에 덩굴로 덮인 입구가 있다. 입구도 퍽 로맨틱하다. 1년 이상 숙성, 발효한 차를 내놓는다. 모과차가 향기롭기도 유명하다. 내부 공간은 오밀조밀하고 전통 소품들로 가득 차 있지만 난잡하지는 않다. 일본에도 널리 소개되어 일본인 관광객들의 방문도 잦다.

'소금인형'은 인사동 사거리 옆길에 있는 수더분하고 소박한 찻집이다. 내부는 갤러리처럼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정겹다. 전통적으로 인기가 있는 모과차와 더불어 한층 업그레이된 모과빙수가 인기다. 보기 드문, 맑고 깨끗한 차를 원한다면 장미차를 추천한다. 장미꽃 차다. 향은 화려지만 깊고 은은한 단맛이 있다.

'귀천'은 고 천상병 시인과 목순옥 여사의 러브 스토리와 가게 이름이기도 한 천 시인의 시 제목 '귀천'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인사동에서 가장 유명한 찻집이다. 이제 목순옥 여사도 '소풍'을 끝내고 떠났다. 친척조카가 이어받아 운영하는 걸로 알려졌다. 차보다는 분위기를 음미하는 곳이라지만 직접 담근 차도 수준급이다. 특히 팥빙수가 인상적이다. 팥과 떡, 약간의 마른 과일이 전부인데 깜짝 놀랄 만큼 맛있다.

'아름다운 차박물관'도 한번쯤은 가볼 만하다. 인사동에서 종로로 향하는 길, 한걸음 뒷골목에 있다. 깔끔한 한옥 갤러리이다. 다양한 차와 도구들을 볼 수 있다. 차의 종류에 맞춰 각양각색의 다기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녹차는 물론 꽃차, 지리산 하동 송주스님의 수제 차까지 다양하게 있다. '아름다운 차박물관'만의 메뉴는 홍차빙수다. 수북한 홍차얼음에 견과류는 따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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