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따뜻했던 순간들도 세월에 차곡차곡 쌓여 순도 높은 추억을 만들곤 한다 . 오랜 시간이 흘러도 늘 같은 자리에서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별다방과 콩다방도 흉내 낼 수 없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 .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쉴 수 있도록 ' 차 ' 를 파는 곳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흉내 낼 수 없는 마력을 더하고 있었던 오래된 다방 . 소개하고 싶은 세 곳 모두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해 있어 부담 없이 다녀올만한 지리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 그렇다면 잠시 그곳으로 떠나볼까 ?

 

통인동 이상의 집 ( 구 . 제비다방 )


 

천재적 작가 이상이 살았던 집 ' 터 ' 의 일부에 자리하고 있어 그가 밟고 지나던 땅이었다는 점과 스물일곱 짧은 생을 마감했던 그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 되겠다 . 건물 정면의 일부분이라도 거울을 설치해 거울을 바라보며 '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의 나를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

소통의 공간으로 변신한 이상의 집

 

 

' 제비다방 ' 이라는 이름 대신 ' 이상의 집 ' 으로 여행자들의 쉼터가 되고 있는 공간이다 . 지나가며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커다란 유리로 마감하였고 ,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자리에서 40 여 권의 관련 도서를 열람할 수 있도록 놓아두었다 . 또한 ,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도록 이동이 가능한 구조였다 . 이상과 관련된 영상을 상영하고 있는 비밀공간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

이상의 집 그리고 셀프 커피

 

아울러 방문자를 위해 도슨트 부스에 놓여있는 기본 티백 음료와 원두커피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니 서촌마을을 탐방하는 여행자들이 잠시 머물다 가기 좋은 조용한 쉼터로 생각하면 되겠다 .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기에도 좋다 . 다만 머물다 떠난 흔적을 남기지 말고 , 기부로 마련된 책들은 책장에 반납하는 센스를 잊지 말자 .

휴무 : 일요일 , 월요일

날개

 

날개야 다시 돋아라 .

날자 . 날자 . 날자 . 한 번만 더 날자꾸나 .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


인사동 골목길

 

종로보다는 율곡로와 가까이 있는 어느 골목길 . 올바른 시작점을 찾는데 큰 도움을 주는 이정표가 있어 ' 카페 귀천 ' 을 찾아가는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다 . 서울에 남아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기도 해서 맵 정보를 통해서도 그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 이번엔 인사동 14 길을 통해 미래유산으로 남길만한 소중한 흔적들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

인사동 카페 귀천

 

전통찻집과 어울리는 내부 공간은 아니었지만 손님이 없어 빈자리만 남았다는 것이 더 슬펐다 . 차를 반 정도 마시고 있었을 때 이곳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손님들이 안으로 들어와 다행이었지만 . 그땐 주인만큼이나 반가운 마음에 내가 주문을 받을 뻔했다 .

먼저 입장한 이유로 창문이 있는 자리를 선점하게 되었는데 좁은 골목길을 따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하고 , 출입구에 놓인 커다란 통을 보고는 숙성과정을 거치는 것이 무엇인지 주인에게 물어보기 편한 자리에서 메뉴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

쌍화차

 

테이블 위에 한지로 만든 메뉴판을 놓고 가게 주인은 있던 자리로 다시 돌아간다 . 유리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가게에 은은하게 남아있는 향은 미리 생각해두었던 메뉴를 하얗게 지우게 만들었다 . 쌍화차를 주문해버렸다 . 마음이 정해버린 메뉴였고 , 기다리면서 작은 카페 내부를 살펴보고 있었다 . 음식을 주문하듯 주문과 함께 메뉴가 만들어지는 작은 소리들이 들렸다 . 완전한 100 도가 되기까지의 기다림 .

주문했던 차가 놓였다 . 새롭게 알게 된 쌍화차의 단짝 친구 설탕에 절인 생강 . 겨울이 시작되고 추위가 몇 번을 반복하면 설탕에 절인 생강이 생각나서 다시 찾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

천상병 시인의 그림과 사진

 

책장에서 꺼낸 그의 시집을 펼쳐보다가 ' 간의 반란 ' 을 읽어보게 되었다 . 시의 일부를 발췌해보면 이렇다 .

' 내 간이 괘씸하게도 쿠데타를 일으켰다 .

그 쪼무래기가 뭘 할까만은 아직도 살고픈 목숨 가까이 다가온다 .'

낙천적인 그를 끝까지 괴롭혔던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 벽에 걸린 액자 속 천상병 시인의 그림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 가난이 내 직업이라고도 표현했던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아름다운 시 구절을 생각나게 했다 .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방명록

 

스프링 노트가 제법 많이 쌓여있었다 . 가끔은 종이에 남긴 누군가의 글들을 훔쳐보는 맛에 펼쳐보았는데 글을 남기는 날짜와 누군가의 손글씨로 남겨진 글들을 읽다보면 뭉클하게 만드는 사연에 진심의 깊이를 느끼게 만든다 . 온라인으로 남기는 댓글처럼 색이 다른 펜으로 지금은 그때보다 좀 더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지 ,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남기고 싶었다 .

학림다방 앞 횡단보도

 

산책하기 좋은 날씨라면 가끔씩 혜화역에 도착해 대학로 주변을 걸어본다 . 소극장들이 반짝이는 별들처럼 모여 있는 길을 지날 때면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었는데 동물원의 ' 혜화동 ' 이었다 . 나에게 말하는 듯 담긴 그 노래는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라는 가사를 담고 있었다 .잊는다는 것은 어쩌면 구속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일일 수도 있고 ,반대로 결국은 찾지 못해 커다란 아쉬움을 남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 .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횡단보도에서 2 층에 있는 학림다방을 바라본다 . 같은 시기에 개업을 했을 책방과 음반 매장들은 쓸쓸하게 그 흔적마저 지워버렸음에도 학림다방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신호등에 청춘 불이 들어왔다 .

학림다방 출입구

 

계단을 따라 2 층 출입문 앞에 도착하기까지 . ' 오래된 시간 ' 을 압축한 터널을 지나는듯한 느낌을 전하는 것은 바닥에 벗겨지고 닳아버린 흔적들이었다 . 반갑게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삐걱댄다는 것이 은근히 잘 어울리는 나무계단을 하나씩 밟아가며 나를 위한 빈자리를 기대하고 있었다 .

학림다방

 

문을 열고 보니 한눈에 내부 공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 왠지 누런색 대봉투 하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어울릴 것 같은데 실시간 검색순위를 파악할 수 있는 스마트 폰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 찾아오는 젊은 손님들을 ' 우리 또래 ' 가 아닌 ' 요즘 애들 ' 로 불러도 괜찮은 내 나이가 이 공간 안에서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졌다 .

다행히 구석에 빈자리가 있어 앉았다 . 주문을 마치고 카메라만 들고 갤러리를 구경하듯 느긋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 안쪽으로 계단을 두어 복층구조로 생긴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었다 . 그런 공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내 마음을 더 설레게 만든다 . 이미 그곳은 빈자리가 없었지만 가끔씩 내 생각들을 표현하는 감성 작업공간으로 이용해 볼 생각이다 .

레귤러커피와 크림치즈케이크

 

찻잔 위에 놓인 스틱형 설탕에게 달달함을 요청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나는 커피의 쓴맛에 익숙해 있었다 . 같이 주문했던 블루베리 잼을 곁들여 먹는 크림치즈케이크가 달콤함으로 위로를 하겠지만 ...

명륜동 학림다방

 

시간이 흐르고 빈자리가 생기면 다시 누군가 찾아와 새롭게 온기를 남기는 학림다방 .

오래된 소파나 테이블들은 오래된 시계가 고장 난 것처럼 정지된 듯 보이지만 2014 년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고 벽면에 보관되어 있는 엘피 레코드 판들이 턴테이블 위에 올려지면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커피향기와 함께 퍼져나간다 . 소파에 앉아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을 하는 공간은 몇 년 뒤면 60 주년을 맞이한단다 .

부르면 편안하게 느껴지는 ' 학림 ' 이라는 이름과 그 공간이 먼 훗날에도 잊히지 않고 자랑스러운 미래유산으로 남아있길 바라며 찻잔에 남겨진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며 자리를 정리했다 .

[중앙일보] 외부 필진 : 이웃집 블로거 빌시 , 이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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