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개막된 정영신의 ‘장에 가자’ 사진전이 10일간의 일정을 잘 마무리했다.

 

그동안 전시를 하면 아는 분들에게 초대장을 보내거나 여러 통로로 알려왔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예전과 달라 별도의 초대를 하지 않았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때라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가 있어 페이스 북으로만 알렸다.

 

그래서인지 인사동과 관련된 오래된 지인들이 많이 빠졌다.

그러나 전시 작품을 보러 오거나 책을 구입하기 위해 들리는

순수한 수요층이 많았다는 것은 또 하나의 성과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을 자제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을 찾아주시거나,

책을 구입하는 등 성원해 주신 많은 페친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덕분에 ‘장에 가자’ 책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아래 사진은 지난17일부터 전시가 마무리된 20일까지 방문한 분의 모습과 전시장 풍경이다.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전시장에 들린 분들을 모두 기록하려 했으나, 미처 빠트린 분도 많았다.

받은 것만큼 돌려 드린다는 다짐으로 꼼꼼히 챙겨왔으나 말처럼 쉽지 않았다.

 

지난 17일은 사진을 찍기 위해 뒷걸음질 치다 턱에 걸려 뒤로 넘어지는 봉변을 당했다.

넘어지며 오른 손으로 바닥을 짚었는데,

오른 손에 잡혀있던 카메라가 바닥에 부딪혀 렌즈가 망가져 버렸다.

심하게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몸은 별로 다치지 않았다.

카메라를 놓았다면 그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텐데, 욕심이 일을 키운 셈이다.

 

니콘AS센터에 갔더니, 단종된 카메라라 렌즈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혹시나 알 수 없어 카메라는 두고 왔으니, 이젠 사진도 찍을 수 없게 되었다.

정영신씨 카메라로 가끔 찍었지만, 총 잃은 병사에 다름아니다.

 

정오 무렵에는 ‘눈빛’의 이규상대표가 전시장을 방문하여

김남진관장과 함께 충무로 ‘뚝배기집’에서 미역국을 먹었다.

그 날 이규상씨로부터 듣게 된 따끈한 소식은 홍대부근에 개장한

‘예술산책’ 책방에다 고객을 위한 작은 갤러리를 만든단다.

그 곳에서 정영신의 ‘장에 가자’전을 다시 열자고 했다.

 

시나리오 작가 최건모씨는 불광서점에서 사인회를 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이 것 저 것 가리지 않고 책 판매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나설 작정이다.

 

그날은 짐 때문에 차를 끌고 나와, 온 종일 주차문제에 시달려야 했다.

충무로는 타 지역보다 주차비가 비싸 전시장을 지키고 싶어도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동자동으로 이동하여 빈자리에 차를 세우고 모처럼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컴퓨터 켜기가 무섭게 예술감독 안애경씨가 전시장에 들렸다는 연락이 왔다.

 

차를 두고 지하철로 달려갔는데, 인사도 나누기 전에 차 빼 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안애경씨가 주차한 곳까지 태워 주었는데,

손님에게 굳은 일을 시키는 부담을 안기고 말았다.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오니 에니메이션감독 주흥수씨와 화가 유준씨가 전시장을 찾아왔다.

주감독과 만날 약속은 일찍부터 한 터라 저녁식사라도 함께 할 작정이었으나,

약속이 겹쳐 잔시장을 비울 수가 없었다.

 

뒤늦게 나타난 조준영교수와 저녁식사를 하러 갔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차 때문에 술 한 잔 마실 수도 없었는데, 하루 종일 저 놈의 차가 내 발목을 잡았다.

 

전시기간 동안 동자동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 내가 없는 사이 다녀간 분도 많았다.

사진가로는 헤이리에서 ‘갤러리 움’을 운영하는 권홍, 이경희부부를 비롯하여

제이 안, 양시영, 윤성광씨가 다녀갔고, 화가 전인경씨와 전인미, 조경석, 심금숙, 심경애, 김인숙,

문금희, 박상문, 조한곤, 류순이, 강선준, 한동일, 김지욱, 이창수, 박성득, 이경애. 정진택,

박경애, 유현동, 한승훈, 김순남, 채재웅, 김욱수, 권병준, 조영기, 조용모, 정혜령씨 등

많은 분들이 전시장을 다녀갔더라.

 

그 이틀 날은 사진가 김수길씨와 이민씨를 전시장에서 만났는데,

김수길씨는 어디가 아팠는지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

아마 이화마을 빨래줄 전시를 치르느라 힘들었던 모양이다.

 

늦은 시간에는 고향 후배인 사진가 하재은씨가 찾아왔다.

요즘은 페북에 통 보이질 않아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는데,

그 사이 목동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등 바쁜 일이 많았단다.

이사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던 앱숀 프린트기도 처분했다고 한다.

 

하재은씨는 한 때 외국 시장을 주제로 작업을 했으나,

지금은 고향의 사계를 집중적으로 기록한다고 했다.

그 날 드론으로 공중 촬영된 동영상을 보여주는데,

고향인 영산의 가을이 그토록 아름다운 줄은 미처 몰랐다.

 

지난 19일은 공윤희씨와 최석우씨가 찾아 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최석우씨가 전시장 바로 옆에 있는 일식집으로 가자는데, 평생 일식집은 처음이라 망설여졌다.

유별나게 일본을 싫어해 그동안 일본여행은 물론 스시집 마저 철저하게 외면했지만,

손님의 배려를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음식 값이 비싸기는 해도 너무 맛있게 먹었다는 정영신씨 말에

한 번도 데려가지 못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전시가 끝나는 20일은 정오 무렵에야 전시장에 나갔는데,

아들 조햇님과 ‘진인진출판사’의 김태진 대표가 와 있었다.

아마 정의당 동지로서 가까운 사이 같았다.

 

김태진씨는 ‘장에 가자’ 책 내용이 좋아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 분에게

선물할 책을 여러 권 구입해 와서 서명을 받아 갔다.

많은 책을 구입해 준 것만도 고마운데, 작품까지 한 점 사주었다.

인사치레만이 아니라 고향을 그립게 하는 정감도 한 몫 한 것 같았다.

 

이번 전시의 작품판매는 곽명우씨가 사간 작품에 이어 두 번째인데, 너무 고마웠다.

여지것 살아오며 많은 전시를 치러 왔으나, 손해 보는 줄 알면서도 치루는 병중의 큰 병이다.

경제적 손실보다 그 곳에 쏟아 붓는 공력 또한 여간 아니기 때문이다.

난, 전시를 열어준다고 해도 한사코 손사래를 쳐 왔으나, 정영신씨 경우는 달랐다.

어렵사리 책을 내준 출판사 사정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사진집으로 대중성을 갖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지만,

이 책은 따뜻한 이야기 거리가 담겨있어 대중성에 기대 걸만도 했다.

다행히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 사는 정이 그리운 때라 시기적으로도 적절한 것 같았다.

 

출판사의 주도면밀한 접근으로 일단은 출판 몇 일만에

재판에 들어갈 정도로 잘 팔리는 책으로 낙점 되었다.

 어쩌면 이 전시가 끝이 아니라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뒤 이어 사진가 이동준씨와 강정효씨가 나타났는데,

제주에서 온 강정효씨는 다음에 전시할 작가였다.

남태영씨의 도움을 받아 작품 철수에 들어갔는데, 액자가 없으니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저녁에 전시를 끝낸 기념파티를 ‘뮤아트’ 김상현씨가 마련한다는데,

점염병이 기승을 부려 지인들을 마음 편히 초대할 수도 없었다.

 

아무튼, 전시를 추진한 김남진관장을 비롯하여

도움준 많은 분들의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사진: 정영신 / 글: 조문호

 

'장이 가자' 책을 소개한 신문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blog.daum.net/mun6144/5805

 

 

 

 

 

 

 

난, 생일을 유달리 싫어한다.

나만을 위한 특별한 날이 부담스러워서다.

어릴 적부터 생일은 어머니를 위한 날이라고 여겨왔다.

오죽하면 미역국을 싫어했을까?

 

젊을 때는 음력 생일을 가족들이 챙겨주었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가며 음력 생일은 잊어버렸다.

한 동안 생일은 잊고 지나칠 때가 더 많았는데,

정영신씨를 만나며 피곤할 정도로 생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음력생일이 양력생일로 바뀌었고,

그 미끌미끌한 미역국 먹는 일이 유일한 생일치레였다.

그냥 지나치기를 바랬으나, 페이스 북을 시작하며 더 큰 곤욕을 치룬다.

 

생일이 되면 페북에서 나팔 불어대니, 잊고 지나치기는커녕

잘 모르는 페친까지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날려댄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생일을 맞는다는 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것 같다.

 

지난 9월3일에는 폭우로 정선 만지산에 고립되어 있었다.

이튿 날 아침에 생일밥을 먹기로 약속 했는데,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

정오 무렵에야 물길이 열려 떠날 수 있었다.

 

아침 약속이 저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는데,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평소 네 시간이면 충분한 국도가, 이날은 양평에서 밀리기 시작하여

장장 일곱 시간이 걸려서야 녹번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영신씨는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조촐한 생일 밥상을 준비해 두었는데, 손녀 하랑이도 온다고 했다.

 

좀 있은니 아들 햇님이 내외와 귀염둥이 하랑이가 등장했다.

하랑이가 생일케익까지 들고 왔는데, 그 날은 생일 같았다.

 

하랑이를 웃기려 빠진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더니,

괴기한 모습에 놀란 하랑이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진짜 웃기는 건, 나를 보지 않겠다고 눈을 감아버린 것이다.

 

하랑이 마음을 달래려고, 좋아하는 얼음과자를 주어도 반기지 않고

생일케익에 불을 꺼라 해도 시무룩했다.

얼마나 할애비가 얄미웠으면 눈을 반쯤 감고 안 보려 할까?

 

“하랑아~할아비 생일을 축하해 주어 고마워”라고 말했더니

그때사 손 키스를 날려준다.

 

하랑이가 요즘은 어린이집에 다녀 그런지

말도 제법하고 귀여운 짓을 곧 잘한다.

먼 길을 탈출하여 어렵사리 생일상을 받은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생일을 맞고 싶지 않다.

이젠, 나에게 생일은 없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2일 저녁 무렵, 우리 공주님이 출두했다는 소식이 떴다.

아들 햇님이 내외와 손녀 하랑이가 녹번동 ‘은평평화공원’에 왔다는 거다.

평화공원은 지척이라 냉동실의 얼음과자 몇 개 챙겨들고 달려갔다.

 

공원에는 아들과 며느리가 와 있었는데, 하랑이는 신이나 어쩔 줄 몰랐다.

잔디밭을 종횡무진 뛰어 다니며 무슨 말인지도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다.

방에 갇혀 지내다 모처럼 넓은 공원에 나왔으니, 신날만도 했다.

 

방바닥을 기어 다니던 때가 엊그제 인데, 벌써 다 커 버렸다.

쉴 틈 없이 바삐 움직여, 어른 같았으면 몸살 날 것 같았다.

그토록 잔디밭에서 뛰어다녔으나,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

 

하랑이가 유모차를 가르키며 중얼거리는 걸 보니,

자기 차라고 자랑 하는 것 같았다.

소리를 지르거나 뭔가 중얼대는 걸 보니, 곧 말도 할 것 같았다.

 

유모차로 녹번동까지 왔으니, 장거리 운행이었다.

떠나려고 유모차에 태우니, 이미 알아채고 손부터 흔들어댔다.

하랑이는 신나게 놀았으나, 어른들은 재롱이며 기쁨이었다.

 

하랑 공주님! 잘 가세요.

다음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줘요.

 

사진, 글 / 조문호

 

 



정선 가는 길에 만지산 이선녀씨로 부터 두릅을 얻어왔다.
집에 키운 두릅을 망쳐 사러 갔으나, 돈을 받지 않아 신세지게 되었다.
그런데, 얻어 온 량이 적지 않아 정영신씨가 주변 분들과 나누어 먹겠단다.
냉장 보관할 곳이 없어 빨리 전달해야 한다기에 고사떡 나누듯

육등분해 택배기사 노릇을 자청한 것이다.




전해 드릴 분 명단을 받아 서울 시내를 한 바퀴 돌았는데, 그 일도 예삿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강남에 계신 한교수님 댁에 가는 일이었다.
요즘 몸이 편치 않아 집에만 계시기에 한번 찾아뵙고도 싶었던 터다.
어렵사리 전해드리기는 했으나, 퇴근 시간대에 걸려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남은 두 곳은 은평 지역이라, 하는 수 없이 정영신씨 집 부근으로 불러 모았는데,
시간이 지체되어 서인형씨를 한참 기다리게 만들었다.
무슨 대단한 선물한다고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좌우지간,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는 정영신씨의 극성은 알아주어야 한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저녁이라도 한 끼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마침 정선에 두고 왔던 가방을 찾아왔는데,
그 안에 든 통장 속에 재난지원금이 40만원 들어 와 있었다.
매번 얻어먹기만 하다 모처럼 술 한 잔 대접할 기회가 온 것이다.
아들까지 녹번동 ‘풍년식당‘으로 불러 두릅 전달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며느리와 손녀까지 만날 기회가 될 줄이야 미처 예상치 못했다.




손녀 하랑이가 이젠 걸음도 제법 잘 걸었다.
그 전에 만났을 때는 엄마 손에 끌려 다녔는데, 이젠 손녀가 엄마를 끌고 다녔다.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벌써 핸드폰을 갖고 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뭘 보는지 한 번 잡으면 그곳만 집중해 심각한 폐해가 우려되었다.




아들 햇님이는 임대료 마련이 어려워 정의당 은평사무실을 철수했다는 안 좋은 소식을 전했고,
서인형씨는 오는 27일 ‘스마트협동조합’ 개소식을 갖는다는 반가운 소식도 주었다.
좌우지간, 원님 덕에 나팔 불다보니, 내가 취해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8일, 하랑이 온다는 소식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하랑이 온다는 전화는 반가움에 앞서 걱정도 따랐다.
코로나 때문에 어른도 꼼짝달싹 않는데, 젖먹이가 우째 걱정이 안 되겠노?
아들 햇님이가 밖에 일보러 다니는 것조차, 병 옮길까 걱정하는 판에...




어쨌든, 하랑 공주님이 납시니 좋긴 좋더라.

조용한 집이 갑자기 난리 쳐들어 온 듯 복닥거렸다

지 모습 찍힌 동영상에 깔깔거리기도 하고,

책장에서 책을 뽑아보며, 이것저것 살피느라 바쁘다 바빠..


    

혼자 먹던 딸기는 어미와 애비는 주면서, 내가 달라니 울어 버리네.

딸기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귀신같은 할애비 꼬라지가 무서운 모양이다.

내 딴엔 하랑이 온다고 안 끼던 틀니까지 끼며 폼 잡았는데...

다음에 올 때는 머리도 자르고 동동 구리무 라도 좀 발라야겠네.


 

요놈의 자슥이 올매나 이뿌고 새칩은지 확 깨물어뿌고 싶더라.

저리 천진난만한 애를 보고도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란 양반은 정신 나 간기 틀림없다.

세상물정 모를 저때가 제일 좋은데, 점점 커가며 인간이 만든 굴레에 물들어가는 것 아이가?

나쁜 것도 배우고, 더러운 돈 욕심도 내고...


 

그 날은 하랑이 덕분에 모처럼 맛있는 음식까지 얻어먹었다.

연안식당에서 꼬막 비빔밥에다 멍게 비빔밥까지 완전 해적판이었다.

이제는 이도 여러 개 생겨 이 빠진 나보다 더 잘 먹더라.

그 큰 숟갈에 입 찢어질까 걱정스러웠다.


 

이젠 잡을 것만 있으면, 제법 아장 아장 걷기도 하네.

온 식당을 뿔뿔 기어 다니며 바닥 청소를 다 한다.

변화무쌍한 표정과 쉬지 않고 휘젓고 다니는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한 것 같다.

처음엔 마누라가 최고라며 호들갑 떨다가

자식이 생기니 자식이 최고라고 치켜세우고,

손자 생기니 손자가 최고라고 난리 피운다.


 

하기야! 옛말에 사랑은 내리사랑이란 말도 있다 아이가?


 

하랑이 덕에 온갖 근심걱정이 눈 녹듯 녹아 내렸다.

맨날 이뿐 선물 사 준다는 말만 해 놓고, 치매 끼가 있어 가고나면 이자뿐다.

다음에는 기어이 선물을 구해놓아 점수 좀 따야것다.


 

하랑아! 우짜던지 건강하게 잘 커그래이~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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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 동안 여러 가지 고민에 휩싸여 죽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코로나119'로 사회적 거리두기란 캠페인에 방콕해서 그런 게 아니라

김명성씨로부터 전달받은 돈도 한 몫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검찰이나 정치꾼들의 비인간적인 꼴에 간도 뒤집히지만,

몇 일 전에는 동자동 쪽방 촌의 유영기씨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왜 나쁜 놈들은 잘 살게 놔두고 착한 사람만 데려가는지 모르겠다. 과연 신이란 게 존재하는 것인가?.

종교라는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역할은 하지만, ‘신천지꼴을 보니 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벌금 내라며 김명성씨가 200만원 상당의 사진을 팔아주었는데, 죽어도 벌금을 내기 싫은 것이다.

그 사건을 담당한 검사는 말할 것도 없고, 판결 내린 판사도 똑 같은 놈이었다.

돈에 눈깔 뒤집혀 자연환경을 망가트리는 개인의 명예가 중요한가? 공익이 중요한가?

그런 개좆같은 판결에 승복하는 자신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서울역을 떠도는 부랑자나 쪽방 촌 친구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만찬이라도 벌이고 싶었다.

요즘 식당도 텅텅 비었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격이 아닌가?

그러나 나를 걱정해 주는 이들이 눈에 밟히기도 하지만, 죽는다는 것이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몇 날을 누워 이런 저런 생각만 하다 보니, 일단 주변정리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쪽방에 갇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페친을 정리하는 일 뿐이었다.

그동안 내가 지적한 일의 반감으로 뒤통수치거나, 한 통속이 되어 반응 없는 페친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대부분 오래된 인연이라 차마 친구 끊기를 못했는데, 이참에 100여명을 골라 삭제해버렸다.

그 대신 페친이 넘쳐 받아주지 못했던 잘 모르는 분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분풀이 치고는 치졸했으나, 엉뚱한데 신경 쓰지 않고 내 일에만 전념하겠다는 각오였다.


 

지난 18일은 모처럼 외출할 준비를 했다.

정영신씨께 연락해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열리는 변승훈씨와 강경구씨 전시를 보기로 했다.

개막식은 오후 다섯시였으나 요즘 전염병 때문에 사람 많이 만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오프닝에 날아들 똥파리를 피해 일찍 나선 것이다.


 

인사동도 며칠 전과 달리 사람들이 제법 나왔더라.

달라진 풍경이라면, 때 거리로 몰려다니는 외국관광객이 사라졌다는 것과

수도약국 앞에 마스크 사려고 줄선 행렬이었다.


 

강경구씨 전시가 열리는 통인가게’ 5층부터 올라갔더니, 관우선생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따라주는 와인 한 잔들고 전시작들을 돌아보았는데, 작품이 너무 좋았다.

마치 고뇌하는 오늘의 인간상을 그린 듯한데, 어찌 보면 이글어진 내 모습 같기도 했다.

좋은 작품들을 보니 마음이 편안했다.


 

다음에 볼 전시는 지하에서 열리는 변승훈씨의 도예전 手作禪이었다.

반갑게도 작가 변승훈씨도 있었고 이계선관장도 있었다.

오래 된 작품에서 부터 최근작까지 골고루 전시되었는데, 분청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변승훈씨만의 독창적인 작업이었다.

특히 최근에 제작한 불상 형태의 작품들을 보며 신은 인간자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작품은 불상이 아니라, 안성장터에서 몇 십년 동안 자리를 지킨 할머니들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술의 힘은 무서웠다. 온갖 근심 걱정을 다 떠안은 불편한 마음이 눈 녹듯 녹아 내렸다.

전시들이 곳곳에서 열리지만, 별 의미 없는 불편한 전시가 더 많은 현실이라 운도 따라야 한다.




인사동에서 믿을 수 있는 갤러리로는 통인가게전시장과 나무화랑정도로 꼽는다.

통인은 대관에 의지하지 않고, 관우선생과 이관장의 안목으로 초대되는 전시라 일단 보증할 수 있고,

나무화랑역시 미술평론가 김진하씨가 운영하는 화랑이라 실망시키는 전시가 별로 없다.


 

좋은 전시들을 보아 기분이 좋으니, 반가운 연락까지 왔다.

정영신씨가 며느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데, 아들 내외와 손녀 하랑이가 온다는 것이다.

부리나케 정영신씨 녹번동 집에 갔더니, 더디어 귀여운 공주님이 나타난 것이다.



귀신같이 생긴 내 모습에 울기도 하고, 제 모습을 담은 동영상에 깔깔거리기도 했다.

변화무쌍한 하랑이의 표정과 쉼 없이 휘젓고 다니는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부근에 있는 연안식당으로 옮겨 외식까지 했는데, 밥도 엄청 잘 먹었다.


 

그래, 좋은 일에 위안 받고 살자. 사는 게 별 것 있겠나.

 

사진, / 조문호













 

 




세상에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가슴 터질듯한 첫사랑의 감정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손에 잡힐듯 생생하니,

사랑의 바이러스가 어지간히도 진하고 강한 것인가 보다.
주체할 수 없었던 아득한 옛 사랑은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린다.




그 아름다운 사랑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가'가 잘 말해준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얼마나 좋았으면 이렇게 노래 불렀겠는가?
고려장해야 할 나이의 사랑타령이 좀 껄쩍지근하지만, 좋은 건 좋은 것이다.
비단 연인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라, 혈육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지난 설날 연휴에 쪽방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 저장된 사진을 옮겨 담느라 정신없는데,

정영신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빨리 와! 하랑이 왔어”
아무리 다급한 일이지만, 모든 걸 팽개치고 부리나케 달려간 것이다.




녹번동 정영신씨 집에 아들 햇님 내외와 손녀 하랑이가 와 있었다.
콧구멍한 집구석에 이토록 정이 철철 넘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몇일 전 돌잔치에서 본 하랑이와는 완전 달랐다.
무표정하게 폼만 잡은 그 때와는 달리 이리저리 비집고 다니며 신났다.




어른들이야 좁은 집이 불편하겠지만, 하랑이는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달라진 환경에 흥미를 느꼈는지, 책을 꺼내기도 하고 설합장을 열어보기도 하고,
문짝에 붙어 있는 장터할머니들의 다양한 표정을 보며 웃기도 했다.
심지어 제 모습을 찍는 카메라를 돌려보며 깔깔거렸다.
호기심 가득 찬 하랑이는 모든 게 신기하고 즐거울 뿐이었다.


 

나 역시 처다보기만 해도, 그 행복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혈육의 정을 이렇게 뜨겁게 느낀 적이 도대체 얼마만이던가?
햇님이 어릴 때 느꼈던 40 여 년 전으로 거슬렀다.




꼭 껴안고 싶어도, 행여 다찰까 손도 댈 수 없었다.
하랑이가 집에 머문 두 시간 동안은 행복감에 부풀어 잠시도 눈을 땔 수 없었다.
쉬지 않고 사방을 기어 다니며 세상의 재롱은 다 떨었다.

음식도 잘 먹고, 보채지도 않았다.



하랑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카메라 화인더로 지켜보았는데,
어른 같았으면 몸살 날 정도로 바삐 움직이며 표정도 변화무쌍했다.

붙잡고 일어서기도 하고, 말도 한마디씩 하며 숟가락 질도 곧잘 했다.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몸이 부르르 떨렸다.



행복감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하늘보다 더 높은 사랑의 감정을 다시 한 번 체감한 것이다.

아름다운 환경에 취했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행복감과는 수준이 달랐다.
잠시도 떨어지기 싫었던 연인의 사랑과도 또 다른 차원이었다.



하랑아! 할애비를 행복하게 해 주어 고맙구나.

부디 건강하게 자라다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남지현과 조햇님의 딸 조하랑의 생일잔치가 지난 18일 불광동 ‘본페뜨’에서 열렸다.




서둘러 나서기도 했지만, 시간 가늠을 잘 못해 한 시간이나 빨리 와 버렸다.
약속 때 마다 꾸물대다 늦게 가기 일수인데, 어지간히도 기다렸던 모양이다. 
아무도 없는 식장 주변을 30분이나 서성이는 촌놈 티를 내고 말았다.




시간이 되어보니, 돌상은 식장에서 차려 놓았고, 접대도 부페식이라 도와 줄 일이 없었다.
마침 노재학씨와 이정환, 성유나씨가 들어와 식사부터 하며 시간 보낸 것이다.




하랑이 태어 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첫돌이라니 세월이 빠르기는 빠르다.



뒤늦게 나타난 하랑이는 자다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모습인데,
처다 보는 초롱초롱한 눈길이 '어디서 본 듯한 영감탱이'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몇 달 만인데, 이제 처녀 티를 슬슬내며 제법 의젓했다.




"아이구야~ 올매나 이뿌고 새칩은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겠다는 말이 딱 들어 맞았다."




손님들의 집중된 시선이 불편한지, 아니면 주인공이라 폼 잡는지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 좋아하는 음식 한 점 먹지 못하고 사진만 찍으니, 편할 리야 있겠나.
타고 들어갈 장난감 승용차에선 핸들을 돌려 보며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자신의 지난 모습이 편집된 영상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갑자기 좋아 하길래, 뭔 장면인지 확인하려다 그 순간마저 놓치고 말았다.

말은 못해도 뭔가 생각하는 건 있을텐데, 그게 뭘까? "하랑이 지금 정신 없어. 묻지마~"




드디어 우리 공주님께서 입장할 시간이 되었다.
세단을 탄 하랑이가 손님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이동했다.
케익에 촛불도 켜고 인사도 했다.




좋아하는 물건 찾는 순서에서는 다들 "뭘 잡을까?" 긴장했다.
실, 돈, 연필, 청진기, 마이크 등 갖가지 물건들을 살펴보더니, 마이크를 덥석 잡은 것이다.



이 녀석이 요즘 인기 있는 프로 ‘보이스 퀸’이라도 본 걸까?
아니면 진짜 가수가 되고 싶은걸까?



더 기가 찬 것은 사회가 아빠 더러 소감 한마디 하라니까 햇님이가 또 눈물을 글썽거리는 거다.
'하랑이를 키워보니, 아내의 고생스러움과 키워준 부모 마음을 알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하기야! 혼자 사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사실 하랑이를 위한 잔치지만, 하랑이는 힘들 수밖에 없다.
돌잔치가 끝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하랑아! 사는 게 다 그런 것이란다.
그리고 하랑이 생일을 축하해 주신 많은 분들, 고맙습니다.




"하랑아~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거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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