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만 해도 황야의 무법자가 휩쓸고 간 택사스의 황량한 풍경처럼
적막감에 휩싸였던 인사동이 봄바람 실은 온정에 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손님 잃은 가게들을 위해 임대료를 안 받거나 감해주는
건물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는 감기에 걸려 목이 퉁퉁 부었지만, 방구석에 처박혀 있을 수만 없었다.
떠나기 전에 처리할 일도 많지만, 봐야 할 전시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마스크로 무장하고 나선 인사동 나들이에 반가운 현수막들이 반겼다.
거리에 걸린 플래카드에는 ‘건물주님 감사합니다’, ‘착한 임대료 운동 지지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닫혔던 가게들이 다시 문을 열고, 길거리에도 드문드문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리의 악사가 들려주는 바이얼린 소리가 인사동의 침묵을 걷어내고 있었다.
인사동에서 옷가게를 하는 차모씨가 지난 2월 한 달 치 임대료를 내지 않았다고 했다.
건물주가 전화를 걸어 “이번 달 임대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단다.
서울의 최상위에 속하는 인사동 상권에서 벌어진 이례적인 일이었다.
차씨는 “지난해 11월 가게를 오픈한 이후 내리 장사가 안 된 데다 코로나까지 덮쳐
막막하던 차에 주인이 먼저 연락 줘 깜짝 놀랐다”며“ 이 가게 열기 전부터
5년이나 인사동에서 장사를 해 왔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낙원떡집 인사동점’이 입점한 건물도 3~5월 임대료를 20%정도 인하할 계획이란다.
낙원떡집 주인은 “지난달 매출이 급감해 적자가 난 상황이라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 외에도 곳곳에서 ‘착함 임대료’ 바람이 일고 있었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 사무국장의 말에 의하면 “구체적인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상당수 건물주가 자발적으로 임대료 인하에 동참하고 있다며,
착한 임대료 운동에 참여하는 건물주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 상권에서 임대료 인하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부동산업을 하는 한 전문가는 경기 불황을 이유로 건물주가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내려 받은 적이 없단다.
‘임대료 불변의 원칙이 깨져 차후 임대업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리고 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인 갤러리 임대료도 면제나 삭감이 뒤따라야한다.
가진 자들의 온정이 확산되어 인사동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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