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30

정비파의 ‘한라에서 백두 백두에서 한라’ 목판화전이

지난 25일부터 오는 10월 4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어제 오전 인사동에 가는 길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정비파 목판화전을 보러 갔다.

마침 전시장에 정비파선생 내외분이 지키고 계셨는데,

반가움에 앞서 넓은 전시장을 가득 메운 목판화의 규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게 어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길이 32m에 높이가 2.8m로 전례가 없는 규모였다.

4년동안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외는 오로지 작업에만 매달렸다는 작가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듯, 며칠 남지 않은 전시부터 빨리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전시에 대한 소개는 미술평론가 김진하씨의 글로 대신한다.

 

 

“정비파의 통일대원도-판타지를 넘어”

Episode 1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오라.” 50대 중반을 넘은 세대에게 이 멜로디와 가사는 익숙할 거다. 1960~70년대 초반 국민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렸던 동요다. 풍금을 치는 선생님 전주가 지나가면 곧바로 합창으로 부르곤 했던 노래. 하다못해 운동장에서 꼬맹이 여학생들이 길게 새끼줄을 돌리면 연속해서 그 회전원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여러 명이 함께 팔짝팔짝 뛰던 줄넘기나 고무줄놀이를 할 때도 많이 불렸다. 그만큼 아이들의 보편적인 동요이자 유행가이기도 했고(정권 차원에서 반공 이데올로기가 작동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분단을 넘어 통일이 당시 시대정신이기도 했었다.

그랬던 이 노래가 언제부터인가 슬며시 자취를 감췄다. 교과서에서도 사라지고, 학교 운동장은 물론 동네 골목이나 공터에서도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엔 “싫어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란 반북 레토릭 인용구가 반복적으로 그 자리를 대체했다. 한국전쟁 이후 한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통일 담론이 슬며시 ‘멸공’에 의해 분단체제로 더욱 공고화되는 터닝포인트가 바로 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싫어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구호 사이에 있었던 모양새다.

 

그리고 곧바로 긴급조치, 10월 유신 등으로 박정희 정권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통한 통치가 1979년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80년 서울의 짧은 봄과 전두환 정권의 동토 하에서도 통일에 대한 어떤 논의도 허용되지 않으며 이 노래는 결국 일상에서도, 기억에서조차도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지금 50대 이하는 이 노래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문화에 의해 자연스레 도태된 것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성에 의해 인위적 고사를 당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애창한다고 통일이 되는 건 물론 아니겠지만, 적어도 통일의 꿈을 꿀 수는 있었는데, 이젠 좀처럼 이 노래와 통일 담론을 접하기는 어렵다. 최근 북핵 문제로 북·미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얘기는 한반도 평화의 화두로 가끔 등장했지만, 남북이 주체가 된 통일논의는 여전히 어려운 현재형이자, 기약 없이 뒤로 미룬 숙제가 되었다.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전향적 의제가 되지 못한 채, 오히려 과거로 퇴보하는 현상은 왜일까.

 

Episode 2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Jonathan Livingston Seagull)은 갈매기 중에서도 가장 높이 또 멀리 날았다. 다른 갈매기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먹이를 위한 비행보다 값진 가치를 찾기 위해 자신을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 갔다. 자유와 이상을 지향한 그 행위는, 결국 단순 반복되는 일상으로 인해 결핍상태인 자신을 미래로 이끄는 꿈의 알레고리다. 그것은 미래시제에 실현의 준거를 두었으되 지금은 미래를 향한 실존적 태도를 결정하는, 프로이드와 융이 말한바 “무의식과 의식의 상호 작용”으로서의 행동이다. 그러니까 갈매기 조나단은 비행을 통해 비행 자체의 무의식적 아름다움과 새로운 깨달음을 지향하는 의식적 의지를 동시에 표상하는 존재라 하겠다. 새의 숙명인 비행(현실)과, 그 현실을 아름답게 초월하는 비행(지향과 실행)을 통해 이상의 세계에 다다르는 과정을 실현하는 주체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아를 욕망하는 이드(Id)와 에고(Ego) 상태로는 존재의 의미가 부족하다. 타자들과 함께 더 좋은 것을 꿈꾸는 봉사·참여·희생과 같은 슈퍼에고(Super Ego)의 실행이, 그래서 가치 있다. 예술은 사람의 성장단계인 이드-에고-슈퍼에고를 동시에 작업으로 실현하는 기제다. 주체/타자, 내면/사회, 꿈/현실, 본능/이성, 표현/개념, 확산/환원, 독백/대화와 같은 상대적 세계의 경계를 끊임없이 교란하며 종국엔 소통으로 타자와 연대한다. 함께 나누고 누리는 슈퍼에고의 지점이다. 미적 형식과 작업주제 사이 통로에서 작가와 관객이 상호 교호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술적 희열은 그래서 아름답다. 감각으로부터 주제에 이르는 형식적 프로세스를 통해, 그리고 그 결과인 작품과 관객과의 만남으로 인해 아(我)와 비아(非我)는 작품이라는 미디어로 인식적 통일을 이룬다는 것. 그 예술적 오르가즘은 작게는 작가의 표현 충동에 의한 감각적 쾌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크게는 이처럼 작가와 관객이 사회적 의제를 함께 공유하면서 성숙한 슈퍼에고를 확인하는 소통의 기쁨이기도 하다.

 

Episode 3

정비파의 32m에 이르는 목판화 신작『신몽유-한라에서 백두, 백두에서 한라-통일대원도(新夢遊 統一大願圖)』의 주인공인 수리매 한백(漢白)이의 비행도 갈매기 조나단과 비슷한 구조를 가졌다. 소설과 시각 미술로 그 장르가 다르지만, “높이 날고 멀리 보는 새”의 비행과 시선을 통해서 주제를 이끌어내는 접근법이 그렇다. 조나단이 비행을 통해 존재론적 이상을 실현하는 거라면, 한백이는 비행을 통해 국토의 장엄함과 분단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가장 높이 날면서 장쾌하고도 수려한 국토를 보고, 멀리 날면서 “우리의 소원은~”을 부르는 통일에의 알레고리라 하겠다.

 

이 작품은 총16점의 부분이 연결되어 높이 2.8m 길이 32m인, 낮(포지티브)과 밤(네가티브)의 초대형 두 점(총64m)이다. 거기에다가 함께 전시되는 목판원판 부조(浮彫)까지 합치면 그 길이는 총 96m에 이른다.

화면 왼쪽인 한라산에서 날아오른 수컷 독수리 한백이(No. 1~2)가 남해와 서해를 거쳐 지리산(No. 3~4)에 이른 뒤, 동북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백두대간을 향한다(No. 5~6). 국토 척추를 따라 설악산과 동해 바다(No. 7~8), 남방한계선-DMZ-북방한계선을 넘어 삼일포(No. 9~10)와 총석정과 해금강을 조망한다(No. 11~12). 점점 더 높이 힘찬 날갯짓으로 금강산(No. 13~14)을 지나 마침내 화면 오른쪽 개마고원과 백두산에 다다르고 암컷 매를 만나서 다시 함께 한라산을 향한다(No. 15~16). 여기까지가 그림 하단부의 도상이다. 그리고 그림의 상단부로 가면 하단부의 이미지를 180도 뒤집어서 백두산 위에 한라산이, 한라산 위에 백두산이 아래위로 마주 보게끔 배치되었다. 한백이의 백두산까지 왕복 여정이 결국 한라와 백두가 조우하는 하나의 형상으로 구축된 것이다.

 

한반도 남북을 종주하는 주요 지점의 조형적 형상은 현장 스케치에 기반한 데포르메로 풍경화(風景畵)의 장르적 범주에 있다. 그러나 작가의 통일 염원을 반영하는 관념적 상상 공간의 화면이란 점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전적으로 산수화(山水畵)의 영역에 있기도 하다. 서구적 풍경(실재-환유-분단)과 동양적 ‘산수(관념-알레고리-통일)가 겹쳐서 드리워진 이미지의 바탕에서, 작가는 한백이를 화면의 처음과 마지막에 배치함으로 풍경을 넘어선 주제를 드러낸다.

 

한라산에서 비행을 시작하는 첫 장면과 회귀점인 백두산에서 암컷 독수리와 함께 두 번 등장하는 한백이는 지상의 관객에게 보이는 대상이다. 그러나 두 번째 장면인 지리산에서부터 일곱 번째 장면인 금강산을 지날 때까지는 한백이는 사라지고, 그 대신 활공하는 한백이의 부감적 시선이 관객인 우리의 시선과 일치하도록 연출 되었다. 한백이와 관객이 같은 조감법(鳥瞰法)으로 우리 국토와 강산을 내려본다는 뜻이다. 이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화자와 보는 관자가 의식의 통일을 이룬 상태가 되는 구조다. 영화의 시점쇼트 시점 샷(P.O.V)*기법처럼, 화면 양 끝(No. 1~2, 15~16)에 의도적으로 한백이를 등장시키고, 가운데 화면(No. 3~14)에선 한백이의 의도적인 소거를 통해 관객이 시선의 주체가 되도록 장치를 했다는 것이다.

시각적 풍경+관념적 산수의 장르 개념에 작가의 희구인 통일(이는 관객인 우리의 희망 사항이기도 주제)을 집적함으로 이 작업은 쉽게 규정하기 어려운 장르가 되었다. 높게는 인공위성 낮게는 드론이 공중에서 지상의 입체물을 스캐닝(Scanning)하는 시대에, 수리매라는 고전적 소재를 통해서 일종의 토템적인 아니마(Anima; 혼, 얼, 정신, 생명)로서의 드라마, 일종의 애니메이션(Animation; 생기, 활기, 행동)을 연출한 것이기도 하다.

 

백두산에서 암컷 수리를 만나서 함께 남으로 비행하는 장면은 일차적으로는 남남북녀의 만남이나 남북통일의 기호다. 그러나 동시에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의 단일화이기도 하다. 즉 이 대하서사적 로드(플라잉)쇼는, 남성에게 내재된 여성성과 여성에게 내재된 남성성이라는 상대성이, 다시 구분 없이 하나의 원형으로 통합 내지는 환원하는 것이 된다. 한라산과 백두산의 머리글자를 조합한 ‘한백’이라는 이름부터가 그런 상징적 코드를 따른 자웅동체 캐릭터다. 이 구조에 소재인 남북을 대입하면 한반도와 배달민족은 이분법적으로 분리될 의식이나 개념이 아니라는 작가의 의도가 선명해진다. 그래서 한백이는 국토대장정을 통해 정비파의 작가적 입장을 대행하는 페르소나가 된다. 정비파는 객관적 시선으로 한백이를 비행시키고, 이후 한백이의 눈을 통해서 주관적인 통일 서사를 펼쳤다. 주술사처럼 국토의 아름다움과 통일의 판타지를 관객이 생생하게 겪도록 만들면서 말이다.

 

여기서 정비파의 국토-분단-통일에 대한 내용과 형식은, 분단미술에 자주 등장했던 분단현실·분단현장·분단극복의 직접적인 정치적 함의를 화면에 등장시킨 리얼리즘 경향과는 다르게 보인다. 풍경+산수+국토 토테미즘적 내러티브를 통해서, 시제와 공간의 공시성, 정치적 이념과 역사의식의 범주로부터 자유로운 일종의 통시적 시각에서의 샤먼적 제의에 가깝게 보인다고나 할까. 통일에의 웅변이나 구호 없이 자신의 의식(意識)과 희구를 조형적 행위로만 집행한 묵언의 의식(儀式)이라고나 할까. 이럴 때 작가는 현실정치와는 거리를 둔 채 소도에서 천제를 집행하는 제사장 같다. 작업은 그 제의에 바쳐진 순수하고 투명한 상태의 제물로서의 상징물일 터이고.

 

Episode 4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서 정비파는 많은 준비를 했다. 온전하게 4년을 꼬박 이 프로젝트에만 투여했다. 긴 시간이 투여될 수밖에 없었다. 화면에 등장하는 각 지역의 지형과 산에 대한 정보-현장답사-기초작업-재료 준비-본작업(밑그림·판각·프린팅)-후가공에 이르는 길고도 긴 과정이었다. 혼자서밖에 할 수 없는 작업 특성과 거대한 스케일로 인해 엄청난 노동력을 투여해야만 했다. 뿐인가 목판화로선 세계 최대규모에 비례하는 목판·잉크·종이·배접·표구 등에도 만만찮은 경비를 들여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배경적 요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업을 구성하는 조형적 단위들의 조화와 미적 통일인데, 앞서 거론했던 큰 틀에서의 특성 이외 주요한 몇 가지 포인트를 더 살펴보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번 작업을 위해서 정비파가 일종의 조형적 양식화를 시도한 점이다. 물론 지난번 아라아트에서의 개인전에서도 풍경을 구성하는 양식화가 있었지만, 이번엔 아예 자신만의 준법(皴法)을 만들고, 거기에 따라 대상과 표현을 단순화했다. 판각에 의존하는 목판화라서 준법이라는 용어보다는 각법(刻法)이 맞지만, 밑그림의 중요도도 있으니 붓으로 그리고 칼로 파는 준법과 같다. 그러나 준법이든 각법이든 간에 중요한 건, 목판화 이미지를 형성하는 조형적 단위를 그림과 판각에 적당한 그의 그림체로 양식화했다는 것이다. 그 양식화한 준법이 이 거대한 그림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소재, 서로 다른 산들의 사실성과 관념성을 아우르는 조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래선지 이번 작품은 동양화의 느낌이 나면서도 그것과는 다르고, 서양화 양식 또한 전혀 아닌 묘한 것이다. 다만 그런 바탕엔 고려시대 <어제비장전변상도>*나 조선시대의 전통적 선(線)판화의 조형성을 참조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거기에다가 독수리 한백이나 한라산의 묘사는 서양화의 사실적 재현 방법을, 총석정 같은 근경의 기암괴석 처리에서는 겸재의 실경과 같은 묘사법이나,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의 표현의 맛도 수용한 듯하다. 그리고 오른쪽 끝 백두산이나 화면 중경과 원경을 관통하는 준법(정비파 본인의 필법과 각법으로 정교하게 양식화된)이 근경을 수렴하며 이 긴 화면의 전체적 균형을 맞추었다. 이는 실경-상상-관념을 두루 엮어서 한반도의 풍경과 산수를 동시에 펼친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한지 배접에 의한 화면 상하 역대칭 몽타주 편집과, 포지티브와 네가티브 프린팅, 목판원판의 부조 작품화 등은 기존 판화의 관습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다. 한정된 판의 크기에 한정된 판화지로 찍어야만 하던 한계를 일탈하며, 판화가 스케일의 확장과 함께 다양하게 변주와 활용이 가능한 미디어임도 암시했다. 또 목판화 기법이 회화나 공예 등 장르 전방위를 넘나들 수 있는 원천매체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한 것도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확보한 부수적 성과라 하겠다.

 

Episode 5

작품 얘기를 하다 보니 문득 통일에의 관념적 접근과 태도에 대한 지적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연히 눈앞에 있는 실체적 분단 문제와 통일 담론을 어떻게 관념으로 대치할 수 있는가, 라는 비판적 입장들 말이다. 그러나 장르를 떠나 1980년대 이후 민중미술 작가들이 리얼리즘에 입각해 분단과 통일을 주제와 소재로 이미 작업했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다. 이제는 다른 시대다. 정치·사회·외교·군사·문화적으로 그때와는 환경이 다르다. 그때와 같은 태도와 방식으로 미술이 통일을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하는 법도 표현하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 동시대 현실에 따라 그 형식적 발언이 자연스럽게 도출되어야 함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최근 북핵과 한반도 평화를 목적으로 남·북·미 정상이 만난 역사적 진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 평화적 통일논의는 여전히 교착상태인 게 현실이다. 예술은 이런 답답한 현실에 파문을 일으키는 기제다. 법과 제도의 범주에서 현실정치와 외교를 담당하는 영역이 아니란 것이다. 미술은 시민과의 소통과 연대를 통해서 사회적 운동의 동기나 발화점이 되고, 그것을 정치권이 수렴하도록 단초를 마련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그래서 현재 정체된 통일논의에 어떤 식으로든 파문을 일으키는 미적 방식은 모두가 유효한 작업이기도 하고, 또 그 파문의 의제나 발언방식은 특정한 논리나 미학적 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작업은 다양한 주제와 미디어와 입장과 표현법으로 쏟아져 나와야 한다. 그래서 90년대 이후 미술에서 침잠되었던 통일논의에 물꼬를 터야 한다. 정비파의 이번 프로젝트도 가장 순연한 국토문예로 분단의 벽에 구멍을 내려는 예술적 실천의 일환이다. 작가인 정비파는 이 작업으로 자신의 지점에서 스스로 짊어진 미적 과제를 실현했다. 그 결과는 온전히 작품을 관람한 관객의 반응으로 입증될 것이다. 작품과 관객 사이에서 발생하는 통일에 대한 공감의 크기가 큰 폭으로 회자 되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서 미술을 통한 비정치적인 이 제안이 설득력 있는 통일논의의 물꼬를 트면서 남북 간 현실정치로 이어지는 씨앗이 되면 좋겠다. 이 고통스런 작업을 진행한 작가 정비파의 바램도 이와 같을 거다.

 

1990년대 이후 국토풍경목판화로 분단 문제를 짚어온 몇몇 동년배 작가들(김억·김준권·류연복·손기환·홍선웅…)의 분단 현장성에, 이번 한백이의 비행을 통한 정비파의 드라마틱한 통일 판타지가 더해짐으로 한국현대목판화의 국토문예 담론에 한결 힘이 실릴 듯 여겨진다. 덧붙여서 조나단과 한백이의 비행처럼 더 높은 곳을 지향하면서 더 멀리 보려는, 현실과 이상 모두에 충실한 후배작가들의 더 많은 출현을 기대해 본다.

미술은 꿈꾸고 실행하는 이에게 표현(작가)과 소통(관객)을 허락하는, 감성과 개념을 아우르는 언어이자 미디어다. 정비파의 이번 프로젝트는 바로 그런 ‘몽유대동세상’의 감성적 판타지를 목판화로 실행한 미적 행위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앞으로 실현 가능한 것이기에 ‘몽유’라는 판타지를 넘어 ‘대동세상’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신몽유통일대원도(新夢遊統一大願圖)>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정비파식의 현대적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는 그런 대동세상을 꿈꾸고 실행하려는 의지로 여겨진다. 희구를 이루기 위한 이런 작가적 실천으로부터 나/너, 우리/그들, 남/북 간 닫혀있던 세상이 열리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닫힌 벽을 두드리고 균열을 내는 거, 그게 분단국의 작가가 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김진하 / 나무아트

*시점 샷(P.O.V)---영화기법 용어. 화면과 사건을 객관적인 제3자의 시점에서 조망하는 게 아니라, 관객이 배우와 동일한 시선으로 화면을 보게끔 찍은 장면. 관객이 배우처럼 사건을 직접 경험하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어제비장전변상도(御製祕藏詮變相圖): 북송에서 983년에 완성되고 991년에 간행된〈비장전 祕藏詮>삽화를 11세기 고려에서 초조대장경으로 재간행하면서 재제작한 목판화. 기본적인 틀은 북송에서 간행된 변상도 원본을 따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원본과 조형적 차이가 큰 세련되고 독자적인 양식을 가진 작품으로 평가된다.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지난4일 열린 7차 ‘광화문 미술행동’에서 내세운 슬로건은 ‘새로운 나라로!’였다.

새로운 나라가 되기에는 세월이 걸릴 것 같지만, 일단 박근혜 부터 구속시키고 황교안을 사퇴시키자.

광장갤러리에 설치된 걸개그림은 판화가 김준권씨의 ‘청죽’을 비롯하여 30년 전에 그린 김진하씨의 작품도 먼지 털며 나왔고,

정비파씨의 독수리 무리도 경주에서 날아왔다. 박홍규, 김봉준, 김 억, 류연복, 손기환, 유대수, 윤여걸, 이철수, 홍진숙,

홍선웅씨 등 대가들의 그림이 줄줄이 내 걸렸다. 이젠 알미늄 틀도 만들어져, 다들 반듯하게 걸렸으나,

김진하씨의 작품만 바람난 여인 치맛자락같이 펄럭였다. 오히려 흔들리는 형상에 더 눈길이 끌리더라.


오는 정월대보름 날 열릴 8차 프로젝트에서는 ‘광장갤러리’를 시와 사진으로 꾸밀 예정이다. 

서예퍼포먼스와 함께 춤판도 벌일 예정이나 매주 예술행동에 소요되는 비용 또한 만만찮다.

세화를 찍고, 판화를 파는 등 다방면으로 후원금을 모아 왔으나, 적자를 면키 어려웠다.

가난한 작가들의 예술저항이라 십시일반 나누는 시민들의 도움이 절실한 실정이다. 

‘궁핍현대미술광장’에서 열린 세화로 꾸민 판화전은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판화가 류연복씨는 세화 찍느라 바빴고, 옆에서는 김가영씨가 열심히 도왔다.

이날은 반가운 분들도 연이어 등장하셨다.

원로 시인 강 민선생을 비롯하여 백기완, 황석영씨와 함께 조선의 삼대구라로 꼽히는 방배추(방동규)선생,

시골서 상경한 홍석화씨, 맹문재교수, 양문규시인, 장영도이사도 함께했다.

이른 점심을 먹고 나왔으나 ‘청진동해장국’으로 따라갔다. 신축건물이라 옛 분위기는 오간데 없고, 밥값만 비싸졌더라.

맹문재씨가 카드로 결제했지만, 만원씩이나 하는 해장국은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를 비웠더니, ‘광화문 미술행동’의 서예퍼포먼스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여태명씨의 서예퍼포먼스는 끝 난 뒤였다.

여태명씨는 ‘탄핵대길. 안민다경’을 써 놓았고, 박수훈씨는 탄핵농자지대본’을 쓰고 있었다.

예술가들의 글과 그림 위에 시민들이 쓰는 자유발언대 참여도 이어졌다.

이날 김준권씨를 비롯하여 장경호, 송경동, 김남선, 김진하, 깁봉준, 정덕수, 김 억, 김 구, 양혜경, 정영신, 장순향,

김영배, 이광군, 장진영, 이윤엽, 이재민씨 등 많은 예술가들이 일을 도왔고, 신학철, 신상철, 박 철, 권 홍, 최석태,

하형우, 김보영씨 모녀도 모습을 드러냈다. 고생하는 후배들을 위해 신학철선생께서 한 턱 쏘았는데,

술 한 잔에 맛이 가 꾸벅꾸벅 졸다 돌아와야 했다. 아직 몸이 정상은 아니었다.

오는 정월대보름날 열릴 15차 촛불집회의 ‘광화문예술행동‘을 기대하시라.
김준권씨는 충북 옥천에서 행진에 사용할 깃발용과, 광화문 달집용 대나무를 벌채하는 사진이 페북에 올라왔다.

정월대보름의 신명난 굿판이 기다려지는 하루다.

사진, 글 / 조문호

























[김준권씨 페북에서 스크랩]

[김준권씨 페북에서 스크랩]





































































[김준권씨 페북에서 스크랩]

[김준권씨 페북에서 스크랩]







미술세계 9월호

 

 

 

 

 

 

 


 

 

목판화가 정비파선생의 ‘국토’전이 끝나는 지난 20일, ‘아라아트’전시장을 다시 찾았다.

작품들에 대한 여운이 남아 철수하기 전에 다시 한 번 감회를 맛보기 위해서다.

전시장 한 가운데 놓인 탁자에 앉아 한 시간 넘게 사방에 걸린 작품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나라 국토의 혈맥들을 섬뜩하게 드러낸 작품들은 장엄함에 앞서 슬픈 비애감에 빠져들게 했다.

6미터나 되는 ‘백두대간’ 작품의 주름 잡힌 산 줄기 줄기에서 우리민족의 통한을 읽었기 때문이다.

한 쪽 벽면에는 외세나 다름없는 독수리 떼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부리를 들이대고 있었고,

또 한 쪽에는 피 냄새 맡은 까마귀 떼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바로 우리 국토가 겪은 피의 근대사였다.

그 산골짜기 골골을 칼창으로 파내며 분노했던 작가의 투혼이 느껴졌다.

나는 미술평론가도 아니고, 작가와의 친분도 그리 깊지 않다.
잘은 모르지만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은 한다.

들은 바로는 정비파선생이 이 작품들을 제작하기 위해 수도승처럼 10년 동안 외부와 연을 끊은 채,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했다고 한다.  때로는 일이 풀리지 않아 목 놓아 운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란다.

도대체 그런 작가가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되겠는가?

나는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며 작품보다 그들의 인간성을 더 유심히 지켜보았다.

아무리 재주 좋아 유명세를 타는 작가라도 인간성이 돼먹지 않으면 그만이다.

선배들 말씀처럼 “작품 이전에 올바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작가들은 참 많다. 그러나 잔머리 쓰는 작가들은 오래지 않아 들통 난다.
온 몸을 바치는 작가들도 많다. 그도 정신적 바탕이 깔리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정비파씨를 처음 만난 것은 올 6월 ‘아라아트’광복70주년 특별전을 기획하며

‘아라아트’ 대표 김명성씨와 ‘제주4,3연구소’ 김상철이사장이 함께 한 자리였다.

오래 전 전시장에서 한 두 차례 지나친 적은 있으나, 같이한 자리는 없었다.

그가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는 작품 이미지들에 일단 놀랐고,

대부분이 가로 6미터나 되는 대작이라기에 믿어지지 않았다.

 

기다리던 7월15일, 그의 ‘국토’전 개막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심지어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해 낼 수 있단 말인가? 대단한 감동이었다.

내가 만약 재벌이라면 그 작품들이 걸린 전시장까지 통째로 사 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전시 끝나는 37일 동안 가까이서 멀리서 그를 지켜본 것이다.

시쳇말로 뒷조사를 한 것이다. 그의 인간성에 대해...

정비파선생의 군 복무시절, 공윤희씨가 해당 부대 직속장교로 재직하였기에 그를 잘 알았다.

그래서 그의 사람 됨됨을 듣게 된 것이다.

 

나는 평소 전시기간동안 작가가 얼마만큼 전시장을 지키는지를 보며 그 작업에 쏟아 부은 열정의 부피를 가늠한다.

이 일 저 일 하는 일이 많은 사람은 한 곳에 쏟아 넣을 열정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도 아니고 경주에 사는 그를 인사동 나올 때마다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신의도 있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전시 끝나기가 무섭게 짐 싸들고 가기 바쁘지만,

전시가 끝나는 마지막 날, 신세진 분과 가까운 지인들을 불러 뒤풀이를 한 번 더했다.

마지막 날의 뒤풀이도 전례가 없는 일이지만, 작품은 물론 크기도 한국판화사의 새로운 기록이었다.

그 날 전시장에서 작가 내외와 함께 공윤희, 이종률, 장경호, 최혁배 변호사를 만났다.
인사동 ‘유목민’에서 열린 뒤풀이에는 전시장에서 만난 분들을 물론 조해인, 박찬함, 김상현, 조준영, 정영신씨 등

20여명이 모여 성공적인 전시를 축하하며 여흥을 즐겼다.

작가 정비파선생을 알게 된 것은 올해 최고의 인연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정비파, 아라아트센터서 목판화전
6m ‘백두대간’서 ‘한국근대사’까지
진경산수화같은 회화적 미감 물씬

 

 

판화가 정비파 씨의 '백두대간'

 

 

칼칼한 선으로 주름 잡힌 산줄기들이 첩첩이 파도처럼 뻗어오른다. 칼창으로 파내고 찍은 거대한 목판화폭 위에서 이 땅의 뼛기운 송연한 백두대간 자락이 약동하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다. 고난의 역사에 멍들고 문명의 파괴에 찢겨나가도, 대간의 큰 줄기는 묵묵히 한반도의 등짝을 이루며 북으로 달려간다. 멀리 운무에 떠 있는 산줄기 자취들이 백두대간의 힘찬 기운을 더욱 소슬하게 드러낸다.

 

 

판화가 정비파(59)씨가 파내고 찍은 목판화 대작 ‘백두대간’(도판)은 역사 깃든 우리 국토의 초상이다. 길이 6m짜리 이 대작을 위해 작가는 경주 불국토 남산 기슭 조양동에 흙집을 짓고 10년간 칼로 나무를 파고 찍는 작업에 몰두했다. 틈나는 대로 나라 안 곳곳을 돌며 벌여온 국토기행의 결과물을 쉼없이 사생하며 풀어냈다. 18세기 진경산수의 거장 겸재 정선이 발견했던 금강산 암봉의 서릿발 같은 기운을 백두대간과 동해바다의 해안에서 발견해 목판에 옮겼다. 15일부터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가 광복 70돌 특별기획전으로 마련한 그의 목판화전 ‘국토’는 이런 노고의 결실로 탄생한 전례 없는 대작들의 연속이다. 22점의 출품작들은 백두대간 연작을 비롯한 가로 6m짜리 작품이 넉점이고, 제일 작은 소품도 가로 2m가 넘는다. 무상한 역사가 깃든 국토의 진경을 오랜 숙고 끝에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한국 판화사에 일찍이 없었던 기념비적인 수작들이라 할 만하다.

 

 

한지 화폭에 유성잉크로 찍어낸 그의 다색목판화들은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처럼 사실적인 이 땅 산하의 경치를 새롭게 재해석한 회화적 미감이 물씬하다. 강퍅한 암봉 위 허공에서 매들의 싸움판이 벌어진 풍경으로 질곡의 한반도 역사를 은유한 ‘한국근대사’ 연작과, 새떼들의 군무로 저녁놀이 출렁거렸던 낙동강변의 옛적과 갖은 개발로 새떼들의 자취가 거의 사라진 현재를 대비시킨 낙동강 연작 등에서 이를 감지할 수 있다. ‘판화 특유의 판깎기를 통해 최대한 실경을 덜어내고 남은 응축된 풍경’(평론가 김종길)이면서, 기법적으로는 번들거리기 쉬운 유성판화의 맹점을 피한 것이 참신하다. 그냥 먹으로 찍은 수성판화처럼 더욱 담백한 분위기로 장대한 국토의 풍수와 기세를 포착하려는 각고의 기법적 노력까지 더해졌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정 작가는 대학에서 양화를 전공했으나 1980년대 초부터 목판화 작업을 시작해 80년대 참여미술 진영에서 민중판화가로 활동했다. 90년대 이후 조국강산의 기운생동한 현장을 좇는 국토기행과 석굴암 등 불교미술 쪽으로 작업을 전환하면서 선이 굵은 진경목판화 작업의 새 경지를 여는 데 진력해왔다. 작가는 “내가 사는 이 땅 국토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고 감동을 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작업해왔다”며 “여전히 출판물 정도로 인식되는 목판 그림의 다양한 회화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한겨레신문]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아라아트센터 제공

 

 

 

오래전 어른들로 부터 ‘사진 찍으면 혼 빠진다’고 찍지 말라는 말을 종종 들어왔다.

어떤 연유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처음 본 도깨비 상자 같은 요상한 기계에서

자신의 모습이 나오는 걸 보고 질겁했는지 모르겠다.

연세 많은 분일 수록 카메라에 대한 거부감이 많다는 것을 사진을 찍어오며 알았다.

 

갑자기 찍히는 사람들의 표정들은 세대별로 큰 차이가 있었다.

눈길이 마주치면 무조건 웃으며 눈인사를 하거나 때로는 너무 멋지다는 말도 건 내는데,

외국인이냐 내국인이냐 아니면 신세대냐 구세대냐에 따라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일부 내국인들에 비해 외국인들은 아주 긍정적인 자세를 취해 준다.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대별로 정 반대의 반응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10대가 아주 적극적이고, 20-30대는 긍정적인 눈길을 주는 반면, 40-50대는 다소 의아한 눈길로 냉소적인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60-70대에 들어서는 노인일수록 아주 불쾌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찍지 말라고 신경질까지 낸다.

 

왜 우리나라 구세대들이 이렇게 지나친 거부감을 가지며 피해의식을 느끼는지 짐작은 된다.

평생 당하고만 살아왔기 때문이다.

정치적 권력의 폭력과 돈에 짓밟히고, 때로는 사람들에 속거나 사기당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죽이고 죽임을 당한 한국전쟁을 겪은 노인층일수록 더 심할 것이다.

그만큼 이유 없이 당하고 탄압받으며 살아왔기에, 일단은 사람을 경계하며 부정적으로 보는 습관이 체질화된 듯하다.

 

그래서 아는 분들이 아니면 노인들에게는 가급적 카메라를 들이 대지 않는다.

적절한 순간을 놓치기 아쉬워 찍었더라도, 사정을 털어놓고 양해를 구한다.

한 때는 찍지도 않았는데 시비를 걸어 와 종로경찰서까지 끌려 간 적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감추고 싶은 사생활을 추적하는 파파라치가 아니라면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시장바닥의 할머니까지 “초상권 침해야~”를 외치는 시대에 어느 간 큰 사진인이 남의 얼굴을

허락도 없이 상업적으로 이용할 사람이 있겠는가?

 

세월이 흘러 너도 나도 세상을 등지게 되면, 그 사진들이 어느 한 곳엔가 남아돌아

우리의 후손들이 지난 시절을 기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역사적 장면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아래 사진은 지난 7월16일 오후 무렵, 인사동 거리에서 스냅한사진이다.

그 날 인사동 거리에서 아내를 만났고, '아라아트'에서 전시 중인 정비파씨 내외분과 인사동 터줏대감 심우성선생도 만났다.

 

사진.글 / 조문호

 

 

 

 

 

 

 

 

 

 

 

 

 

 

 

 

 

 

 

 

 

 

 

 

 

 

 

 

 

 

경주의 목판화가 정비파씨의 전시 뒤풀이가 지난 15일 오후7시경 인사동 '부산식당'에 마련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의 술자리 인데다 부산식당의 명물 생태찌개 맛이 너무좋아 과음해 버렸다.

이 날은 정비파씨 전시 외에도 도예가 김용문, 서양화가 이강용씨 등 인사동에 전시오픈이 여러 군데 있어

여기 저기 오가느라 불알에 요령소리가 났다.

와인에다 막걸리에 소주까지 섞어 마시다보니 이차로 간 '무다헌'에서는 너무 취해 뻗어 버렸다.

잠들기 전까지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으나, 얼마나 취했는지 이틀 날 확인해보니 카메라에 CF카드가 없었다.

부산식당에서 빼내며 갈아 끼우지를 않았던 모양이다.

부산식당 뒤풀이에는 작가 정비파씨를 비롯하여 서양화가 신학철, 박진화, 정복수, 김정대, 성기준씨 목판화가 류연복, 김영만씨 제주4,3연구소 김상철이사장, 아라아트 김명성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종률총장, 국회의원 임수경씨, 미술평론가 최석태씨, 손예진, 오덕훈, 이도윤, 김영진씨 등이 함께 했다.

 

 

사진, 글 / 조문호

 

 

 

 

 

 

 

 

 

 

 

 

 

 

 

 

 

 

 

 

 

 

 

 



 

 

경주의 목판화가 정비파씨의 기획초대전 '국토'가 지난 15일 오후5시30분,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지하1-2층 전시실에서 성황리에 개막되었다.

우리나라 산과 강의 혈맥들을 섬뜩하게 드러낸 정비파씨의 방대한 목판화 작품들을 보며 기가 번쩍 솟는 느낌을 받았다.

한 작가의 끈질긴 집념이 이루어 낸 결과들인데, 그 6미터에 달하는 대작들을 경주 작업실에서 어떻게 옮겨 왔는지도 궁금했다.

이 날 개막식에는 작가 정비파 가족들을 비롯하여 우리의 건달 할배 채현국선생, 서양화가 신학철, 임옥상, 박진화, 정복수, 김정대, 성기준씨 목판화가 류연복, 김영만씨 제주4,3연구소 김상철이사장, 아라아트 김명성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종률총장, 국회의원 임수경씨,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 미술평론가 곽대원, 최석태, 유근오씨, 무도가 하태웅씨, 문학평론가 구중서씨, 사진가 정영신씨, 소설가 구중관씨, 손예진, 오덕훈, 신상철, 한소라, 김영진씨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광복7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정비파 목판화전은 오는 8월 20일까지 계속된다. 꼭 한 번 볼만한 전시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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