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2

류연복 판화전 ‘그리움을 새기다’가 지난 10월5일 ‘안성맞춤아트홀’에서 개막되었다.

 

2년 전 진천판화미술관에서 보여 준 전시와 달리 원판도 함께 보여주었다.

 

깃털 세운 ‘붉은 닭’의 투지도 또 다른 새로움을 선사한다.

목판에 드러난 선명한 디테일이 날을 세워 이야기했다.

여러 번의 칼질이 아닌 단칼로 빚은 선명한 골격이 매섭더라.

국토풍경은 그 수려함 속에 비극적 슬픔이 깔려 있었다.

 

대개의 작가처럼 어느 한 곳에 몰입해 같은 말만 줄 창 함에 반해

삶의 다양함을 아우르는 인간적인 면모가 그만의 장점이기도 하다.

 

류연복의 칼춤은 다채로웠다.

저항적이고 비판적인 칼을 휘두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눈송이 같은 서정이 뚝뚝 떨어지기도 하고,

사람 앞에서는 가슴 뭉클한 인간애도 묻어났다.

 

작가가 살아가는 모습도 작업과 마찬가지다.

일할 때는 치열하게 하고, 놀 때는 흥겹게 놀고,

정주며 살아가는 자신 모습과 빼닮은 것이다.

작품 자체가 작가의 삶을 닮은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작품이 사람 위에 군림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 나고 작품 났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류연복의 칼춤은 희로애락을 그리는 칼춤이다.

정의를 향해서는 노도처럼 내려치고,

국토는 수려하다 비극적이고, 애절하다 역동적이다.

민중은 해학적이거나 인간적이다.

 

그는 어느 한 곳에만 치우치지 않는 팔방미인이다.

주제에서의 해방만이 아니라 표현 매체나 방식도 자유롭다.

 

판화에서부터 붓글씨, 일러스트 등 다양한 재능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며 울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판화를 출판미술이나 삽화에도 활용하는 멀티플레이어다.

판화의 본래적 정체가 출판용 삽화가 아니던가.

 

류연복 근작의 핵심은 국토풍경 목판화다.

그의 목판화는 국토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녹아있고,

국토를 온몸으로 껴안은 내면에는 민중의 한이 서렸다.

 

그의 발 길이 닫는 한반도 구석구석이 목판 위에 새겨졌다.

전 국토를 누비며 온몸으로 느끼며 해석한다.

절대 추정하거나 베끼지 않는다.

 

아름다운 곳과 추한 곳도 가리지 않는다.

모든 자연을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본다.

자연의 관찰로 인간에게 공존방식을 제시한다.

그런가 하면 어딘가는 평화로운 쉼터로 묘사한다.

 

그동안 분단풍경인 DMZ, 금강산, 북한산, 지리산, 무등산, 한라산, 독도, 그가 사는 안성 등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국토의 아름다움과 민중의 비애와 강인함을 드러냈다.

 

생동감 넘치는 전개와 쉽게 느끼며 감동할 수 있는 도식,

시와 그림과 생활의 인터페이스를 가능케 하는 통합성등

목판화만이 품어 낼 수 있는 생명력을 한껏 뿜어낸다.

 

류연복씨의 작품도 좋지만 사람은 더 좋다.

많은 사람들이 류연복씨를 좋아하는 이유다.

비실비실 웃으며 바람처럼 살지만, 항상 말보다 행동이 앞서고 불의에 굴하지 않는다.

 

지난 토요일 오전 무렵, 정영신씨와 전시가 열리는 ‘안성맞춤아트홀’로 찾아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듯 그 날따라 차가 얼마나 밀리는지

서울서 세 시간 반이 걸렸는데,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반갑게 맞이하는 편한 웃음에 온몸의 피로가 풀렸다.

 

그리고 안성에 이렇게 좋은 문화공간이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

관람객이 많지 않아 작품설명을 들어가며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는데,

제일 처음 제작했다는 초기의 목판도 보여주었다.

첫 칼질은 동학혁명을 새겼는데, 농민군 모습 뒤에 광배를 그려 넣어 마치 부처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판각 뒷면에 새겨놓은 그림은 더 재미있었다.

감옥에 갇힌 인간의 형상으로 마치 빠삐옹 같았다.

첫 칼질에서도 작가의 싹수를 알아볼 수 있었다.

 

굽이굽이 펼쳐진 산 능선을 바라보며 정좌한 모습은 자화상 같았다.

다 비우고 세상을 내려다보는 선사를 닮았다.

 

이 전시는 오는 10월 20일까지 열린다.

시간 나면 꼭 한 번 관람하시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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