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진전 <장에 가자> 정영신·조문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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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 가자'라는 주제로 전국 5일장의 모습을 담아 사진전을 진행하고 있는 주 문호, 정영신 사진가는 26일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맨손으로 칡을 캐서 진도장에서 내다파는 파는 정도단 할머니의 손은 수많은 장터의 풍경을 대표할 수 있는 사진이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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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장에서 칡을 파는 정도단(84)씨의 손마디는 늘 퉁퉁 부어있다. 검게 그을린 손등, 유독 하얗게 빛나는 손끝 한 마디, 정돈되지 않은 손톱은 하루의 고단한 노동이 묻어난다.


세월의 질곡을 보여주는 노인의 손을 담은 정영신(58) 작가는 "할머니는 남들처럼 삽과 곡괭이 대신 늘 맨손으로 칡을 캔다"고 말했다. 정씨는 칡 말고도 가시리와 전복도 판다. 젖어있는 걸 팔다보니 늘 불어 있게 마련인 손끝, 유독 하얗게 보이는 이유다.

"저는 이 손 하나가 장터를 다 말해준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할머니는 손으로 칡을 직접 캐면서 자기가 살아 있다고 느꼈을 거예요. 할머니가 '정선장에 있는 칡은 다 내 손에서 나왔다'고 말했거든요. 당신 물건이 다른 사람 좌판에 올라가 있는 게 뿌듯했던 거죠."

정영신 작가는 전국 552곳의 장터를 순례했다. 1984년 소설가 등단을 준비하던 정 작가는 "인간의 내면을 보기 위해 장터로 갔고 장터의 인문학적 의미를 깨닫고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30년 간 장터에 갔다. 10년 전 부부의 연을 맺은 조문호(68) 작가도 2006년부터 장터 순례에 합류했다. 그는 '전농동 588번지', '87 민주항쟁', '동강백성들' 등 사진집을 출간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다.

이들 부부의 '30년 기록'이 사진전 <장에 가자>로 탄생했다. 소설가 박인식은 "이 사진들은 천천히, 늙은 장꾼의 걸음걸이로 바라봐야 한다"고 권했다. 지난 26일, 사진전이 열리는 인사동 아라 아트센터에서 정영신·조문호 두 작가를 만났다.

"장터에서 '사람' 이야기를 빼면 섭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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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 영천장
ⓒ 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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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장롱 속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곱게 단장하고서 장에 왔어요. 휴대폰도 없었으니깐 장에 가야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거예요. 지금으로 치면 장터가 복합문화공간이었죠. 구경하는 재미도 컸어요. 약장수들이 틀어놓는 노래에 맞춰 여자애들이 고무줄 놀이도 하고."


부부에게 장날은 '동네 잔칫날'이었다. 정영신 작가는 "장날은 농사꾼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던 날"이라고 회상했다.

부부가 담은 장날의 많은 풍경 중 눈에 띄는 것은 장터 사람들이다. 작가 노트에서 정 작가는 "물건이 곧 사람 얼굴이라 거짓말도 못하는 곳이 장터"라고 했다. 장터에서 오가는 물건들 대부분은 시골 일상 또는 노동의 결과물들이다. 각자 자신의 삶이 배어있는 물건들, 그렇기에 더욱 거짓말을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정 작가는 시골 노인들은 지붕이 있고 바닥에 시멘트가 깔린 현대식 아케이드 대신 흙바닥의 난장을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양지 바른 곳을 찾아 봇짐을 내려놓고서 옆 할매와 수다를 떨며 사람 구경에 나서는 것이다. 조문호 작가는 '사람이 고팠던' 한 노인의 사연을 전했다.

"한 노인이 농산물을 파는데 누가 그 남은걸 다 사가려고 하니 '안 된다'고 말합디다. 다 팔리면 집에 가야하니 싫다는 거예요. 조금씩 팔면서 종일 장터에서 놀겠다는 거지. 이렇게 장터는 상행위를 하는 곳만이 아니라, 그냥 사람 구경하는 놀이터예요."

따뜻한 연정과 암울한 적막감이 공존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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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신 사진가가 전시회장을 찾은 지인에게 자신이 찍은 사진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이날 전시회장을 찾은 지인은 구례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마음에 든다며 작품을 선뜻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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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왼쪽부터 돌아보면 첫 작품은 정영신 작가의 '희망을 엮는 집어등'으로 시작해 조문호 작가의 '장날, 그 쓸쓸한 변두리 풍경'으로 끝난다.

조문호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정영신의 사진에서는 따뜻한 연정이 피어오르고 내가 찍은 사진에서는 암울한 적막감이 감돈다"고 했다. 물건 파는 노인의 생동감 있는 얼굴과 짐을 짊어진 노인의 쓸쓸한 뒷모습이 대비된다.

정 작가는 여전히 그 장터라는 존재에 희망을 품는 반면 조 작가는 '장터는 사라진다'는 현실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에 대해 조 작가는 "가치관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시골장은 끝났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정 작가는 "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땅에 농민들이 존재하는 한 장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장날이면 노인들이 '누가 버스에서 내릴까'를 기대하며 정류장에서 기다려요. 할머니들이 모여서 놀다가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잖아요. 그 순간 어떤 망설임 없이 돈을 꺼내서 모으고,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가는데. 이런 삶이 어찌 사라지겠어요."

쇠락한 장터에서 노인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삶의 현장을 지켜낸다. 정 작가가 말하는 "하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장을 찾던 노인들이 지팡이 대신 몸을 지탱하기 위해 빈 유모차를 밀고서 나타난다"는 풍경만 달라졌다.

부부는 장터에 나온 물건 하나, 파장 후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모습까지 빼놓지 않고 찍는다. 정 작가는 "나중에 귀중한 문화사적 사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장터 노인과 인사동 사람들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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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회를 통해 장날의 쓸쓸한 변두리 풍경을 담은 조문호 작가는 "지금의 시골장은 장사꾼들도 잘 오지 않는다. 읍내 하나쯤은 살아남겠으나 대부분은 사라질 것으로 본다"며 줄줄이 사라져가는 5일장의 모습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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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장이 정영신 작가의 정신적 고향이라면 조문호 작가에게는 인사동이 있다. 인사동 사람들은 과거 조 작가의 "정신적 허기를 메워줬던 사람들"이다. 고 천상병, 고 민병산 선생 등 그때 그 사람들은 없지만 "당시 향수를 잊지 못해 인사동 실비집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했다. 2010년 출간한 사진집 <인사동 사람들>이 그 결과물이다.

인사동 사람들은 5일장 노인들과 닮았다. "약속 없이 장터에 왔다가 건넛마을 사돈과 친구를 만난다"는 조 작가의 말처럼, 부부에게 인사동은 "몇 안 되는 술집을 한 바퀴 돌면 친구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들과 만나면 조 작가는 취한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셔터를 누른다고 한다. "분명 취했는데도 사진은 멀쩡하게 나온다"는 아내의 말에 남편 조 작가는 "나보다 카메라가 막걸리를 더 많이 마셨다"며 농을 쳤다.

5일장 사람들 그리고 인사동 사람들은 과거, 현재, 미래 중 '과거'에 가깝다. "지금의 인사동은 돈 없으면 꼼짝 못 하는 공간이 됐다"는 조 작가의 말처럼 인사동은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화장품·기념품 가게가 생겨났다. 터줏대감이던 예술인과 화랑은 골목으로 밀려났다. 그는 "거리에서는 중국산 잡동사니만 팔릴 뿐 갤러리는 텅텅 비었다"고 한다. 그는 낯선 인사동의 모습을 토로하고 "술을 마시면서도 허전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는 글을 자주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문호 작가는 "인사동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문화가 남아있는 공간이다"고 말한다. 강남이니 평창동이니 경제 중심지는 계속해서 새로운 곳으로 넘어가지만 인사동만큼은 문화를 쥐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는 "여전히 많은 예술인들이 애착을 가지고 인사동으로 온다"고 말한다. 이는 정영신 작가의 "노인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장터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가치관과 통한다.

<장에 가자> 전시장 입구 중앙에는 목을 빼고 뭔가를 기다리는 노인들의 사진이 있다. 목도리와 마스크로 무장한 이들은 저마다 장바구니와 비닐봉지를 쥐고 있다. 자세히 보면 영천장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영신 작가는 "이 사진을 본 소설가 박인식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5일장과 인사동에 숨결을 불어넣는 메시아가 올 수 있을까. 정영신·조문호 작가의 답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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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호, 정영신 작가가 전국을 일주할때 함께 한 자신의 자동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강원도 삼척 근덕장에서 제주도 모슬포장까지 모두 522개의 5일장을 돌며 기록했지만, 5일장이 열리고 있는 한 사진 작업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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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호 사진가가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장에 가자' 사진전을 찾은 <오마이뉴스> 취재기자의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조문호, 정영신 사진가는 매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전시회장을 찾은 관람객에게 무료로 인물사진을 찍어주는 행사도 진행한다.

ⓒ 유성호

 

[오마이 뉴스 : 박다영기자]

장면의 탄생
Birth of a Scene展

2015_0122 ▶ 2015_0324 / 월요일 휴관

 

 

박진영_버려진 화분-존 버거 Abandoned pots-John Berger_C 프린트_120×150cm_2008

초대일시 / 2015_0122_목요일_06:00pm

 

모서리를 걷는 사진들 Photographs on the edge

2015_0122 ▶ 2015_0221

 

참여작가

권오상_김도균_박승훈_박진영

백승우_원성원_윤정미_이윤진

 

의문의 태도를 지닌 사진들 Photographs with questions

2015_0225 ▶ 2015_0324

 

참여작가

권오철_김두하_김용태_김익현_김진희

김흥구_윤승준_차주용_최중원_홍진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룩스GALLERY LUX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7길 12(옥인동 62번지)

Tel. +82.2.720.8488

www.gallerylux.net

 

작업실의 이사를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물건들을 정리합니다. 평소 정리정돈이 안 되는 사람에게 이사는 좋은 핑계거리이자 기회이기도 합니다. 서랍장 구석에 다이어리 사이즈의 명함첩이 여섯 권이 있습니다. 필름은 정리가 안 되지만 명함첩은 그나마 정리되어 있는 편입니다. 받는 순서대로 넣어 두면 되니까요. 반 정도가 사진관련 명함들입니다. 그 중 이름만대면 알만한 사진가들의 그 옛날 명함을 보고 있자면 그 디자인이나 글꼴이 얼마나 촌스러운지 문득문득 생각나 혼자 웃곤 한답니다. 또한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여러 형태로 사라져 버린 인물들의 명함들을 보고 있자면 온갖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이런 느낌을 사람들은 '만감이 교차 한다'라고 복잡 미묘하게 표현하나 봅니다.

 

권오상_성모상과 울트라 몬스터 Holy Mother & Ultra Monster_C 프린트, 혼합재료_126×98×74cm_2013

 

김도균_w.pl-51_C 프린트_100×78cm_2011김도균_w.pl-41_C 프린트_100×134cm_2011

 

'디지털'이라는 상상을 뛰어 넘는 기술력은 사진을 더 이상 사진가를 위한 전유물이 아닌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제관계하의 도제식 교육이 더 이상 필요치 않으며 간단한 이론서나 실용서로도 쉽게 시작해서 쉽게 사용 가능한 분야가 된 것입니다. 기술력이 우리에게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툴들을 선사한 반면, 획일적인 프린트나 화려한 프레임으로 인해 작가만의 독특한 기법이나 스타일은 점점 더 옅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반면 시인들이 찍는 사진은 얼마나 감성적인지 화가들이 찍는 사진은 얼마나 새로우며 기묘한 지 가끔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좋은 이미지들은 수없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장의 저널리스트들이 찍지 못하는 장면을 현지의 주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찍어 올린 이미지들은 얼마나 생생한지 나아가 초단위로 SNS에 올라오는 몇몇 상황들의 이미지들은 여러 분야에서 실제 사용해도 무방할 만큼 좋은 이미지들로 넘쳐나는 시대를 마주한 것입니다.

 

박승훈_TEXTUS 201-1 Wall Street 1_C 프린트_120×150cm_2014

 

백승우_Tuesday Morning_디지털 프린트_50×61cm_2011
 

『장면의 탄생』이라는 전시가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더 이상 전시의 형태로 사진을 보여준다는 것이 이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을 하면서도, 역으로 전시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방향성, 시대성, 작업의 맥락적 서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2006년에 『견고한 장면』(아트비트 갤러리(관장 박강훈) 개관전(2006), 기획: 박진영. 참여작가: 구성수, 권순관, 박진영, 방병상, 백승우, 오상택, 정연두, 최원준.)이라는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습니다. 작가로도 참여한 작은 전시였지만 한정된 공간, 시간에 어떻게 하면 작품들을 돋보이게 할 수 있을지, 작가들을 어떻게 대하고 초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적지 않은 공부가 된 전시였습니다.

 

원성원_장남의 별아파트 The Star Apartment of the Eldest Son_C 프린트_105×86cm_2013

 

윤정미_백치 아다다 Imbecile Adada_라이트젯 프린트_79×100cm_2008
 

『장면의 탄생』은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대학생의 습작에서부터 아마추어로 시작해 작가반열에 들어 선 작가들, 의미 있는 작업을 수년째 진행하면서도 제대로 된 기회가 없었던 예비 작가들, 탄탄한 실력으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묶은 전시입니다. 이 전시는 새롭게 출발하는 갤러리 룩스의 재개관과 함께 합니다. 한 사람에 의해 기획된 전시라는 것이 어차피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서 보여주는 것임으로, 감히 당대를 대변한다거나 최근 작품의 경향을 보여준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평론가나 기획자가 아닌 작가인 저에게 이 일이 맡겨진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룩스'라는 갤러리의 인사동에서 옥인동으로 이동하는 과정과 전시의 타이틀만 제시하고, 작품의 선택은 작가에게 맡기는 형태의 전시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작품에 대한 설명이나 작가의 이름도 들어가지 않는 전시를 만들 예정입니다. 다만 작가의 선정은 가급적 '결정적인 순간을 찍는 형식'이 아닌 '익숙한 상황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는 형식'의 스타일을 지닌 분들을 모셨습니다. '찰나'를 포착하던 시대에서 '장면'을 만들어 내는 시대가 온 것처럼 말입니다.

 

이윤진_Urbanscape Nr.32_C 프린트_188×152cm_2010

 

김진희_에이프릴-003 April-003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에 자수_120×153cm_2014
 

맞습니다. 아무리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한들 이번 전시는 보는 눈에 따라 그리 새롭지도 않을뿐더러 명멸하는 수많은 전시 중 하나로 사라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물며 개인전이 아닌 열 명이 넘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니, 제가 가진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는 바입니다. 언젠가 감동적으로 읽은 선배 사진가의 글귀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 "(중략) 나는 전람회장에 들어온 관람객을 압도해 보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 대신 작은 소리로 선뜻 느낌을 주거나, 조용하게 설득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전람회에 온 사람들을 보다 오래 사진 앞에서 머물게 하려고 온갖 궁리를 다 한다. 빨리 보고, 바쁘게 전람회장에서 나가게 하는 것이 서비스가 아니라, 오래 머물며 보고 또 보게 하는 것이 작가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이 갈등 저 갈등, 그리고 여러 시시콜콜한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걸어놓은 작품 앞을 관람객이 단 몇 초 만에 지나가는 것을 보고 행복해 할 작가는 없다." (강운구,『오래된 풍경』, 열화당, 2011, pp. 14-15.)

 

김용태_눈 내리는 날 3 Snowy Day 3_피그먼트 프린트에 스티로폼_75×110cm_2013

 

차주용_3947's_돌에 잉크_100×100cm_2014

 

김흥구_트멍_무등이왓 Teumeong_Dancing kid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140cm_2013
 

우리 곁에 있었던 몇몇 사진 갤러리 중 가장 오래되었고 꾸준하게 많은 작가들이 거쳐 간 곳이 바로 갤러리 룩스입니다. 이제는 인사동의 삐걱대는 나무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허전하기도 하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옥인동 시대를 응원합니다. 전시가 진행되는 기간 중에 '작가와의 만남' 이라는 밥 맛 없는 행사 대신「사진판 뒷담화 - 안오면 까이고, 와도 까인다(가제)」라는 토론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사진계의 몇 분을 패널로 모시고, 반나절 정도 사진계의 여러 가지 분야에 대한 난상토론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패널들끼리 토론하고 막판에 질문 한 두개 받는 형식의 토론이 아니라, 몇 개의 사안을 패널들이 즉흥적으로 정하고 관객들과 함께 토론할 예정입니다. 형식과 시간이 보다 자유로운 상황에서 진행되는 만큼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김두하_보통소녀 Ordinary girl_캔버스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50×150cm_2013

 

윤승준_해부도–전유#1 Anatomical Chart–appropriation_피그먼트 프린트_108×144cm_2014

 

김익현_서재필박사상 Statue of Doctor Seo Jaepil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40×50cm_2014
 

최근에 받은 명함 중 사진가라는 명함이 가장 많습니다. 본업은 변호사나 의사, 탤런트, 회사경영자, 술집점주, 부동산관리 등 실로 다양하지만 본업 말고 사진가의 명함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대가 만들어낸 일종의 로망처럼 느껴집니다. 하긴 사진가가 면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들의 명함은 또 제 명함첩에 들어갈 것입니다. 저는 또 어딘가 혹은 이 판 언저리에서 왔다 갔다를 하고 있겠죠. 사진이라는 꿈같은 걸 쫓으며 어딘가를 걷고 있을 겁니다. ■ 박진영

 

홍진훤_붉은_초록 #01 어승생악 일제동굴진지, 제주도, 대한민국

Crimson_Green #01 Japanese Military Dugouts in Eoseungsaengak, Jeju island, Republic of Korea_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20×150cm_2014

 

최중원_스카이아파트 Sky Apartment_잉크젯 프린트_80×240cm_2008

 

권오철_킬리만자로 Kilimanjaro_엡손 울트라스무스 파인아트지에 울트라크롬 HDR 잉크_60×90cm_2011

 

 

Vol.20150122a | 장면의 탄생 Birth of a Scene展

 

 


우리시장 기 살리기 운동으로 펼쳐진 정영신, 조문호의 ‘장에 가자’ 사진전이 일주일째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인사동 터줏대감이신 심우성, 강 민, 김동수선생을 비롯하여 육명심, 한정식, 전민조, 김보섭,

구중관, 김명성, 노광래, 공윤희, 박인식, 장경호, 이행자, 고 헌, 이규상씨 등 많은 분들이 재 방문해 축하해 주셨다.

 

전시장에 취재 나온 SBS 보도국 김영아차장을 비롯해 만화가 박기정, 사진가 김생수, 시인 서정춘, 서양화가 최대식, 도예가 한봉림, 사진가 김영호, 세계일보 기자 편완식, 치과원장 이세기, 사진가 강재욱, 사회학자 이광수, 불화가 장 춘, 김기찬씨 미망인 최경자씨, 소설가 김승환, 아프리카 미술관장 정해광, 한국화가 황외성, 시인 김가배, 아리랑명품관 대표 유재만씨, 사진가 이경수, 송주원, 박중하씨, 미학자 미 재, 황의록교수 등 많은 분을 만나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멀리서 오신 전정환 정선 군수님을 비롯해, 성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거듭 감사드린다.

 

이 전시는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2월17일까지 계속되니, 우리시장을 사랑하는 인증샷 기념촬영도 남겨두자.

 

 

전시장에 마련한 포토존에서 기념촬영한 정영신씨

 

 

 

 

 

 

 

 

 

 

 

 

 

 

 

 

 

 

 

 

 

 

 

 

 

 

 

 

 

 

 

 

 

 

 

 

 

 

 

 

 

 

 

 



우리 시장을 되살리려는 작은 운동에 시민들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5층에서  오는 2월 17일까지 열리는 우리시장 기 살리기 운동에, 

뜻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

 

 사진 찍는 사람 : 정영신, 조문호

 

 

 

소설가 김승환선생

 

사진가 김광수씨

 

서양화가 정영자씨

 

사업가 박형준씨

 

시인 이행자씨

 

사업가 김진규씨

 

초등학생 김유원양

 

사업가 조은겸씨

 

사진가 변홍섭씨

 

시장 컨설팅전문가 하명정씨와 자녀들

 

귀농인 지동진씨

 

음악인 김민철씨

 

도시대기환경 연구원 김영국박사

 

 

 

사업가 김중호,심지윤 부부와 딸 김유원양

 

회사원 유진오씨와 사업가 편근희씨

 

가정주부 조지향씨

 

고등학생 김희중군

 

회사원 정주영씨

 

간호원 김소연양

 

 

 

사진가 고 헌씨

 

사업가 송성민씨

 

정주영씨 가족

 

내과원장 한기수씨와 한정인씨

 

'진주청국장' 주인 조영희씨

 

팝페라 가수 주은씨

 

치과원장 이세기씨와 소설가 박인식씨

 

인사동지킴이 공윤희씨

 

종로경찰서 권영태경위

 

사업가 조햇님씨

 

사업가 곽성훈씨와 아들

 

 

 

사업가 이기남씨

 

사진가 김보섭씨와 아내 김혜영씨

 

'아원공방'대표 노인정씨

 

시인 김가배씨

 

'SBS' 보도국 김영아 차장

 

시인 조해인씨

 

문화기획자 김기춘씨

 

'오마이뉴스' 기자 박다영씨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유성호씨

 

여행작가 남기환씨

 

유은정, 유재은, 유희옥, 유진숙, 정호원씨

가정주부 조윤경씨

시인 박시교씨

 

 

 


[편완식이 만난 사람] 인사동 사진가 조문호


"모든 걸 버려도 사진은 못버려… 미쳐야 사는 재미가 있지"

 

 

서울 인사동 밤거리는 여전히 술과 예술, 낭만이 버무려지는 공간이다. 30년 넘게 그 언저리를 서성이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온 인사동 사진가 조문호(68)에게 늦은 밤 술 취한 예술가들의 모습은 더없는 사냥감이다. 그럴려면 같이 취하고 동화돼야 한다. 그의 카메라가 늘상 막걸리로 얼룩져 있는 이유다.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풀어젖힌 모습에서 인간을 끄집어 내기 위해 그는 결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한바탕 탈춤을 벌인 후 탈을 벗어던진 찰나다. 이를 위해 그의 카메라는 늘상 정조준 상태다.

이따금 그가 전시공간 문앞이나 막걸리 집에서 만취상태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럴 땐 짓궂게 그를 흔들어 깨우게 된다. 늘상 놀란 보초병처럼 반사적으로 총을 겨누듯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다. 카메라를 연인처럼 꼭 껴안고 잠든 모습은 인형을 품에 안고 자는 어린아이 같기도 하다.

“종로경찰서에도 자주 끌려갔지. 사진을 찍다 보면 종종 지나는 행인들과 시비가 붙기도 해. 사우나에서 찍다가 경찰관이 들이닥치기도 했었어. 사진작업에 숱한 고난이 따르지만 나는 그 짓을 포기하지 못해. 아무리 이미지 홍수시대에 산다지만 세월이 한참 지나면 오늘의 작업이 보석처럼 빛날 것을 믿기 때문이야. 그게 바로 역사 아닌가.”

2010년 발간된 그의 사진집 ‘인사동 이야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천상병 시인이 죽치고 있었던 ‘귀천’을 비롯하여 벗들과 어울려 마음껏 취할 수 있었던 주막 ‘실비집’이다. 그곳에서 천상병 시인을 비롯하여 민병산 선생, 박이엽 선생, 채현국 선생, 최규일 선생 등 많은 분들을 만난 정신적 허기를 메울 수 있었다.

그는 인사동에 드나들며 우연히 많은 벗들도 만나게 된다. 부산에서 상경했던 서양화가 최울가와 박광호, 노동자 시인 김신용, 지금은 고인이 된 서양화가 이존수와 사진가 김영수까지 말벗이 돼 주었다. 사진기자 김종구, 서양화가 이청운· 강용대, 시인 최영해· 최정자, 소설가 배평모, 도예가 김용문 등과 어울려 밤새 술 마시며 인생과 예술을 논할 수도 있었다.

 

 

1984년 인사동 포장마차에서. 좌로부터 시인 김신용, 조문호, 소설가 배평모.

 

 

 

 

그에게 인사동은 고향 같은 존재다. 사람이 살다 지치거나, 외롭고 피폐해지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고향 아닌가. 그곳엔 정겨운 골목들이 있고, 마음이 통하는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사동에는 사진협회가 보금자리를 튼 예총회관도 있었고, 사진하는 친구들만 모이던 ‘꽃나라’ 흑백연구소도 있었다.

“사진은 내겐 숙명 같은 것이여. 모든 걸 버려도 사진은 버릴 수가 없었어. 사진과 함께한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던 것 같아. 사진 기록물은 남았으나 내 스스로의 삶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어.”

그는 청년시절 연극영화학도를 꿈꿨다. 무작정 상경해 책 외판원까지 하며 뜻을 관철하려 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결국 무산된다. 국문학과에 입학을 했지만 중도에 그만두고 농협에 입사하게 된다. 부산농협과 김해농협을 거쳐 고향인 창녕농협에서 근무했다.

“마음에도 없는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지겨워 문 닫은 정미소를 개조해 무료 음악실을 열었어. 부산 친구들이 주말에 찾아 왔지. 퇴근 후 음악실에서 보내는 것이 당시 나에게 유일한 위안이었지.”

그는 얼마 후 농협에 사표를 내고 부산으로 간다. 부친도 모르게 야반도주를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하늘목장’이란 음악실을 운영하며 자유로운 삶을 구가했다. 하지만 그런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후두암으로 고생하던 부친이 사람 만들겠다고 결혼을 서둘렀다.


지난해 인사동 양반집 앞에 함께한 ‘사진가모임’. 좌로부터 육명심, 유병용, 이기명, 이완교, 이명동, 조문호, 한정식, 구자호.

 

 

 

 

 

“내가 속을 섞여 병을 얻으신 것 같은 죄책감에 마지막 효도하는 심정으로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게 됐어.

그러나 그것은 큰 실수였어. 음악실 아래에 신방을 차렸으나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음악에 빠져 있으니 여자가 좋아하겠나.”

종국에 그는 음악실을 부산 남포동으로 옮기게 된다. ‘한마당’이란 국악전문 학사주점으로 탈바꿈시켰다. 동아대 학생들이 주 고객으로 형성된 ‘한마당’은 손님들로 미어 터졌다.

“어느 날 단골 손님 중의 한 분인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으로부터 ‘휴먼’이란 사진집 한 권을 선물로 받게 됐어.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호소력에 반하게 됐지. 내가 사진으로 인생행로를 정하게 된 순간이었지.”

그는 장사는 종업원에게 맡기고, 허구한 날 카메라를 메고 떠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주점 손님들이 줄게 되고 3년 만에 가게를 정리하게 된다. 부산 서면에 돈을 빌려 ‘이별의 부산정거장’이란 주점을 다시 차렸지만 손님이 없어 1년쯤 버티다가 파산한다. 주점 이름처럼 서울로 야반도주하면서 부산과 이별을 했다. 거지꼴로 상경을 했지만 사진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부풀었다.

그의 아내는 생활고로 그의 곁을 떠났다. 하필이면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던 날 아내는 짐을 쌌다. 그때, 다섯 살이던 아들이 헤어지기 싫어 처마 밑에 서서 울던 모습은 영영 잊을 수 없는 일로 그의 가슴에 대못이 됐다.

“사람을 위한 인본주의 다큐사진을 찍는다면서 사랑하는 자식을 떠나 보내야 하는 아픔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건 정말 아이러니야.”

그는 ‘한국환경사진가회’를 결성해 회장을 맡으면서 ‘우포늪’ 탐사기록에 이어 ‘동강’ 탐사기록에 참여했다. 아예 강원도 정선에 둥지를 틀고 ‘두메산골 사람들’ 사진집을 내기도 했다. 그는 두 번의 이혼 후에 지금은 장터 사진가 정영신과 살고 있다. 자유구가를 위한 도피와 이혼이 반복되는 고난의 삶이었다. 그는 요즘 아내와 전국 장터를 떠돌고 있다.


 

 

 

 

그는 요즘도 시간이 허락하면 인사동에 얼굴을 내민다. 사실 그도 인사동 기인 중에 한 사람이다. 천상병 시인이 그랬고 중광 스님도 그랬다. 낭만과 자유, 그리고 순수의 열정이 너무 강했던 이들이다.

“기인이라고 기이한 행동만 일삼는 비사회적인 사람은 아니야. 일상적인 삶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늘 일상 너머의 세상을 꿈꾸는 낭만적인 사람들이지.’

현실의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항상 외로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외로움을 덜 타려는 별난 행동들이 일반인들의 눈에는 기인으로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인이란 말 뒤에는 미쳤다는 뜻도 숨겨져 있을 것이다. “비록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것과 미친 사람 사이의 그 경계를 지킬 수 없을지라도 미치고 또 미치고자 한다. 그래야 사는 재미가 있지 않는가.” 그의 말이 가슴을 깊게 파고 든다.

세계일보 /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사진마을] ‘전국 5일장 순례기’ 펴낸 정영신씨


 

30년간 장터 522곳 훑고 다녀


 

희망을 엮는 집어등 2010 영천장. 정영신

 

“와 이리 헐노” “아따메 징허요”
사진과 함께 현장감 넘치는 글
남편 조문호씨와 사진전도

 

“많이 변해도 추억 여전히 남아
부산 오시게장·예산장 볼만해”


30년 동안 전국의 522개 장터를 빠짐없이 훑고 다닌 정영신(58)씨의 포토에세이집 <전국 5일장 순례기>(표지)가 나왔다. ‘전국 5일장 순례기’는 2012년에 정씨가 펴낸 사진아카이브 ‘한국의 장터’의 연장선상에 있다. 경기 강화 풍물장의 “안녕하시까? 여기 세 그릇 주시겨” “오셨시까?”부터 경남 의령장의 “와 이리 헐노? 이 고추 때깔 좀 바라. 올메나 곱노”와 순천 아랫장의 “아따메 징허요, 여그 앉을 자리 없어라”를 거쳐 제주 모슬포장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좋쑤과. 일 킬로에 얼마우꽈”에 이르면 시장 냄새가 팍팍 난다. 책에 든 사진도 모두 정씨가 직접 찍었으므로 방방곡곡의 현장감이 100% 전해진다.

책이 나온 날에 맞춰 부부 다큐멘터리 사진가 정영신씨와 조문호(69)씨가 함께 만든 사진전 ‘장에 가자’가 서울 아라아트센터에서 개막되었다. 정영신씨는 사진가 이전에 소설가이며 조문호씨는 ‘전농동 588번지’, ‘87민주항쟁’, ‘인사동사람들’ 등 열다섯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최근에는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천상시인 천상병 추모 사진집>을 낸 베테랑 사진가다. 두 사진가를 20일 눈빛출판사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파트4단지 장터를 걷고 있는 정영신(오른쪽)·조문호씨 부부. 곽윤섭 선임기자

 

 

-5일장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언제인가? 사진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소설을 쓰다 보니 사람에 대한 관심은 늘 있었는데 소설의 소재도 찾을 겸 장터를 찍기 시작했다. 어릴 때 우리 집에서 조금만 가면 장이었고 차 타고 조금만 가면 함평장이어서 장날에는 엄마 따라 장에 가곤 해서 익숙했다. 그 후로 힘들고 뭐가 잘 안되면 장터를 찾곤 했다. 1984년에 시작했고, 조세희 선생이 쓴 <침묵의 뿌리>를 보고 ‘사진이 이런 거구나’라고 첨 생각했다. 서울 낙원동에 있는 ‘한국사진학원’에서 인화하는 것까지 배웠다.”

-30년간 장터는 어떻게 변했는가?

“가장 큰 변화는, 장옥이 다 바뀌었다. 규격화한다면서 시멘트로 발라버려서 다 망쳤다. 겨울엔 (시멘트가) 썰렁해서 사람들이 안 들어간다. 옛날엔 장이란 게 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자신의 최고 모습을 보여주는 무대 같은 곳이었는데 텔레비전이 시골 구석구석 들어온 이후론 변했다. 기업화된 장돌뱅이가 많아져서 장에 나온 물건이 평준화되어 이 장이나 저 장이나 비슷비슷해졌다. 요즘 시골장엔 할머니들이 거동이 불편하셔서 유모차나 카트를 밀고 다니시는 것도 장터 풍경의 변화다. 80년대에 처음 찍을 때는 장보따리 이고 다녔는데 점차 가방으로 바뀌다가 이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갓을 쓰시고 장에 나오시는 멋쟁이 할아버지들도 찾아볼 수 없다.”

-장터는 어떤 곳인가?


장터 상인의 밑천 2013 순천아랫장. 정영신

 


“요즘 장터에서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할머니들이 콩 한두 되 가져와서 가용해서 쓸려고 나왔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로 바구니를 툭 건드리면서 ‘이거 중국산이죠? 할머니’ 이러면서 지나간단다. 아니라고 해도 사람 말을 믿지 않고. 시장 할머니들이 자긍심이 강한 사람들인데 너무 속상해하신다. 그래서 차라리 물건끼리 바꿔가는 게 낫고 그렇게들 많이 하더라. 아는 사람하고 ‘너나 좋은 거 먹어라. 필요한 게 뭐냐?’ 이렇게 하는 게 속이 편하단다. 콩 한 되 가져와서 아는 신발 집에서 발에 맞는 구두 한 켤레 가져가는. 어떻게 보면 옛날 장터가 딱 그랬다. 오히려 좋은 현상인 것 같다. 장이란 게 꼭 판다기보다는 하루 생활이다. 구경도 하고 얘기도 하고 친구 만나 동네 소식도 듣고. 그런 역할을 하던 곳인데….”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기억나는 사람도 참 많겠다.

“지난해 5월에 팽목항에서 십여분 거리인 진도 십일시장(임회장)에 갔다. 한 상인이 ‘시방 진도가 초상집이여. 영감이 잡아오는 생선 팔아 가용도 쓰고 병원 댕기고 하는디, 요샌 뭍에도 못 나가, 장이 쪼까 휑-하지라. 젊은 여자들은 모다 팽목항으로 봉사 갔어. 첨엔 장 바닥에 퍼져앉아 아까운 새끼들 어짜쓰까 함서 막 울고 그랬제. 어찌것는가 이렇게 꼼지락거리면서 이겨내야제. 슬픔이 이 늙은이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이참에 배웠당께’라고 하시더라. 가슴에 와닿았다. 2013년에 북평장에서 만난 한국에 온 지 5년 된 베트남 출신 또티호완(30)씨는 한국말도 잘했다. 직접 밭에서 키운 오이, 가지, 고추 등을 팔았는데 오이를 사가는 할머니에게 두 개나 얹어주는 우리나라 덤문화까지 알고 있어 정겨워 보였다. 영동장엔 한 열 번 갔는데 곰방대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자주 갔다. 한 장만 빼먹으면 ‘왜 안 왔니…’ 하셨다.”



 

정영신의 포토에세이집 <전국 5일장 순례기>에는 이런 에피소드들이 가득 들어 있어 독자가 장에 직접 가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글과 사진이 술술 읽힌다.

-21세기의 5일장에 예전의 느낌이 살아 있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5일장 작업을 계속할 것인가?

“꼭 누가 나를 기다리는 것 같다. 장에 가면 영동 할매가 나를 기다리고 사람이 아니라면 나물이 나를 방긋방긋 기다린다. 이달에, 어디에 가면 뭐가 나와 있을 것이고 나를 부른다. 나는 아직도 어딜 가든 옛날 장터의 모습을 본다. 머리와 옷과 가방의 스타일은 급속도로 변했지만 그래도 장이란 공간에선 어느 한구석에 반드시 그 지역이 보이는 곳이 있다. 우리 장의 정이 남아 있다. 앞으로도 계속 찍을 것이고 여유가 생기면 서울의 전통시장을 찍을까 한다.”

5일장을 찍고 싶어하는 초보자들을 위해 장터 추천을 부탁했더니 부부가 경쟁하듯 줄줄 불렀다.

“부산 노포역 맞은편 언덕에 오시게장(2, 7일장)이 규모 있게 펼쳐져서 볼만하다. 파라솔이 계절마다 다르다. 여름에는 햇볕 때문에 서 있다가 겨울에는 바람 들어오는 허리를 가려야 하니 누워 있다. 포항 송라장, 경주 건천장, 성주장도 좋았지. 12월 구례장엔 산수유가 나오고 청양장에 구기자가…. 제일 활기찬 장은 추운 겨울날 새벽이다. 추우니 활기가 차다. 여름은 햇볕도 강하지만 사람들도 늘어져서….”

2월17일일까지 열리는 전시장엔 간이 스튜디오를 만들어 정영신, 조문호 사진가가 매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관람객 모두에게 인물사진을 찍어주고 이메일로 전송해주는 행사도 준비되어 있다.

한겨레신문 /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장에 가자’ 개장식이 끝난 파장에는 인사동 ‘사동집’에서 뒤풀이를 했다.
힘을 실어주러 온 많은 지인들의 고마움에 자리를 만들었으나, 술값 걱정에 마음은 편치 않았다.

어차피 부도난 인생, 잔치 벌린 김에 아내와 결혼식한다 생각하니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아내와 산지 10년이 넘었으나 그동안 결혼식을 못 올렸기에,

아예 1월 21일을  결혼한 날로 정해버렸다.

즐겁게 마시고도 아쉬워 신학철, 장경호, 김의권씨 등 일부는 ‘무다헌’으로,

조준영, 공윤희씨를 비롯한 몇 명은 ‘유목민’으로 옮겼다.

뒤늦게는 노래방에 간 김명성씨 일행과 어울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러나 필름이 끊겨 노래방에 간 기억만 남을 뿐, 그 다음은 오리무중

 

사진, 글 / 조문호​

 

 

 

 

 

 

 

 

 

 

 

 

 

 

 

 

 

 

 

 

 

 

 

 

 

 

 

 

 

 

 

 

 

 




우리시장 기 살리기 위해 마련한 ‘장에 가자’ 개장식이 지난 21일 오후 5시30분 아라아트센터 5층 전시실에서 있었다.

개장식에는 민속학자 심우성선생을 비롯한 각계 인사 200여명이 함께 해 큰 힘을 보태주어 신명나는 한마당이 되었다.

이날 테이프커팅은 장수 오일장의 포목상 사진이 대신했고, 소설가 박인식씨의 사회로 격식 없이 진행됐다.

 

행위예술가 무세중선생께서 2015년을 우리시장 사랑하기 원년으로 하는 선포식에서는 모두들 ‘장에 가자’를 따라 외쳐 행사장을 들썩이게도 했다.

피리의 달인 수견(김정남)선생의 가슴을 도려내는 연주와 음유시인 송상욱선생의 옛날이 그리워지는 흘러간 노래, 뮤지션 김상현씨의 아코디온 연주 등 난장스러운 공연 분위기가 마치 시골장에서 약장수가 판을 벌인 것 같았다.

 

이 날 개막식에 참석한 분으로는 민속학자 심우성, 김동수선생, 행위예술가 무세중, 무나미씨, 문학평론가 구중서씨, 시인 강 민, 민 영, 황명걸, 서정춘, 김신용, 천성우, 조준영, 김명성, 송상욱, 안아무. 김낙영, 김영재씨, 소설가 정승재씨, 만화가 박기정씨, 사진가 육명심, 한정식, 전민조, 정용선, 엄상빈, 김남진, 김지연, 이석필, 김문호, 강동문, 배병수, 안해룡, 이수만, 김상현, 백영웅, 이수영, 곽명우, 고 헌, 권양수씨, 서양화가 신학철, 강찬모, 장경호, 전인경, 정복수, 박불똥, 성기준, 허미자, 전강호, 서길헌, 조경석씨, 한국화가 황외성, 주승자씨, 미술평론가 곽대원씨, 건축가 임태종씨, 연극배우 이명희씨, 무용평론가 이만주씨, 뮤지션 김상현씨, 팝페라가수 전은주씨, 중문학자 임계제씨, 서도소리꾼 이지녀씨,이성 구로구청장, 최혁배 변호사,'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 성윤미씨, 조경연, 김우진, 배성일, 강인구, 박시교, 신신자, 하재은, 김윤한,  김민철, 김 구, 남연정, 홍성식, 공윤희,  한진희,  방동규, 정정은, 장종수, 장한결, 이명옥,  이기남, 김정남, 임경일, 강선화, 곽성훈, 김윤한, 하태웅씨, 그리고 천리길을 마다하고 상경한 창원의 인터리어 디자이너 김의권씨를 비롯해 정선군청의 김수복 문화과장 등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드린다.

 

사진,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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