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사진가 조문호 전시 25일 아라아트센터서 개막

아시아투데이 전혜원 기자

‘청량리 588’로 불렸던 서울 동대문구 소재 성매매 집결지의 1980년대 모습을 찍은 사진전이 열린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조문호(68) 씨는 25일부터 내달 10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2층에서 ‘청량리 588’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열고 같은 제목의 사진집을 눈빛출판사에서 낸다.

이 일대에서 조씨가 찍은 사진에는 당시 거리 풍경, 오가는 사람과 성매매 여성들의 모습 등이 담겼다.

조씨는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멸시받아온 여성들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며 “세월에 파묻혀간 그 시절 장면들은 우리 사회사의 중요한 기록이고 역사였다”고 했다.

사진집에서 해설을 맡은 사진 비평가 이광수 씨는 “‘윤락녀’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진가는 그들이 사는 시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을 기록했다”면서 “그 안에서 택시도 지나가고 세탁소도 보이고, 촌에서 올라온 노인이 길도 묻는다”고 적었다.

전시회에선 총 67점의 사진이 내걸린다. 19세 미만은 관람 불가다.

사진집은 ‘눈빛사진가선 11’로 25일 출간될 예정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조문호씨 '청량리 588' 사진전 열어

 

 

 

낡은 차양막 아래로 새어나오는 붉은 불빛과 길거리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다리를 꼬고 앉은 여자들. 흔히 홍등가라 불리는 성매매 업소 밀집 지역을 이야기하면 떠올리는 풍경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조문호(68)씨의 카메라 렌즈는 더 깊은 곳을 향한다. 커튼과 인형으로 가능한 한 ‘여성스럽게’ 꾸며진 방 안에서 성매매 여성들은 화려한 레이스나 꽃무늬로 장식된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고친다. 이따금 렌즈를 응시하는 이들은 뜻 모를 미소를 짓는다. 방 안 선반에는 가톨릭 성가 ‘평화의 기도’가 적힌 액자가 놓여 있다.

 

 

조씨는 1984~88년 서울 전농동 588번지, 이른바 ‘청량리 588’의 안팎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처음에는 “누구나 궁금해 하지만 누구도 기록하지 못한 것을 내가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야심에 차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매매 여성들을 평범한 사람으로 여기게 됐다. “세상은 그들을 ‘더럽다’고 매도하지만 그들은 단지 빈곤하고, 달리 돈을 벌 수단이 없을 뿐입니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제 사진을 통해 알리고 싶었습니다.” 조씨의 사진들은 3월 10일까지 서울 견지동 아라아트센터에서 19세 미만 관람불가로 전시되고 ‘청량리 588’(눈빛 발행)이라는 이름의 사진집으로도 묶였다.

 

 

다큐멘터리 사진 촬영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부분 조직폭력배 출신인 성매매 업주들 중에는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를 폭행한 이가 나중에는 촬영에 가장 많은 도움을 줬다고 조씨는 말했다. 세상의 날카로운 시선을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했던 성매매 여성들도 처음에는 그를 경계했지만 “스스로 인권을 되찾아보자”는 그의 말에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특별히 친하게 지낸 성매매 여성 김정숙의 도움을 받아 여러 성매매 여성들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조씨는 사진을 통해 성매매 여성들이 직업인으로 인정받기를 바라왔다. 1990년 프랑스문화원에서 ‘전농동 588 사진전’을 열었다가 크게 좌절했다. 언론은 매춘행위를 소재로 했다는 점을 부각시켜 전시 내용을 선정적으로 보도했다. 정작 그가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싶었던 성매매 여성들은 아무도 전시장에 찾아오지 못하게 됐다. 그는 “필름을 불태우고 싶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25년이 지난 뒤에야 “그래도 사진은 남겨야겠다 싶어 이번 사진집과 전시를 준비했다”고 그는 말했다.

 

 

조씨는 한국의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의 사진집 ‘휴먼 1집’을 보고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힘있다”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이후 강원 정선군의 동강과 서울 인사동을 오가며 변해가는 자연과 사람들의 얼굴을 기록해 왔다. 그는 “사진을 찍으면서 만난 인연 하나 하나가 소중하다”고 믿는다. 예전에 그를 믿고 렌즈 앞에 섰던 성매매 여성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다.

 

한국일보 / 인현우기자 inhyw@hk.co.kr

 

 

 

 

 

 

 


[신간] 사진집 '청량리 588'


 

 

ⓒ 조문호, 1983년 1월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 속칭 '청량리 588'로 불린 사창가의 모습을 담담하게 기록한 사진집 '청량리 588'이 출간됐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조문호가 1984년부터 1988년까지 '청량리 588'에서 작업한 사진들로 엮었다. 1985년 동아미술제에 소개됐던 일부 사진을 제외하면 모두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사진 전문 출판사를 표방하는 눈빛 출판사의 '눈빛사진가선' 11번째 작품이다.

날이 어두워지자 점차 활기를 찾는 사창가, 집밖으로 나와 호객행위를 하는 여인들, 언뜻언뜻 비치는 군인과 청년고객, 추위를 피하려 피워놓은 연탄난로와 빈 의자….

 

조문호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호기심 어린 시선을 거두고 그들을 '인간'으로 바라본다. 때문에 사진집을 덮고 나면 '청량리 588도 똑같이 사람 사는 동네'라는 생각이 스민다.

2012년 이후 도시 재정비가 이뤄지면서 '청량리 588'은 자취를 감췄다. 2017년 이 곳에는 60층 높이 랜드마크 타워와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선다.

3월 10일까지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는 조문호 사진전 '청량리 588'이 열린다. 19세 미만은 관람 불가다. 02-733-1981.

조문호 사진집 '청량리 588' / 눈빛 / 이광수 해설 / 12000원

 

 

 

 

 

속칭 '청량리 588'로 불렸던 서울 동대문구 소재 성매매 집결지의 1980년대 모습을 찍은 사진전이 열리고 사진집도 잇달아 출간된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 청량리 588에 관련된 전시회가 열린다구요.

= 그렇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조문호 씨l(68)는 1983~1988년 이 일대를 기록한 사진으로 25일부터 3월10일까지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2층에서 '청량리 588'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열고 같은 제목의 사진집을 눈빛출판사에서 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 어떤 사진들이 전시됩니까.

 

= 이 일대에서 조씨가 찍은 사진에는 당시 거리 풍경, 오가는 사람과 성매매 여성들의 모습 등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 찍은 사진으로 1985년 동아미술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1990년에는 전시회도 열었지만 주인공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사진집 출간과 전시회를 계기로 그때 못다 한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고 싶다고 조씨는 밝혔습니다.

 

 

- 성매매 여성들의 모습을 담기가 쉽지는 않았을텐데요.


= 네. 조씨는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멸시받아온 여성들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촬영할 때는 해당 여성의 동의를 얻어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사진집에서 해설을 맡은 사진 비평가 이광수 씨는 조씨의 작품은 '윤락녀'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진가는 그들이 사는 시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을 기록했다고 작품을 평했습니다.

 

 

- 전시회와 작품집 일정도 알려주시죠.

 

= 25일부터 3월10일까지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2층에서 총 67점의 사진이 전시될 예정이구요. 19세 미만은 관람 불가라고 합니다. 사진집은 '눈빛사진가선 11'로 25일 출간됩니다.

 

 

강민수 기자 KMS2015@gmail.com

조문호 사진전·사진집 ‘청량리 588’

“직업인 주제로 접근...글 쓰고 싶어하는 스님 친구와 거기서 5달 살아

시대의 희생양...가난이 죄라면 죄, 누가 그녀들의 얼굴에 침을 뱉으랴”

 

 

 

 



-이런 작업은 선정적인 소재주의로 읽힐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왜 찍은 것인가?


 “사회의 필요악인 매매춘은 지구상에 사람이 사는 동안에는 완전히 없어질 순 없다고 생각한다. 생활고에 찌들려 몸을 팔았던 그녀들도 어떻게든 시대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가난한 것이 죄라면 죄일 뿐 누가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있단 말인가? 그녀들은 나의 연인이었고 동생이었다. 우리 사회의 시선이 잘못된 것이지. 나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바로 잡으려고 오랫동안 노력했으나 나 개인의 힘으로 깨기에는 그 벽이 너무 두꺼웠다. 그들도 사람이며 이웃이고 가족이다.”




 

-1990년에 이 내용으로 전시를 했다고 들었다. 그때 이야길 좀….
 

“프랑스 문화원에서 ‘전농동 588번지 기록전’이라는 이름으로 초대전을 열었다. 그때 사진 속 주인공들인 아가씨들이 전시장에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결국 아무도 못 오고 말았다. 그때 ‘사람대접 받게 해달라’는 그녀들의 목소리가 전해지길 바랐지만 매매춘이란 호기심에 무게를 둔 선정적인 언론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전농동 필름은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고 처박아 두었다. 사진집 출판 제의도 거절했다. 나와 그녀들의 진심이 왜곡될 것이 두려웠다.”


 

 



 -그 후에 다시 청량리 588을 찾은 적이 있었는가?
 

“한 번도 발길을 둔 적이 없다가 95년인가…. 청량리 588이 철거된다는 뉴스를 보고 찾아갔다. 세 롤을 찍었는데 그 사이에 건달들의 얼굴이 싹 바뀌었고 아는 사람이 없었다. 뺏겼지 뭐. 아쉽다. 한 롤이라도 남았다면 중요한 기록이 되었을 것인데….

 

 

 

 

 

 


 -전시장에 걸린 주인공들이 찾아오길 바라는가? 그 후에 혹시 연락이 닿는 사람이 있는가?
 

“그 후론 연락이 끊어졌다. 그때야 뭐 휴대전화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또 그녀들은 수시로 업소를 옮겨다니니 찾기가 힘들
» 책 표지다. 진심으로 그녀들이 오길 바란다. 그때 그 사람들도 보고 싶고, 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싶다. 그녀들이 와서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모습이 담긴 작품들을 찾아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프린트를 그래서 두 개씩 했다. 하나는 주고 하나만 남기려는 생각이다. 초상권….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당당해지고 이제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말라고 하고 싶다. 나는 지금도 가난하지만 그 시절 연인과 동생들이 오면 소주 한 잔 받아주고 싶다. 부디 행복하게 살기 바란다.


 


조문호의 사진들은 여러모로 쉽지 않다. 찍기가 가장 어려웠을 것이다. 누구처럼 망원으로 몰래 당겨서 찍은 것이 아니라 이쪽이 그대로 밝혀진 상황에서 찍은 사진이니 더욱 어렵다. 다음으론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자칫 소재주의의 눈으로 읽어버리면 큰 실수다. 페이스북 같은 곳에서 세 치 혀나 가벼운 손가락을 놀리면서 읊어댈 사진이 아니다. 시대의 작업이며 기록이다.

최민식선생의 자갈치, 김기찬선생의 골목, 박신흥선생의 70년대(예스터데이)에 등장하는 우리 앞 세대의 사람들처럼 이 588번지의 아가씨들도 우리 시대의 ‘희로애락’이다. 사진에 등장하는 이들의 표정을 보면 인간 ‘조문호’를 어떤 시선에서 바라보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행여 트윗이나 페이스북에 한 마디 걸치려고 하는 분이 있다면 반드시 전시장에 가보고 난 다음에 판단하길 바란다. 쉽게 찍은 사진이 아니니 쉽게 판단하지 마라.
 
 *19세 미만 관람 불가



눈빛사진가선 열 한번째 책으로 조문호의 <청량리 588>을 선택한 눈빛 이규상 사장이 “조문호의 ‘청량리 588’을 잘 감상하는 법”을 보내왔다. 참고하면 좋겠다.
 
 1. 사진은 기록성과 진실성을 넘어서 재현의 의미가 있는 매체이므로 이 사진들도 그냥 사진으로 봐주었으면 한다.
 2. 숨어서 폭로하기 찍은 사진이 아니며, 누군가를 적시해 발표하는 사진도 아닌 불특정 인물의 초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3.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을 인간의 따뜻한 정감으로 감싸 안은 암울했던 1980년대 사회상의 이면이다.
  


한겨레 / 곽윤섭기자kwak1027@hani.co.kr





 

 

조문호 作. 1987년 8월. 청량리 588.

 

조문호 作, 1983년 2월. 청량리 588.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다큐멘터리 사진가 조문호씨(69)가 1980년대 청량리 588번지 일대를 기록한 작품을 전시한다. 같은 주제로 1990년에 열린 전시를 25년이 흐른 지금 다시 하는 것이다. 당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탓에 전시 의도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미뤘던 관련 사진집도 전시에 맞춰 출간했다.

이번 사진전은 작가가 30여 년 전인 1983년부터 1988년까지 5년간 작업한 서울시 전농동 홍등가의 기록이다.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멸시받아 온 윤락녀들의 따뜻한 인간애와 애잔한 삶에 초점을 맞췄다. 작가는 현장에서 기거하며 그녀들과 소통하려 했다. 그들의 생활을 친근하게 담아내기 위한 접근이었다. 건달들의 폭력 등 여러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지만 사회사적 기록의 중요성을 절감했기에 포기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는 '87민주항쟁' '인사동 사람들' 등 다양한 기록 사진전을 열었던 이다.



조문호 작가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필름 파일을 뒤적이다 옛 기억들을 회상했다. '가난이 지겨워 무작정 상경해 돈 벌려고 곳곳을 떠돌다 사창가까지 오게 됐다'던 누이동생 같은 이들의 눈망울을. '변소 구더기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몸은 망가져도 살기는 그곳이 더 편하다'는 얘기를. 작가는 "생활고에 찌들어 몸을 팔았던 그들도 어쩌면 시대적 희생양에 다름 아니었다"며 "문제는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멸시와 천대로 얼굴조차 마주치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바로 잡으려 오랜 세월 노력했으나, 그 벽은 너무 두터웠다"고 고백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가 과거처럼 '매춘'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관음증의 시선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대접 받게 해 달라는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인격으로 감싸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19세 미만 관람불가. 25일부터 3월10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02-733-1981.


청량리 588, 그때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1984~88년 청량리 사창가의 사람살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한 조문호 작가의 사진집 <청량리588>에 실린 주요 작품. 70~80년대 전통 풍경과 문화유산을 탐구했던 주명덕, 강운구, 김수남의 작업과 달리 당대의 사회적 풍경 속으로 파고 들어간 그의 사진들은 80년대 한국다큐사진의 또다른 성취로 평가된다.

 

홍등가 여성들의 고단한 얼굴
스쳐가는 남성, 택시·세탁소 등
80년대 풍경 세밀하게 담아

 

회색 입자들이 가득 퍼진 사진 속에 1980년대 ‘청량리 588’의 풍경이 넘실거리고 있다. ‘아가씨들’이 기다리던 588 쪽방들은 무거운 커텐이 둘러처진 무덥고 답답한 공간이었지만, ‘일’을 치르고 나면 얼음장처럼 퀭한 공간으로 돌변했다. 남녀의 체온이 뒤섞이던 그 쪽방으로 사내들은 맥주를 들이킨 뒤 숨가쁘게 달려갔다. 2층 행랑에 들창문, 쪽문이 줄줄이 붙은 홍등가 벽돌건물들과 그 앞 회색빛 거리를 배경으로 천천히 가는 스텔라 택시와 청년, 군인들이 등장한다. 그들을 잡아끄는 여인네들, 실랑이가 각본처럼 벌어지는 풍경이다. 이 기억의 무대 곁엔 어김없이 음료수, 인삼차 등이 쓰여진 찻집과 미용실, 포장마차 따위가 붙어있었다. 홍등가 건물, 차양 아래 고드름이 매달린 겨울이면 얇은 옷차림을 한 ‘언니’들이 미닫이 문 안에서 연탄불을 쬐면서 남자들을 끌어당겼다

 

80년대 중반 서울 전농동 588번지, 청량리 역 사창가 여성들과 동고동락했던 조문호 (68)사진가는 자신이 지켜본 30여년전 청량리 풍경을 하나하나 렌즈에 새겨넣었다. 필름에 찍힌 채 30년 이상 처박혔던 588의 공간 풍경을 작가가 최근 사진집 <청량리 588>(눈빛)을 출간하며 되살려냈다. 지난해 시작한 ‘눈빛사진가선’의 11번째 결실이다. 작업 일부는 85년 동아미술제에 선보였지만, 책에 실린 사진들은 대부분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136쪽에 들어찬 사진들은 1984~1988년 청량리 사창가를 세밀화처럼 그려낸 기록이고, 겉과 속이 달랐던 5공화국의 사회적 풍경이기도 하다. ‘정의사회 구현’을 소리높여 외쳤지만, 거창한 구호 뒤로 온갖 성산업을 부추키며 국민을 우민화하려던 음울했던 시대의 분위기가 서려있다.

 


“윤락녀를 기록한 게 아니라
그 시공간 속 사람을 기록한 것”
25일부터 인사동서 전시회도

 

1984~88년 청량리 사창가의 사람살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한 조문호 작가의 사진집 <청량리588>에 실린 주요 작품.

 
 

작가의 시선은 줄곧 그곳 인간군상들의 표정과 움직임을 좇는다. 강퍅한 2층 벽돌 슬라브 쪽방 건물들 속에서 과로와 슬픔에 찌든 사창가 여성들의 고단한 얼굴과 주름진 알몸, 앳된 초보 성노동자의 단아한 얼굴 등이 휙 문앞을 스쳐가는 남자들의 실루엣과 얽힌다. 접객실에서 여인들은 다 헤진 의자에 앉아 남자들의 주문을 기다린다. 그들의 옆 벽면에 있는 밀대 걸레와 연탄보일러 탱크 등은 구질구질하지만 엄숙한 소품과도 같다. 조 작가는 재개발의 광풍이 몰아친 2012년 이후, 대형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선 청량리에 30여년전 이런 풍경이 있었다는 사실을 날서지 않은 사람살이 장면들로 보여준다. 평론가 이광수씨는 사진집에 실은 글에서 “작가는 ‘윤락녀’들이 아니라, 그들이 사는 시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을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다. “택시도 지나가고, 세탁소도 보이고, 촌에서 올라온 노인이 길을 묻고 있다. 영락없는 우리가 살던 그 동네다…<청량리 588>은 사라져가는 작은 이들의 세상을 기록한다 …소외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를 말하려 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우리’와 같은 사람을 말하려 하는 사실…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눌변, 그것이 조문호 사진의 완성도를 높이는 힘이다. ”

 

1984~88년 청량리 사창가의 사람살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한 조문호 작가의 사진집 <청량리588>에 실린 주요 작품.

 

1984~88년 청량리 사창가의 사람살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한 조문호 작가의 사진집 <청량리588>에 실린 주요 작품.

 

 

조 작가는 지난달 부인 정영신(57)씨와 전국 장터 사람들을 찍은 사진전을 차렸다. 지금도 인사동과 전국 장터들을 오가며 군상들을 담는다. 젊을 적부터 음악다방, 주점 등을 하며 자유인으로 살았고 대가 최민식의 작품에 이끌려 다큐사진에만 탐닉했다. 가산을 거덜내는 댓가도 치렀지만,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며 낮은 자들의 삶을 투시하는 도리를 배웠다. 항상 바닥을 생각하는 그 겸손한 시선 덕분에 80년대 풍속생활사의 가장 인상적인 기록이라 할 <청량리 588>이 나올 수 있었던 셈이다. 작가는 사진집 사진들을 추려 25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전시판도 벌인다. 19살 이상만 볼 수 있다.

 

한겨레신문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눈빛출판사 제공

 

 

 

 

 


사진집도 출간 예정

 속칭 '청량리 588'로 불렸던 서울 동대문구 소재 성매매 집결지의 1980년대 모습을 찍은 사진전이 열리고 사진집도 잇달아 출간된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조문호(68) 씨는 1983~1988년 이 일대를 기록한 사진으로 25일부터 3월10일까지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2층에서 '청량리 588'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열고 같은 제목의 사진집을 눈빛출판사에서 낼 예정이다.

이 일대에서 조씨가 찍은 사진에는 당시 거리 풍경, 오가는 사람과 성매매 여성들의 모습 등이 담겼다.

조씨는 "당시 찍은 사진으로 1985년 동아미술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1990년에는 전시회를 열었지만, 주인공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면서 "사진집 출간과 전시회를 계기로 그때 못다 한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문호씨 사진 제공>

 

조씨는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멸시받아온 여성들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며 "세월에 파묻혀간 그 시절 장면들은 우리 사회사의 중요한 기록이고 역사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당시 현장에서 여성들과 소통하려 노력했다"며 "촬영할 때는 해당 여성의 동의를 얻어 사진을 찍었다"고 밝혔다.  

 

사진집에서 해설을 맡은 사진 비평가 이광수 씨는 "'윤락녀'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진가는 그들이 사는 시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을 기록했다"면서 "그 안에서 택시도 지나가고 세탁소도 보이고, 촌에서 올라온 노인이 길도 묻는다"고 적었다.

 

전시회에선 총 67점의 사진이 내걸린다. 조씨는 19세 미만은 관람 불가라고 전했다.  

 

사진집은 '눈빛사진가선 11'로 25일 출간될 예정이다.

 

지난달 조씨는 역시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아내 정영신 씨와 30여 년간 전국 5일장을 돌아다니며 장날 풍경과 다양한 사람들 등을 기록한 전시를 열었다.

 

조씨는 이외에도 그동안 아시안게임, 강원도 동강, 인사동 등을 소재로 한 사진을 촬영해왔다.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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