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호 사진전·사진집 ‘청량리 588’

“직업인 주제로 접근...글 쓰고 싶어하는 스님 친구와 거기서 5달 살아

시대의 희생양...가난이 죄라면 죄, 누가 그녀들의 얼굴에 침을 뱉으랴”

 

 

 

 



-이런 작업은 선정적인 소재주의로 읽힐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왜 찍은 것인가?


 “사회의 필요악인 매매춘은 지구상에 사람이 사는 동안에는 완전히 없어질 순 없다고 생각한다. 생활고에 찌들려 몸을 팔았던 그녀들도 어떻게든 시대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가난한 것이 죄라면 죄일 뿐 누가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있단 말인가? 그녀들은 나의 연인이었고 동생이었다. 우리 사회의 시선이 잘못된 것이지. 나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바로 잡으려고 오랫동안 노력했으나 나 개인의 힘으로 깨기에는 그 벽이 너무 두꺼웠다. 그들도 사람이며 이웃이고 가족이다.”




 

-1990년에 이 내용으로 전시를 했다고 들었다. 그때 이야길 좀….
 

“프랑스 문화원에서 ‘전농동 588번지 기록전’이라는 이름으로 초대전을 열었다. 그때 사진 속 주인공들인 아가씨들이 전시장에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결국 아무도 못 오고 말았다. 그때 ‘사람대접 받게 해달라’는 그녀들의 목소리가 전해지길 바랐지만 매매춘이란 호기심에 무게를 둔 선정적인 언론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전농동 필름은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고 처박아 두었다. 사진집 출판 제의도 거절했다. 나와 그녀들의 진심이 왜곡될 것이 두려웠다.”


 

 



 -그 후에 다시 청량리 588을 찾은 적이 있었는가?
 

“한 번도 발길을 둔 적이 없다가 95년인가…. 청량리 588이 철거된다는 뉴스를 보고 찾아갔다. 세 롤을 찍었는데 그 사이에 건달들의 얼굴이 싹 바뀌었고 아는 사람이 없었다. 뺏겼지 뭐. 아쉽다. 한 롤이라도 남았다면 중요한 기록이 되었을 것인데….

 

 

 

 

 

 


 -전시장에 걸린 주인공들이 찾아오길 바라는가? 그 후에 혹시 연락이 닿는 사람이 있는가?
 

“그 후론 연락이 끊어졌다. 그때야 뭐 휴대전화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또 그녀들은 수시로 업소를 옮겨다니니 찾기가 힘들
» 책 표지다. 진심으로 그녀들이 오길 바란다. 그때 그 사람들도 보고 싶고, 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싶다. 그녀들이 와서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모습이 담긴 작품들을 찾아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프린트를 그래서 두 개씩 했다. 하나는 주고 하나만 남기려는 생각이다. 초상권….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당당해지고 이제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말라고 하고 싶다. 나는 지금도 가난하지만 그 시절 연인과 동생들이 오면 소주 한 잔 받아주고 싶다. 부디 행복하게 살기 바란다.


 


조문호의 사진들은 여러모로 쉽지 않다. 찍기가 가장 어려웠을 것이다. 누구처럼 망원으로 몰래 당겨서 찍은 것이 아니라 이쪽이 그대로 밝혀진 상황에서 찍은 사진이니 더욱 어렵다. 다음으론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자칫 소재주의의 눈으로 읽어버리면 큰 실수다. 페이스북 같은 곳에서 세 치 혀나 가벼운 손가락을 놀리면서 읊어댈 사진이 아니다. 시대의 작업이며 기록이다.

최민식선생의 자갈치, 김기찬선생의 골목, 박신흥선생의 70년대(예스터데이)에 등장하는 우리 앞 세대의 사람들처럼 이 588번지의 아가씨들도 우리 시대의 ‘희로애락’이다. 사진에 등장하는 이들의 표정을 보면 인간 ‘조문호’를 어떤 시선에서 바라보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행여 트윗이나 페이스북에 한 마디 걸치려고 하는 분이 있다면 반드시 전시장에 가보고 난 다음에 판단하길 바란다. 쉽게 찍은 사진이 아니니 쉽게 판단하지 마라.
 
 *19세 미만 관람 불가



눈빛사진가선 열 한번째 책으로 조문호의 <청량리 588>을 선택한 눈빛 이규상 사장이 “조문호의 ‘청량리 588’을 잘 감상하는 법”을 보내왔다. 참고하면 좋겠다.
 
 1. 사진은 기록성과 진실성을 넘어서 재현의 의미가 있는 매체이므로 이 사진들도 그냥 사진으로 봐주었으면 한다.
 2. 숨어서 폭로하기 찍은 사진이 아니며, 누군가를 적시해 발표하는 사진도 아닌 불특정 인물의 초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3.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을 인간의 따뜻한 정감으로 감싸 안은 암울했던 1980년대 사회상의 이면이다.
  


한겨레 / 곽윤섭기자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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