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80년대 사창가 공개한 사진작가 조문호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기자]

서울 청량리 일대 집창촌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전이 인사동 아라아트 2층 전시관에서 열린다. 사진작가 조문호가 1984-1989년까지 전농동588번지 일대 홍등가를 담은 이번 전시는 ‘청량리588’이란 제목으로 관객을 만난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우리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멸시 받았던 윤락녀는 그들 역시 인간임을 말하고 있었다.

 


사진작가 조문호의 ‘청량리 588’사진전이 오는 3월 10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 2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서울 동대문구 일대 집창촌의 모습을 담은 67점의 사진은 전시와 함께 ‘청량리 588’(눈빛출판사) 사진집으로도 출판되었다.

“그들도 똑 같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어 온 조 작가는 당시 홍등가를 찍기 위해 현장에 기거했다. 건달들의 폭력과 성병 등 숱한 고난이 동반됐지만 조 작가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매춘을 우리 사회의 필요악으로 보았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성매매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생활고에 찌들려 몸을 팔았던 윤락녀는 시대적 희생양으로 부각됐다. 조 작가는 “가난한 것이 죄일 뿐 누가 그들의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처음엔 냉대했던 그곳의 여성들은 서서히 조 작가에게 마음을 열었다. 조 작가가 카메라를 들었을 때 이들은 이미 서로를 누이동생으로 불렀다. 때문에 조 작가는 성매매 여성들의 생활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친근한 방식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조 작가는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며, 우리의 이웃이고 가족”이라고 강조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멸시 섞인 시선, 얼굴조차 마주보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천대가 윤락녀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작가는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애썼다. 몸 파는 창녀가 아니라 하나의 직업인으로 봐달라며 5년을 공들였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힘들게 찍은 사진을 모아 1990년 2월 전시회를 가졌으나 언론은 매춘이란 호기심에 무게를 두고 ‘선정적인 보도’로 일관했다. 조 작가와 생각을 같이하며 “사람대접 받게 해 달라”고 했던 사진의 주인공들은 전시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성난 조 작가는 필름을 창고에 처박았다. 사진집 출판 제의도 거절했다. 자신의 작품이 춘화와 같은 이야깃거리로 변질될 것이 두려웠고, 무엇보다 행여 잘 살고 있는 누이동생들의 삶이 망가질까봐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조 작가는 먼지 쌓인 필름을 다시 꺼냈다. 그들의 목소리를 한 번 더 세상에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조 작가는 “사진에 찍힌 그때 그 사람도 보고 싶고,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싶다”며 “전시장에 찾아와 자신이 찍힌 사진을 찾아 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청량리 588’ 사진전 전시
집창촌 직접 머물며 촬영
성매매 여성들 애환 담아

훌륭한 사회사적 기록물인 조 작가의 작품은 1985년 ‘동아미술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기쁨과 뿌듯함에 조 작가는 사진의 모델이 되어준 여성들을 상대로 남김없이 상금을 썼다고 한다. 전시 서문을 쓴 이광수 부산외대 교수는 “그들이 받은 것이니 그들에게 돌려줘야겠다는 심산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 작가의 사진은 기술적으로 뛰어 난 사진이 아니다. 어찌 보면 촌스럽기까지 한 구성과 스타일은 오히려 그의 작업을 돋보이게 한다. 인간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애틋함이 녹아 있는 사진들을 보다 보면 1980년대의 정취가 눈시울을 자극한다. 엄혹한 군사독재 시대, 국가의 최우선 정화 대상이었던 이들은 한곳에 모여 아등바등 살고 있었다. 우리와 똑같이 살고 싶은 욕구에 충실한 생명이었던 것이다.

 



조 자가는 자신의 작가노트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 정숙아! 혜련아! 나의 연인이기도 동생이기도 했던 너희가 보고 싶다. 연락 한 번 주렴. 내가 소주 한 잔 살게. 그리고 부디 행복하게 살기 바란다.”

사회사 기록

그간 아시안게임, ‘민주항쟁, 두메산골 사람들, 5일장, 강원도 동강, 인사동 등을 소재로 작업해 온 조 작가는 이번 전시로 한국 사진사의 큰 족적을 남겼다. 향수에 젖고 싶은 성인이라면 전시가 열리는 ‘아라아트’를 찾아보면 어떨까. 단 19세 미만은 관람불가다.

angeli@ilyosisa.co.kr

 

[조문호 작가는?]

 

조문호 작가는 1947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30여 년간 사회 환경을 기록해 온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1985년 동아미술제에서 ‘홍등가’로 대상을 수상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 기록사진 공모전’ 대상과 2007년 강원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선정된 바 있다. 주요 전시로는 민주항쟁 기록전(1987), 전농동588번지 기록전(1990), 동강백성들 사진전(2001), 태풍 루사가 남긴 상처 사진전(2002), 두메산골 사람들 사진전(2004), 인사동 그 기억의 풍경전(2007) 등이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기획, 단체전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포토에세이집 <동강 백성들>, <두메산골 사람들>, <인사동 이야기>, 천상병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등이 있고, <월간 사진> 편집장과 한국환경사진가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석>

 

‘장에 가자’ 전시에 이어 ‘청량리588’까지 45일 동안 계속된 전시로 곤욕을 치루었다.

매일 사람들을 만나고, 술 마시는 게 즐겁기는 했으나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터진 입술은 아물지 않고, 매사에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

지난 10일 전시작품은 철수했으나, 쉴 형편은 아니었다.
이틑 날 오후2시부터 ‘시사저널’ 김진령기자 와의 인터뷰 약속이 있었으나,
우편물 보내느라 늦어 약속시간을 20분이나 넘겼다.
매번 반복된 질문에 답하는 것도 지겨워 개인적인 신세타령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지면에 나와서는 안 될 이야기까지 한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속은 후련했다.

아라아트 사무실에 올라갔더니, 채현국선생과 구중관, 공윤희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 채현국선생은 유명세 타느라 엄청 바쁘시단다.

양산 학교 일 챙기기도 바쁜데, 인터뷰에다 틈틈이 초청강연까지 있어 인사동에서 뵙기가 쉽지않다.
그 날도 짐 보따리를 뒤적여 복사한 잡지 인터뷰기사를 보여주었다.

오후 4시 무렵, 인사동거리에서 ‘통인가게’ 김완규회장을 만났다.
‘이문설렁탕’에서 김회장을 비롯하여 대신증권의 김송규전무, 이흥탁부장, 송재엽씨 등

몇 명이 모여 수육에다 막걸리를 마셨는데, 모두들 너무 급하게 마셨다.
한 번에 다섯 병씩 시킨 막걸리가 순식간에 열 다섯병이나 되었는데, 따르기가 무섭게 마셔 재켰다.

급하게 마시면 금새 취하는 체질이라, 눈치 껏 마시기는 했으나 계속 재촉하는 바람에 취해 버렸다.

헤어지는 길에 김명성, 박인식, 김종숙씨도 만났으나, 갈 길이 멀어 헤어졌다.

그 날 밤 청량리588을 촬영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술이 취해 모범택시를 잡아 타고 588가자며 잠이 들어버렸는데, 깨어 보니 588 홍등가에 내려 놓았다.
정신없이 내렸더니, 사방에서 잡아 당겼다. 나를 일본 사람인줄 알았던 모양이다.

588을 기록한 사진쟁이랬더니, “아! 오빠가 그 사람이구나!‘라며 놓아 주었다.

정신차려 외각을 돌며 588의 야경을 찍고 있는데, 왠 사내가 나타나 카메라를 내 놓으란다.
'왜? 카메라를 달라냐'고 물었더니, 금지구역을 찍었다는 것이다.
그럼, 마음대로 지우라고 했더니, 열심히 지우고 카메라를 돌려주었다.
집에 돌아 와, 지운 CF카드를 다시 복원시켰다.

사는 재미는 반전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청량리588‘전시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전시 종료를 이틀 앞둔 지난 주말에는 시인 강 민, 김가배 선생께서
김수영시인의 미망인이신 김현경선생을 모시고 오셨다.

김현경선생께서는 구십을 넘긴 연세지만 아직 짱짱하시다.
기억력이 너무 좋아 김수영선생의 생전 일화들을 심심찮게 들려주신다.
‘청량리588’전시를 둘러보신 후, 익숙한 풍경이라며 말씀을 꺼내셨다.

돌아가신 김수영선생께서 옛 홍등가인 ‘종삼’에 가끔 들리셨다는데,
한 번은 술이 취해, 아끼는 군용 털내의를 두고 나와 통탄해 하셨다고 한다.
어느 집, 어느 방인지도 몰라 안타까워하시기에, 다시 사주겠다며 달랬다는 것이다.
정말 간 큰 남편이고, 통 큰 아내였다.

그 날은 가수 최백호씨와 기와장 오세필씨도 들려 김명성씨와 함께 '툇마루'에서 점심을 먹었다.

최백호씨는 축구를 하다 넘어져 한 달 넘게 고생하였다고 한다.

점프를 하다 그만 발에 걸려 넘어졌는데, 머리로 바닥을 쳤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큰 일 날뻔한 사고로, 좋아하는 축구도 이제 못하게 됐다.

 

사진가로는 한정식, 전민조, 변홍섭씨가 오셨고,

눈빛출판사 이규상씨는 사진가 구본상, 이경수, 김봉규씨와 함께 들려 기념사진을 찍었다.

전 날엔 막차로 서양화가 장경호, 김정대씨가 찾아 와 ‘화신포차’에서 소주 한 잔하였는데,

이 날은 이대훈, 노인자 내외가 늦게 와 염소 고기집에서 소주 한 잔 했다,
옆 자리에는 서양화가 김종숙씨를 비롯하여 김명성, 박인식, 조근숙씨 일행도 있었다.

 

술, 웬수같지만 난 버리지 못한다. 세상이 술 취하지 않고는 살기 힘들게 만드니까.

술, 담배, 섹스, 모두 마약처럼 중독성을 가졌지만, 버릴 수 없고 버리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그 것 다 버리면, 사는 재미가 뭘까?.... 

 

 

글:조문호/사진: 정영신, 조문호

 

 

 


 

 

 

 

 

 

 

 

 

 

 

 

 

 

 

 

 

 

 

 

 

 

 

 

 

 

 

 

 

 

 

 


지자체, 시립미술관 편입 등 추진
사진계 “독립성 침해” 들며 반발

 

 

6회째를 맞는 내년 대구사진비엔날레를 좀더 발전된 행사로 치르기 위해 대구시가 사진비엔날레 운영방식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해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던 ‘제5회 대구사진비엔날레’에서 시민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

 


새해 국내 사진계가 술렁거린다. 국내 3대 사진행사인 대구사진비엔날레, 서울사진축제, 동강국제사진제의 운영방향, 조직을 탈바꿈시키는 개편안이 최근 추진되고 있다. 특히 대구사진비엔날레와 서울사진축제는 시쪽이 시립미술관에 행사를 흡수시키는 방안을 모색중이어서 사진계와 마찰이 일 조짐이다.


내년 10주년을 맞는 국내 최대 사진 축제인 대구 사진비엔날레는 시 쪽이 운영 전반을 맡아온 조직위를 해체하고, 대구시립미술관에서 통합운영하는 방안을 최근 내비쳐 지역 사진계와 갈등을 빚고 있다. 발단은 지난달 30일 시가 비엔날레 발전 방안을 위한 자문회의를 열어 내놓은 개편안이다. 시쪽은 조직위의 자생력 부족과 예산운영의 어려움, 전시의 질적 저하 등을 들어 대구시립미술관이 비엔날레를 전담하는 이관안을 제시했다. 지난해 유료관객이 2013년에 비해 4만명 이상 격감하는 등 운영상 문제로 운영을 효율화해야한다는 게 시쪽 입장이다.


지역 사진계는 비엔날레가 미술관에 통합운영되면 독립성이 침해받게 되며, 사진 장르의 특성도 흐릿해질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 대학 사진과 교수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현대사진영상학회는 10일 비엔날레 방향성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어 ‘비엔날레가 미술관 행사 일부로 전락해 고유한 특성을 잃게될 것’ ‘문화예술정책이 민간주도 흐름에 역행한다’ 는 등의 우려들을 쏟아냈다. 시는 개편안을 조속히 확정할 방침이나, 반대 여론이 거세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시가 해마다 열어온 서울사진축제도 올해 6회부터 시 직영에서 시립미술관과 공동개최하는 쪽으로 내부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시쪽의 한 관계자는 “분관인 북서울미술관을 사진갤러리로 개편해 행사를 전담하거나 사진축제를 격년제로 바꿔 시립미술관에서 여는 방안을 논의중”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사진계 일각에서는 시립미술관이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를 운영중인데, 사진축제까지 떠안을 경우 내실있는 운영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모든 축제는 민간 중심이라는 박원순 시장의 정책 기조와 맞지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강원도 영월군이 주관하는 동강국제사진제도 연말 기존 운영위원들을 해촉하고 새 기획위원들을 임명해 개혁안을 준비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002년 시작한 이 사진제는 지자체가 사진계와 손잡고 문제작가 재조명과 신진작가 발굴 등에 주력하는 대안적 행사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특정 학맥 출신들이 운영을 주도해 행사가 매너리즘에 빠지고 콘텐츠의 참신성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적지않았다.


한겨레신문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청량리 588"

 

전시일시 : 2015, 2, 25-3,10

전시장소 : 아라아트센터 2층전시실(인사동)

 

 

-작업노트-

 

이 땅의 환부요 시대의 치부로 일컬어지는 청량리588에도

사람이 살았고 따뜻한 인간애가 흐르고 있었다.

전농동을 기록한 오래된 필름 파일을 뒤적이다 그 소녀를 다시 보았다.

그 녀를 잊은 지도 어언 30여년의 세월이 되었나보다.

그토록 꿈 많은 소녀가 거기까지 가게 된 건, 가난한 부모 만난 죄 뿐이다.
그 때는 나라까지 가난했으니, 시대적 사회적 희생양에 다름 아니다.

당시 한참 고운 이십대였으니 이제 오십대의 아낙이 되었을 게다.
가난 때문에 무작정 상경하여 곳곳을 떠돌다 결국

사창가까지 오게 되었다며 슬피 울던 그녀의 눈망울이 아직도 선하다.

몸은 망가져도 끼니 걱정하지 않고 집에 돈까지 보내 줄 수 있어나,

구더기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의 멸시를 견딜 수 가 없었다고 했다.

 

그들도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다.

가엽다고 동정하지도, 몸 판다고 천대하지도 마라.

동등한 사람으로 함께 사는 깨어난 세상을 바라며 이 사진들을 내 놓는다.

 

그리고 세월에 묻혀 간,

그 시절 장면 장면들은 우리 사회사의 중요한 기록이고 역사다.


2015. 2
조문호

 

 

 

'그리움의 연서' 해설 중에서

 

조문호의 사진이 따뜻한 것은 그가 그 대상을 따뜻하게 바라보아서만은 아니다. 대상이 되는 그들이 그를 따뜻하게 바라보아서이기도 하다. 좋은 사진은 사진가와 대상의 교감에서 나온다는 그 명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이란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이란 순간적 찰라를 포착하는것이 아닌 사진가와 대상의 교감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함이다. 사라져 가는 것을 기록하는 것, 사람사는 세상을 기록하는 것, 무시당하고 소외당하는 작은 이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조문호의 ‘청량리588’은 바로 사라져 가는 작은이들의 세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그런데 정작 조문호의 ‘청량리588’이 다른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과 다른 것은 사진가가 그들의 소외된 삶을 도구로 삼아 소외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를 말하려 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우리’와 같은 사람을 말하려 하는 사실에 있다. 감히 사회를 위해, 역사를 위해,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는 웅변이 아니다.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눌변, 그것이 조문호 사진의 완성도를 높이는 힘이다.

-이광수 : 사진비평가-

 

 

-전시장 스케치-

 

 

 

 

 

 

 

 

 

 

 

 

 

 

 

 

 

 

 

 

 

 


                                                                                                    

 

-전시 작품-

 

 

 

 

 

 

 

 

 

 

 

 

 

 

 

 

 

 

 

 

 

 

 

 

 

 




 

'청량리588'전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지난 5일에는 시인 강 민, 이행자씨, 서양화가 김영덕, 박불똥씨, 미술평론가 박용숙씨, 무이도 예술촌장 정중근씨,

'예당국악원' 조수빈원장, 오마이뉴스 박 건 시민기자, 전통염색인 이명선씨 등 많은 분들이 다녀갔지만,

다른 개인전 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사진가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사느라 바쁘고, 일하느라 바빠,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사우들을 요즘 이산가족 만나 듯 만난다.

그동안 사는 곳은 물론 전화번호까지 몰라 연락주지 못했으나, 어떻게 알았는지 모두들 찾아 온다.

지난 7일에는 대전에 사는 이석필씨와 그의 조카 이주영씨를 비롯하여  박옥수, 양재문, 신동필,

유성준, 최영규씨를 만났고, 사진평론하는 최건수씨는 많은 아마츄어 사진인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지척에서 룩스갤러리를 인수하여 운영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늦은 시간에는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가  엄상빈, 이젬마, 김지연씨를 모시고 와 즐거운 주연을 가졌다


 

 

 

 

 

 

 

 

 

 

 

 

 

 

 

 

 

 

 

 

 


 

 

 

 


 

청량리 588’.

조문호 지음|이광수 해설|눈빛|136쪽|1만2000원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 그곳에 있던 사창가의 별칭이었다. 청량리역 주변이어서 그렇게들 불렀다.

사진작가인 저자는1984~1988년 이곳에 살면서 그곳 ‘삶’을 앵글에 담았다.

처음에는 사진기를 들이대다가 따귀도 맞았고, ‘어깨’들에게 몰매를 맞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 아가씨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인간’으로 대하는 사진가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미소까지 지었다.

그렇게 한컷한컷 찍힌 사진들은 ‘사창가’ 하면 먼저 떠오르는 선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거기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전한다. 이광수 부산외대 교수는 이렇게 해설을 붙였다.

“사진가 조문호는 사람을 일로 보지 않았고 시공간 속에 살던 사람을 보았던 것이다. 누구는 부모 잘 만나 공주로 지내던 시절, 누구는 구로공단에서 기계보다 더 기계 같은 공순이로 살고, 누구는 588에서 창녀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현실 속 사람을 보았다. 멀리 시골에서 돈 한 푼 없이 올라온 후 가난한 부모와 동생들 먹여 살리기 위해 별의별 일 다 해 보다가 결국 이곳으로 흘러 들어와 삶을 꾸역꾸역 이어 가는 사람들이다. 어깨 위에 놓여진 가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는 그 청량리역과 닮은 삶이다.”

 

▶1980년대, 아직까지 이곳은 금붕어 어항 같은 유리방이 아니었다. ‘신흥 여인숙’이란 간판 아래 나란히 앉은 여인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다.

 

▶침침한 뒷골목, 전등 아래 다리를 꼬고 앉은 여성의 모습에서 삶의 비릿함이 느껴진다.

 

▶해가 나면 이곳도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다. 가게 일을 보는 사람, 삼삼오오 모여 잡담하는 사람, 종종걸음으로 제 갈 길을 가는 사람.

처마 밑 고드름이 밤새 추위를 말해준다.

 

▶날이 채 풀리지 않았던가 보다. 햇살은 환하지만 두 발은 연탄화덕에 바짝 다가가 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세탁소 간판이 정겹다.

 

▶까만 밤 환한 불빛 아래 원피스를 차려 입은 여성이 문 밖 행인을 향해 추파를 던진다. 이번엔 통할까.

행인이 이미 지나쳐 온 앞 가게 여성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늦은 밤 문을 연 야식 리어카 앞에서 호객이 한창이다.

저자는 “가난이 지겨워 무작정 상경해 돈을 벌려고 곳곳을 떠돌았지만, 결국 사창가까지 떠밀려 오게 되었다며

슬피 울던 정숙이의 고운 눈망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면서 “세월에 파묻혀 간,

그 시절 장면 장면들은 우리 사회사의 중요한 기록이고 증언이며 역사였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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