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인가게’ 관우선생 만나러 인사동에 갔는데, 김이하시인 사진전부터 들리느라 시간이 좀 지체되어 버렸다.




늦었지만 발길을 재촉했는데, ‘상광루’에 있어야 할 관우선생 일행이 인사동 거리에서 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배일동 명창과 권재일 한글학회장, 변작가 등 여러 명이 낙원동 ‘다리밑 집’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관우선생이 발굴한 단골집 ‘다리밑 집’은 이제 낙원동 명물이 되어버렸다.
다른 집은 손님이 없어도 포차나 다름없는 그 집은 항상 손님이 넘쳐난다.
그 날도 손님이 많아 길가에 자리 잡았는데, 바람은 또 얼마나 시원한지 코로나도 도망칠 것 같았다.




관우선생이 조제한 막맥에다 감자부침, 닭발 등의 일품 안주가 나왔다.
난, 통풍 때문에 한 번도 막맥은 마셔보지 못했지만, 맛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생맥주에 막걸리를 회석하는 막맥은 냉동시켜 차게 만든 생맥주 잔도 한 몫 한다.
결국은 생맥주와 막걸리의 회석 비율이 맛을 좌우하는데, 관우선생의 칵테일 비결은 아무도 따를 자 없다.




관우선생은 ‘통인가게’를 찾는 벗들을 대부분 이곳으로 안내한다.
처음엔 돈 많은 재벌이 코 구멍만 한 가게를 찾아 의아해 하지만,
막맥과 안주를 맛보고는 다들 역시를 연발하며 단골이 되어버린다.




그 날은 얼마 전에 일어났던 웃지 못 할 헤프닝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패션과 아트, 음악, 그림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울러 독특하고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팝아티스 까스텔 바작이 통인가게를 방문하여 이 집으로 안내했단다.
그 역시 막맥의 독특한 맛과 포차 같은 술집 분위기에 반해버린 것이다.
기분이 좋았던 그는 낙원상가 계단 벽에 멋진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 장소가 아니면 어울 릴 수 없는 대단한 작품이 탄생해 다들 인사동 명물하나 생겼다고 좋아했다는데,
다음 날 가보니 깨끗하게 지워지고 없더라는 것이다.




알아보니, 건물관리인이 고생스럽게 지웠다는데,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명작이 무지한 관리인의 실수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척 보면 똥인지 된장인지는 분별해야 할 것 아닌가?




작가도 그 때 기분이 아니면 다시 그릴 수 없는 그림이라며 아쉬워했다는데,
직무에 충실했다는 건물 관리인만 탓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권재일회장은 그 벽화를 지운 이야기 자체가 예술로 더 오래 회자될 수 있을 것이라며 위안했다.



이차를 가자는 관우선생 말에 다들 일어났다.
잘 가던 ‘유진식당’ 가는 줄 알았는데, 경운동 방향으로 이끌었다.
흥선대원군 집터 골목으로 한 참 끌고 가서는 허름한 식당으로 안내했는데,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싸고 맛있는 집만 찾아다닌다.




그런데, 이차로 간 음식점에서 아쉽게도 음식 맛을 보지 못했다.
전 날 밤 컴퓨터와 노느라 날밤을 깠는데, 취기가 오르니 졸음이 쏟아졌던 것이다.




배일동 명창이 부르는 ‘사철가’ 소리에 화들짝 잠을 깬 것이다.
관우선생이 술만 한 잔 들어가면, 이산 저산 찾는 노래가 아니던가.
폭포가 쏟아지는 것 같은 우람한 소리와 애간장 녹이는 절절한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인 것이다.




언제 이런 술집에서 대명창 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까스텔 바작의 벽화는 하루라도 버텼지만, 배명창 소리는 그 자리서 날아갔다.
어차피 예술이나 인생이나 사라지는 것은 매일반이니, 어디 한 번 멋지게 놀아 보자구나.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이러니
오날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 데 있나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네가 가고
여름이 오면 녹음방초
승화시라 옛부터 일러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한로상풍 요란해도
제 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단풍도 어떠헌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오면 낙목 한천 찬 바람에
백설만 펄펄 휘날려
은세계가 되고 보면
월백 설백 천지백하니
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

사진, 글 / 조문호




































해마다 과메기 철이 되면 ‘통인가게’ 상광루에서 킨포크 파티가 열린다.
‘통인가게’ 관우선생이 예술가들을 비롯한 가까운 지인들과 벌이는 잔치로,
이번에는 과메기와 함께 밍크 고래 고기 까지 등장했다.



통인가게김완규, 이계선씨 내외를 비롯하여 김정규, 문혜준, 배일동, 김기범,

김시율, 김정범, 라선영, 박영수, 송재엽, 양관모, 정호철, 주기윤, 조용희, 이성은,

오진원, 윤규석, 서용민, 이미애, 이세연씨 등 장안에 잘 생긴 미남 미녀가 다 모였다.

못 생긴 놈은 나뿐이더라.


 

이 날은 가슴 아프고 기쁜 두 가지 소식이 날아들었다.

첫째는 관우선생이 자식보다 아끼는 캔죠가 몇 일전 죽었다는 것이다.

쪽 팔리게 개 죽음에 울 수는 없지만,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오죽하면 손자가 오는 것까지 탐탁찮게 여길 정도였단다.

말로는 손자 녀석이 캔죠에게 물 릴 것이 걱정되었다지만,

내 생각에는 짓궂은 손자가 캔죠를 귀찮게 해서 그러지 싶다.


 

이제 좋아 할 곳이 마누라밖에 더 있겠는가?

그 날도 고래 고기 한 점을 마나님 입에 넣어주는, 평소 안하는 행동을 했다.

많은 사람들 보는 앞에서 알랑방귀 뀔 정도이니, 사정은 보나마나다.


 

그런데 캔죠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를 배일동 명창이 한 곡 뽑았는데,

춘향전 이별가에 나오는 갈까 보다였다.

고수 없는 소리지만, 그 소리가 얼마나 간절하고 비통한지 상광루를 울렸다.


 

갈까보다, 갈까보다, 임 따라 갈까보다. 천리라도 따라가고 만리라도 님 따라 갈까보다.“


    

두 번째 기쁜 소식은 송재엽씨 아들 송자호가 김환기 작품 우주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에 낙찰 받았다는 이야기다.

‘M컨템포라리 아트센터수석 큐레이터로 일하는 송자호는 이제 나이가 스물다섯이다.

한국의 대표적 추상화가 외국으로 나가는 게 옳지 않다고 판단해

지인들과 공동 응찰 했다지만, 애비가 뒷돈을 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작품 한 점에 132억이라는 말에 말문이 막히지만, 아무리 비싸도 마약 같은 돈 보다야 작품이 낫다.

단지 걱정되는 것은 돈에 작가들 영혼이 저당 잡힐까 두렵다.


 

두 번 째 배명창이 부른 노래는 단가 이산 저산이었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 하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한심하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가 있나


 

이산 저산은 관우선생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인데, 아마 늙어가는 우리네 심사를 말하는 것 같아 좋아할 거다.


 

누군가 중국 술 한 병을 선물로 가져왔는데, 이름 하여 貴州芳台酒라나.

생긴 꼴이 꼭 농약병같이 생겼으나, 술 맛은 여인네 입술처럼 감 칠 맛이더라.

그 술병을 열지 못해 몇 사람이 달라붙었는데, 알고 보니 마게를 빼는 것이 아니라 돌리는 것이었다.



갑자기 옛날 군바리 시절 노래가 왜 생각날까? 

돌리지마라 돌리지마라 내 앞에서 돌리지마라. 살살 돌리는 그 바람에 신세 조진 사나이다 

잡놈이라 잡스런 생각 밖에 못하니 널리 양지하시길...


 

포항에서 가져왔다는 과메기는 꼬들꼬들한 게 맛있게 보였으나,

동자동에서 급하게 오느라 틀니를 빼놓고 와버렸네.

씹는 것 보다 빠는 게 더 편해 술만 홀짝 홀짝 마셨더니, 알딸딸한 게 기분 죽이더라.



술 마시랴, 사진 찍으랴, 미녀 곁눈질하랴,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그만 술잔을 돌바닥에 떨어트려 버렸다.

신통하게도 술잔은 깨지지 않았으나, 막걸리가 튀어 옆에 있던 귀부인 밍크코트를 적셔버렸네. 에고~


 

서울역까지 오는 내내 귀부인께서 얼마나 욕을 하는지 귀가 간지럽더라.

"나무관세음보살~"

 

사진, / 조문호



































































 





'우리는 지금 다음세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진 워크숍이

지난 24일 오후1시부터 5시30분까지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지하2층에서 열렸다

미술감독 안애경씨가 서울시 도움으로 마련한 워크숍에는 배일동 명창과 사회학자 한도현씨,

식품영향학 이정희 박사, 명상연구가 이민형씨, 시사인 고재열기자 등 다양한 층의 전문가들과

관련인 30여명이 모여 우리가 기억하고 살아야 할 인간 도리와 자연 섭리를 논하는 자리였다.



일찍부터 약속한 일이 있어 한 시간 쯤 늦게 나갔는데,

전통문화에 탁견을 가진 배일동 명창의 강의는 이미 끝나 들을 수 없었다.

한도현씨는 마을공동목장을 만들어 슬기롭게 활용하는 제주 가시리 마을 주민들의 사례를 들었다.

조상들이 걸어 온 발자취를 살려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그들만의 헌법인 향약(鄕約)에 미래세대 권리를 명시했다더라.


    

다양한 사례나 문제점도 듣고, 명상연구가 이민형씨가 준비한 명상을 체험하는 시간도 가졌으나,

식물학자 이정희씨가 들려 준 식물공장이라는 화두는 많은 생각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의 비닐하우스나 양식어장도 식물공장이나 비슷한 제배방법이긴 하지만,

통제된 시설에서 빛과 온도 습도 등 모든 재배 조건을 인위로 조절하는 대규모 식물공장 시대가 도래 했다는 것이다.

계절과 장소의 제약 없이 필요한 양을 생산해 낼 수있는 식물공장은 관리와 운영 등 모든 설비가 자동화 된다고 했다.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는데다 병충해도 발생하지 않고,

심지어는 식물 속에 함유될 영양분 양까지 조절해가며 안정적인 식량공급이 가능하다니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이 글을 쓰는 중에 미국에 사는 유성호씨가 포스팅한 글이 페북에 올라왔다.

사막에 대규모 식량생산공장이 설치된다. 완전 무인공급, 자체동력과 자급 원료, 물조차도 보충하지 않는 최첨단의 식량공장이다. 36524시간 완전무공해의 최상의 벼와 밀, 옥수수등, 주요 식량자원이 무한정 공급된다. 그리고 원하는 국가에 그 공장은 설치될 것이다. 단 그 식량이 무상으로 분배될 경우에 한 한다. 기준의 대규모 농사 플랜트, 농약회사 등...돈되는 사업은 모두 해체되고 가족농은 각종 채소와 여타의 자급농작물을 재배한다. 농사는 돈벌이 보다는 취미생활의 범주에 들게 된다. 대규모의 생산과 소비, 무역은 사라지고, 지역중심의 경제가 부활한다. 대도시는 외면되고 모든 시민은 작은 도시에서 대부분의 부가적 농산물을 자체 생산, 소비한다. 가장 자연적인 최상의 땅에서 최상의 먹거리를 가꾸고 소비하게 된다. 기술이나 지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게걸스러움 탓에 모든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인류는 창조(?) 이후로 생산에 문제가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없어서 배고팠든 것이 아니라, 분배, 게걸스러움 탓에 배고플 수밖에 없었다 낮 꿈은 항상 즐겁다. ㅋㅋ 칼이 칼에 당하듯, 기술은 기술에 당한다. 그러니 왠만하면 지구를 너무 혹사시키지 말고 개발해야 한다. 빌 게이츠가 GMO에 투자하지 말고 이런 사막에서 식량 생산하는 사업에 투자하면 참 좋겠다. 어쨌거나 쌀국은 쌀도 많고 오일도 많고 돈도 많다. 그러니 그들에게 그런 걸 배우려 하면 안된다. 그런 게 없는 우리가 살면 지구가 산다. 그렇게 믿고 산다. 꿈 꾸는 직업이나 사업은 없을까?”


 

나만 몰랐지, 식물공장시대는 이미 눈 앞에 다가와 있었다..

과연 공장방식으로 식물을 생산하는 시스템이 다음 세대에 끼칠 해악은 없을까?

그렇다면 영세한 농민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그렇잖아도 기계처럼 살아가는 현실에 인간성 상실이 가장 큰 문제인데,

그런 문제를 더 부채질하는 것이 식물공장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다른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우리는 과연 미래 아이들이 이어갈 세상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자연환경을 가꾸고 보존하는 일이야 당연하지만, 잘못된 것은 모두 바꾸어야 한다.

정치는 물론 잘못된 법과 관습도 바꾸어야 하고, 제일 중요한 것은 인성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인간성회복에 있다.

교육이나 모든 사회시스템이 기계화 규격화 되어가는 지금의 구조로는

날이 갈수록 사람이 아니라 인간 로봇을 만드는 꼴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람은 없고 기계가 사는 세상을 진정 바라는가?

모든 것이 돈이라는 마약이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어제는 공원을 지나치다 눈이 번쩍 뜨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귀여운 어린이들이 올망졸망 텐트에 모여 있는데, 여인네 둘이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 온 사람답게 사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순진한 어린이들에게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선교를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에서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이

사이비목사 전광훈 처럼 종교를 정치화하는 것과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세뇌 시키는 거다.

우리국민은 오랜 세월 일본에 세뇌되어왔고 다음은 미국으로 부터 세뇌되지 않았던가.

어린이들이 자라며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하나님을 믿으면 될 것인데,

애들을 길들이는 못된 짓을 아무 죄책감 없이 하고 있더라.


 

우리에게 따뜻하고 다정했던 생활 방식이나 전통문화는 점점 박제화 되어가고 있다.

나무 한 그루와 물 한 모금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연을 거슬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 문제는 그 날 모인 몇몇 사람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이 진지하게 고민하며 하나 하나 바꾸어나가야 할 문제다.

거창하게 인류를 위해서 라기 보다, 우리의 자식이나 손자 등 직계를 위해서라도 등 돌릴 수 없는 일이다.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손녀 하랑이를 위해서라도 잘못된 세상을 바꾸는데 모든 것을 바칠 작정이다


 

 

사람 나고 돈 나지, 돈 나고 사람 난 것이 아니잖은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에 다같이 동참하자.

    


사진, / 조문호























 





인사동 ‘통인가게’에서 배일동 명창의 판소리 한마당이 열렸다.
춘향가에서는 춘향의 절절한 마음에 다 함께 아파했고,
심청가에서는 심봉사 재회의 기쁨에 다들 눈물 흘렸다.
가히 이 시대 최고의 가객이 펼치는 감동의 무대였다.





쩌렁쩌렁한 배일동 명창의 소리는 바위를 두드리며 쏟아지는 폭포수 같았고,

하늘을 가르는 우렛소리 같았다.





여지 것 여러 명창의 판소리를 들었지만, 이 같은 고음의 절창은 들어보지 못했다.

온몸으로 토해내는 절절한 소리에 다들 넋을 놓은 채. 소리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일 년에 두 차례씩 열리는 통인 판소리 감상회는 지난 5일 오후5시부터 한 시간 동안 통인가게’ 5층에서 열렸다.

시대를 뛰어넘는 '통인 판소리 감상회'는 30여 년 간 이어져 온 인사동 전통문화의 마지막 지존이다.

비록 공연장이 아닌 전시장에서 열리지만, 열릴 때마다 빈자리가 없다.

육성으로 듣기 아주 적절한 공간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지 못함이 늘 아쉬울 뿐이다



 

 


단가 이산 저산을 비롯하여 춘향가와 심청가를 부른 배일동명창의 판소리에 조상민 고수가 북채를 잡았다.

그리고 찬조 출연한 이진용씨 대금과 서영민씨 아쟁도 한 몫 했다.

흘러내리는 듯 떠는 소리와 꺾는 소리로 이어진 그 애절한 시나위가 마음이 후볐다.



 


배일동명창이 7년 동안 지리산 계곡에 초막 지어놓고 폭포수 아래서 수련 할 무렵,

막대 장단에 바위가 깨지며 득음한 소리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소리의 경지였다.

때로는 소름이 돋는 전율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는 소리 뿐 아니라 연기력도 출중하다.

극중 사연에 빠져들어 슬픔과 기쁨을 토해내며 몸짓하니, 관객 또한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심 봉사가 눈 뜨는 마지막 대목은 감격 자체다. 그런 기쁨의 눈물을 흘려 본지가 언제던가?



 


심봉사의 애끓는 통한의 절규는 가슴을 파고들었다.


죽고 없는 내 딸 심청이가 어디라고 살아오다니, 이게 웬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답답하여라 이놈의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지, 심봉사 감은 눈을 끔적끔적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떴구나,

이렇듯 천지조화로 심봉사가 눈을 뜨고 나니, 만좌 맹인이 모다 개평으로 눈을 뜨는디


이 얼마나 감격적이며 해학적인가.



 


판소리는 사설과 창, 무대행위로 이루어진 종합예술의 성격을 띤다.

서사적 구조의 사설은 문학 영역에 속하고, 창은 장단과 가락을 가지고 있어 음악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소리꾼의 몸짓이나 고수의 추임새 등은 연극적 성격을 가지는데, 이 세 가지가 어울려 감흥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소리를 잘 하는 대개의 명창들이 관객을 이해시키는 이론에 약하지만, 배일동 명창은 달랐다.

외국음악에 길들어 진 현대인들에게 우리음악의 우수성을 쉽게 이해시키는 탁월한 교수법을 지니고 있었다.

막간을 이용하여 그의 강의를 들었는데, 한 박자나 두박자로 되는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삼박자로 진행되는 우리소리의 독창성을 자신의 소리로 이해시켰다.



 


여태껏 선호도에서 국악이 서양음악에 밀리는 것은 교육의 부재였다. 뭐든지 알아야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인다.

지금이야 판소리의 독창성이나 음악성을 높이 사지만, 아직 대중성은 한 참 멀었다.

그래서 대중을 상대로 판소리의 제 맛을 깨우치게 해 주는 배일동씨 같은 분이 절실한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 통인가게주인 관우선생으로 부터 이 산 저 산재청이 있었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가 있느냐?“



 


관우선생이 이 단가를 유별나게 찾는 것은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한 모양이다.

 

그리고 통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해학의 풍경전에 참여한 작가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상구, 김희진, 민경아, 박재갑, 이언정, 정승원, 홍승혜씨 등 소개한 중견작가 가운데 이력이 독특한 분이 계셨는데,

국립암센터 명예교수로 재임 중인 박재갑씨였다. 의술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판화의 수준도 뛰어났다.

안동 하회별신굿 탈놀이 중 파계승마당을 선보인 이 전시는 721일까지 이어진다.



 


통인 판소리 한마당이 끝난 후, ‘통인가게관우선생의 집무실이 있는 상광루에서 막걸리 파티가 벌어졌다.

인사모회원으로는 통인가게 주인 김완규씨, 박일환 변호사, 화가 김근중씨가 자리했고,

이계선 통인 관장을 비롯하여 배일동 명창, 조상민 고수, 박재갑, 김규진, 황태인, 민호기, 박영수, 최유정씨 등

이름도 잘 모르는 많은 분들이 자리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차는 다리 ’에서 빨았는데, 사진이 많아 내일 소개하겠다.

 

사진, / 조문호




















































































 






2019년 통인화랑의 공예주간 ‘명장’ 기획전이 지난 5월17일 오후5시에 개막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통인화랑'에서 주관하는 ‘명장’전에는

이천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전통도자의 대표적 도예가 14명의 명작을 선보이고 있다.



자연에서 얻은 상상력을 전통기법의 미감으로 재해석한 김대용씨의 ‘분청 수박지문매병’,



선조들의 여유가 엿보이는 함을 도자기로 형상화한 김대훈씨의 ‘무제’,



화려하지만 넘치지 않는 위엄으로 현대청자의 정수를 보여주는 김세용씨의 ‘청자 도토리문 이중 투각병’,



투각기법에 뛰어난 장인 김영수씨가 새롭게 선보인 ‘백자 진사 감무늬 호’,



분청기법을 이용해 화화적 미감을 드러낸 박래현씨의 ‘분청 산문 호’,



한국적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미감이 돋보이는 김판기씨의 ‘청자 빗살문양 발’,



전통방식으로 완벽한 미감을 드러낸 서광수씨의 ‘청화백자 철화진사 매화문 호’,



고려청자의 비색을 재현한 유광열씨의 ‘청자 상감복사문 매병’,



탁월한 기량의 유연함을 보여주는 유기정씨의 ‘청화백자 까치호랑이문 준’,



느린 움직임의 질서와 소박함이 깃들어 있는 유용철씨의 ‘분청 달항아리’,



분청의 대가 이규탁씨의 섬세함과 단아함이 돋보이는 ‘백자 요변 달항아리’,



이중투각기법에 의한 고도의 정밀성을 보여준 이창수씨의 ‘청자 이중투각 잉어문 매병’,



매죽문 민화의 아름다움을 백자에 수 놓은 이향구씨의 ‘청화백자 매죽문 호’,



청자만 바라보며 한 길만 걸어 온 최인규씨의 ‘청자 상감 화문 유개호‘ 등 수작들만 모았다.



'통인화랑'에서 5월 26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를 놓치지 마시길...




개막식장에 좀 늦게 갔더니, 사람이 많아 발 디딜 틈 없었다.

전시된 작품을 돌아 볼 수도 없었지만, 카메라를 들이대니 사람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비집어 살펴보니, 한국공예진흥원장 최봉현씨가 인사를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통인화랑' 이계선관장이 서 있었다.

한 쪽에는 '국민문화신탁재단' 김종규 이사장과 김완규 통인 회장의 모습도 보였다.



옆줄에는 이천의 내로라하는 사기꾼들이 다 모여 있었다.

틈틈이 반가운 얼굴들도 보였다.

명창 배일동씨와 건축가 김동주씨, ‘동원건설의 송재엽씨,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씨, 김곤선 관장도 보였다.


 

비집고 다니며 전시장을 돌아보았는데, 마치 보물찾기하는 것 같았다.

청자 백자 미인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는데, 얼마나 예쁘고 우아한지 미칠 것 같았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분청을 만났을 때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달 항아리가 아니라 달덩이 같았다.

부드러운 결을 만져보고도 싶고, 끌어안아 딩굴고 싶었다.



유영철씨의 분청에 번지는 은은한 푸른빛과 반점도 매혹적이지만,

이규탁씨의 수줍은 여인 내 볼같이 불그스레 번지는 미감은 애간장을 녹였다.

그러나 어쩌랴! 돈도 없지만 모셔 둘 자리도 없으니, 보고도 못 먹는 장떡에 불과했다.

남의 여인 내 훔쳐보며 군침 흘리는 격이었다.


 

통인 옥상 상광루에 차려놓은 술상으로 갔더니, 그 곳도 인산인해였다.

술 취해 밑으로 떨어지면 묵사발 될 것 같아, 조심스레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준비된 술은 전라도에서 공수한 도수 높은 막걸리와 와인이 있었으나, 피 같은 와인만 쫄쫄 빨았다.

안주인께선 ‘최대감집에서 사기꾼들 모시고 저녁 대접한다며 그리로 오라지만,

다리 밑에서 김동주씨와 빨기로 했으니 어쩌랴!


 

품을 수 없는 미색에 취했는지, 술에 취했는지, 계단을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젠장! 그렇게 봄날은 가나보더라.

 

사진, / 조문호



































































      

배일동 명창, 판소리 강의도 고수


2018년 12월 03일 (월) 17:17:47

조문호 기자/사진가 press@sctofay.co.kr


우리 것이 밀려나는 요즘 인사동에 '통인 판소리 한마당'이 불씨 같은 역할을 해 준다. 인사동 ‘통인가게’에서 정기적으로 마련하는 판소리 감상회는 봄 가을 두 차례 열린다.


지난 30일 오후5시부터 인사동 ‘통인옥션갤러리’에서 열렸는데, 자리가 비좁아 누구나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이 날도 120여명이 가득 메워, 우리 소리의 진 맛에 흠뻑 빠지는 시간을 가졌다.



▲배일동 명창


지난 봄에 이어 세 번째 소리판을 연 배일동 명창은 이 시대가 낳은 걸출한 소리꾼이다. 그의 판소리는 들을수록 심금을 울리는데, 소리꾼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득음의 경지야 말할 것도 없고, 청중의 감정을 끌어내는 흡인력에 혀를 두를 지경이다. 이 메마른 세상에 어디서 이처럼 울고 웃을 수 있겠는가?

단가 “이산 저산”을 비롯하여 춘향가 중의 ‘사랑가’, 쑥대머리, ‘어사와 춘향모친 상봉대목’, ’심청가 중의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차례대로 불렀는데, 춘향의 ‘사랑가’는 애간장을 다 녹였다.

“사랑사랑 내 사랑아 어허둥둥 내 사랑아~



▲배일동 명창이 절절한 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저리가거라 가는 태를 보자. 이만큼 오느라 오는 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얼마나 좋았으면 저리 간 들어지게 놀았겠는가? 사또 수청 들기를 거부하고 옥중에서 신세 한탄하는 ‘쑥대머리’에서는 눈물이 절로 났다.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 애끓는 절절함에 가슴이 아렸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여태껏 판소리를 듣고 웃은 적은 많지만, 눈물 흘린 적은 처음이었다. 그게 바로 소리 속으로 끌어당겨 일심동체가 되도록 만드는 배일동 명창의 매력이다. 입으로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부르는 소리라 이심전심이 되는 것이다.



▲통인 판소리 한마당


어사와 춘향모친 상봉대목’에서는 춘향 모친의 해학이 절정이다.

거지행색을 보고 모른다고 푸대접하던 장모가 사위 다그침에 급변하여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땅에서 불끈 솟았나. 하운이 다기봉터니 구름 속에 쌓여왔나, 풍설이 쇄란터니 바람결에 날려왔나. 이 사람아 뉘 집이라고 아니 들어오고 문밖에서 주저 하는가"


또 한 가지 귀가 번쩍 뜨이는 대목은 ‘심봉사 눈뜨는 대목’이다. 바로 기쁨의 눈물을 맛보게 한 것이다.

“죽고 없는 내 딸 심청이가 어디라고 살아오다니, 이게 웬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답답하여라 이놈의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지, 심봉사 감은 눈을 끔적끔적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떴구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장님이 딸을 한번도 보지 못했으니, 딸을 알아볼까 걱정되었다.


“이렇듯 천지조화로 심봉사가 눈을 뜨고 나니, 만좌 맹인이 모다 개평으로 눈을 뜨는디”

심봉사의 절절한 회한에 눈물 흘리게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뜨는 대목에서 기쁨으로 몰아치다 마지막 대목에서 그만 웃음이 터지게 만든 것이다.

바로 이것이 판소리 맛이다.


구절구절마다 온갖 내용이 다 들어있지만, 소리꾼이 그 감정에 흠뻑 빠지지 못한다면 어찌 청중에게 전해지겠는가?



▲고수 김동원씨


이 날 고수로는 배일동 명창의 삼십년 친구인 김동원 교수가 북채를 잡았는데, 너무 조가 잘 맞았다, 옛날부터 ‘1고수, 2명창, 3청중’이란 말이 있듯이, 고수가 소리꾼의 온갖 감정을 다 끌어내는 지휘자고 바람잡이가 아니던가?

그리고 배일동 명창이 들려 준 판소리의 이해에 다들 귀가 솔깃했다.

한 박자나 두박자로 되는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삼박자로 진행되는 우리소리의 독창성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소리로 이해도를 높였다. 뭐든지 알아야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인다. 우리가 배일동 명창의 소리에 빠져 웃고 울었던 비결로, 소리뿐 아니라 교수법도 탁월했다.



▲배일동명창과 고수 김동원씨.


여태껏 선호도에서 국악이 서양음악에 밀리는 것은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판소리의 독창성이나 음악성을 높이 사지만, 아직 대중성은 한 참 멀었다. 그래서 대중을 상대로 판소리의 제 맛을 깨우치게 해 주는 배일동씨 같은 분이 필요한 것이다. 악보가 필요 없는 판소리가 외국의 오페라 보다 한 수 위지만, 교육이 따르지 못해 밀린 것이다.


나 역시 어릴 때, 잔칫날 소리꾼 불러 벌이는 소리판에 별 흥미 없었다.

판소리 가사야 조금 알았지만, 시조는 뭐가 뭔지도 몰랐다. '영감들 무슨 귀신 싸나락 까먹는 소리 할까?' 생각했다. 가사를 모른다면 잘 모르는 외국노래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배일동씨가 판소리 이해를 돕고 있다.


그러다 뒤늦게 음악을 좋아하며 LP판을 사 모아 음악실을 차린 것이 판소리 가치를 알아 본 계기다. 락이던 재즈든 가리지 않을 때였으나, 점차 우리 음악의 매력에 빠져든 것이다. 결국 부산 남포동에 ‘한마당’이란 국악전문 주막까지 차렸는데, 생각 외로 손님이 밀려들었다. 동아대 학생들이 손님이었지만, 자글거리는 레코드에서 나오는 임방울선생 ‘쑥대머리’ 맛을 제대로 아는 손님이 얼마나 되었겠는가. 단지 우리 소리고 우리의 정서라는 매력이 손님에 손님을 끌어 들인 것일 게다.

그런데, 뽕짝 가수를 모시는 밤무대는 지천에 늘렸는데, 명창들 모시는 밤무대는 왜 없을까? 다 우리 것을 우습 게 보고 외국 문명에 놀아난 결과다.



▲통인가게 김완규선생이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통인 판소리 한마당이 끝난 후, 통인 관우 김완규 선생이 계신 ‘상광루’에서 막걸리 파티가 열렸다. 그 많은 술이 바닥나 낙원동 아구찜 식당에서 포장마차로 전전했는데, 그 날 관우선생께서 술이 취해 ‘이산 저산’을 쉼 없이 불렀다. 그 단가에 나오는 내용이 마음에 박혔을까?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가 있느냐?“

 


  





-배일동 명창의 판소리 강의도 고수-





우리 것이 밀려나는 요즘의 인사동에 '통인 판소리 한마당'이 불씨 같은 역할을 해 준다.

인사동 통인가게에서 정기적으로 마련하는 판소리 감상회는 봄 가을 두 차례 열린다.

지난 30일 오후5시부터 통인가게 통인옥션갤러리에서 열렸는데, 자리가 좁아 누구나 들을 수 없어 아쉽다.

이 날도 120여명이 가득 메워, 우리 소리의 진맛에 흠뻑 빠지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봄에 이어 세 번째 소리판을 연 배일동 명창은 이 시대가 낳은 걸출한 소리꾼이다.

그의 판소리는 들을수록 심금을 울리는데, 소리꾼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득음의 경지야 말할 것도 없고, 청중의 감정을 끌어내는 흡인력에 혀를 두를 지경이다.

이 메마른 세상에 어디서 이처럼 울고 웃을 수 있겠는가?

 

단가 이산 저산을 비롯하여 춘향가 중의 사랑가’, 쑥대머리, ‘어사와 춘향모친 상봉대목’,

심청가 중의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차례대로 불렀는데, 춘향의 사랑가는 애간장을 다 녹였다.



 


사랑사랑 내 사랑아 어허둥둥 내 사랑아~

저리가거라 가는 태를 보자. 이만큼 오느라 오는 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얼마나 좋았으면 저리 간 들어지게 놀았겠는가?

수청 들기를 거부하고 옥중에서 신세 한탄하는 쑥대머리에서는 눈물이 절로 났다.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애끓는 절절함에 가슴이 아렸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여지 것 판소리 듣고 웃은 적은 많지만, 눈물 흘린 적은 처음이었다.

그게 바로 소리 속으로 끌어당겨 일심동체가 되도록 만드는 배일동 명창의 매력이다.

입으로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부르는 소리라 이심전심이 되는 것이다.



 


어사와 춘향모친 상봉대목에서는 춘향 모친의 해학이 절정이다.

거지행색을 보고 모른다고 푸대접하던 장모가 사위 다그침에 급변하여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땅에서 불끈 솟았나. 하운이 다기봉터니 구름 속에 쌓여왔나, 풍설이 쇄란터니 바람결에 날려왔나.

이 사람아 뉘 집이라고 아니 들어오고 문밖에서 주저 하는가"



 


또 한 가지 귀가 번쩍 뜨이는 대목은 심봉사 눈뜨는 대목이다. 바로 기쁨의 눈물을 맛보게 한 것이다.

죽고 없는 내 딸 심청, 여기가 어디라고 살아오다니 웬말이냐? 내 딸이면 어디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답답하여라 이놈의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지, 심봉사 감은 눈을 끔적끔적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떴구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장님이 딸을 한번도 보지 못했으니, 딸을 알아볼까 걱정되었다.


이렇듯 천지조화로 심봉사가 눈을 뜨고 나니, 만좌 맹인이 모다 개평으로 눈을 뜨는디

 

심봉사의 절절한 회한에 눈물 흘리게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뜨는 대목에서 기쁨으로 몰아치다

마지막 대목에서 그만 웃음이 터지게 만든 것이다.


    

 



바로 이것이 판소리 맛이다.

구절구절마다 온갖 내용이 다 들어있지만, 소리꾼이 그 감정에 흠뻑 빠지지 못한다면 어찌 청중에게 전해지겠는가?

 

이 날 고수로는 배일동 명창의 삼십년 친구인 김동원 교수가 북채를 잡았는데, 너무 조가 잘 맞았다,

옛날부터 ‘1고수, 2명창, 3청중이란 말이 있듯이, 고수가 소리꾼의 온갖 감정을 다 끌어내는 지휘자고 바람잡이가 아니던가?



 


그리고 배일동 명창이 들려 준 판소리의 이해에 다들 귀가 솔깃했다.

한 박자나 두박자로 되는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삼박자로 진행되는 우리소리의 독창성을 이야기하며

직접 소리로 이해도를 높였다. 뭐든지 알아야 귀에 듣기고 눈에 보인다.

우리가 배일동 명창의 소리에 빠져 웃고 울었던 비결로, 소리뿐 아니라 교수법도 탁월했다.



 


여지 것 선호도에서 국악이 서양음악에 밀리는 것은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판소리의 독창성이나 음악성을 높이 사지만, 아직 대중성은 한 참 멀었다.

그래서 대중을 상대로 판소리의 제 맛을 깨우치게 해 주는 배일동씨 같은 분이 필요한 것이다.



 


악보가 필요 없는 판소리가 외국의 오페라 보다 한 수 위지만, 교육이 따르지 못해 밀린 것이다.

나 역시 어릴 때, 잔칫날 소리꾼 불러 벌이는 소라판에 별 흥미 없었다.

판소리 가사야 조금 알았지만, 시조는 뭐가 뭔지도 몰랐다. '영감들 무슨 귀신 싸나락 까먹는 소리 할까?' 생각했다.

가사를 모른다면 잘 모르는 외국노래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러다 뒤늦게 음악을 좋아하며 LP판을 사 모아 음악실을 차린 것이 판소리 가치를 알아 본 계기다.

락이던 재즈든 가리지 않을 때였으나, 점차 우리 음악의 매력에 빠져든 것이다.

결국 부산 남포동에 한마당이란 국악전문 주막까지 차렸는데, 생각 외로 손님이 밀려들었다.

동아대 학생들이 주 고객이었지만, 사실 자글거리는 레코드에서 나오는 임방울선생 쑥대머리맛을

제대로 아는 손님이 얼마나 되었겠는가.

단지 우리 소리고 우리의 정서라는 매력이 손님에 손님을 끌어 들인 것일 게다.



 


그런데, 뽕짝 가수를 모시는 밤무대는 지천에 늘렸는데, 명창들 모시는 밤무대는 왜 없을까?

다 우리 것을 우습 게 보고 외국 문명에 놀아난 결과다.



 


통인 판소리 한마당이 끝난 후, 통인 관우선생 계신 상광루에서 막걸리 파티가 열렸다.

그 많은 술이 바닥나 낙원동 아구찜 식당에서 포장마차로 전전했는데,

그 날 관우선생께서 술이 취해 이산 저산을 쉼 없이 불렀다.

그 단가에 나오는 내용이 마음에 박혔을까?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가 있느냐?“

 

사진, / 조문호


























































지난 17일 오후5시 '통인가게'에서 배일동 명창의 '심청전' 판소리가 있었다.
'통인'에서 마련하는 '나이트 오페라콘서트'에 배일동 명창의 판소리가 초대되었다는
이야기는 진즉에 들었지만, 하필이면 그 날 다른 약속이 둘이나 겹쳤다.

제일 중요한 것이 내가 사는 동자동 일이라 피할 수가 없었지만,
인사동 ‘유목민’에서는 민영시인의 시집출판기념회도 있다고 했다.
동자동에서 안산시화호로 떠나는 ‘아름다운 동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공연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나버렸다.






판소리 감상은 못하더라도, 사진이나 찍을 심산으로 공연장에 올라갔다.
5층에 다 달아 에리베이트 문이 열리니, 하늘을 찌르는 소리가 압도했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손님들도 넋 나간 듯 소리에 빠져 있었다.

사진을 찍어야 했으나, 비집고 들어 갈 틈조차 없었다.
판 깨는 무례지만, 공연장을 가로 질러 무대구석에 쭈그려 앉을 수밖에 없었다.
사진만 찍고 나오려 했으나, 나도 모르게 소리에 빨려 든 것이다.






‘심청가’를 불렀는데, 심봉사의 애끓는 통한의 절규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쩌렁쩌렁한 그의 소리는 바위를 두드리며 쏟아져 내리는 폭포 같았고,
하늘을 가르는 우렛소리 같았다.
온몸으로 토해내는 절절한 소리에, 마치 내가 심봉사가 된 듯 가슴이 미어졌다.


가히 이 시대 최고의 명창이었다.
고수 김동원씨;의 기운 넘치는 북과 추임새 또한 신명을 북돋았다.

 





배일동 명창의 전설적인 이야기는 다들 알 것으로 여긴다.
순천 선암사와 지리산 계곡에 초막 짓고 무려 7년간 폭포수에서 수련 했고,
막대 장단에 바위가 깨지며 득음 했다는 사실 말이다.
잘나가는 일터 팽개치고, 온 몸을 소리에 내 던져 이룬 판소리계의 야인이다.






좌우지간, 민영선생 출판기념회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겨야 했다.
잠깐의 맛베기 치고는 너무 강하게 와 닿은 소리라,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모처럼 인사동을 절절한 소리로 물들인 밤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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