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연휴가 이어진 7일의 동자동 '새꿈 공원'은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한강교회’에서 나온 빵 나눔 봉사자들이 일을 마치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지만,

대개의 쪽방사람들은 빵보다 밥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연휴가 이어져, 밥 배급 차는 물론 ‘식도락’까지 문을 닫아 끼니를 해결하지 못한 분들이 많았다.

 

김원호씨와 유정희씨가 단골식당도 문 닫았다며 투덜대어, 가끔 들린 적이 있던 된장집으로 안내했다.

백반 3인분과 막걸리 두병으로 허기를 메우고 있는데, ‘식도락’을 돕던 난순 여사도 식사하러 오셨더라.

모처럼 함께하는 식사라, 꼬불쳐 둔 비상금으로 밥 한 끼 대접했다.

 

식당에 둘러앉았으나, 다들 말이 없었다.

다들 먹고 싶어 먹는 것이 아니라, 살기위해 먹는 것 같았다.

밥 보다는 막걸리가 더 술술 잘 넘어갔다.

 

밥 얻어 먹기가 힘들지만, 어쩌겠는가?

명절날이라 차례도 올리고 가족들과 지내야 하니, 누가 오갈 때 없는 이를 도울 수가 있겠는가?

원죄가 뭔지는 모르지만, 막장까지 내 몰린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추석명절 날에 집에도 가지 않고 공동차례상을 차리며, 도시락을 나누어 준

“서울역쪽방상담소‘ 직원들이 참 고마운 것이다.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반가운 사람들이 모여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따라 공원에서 술 마시는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식당에서 마신 술이 부족하여, 내가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가 공원 한 구석에다 자리를 깔아놓았는데, 이기영씨가 막걸리 값 모우기 화투 한판 치자는 것이다.

난, 칠 줄을 몰라 남은 천 원짜리 석장을 밑천으로, 이원식이 한테 달라 붙어, 따기도 잃기도 했다.

시간 보내기는 좋았지만, 술 한 잔 얻어마시기는 힘들었다.

 

유행가 가사 한 소절이 생각나 바꾸어 불러본다.

“세상을 원망하랴~ 네 팔자를 원망하랴~
한 푼 없는 독거들아, 행복하게 살아다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문화투데이] 2017년 10월 07일 (토) 00:06:29 정영신 기자 press@sctoday.co.kr 


지난 어버이날 이어 두 번째 빨랫줄 전시 추석날에도 열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명절날이면 모처럼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온 집안이 시끌벅적 웃음소리가 나지만 명절이지만 더 외롭고 쓸쓸히 보내는 이웃들이 있다.

다행히 이번 추석은 서울시가 쪽방주민에게 고향방문을 지원해 일부는 고향을 찾아갔지만, 쪽방촌에 남아 있는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공원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 동자동을 기록하고 있는 조문호 사진가 Ⓒ 정영신



다큐멘터리 사진가 조문호씨가 오갈 데 없는 쪽방 사람들을 위한 두 번째 위안의 자리인 '동자동 사람들' 사진 나눔전을 지난 4일 동자동 새빛공원에서 열었다.

지난 5월 어버이날에 처음 시도한 빨랫줄전시는 주민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주었는데, 이날도 그들에게 즐거운 자리를 만들어준 것이다.



    

▲ 빨래줄 전시를 구경하는 주민의 모습 Ⓒ 정영신



동자동 사람들은 빨래줄에 걸린 사진을 보면서 “어! 여기 용성이 사진 있네, 라면 먹고 있잖아”, “준기 썬그라스 죽이는데!” 등 사진을 들여다보며 마치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듯 이야기꽃이 피우기 시작했다.

또한 동자동 ‘나눔의 집’에는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마련한 추석한가위 합동제례가 열리고 있었는데, 한 사람 두 사람 차례대로 들려 술을 올리며 조상에게 큰 절을 올렸다. 고향을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조상을 찾아뵙지 못한 불효 때문인지 침울해 보였다.

    

▲ 추석한가위 합동제례에 함께한 주민이 절을 하고 있다 Ⓒ정영신



쪽방은 도시 빈민 주거형태로 1997년 IMF 이후 저임금 단순일용직 도시빈민이 발생하면서 노숙의 위기에 처한 빈곤 계층의 마지막 숙소다. 쪽방하나에 대락 15만원에서 23만원에 이르지만 돈만 있으면 곧바로 입주가 가능한데, 서울에만 다섯 군데의 쪽방촌이 있다.

    

▲ 도시락을 받아와 딸과 밥을 먹는 엄마의 모습 Ⓒ정영신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점심시간에 맞춰 주민들에게 도시락과 붉은 사과 한 알씩 나눠 주기도 했다.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 뒤에는 도시락과 사과를 안고 흐뭇해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쪽방에서 일년남짓 살았다는 김모씨(65)는 처음에는 먹는 것 때문에 줄서는게 부끄러워 굶는 쪽을 택했다가 옆방의 동생이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나선 후로는 일상처럼 편해졌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세번까지는 부끄럽던게 나중에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더라”고 했다.



    

▲ 점심시간에 맞추어 도시락을 받기위해 줄을 서고 있다 Ⓒ정영신



한쪽에서 한 여인이 도시락을 펼쳐 딸아이 입에 밥을 넣어주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빨래줄 사진전에서 이변이 생겼다. 작은 남자 한 분이 나타나 전시된 곳을 돌아다니며 사진 몇 장을 골라 '도끼로 목을 친다'는 등 끔찍한 욕설을 입에 담아가며 박박 찢고 있었다.

그런데 그 현장을 지켜보던 김원호 어르신이 화를 내며 사진을 찢는 사람더러 나무라기도 했으나 조문호 사진가는 제지시키기는 커녕 빙그레 웃고 있었다.



    

▲ 본인의 사진을 들고 좋아하는 김용만씨 Ⓒ 정영신


사진가 조문호는 쪽방사람이다. 일년 전부터 동자동쪽방촌으로 이주에 살면서 사진작업을 해오고 있다. 일년이라는 시간을 그들과 함께 했는데도 불구하고 초상권을 빌미로 시비 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한참 소동을 부리던 사람이 떠나자, 또 다른 사진 주인공들이 나타나 싱글벙글 자기 사진을 골라갔다. 동자동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조문호 사진가에게 앞으로 작업에 대해 물어보았다.



    

▲ 본인의 사진을 들고 있는 이기영씨 Ⓒ 정영신


그는 “일년으로 동자동기록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솔직히 사진쟁이로서 욕심도 생겼다. 빈민들이 사는 쪽방촌이 서울에만 5군데라고 하는데 동자동을 거점으로 다섯 군데 다 기록하고 싶다. 한 지역을 2년만 잡아도 10년이란 세월이 걸린다. 그때까지 살아있을지 모르지만 쪽방촌을 기록하고 싶다. 또한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빨래줄 전시도 매년 어버이날과 추석날로 정해, 앞으로도 전시를 계속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 쪽방에 들어앉아 책만 본다는 조장섭씨 Ⓒ 정영신



쪽방촌 사람들은 술과 담배를 친구삼아 살아간다. 제아무리 멀쩡한 사람도 쪽방에서 일년만 지내면 반쯤은 미친 상태가 된다고 한다. 인생의 마지막 정거장이 쪽방촌이라며 외로움을 이기지못해 자살도 시도하고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차별없이 존중받아야한다.



추석 전 날부터 정신없이 바빴다.


빨래줄에 걸 사진 값이 없어 허둥대다 전시를 하루 남긴, 밤 늦게서야 해결책을 찾은 것이다.

주인도 없는 남의 작업실에 들어가 자정까지 사진 뽑아, 자르고 정리하느라 새벽녘에야 간신히 잠들었다.

잠깐 눈 좀 붙인다는 게, 일어나보니 오전 아홉시였다.

부랴부랴 공원으로 달려가 빨래 줄에 사진을 걸었는데, 마침 강 호씨가 공원에 나와 있어 많이 도와주었다.

오전10시경 준비를 끝낼 수 있었는데, 아슬아슬하게 시간 맞추어 전시 할 수 있었다.






그 때야 동자동사람들이 새빛 공원으로 하나 둘 모여들어 빨래줄에 걸린 사진들을 돌아보았다.

“여기 용성이 사진 있네, 라면 먹고 있잖아”, “준기 썬그라스 죽이는데!”라는 등 사진을 들여다보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또한 동자동 ‘나눔의 집’에서는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마련한 추석한가위 합동제례가 열리고 있었는데,

한 사람 두 사람 차례대로 술을 올리며 조상님께 큰 절을 올렸다.

다들 고향을 찾지 못하는 불효막심에 용서를 비는 듯, 침울한 표정이었다.






오전 11시경에는 주민들에게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도시락과 붉은 사과 한 알씩을 나누어 주었다.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도 그렇지만, 받아들고는 공원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식사하는 모습에서 연민의 정이 일었다.





그런데 빨래줄 사진전에 이변이 생겼다.


‘동자동 사랑방’의 강동근 사업이사가 돌아다니며 5,18묘역 참배사진을 골라 찢고 있었다.

그것도 도끼로 내 목을 친다는 등, 끔찍한 욕설까지 퍼 붇는데, 귀가 막혔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원호씨가 강씨더러 죽일 놈이라며 고함을 질러댔다.

평소에 말 한마디 없던 분께서 어지간히도 화가 났던 모양이다.


강씨가 찍힌 사진은 지난번 광주 5.18묘지에서 찍은 공식적인 사진들이다.

강씨는 개인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동자동 사랑방' 임원으로 갔던 것이다.

그런자가 막말을 해대며, 허락도 받지않고 남의 사진을 손괴한 것은 초상권 침해가 아나라 범죄행위다.

이건 분명 개인적 앙심에 의해서거나, 아니면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헤프닝일 것이다.

.

그 사진은 개인 기념사진이 아니라, 주민들의 시대적 역사성도 지닌다.

구린데가 있어 자기의 모습을 숨겨야 한다면 임원직을 맡아서는 안되고,

그런 공적인 자리에는 나오지 말아야 했는데, 찍을 때 포즈는 왜 취했는가?




당장 공개적인 해명과 사과를 촉구하며, 그런 몰상식한 사람이 임원이란 자체가 조합원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다.

그 자리에는 동자동 식구들만 있었던 자리가 아니라, 신문 기자들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찢은 일곱장의 518묘역 참배사진은 단체사진이라 먼저 본 사람이 가져가는 것이다.

집에 가져가 찢던 말 던 상관할 바 아니지만, 전시사진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찢는 건, 인간으로 할 짓이 아니다.

다른 사람까지 못 가져가게 방해하는 꼴이니, 그런 이기주의가 어디 있나.


저런 자가 어떻게 '동자동사랑방'의 사업이사가 되었는지도 궁금하지만, 공동체 자체의 존립이 의심스럽다.






그자가 떠나고 나니 김용만, 이기영, 송범섭씨 등 또 다른 사진주인공들이 나타나 싱글벙글 자기 사진을 골라갔다.

뒤늦게 나타난 정용성씨는 자기 사진이 없어졌다며 울상이었고. 정재헌씨도 사진이 없어졌다며 찾고 있었다.

용성이네 가족과 정재헌씨 사진은 그들만 찍힌 사진들이라 누가 전해주려 챙겨 두었을 것이라며 달랬다.


마침 취재를 나왔던 정영신씨가 이제 일 년 동안 동자동을 기록했으니, 끝낼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사진을 훤히 아는 자가 이 무슨 소린가? 이제까지 주민들을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시작일 뿐인데...






솔직히 사진쟁이로서의 욕심이 없을 수는 없다.

빈민들이 사는 쪽방 촌이 동자동 뿐만 아니니, 서울의 중점 관리지역 다섯 곳이라도 다 돌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한 곳에 2년씩만 잡아도 10년이나 걸리는데, 그 때까지 내가 살 수 있겠나?

그 동안 정들었던 사람이 눈에 밟히기도 하고...






추석 하루전인 3일은 ‘동자동사랑방’에서 마련한 합동제례에 음식을 나누며 노래자랑까지 하였으나,

사진 때문에 허둥지둥 돌아다니느라, 가 보지도 못했다.





찍힌 사람들과의 약속이 추석이기도 하지만 사진 뽑을 돈이 없어 미루다, 임박한 3일에서야 간신히 준비를 한 것이다.

다행스럽게 정선아라리촌의 ‘문학콘서트’에서 만난 김여옥시인이 오래 전부터 주려고 꼬불쳐 두었다며 10만원을 주었고,

서초동에서 밥 집하는 누님이 과일이라도 차례상에 올리라며 보내 준 돈으로 사진 만들 작정을 한 것이다.


그러한 급박한 시기에 정영신씨 프린트기에 이상이 생겨버렸다. 분명 잉크가 남았는데, 없다며 작동이 되지 않았다.

연휴라 수리기사를 부를 수도 없지만, 새 잉크를 구입할 가게도 없었다.

다행히 사진하는 후배 하재은씨에게 부탁하여 주인도 없는 작업실에 처 들어가,

자정이 가깝도록 프린트 해, 어렵사리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재은씨에게 재료비라도 보내드리려고 연락했더니, 황송하게도 받지 않겠다는 거다.

전시협찬으로 고맙게 받아들이고, 이 돈은 내년 어버이날 사진제작비로 쓰기위해 묻어두었다.





사실, 이번 빨래줄 사진 나눔전도 ‘동자동사랑방’에서 행사를 치루는 3일에 할 것인가?

아니면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치루는 4일에 할 것인가? 망설였으나

일이 풀리지 않아 떠 밀려 4일에 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더 잘된 것 같았다.


전 날은 박원순 시장을 비롯하여 기자들까지 달라붙었으니, 안 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보여주기 위한 성격이 짙어 부담스러울 뿐더러, 추석명절이 아닌, 하루 당겨 합동제례를 치루는 것도 마땅찮았다.

추석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진짜 오 갈 때 없는 빈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 년에 봄 가을 두 번씩, 어버이날과 추석마다 사진을 돌려 줄 생각이다.

때로는 사진 값 조달에 어려움도 있겠지만, 좋아하는 이들의 흐뭇한 표정에서 보람도 느낀다.


특히, 그 날은 사진 찍는다고 멱살까지 잡았던 분이 찍어 달라 했고,

평소에 카메라를 피해 다니던 분도 사진 찍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던가.

이제야 내가 하는 일이 단발성 퍼포먼스가 아니라는, 그 진정성을 읽은 것이다.






요즘 나에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너무 드라마틱하다.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일들이 하나같이 아슬아슬하게 해결되는 것이다.
아마, 만지산 산신령님이 도와주는 것 같다.


“산신이시여!  이 늙은 몸 하나 제물로 바치려 하오니, 부디 거두어주십시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토요일의 동자동은 빵 배급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가했다.
서울역 주변을 돌아봐도 오갈 때 없는 노숙인들만 눈에 들어왔다.

문 닫힌 ‘사랑방’ 사무실 앞에는 김호태, 조두선, 선동수씨 등 사랑방을 끌어가는 분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사진 찍는 김원씨도 끼어 있었다.

김호태 사랑방 대표에게 여러 가지 궁금한 것이 많아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한마디로 거절 당했다.

그 거절한 이유가 궁금했지만, 바쁜 일이 있는 것으로 여기고 다음으로 미루었다.
사랑방의 운영을 책임진 분이라면 앞으로의 포부나 진행 상황을 알려
조합원들의 알권리를 해소해 줄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그 날은 구멍가게가 문을 닫아서인지 다른 날에 비해 한가했다.

남종호, 유정희씨가 막걸리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는데,
유정희씨는 아홉 살 때부터 남종호씨를 형님처럼 모셨단다. 각박한 세상에 그 오래된 인연이 부러웠다.
한 쪽에는 이기영, 이상준, 이홍렬씨 등 여러 명이 모여 있었는데,
그 날의 화제는, 몇 시간 전 이원식씨가 경찰에 연행된 사실이었다.

요즘은 이원식씨가 폐품을 열심히 주워 모아 어렵게 살고 있으나,
오래전 싸움에 연관되어 부과된 벌금 70만원을 내지 못해 구속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자유롭지 못한 것 외에는 지금 사는 것보다 더 편할 수도 있겠다싶다.

“원식씨 부디 잘 수양하고 돌아오시게나~”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쪽방주민을 위한 무료 이발소’가 동자동 ‘새 꿈 공원’에 차려졌다.
‘동자동 사랑방’에서 주선한 지난 12일의 무료이발소는
지역주민 문성재씨가 자원봉사로 나선 것이다.
이홍렬씨 등 극히 일부 주민들이 머리를 잘랐지만,
추석에 대한 그리움을 일으킨 하루였다.






대부분 고향이나 가족을 등진 분들이라 추석이 다가와도 가지 못하는 분이 더 많다.
그래서 ‘동자동 사랑방’에서 공동차례도 지내고,
노래자랑을 하는 등 추석잔치를 벌이지만,
어찌 옛날 추석의 아련한 그리움에 갈음할 수 있겠는가?






옛날 명절 대목이 되면 목욕탕과 이발소 가는 것은 피해갈 수 없는 통과의례였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것이 싫어 목욕탕도 싫어했지만, 이발소는 딱 질색이었다.
가기만 하면 머리를 짧게 깎아 촌놈을 더 촌놈같이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명절 대목만 되면 이발소는 사람들로 붐볐다.
순서를 기다리다 지켜본 이발소 풍경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주인은 바리깡과 가위를 바꾸어가며 분주하게 머리를 잘랐고,
주인아줌마는 뜨거운 물수건으로 얼굴을 덮어놓고, 혁대에 쓱쓱 면도날을 문질러댔다.
바보처럼 늘 비실비실 웃는 아저씨는 손님들 머리 감기느라 물조리 춤을 추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과정들이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단지 눈길을 끌었던 것은 벽에 걸린 야한 달력 사진보다,
시쳇말로 이발관그림이었다.






깨진 대형 거울 위에 그린 그림이었는데,
거울에 금간 자욱 따라 뻗은 고목 가지에는 이름 모를 새들과 꽃이 여기 저기 그려져 있었다.
신기했던 것은 자욱 따라 그리다보면, 뭔가 어색해야 되는데, 너무 잘 어울렸다는 것이다.
누가 그린 그림인지 모르지만, 어렸던 내가 보기에는 꽤 좋아보였다.
저런 그림과 유명 화가의 그림은 어떻게 다르며,
어떤 기준으로 평가되는지도 궁금했던 시절이었다.






이런 저런 의문 속에 머리 감으려 고개를 쳐 밀었는데,
비눗물이 들어가 눈이 따가워 죽을 지경이었다.
눈, 눈,하며 거품을 무니, 바보 아저씨는 비누 묻은 손으로 눈부터 문질렀다.
잇따라 물조리에서 쏟아지는 물 세레에 시원해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콩나물시루에 물 뿌려 키우 듯, 내 머리도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






이발 무료봉사 소식 전한다는 게,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버렸다.
예전만큼 추석이 설레지는 않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하루였다는 말이다.
이번 추석에는 공원에서 열리는 콩쿨대회에 나가 대야라도 하나 타고 싶지만,
이가빠져 새는 소리 때문에 상 받기는 틀린 것 같다.






다들 잊을 수 없는 추석명절의 추억 한 자락씩 남기시길...

사진, 글 / 조문호










쪽방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는 ‘강제퇴거 이웃 문화제’가

지난 7월 19일 오후7시부터 동자동 ‘새꿈 어린이 공원’에서 열렸다.

이윤을 중심으로 한 도시개발은 가난한 이들의 터전을 빼앗아 거리로 내 쫓고 있으며,

쫓겨난 이들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저항은 합법적인 폭력에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현실이다.

‘빈곤사회연대’에서 주최하는 이 행사는 쪽방에서 강제로 쫓겨나야하는 빈민들의 연대활동을 강화시켜,

주민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이다.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빈민들 지역을 돌아가며 진행하는데, 그 네 번째 이야기가 동자동에서 열렸다.

‘빈곤사회연대’ 윤애숙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는 ‘강제퇴거금지법’에 대한 이원호씨의 강연이 있었고,

동자동 주민으로는 김병택씨와 임수만씨가 나와 실제 사례를 이야기 했다.

김병택씨는 건물안전진단을 위해 비워달라는 요구에 맞서, ‘동자동 사랑방’의 협조로 물리쳤다고 했다.


이날 행사 준비는 ‘동자동 사랑방’의 허미라 활동가와 선동수간사, 이상준씨와 김창현씨 등

많은 주민들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협력했으나, 일부 주민들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누굴 위해 만든 자리인데, 주최 측에 태클을 거는 주민이 있는가하면, 욕지거리를 퍼 붇는 사람도 있었다.

술이 취해, 별다른 이유도 없이 잘난 채 나서고 싶어서다. 그리고 주민들의 참석률도 저조했다.

심지어 ‘동자동 사랑방’ 임원조차 나오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조합장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행사였다.

그리고 이 행사가 열리기 전에 ‘동자동 사랑방’의 운영위원회의가 열렸다는데,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고,

무엇이 결정되었는지 궁금하다. 그 결과는 즉각 '쪽방타운' 카페에 올려 전 조합원들이 알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누가 어떤 안건을 발의하였고, 누가 방임하였는지, 조합원들도 알 권리가 있다.

그냥 자리만 메우는 핫바지 임원이라면 물러나고, 몸 바쳐 일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젊은이들로 채워지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더위에 쫓겨, 밖으로 나가야 했다.
쪽방 컴퓨터 앞에 쪼그려 있으려니, 숨이 턱턱 막혔다.

골목에서 만난 유한수씨는 김원호씨에게 거수경례를 붙이며
군인을 길들여 왔던 ‘충성’이란 개소리를 외쳤는데, 그게 누굴 위한 충성이었던가?

국가에 헌신해야한다는 것이 몸에 베었지만, 그건 기득권자들을 위한 미친 짓이었다
단지, 무료한 일상에 웃기 위한 행위였지만, 뒷 맛이 개운치 않았다.






조인형씨는 고물 티브이 한 대를 해부하고 있었고,
조두선씨와 박성일씨 등 몇 명은 이야기 나누느라 정신없었다.
일하는 사람과 노는 사람의 차이만 있을 뿐,
사는 것은 다 마찬가지다.






새꿈 공원에는 정재헌, 이대영씨가 이미 취해 있었는데,
술이 약이던가? 술 취한 사람들은 다들 웃고 있었다.
절망에 익숙해지면 술과 담배를 끼고 사는 법이다.
세상이 중독자를 양산하고 있다.





사는 게 너무 공평하지 못하다.
가진 자들은 돈을 주체 못해 별 지랄을 떨지만,
더워도 물놀이 한 번 가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
동자동 사람들에게 신바람 일으킬 일은 과연 없는가?



사진, 글 / 조문호












 




여름철 쪽방은 해수욕장을 방불케 한다.
더워서 다들 벗고 사니, 비쩍 마른 놈은 남사스럽다.
옷을 걸치면 금세 땀에 젖어버리니,
내색은 안 해도 누가 찾아오면 욕바가지다.
그래서 여름 쪽방 방문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내가 사는 쪽방은 옥상 밑이라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는다.
바깥 통행에 지장을 주어, 방문도 열어두지 못하고
창은 옆 건물과 붙어, 있으나 마나다.
더운 바람이 윙윙 도는 선풍기소리조차 짜증스럽다.

오죽하면 다른 곳으로 이사 갈까도 생각했으나 포기했다.
명분은 나대신 누군가는 이 방에서 곤욕을 치러야 한다지만,
솔직히 방 구하고 이사하는 절차가 귀찮아 못 간다.






어제는 쪽방 4층 복도가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408호에 사는 정씨 영감이 페인트를 복도에 쏟았는데,
그걸 지운다며 퐁퐁(세제)을 통째로 부어버린 것이다.
건물 관리하는 이가 발을 동동 그렸으나, 소용없었다.
물을 퍼부어 물난리가 났는데, 거품이 둥둥 떠다녔다.





그런데, 정씨 방은 방이 아니라 창고나 마찬가지다.
그 좁은 방에 온갖 물건들을 놓아 누울 틈도 없다.
고물 티비가 아슬아슬하게 짐 위에 놓여있는데,
무너진다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나이 들어 하나하나 버려야 하건만, 왜 저렇게 살까?





그 방만 보면, 더워 못 살겠다는 내 말이 엄살 같다.
사람이 참고 견디는 인내의 한계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강력한 마약 한 방으로 황홀하게 잠들 수 있는 안락사를 허하라.
의미 없는 고통의 삶은 죽는 것만 못하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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