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인사동 마당발로 통하는 노광래씨가 인사동 이야기사진집 제판을 찍자는 제안을 해 왔다.

이 책은 11년 전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책인데, 오래전에 절판되어 저자도 없는 책이 되어버렸다.

 

노광래씨가 인사동 풍류 40이란 책을 만들려고 자료를 찾았으나 책이 없어 다시 찍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없는 책을 다시 찍겠다는 걸 말릴 일도 아니지만 그의 인사동을 사랑하는 애착이 고마워 돕기로 했다.

그러나 출판을 위해 여기저기 전화하여 선구매를 요구해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고,

누락된 사람을 추가로 추천하므로 개정판을 만들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미 많은 분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분은 출판사로 송금한 분도 있어 빼도 박도 못할 처지였다.

당장 노숙인책 출판과 전시 준비로 내 코가 석 자인데다 전시만 끝나면 진인진출판사와 계약한

인사동 사진집을 만들어야 할 처지라 난처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칼을 뽑았는데...

 

시간이 없어 추가로 찍을 분은 촬영일을 잡아 서너 명씩 세 차례로 나누어 찍기로 했다.

 일을 하다 보니 인원수가 자꾸 늘어났다. 추가 인원을 열 분 정도를 생각했으나 20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두 인사동과 관련된 분이기도 하지만, 몇몇 분은 예전에 찍으려고 추진하다 빠트린 분이었다.

더구나 그 당시 촬영까지 했으나 지면이 부족해 게재하지 못한 분도 십여 명이 남아있었다.

 

막상 촬영을 마무리하여 원고를 보내려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다시 찍은 만큼 빼야 하는데 누구를 뺀단 말인가?

이미 세상을 떠난 분도 열 분이나 되지만 그분들은 더더욱 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인사동 풍류의 주체이며 인사동 역사기 때문이다.

 

이 포스팅이 늦은 것도 고민에 고민을 하다 묘안이 없어 하소연 하는 것이다.

제목을 인사동 이야기가 아니라 인사동 유목민으로 바꾸어 글을 없애고 초상사진으로만 만들던지,

아니면 시일이 오래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오래된 인사동이 아닌 지금의 인사동으로 바꾸려면 촬영 방법이나 편집이 모두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27일 오후 3시에 마지막 촬영 일정이 잡혔다.

이날은 민중미술의 거목 신학철선생과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을 찍기로 했다.

그 외에도 미술평론가 최석태, 화가 황경애씨 등 네 분을 찍기 위해 나갔는데,

전날 정선에서 묘지 이장하느라 곤죽이 되어 잘 마무리할지 걱정스러웠다.

 

며칠 전에도 비가 내리더니 그날도 비가 부슬부슬 내려 술 맛나게 만들고, 사진 찍기는 좋았다.

누군 비가 와서 사진이 잘 나오지 않겠다며 걱정했으나 그건 사진을 모르는 소리다.

햇빛이 쨍쨍한 날은 밝은 부분의 질감이 잘 드러나지 않아 가급적 삼가한다. 더구나 사람 찍는 초상사진은...

인물사진은 확산광이 퍼진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오는 날이 더 운치가 있다.

 

약속 장소인 나무화랑으로 올라 가니 김진하 관장이 있었고,

마침 미얀마 민주주의 후원을 위한 더불어 붓글씨전인 미얀마 민중과 함께 여는 새날이 29일까지 전시되고 있었다.

 

김창남, 이지상, 김성창, 백인석, 구자춘, 이상필, 최 훈, 서연순, 성화숙, 최성길씨 등

서예가 열 분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전시기간이 남았으나 작품이 다 팔렸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곳에서 신학철, 이효상선생 내외분을 만나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진하, 최석태, 장경호씨와 더불어 술자리부터 잡아두고, 신학철선생 촬영을 마치고 오니 박재동화백도 등장했다.

인사동에서 거리공연을 하는 박재동화백의 구수한 유행가 자락에 어찌 술맛 나지 않겠는가?

반가운 분들을 모처럼 만난데다 술이 한 잔 들어가니 누적된 피로도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신학철 선생께서 핸드폰을 열어 최근에 그린 작품 두 점을 보여 주었는데, 눈이 툭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갑돌이와 갑순이연작이라는데, 그처럼 아름다운 춘화는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삐걱거리는 달구지 위에서의 사랑놀음은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린다.

꼴페미로 남녀 관계가 소원해진 현실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작품이 틀림없었다.

 

신학철선생이 오신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임경일, 우문명, 김윤기씨가 줄줄이 나타났다.

두 자리에 나누어 앉아 여기저기 옮겨가며 술 마시기도 바쁜데, 약속한 화가 황경애씨는 계속 숨바꼭질을 해야 했다.

 

유목민에서 인사아트프라자를 두 번이나 찿아가서야 찍을 수 있었다.

실내에서 찍겠다는데, 추억하고 싶은 인사동 거리를 보여 주는 입상사진의 촬영 취지와 달랐다.

덕분에 거리를 오가며 사진 찍느라 술은 덜 마셨지만...

 

그런데 통큰 갤러리일층에 포토이즘 박스란 새로운 업소가 들어와 있었다.

리모컨으로 자신의 순간적인 모습을 촬영하는 공간인 것 같은데, 별의별 업소가 다 생긴다.

 

유목민으로 돌아가니 전시작품 출력하러 갔던 정영신씨까지 찿아와 이제 술 마실 일밖에 없었다.

기분이 좋아 금지곡까지 한 곡 뽑았는데, 제 버릇 개 주지 못함을 널리 양지하시길...

 

누군가 돌아가신 사진가 최민식선생 이야기를 꺼내기에 그분이 준 인간사진집 때문에 내 신세가 요 모양 요 꼴이라고 말했더니,

박재동화백은 그 말과 더불어 지껄이는 쌍다구까지 그려 보여 주었다.

세상에! 속기사도 그리 빠른 속기사는 처음 보았다.

 

술만 취하면 배배 꼬며 염장 지르는 장경호의 술버릇도 여전했다.

갈 시간이 되었다는 이효상선생의 채근에 다들 일어섰는데, 술값을 박재동 화백이 계산해 버렸네.

내가 만든 자리라 꼬불쳐 둔 신사임당 두 장이 굳어 좋긴 하다만 거지 체면은 말이 아니다.

 하기야! 그 돈으로 마신 술값이나 되겠는가?

 

원님 덕에 나팔 분 즐거운 하루였지만, 꼬인 매듭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 걱정이다.

 

사진, / 조문호

 

 

 

지난 18일 '인사동 이야기' 사냥 길에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인사동 민중미술의 교두보 역할을 해 온 김진하관장 만나러 가는 길에발렌티노를 만났는데,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축하 대잔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요즘 코로나로 휴관 중에도 불구하고 김진하관장과 화가 박 건씨를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무화랑'에서 모처럼 반가운 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는 중에 뜻밖의 소식이 날아 온 것이다.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는 오는 20일 정오무렵, 종각 타종 행사를 시작으로 100일 동안 축하대잔치를 연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김발렌티노가 김수영시인의 시 ‘푸른 하늘을’ 너무 좋아해 입버릇처럼 노래를 불렀는데,

기타리스트 김광석씨가 곡으로 옮겨 새로운 노래로 탄생시켰다는 이야기도 뒤늦게 들었다.

 

인사동 거리는 며칠 사이 새로운 점포가 여럿 들어섰다.

'나무화랑' 건물 일층에 있던 ‘보물창고’가 사라지고 무엇을 파는지는 알수 없으나

‘블랙다이아’라는 간판을 단 새로운 매장이 마무리 단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보갤러리'가 있던 건물이 재건축되어 건물 전체가 ‘더스타갤러리’란 간판을 달고

개관전으로 서달원씨의 ‘面’이 열리고 있었다.

 

버스킹에 나선 젊은이들의 연주 솜씨들도 날이 갈수록 세련되어 거리가 한층 젊어졌다.

 

두 분 시간 뺏은게 너무 미안해 모처럼 술 한 잔 대접하기 위해 ‘툇마루’로 자리를 옮겼다.

된장비빔밥에 막걸리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김진하씨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옛날 인사동 다방에서 이루어졌던 나까마들의 그림 거래에 대한 이야기인데, 

귀가 번쩍 뜨이는 인사동 사료라 원고청탁까지 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어떻게 알았는지 불화가 장춘씨가 나타났다.

네명 인원 초과로 떨어져 앉아 자리 파하기만 기다리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세 사람이 막걸리 두 주전자 밖에 마시지 않았지만,

달짝한 툇마루 막걸리는 술술 넘어가는 대신, 뒤늦게 취기가 오르는 위용을 알아 더 마실 수도 없었다.

 

정영신사진

반가운 사람들과 기분 좋게 마신 술자리라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찍힌 사진을 보니 두 화가 사이에 늙은 개 한 마리 끼인 꼴이었다.

 

술이 취해 준비해야 할 골목전시 현장 확인 하느라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술만 취하면 개로 돌변함을 널리 양지하시길....

 

사진, 글 / 조문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진전문출판사인 ‘눈빛출판사’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사무실을 외곽으로 옮겨가고 유일한 직원이었던 성윤미씨가 그만두고 이규상대표가 북치고 장구치는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초판 천부 찍던 사진집이 오백부로 줄어들었고, 그마저 엄선해서 출판해야 한다니 33년 전통의 출판사가 고사 직전에 몰렸다. 안 팔리는 다큐멘터리 사진집만 냈으니, 여지 것 버텨낸 것만도 용하다 싶다.

 

사진출판사로서 오로지 한 길을 걸어 온 '눈빛출판사'의 궤적은 한국사진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정작 보아야 할 사진인들이 책을 사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언젠가 유명 사진가의 집을 방문하여 서재를 본 적이 있었는데, 국내에서 출판된 사진집은 보이지 않고 비싼 수입서적만 잔뜩 꽂혀 있었다. 그러면서 '눈빛출판사'에 자신의 사진집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650여종에 이르는 많은 사진집을 출판했으나 베스트셀러 한 권 없다.

프랑스 사진가 크리스 마커가 북한 모습을 담은 사진집 '북녘 사람들'이 3,000부 팔렸고, 이경모선생의 사진집 '격동기의 현장'이 1만부, 김기찬 사진집 '골목 안 풍경'이 7000부 정도 팔린 것이 대박 친 사진집에 속한다.

 

만약 ‘눈빛출판사’가 없었다면 우리나라 다큐멘터리사진이 어떻게 되었을까? 살아남을 수 없는 불모지에 뛰어들어 온 힘을 기울여 온 ‘눈빛출판사’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 다큐멘터리사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땅의 역사와 삶의 흔적을 남기려는 투지가 없었다면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진가 개인 파일에서 잠자다 잊혀 지거나 사장되었을 것이다.

 

‘눈빛출판사’는 긴 세월동안 다큐멘터리사진을 발굴하여 출판해 왔고, 역량 있는 신진작가를 배출해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분야인 다큐멘터리사진을 부흥시켰다. 그 고마운 출판사를 위해서보다 사진가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사진집은 사 보아야하지 않겠는가? 대중성 없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몰락은 사진가 스스로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사진집 출판에 이변이 생겼다. 이강산 시인이 준비한 사진집 ‘여인숙’이 선주문 형식으로 진행된 ‘텀블벅 펀딩’에 283명의 후원자가 몰려들어 천 팔백 육십 만원을 후원했다고 한다. 물론 그중에는 사진인도 있었겠지만, 일반인들의 사진에 대한 관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집 출판에 전례가 없었던 일로,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 일이었다.

 

 

그리고 어린이를 겨냥한 서적은 꾸준히 잘 팔린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곤충사진가 이수영씨의 곤충사진집에서 나오는 인세는 그가 작업하는 경비뿐 아니라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도 꾸준히 들어온다고 했다. 그 뿐 아니라 이십 년 전 정영신씨가 글을 쓰고 정영신씨 사진으로 유성호씨가 그림을 그린 ‘시골장터 이야기’(진선출판사)는 23쇄에 이를 정도로 꾸준히 팔리는 품목이다. 6개월간의 판매부수를 정산한 인세 백여 만원이 지난 7월에 보내왔다는데, 정영신씨에게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책이다. 다큐멘터리사진집으로 그런 수익을 얻는다는 것은 요원한 꿈일까?

 

작년에는 정영신씨가 ‘길 위의 인문학’ 공모에 선정되어 작업비를 지원받았으나, 2차에서 탈락하여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하게 될 ‘어머니의 땅’ 사진집제작에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 정말 운이 없는 출판사다. 나 역시 그동안 작업해 온 노숙인은 책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을 것이 뻔해 출판하자는 제안은 커녕 꿈도 꾸지 못했는데, 우연히 ‘이숲’출판사에서 출판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의외의 출판계약으로 편집까지 마무리한지가 오래되었지만, 서둘 필요는 없다고 했다. 책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책으로 하여금 노숙인들 생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 하기에 지원 없는 출판은 무의미했다. 적어도 찍힌 사람에게는 책 한 권씩이라도 전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스럽게도 출판사에서 지원 신청한 ‘노숙인’이 종이책 부분 우수출판물로 선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정영신씨의 ‘어머니의 땅’사진집이 나오는 9월23일부터 10월 4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전시를 한다는데, 나도 꼽사리 끼어 인사동거리에서 가두 전시를 할 작정이다. 일반인은 전시장에서 놀고 노숙인들은 거리에서 노는 잔치판을 한 번 만들어 볼 생각이다. 기대하시라!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이 변하고 있다.

가게들이 바뀌고 낭만은 사라졌다.

지루한 거리두기로 거리가 지루하다.

 

그래도 인사동은 인사동이다.

변하는 것은 미워도 인사동은 미워할 수 없다.

 

일주일에 두 번 가던 곳이 한 번가고,

이젠 한 번도 못갈 때가 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갈 곳이 없어서다.

전시 작품보다 정 나눌 사람이 없다.

 

예술가 만나기도 쉽지 않고 대폿집 풍류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이 죽일 놈의 코로나가 부채질한다.

 

 

몸은 멀어도 마음마저 멀어질 수는 없다.

영원한 추억의 저장고기 때문이다.

 

 

미국 가신 최정자 시인이 생각난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서울로 서울로’를 노래했다.

그 시집 나온 지가 어언 20여년이 되었다.

 

몇 년 전만해도 생활비 줄여 만든 돈으로

일 년에 한 번은 빠지지 않고 오셨으나,

힘들어 못 오신지가 사 오년 된 것 같다.

 

한번 갔다 오면 며칠 동안 앓아눕는다더니

이젠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하신단다.

 

인사동이 그리워 틈틈이 블로그나 찾았는데,

영영 인사동과 작별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디 최정자 시인뿐이던가?

강 민시인은 저승에서 '인사동 아리랑' 노래를 부른다.

인사동 사람들이 한 분 한분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인사동을 그리는 인사동 사람들이 있다.

멀리서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들려 향수 달랜다.

내가 거리풍경을 찍어 올리고 인사동타령을 해대는 이유다.

 

인사동 사진집을 만들려고 출판사 계약서 받은 지가 일 년이 가깝지만,

 아직도 원고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마침표가 될 사진집이 내 발길을 멈추게 할까 염려되어서다.

 

요즘은 세상이 뒤숭숭해 인사동도 잘 나가지 않는다.

동자동에서 녹번동 가는 길에 잠시들려 안부나 묻는 정도다.

인사동 거리를 기웃거리지만,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다.

 

엊그제도 지나치는 길에 인사동에 잠깐 들렸다.

미친 코로나에다 폭염까지 겹쳐 거리는 한산했다.

 

일주일 만에 본 인사동 거리지만 계속 변하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추억 지우느라 안달하는 것 같았다.

 

전통적 상품을 거래하던 매장들이 옷가게로 바뀌고 있다.

민예품이 놓였던 진열대는 옷과 마스크가 대신했다.

 

코로나가 시작될 때부터 문 닫았던 ‘보물창고’가

더디어 새 주인을 만났는지 실내장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쌈지 건물 벽에는 임금을 기다리다 죽었다는

궁녀 설화가 담긴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마치 누굴 기다리 듯 애잔하다.

 

‘통인화랑’은 ‘미술관 속 그림과 조각전‘이 열렸고,

‘나무화랑’은 인사동활성화를 위한 신진작가 공모전이 열렸다.

 

전시장마다 작품은 걸렸지만, 반가운 사람이 없다.

인사동을 사랑했던 인사동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몽유병 환자 같은 늙은이만 거리를 떠돈다.

 

인사동의 봄은 요원한 것인가?

아! 그 때 그 사람이 그립다.

 

사진, 글 / 조문호

 

봄과 여름 사이

김준권展 / KIMJOONKWON / 金俊權 / printing 

 

2021_0616 ▶ 2021_0629

 

김준권_꽃비-봄날_채묵목판_25×50cm_201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우리 산하에 대한 정서를 문인화적 맑음으로 시각화하는 김준권의 수묵水墨목판화는 철저하게 나무판면이라는 평면성을 수용하는 감성적 기호의 세계다. 판면에 칼을 터치하면서 나오는 판각版刻과정의 칼맛보다는, 인출印出과정에서의 담묵과 농묵, 투명과 불투명, 형태와 묘사 등을 아우르는 환원적 이미지로 국토의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을 고요한 마음의 기호로 전형화한다.

 

김준권_꽃비-203_유성목판_33×50cm_2020
김준권_지리산-2_채묵목판_35×55cm_2020
김준권_산에서...20-01_채묵목판_40×30cm_2020
김준권_靑山-1_채묵목판_50.3×33cm_2020
김준권_靑山-3_채묵목판_50.3×33cm_2020
김준권_산의노래_채묵목판_84.5×158.5cm_2021

 

그동안의 대작을 통한 서사를 담았던 김준권의 장엄한 백두대간 풍경에서 잠시 벗어나, 이번 전시는 『봄과 여름사이』라는 명제로 핑크색 봄 벚꽃(유성목판)과 코발트블루가 시원한 여름 산(채묵목판)의 소품으로 구성했다. 고향과 향리에서의 순수한 서정, 그리고 추억. 잠시 풍경자체의 아름다움과 즐거운 조형에 탐닉하는 기회를 즐기시길 바란다. ■ 나무화랑

 

 

Vol.20210616d | 김준권展 / KIMJOONKWON / 金俊權 / printing

지난 2일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김재홍씨의 ‘거인의 잠’이 개막되는 날이라 서둘러 인사동 '나무화랑'으로 갔다.

 

여지 것 전시 개막식을 비롯한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해 온 금기를 깰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공이 만만찮은 재홍씨의 작품도 보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역전의 화가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싶었다.

 

안국역에서 내려 지하도로 올라가니 화가 김 구씨와 류연복씨는 벌써 내려오고 있었다.

“전시장에 들렸다 일산 손장섭선생 상가에 간다”고 했다.

나 역시 문상도 가야지만 전시장부터 들렸다. 매번 꾸물대다 늦게 오는데, 전시장 문 닫을까 서둘러 올라갔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아직 많은 분들이 계셨다.

전시작가 김재홍씨를 비롯하여 김진하관장, 김정헌, 박불똥 조경연 부부, 이태호, 이재민, 박세라씨 등 여러 명이 작품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시리뷰를 보아 대략의 내용은 알았지만, 작품 앞에서니 마치 스스로를 바라보는 듯한 먹먹한 느낌이 일었다.

상처투성이의 노쇠한 몸이 품은 의미야 해석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희멀건 잿빛 형상들이 피폐한 자본주의에 병든 인간들의 내일을 예언한

죽음의 묵시록처럼 다가왔다. 거인의 잠이 거인의 죽음으로 비친 것이다.

 

작가는 선문답처럼 ‘거인의 잠’이란 제목만 붙여놓고 일체의 말이 없었지만, 인체의 부분으로 상처 난 땅을 형상화한 상징적 이미지였다.

긴 세월 동안 이어져 온 폭력과 굴곡의 세월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묵언의 땅인 것이다.

 

김재홍씨가 3년 전에 보여 주었던 인간 탐욕의 폭력성을 고발한 “살”전 과는 또 다른 울림이었다.

그는 인간을 향한 폭 넓은 주제를 택하지만, 핵심을 상징화해내는 탁월한 작가적 역량을 가졌다.

그래서 또 다음 전시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이 전시는 오는 15일까지다.

 

더 중요한 것은 작품도 작품이지만 사람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알게 된 것은 20년도 더 지났지만, 처음 대면한 것은 10여 년 전이다.

자라섬에서 열린 자연설치미술전에서 김언경씨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첫 인상이 착한 시골선생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화단에서는 사람 좋기로 소문난 작가였다.

 

각설하고, 전시장에서 내려 와 뒤풀이 장소로 정해진 ‘유목민’으로 갔다.

 

술집 골목 초입부터 화가들이 자리 잡아 앉을 틈이 없었다. 코로나 시국의 손님 없는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신학철, 이요상선생을 비롯하여 김건희, 김언경, 차기율, 이필두, 최운영, 나종희, 류충렬, 최석태, 우문명, 유근오, 성기준, 김영진,

조신호, 장경호, 김경서, 최완수, 그리고 배우 이재용씨 등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역전의 화가들이 모여 있었다.

 

뒤늦게는 불화가 이인섭선생과 장 춘씨를 비롯하여 사진가 조명환씨도 나타났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분들이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술 마시느라 혼자 바빴다.

홀짝 홀짝 마신 술에 가랑비에 옷 젖듯 취해 버렸다.

호흡기에 문제가 생겨 소리도 나지 않는 목소리로 돼지 목 따듯 노래까지 불렀으니 정말 가관이었을 것이다.

 

이 얼마만의 사건인가? 대취 했지만 기분 좋게 마시어 그런지 몸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다들 떠난 뒤에도 ‘유목민’ 주인장 전활철씨를 비롯하여 박혜영, 장춘씨와 어울려 마셨는데,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훨씬 지났더라.

 

원님 덕에 나팔 분 최고의 날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거인의 잠

 

김재홍展 / KIMJAEHONG / 金宰弘 / painting 

2021_0602 ▶ 2021_0615

 

김재홍_거인의 잠-202103_천에 아크릴채색_161×330cm_202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80218a | 김재홍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김재홍의 최근작에 관한 인상 ● 블랙홀과 은하수가 어둠과 가녀린 빛으로 불규칙하게 휘감고 돈다. 인력과 척력이 미끄러지며 서로 밀고 당기는 불규칙한 중력의 뒤틀림인 듯, 공간이 휘거나 꼬이는 우주의 모양새다. 또는 풍화를 견디고 견디다 마침내 단단하고 반질반질하게 경화된 태토의 질감과 굴곡이 무한하게 긴 시간을 은유하는 땅 거죽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 목젖 아래 쇄골 한 부분 풍경이다. ● 특정한 대상이 이 정도 광대무변한 시공간으로 유동하고 확장하며 중층적인 이미지를 배태해낸다는 거, 신기한 일이다. 서술이나 서사를 배제한 일류젼일 뿐인데 말이다. 동적인 기운이"모였다가 흩어지고(聚散), 굽혔다가 펴지고(屈伸), 왔다 갔다(往復), 맑고 흐리게(淸濁), 곱다가는 거칠게(粹駁)"형상을 발현하는 듯하다. 이런 시각성의 변주는 기호가 아닌 상징이라서 가능하다. 여타 시각정보를 담는 목적의 그래픽과 다른 이 모호한(?) 장르가 여전히 존재하는 건 이 때문이겠다. 김재홍의 최신작, 대략 300호가 넘는 「거인의 잠- 202103」이란 작품 얘기다. ● 거기엔 대상을 재현하거나 묘사한 구상성의 속박이 없다. 액티브한 동작이나 물질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소재에 대한 서술성을 최대한 절제한 바탕에서 드러낸 묵언의 형상성과, 능숙한 손맛과 붓질이 중첩된 질감의 세련된 감각이 회화적 쾌감을 발현한다. 이후 그림에 담긴 단서가 하나둘씩 자연스레 포착 된다. 미적 쾌감 이후 작가의 문제의식을 찾아보는 습관은 그래서다.

 

김재홍_거인의 잠-길13_천에 아크릴채색_162×340cm_2020
김재홍_거인의 잠-길20210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2×122cm_2021

화면엔 누군지 모르는 익명의 신체 한 부분이 어떤 단서도 없이 등장한다. 늙고 마른 노쇠한 몸. 여린 호흡. 앞선 다른 그림에서의, 그 몸에 드리웠던 철조망과 경계로(路)의 흔적으로 인해, 화면 속 인물의 인생사와 그가 온몸으로 관통해왔을 현대사가 고스란히 연동된다. 분단 이후 70년의 시간성도 함께 묻어 나온다. 생의 끝 지점, 소멸 단계에 이른 신체 주인의 치열했던 삶에 대한 경건한 헌사이자, 아직은 분리되지 않은 그의 혼(魂)과 백(魄)을 온전히 하나로 기억하려는 작가의 의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이 그림에선 둔중한 울림의 회화적 표지(標識)와 기의가 경건하게 다가온다, 내겐. ● 몸에 새겨진 기억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몸의 상흔이 희미해지더라도 마음의 상처는 더 깊어질 수도 있다. 기억 본능이 망각 의지를 배반하고,세월이 약이지만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개인의 자전적 아픔도 그럴진대, 하물며 이 땅 공동체에 가해진 폭력의 기억, 집단적 통증은 시간이 흘러도 줄어들지 않는다. 근대 이후 한반도 민중에게 가해진 폭력 서사를 보라. 식민지. 동족상잔. 4.3. 분단. 군사독재. 산업화. 도시화. 5.18. 신자유주의. 이전투구의 생존경쟁. 도저한 아픔의 연속이다. 혹독하다. 그 불가항력적 조건의 연장선에서 지금도 우리는 그 레이어를 겹쳐 쓴 채 고통의 연대기를 쓰고 있다. ●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사람들은 위대하다. 망각 의지보다 더 선명한 기억 본능으로 인해 고통스레 살아내며 버틴 질긴 생명력이니까. 그들의 견딤이 역사고, 역사의 주인인 그들이 거인이다. 그런 앞 세대가 저물어가는 지점을 김재홍은 상징적인 기억투쟁 행위이자 오마쥬로 이 회화적 기록을 남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구체적이고 서사적 진술이 아닌 이 방식은 회화라는 매체의 한계와 장점을 동시에 노출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읽는 사람마다의 독해의 기호와 방식 아니겠는가. 반성과 성찰을 담보하는 기억에의 의지 말이다.

 

김재홍_거인의 잠-장막-유리구슬_천에 아크릴채색_161×330cm_2021
김재홍_거인의 잠-202105-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97cm_2021

한편 작가의 설명을 생략한 채 쓰는 나의 이런 인상기가, 김재홍의 작업의도와 표현 때문인지 혹은 그렇게 보려는 나의 아포페니아나 파레이돌리아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이 그림에서 김재홍은 이전과 달리 대사가 아닌 방백과 지문(地文)으로만 주제를 이끄는 묵언의 장(Field)을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이는 회화적 상징이기에 가능한 거고, 그건 관자의 접근에 따라 그 결이 달리 해석될 수밖에 없다. ● 소재에 대한 특정한 사건·단서·기호·상황·설명·해석·연출을 소거한 채 주제를 침묵해버리는 역설적인 어법의 구사. 이제껏 직접적 형상으로 작업내용을 발설하던 김재홍의 작화법에 비하면 일탈이자 변화다. 작업을 끌고 가는 회화적 사유와 내공이 어느 정도 그의 몸과 일치가 되고 있어서일까. 새로운 회화공간으로 치환되고 확장하는 작가의 이런 변주는 관객의 주체적 상상력과 해석을 더 요구한다. 이런 시도는 그의 작업에 대한 공력이 깊어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나는 대본과 무대를 제공했으니, 연기는 관객 당신이 주체가 되어서 하시오"라는 연출자의 열린 소통에의 실험처럼. ● 이번 전시가 끝난 이후 다음 작품이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이 한 작품 얘기로 서문을 대신한 이유다. 그의 그림이 변하고 있다. ■ 김진하

 

 

Vol.20210602f | 김재홍展 / KIMJAEHONG / 金宰弘 / painting

내일을 살다

 

김천일展 / KIMCHEONIL / 金天一 / painting 

2021_0324 ▶ 2021_0405

 

김천일_campion1_캔버스에 유채_116.7×91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과거 군사정부는 사회 곳곳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것은 강요와 억압 그리고 통제된 형태로 나타났다.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등을 달달 외우게 했고 시민을 발가벗겨 의식화 시겼다.

 

 

김천일_깊은잠-다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122cm_2005

 

 

군사정부가 퇴장한 뒤에도 그들의 영향력과 잔재는 지금도 사회 곳곳에 남아서 준동하고 있다. 시민들은 갖은 방법으로 저항하고 새로운 사회를 염원한다.

 

 

김천일_늦은 오후-광장에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33.5×51.5cm_2014

 

 

80, 90년대를 뜨거운 가슴으로 맞이했던 세대들은 반백의 초로가 되어 궁상맞게 작엽실 구석에서 오늘도 어제와 같이를 되뇌이며 하루를 맞이한다.

 

 

김천일_세월1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21

 

 

시선을 돌려 넓은 세상을 보면 갖은 탐욕과 이기심이 넘쳐나고 있다. 멘허튼 한복판 세계무역센타가 붕괴되는 것을 충격적이다 못해 넋이 나간 눈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욕망과 탐욕의 그림자를 보았다.

 

 

김천일_꿈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2×58cm_2002

 

 

이어서 그들은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분노와 저항, 분열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 강대국들의 방기와 은근한 아니 노골적인 지원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어 놓아 극단적 갈등을 야기 시켰다. 지배자들의 야욕은 시대와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중동에 이어 홍콩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미얀마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세계를 쥐락펴락 한다는 무리들은 여전히 눈치만 보며 뒷짐지고 잇속 챙기기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을 제외한 세계시민 모두를 충격에 빠져 분노케 하고 있다.

 

 

김천일_campion2_캔버스에 유채_91×72.7cm_2021

 

김천일_campion3_캔버스에 유채_115×61cm_2021

 

김천일_campion4_캔버스에 유채_146×65cm_2021

 

 

길을 걷거나 다른 일을 하다가도 그림에 대한 화두가 뒷덜미를 잡았다.

 

 

김천일_낮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8×83.5cm_2020

 

김천일_소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3×49.8cm_2015

 

 

얼추 화업 30년이 된다. 이 어색한 답답함은 뭘까 자문자답해 본다. 고백하고 스스로에게 자백한다. 자술서를 쓰는 심정으로 작업을 하게 된다. 자유롭기 위해서라고 자위한다. 과정을 통해서 모두가 자유롭고 평화로우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 김천일

 

 

Vol.20210324g | 김천일展 / KIMCHEONIL / 金天一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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