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남촌에는

김인규展 / KIMINGYU / 金寅圭 / painting 

2023_0301 ▶ 2023_0313

 

김인규_몽유도_캔버스에 유채_115×240cm_2021

김인규 블로그_http://www.ingyu.net

 

초대일시 / 2023_030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5: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봄 바람이 거기서 불어오는 것일까? 그림은 무엇이길래 화가들은 그 형태도 없고 색도 보이지 않는 봄바람을 그리려 애쓰는 것일까. 더불어 산 너머 남촌에 사는 사람을 상상하며 그 이미지를 그리는 방식에 대해서 온갖 고민을 하는 것일까. ● 김인규의 이번 전시는 그런 봄바람과 같은 '그림 그리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체질·표현 등의 고찰을 통해서, 그의 기존 그리기 방식으로부터 일탈을 시도한 작품들이다. 화가가 되기 훨씬 이전 미술을 아예 모르는 자연인으로 순수한 내면의 원초적 진술과 표현을 시도한 '미술 이전'의 그림이기도 하다. 물론 새롭게 그리더라도 결과적 이미지는 김인규만의 감성과 오랫동안 그의 몸에 축적된 그리기 솜씨, 그로부터 발생하는 형상과 분위기로 구성됨은 당연한 것 일 테다. 작업을 이끌어내는 프로세스와 그의 체질이 동반된 것이기도 할 것이고. 다만 그렇더라도 조형적 문법과 그리기 방식은, 그가 그동안 견지해왔던 작가적 스타일을 상당부분 전복하며 추구한 원형적인 것이라서 묘하게 프리미티브한 지점을 노출 한다.

 

김인규_산 너머 남촌에는_캔버스에 유채_45.5×137cm_2020~1
김인규_누가 살길래_캔버스에 유채_131.5×53cm_2020~1

일단 외적으로 두드러진 변화를 보자. 그의 전시 때마다 도드라졌던 개성적이고 도발적이었던 내용과 형상언어들이 지극히 단조롭고 소박하게 바뀌었다. 몰개성적인 느낌마저 자아낼 정도다. 일체의 현대성·작위성·회화적 기교로부터 벗어난, 그야말로 그리기의 원형이 천진난만함으로 화면에 번역되어 안착해 있다. 고명도. 부드럽고 화사한 파스텔 톤. 가슬가슬하니 습하지 않고 적당히 건조한 촉감. 고향의 봄을 연상시키는 소담한 풍경. 공기원근법이나 선원근법을 무시한 채 초가집·나무·구릉 등의 소재가 중첩된 공간구성. 거기에 명암법이 있는 듯 없는 듯, 평면적인 입체감이 몽글몽글하니 꿈인지 현실인지 그 풍광과 시제(時制)가 묘하게 비끼어 버린 화면. 언뜻 수십 년 전 시골 이발소 거울 위에 붙어 있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나, 엄마 돼지 젖을 빠는 애기 돼지들과 "家化萬事成"이란 글씨가 씌어진 그림, 또는 고추 말리는 가을의 황금색 초가집 풍경화가 떠오른다. 대중들 눈높이와 등가인 삼각지나 남영동의 소위 상화(商畵)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라는 것.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이발소 그림'의 패턴화된 반복성의 조형적 저급함이나 키치적 통속성과는 다르게, 차라리 조선 민화의 담백함과 유사한 맑음이 도드라진다. 평생을 시골에서 살며 곱게 늙은 할머니가 그린 듯 '어른의 아동화'라는 형용모순이라야 비로소 비유가 가능한 듯한 청아함도 있고. 그러면서도 그 말끔하고도 단아한 화면의 배면에서 은근히 청춘의 발랄함이 풍겨나오기도 한다. ● 아무튼 이 작품들에서는 규정하기 어려운 탈 개성, 탈 작가주의의 익명적 그리기 방식이 화면을 이끌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 그림들을 보는 나는 갸웃거린다. 일반적인 민화의 형식적 나이브함에 비한다면 뭔가 숙련된 화가의 여러 장치와 세련성이 묻어나와서다. 김인규=화가라는 나의 선행 정보가 작동해서 그런 것 일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김인규의 미술에 대한 태도와 기량이 야기한 결과 때문이라 여겨진다.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가? 미술은 내게 무엇인가? 그 형식은? 그렇다면 내 그림으로 나는 누구와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등의 사유와 질문이, 오래된 훈련과 감수성을 통해 배어나오는 미적 수준 때문일 것이다. 미술제도 바깥으로의 탈주를 위해 자신의 그리기 스타일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미술에 대한 사유와 회화적 기량이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지문처럼 남아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번 『산 너머 남촌에는』전의 역설적인 그리기에는, 그가 벗어나고자 했던 현대미술로부터의 떠남과 돌아옴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시지프스처럼, 무거운 현대미술이란 돌덩이를 산꼭대기로 또 끌어올려야만 하는 고된 반복을 또 해야 한다는 것. 그게 화가의 운명이고, 성공이든 실패든 그 운명적인 것으로부터 탈주 시도가 바로 작업의 변주이자 실험에 해당하는 것이니까. 그것은 기존 미술제도나 형식의 층위에서 다른 층위로 일탈을 감행할 때 더 빛이 난다. 김인규의 회화적 자기 전복도 자신에게 고착된 미술개념과 형식에 대한 거역이되, 또 다른 언어와 미술로 진화하려는 실험의 장(章)이라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낯선 몽유도원이자 친근한 기억도원(記億桃園)에서 기호화된 형상을 통해 산 너머 남촌의 봄을 꿈꾸고, 거기에서부터 불어오는 춘풍을 대면해보자. 엄마 품의 안락 같기도, 애인 품의 향기 같기도 한 "나의 살던 고향"의 봄이 당신을 맞을 테니. 이 미술 이전에 건국된 "산 너머 남촌"공화국에서 통용되는 김인규의 형상언어가 감미롭게 당신의 귀에 속삭일 테니. ■ 김진하

 

김인규_은혜 갚은 까치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23
김인규_산길_캔버스에 유채_72.7×53cm_2023

나는 개인 작업을 해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작업을 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었다. 오랜 세월 미술 교사로 있으면서 교육미술과 커뮤니티 미술활동을 중심에 놓고 살아왔던 터였다. 더우기 생계였던 미술교사를 하는데 있어서 개인작업은 커다란 걸림돌-미술교사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곤 했기 때문에-이었기에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먹곤 했다. 때때로 성공하기도 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곤 했다. ● 결국 개인작업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급기야 학교를 떠났다. 나는 스스로 왜 그리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는지 궁금해 하곤 했다. 그 미련을 끝내 버릴 수 없었는지 궁금했다. 상당기간 그리기를 멈췄던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봉착한 것과도 관련이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혹시 '무엇을'이 아니라 '그린다'는 것 자체에 나의 욕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반문이 들었다. 어린시절로 까마득히 거슬러 올라갔을 때도 느꼈을 그런 욕구말이다. 의도적으로 학습하기도 전에 마음 속에 스며들어 차곡차곡 쌓여 있던 것들 말이다. 나를 그리기 앞에 불러낸 것은 그런 이루지 못한 꿈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 이에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보는 심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자'라고 마음먹었다. 전문적으로 배웠던 미술세계를 거둬내어 본다면 혹시, 사춘기 시절, 그보다 더 어린시절 내가 마음 속에 품었을 만한 욕구와 정서가 있고 거기에 알맞은 것이 있지는 않을까 하고 되물을 수 있었다. 때 마침 꽃 피는 봄, 산벚꽃이 만발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는데, 나의 정서가 그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이런 풍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가능한 마음속으로 떠올려 풍경을 궁그리기 시작했다. 보이는 풍경이 가지는 사실성은 가능한 배제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마음 속 깊이 고여있을 그런 풍경과 정서를 퍼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 색과 붓질이나 대상을 다루는 기법들도 그것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배운 것들이 어디 가겠냐만은 그것은 다시 재구성되는 재료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점차 거기에는 어떤 본연의 정서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여겨지게 되었다. 작업을 하면서 늘 음악을 듣는데, 오랫동안 서구 클래식 음악을 들어왔는데, 우연한 기회에 우리 전통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그것이야 말로 나의 정서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하였다. 서양음악을 듣다보면 공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우리 전통음악은 그냥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듯한 느낌이 있는 것이었다. 그냥 몸에 들어와 착착 감기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몸의 소리였다. 그것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것과 맞 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미 산수화나 민속화와 같은 전통회화를 두루 검색하고 복기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더 나의 정서와 연결되어 있어 보였다.

 

김인규_폭포와 개구리_캔버스에 유채_59.4×42cm_2022

한편으로 보면 나의 목표는 어떤 이루지 못한 나의 고유한 원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룰 수 없는 원망이 남아있고, 이루지 못한 현실의 한계, 혹은 절망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내가 젊은 시절에도 30대가 되어서야 미술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그것은 현실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여겨졌을때였다. 한참 운동권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을 당시 미술활동은 그다지 나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고, 오히려 현실 운동에 직접 나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허망해졌을 때, 내가 부여잡았던 것은 미술작업이었다. 내가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여겨졌을 때, 그 절망의 끝트머리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그리는 일이었이다. 그리고 미술교사 생활에 이끌려 작업을 밀쳐내곤 했지만, 끝내 다시 잡곤했던 것은 그게 이루지 못한, 남아있는 원망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 가만히 보면 나의 풍경은 결국 몸이다. 몸이 풍경이 된 것이다. 생각하는 머리나 의지를 가진 팔과 다리가 다 사라지고 몸만 남아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땅과 같은 것일 수 있다. 남자와 여자로도 나눠지지 않고, 심지어는 사람과 동물로도, 동물과 식물로도 나누지지 않은 그런 몸까지 다가간다면, 아마도 남아있는 기관이 있다면 생식, 혹은 생리에 관련된 기관들일 것이다. 그것은 죽음의 경계에서 삶을 영위하는 몸이다. 산수화에는 산과 폭포가 있는데 그것은 그런 원초성과 관련이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 김인규

 

Vol.20230305b | 김인규展 / KIMINGYU / 金寅圭 / painting

이명복作, 사라진 꿈, 153 x 208cm,장지에 아크릴, 2023

‘나무아트’ 기획전 ‘무장지대’ 2부가 지난 17일 개막되었다.

 

2월 6일 부터 16일 까지 열린 1부에서는 강재구(사진),김진하(사진), 송창(설치), 이태호(입체), 임종업(대성동마을 스냅+르뽀), 정기현(영상, 설치) 작가가 참여했다.

 

김진하_망각의 한 방법-소원에 대하여_사진몽타_61×182cm_2023
강재구_private#1~3_젤라틴 실버 프린트_각 70×55cm_2002
송창_大兄-바라보기_스팽글, 필름출력_설치, 232×546cm_2020
이태호_분단풍경_여러가지 재료_100×85×168cm_2021
임종업_대성동-DMZ의 숨겨진 마을_르뽀_도서출판 소통_2021
정기현_topos_도라전망대 설치전경_2021

지난 17일 부터 오는 26일까지 열리는 2부에서는 이명복(회화), 류연복(목판화), 손기환(회화), 이동환(회화+입체),  이인철(디지털 회화) 김억(목판화) 작가가 참여한다.

 

류연복_꽃 한송이_소멸다색목판화_97×72cm_2018
손기환_DMZ풍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0×200cm_2015~21
이동환_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같은 풍경_장지에 목탄, 먹, 안료_60;134cm_2023

지난 15일 전시장에 들렸으나 아쉽게도 문이 잠겨 1부를 놓쳐버렸고, 2부는 정영신 동지와 함께 개막시간에 맞추어 찾아 간 것이다,

 

이인철_파주2_디지털 회화_2023
김억_DMZ-백령도에서 고성까지_목판화_2020

김진하관장을 비롯하여 제주의 이명복씨와 김 억, 류연복, 손기환, 이인철씨 등 참여 작가를 두루 만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이승미, 김 구, 장경호, 김은태, 강욱천, 성기준, 정기현씨 등 여러 명이 전시를 관람한 후 '산골물'에서 조촐한 뒤풀이를 가졌다.

 

손기환작

아래는 전시를 기획한 김진하관장의 ‘무장지대’ 서문이다.

 

"1953년 유엔사와 북한의 휴전 협정에 의해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르는 군사 분계선과, 그 선을 기준으로 남북 2km의 남방한계선/북방한계선에 의한 비무장지대(DMZ)가 설정되었다.

 

비무장지대. 말 그대로 무장이 해제되어야만 하는 곳. 그러나 현재 동서 256Km, 남북 4Km인 이곳엔 수백 만 개의 지뢰가 설치되어 있을 거라고 전해진다. 게다가 북한 G.P는 북방한계선 남쪽 1.6Km, 남한의 G.P는 남방한계선 북쪽 1.2Km까지 진입된 곳도 있다. 그러니까 양 G.P간 실 거리는 기껏 1Km의 거리. 모두 중화기로 무장한 긴장된 상태다.

 

이인철작

일촉즉발 상태인 이곳이 어찌 비무장지대라고 할 수 있겠는가. 더불어 『비무장지대』라는 네이밍에 근거하자면, 폭 4Km의 이 공간을 제외한 북과 남쪽 국토 전체는 역설적으로 『무장지대』란 뜻이 아닌가.

 

지난 70년 간 우리는 분단 현장 남측 『무장지대』에서 분단 정치, 분단 문화, 여타 분단 이데올로기에 의한 온갖 부조리한 현실을 온 몸으로 겪으며 살아왔다. 국토 어디를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벙커, 참호, 철조망, 그리고 우리들 일상에 존재하는 군사 시설들... 뿐인가, 과거 교련을 위시한 반공과 군사 교육, 관제 행사 동원, 여타 학술과 문화 예술과 대중문화에까지 드리웠던 검열과 블랙리스트의 기억까지 소환된다.

 

김억 작

그 레드 컴플렉스의 작동은 최근에도 남북 관계를 더 경색 시키고, 한발 더 나가 전쟁 위기까지 부추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사회적 의제에서 한반도 분단 극복과 무장지대 탈출을 위한 지성적 담론과 사회 문화 운동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이동환작

이런 현실에서, 평소 사회 역사적 주제로 작업을 하던 작가들이 정체된 분단 논의에 파문을 일으키려 함께 이 전시에 참여했다. 이 작가들이 직접 체험한 『무장지대』에 대한 예술적 발언이, 지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분단 논의에 던져 지는 짱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김진하

 

오는 2월 26일까지 열리는 '무장지대'전을 많은 관람바랍니다.

 

류연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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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은 지옥 같은 하루를 보냈다.

이태원 참사 소식으로 온 종일 일손을 놓고 가슴 태웠다.

 

젊은이들이 무슨 죄가 있어, 날벼락에 깔렸는지 모르겠다.

지긋지긋한 공부에 얽매어 살다, 모처럼 축제 한 번 즐기러 나갔다가 목숨 잃은 것이다.

대비는 물론 늦은 대처로 더 많은 인명을 잃게 한 정부의 무능에 할 말을 잃었다.

 

더 이상 슬픔에만 빠져 있을 수 없어, 다음 날 집을 나섰다.

인사동 북인사마당에 마련되었다는 합동 분향소를 찾아 간 것이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추모객은 많지 않았으나, 덕원스님 모습이 보였다.

비명에 숨져 간 청춘들에게 고개 숙여 명복을 빌었다.

 

인사동 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다름없었다.

 

가게에 걸린 상품은 안타까운 희생을 애도하는 조화처럼 보였고,

목 없는 한복 마네킹은 희생자의 넋인 냥 비통함을 더했다.

 

이재민씨의 이것은 돌이다전시 보러 나무화랑'에 갔다.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작가가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전시작은 여러 가지 형태의 돌이 그림과 병치되어 있었다.

 

불안감을 조성하는 허공에 뜬 돌은,  무의식의 세계를 현실 공간에 끌어들인 것 일까?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작가 마그리트가 연상되는 작품이었다.

실물인 돌을 그림과 연결시켜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다.

 

꿈과 실제의 구분을 허문 작품들은 돌 덩이에 의한 중량감으로

화면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감지할 수 있었다.

 

작품에 등장한 돌의 형태 또한 기묘했다.

때로는 섬이 되거나 산이 되어 서사적 의미를 더했다.

 

그날따라 이재민씨의 돌이 무겁게만 느껴졌던 것은

비명에 떠난 청춘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한 몫 했으리라.

 

이 전시는 오는 118일까지 열리니, 추모기간 동안 많은 관람을 바란다.

나무화랑은 인사동 합동 분향소와 백 미터 지점에 있다.

 

다 같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합시다.

 

사진, / 조문호

 

 

이것은 돌이다

이재민展 / LEEJAEMIN / 李在民 / painting.mixed media 

2022_1026 ▶ 2022_1108

이재민_복제와 전이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82×122cm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이재민의 "이것은 돌이다" ● 하나의 현상을 두고 상호 다른 세계를 감지하거나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장자 제물론의 호접몽(胡蝶夢)은 꿈과 실재, 주체와 타자의 구분을 무화시키는 도가적 사유를 보여준다. 이 호접몽을 각색한 듯한 영화 매트릭스(Matrix)는 디지털 가상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교란한다. "네오, 너무나 현실 같은 꿈을 꾸어본 적이 있나? 만약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그럴 경우 꿈속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어떻게 구분하겠나?" 라는 모피어스의 대사는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런가 하면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웜홀(Wormhole)을 통해서 우주와 지구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다. 또 양자역학에서 물질과 에너지의 질량과 위치가 궁극적으로 불확정적인 관계는 또 어떤가. 이런 철학적 관념, 과학적 가설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 중국의 산해경, 우리 단군신화 모두 신계/인간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런 예는 기존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 시간, 물질, 사물과 존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재민_불안한 중력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82×40cm_2022
이재민_아직도 어두운 밤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61×82cm_2022
이재민_어떤 풍경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38×68cm_2021

이재민의 작업도 화면에 불러들인 실체인 '돌'과, 그 돌'그림'과의 관계항을 주요 모티프로 활용한다. 이미지 공간인 화면 안으로 실제 오브제인 돌이 들어오게 함으로써, 실제의 돌과 그 돌을 정교하게 그린 돌의 이미지를 병치하는 구성이다. 그러면 이 그림 내부 이미지 공간에 위치한 실재의 돌은 과연 사물인가 이미지인가, 라는 의문이 들게 된다. 물론 실재 사물인 돌과 그 돌을 재현한 일류전인 '돌'은 같을 수 없다. 하나는 물질이고 다른 하나는 그 돌의 모사인 환영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이재민은 이 둘을 나란히 제시하면서 "이것은 돌이다"라고 전시 제목으로 선언한다. 주어와 서술어 각 한 단어로 구성된 간단하고도 명징한 문장. 그야말로 「이것=돌」이라는 확정적 명제다. 비유나 서술도 없는 액면 그대로, 돌과 돌 이미지가 자신의 그림에서는 이미 통일된 하나의 실재란 뜻인 것처럼.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이것은 돌이다"라고 선언한 이재민의 미술행위는 결국 그 반대로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쓴 마그리뜨의 명제와 같은 구조가 된다. "크레타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처럼, 참/거짓의 논리적 경계를 교란하는 유기적 혼돈구조 말이다. 그러니까 이재민에게 있어서는 실재계(돌)/상징계(모방)가 상호 모순을 드러내되, 결국 "이것은 돌이다"와 "이것은 돌이 아니다"라는 명제는 오히려 같다는 뜻이 된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이재민의 작업노트 한 구절을 보자.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것은, (과거 내가) 빠르게 움직이며 살았던 삶의 반증이다." 이 문장은 경험을 기술한 것으로는 논리적이되, 그 기준을 제시할 수 없으므로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비논리적이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이나", "빠르게 움직이며" 살았던, 이재민의 경험에서 그저 상대적으로 느끼는 이 속도감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을 것인가. "어둠 속에서만 있으면 밝음을 알지 못 한다"는 작가노트도 마찬가지 진술이다. 여기서의 밝음과 어둠 역시 광량과 조도의 문제가 아니라, 굴곡진 인생사의 비유임에랴. 그러니까 이재민의 "이것은 돌이다"라는 선명한 전시명칭은, 이런 그의 의식세계에 대입해보면 결국 "이것은 돌이 아니다"와 같은 맥락으로도 기능한다. 이것과 저것의 분리와 구분이 굳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이재민_핵2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61×46cm_2022
이재민_핵3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46×61cm_2022

실재 작품들을 보자.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한 화면에 특정한 형태의 돌을 꼼꼼하게 재현하고, 그 옆에 재현의 대상이었던 실제 돌을 붙여 놓았다. 오브제와 일류전이 하나의 화면에서 결합한다. 텅 빈 바다와 하늘 풍경에 돌이 떠있는 이런 기법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겨 구사한 전치(轉置, 떼뻬이즈망) 기법인데, 거기에 돌 이미지의 실제 원형 오브제인 돌을 병치시키면서, 다시 전치 효과를 사살하는 묘한 이중구조가 형성된다. 본디 콜라주·아쌍블라주·오브제와 초현실주의자들의 일류전을 통한 전치는, 사물을 익숙하지 않은 때와 낯선 시공간에 위치시킴으로 본래 성질과 기능을 전혀 다른 맥락으로 바꾸는 기법이다. 그런데 이재민의 화면에서는 일류전인 돌과 오브제인 돌이 병치됨으로 인해 오브제와 일류전이 같은 기능을 하게 된다. 즉 돌이 여타의 이미지로 변하는 전치는 되었으나, 한편 오브제인 돌의 등장으로 돌의 이미지가 다른 맥락과 기능의 돌로 전치되지 않고 여전히 돌로 남는다는 뜻이다. 전치효과가 일어나다가 실제 사물과의 연동으로 전치가 교란되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마그리뜨가 파이프를 정교하게 재현한 이미지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쓰면서 재현의 리얼리티에 대한 문제 제기에 덧붙여, 이재민은 그 환영에 실물인 돌을 추가로 첨부함으로서, 이 작품의 돌이 일류젼인지 오브제인지를 다시 되묻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재민의 이번 전시 명칭인 "이것은 돌이다"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마그리뜨의 문제제기에, 자신의 회화는 "일류전=리얼리티"가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한다는 입장을 보이는 셈이다. 사실 모든 미술은 시각을 넘어서는 조건에서도 이미지다. 현대미술의 숱한 전위들도 결국은 이미지로 그 주제를 드러낸다. 개념미술의 언어에 의한 연상과 논리와 해석도 언어의 이미지로 귀착되고, 이미지를 거부하며 사물 자체의 리얼리티로 제시된 미니멀도 관객의 기억에는 결국 형태와 질감으로 저장된다. 작가로서 이재민은 채집한 돌(오브제)과 그린 돌(일루전)을 동일시하면서, 그것을 연상으로 이미지화하고, 또 보는 관객들도 그러길 바라는 듯하다. "이것은 돌이다"라는 그의 명제는 결국 이미지/오브제의 구분 너머 그의 주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이 중요하다는 것이겠다. 기법은 주제를 강화하는 보완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는 뜻과 같다.

 

이재민_휴식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122×82cm_2022

그러면 이재민이 오브제와 일류전의 구분을 넘어서서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내용이 중요한데, 그게 무엇일까? 먼저 자연인 바다·하늘·섬·산·대지 등과 같은 배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돌을 통해서 이재민의 말하려는 내용의 무대다. 거기에 등장하는 돌은 배경과 함께 있는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다. 거기에 자연에서 가장 견고한 돌을 그리고, 또 실재 돌을 화면에 부착함으로,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고 경계 짓는 개념적 습성의 무용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각자 "스스로 그렇게" 생긴 대로의 돌로부터 이재민은 유사형상을 발견하고 이미지화 한다. 일종의 아포페니아(Apophenia)이자 빠레이돌리아(Pareidolia)다. 돌이 독도도 되고, 구름도 되고, 산도 되고, 맨드라미도 되고, 섬도 되고, 독수리도 되고, 심장도 되고, 낮과 밤의 이미지도 되고, 공룡의 뼈도 되고, 사람의 얼굴도 된다. 그리고 그렇게 돌이 풍경으로 전치되고 이미지화 되는 사이로, 가끔 핵무기가 발사되는 '반-자연'의 장면을 삽입해서 서사적 내용도 덧붙인다. 이 지점에서 보자면 이재민에게 있어서 '그린다'는 것과 오브제를 '제시'하는 것은, 그가 원하는 형상으로 접근해가는 의지로 귀결된다. 그것은 사물성과 환영이 어떻게 상상의 볼륨을 증폭할 것인가라는 그의 원초적 충동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결국 "이것은 돌이다"라는 명제는, 자연과 자신의 이미저리(imagery)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이재민의 감수성과 작업을 표상하는 수사이자, 그에게 있어서의 리얼리티라 하겠다. ■ 김진하

 

 

Vol.20221026e | 이재민展 / LEEJAEMIN / 李在民 / painting.mixed media

두려움 없이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 

2022_1005 ▶ 2022_1024

 

최경선_두려움 없이_캔버스에 유채_162×130.4cm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이번 『두려움 없이』展은 크지 않고 나지막한 발성으로 최경선 자신의 회화적 호흡을 확인하는 프로세스인 듯하다. 이 전시타이틀은 최경선이 바라본(혹은 기대하는), 그래서 그림으로 형상화한 아이들의 평화로움에 대한 간절한 기원의 서술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제야 자기식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작가적 내면의 비유로도 보인다. 중국 북경에서 거칠 것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작업을 하다가, 귀국한 지 십 년. 한국에서의 그동안은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다. 가정주부로서 여러 역할(사업가의 아내, 대입 입시생의 엄마, 시부모의 며느리, 친정엄마 딸, 기타 등등)의 수행과 함께 시간적·경제적·공간적 제약들로 작업에의 집중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신작 개인전도(2015, 2017), 북경에서의 작업으로 구작 개인전(2019, 2020)도 가졌지만, 그가 원한 만큼의 수준이나 성취도에는 이르지 못했던 모양이다.

 

최경선_꽃 피는 첫번째 들판_종이에 수채_40.8×30.8cm_2022

이번 전시작들은 그런 부담으로부터 훌쩍 벗어난 집중의 결과물로 보인다. 그림마다 조형적 의도와 일치하는 그리기 형식이 자신만만하게 결합되어 있고, 집중된 상태에서의 일획의 붓질은 두 번의 덧칠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형상을 단단하게 구축하고 있다. 대상의 재현을 목적으로 한 묘사로부터 일탈해서, 마치 문인화의 담백하고도 긴장된 일획의 필력처럼 직관적으로 자신이 의도한 분위기로 화면을 주조해냈다. 게다가 모든 그림을 다 보아도 같은 유형의 붓질이나 터치가 없다. 각각의 그림과 부분마다 그 맥락과 조형에 꼭 필요한 만큼의 긴밀한 회화적 날것의 표현들이 몸의 직접적 궤적을 생생하게 현전해내면서 말이다. 경쾌하고도 날렵하게. ● 비유하자면, 지속적 주제였던 소외되고 방치된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생명력을 고양하는 존재(자연)임을 확인한 순간의 기쁨으로 드러낸 것이라고나 할까. 아이들이 오히려 작가에게 삶의 에너지를 제공해준다는, 능동적이고도 긍정적인 자기 깨달음을 회화로 증명한 것이라 여겨질 정도로. 뻔하게 반복적으로 그리는 클리셰 없이 작품마다 다르게 전개되는 이런 즉발적 표현성은 긴밀하고도 예민한 회화적 내공이 그 바탕에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최경선_날마다_캔버스에 유채_53×41.2cm_2022

그러나 이런 점은 작가의 지극히 감성적 영역에서의 작업과정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최경선의 이번 전시작들이 또 다른 큰 변주 직전 자기 확인의 지점 같다는 언급은, 바로 이런 주관적·감성적 표현으로부터 좀 더 넓게 사회화할 수 있는 다음 작업에 대한 기대치에 대한 언급이다. 제도적·구조적으로 "배제된" 아이들이 엄연하게 존재하는 현실에서는, 작가의 내밀한 감수성과 더불어 인식적인 면에서도 좀 더 주제를 사회화할 수 있는 내용적 기제의 창발 또한 작가의 몫이라서 그렇다. 최경선의 회화적 능력을 확인하는 이번 전시에 이어, 더"두려움 없이"자기갱신으로 도전하는 다음 작업들이 그런 내용의 '태풍'같은 소통을 불러일으키기 기대해본다. 작가에게 관객의 기대는 곧 다음 작업에 대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부담은 또한 작가의 사회적 책무이기도 한 것이니... ■ 김진하

 

최경선_볕 든 산성_캔버스에 유채_90×100cm_2022

『두려움 없이』란 제목은 한 보도 사진에서 비롯되었다. 뉴스 중에 나온 한 장면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얀마의 젊은 남성이 아이를 업은 채 장총을 들고 대치 중에 있었다.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아이와 위험한 상황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과, 아이를 지키겠다는 아버지로서의 결연함. 위기에 대처하는 그의 모습에서 숭고함이 느껴졌다. 위기 앞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이 장면은 작품 「두려움 없이」의 모티브가 되었다.(그림에서는 총이 아닌 확성기로 그려졌다. 확성기는 언어의 힘에 대한 은유이다.)

 

최경선_일어서는 풀_캔버스에 유채_100×80.2cm_2022

지난 몇 년간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을 겪으면서 일상엔 이전과 다른 긴장감이 자리 잡게 되었다. 사실 나는 드러난 위협이라고 할 수 있는 팬데믹보다 왜곡되는 언어들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태를 양산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더 두려움을 느꼈다. 범람하듯 몰려오는 위기 증후는 근본적으로 부조리를 상쇄시켜왔던 인류의 정화 능력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신뢰를 이루는 언어는 오염되었고, 양육과 책임의 마음을 잃은 인류의 생존방식은 점점 더 비관적으로 보인다. 두렵다. 그러나 견고한 것은 없다고 알려준 위기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 폭력적이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것을 찾아 자연을 자세히 보도록 하였다. 낮아질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존재의 약함보다 두려움이 삶의 장애가 됨을 알게 된다. 만약 우리가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면 우리는 회복으로 활성화된 생명의 움직임을 좀 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 주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만이 생명적 보탬의 행위로 이어질 것이다. 인간의 긍정성을 믿고 움직였던 사람들로 인해 위기가 극복되어 왔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최경선_묵묵한 활보_캔버스에 유채_53.3×45.5cm_2021

나는 자연의 메커니즘에서 언어의 순수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의 일원으로서 스스로의 생명적 가능성을 신뢰할 때 기꺼이 살림의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잃었던 돌봄의 마음들이 돌아와 사회적 약자들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메마른 땅에 물과 빛이 닿아 생명이 움트듯 말이다. 이번 『두려움 없이』展은 자연에서 발견한 생명력을 통해 존재의 회복력을 형상화했다. 소재는 주변에서 만난 특별하지 않은 것, 연약한 것, 하찮은 것들이다. 번뜩이는 순간 노출되는 숭고함, 아름다움, 활력과 같은 내력을 느끼고 표현하고자 했다. 보호자가 있는 어린 아이의 안도감, 죽은 듯 누운 풀의 되살아남, 쉼이 없는 땅의 활력이 담기길 바랬다. 개인의 슬픔이 사회적 슬픔으로 연결될 때 회복이 시작됨을 말하고 있는 「슬픔이 들어갈 적절한 자리」,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책임 있는 존재의 중요성을 피력하고자 한 「두려움 없이」의 일련의 작품들, 풀의 생명력을 통해 연약함에 내재된 놀라운 가능성을 보고자 한 「일어서는 풀」, 축적된 보살핌과 성실의 숭고함을 보여주고자 했던 「날마다」 등이 있다.

 

최경선_슬픔이 들어갈 적절한 자리_캔버스에 유채_162×131cm_2021

그리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좀 더 붓질이 강조된 명료한 표현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전보다 안료의 물질감에 대해 자유로워지고 붓의 방향성은 다양해졌다. 형상은 단순화하며 표현성에 집중하였는데, 묘사가 생략된 대상은 마치 콜라주처럼 보이면서도 화면의 다양한 층의 형성하도록 평면화시켰다. 거기에 리듬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드러나도록 시도 했다. 이전보다 빛은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그 결과 더 신중하게 선별한 색은 밝아지고 다양해졌다. ● 나에게 그림은 점차 '미지의 개척지'에서 '주변부와의 화해'의 기능으로 옮겨가는 듯하다. 오염되지 않은 언어로 발언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모두가 함께 겪는 이상 징후 앞에서 공동체 속으로 좀더 들어가야 함을 느낀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나의 슬픔으로 공감할 때, 인류의 저울 위에 생명의 추 하나가 올라간다고 생각해 본다. 불안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주변을 살피는 평범한 초인이 오늘도 내 안에서 출현하기를 기다린다. (2022) ■ 최경선

 

Vol.20221005a |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

모처럼 질퍽한 술자리가 인사동 곳곳에서 벌어졌다.

지난 수요일은 나무화랑에서 이명복의 어멍전이 시작되었고,

인사아트프라자에서는 박옥수의 시간여행이 열리는 날이었다.

 

코로나 규제까지 풀려 모처럼의 해방감에 많은 분과 어울려 바쁜 잔치 판을 오갔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란 말처럼 항상 많이 마셔 탈이다.

 

술 취해 사진은 얼마나 찍었는지, 메모리카드가 찼더라.

요즘 몸도 비실거리지만, 하던 일도 귀찮아 게으름을 피운다.

미루고 미루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뒷북치는 것이다.

 

전시가 열리던 날, 안국역에서 가까운나무화랑부터 갔더니

작가 이명복씨를 비롯하여 김진하관장, 박흥순, 이재민, 김구, 홍성미, 김양훈, 양상철, 김성명씨 등

여러 명이 전시를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주 사는 이명복씨는 4.3의 한 맺힌 응어리를 형상화하는 작가다.

전시된 어멍전에는 어머니의 초상과 일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한 사람의 인물을 그렸지만, 그 속에 우리 민중의 한이 서려 있었다.

 

어머니의 주름진 눈빛에서 지난한 세월의 아픔도 읽을 수 있었다.

잠시도 쉬지 않는 부지런하고 강인한 제주 어멍의 모습이었다,

어버이날을 며칠 앞둔지라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웠다

 

같은 시간에 개막된 박옥수씨의 시간여행‘ 사진전도 보러 갔다.

전시를 기획한 지승룡씨가 개막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반가운 분도 여럿 보였다. 박옥수씨 내외를 비롯하여

사진가 김문호, 김녕만, 곽명우, 정영신, 가수 장사익,

연출가 김혜련씨 등 많은 분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사익씨가 축가를 구성지게 불러 분위기를 띄웠다.

 

사진들을 돌아보니, 아파트가 즐비한 배경으로 쓰러질 듯

자리를 지킨 청계천 판자촌에서 부터 물지게를 지고 가는 어린 소녀들,

창경원에서 휴대 전축을 틀어놓고 춤추는 젊은이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연이 세월을 거슬러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사진가 박옥수씨는 나보다 나이는 두 살 아래지만, 사진은 한참 선배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진 활동을 해, 전시하는 사진들도 65년부터 80년까지의 시대상이다.

사진으로서의 가치는 물론 근현대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

 

그날 박옥수씨 부인도 처음 뵈었는데, 이토록 아름다운 미녀를 숨겨 둔지 미처 몰랐다.

더구나 연출가 김혜련씨와 절친이라는데, 세상은 넓고도 참 좁았다.

 

뒤풀이가 있는 사동집에도 반가운 분들이 있었다.

전시장에서 뵌 분 외에도 사진가 정장식, 심보겸, 성유나, 조명환씨를 비롯하여

김구, 김이하, 이만주, 노광래씨 등 많은 분이 어울린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사동집 주인 송점순씨가 보이지 않아 찾아보았더니, 주방에서 열심히 전을 부치고 있었다.

손님이 없어 일손을 줄여 쉴 틈도 없다며 바쁘시다.

 

안쪽 자리에는 미술평론가 유근오씨 일행이 마시고 있었다.

 

이 얼마 만에 맛보는 떼거리 술판이던가?

반가운 자리지만 다른 뒤풀이가 궁금해 급하게 마셨더니, 금세 술기운이 올랐다.

 

담배 피우러 나왔다가, 간다는 말도 없이 이명복씨 뒤풀이를 찾아갔다.

 

유목민으로 가다 보니, 길목 사랑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길가에 이명복, 장경호, 이재민, 박흥순씨가 나와 있었고,

안에는 손기환, 김진하, 김재홍, 고옥룡, 나종희, 송 창, 류연복씨 등 민중미술가들 판이었다.

 

장경호씨와 유목민‘으로 가보니, 그곳도 북적였다.

 

박성남씨를 비롯하여 임헌갑, 임동은, 이경희, 주홍수, 유준 씨 등 성함이 오락가락하는 많은 분들이 있었다.

 

뒤따라 사동집에 있던 김문호, 정장식, 정영신, 노광래, 김이하씨가 차례로 나타났고,

사랑채에 있던 이재민, 김 구, 김재홍씨도 합류했다

 

김명성, 김상현, 이상훈, 안원규씨 등 줄줄이 사탕이다.

 

! 이 얼마만의 이산가족 만남인데,

그냥 넘어갈 수 있겠냐 마는 다들 시간이 늦어 몸 사린다.

 

인사동에서 좋은 전시 있으면 작품보러 나오는 길에 자주 만나자.

 

 다시 뭉쳐 인사동에 봄바람 날리자.

 

사진, / 조문호

 

이명복 '어멍'전시장 사진 / 나무화랑

 

박옥수 '시간여행' 개막식 사진 / 인사아트프라자2층

 

박옥수 '시간여행' 뒤풀이 사진 / 사동집

 

  이명복 '어멍'전 뒤풀이 사진/ 사랑채

 

'유목민'에서 만난 사진 

 

춘자삼춘' 앞에 선 이명복작가

 

 

이 세상에 어머니란 말보다 더 편하고 정겨운 말은 없을 것이다.

어깨를 토닥이며 불러주던 자장가로 꿈꾸던 행복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

 

이명복_겨울 배추밭_75×60cm_2021

말만 들어도 코끝이 찡해지는 어머니를 형상화한 이명복의 어멍전이 어버이날에 맞춘 지난 54일부터 17일까지 열렸다.  몇 달 전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사진전이 열렸던 나무화랑’에서 다시 그 감회에 빠져든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연 없는 이가 어디 있겠냐마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잊을 수 없는 가슴 떨리는 일부터 생각난다.

 

이명복_휴식_한지에 아크릴채색_45.5×33.4cm_2022

낙동강 전투의 최후 보루인 내 고향은 피비린내 나는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내 나이 세 살 때였으나 겁에 질려 울지도 못했다. 포화가 잠잠할 즈음,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살던 집을 찾아 나섰다. 유엔군이 진을 친 남산 아래 미나리꽝 뚝 길로 지나칠 무렵, 피 흘리며 쓰러진 군인이 , , 이라 외치며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움켜잡았고, 옆에 선 군인은 그냥 가라며 총부리로 위협했다. 겁에 질린 어머니가 간신히 군인의 손을 뿌리치기는 했으나 뒤에서 총을 쏠까 염려되어 등에 업힌 나를 가슴에 끌어안고 뛰셨는데, 어머니의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흘렀다. 그때 느꼈던 어머니의 거친 숨결 속의 전율감은 숱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다. 이것이 가장 잊을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오랜 기억이다.

 

이명복_밭일_한지에 아크릴채색_45.5×33.4cm_2022

이명복은 역사와 현실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의 시대상을 그려내는 민중화가다. 제주로 간지 12년이 넘었는데, 제주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 참혹한 과거가 묻힌 곳이 아니던가? 그곳에서 질곡의 현장을 답사하며, 민중의 한맺힌 응어리를 형상화해 왔다. 그래서 그가 그린 그림은 붓으로 새긴 역사화에 다름아니다. 비록 한 사람의 인물을 그렸지만, 그 인물 속에 한 생애가 고스란히 들어있을뿐더러, 우리 민중의 한이 서려 있는 것이다.

 

이명복_감자_한지에 아크릴채색_45.5×27.3cm_2021

이명복 작품 중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작품은 2년 전 ''전에 내놓은 해녀 옥순삼춘이었다. 마치 흑백사진 같은 리얼한 표정의 슬픈 모습인데, 웃음을 머금었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애잔한 표정이었다. 마치 민족의 한이 한 여인의 얼굴에 응축된 것 같았다. 그리고 5월9일까지 '인사아트센터' 열리는 4.3기획전 바라·'에 출품된광란의 기억도 대단한 역작이었다.

이명복의 작품은 풍경마저 보는이를 슬프게 만든다. 상처받은 역사에 암울한 현실이 더해져 또 다른 감회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이명복_해녀-춘자삼촌_92×62cm_2021

이번에 보여준 어멍전에는 어머니의 초상과 삶터에서 일하는 모습으로 압축되었다. 역사의식에 바탕 둔 현실 수용으로, 어머니의 깊게 파인 주름과 눈빛에서 지난한 세월의 아픔을 읽을 수 있다. 잠시도 쉬지 않는 근면함과 강인한 생활력을 다시 한번 인식시키며, 숭고한 생명의 꽃을 피운 것이다.

 

이명복_봄바다_한지에 아크릴채색_45.5×27.3cm_2021

회화는 그 형식적 물리적 속성으로 인해 한 작품에 작가가 원하는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바로 이 한계를, 이명복은 풍경화-인물화-역사화라는 분절된 장르를 리드미컬하게 상호 연관시킴으로 종국에는 그가 원하는 내용과 주제를 형상성으로 드러내고 극복하게 된다. 이번 나무아트의 '어멍(어머니)'전은 거대한 역사화로 이르는 이명복 회화의 출발점이자 통로라 하겠다고 김진하 미술평론가는 적었다. 

이 전시는 오는 17일까지 열린다.

 

사진, / 조문호

 

이명복_귀로_한지에 아크릴채색_45.5×33.4cm_2022

 

요즘 사진 정리하는 일은 물론 포스팅마저 차일피일 하다 때를 놓치거나,

기억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누군 그만둘 때가 되었다지만, 돌아다니는 동안은

그 때를 기억할수 있는 일기를 아니 쓸 수 없다.

 

이 글도 한 주가 지나 더 이상 미룰 상황이 아니었다.

한꺼번에 두 차례 인사동 이야기를 하려니 사설이 길어졌다.

 

425일의 인사동은 날씨가 흐려서인지 분위기가 설렁했다.

 

나무화랑에서 열렸던 심현희씨 전시를 보았다.

 

자화상에서부터 주변 일상을 그렸더라.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동화처럼 자유롭고 순수했다.

 

거창한 이야기보다 작가 주변의 작은 풍경이라 더 애착이 갔다.

한 작가가 코로나의 암울한 시대를 겪으며 느꼈던

 주변 단상을 그만의 어법으로 말하고 있었다.

작가의 내공이 엿보였다.

 

옷가게 진열장에는 봄 처녀 치마가 들썩였고

필방 진열장에는 털 방망이가 주렁주렁 달렸다.

 

경고문 치고는 무지막지하다. 정신 나간 놈들...

 

일주일이 지난 52일도 인사동길을 걸었다.

 

북인사마당 초입의 제과점 자리는 수리하느라 분주하고 사람도 많았다.

 

모처럼 인사동의 봄이 실감 났다.

 

갤러리인사아트에서 열리는 고수정씨 그림을 보러 갔다.

 

작가의 사유를 우화화 한 작품인데, 무거웠다.

 

왜곡되거나 이그러진 형상들은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같았다.

 

고독한 현대인들의 심리를 대변한 걸까?

 

청소부로 다시 들어간 발렌티노 김을 길에서 만났다.

 

강제로 끌어내 '땡처리' 매장으로 둔갑시킨 코트

장사가 되지 않는지 상품을 철수하고 있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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