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공간 Speculation Space
원문자展 / WONMOONJA / 元文子 / painting
2023_0223 ▶ 2023_0305 / 월요일 휴관
주최 / 이화여자대학교 동양화전공 동창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사간동 78번지) 2층
Tel. +82.(0)2.720.5114
실험의 역정과 환원의 논리-원문자의 세계 ● 원문자는 한국(동양) 화가들 가운데서도 유독 실험성이 돋보이는 경우다. 그의 실험의 경지는 한국화이면서 동시에 한국화가 아닌 영역으로 나아간다. 흔히 한국(동양) 화가들 가운데 자신의 작품을 한국화가 아닌 회화라고 부르기를 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화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보편으로서의 회화의 영역에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주장의 내면에는 일반적인 장르로서의 관념화된 한국화라는 콤플렉스를 벗어나려는 욕구가 내장되어 있음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 같은 주장의 내면에는 그간 한국화가 직면해온 상황의 질곡이 유독 깊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떠올려야만 이해가 된다. 전통적인 회화- 우리 고유한 회화 양식이면서 그것을 애써 기피하려는 태도는 자기모순을 드러내는 일이다. 자신의 뿌리를 외면하는 일이다. 한국화에 가해졌던 그 모든 모순을 대담하게 직면하면서 한국화의 존재를 다시금 세워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이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원문자의 실험을 한국화이면서 동시에 한국화가 아닌 영역으로 이르는 것이라고 한 것도 이와 결부된다. 말하자면 그의 실험은 한국화를 기피하는 데서가 아니라 한국화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화이면서 동시에 한국화가 아닌 영역으로 나아가는 정당성이다. 이는 한국화라는 특정한 관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만, 또한 한국화란 어떤 것인가란 원형과 정신에 대한 물음을 동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실험의 출발이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서 왜 그리느냐는 실존의 입장에서란 사실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실존의 세계에 들어간 만큼 그의 실험은 치열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그의 실험의 편력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한지의 발견과 원용을 먼저 지적할 수 있다. 한지의 발견과 원용이란 어떻게 보면 한국화 고유의 질료의 발견이자 원용이 아닌가 하는 물음이 나올 수 있다. 한국화 고유의 질료를 다시금 발견하고 원용한다는 자체가 모순이지 않는가란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자신 속에 있던 것을 자신이 다시금 발견한다는 것이 되니까 모순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자기가 발견한다는 것은 밖에서의 발견보다도 더욱 내밀하고도 놀라운 것이지 않을 수 없다. 들라크루아가 자신은 밖에서 영향을 받기보다는 자기 내면에서 영향을 받는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화 고유의 질료에 대한 발견은 또 다른 회화로서의 가능성을 담보한 것이어서 발견의 의미는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화의 매체는 지, 필, 묵이라 말해진다. 이는 서양화와 같은 단순한 바탕과 붓과 안료의 의미를 벗어나 그 자체가 일체화된 문화적 현상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만큼 신체화된 존재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지의 발견이란 단순한 지지체로서의 바탕인 화선지의 영역에 갇힌 것이 아닌 한국에서 생산된 재래적 방법의 종이 일체를 말한다. 한지의 발견과 원용이란 따라서 한지가 지닌 질료 즉 물성으로서의 존재의 발견이 된다. 원문자의 한지의 실험도 여기에 바탕한 것이다. 한지의 물성을 적극적으로 조형화의 단계로 끌어올린 것은 몇몇 서양화가들에서도 시도된 바 있다. 그런데도 원문자의 실험이 한결 돋보인 것은 한국화 영역에서 가장 먼저 시도되었기 때문이다. 자기 속에서 자기를 발견했다는 차원에서 그의 시도가 더욱 의미를 더해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 그의 한지의 실험은 일종의 원형 탐구라 할 만큼 종이의 제작과정을 되돌아간 것이기도 하였다. 한지의 질감을 더욱 푸근한 정감의 세계로 진전시키는가 하면 종이의 원료인 닥을 다시 물에 해체하여 그것을 부조의 형식으로 떠내는 요철의 구조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면모를 보였다. 반입체적인 부조의 형성은 평면이자 동시에 입체성을 띤 것으로 회화이자 동시에 조각이라 할 수 있는 혼융의 조형물이기도 하다. 이 같은 실험은 종이를 애초의 질료로 환원하면서 종이의 물성이 지지체로서의 존재를 재확인한 것이기도 하였지만 한지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한지일 뿐이라는 실존으로서의 차원을 현전시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의 실험의 전개는 근래에 오면서 또 하나의 경지를 펼쳐 보이고 있다. 새로운 매체로서의 사진 방법의 원용이 그것이다. 「새로운 시각의 사유 공간」으로 명명된 이 실험은 일종의 디지털 미술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방법 자체를 강조해 「포토 아트」라고도 불린다. 이 새로운 실험은 지금까지의 실험의 양상과는 또 다른 탐구의 영역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수묵 위주나 종이의 물성의 탐구영역과는 그 맥락을 달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화사한 색채의 구현과 기계적인 방법이란 새로운 감각의 탐구가 현저하면서도 한편으론 오랫동안 자신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또 다른 감성의 확인이라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송희경은 이를 두고 「사진을 뛰어넘은 회화」「작가의 손을 거친 창조된 원문자의 고유의 회화」로 규정하기도 한다. 기계적인 방법의 원용이면서 전혀 그런 생소한 기술적 면모를 드러내지 않은 작가 고유의 감성이 무르익어감을 발견하면서 한편으론 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화사한 색채의 세계가 되살아나고 있지 않나 보인다. 이 역시 자신 속에서 발견된 조형의 한 원천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의 근작은 새로운 실험의 영역을 보인다기보다는 어쩌면 그의 지금까지의 조형의 역정을 종합적으로 가다듬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만큼 대범하면서도 자유로운 사유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고 하겠다. 때로는 날카로운 선획과 이에 대비되는 물결치는 곡면의 형성은 화면 자체를 더욱 탄력적으로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화면의 스케일이 더욱 넓어진 면모를 확인한다. 빛과 어둠, 유기적인 것과 무기적인 것, 기하학적인 형태와 생명적인 형태의 공존이 자아내는 극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화면은 더없이 푸근한 정감을 주는 것도 허심한 화면의 확대에서 연유된다고 본다. 부분보다 전체가 앞서는 것은 그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있다는 증좌이기도 하다. 달관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까. ● 부단한 실험을 통해 자신을 거듭나게 하는 방법의 치열성에도 불구하고 화면엔 한없이 가라앉는 깊이의 여운이 지배되는 것은 그 모든 실험에서 일어나는 독소를 극복하고 언제나 자신으로 되돌아왔다는 증거로서 말이다.
원문자의 세계를 일별해보는 과정에서 다시금 확인되는 것은 그의 조형의 바탕이 대단히 균형 잡힌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는 점이다. 평면적인 요소와 구조적인 요소가 그것이다. 평면이면서 동시에 구조인 세계, 또는 평면적이면서 언제나 구조를 지향하려는 충동과 구조적이면서 언제나 평면을 지향하려는 욕구가 교차하고 있어 변화와 지속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게 한다. 억제된 표현의 환원 의식과 자기를 대담하게 벗어나려는 일탈의 자각과도 일치되는 점이다. 어쩌면 이 같은 균형감각이야말로 그의 사유 공간을 더욱 깊은 내면으로 이끌어가는 동력이 아닌가 생각된다. ■ 오광수
Vol.20230223c | 원문자展 / WONMOONJA / 元文子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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