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정초가 되면 올해가 무슨 띠의 해이며, 띠 동물이 지닌 상징성에 대해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나아가 자기 띠를 이용해 새해 운수를 점쳐 보기도 한다.
12동물 띠는 12년을 주기로 한 바퀴 돌아가는 시간의 표현이면서도 12방위라는 공간적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12띠는 사주팔자 같은 미래 예측학에서 중요시 여길 뿐만 아니라 풍수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2띠를 풍수적으로 살펴보자. 원(360도)을 기준으로 12띠(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는 각각 30°씩 공간을 차지한다. 이때 자신이 태어난 띠 등을 기준으로 풍수적으로 유리한 방위와 불리한 방위를 구분할 수 있다. 이를 테면 호랑이- 말- 개 띠 생들은 미(未·남남서) 방향이 길하고, 돼지-토끼-양 띠 생들은 진(辰·동동남) 방향이 길하고, 원숭이-쥐-용 띠 생들은 축(丑·북북동), 뱀-닭-소 띠 생들은 술(戌·서서북) 방향이 길하다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각각의 띠에는 흉한 방위도 있다(아래 그림 참조).
이런 식으로 해서 흉한 것은 피하고 길한 것을 취하는 피흉추길(避凶趨吉)의 풍수 공간이 설정될 수 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너무 급작스럽게 변하고 있기 때문인지, 올해 들어 더욱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강해지는 듯하다. 이는 동양철학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부쩍 늘어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계묘년(2023년)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춘(春) 2월, 열두 띠 동물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전시회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자리한 무우수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K-ART Ⅵ. 십이지 전(展): 열두 동물로 살펴보는 한국의 문화 코드’라는 주제로 열린 이 전시회(다음달 30일까지)는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을 위해 마련한 특별 기획전이다.
관람객들의 호응도 좋은 편이다. 갤러리측은 12띠를 보다 다채롭고 재미있게 이해시키고자 다양한 장르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한국화가, 불화작가, 민화 작가, 조각가, 팝아티스트로 구성된 13명의 작가가 민화, 한지화, 비단 채색화, 수묵화, 도자, 조각, 팝아트 형식으로 열두 동물을 선보이고 있다.
무우수갤러리의 양효주 학예실장은 “K(Korea)로 표현되는 한류가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덩달아 음양, 오행, 12지 같은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 역시 부쩍 늘어나 전시를 기획했다”라고 밝혔다.
이 전시회를 찾아온 관람객들에게서는 흥미로운 점도 발견된다. 특정 동물을 표현한 작품에서 유독 오래 감상하는 이들을 보면 대체로 자신이 태어난 띠에 해당하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태어난 띠의 동물들이 각기 자신의 수호 동물처럼 느껴지는 우리식 정서 때문일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음양, 오행, 십이지지 등 동양철학을 직접 배우려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경기도 과천에서 1주일에 한 번씩 공공기관에서 주관하는 동양철학 강좌를 듣고 있는 주부 이모 씨(59)는 “초등학교에서 대학교 졸업 때까지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수강하고 있다”면서 “수강생 중 나 같은 초짜는 별로 없고, 어느 정도 기초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의 신분은 공무원, 교사, 직장인 등 다양하다. 현직 교사인 김모 씨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진로 상담을 해주고 있는데, 사주명리학으로 아이의 적성을 찾아주는 방법이 있다고 해서 배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교사는 은퇴 후 명리학을 응용한 진로 컨설팅으로 제2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50대 직장인 최모 씨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성격유형검사인 MBTI와 명리학의 성격 분류법을 응용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라면서 “은퇴 후 취미 생활이나 재능 기부에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밝혔다.
주역, 관상, 풍수 망라한 ‘동양학 잔치’ 열려
동양철학에 대한 이런 열기는 제도권 대학까지 파고드는 추세다. 이달 25일(토) 오후 2시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한양대 박물관에서 열리는 동양학 대토론회가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토론회는 국내 처음으로 주역, 수상(手相), 점복(占卜), 부적, 관상, 풍수 등 동양철학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발표와 토론을 하는 ‘동양학 잔치’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인도 무료로 얼마든지 참여 가능하다고 한다.
한양대 대학원에 설립된 동양 문화학과(석·박사 과정)가 주도하는 이 세미나는 각 분야 전문가가 ‘동양학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를 다루게 된다고 한다. 이 토론회를 기획한 한양대 박정해(동양 문화학과)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는 시점에서 동양학의 현재를 짚어보고 동양학의 미래지향적 가치를 살펴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마련했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양대 동양 문화학과에 석·박사 과정으로 진학한 학생들 대부분이 일반인 신분이라고 밝혔다. 아마추어로 명리학을 독학하다가 본격적으로 제도권 대학원에서 실력을 쌓고 싶어서(우○○ 씨), 풍수 문화가 짙게 깔린 우리 문화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기르고 싶어서(김○○ 씨), 젊은 시절 겪었던 운명적인 사건 사고에 대한 의문점을 풀고 싶어서(박○○ 씨, 최○○ 씨) 등 사연들은 다양했다. 이들은 동양철학이 박제화된 철학이 아니라 21세기 4차산업혁명 시대에도 응용이 가능한 알고리즘을 갖추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런 현상을 풍수적으로 풀어보는 방법도 있다. 한국에 도입된 이론 풍수학 중 하나인 ‘현 공 풍수’는 현재 지구의 운기(運氣)가 간괘(艮卦; 주역 8 괘 중 동북방에 배치된 괘)에서 이괘(離卦 ;남방에 배치된 괘)의 기운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내년부터 시작해 향후 20년간 ‘화(火)’를 주관하는 이괘 시대가 펼쳐지는데, 사람들이 그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고도의 정신문화, 종교, 항공 우주산업, 가상 자산 및 가상 공간 등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화’는 높은 것, 보이지 않는 것, 정신적인 것 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고도의 정신문화인 동양철학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동아일보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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