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잠

 

김재홍展 / KIMJAEHONG / 金宰弘 / painting 

2021_0602 ▶ 2021_0615

 

김재홍_거인의 잠-202103_천에 아크릴채색_161×330cm_202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80218a | 김재홍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김재홍의 최근작에 관한 인상 ● 블랙홀과 은하수가 어둠과 가녀린 빛으로 불규칙하게 휘감고 돈다. 인력과 척력이 미끄러지며 서로 밀고 당기는 불규칙한 중력의 뒤틀림인 듯, 공간이 휘거나 꼬이는 우주의 모양새다. 또는 풍화를 견디고 견디다 마침내 단단하고 반질반질하게 경화된 태토의 질감과 굴곡이 무한하게 긴 시간을 은유하는 땅 거죽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 목젖 아래 쇄골 한 부분 풍경이다. ● 특정한 대상이 이 정도 광대무변한 시공간으로 유동하고 확장하며 중층적인 이미지를 배태해낸다는 거, 신기한 일이다. 서술이나 서사를 배제한 일류젼일 뿐인데 말이다. 동적인 기운이"모였다가 흩어지고(聚散), 굽혔다가 펴지고(屈伸), 왔다 갔다(往復), 맑고 흐리게(淸濁), 곱다가는 거칠게(粹駁)"형상을 발현하는 듯하다. 이런 시각성의 변주는 기호가 아닌 상징이라서 가능하다. 여타 시각정보를 담는 목적의 그래픽과 다른 이 모호한(?) 장르가 여전히 존재하는 건 이 때문이겠다. 김재홍의 최신작, 대략 300호가 넘는 「거인의 잠- 202103」이란 작품 얘기다. ● 거기엔 대상을 재현하거나 묘사한 구상성의 속박이 없다. 액티브한 동작이나 물질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소재에 대한 서술성을 최대한 절제한 바탕에서 드러낸 묵언의 형상성과, 능숙한 손맛과 붓질이 중첩된 질감의 세련된 감각이 회화적 쾌감을 발현한다. 이후 그림에 담긴 단서가 하나둘씩 자연스레 포착 된다. 미적 쾌감 이후 작가의 문제의식을 찾아보는 습관은 그래서다.

 

김재홍_거인의 잠-길13_천에 아크릴채색_162×340cm_2020
김재홍_거인의 잠-길20210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2×122cm_2021

화면엔 누군지 모르는 익명의 신체 한 부분이 어떤 단서도 없이 등장한다. 늙고 마른 노쇠한 몸. 여린 호흡. 앞선 다른 그림에서의, 그 몸에 드리웠던 철조망과 경계로(路)의 흔적으로 인해, 화면 속 인물의 인생사와 그가 온몸으로 관통해왔을 현대사가 고스란히 연동된다. 분단 이후 70년의 시간성도 함께 묻어 나온다. 생의 끝 지점, 소멸 단계에 이른 신체 주인의 치열했던 삶에 대한 경건한 헌사이자, 아직은 분리되지 않은 그의 혼(魂)과 백(魄)을 온전히 하나로 기억하려는 작가의 의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이 그림에선 둔중한 울림의 회화적 표지(標識)와 기의가 경건하게 다가온다, 내겐. ● 몸에 새겨진 기억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몸의 상흔이 희미해지더라도 마음의 상처는 더 깊어질 수도 있다. 기억 본능이 망각 의지를 배반하고,세월이 약이지만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개인의 자전적 아픔도 그럴진대, 하물며 이 땅 공동체에 가해진 폭력의 기억, 집단적 통증은 시간이 흘러도 줄어들지 않는다. 근대 이후 한반도 민중에게 가해진 폭력 서사를 보라. 식민지. 동족상잔. 4.3. 분단. 군사독재. 산업화. 도시화. 5.18. 신자유주의. 이전투구의 생존경쟁. 도저한 아픔의 연속이다. 혹독하다. 그 불가항력적 조건의 연장선에서 지금도 우리는 그 레이어를 겹쳐 쓴 채 고통의 연대기를 쓰고 있다. ●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사람들은 위대하다. 망각 의지보다 더 선명한 기억 본능으로 인해 고통스레 살아내며 버틴 질긴 생명력이니까. 그들의 견딤이 역사고, 역사의 주인인 그들이 거인이다. 그런 앞 세대가 저물어가는 지점을 김재홍은 상징적인 기억투쟁 행위이자 오마쥬로 이 회화적 기록을 남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구체적이고 서사적 진술이 아닌 이 방식은 회화라는 매체의 한계와 장점을 동시에 노출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읽는 사람마다의 독해의 기호와 방식 아니겠는가. 반성과 성찰을 담보하는 기억에의 의지 말이다.

 

김재홍_거인의 잠-장막-유리구슬_천에 아크릴채색_161×330cm_2021
김재홍_거인의 잠-202105-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97cm_2021

한편 작가의 설명을 생략한 채 쓰는 나의 이런 인상기가, 김재홍의 작업의도와 표현 때문인지 혹은 그렇게 보려는 나의 아포페니아나 파레이돌리아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이 그림에서 김재홍은 이전과 달리 대사가 아닌 방백과 지문(地文)으로만 주제를 이끄는 묵언의 장(Field)을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이는 회화적 상징이기에 가능한 거고, 그건 관자의 접근에 따라 그 결이 달리 해석될 수밖에 없다. ● 소재에 대한 특정한 사건·단서·기호·상황·설명·해석·연출을 소거한 채 주제를 침묵해버리는 역설적인 어법의 구사. 이제껏 직접적 형상으로 작업내용을 발설하던 김재홍의 작화법에 비하면 일탈이자 변화다. 작업을 끌고 가는 회화적 사유와 내공이 어느 정도 그의 몸과 일치가 되고 있어서일까. 새로운 회화공간으로 치환되고 확장하는 작가의 이런 변주는 관객의 주체적 상상력과 해석을 더 요구한다. 이런 시도는 그의 작업에 대한 공력이 깊어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나는 대본과 무대를 제공했으니, 연기는 관객 당신이 주체가 되어서 하시오"라는 연출자의 열린 소통에의 실험처럼. ● 이번 전시가 끝난 이후 다음 작품이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이 한 작품 얘기로 서문을 대신한 이유다. 그의 그림이 변하고 있다. ■ 김진하

 

 

Vol.20210602f | 김재홍展 / KIMJAEHONG / 金宰弘 / painting

 

대개의 전시가 시작되는 수요일의 인사동은 길거리에서 쉽게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

 

지난 25일의 수요일에는 ‘인사아트프라자’에서는 김윤수선생 2주기 추모전이 열렸고,

‘나무아트’에서는 나종희씨의 ‘터널’전이 열렸다.

그래서 인지 두 전시장 사이의 짧은 거리를 지나며 반가운 화가를 여럿 만났다.

 

난 안면은 있지만 마스크에 가려 헷갈릴 때가 많다.

화가 박흥순씨와 두시영씨도 만났고 김재홍씨도 만났다.

 

‘나무화랑’에 올라 가려니, 버스킹 나온 번개가 시비 걸었다.

 

“형은 좋아하는 노래가 뭐요?”

기다렸다는 듯이 ‘봄날은 간다’ 아이가‘ 했더니,

바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렸다.

 

아무리 갈길이 급해도 청성 맞은 그 노래를 2절까지 다 들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는 마지막 대목에서 눈물을 짠다.

 

사진, 글 / 조문호

 



자리에 누워 뒤척인 긴 시간의 피로를 걷어내려 촛불 아닌 카메라를 잡았다.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가 열린 지난 5일 오후3시 무렵, 지하철 서초역에 도착했다.




혼잡할 것 같아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나왔으나, 주변은 사람들로 꽉 찼다,
한마디로 인산인해였다.

또 하나 반가운 것은 태극기부대가 남용해 혐오감을 느껴 온 태극기를 되찾아 왔다는 것이다.




로터리를 중앙으로 사방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에서 전체 장면 장면을 볼 수 있어
어디든 자리만 잡으면 되지만, 한 자리에 머물 수는 없었다.
사진도 찍어야하지만 협력할 ‘광화문미술행동’ 팀도 찿아야 하고, 만나야 할 사람도 있었다,
사람에 밀려다니느라 자리 옮기기가 싶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를 헤매다 간신히 판화를 찍고 있는 김구씨를 찾았다.
판화 찍어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느라 정신없었다.
한 쪽에 보이는 ‘광화문미술행동’ 깃발따라 들어가니, 서예 퍼포먼스는 이미 끝난 후였다.

강병인, 정고암선생께서 글을 쓴 모양인데, 주위에선 풍물패가 신명을 지피고 있었다.




그런데, 글 써놓은 현수막에 드러누워 악을 써는 여자가 있었다.
진행요원들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는데, 의도적으로 손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마 지난번 광화문 태극기 집회의 여기자 성추행 비판을 염두에 둔 해프닝인 것 같았다.
경찰도 손댈 수 없어 결국 여경들을 불러와 끌어냈다.




그 곳에서 반가운 분들을 줄줄이 만났다.
김진하씨를 비롯하여, 김진열. 류연복, 박윤호, 정영신, 이재민, 장경호씨를 현장에서 만났고,
또 다른 곳을 지나다 김재홍씨와 손기환씨를 만났다. 뒤늦게는 대전에서 온 이석필씨도 만났다.
페북에서 만나자고 한 기국서씨와 신윤택씨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는데,
사실 그 곳에서 사람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침 사진가 하형우씨를 만나 김문호씨와 합류하게 되었는데,
이수철, 정영신, 박윤호씨 등 사진가 여럿명과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었다.
반주까지 한 잔 곁들여...



나오다보니 편의점 앞 탁자에 반가운 분이 앉아 있었다.
강원도 양양에서 온 정덕수시인이 예쁜 아가씨를 데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류연복, 김이하, 김진열씨도 찾아왔다.



시골에서 온 정덕수씨가 편의점에서 막걸리를 사오기에
“오늘 집회서 받은 일당 받은 것 다 쓰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씩 웃는다.
일당은 커녕, 일 제쳐두고 찿아 오느라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오로지 개검들 조지고 싶은 충정 하나로 돈 써가며 몰려 온 사람들이니까...




검찰개혁을 외치는 함성이 서초동 일대를 뒤 덮었다.
그 함성에 막힌 가슴이 뻥 뚫리며, 기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작은 기라도 보태려 나왔으나, 오히려 기를 받아 힘이 흘러 넘쳤다.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의 세가 하늘을 찌르니, 어찌 힘이 솟지 않겠는가?




사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은 대부분 공감하지만, 조국장관 수호에는 이견도 있다.
그분들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칸 태울 수는 없지 않은가?
거리에 나온 많은 사람들은 정치검찰로 목숨을 잃은 노무현 대통령을 상기시켰다.

조국장관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며, 그 때를 떠 올린 것이다. 
군중들의 손에 잡힌 피켓이나 외치는 구호가 잘 말해주었다.


‘이제는 울지 말자. 이번엔 지켜내자. 우리의 사명이다’



대표적인 구호가 ‘검찰 개혁 조국 수호’, ‘조국 수호 검찰 개혁’로 두 사안은 붙어 다녔다.
무대에는 소설가 이외수씨를 비롯하여 많은 시민들이 차례대로 나와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말했다.

신나는 공연도 이어졌는데, 그 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탈 없이 잘 어울렸다.
늦은 시간까지 불편을 감수하고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지켜 준 대단한 국민이었다.




지난 10월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태국기 집회와, 5일 서초동에서 열린 촛불 집회는 다른 점이 너무 많았다.
참여 인원수도 서초동이 더 많았지만, 그런 숫자놀음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자유한국당에서 동원한 집회와 자발적인 집회라는 차이점이 분명하고,
정당이 표면에 나선 것과 시민들이 주체가 된 것이 달랐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폭력에 의한 분노가 일었고, 한 쪽은 평화로운 놀이마당이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 세우는 논리나 어휘의 차원이 달랐다.
태극기부대에서 내세운 구호이긴 하지만 “문재인을 단두대로, 박근혜를 청와대로”란 현수막도 있었다.
이런 저질의 구호는 자유한국당 얼굴과 바로 연결된다. 그래서 태극기부대와는 거리를 두지만...
허구한 날 빨갱이 타령으로 덕 보더니, 저들 하는 짓이 빨갱이와 다를 게 뭐 있는가?
괜히 맛 불 놓는다고 돈만 쏟아 붙지만 헛짓 그만해라. “국 쏟고 뭐 디이는 격이다“




이제 보수정당과 연대한 정치검찰과 부패언론의 더러운 권력구조에 종지부를 찍어야한다.

긴 세월 일제에 빌붙어 권력을 휘두르다, 그 이후는 양놈에 달라붙어 죄 없는 국민을 빨갱이로 몰아 얼마나 많이 죽였는가?
제발 후손을 위해서라도 각성하라. 꼴통보수 정치인이건, 부패 검찰이건 새로운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고)문영태 화백의 ‘心象石’전이 지난 17일부터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2019년 ‘나무아트’의 '80년대 미술 되돌아보기 프로젝트-4'에 초대된 이 전시는

김포 '민예사랑'에서 열린 문영태 유작전을 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다. 


 



문영태의 ‘심상석’에는 기층 민중의 질긴 생명력과 한의 정서가 듬뿍 배어있다.
돌에 마음의 상을 새겨 넣은 ‘심상석’시리즈는 80년 광주 민중의 상흔을 담은 역작이다.
상처받고 소외된 민중의 아픔을 형상화 한 작품을 통해 민중미술의 진중한 힘을 느껴보기 바란다.






문영태는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한 지사이며 작가로서 미술, 문학, 사진, 기획 등

문화 전역을 넘나드는 팔방미인이었다. 민주화와 통일을 향한 작가의 의지와 순발력 그리고 친화력이

80년대 우리나라 미술운동의 중심 역할을 하게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문영태씨 이름 앞에는 지사, 선비, 작가 등 따라 붙는 수식어가 많지만,

그를 가장 우러러 보이게 하는 것은 자기를 숨기고 낮추는 겸손이었다.

그런 훌륭한 작가를 우리는 너무 일찍 잃었다.






지난 17일은 인사동에서 반가운 사람 만나는 셋째 수요일이기도 하지만, 이 전시는 빠트릴 수 없었다.

다시는 전시장에 드나들며 사진 찍어 올리지 않겠다는 글을 올린지가 잉크도 채 마르지 않았지만,

평소 너무 좋아하는 작가인데다, 미망인으로부터 많은 신세를 져 어쩔 수 없었다.






지난 김포 전시에서 작품을 보았으나 전시기획자의 작품 배치에 따라 느낌이 다르기도 하지만,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은근히 기다린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장에는 문영태 화백의 미망인 장재순여사와 딸 문지민씨, 그리고 딸의 품에는 외손자까지 안겨 있었다.

화가 김재홍씨와 성기준씨를 만났고, 김진하관장은 관람객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조용한 분위기였다.

뒤늦게는 화가 송 창, 나종희, 미술평론가 곽대원씨도 나타났다.






전시된 작품들을 돌아보니 마치 문영태 화백의 유령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단 있는 그의 미소가 작품마다 넘나드는 것 같았다.

상처 난 두상의 작품에서는 작가의 강한 저항이 느껴졌다.





화강암 같은 형상들의 질감을 위해 표면이 거친 속칭 '코끼리 똥지'를 사용했단다.
습기에 약한 누리끼리한 똥지에 그려진 그림들은 자연스럽게 얼룩덜룩한 무늬를 남겨
세월 풍화에 의한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더해 주었다.





이 전시는 5월7일까지 열리니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미술평론가 김진하씨가 쓴 문영태 화백에 관한 글이니 참고하기 바란다.
http://blog.daum.net/mun6144/5148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세 가지의 목소리를 내는 특별한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이흥덕의 불안의 에티카’(1)는 현대사회를 비판하고,

조신호의 “DMZ로 부터”(1)는 생태환경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민종은 나의 노래’(2), 자연은 자연으로 두라는

각기 자신만의 어법으로 쟁점화 시켰다.



 


작가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비판적 현실이 암울하고 참담할 뿐이다.

돈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 정신은 병들었고,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 마치 하루살이처럼 살아간다.

남이야 죽던 말든, 자연이야 망가지던 말든,

오로지 개인주의적 탐욕으로 똘똘 뭉친 것이다.

그 비정의 현실을 말하는 기획전이라 뜻하는 바가 크다.



 


이흥덕이 사회를 보는 불안한 시각은 꽤 오래 되었다.

40년 가까이 욕망이 이글거리는 우리 시대의 다양한 사회풍경을 풍자하고 비판했다.

불안한 현실을 그려내는 심리 도해로서의 지옥도고, 온몸으로 부대낀 보고서다.

    


 



해골 무덤에서 탱고를 추는 남녀 군상들, 구제역에 매몰되는 가축들,

전쟁놀이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

구덩이에 처박혀 떨고 있는 사람들, 십자가에 눌린 무력한 예수,

모든 작품들이 지옥이 따로 없는 오늘의 현실을 말해준다.



 


작가의 불안한 증상은 개에 쫒기는 사람으로 동시대적 폭력과 야만을 보여준

80년대부터 시작되었단다.

풍자적으로, 때로는 에로티시즘적인 수사학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상을 형상화해냈다.



 


흑백 목탄이나 초록의 유화 모노크룸,

또는 강렬한 색을 사용하여 마치 요지경이나 만화경 속에 들어 있는

무대처럼 몽환적 풍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원시의 울산 암각화처럼...




 

근대미술의 시조격인 고야의 동판화집 "이성이 잠들면 요괴가 눈 뜬다"라는 작품이 있다.(중략) 이흥덕의 그림도 거기에 맞닿아 있다. 요괴를 부정하는 근대도 지나고, 그 유산으로 '찬란한 문명(?)'을 성취한 현대도 100년 이상이나 지났건만, 우리는 여전히 요괴가 눈 뜨고 횡행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이흥덕은 그런 동시대를 때로는 겹 눈질로 때로는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의 불안을 임상보고하고 타자와의 미적·정서적 연대를 시도한다. 이는 보편적인 이웃과 더불어 인간욕망과 욕망이 야기한 폭력과 그로인한 '불안'을 바로 보고, 거기에 맞서려는 작가 이흥덕의 저항적 '에티카(Ethica)'에 다름 아니라 하겠다.“고 미술평론가 김진하씨가 썼다.




 

두 번째 작가인 조신호씨는 대학생 신분으로

한강미술관푸른깃발전에 참여한 적도 있단다.

일찍부터 시대정신에 눈 떠 현실에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미를 추구하는 그림에서 벗어나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다 18년 전, 살기가 어려워 파주로 들어가 DMZ를 접하며

생태환경에 빠지는 일대 전환을 맞는다.

고통 받는 동물들을 치료해 주며 스스로 위안 받았다고 한다.

지구의 환경오염이 인간이나 동물에게 미치는 심각한 폐해를 자각한 후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는 DMZ를 다닐 때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초월적인 힘은 도저히 용납하지 않았다.

인간을 끝없이 불안한 존재로 인식하며,

그런 문제의식을 그림으로 토해내기 시작 했다.



 


살기를 뻔뜩이며 날개 짓하는 독수리무리, 해골에 박혀있는 나무,

앙상한 나목을 마지막 보루처럼 지키는 조류, 하나같이 섬뜩한 장면이다.

마치 작가의 분노가 고스란히 화폭에 옮겨진 것 같다.

강렬한 색과 터치로 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미술평론가 곽대원씨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의 작품을 보면 영국의 화가 프렌시스 베이컨(1909-1992)을 연상케 한다. 베이컨은 고기와 형상과의 관계를 통해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작가다. 베이컨 그림에 나타난 인간과 동물은 아름다움보다는 처절함이다. 조신호의 작품에서 종종 비슷한 그림을 발견한다. 동물을 인간의 정형이라고 믿는 베이컨이나 조신호가 혹시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묻고 있다.

    


 



세 번째 작가 이민종이 나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내 놓은

일련의 작품을 보면 우선 나른한 느낌이 든다. 자극거리가 없다.

땅에서 시작되는 삶이란 원래 지루하고 따분하다.

성적인 말로 조루와 반대되는 지루의 상태로

언제 사정해 버릴지 모르는 아슬아슬함을 지닌 채 오래도록 지속된다.

본래 자극을 주는 것이란 쉽게 눈길은 가지만 금방 싫증을 느낀다.



 


마치 드론으로 찍은 부감사진 같은 풍경은

재현적인 사실주의라기보다 조형화한 산수화 같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아주 높고 치밀한 불완전함이 있다.

무기교의 기교이며, 무기교를 위장한 기교다.

바로 이것이 이민종 풍경화의 매력이다.



 


색을 중첩하는 채색방식이야 서양화지만, 동양화의 관점이다.

미세한 붓 자국으로 눈이 쌓이듯 잔잔하게 찍어 그렸는데,

작가는 사물의 물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물감의 흔적으로 화면 층을 깊게 하며,

붓 자국이 쌓이는 시간을 기다려 공간감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형상화해가는 방법이 아니라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에 있다.

자연은 그냥 그대로 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연은 지루해야 한다는 것이다.



 


겨울은 가능성의 세계이고 봄은 생동하는 계절이기에 선택되었으나, 계절 속 자연은 침묵으로 생명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동양사상의 핵심은 현실 속에서 주변과 자기마음을 조용하고 화평하게 하는 데 있다. 화가 이민종의 정신은 이러한 자연에서 발견한 감성적인 이미지를 재창조하는 것이다.”고 주성열교수가 적었다.



 


지난 30일 전시를 보러 금보성아트센터를 가야했으나,

그날따라 서울대학병원장례식장에서 열리는 김윤수선생 추모식 시간과 겹친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한 곳은 포기해야 할 텐데, 기어이 욕심을 부려 더 힘들게 만들었다.




   

먼저 전시장부터 들렸으나 이미 개막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금보성 관장과 미술평론가 김종근씨 등 작가들이 차례대로 나와 이야기들을 했다.

객석에는 류연복, 정복수, 이재민, 나종희, 김진하, 김재홍, 김구씨 등

반가운 분들의 모습도 여럿 보였다.



    

 

개막식이 끝나야 전시를 볼 수 있을 텐데, 행사는 지루하게 이어졌다.

그런데 류연복씨가 추모식에 갈 것이냐며 재촉해 온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다음 날 다시 볼 생각으로 나왔는데.

가보니 추모식도 이미 끝날 직전에 있었다.

반가운 분들이야 만났지만...



 


지난 2일은 아침부터 궁상맞게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정영신씨에게 연락해, 전 날 못 본 금보성아트센터전시를 다시 찾은 것이다.

작가 이흥덕씨는 자리에 없었지만, 조신호, 이민종씨가 있었고,

금보성 관장과 사진가 양재문씨도 와 있었다.



    


전시도 찬찬히 돌아보고 기념사진도 찍고, 관장실에 들려 커피까지 얻어 마셨다.



 


마침 서재에 전주의 류휴열씨 도록이 꽂혀 있었다,

! 이 얼마 만에 듣는 이름인가?

30년 전에 그의 주선으로 전주에서 전농동588번지전시를 연적도 있다.

어떻게 서로 전주와 서울을 오가며 이토록 무심하게 잊을 수 있었단 말인가?

다음에 전주 가면 꼭 한번 만나보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금보성 관장께서 내년에 나와 정영신씨에게 전시를 하란다.

난, 형편도 되지 않지만, 전시 같은 건 별 관심이 없으나,

정영신씨의 장터사진은 한 번 추진해 봐야겠다.

죽기 전에는 동지로서의 계약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한꺼번에 세 작가의 작업을 감상할 수 있는 이 전시를 놓치지 마라.

오는 17일까지 금보성아트센터’(02-396-8744) 전관에서 열린다.

 

사진, / 조문호












 



좌로부터 박불똥,김재홍, 김영진작가



김영진, 김재홍, 박불똥씨가 참여하는 Oh! Real?展이 지난 20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개막되었다.



박불똥작



1982년 미대 회화과 복학생이었던 김영진, 김재홍, 박불똥 세 사람은 개인적 사정과

시대현실에 대한 반항과 비판 등으로 스스로를 미술교육이란 제도 바깥으로 물러났다.

자기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고자 ‘낙동강 오리알’ 같은 외진 작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36년의 긴 세월이 흐른 오늘, 청년기의 각오를 되새김질하는 작업을 한데 모아 삼인 전을 마련하였다.
전시는 오는 7월2일까지 열린다.



김재홍작



개막식에는 참여작가를 비롯하여 김진하 관장, 장경호, 최석태, 유근오, 최명철, 신상철, 나종희, 정영신,

손기환, 홍성미, 김보중, 김경지, 조신호, 박세라, 이재민, 정재안, 김이하. 곽대원, 김태서, 김정대씨 등

많은 지인들이 참석하여 전시를 축하했다.



김영진작


사진, 글 / 조문호






















탐욕이 폭력으로 질주하는 비윤리성에 주목, 13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

2018년 03월 02일 (금) 13:32:22 조문호 사진가 press@sctoday.co.kr

화가 김재홍의 <살-(생.사.육)> 전시가 지난달 21일부터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살 연작'(108점)과‘Undressed’(5점), ‘동행’(6점) 등을 선보이는 14년 만의 유화작업이라 화단의 관심도 컸고 푸줏간을 연상시키는 전시이미지들을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의 SNS를 통해 공개한터라 나도 오래전부터 기다린 전시였다.




▲ 작품을 설명하는 김재홍 작가

내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동강의 ‘두메산골사람’을 기록할 때다. 동강이란 동일한 대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김재홍씨 그림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졌는데, 그가 동강에서 그린 작품 중 '모자상'은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뼝대가 수면에 반영되어 대칭을 이룬 작품으로 그 속에 모자의 얼굴을 형상화했다.


그는 그동안 그림책이나 동화책의 일러스트에 빠져 회화작업은 손을 놓고 있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작품을 2년 만에 완성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구상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1년이 걸렸다니, 실제 작업에 몰입한 시기는 1년 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그의 치열한 작가정신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인데, 얼마나 치밀했으면 처음 구상한 내용이 작업 도중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그림을 잘 그린다. 잘 그린 그림이 반드시 좋은 그림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 아니던가?

그의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좋은 그림이다. 동강의 일련의 작품들이 그랬듯이, 이번에 선보인 <살-(생.사.육)>은 마음을 움직이기에 앞서 하나의 충격이었다.



▲ 동행, 91x182cmx3, Oil on canvas,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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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행, 122x244cm, Oil on canvas 2017

사실적인 김재홍씨의 그림들은 사진적이기도 하다. 마치 붉은 조명이 켜진 정육점 풍경 같기도 하고, 몸 파는 홍등가가 연상되기도 했다. 인간도 욕망의 고기로 팔린다는 점에 동질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잔인성과 비도덕성을 각인시킨 이번 전시는 이광수 교수 말처럼 ‘인간은 악이다’란 말이 먼저 떠올랐다. 가축의 털을 벗겨 드러난 살을 보는 순간, 온갖 위선의 거죽에 가려져 있는, 인간의 본질을 만날 수 있었다. 

 



▲ Undressed, 91x182cmx3, Oil on canvas, 2017


그동안 맛있게 먹어 온 닭고기에 토할 것 같은 역겨움이 일어났고, 더 이상 육식은 않겠다는 결심에 이르게 된 것이다. 별 생각 없이 먹어 온 육식에 대해 다시 한 번 반성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데, 아마 이보다 더 가치 있고 흡인력 있는 작업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살-연작' 108개로 이루어진 가축의 도살 형상들은 때로는 인체가 연상되는 그림도 있었다. 여러 개의 인체를 가축과 뒤섞어 배치했는데, 가축을 지배하는 인간과 지배 당하는 가축을 같이 본다는 의미다. 


미술평론가 임정희씨는 전시 서문에서 김재홍의 그림에서 이미지와 메시지의 단순 연결을 우려하기도 했으나, 이렇게도 말했다. “이미지 자체를 사회적 실천의 산물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담는 기호로 확장시키면서, 이 이미지를 통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논쟁적인 사안들이 다루어지는 문화적 공론장의 중심을 세워가려는 참여적 실천행위였다”. 

자본주의의 탐욕과 인간의 폭력적 본능을 이처럼 실감한 적이 없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작품의 배치도 일조했을 것이다. 다닥다닥 붙은 이미지의 중첩성이 더 강한 메시지를 던진 것 같다. 

 



▲ 살 28x58cm 108개,유화)부분 2017


개막식 날 전시장에 들어서니 발 디딜 틈 없었다. 여지 것 내가 본 나무화랑에 이처럼 많은 작가들이 몰린 적은 일찍 보지 못했다. 다들 그의 작업에 주목하고 있었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108점을 연결한 작품 '살'을 한 눈에 볼 수 없어, 사람들 사이로 한 작품 한 작품 뜯어봐야 했다.

가축의 생애는 비참했다. 온통 내장이 드러나고 털이 벗겨진 채 매달린 소름끼치는 장면이었다, 비좁은 공장식 사육장에서 사료로 키워지고 오로지 인간의 배를 채울 고기로만 살찌워져서 도살로 생을 마감한다.


인간은 더 많이 먹고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동물의 살육을 합리화한다. 인간의 탐욕이 폭력성으로 질주하는 비윤리성에 우리 모두 주목해야 한다.


이 전시는 오는 13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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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재홍의 “살-(생.사.육)”전시가 지난 21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렸다.
푸줏간을 연상시키는 전시이미지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의 SNS를 통해 공개한터라 오래전부터 기다린 전시였다. ‘살 연작’(108점)과 ‘Undressed’(5점), ‘동행’(6점) 등을 선보이는 14년 만의 유화작업이라 화단의 관심도 컸다.

내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동강의 ‘두메산골사람’을 기록할 때다. 동강이란 동일한 대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김재홍씨 그림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졌는데, 그가 동강에서 그린 작품 중 “모자상"은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뼝대가 수면에 반영되어 대칭을 이룬 작품으로 그 속에 모자의 얼굴을 형상화하였다.




그동안 그림책이나 동화책의 일러스트에 몰두하느라 회화작업은 그의 손을 놓고 있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작품을 2년 만에 완성했다는 점이다. 그 것도 구상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1년이 걸렸다니, 실제 작업에 몰입한 시기는 1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의 치열한 작가정신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인데, 얼마나 치밀했으면 처음 구상한 내용이 작업 도중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그림을 잘 그린다. 잘 그린 그림이 반드시 좋은 그림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 아니던가? 그의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좋은 그림으로 생각한다. 동강의 일련의 작품들이 그랬듯이, 이번에 선보인 “살-(생.사.육)”은 마음을 움직이기에 앞 서 하나의 충격이었다.


 



사실적인 김재홍씨의 그림들은 사진 적이기도 하다. 마치 붉은 조명이 켜 진 정육점 풍경 같기도 하고, 몸 파는 홍등가가 연상되기도 했다.

인간도 욕망의 고기로 팔린다는 점에 동질성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인간의 잔인성과 비도덕성을 각인시킨 이번 전시는 이광수교수 말처럼 ‘인간은 악이다’란 말이 먼저 떠올랐다.

가축의 털을 벗겨 드러난 살을 보는 순간, 온갖 위선의 거죽에 가려져 있는, 인간의 본질을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 맛있게 먹어 온 닭고기에 토할 것 같은 역겨움이 일어났고, 더 이상 육식은 않겠다는 결심에 이르게 된 것이다.

별 생각 없이 먹어 온 육식에 대해 다시 한 번 반성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데,

아마 이보다 더 가치 있고 흡인력 있는 작업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살-연작"108개로 이루어 진 가축의 도살 형상들은 때로는 인체가 연상되는 그림도 있었다. 여러 개의 인체를 가축과 뒤섞어 배치했는데, 가축을 지배하는 인간과 지배 당 하는 가축을 같이 본다는 의미다. 미술평론가 임정희씨는 전시서문에서 김재홍의 그림에서 이미지와 메시지의 단순 연결을 우려하기도 했으나, 이렇게도 말했다. “이미지 자체를 사회적 실천의 산물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담는 기호로 확장시키면서, 이 이미지를 통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논쟁적인 사안들이 다루어지는 문화적 공론장의 중심을 세워가려는 참여적 실천행위였다”





자본주의의 탐욕과 인간의 폭력적 본능을 이처럼 실감한 적이 없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작품의 배치도 일조했을 것이다. 다닥다닥 붙은 이미지의 중첩성이 더 강한 메시지를 던진 것 같다. 개막식 날 전시장에 들어서니 발 디딜 틈 없었다. 여지 것 내가 본 ‘나무화랑’에 이처럼 많은 작가들이 몰린 적은 일찍 보지 못했다. 다들 그의 작업에 주목하고 있었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108점을 연결한 작품 “살”을 한 눈에 볼 수 없어, 사람들 사이로 한 작품 한 작품 뜯어봐야 했다.





가축의 생애는 비참했다. 온통 내장이 드러나고 털이 벗겨진 채 매달린 소름끼치는 장면이었다.

비좁은 공장식 사육장에서 사료로 키워지고 오로지 인간의 배를 채울 고기로만 살찌워져서 도살로 생을 마감한다.

인간은 더 많이 먹고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동물의 살육을 합리화한다.

인간의 탐욕이 폭력성으로 질주하는 비윤리성에 우리 모두 주목해야 한다.

이 전시는 3월13일까지 ‘나무화랑’(02-722-7760)에서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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