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운구곡의 농군화가 길종갑의 '화전'이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 펼쳐졌다.

 

화전2014-2016 캔버스에 아크릴, 130X160.5cm(X7)

지난 4일 느지막하게 전시장에 가보았는데, 작품 크기에 압도당했다.

새롭게 내놓은 신작 ‘두류산 풍경’은 9미터가 넘는 대작이었다.

대작 3점이 전시장 삼면을 가득 메웠고, 제일 큰 작품은 12미터나 되었다.

 

화전2014-2016 캔버스에 아크릴, 130X160.5cm(X7)

특유의 붉은 색으로 주변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한 ‘화전’에는

 이 땅을 살아 온 민중의 아픔이 배어있었고,

화면을 가득채운 강렬한 색 속에 서릿발 같은 날이 서있었다.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길종갑의 실경산수도였다.

 

듀류산풍경2022 캔버스에 아크릴, 267X940cm

작가가 사는 화천면 사내면은 조선중기의 화가 조수걸이 그린 ‘곡운구곡도’의 땅이다.

조수걸의 ‘곡운구곡도’가 평온하다면, 길종갑의 ‘곡운구곡도’는 날이 서 있다.

 

산치성 2009 캔버스에 아크릴, 130X160.5cm

삶의 터전인 두류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작품에서 따뜻한 작가의 체온이 느껴졌다.

"소박한 찰나의 삶도 소중하다"는 작가의 말이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다산별곡 2020 캔버스에 아크릴, 267X940cm

곡운구곡(谷雲九曲)의 작가로 알려진 길종갑은 그동안 4.3미술제, 평화미술제,

광주40주기 기념전 등의 단체전에도 참여하며 사회비판적 보폭을 넓혀왔다.

 

산불 2021 캔버스에 아크릴, 170X267cm

그는 산수화를 그리지만, 그 풍경 속에 사람이 있다.

마치 삼각지 그림처럼 두서없는 유쾌함을 풀어내기도 하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해주며 작은 사람들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그는 화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다.

다들 편하게 살려고 고향을 떠나지만, 팔순의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낯에는 호미로 밤에는 붓으로 농사짓고 있으니, 옛날의 ‘주경야독’인 셈이다.

 

어머니와 함께 포즈를 취한 길종갑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있겠냐마는 치열하게 살아간다.

임대 창고 빌려 쓰는 그의 화실은 사는 집보다 더 컸다.

주변 환경을 그려 “화천인문기행”이란 화첩을 만드는 등, 미처도 제대로 미쳤다.

작가의 야생성이나 원시성도 작품과 괘를 같이한다.

 

2015년12월 작업실을 방문한 정영신씨와 대화를 나누는 길종갑작가

그 원시성에 끌려 육년 전 바이칼 찬바람에 옷을 벗긴 적도 있다.

그를 모델로 끌어들여 강원도 작가들의 기획전 “강렬하게, 리얼하게”에 출품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그 작업은 자연 속에 동화된 인간의 원시성을 드러내는 ‘신체발언’ 프로젝트였다.

30여년 전부터 시작했으나 사진 규격이 실제처럼 너무 큰데 따른 제작비 부담이나

여러 가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미루어 온 일이었다.

20여명을 촬영한 마지막 주자에 길종갑 작가가 걸린 것이다.

 

작가의 이야기도 한 번 들어보자.

 

“주변을 돌아보며 소소한 대상과 대화를 나누는 건 이야기를 찾는 거지요.

그리고 그림 속에 우리가 살아온 터전의 소소한 부분까지 말하고 싶었어요,

환경 문제는 대학 시절부터 작품에 개입 시켜 왔는데,

세밀하게 표현하다 보니 작품이 점점 커지게 되었어요.

그림으로 보는 장편소설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다산별곡 2020 캔버스에 아크릴, 267X940cm

'그림다운 그림' 그런 것을 그리고자 하는 감수라는 수동성과 지극히 찬란한 곳에는

지극한 슬픔이 배어 있곤 하더라는 아픈 통찰, 그 둘 사이가 길종갑 그림의 터전인 듯하다.

이 둘이 서로를 누르고 제압할 듯 힘을 겨루지만, 이제껏 늘 승리는 전자(前者)에게로

돌아가곤 했던 전장(戰場). 사랑과 슬픔이 싸운다는 것!

'민중'미술 아닌 민중‘'미술’'의 한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이다“

 전시 서문에 박응주 평론가가 적었다.

 

장사날 2011 캔버스에 아크릴, 194X300cm

이 전시는 오는 23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며칠 전, 이번 전시에 직 간접적으로 도움주신 분들 작업실을 방문했다.

사진이나 책을 택배로 보낼 수도 있으나, 인사드릴 겸 찾아 나선 것이다.

사전 연락도 없이 ‘금보성아트센터’ 금보성관장 부터 찾아갔다.

마침 2층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하던 일손을 멈추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차 한 잔 하는 자리에서 내년부터 처음처럼 다시 시작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글작업만이 아니라 갤러리 운영 등 모든 면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금보성씨는 하루에 세 시간 정도만 자고, 모든 시간을 작업에만 몰두한단다.

수면 시간이 부족해 차만 타면 잠에 빠져들 정도로 바쁘게 살지만,

곳곳의 전시장을 찾아다니며 작가들 격려하는데도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새해부터 금보성에 어떤 대변신이 일어날지 기대되었다.

 

그 다음 날은 과천에 있는 ‘진인진출판사’ 김태진대표를 만나러 갔다.

그 역시 사람이 방문한 것도 모른 채 일에 파 묻혀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가까운 식당부터 찾아갔다.

한 달 전에 따라가 본 적 있는 ‘풍경’이란 밥집인데, 유기농채소만 고집하는데다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었다.

 

사무실에 다시 올라와 커피 한 잔하며, 내년에 출판할 인사동 사진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인사동을 찾아다니며 생각을 모울 작정이라고 했다.

나 역시 독자들이 관심가질 만한 책이 되도록 출판사 의향을 따를 것이며,

출판사에서 편집방향을 정하게 되면 재촬영하더라도 그쪽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아무리 좋은 책을 만들어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쓰레기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들어 김태진씨 모친이 편찮아 마음고생이 심하단다.

그 날 '진인진출판사'에서 발행한 도시문화연구서 ‘서울 산책’과

‘경복궁옆 송현동 살리기’ 책 두 권도 선물 받았다.

 

새해에는 ‘금보성아트센터’와 ‘진인진출판사’에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1일 늦은 오후, 정영신씨와 함께 박찬호씨 ‘신당’전시 보러 ‘금보성아트센터’에 갔다.

무당들의 기가 전시장을 가득메운 전시장에서 작가의 이야기를 듣던 중, 금보성 관장을 만났다.

차 마시러 올라 간 2층에는 유동명씨의 ‘사유의 이면’전이 열리고 있었다.

 모처럼 차 한 잔 마시며, 금관장 이야기를 듣는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유동명씨는 잘 모르는 작가였으나, 작업이 독특했다.

화폭에 닥종이를 반복적으로 한 땀 한 땀 덧대어가며 화면을 이루어 놓았는데,

짙은 회색 결이 물 빠진 바닷가 갯벌을 연상시켰다.

다양한 색조의 닥종이에 의한 콜라주 기법으로 단색조의 우아한 표면을 만들어 놓았더라.

 

아니나 다를까, 작가가 매일 만나는 군산 바닷가의 잔상을 화폭에 담았다고 했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갯벌의 느낌이 신비롭게 펼쳐져 있었는데,

그가 오랫동안 해온 일은 그림 그리는 일이 아니라 작품수집가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의 집념에 의한 노력은 어느 화가 못지않은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미련하리만큼 반복적으로 해 온 끈질긴 노력이 이루어 낸 성과였다.

 

금보성관장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발굴하여 알리는 일을 오랫동안 해 왔다.

금보성관장도 쉬지 않는 열성화가이기에 많은 작품을 탄생시켜왔지만,

쉬지 않고 꾸준히 작업하는 다작의 작가를 특히 좋아해 도와주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2월1일부터는 태백의 광부 사진가 전재훈 초대전을 연다고 했다.

나야 전재훈씨를 잘 알지만, 태백 탄광에 박혀 있는 사람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는데,

전시 보러 온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오 가며 찍는 사진과 지하 4,000미터 막장에서 일하며 찍은 사진과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땀이 범벅되는 일을 하지 않고 어찌 광부의 고통을 알겠는냐며 동했다고 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작업을 해나가는 작가의식에 탄복해 손을 건넸다고 한다,

태백에서야 여러 차례 광부 전시를 하고 사진집도 펴낸 바 있지만,

서울에서는 한 번도 전시를 갖지 않았기에 알리고 싶었단다.

 

‘금보성아트센터’는 4월 보궐선거 투표장으로 사용된 후 철거한다고 했다.

다시 건축하여 재 개관하려면 일 년 넘게 기다려야 한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저녁시간이 되어버렸다.

갈비탕이나 한 그릇 먹자는 말에 따라 나섰는데,

근사한 식당에서 자기는 육식을 안 하면서 갈비를 시켜 거지 몸보신 시켜주네.

 

좋은 전시 보고, 좋은 소식 듣고, 칙사 대접까지 받았으니,

이 어찌 도랑치고 게 잡은 일이 아니겠는가?

오래 전에 전시 한 번 하라는 도움제안도 들어주지 못했는데, 너무 송구스러웠다.

부디 새해에는 좋은 일 많기를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포토마가 주관한 제1회 FNK PHOTOGRAPHY AWARD 다큐부문 수상자전인

박찬호의 ‘神堂’이 오는 1월17일까지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린다.

 

박찬호는 10년 동안 인간의 죽음에 집착하여 그 현장을 찾아다닌 사진가다.

이번에 보여주는 ‘신당’은 이년 전에 발표한 ‘귀歸’에 이은 후속작업이다.

오래전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며 비롯되었다는 ‘귀歸’와

이번에 보여준 ‘신당’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사후세계에 빠져 들게 한다.

사람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될까? 과연 저승이란 신화의 세상이 있는 걸까?

 

지리산 성모(마고성상), 모든 무당의 어머니

 

신을 모신 신당이란 무엇인가?

즉 산자와 죽은 자의 한을 풀어 주고 마음과 정신을 안정시켜 주며,

신과 인간이 만나 어우러져 한 판 굿을 엮어내는 곳으로,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공간이 신당이다.

그 신당을 지키는 ‘신관’들이 심방, 당골, 무당의 이름으로 굿이라는 형식을 통해 제사를 지내는데,

무속은 신위에 신이 없고 신아래 신이 없다.

 

충남 황도붕기도당, 고 김금화 만신

 

사진가 박찬호의 귀신 작업은 아무나 접근하기 어렵다.

타계한 김수남씨 외에 무속사진을 찍는 여류작가가 있었는데, 어느 날 홀연히 세상을 떠난 것이다.

김수남씨야 술 때문에 떠났겠지만, 그 여인은 원인 모를 죽음이었다.

그 당시 귀신 씌여 죽었다는 말이 떠돌 정도라 접근하는 사진가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박찬호씨가 그 일을 해낸 것이다.

 

진도뽕할머니사당 악사 김오현

 

2년 전 ‘류가헌’에서 열리 ‘歸’사진전에서 작가를 만났는데, 마치 저승사자처럼 느껴졌다.

한마디로 귀신과 동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런 끼가 없다면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대상이라는 말이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도 무당의 끼, 아니 신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강원 다목리여신당 만신 이해경

 

십 여 년 동안 종가집 제의는 물론 마을제, 당제, 다비식 등 귀신 나오는 곳은 빠지지 않고 찾아 다녔다.

이번 ‘신당’전에는 서울 남산국사당터를 비롯하여 보광동 ’흥무대왕 김유신사당‘, ’한강밤섬부군당‘, 한남동 ‘큰한강부군당, 봉화산 ’봉화산도당, 용문동 ‘남이장군사당’, 인왕산 ‘인왕산선바위’, 여의도 ‘방학좆이부군당’, 광명 ’ 구름산당숲‘, 안산 ’잿머리성황당‘, 군자봉 ‘시흥군자봉성황제’ 수원 ‘벌말도당굿’, 강화도 ‘외포리곶창굿’, 수원 ‘거북신당’, 강원도 화천 ‘화천다목리산신당‘, ‘양양 서문리 양지말 성황사’, ‘대관령국사성황당’ 부산 아미동 ‘아미골까치산당산’, 구포 ‘대리당산’, 해운대 ‘죽성리성황당’, 서대신동 ’봉래산산제당‘, 영도 ‘조도당산’. 초량 ‘초량당산’, 기장 ‘죽성리성황당’, 통영 ‘마을굿’, ‘설운장군사당’, ‘남해안별신굿’ 경북 영양 ‘일월산 황씨부인당’, 충남 태안 ’황도붕기도당, 내포지역의 ‘내포앉은굿’, 서산 ‘창리영신제’, 부여 ‘은산별신제’, 서산 ‘율목리서낭당’, 부안 ‘위도원당’ 부안 ‘수성당’, 진도 ‘뽕할머니사당’, 군산 ‘호남넋건지기굿’, 고흥혼맞이굿, ’신안 씻김굿‘, ‘황해도대동굿’, 제주 김녕 ‘성세기 본향당', 한림읍 ‘비양도 본향당, 조천읍 ‘와흘본향당’, ‘와산리불도당’, 성산 ‘신풍리본향당’, ‘신천리본향당‘, ‘수산리본향당’ 구좌읍 ‘동복리본향당‘, ’송당본향당,

표선면 ‘구렁팟당’, ‘ 당케세명주할망당’ 등 제주를 비롯한 전국방방곡곡 신당을 쫓아다닌 것이다.

 

귀신이 씌여도 단단히 씌인 것이다.

사진에 드러난 신당의 음습한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초상에서 느껴지는 무당의 가 압도했다.

 

제주 동복리 본향당 심방 강대원

 

혼신일체가 된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동안 해외 전시를 비롯한 여러 차례의 전시에서 보여주었듯이, 무속사진가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것이다.

작년에는 '뉴욕타임스‘에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둘러싼 제의를 촬영하다’라는 제목으로

박찬호 전시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그런 유명세는 이제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충남 은산별신당 만신 이일구

 

그의 작업이 더욱 중요한 것은 무속인 개인의 초상이기 전에 시대의 초상이라는 것이다.

그 분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기록해 두어야 할 우리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박찬호씨의 작업노트 말미를 보니 충분히 이해되었다.

 

“나는 굿 현장에서 신을 부르는 악기의 장단과 박자에 따라 몸이 흔들림을 느낀다. 눈을 감는다.

접신의 순간과 정신 세계로의 몰입에 몸과 마음을 그대로 의탁한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이 들면 셔터를 누른다. 그것이 신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터무니 없이 좁은 의식의 틀로는 그들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신당 작업을 했다.”

 

그런데, 신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난, 기독교는 물론 천주교와 불교에서 세례명과 법명을 받을 정도로

여러 종교에 빠졌으나, 지금은 무신론자다.

결국은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우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법문이나 성경에 기반한 삶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무속은 신에 앞서 우리민족의 정신이라고 생각 한다.

건국신화의 주인공인 단군에서부터 바다에는 용왕, 산에는 산신,

임신과 출산을 관장하는 삼신할머니에서부터 조상신 등 많은 신들이

믿음의 대상이 되어 민초들의 삶에 위안이 되어 준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수많은 신화의 장소를 없애버렸다.

일본 놈 물 먹은 박정희 까지 ‘미신타파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국 각지에 있는 서낭당이나 신당을 없애버린 것이다.

박찬호가 찍은 사진 속의 공간들은 마지막 살아남은 우리나라 신화의 공간이며,

신과 소통하는 신관들 모습이다.

 

서울남산 국사당터 만신 최신영

 

사진집을 보면 대개 서낭당이나 신당에서 찍었는데,

유독 서울야경을 배경으로 남산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 궁금증을 작가가 풀어주었는데, 서울을 수호하는 ‘남산 국사당터’가 본래 남산 꼭대기에 있었다고 한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나라의 안녕을 비는 수호신당으로 국사당을 남산에 세웠으나

일제에 의해 지금의 인왕산 기슭 선바위로 옮겼다는 것이다.

조선인의 성역인 남산국사당을 내 몰고 남산을 일본인의 성역으로 만들겠다는 속내가 있었다고 한다.

만신 최선영씨가 그곳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며, ‘남산국사당터’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민속학자 하효길씨는 “현대미술의 유형적인 문법으로 기록한

그의 사진은 오히려 무형적 조형성을 더 지니고 있다.

사진에서 건물과 공간속의 인물은 그 뒤쪽의 내용 속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신의 세계로 시대의 삶으로 현세와 내세를 느끼게 하는 종교적 신비랄까.

박찬호는 우리 굿 속에서 부단히 삶과 죽음의 신비를 탐구해 온 작가이다.

그리고 그는 사진 속에 이 신비를 담으려고 한다.”고 서문에 적었다.

 

그런데, ‘신당’사진집(가격 5만원) 표지에 부적이 붙어 있었다.

사진에서 느끼는 신성함과 더불어 모든 재앙을 물리치는 복 같은 듬직한 기분이었다.

도서출판 나미브에서 만들었는데, 한정판이라 책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더라.

 

오는 16일 토요일 오후2시, 전시장에서 "신당" 토크쇼가 있다고 한다.

작가를 비롯하여 민속학자 조성제씨가 패널로 나와 무속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단다.

코로나19로 많은 분을 모실 수가 없다니, 관심있는 분은 참가여부를 문의해 보기 바란다.

 

(문의 : 박찬호 010 4127 0041)

 

사진, 글 / 조문호

 

 

정기호화백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2년이 되었네요.

서거 2주기를 맞아 ‘금보성아트센터’에서 8월1일부터 15일까지 유작전이 열립니다.

 '그림 그린 그림'이란 이름을 내건 유작전에 많은 분들의 참관과 성원을 바랍니다.

 

[스크랩 : 서울아트가이드10월호]















요즘 재미없이 사는 분들이 참 많다.

대부분 가족 중심으로 지내다 보니, 벗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가뭄에 콩 나듯 하다.

만난다 해도 대부분 술로 시간 보내다 헤어질 뿐이다.





마음 통하는 친구 십 여명이 뭉쳐, 봉고차 하나 빌려 타고 전람회 보러 다니는 재미는 어떨까?

다양한 작가들의 좋은 전시들이 지천에 늘려 있는데다, 그것도 우리나라 사람들 좋아하는 공짜가 아니던가?

좋은 나라인지, 착한 작가들인지. 돈 한 푼 받지 않고 보여주니, 황송할 따름이다.





좋은 전시를 엄선하여 하루 일정을 짠다면, 이보다 더 보람된 시간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긴 세월 씨름하여 일궈낸 여러 작가의 작업을 돌아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작품이야기로 시간 보내니,

메마른 감성을 꽃 피울 수 있는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막 판에 술까지 한 잔 곁들인다면 금상첨화 일듯하다.





당장 벗들과 조를 짜서, 서울서 열리는 좋은 전시를 한 번 검색해 보라.





지난 토요일은 전람회를 보기 위해 작심하고 집을 나섰다.

한 동안 두문불출하느라 못 본 전시가 많아 정영신씨 똥차로 한 바퀴 돈 것이다.

벗들과 함께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꿩 대신 닭이라듯 사진 동지 정영신씨와 속닥한 시간을 가졌다.






제일 먼저, 기라성 같은 작가 다섯 명의 전시가 한꺼번에 열리는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로 갔다. 

금보성, 조귀옥, 김영신, 이승철, 이인숙씨 등 각기 다른 색깔의 개성 있는 작품들을 골고루 볼 수 있었는데,

일거양득이 아니라 일거오득인 셈이다.





맨 먼저 이층에서 열리는 금보성 ‘한글’전 부터 들렸다.

금보성씨는 1985년부터 ‘한글’을 주제로 50회의 전시를 가진 속칭 ‘한글작가’다.

금보성 문자예술이 구성주의 작가들과 다른 점은 문자의 구성에 그치지 않고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글자의 뜻에 따른 제각기 다른 소리까지 더해 입체적 조형미를 보여 준다는 점이다.





“금보성의 작업은 한글이 단순한 도형으로 이루어진 상형문자를 넘어 구체적인 휴머니스트로서의 조형언어가 된다는 점이다.

이것을 인정한다면 ‘절대주의란 비구상적 제작에 의한 새로운 리얼리즘이다‘고 한 로만 오팔카처럼

계3대 발명품 한글을 문자로 예술화시킨 자신의 회화에 개념적 접근을 시도하였으며,

지속적인 실험과 초월적인 작업을 통해 장르와 재료를 초월하여 한글 텍스트와 한글의 정신을

작업으로 추출해내는 최초의 ’문자 리얼리스트‘일 것이다”고 미술평론가 김종근씨가 적고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며 또 하나 놀란 것은 기존의 조용한 전시장 분위기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의 삶과 연결시키는 예술의 대중화를 시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온 강온유의 돌잔치를 전시장에서 열었는데, 전시된 한글 작품들이 잔치마당의 장식으로도 더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아마 첫돌을 맞은 아이는 할아버지 나라 문자의 예술적 감성을 일찍부터 접할 계기가 되어 

또 다른 문자예술가로 성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시장 입구에는 금보성작가를 비롯하여 화가 박양진씨 등 여러 명이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잔치 음식을 가져다 먹으라지만, 집에서 밥을 먹고 와 더 먹을 수 없었다,

잔치 구경하랴 작품 구경하랴 바쁜 시간을 보냈는데,

예술이란 고고하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부딪히는 인간적이라는 것을 재인식시켰다.






1층 전시장에는 조귀옥의 ‘야생화’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마침 작가도 만날 수 있었다.

전시된 작품들은 마치 하늘에 풀꽃이 핀 듯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보면 볼수록 심연의 골짜기로 끌어들이는 매혹적인 그림으로, 작가의 시적 감성이 돋보였다.





지하1층에는 ‘하늘을 담은 그릇’을 내 놓은 이인숙씨의 작품과 이승철씨의 ‘제왕수닭’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릇을 그린 이인숙씨의 얌전하고 조용한 붓질은 사물의 내면까지 파고드는 치밀함이 있었다.





그와 반대로 이승철의 거친 붓 자국은 원시성이 꿈틀거렸다.

우직한 건강성을 느끼게 하는 대조적인 작품이었다, 



 


지하2층에서 열리는 김영신씨의 ‘벽과 담’전도 정겹게 다가왔다.

친근하게 묘사된 공간들은 세월의 층위가 쌓인 퇴적층처럼 그리움이 고여 있었다.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다섯 작가 초대전은 오는 28일까지 열린다.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인사동 ‘경인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인미술관' 입구에 버틴 도발적인 여인의 조각상을 훔쳐보며, 침을 질질 흘렸다. 



 


1관에서는 박야일씨의 초현실적인 풍경 ‘into’전이 열렸다.

박야일씨는 일하다 떨어져 하반신을 못 움직이는 큰 사고를 당했는데, 10년 만의 개인전이란다.

그의 투지가 베인 작품이라 예사롭지 않았다.

삶의 무게와 고통 속에 한 줄기 희망의 여운이 드리워진 몽상적 풍경이었다.

다시 세상을 향해 토해내려는 작가의 의지가 농익어, 그 무게감이 느껴졌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전시장이 붐볐으나, 아는 분은 작가 박야일씨와 성기준씨 뿐이었다.


이 전시는 19일까지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라인석씨의 ‘TOUCH'전이 열리는 충무로의 ’갤러리 브레송’으로 갔다.

이 전시는 사진을 이용한 미술이었다.

하기야! 이젠 사진을 활용하는 화가들도 많아져, 사진과 미술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작가 라인석씨가 제작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는데,

프린팅 되어 나오는 이미지의 잉크가 마르기 전에 펜이나 손으로 변형시켰다고 한다.





기존 사진과는 다른 새로운 발상이었다.

회화적 터치의 독창성은 높이 살 수 있지만, 이제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

기법에 더해 작가의 메시지를 토해내야 할 일이다.


이 전시는 27일까지 열린다.






서울 구경이 아니라, 작품 구경 한 번 잘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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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보성아트센터’ 신년 초대전으로 박찬원씨의 ‘돼지가 우리를 본다’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 1월3일 오후5시에 개막된 이 전시는 사진평론가 최연하씨가 기획하고, 송호철씨가 설치를 맡았다.





개막식이 열리기 전에 들렸는데, 2개층의 전시장은 온통 돼지들로 가득했다.
중앙무대 벽에는 고사상에나 올라가는 돼지머리 연작 사진들이 인간을 조롱하듯 웃고 있었다.
오로지 고기로 태어나 인간들에게 몸을 내맡기며, 죽어서도 웃고 있는 형상에 섬뜩한 생각마저 들었다.
우매한 돼지가 아니라 신 같았다.






탯줄을 달고 있는 갓 난 돼지에서부터 발정에 헐떡거리는 돼지에 이르기까지 천태만상이었다.

아래층은 조립식 비계를 사용해 돼지우리처럼 꾸몄는데,
한쪽에선 꿀꿀거리는 돼지 소리와 함께 돼지들의 동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난, 사진가 박찬원씨를 지난 년말 곽명우씨 소장전에서 처음 인사를 나누었지만,
이 사진들은 2년 전 ‘류가헌’ 전시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왜 하필이면 돼지에 집착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떻게 보면 악의 무리인 인간보다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박찬원씨와 돼지와의 인연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것 같았다.
어릴 적 별명도 돼지였다지만, 소년시절 교지에 써 올린 ‘돼지’에 관한 수필도 있었다.
사진뿐만 아니라 돼지를 그린 수채화도 있었는데, 글과 사진, 그림 등 다재다능했다.





그리고 지난 전시 때 관람객들이 그려 놓은 돼지 그림에서부터
집안 어르신이 썼다는 시조도 걸려 있었다.
시조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작은 눈 지그시 감고 액귀를 쫓는구나.'






나 역시 돼지띠기도 하지만, 돼지고기를 유별나게 좋아해 돼지와의 인연은 남다르다.
그런데, 왜 인간들은 돼지를 마치 돈의 상징처럼 보았을까? 돈, 돈, 돈, 이름이 닮아 그럴까?
그냥 복덩이로 보면 좋을 걸, 그 더러운 돈과 연결 지어 돼지들도 기분 더러울 것이다,
돼지 꿈만 꾸면 복권부터 사는 데, 돈이 인간을 병들게 하는 걸 정작 모르는 걸까?






전시된 사진들은 원주의 한 양돈장에서 100일간 촬영한 사진이라고 했다.
난 여지 것 돼지우리에서 키우는 한두 마리의 돼지만 보았지,
이처럼 닭이나 소처럼 집단 사육되는 것도 처음 보았다. 가축이 아니라 먹이 공장이었다.
고기만 처먹을 줄 알았지,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다.




-금보성아트센터 사진자료-



전시장에서 반가운 분도 여럿 만났다.
금보성 관장은 입구에서 주차관리에 여념 없었고, 전시장에서 작가 박찬원씨와 최병관씨를 만났다.
최병관씨는 오랜만의 회우였다.






전시를 기획한 최연하씨를 비롯하여 엄상빈, 장 숙씨도 있었다.
그러나 인사동에서 약속이 있어, 개막식도 보지 못한 채 자리를 떠야 했다.
얌체 같지만, 개막식 사진은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올린 사진 다섯 장을 스크랩했다.




-금보성아트센터 사진자료-



'돼지가 우리를 본다'전은 오는 12일까지 열린다.
새해의 복덩어리 만나러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02-396-8744)로 가자.



사진, 글 / 조문호




-금보성아트센터 사진자료-

-금보성아트센터 사진자료-

-금보성아트센터 사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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