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운구곡의 농군화가 길종갑의 '화전'이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 펼쳐졌다.

 

화전2014-2016 캔버스에 아크릴, 130X160.5cm(X7)

지난 4일 느지막하게 전시장에 가보았는데, 작품 크기에 압도당했다.

새롭게 내놓은 신작 ‘두류산 풍경’은 9미터가 넘는 대작이었다.

대작 3점이 전시장 삼면을 가득 메웠고, 제일 큰 작품은 12미터나 되었다.

 

화전2014-2016 캔버스에 아크릴, 130X160.5cm(X7)

특유의 붉은 색으로 주변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한 ‘화전’에는

 이 땅을 살아 온 민중의 아픔이 배어있었고,

화면을 가득채운 강렬한 색 속에 서릿발 같은 날이 서있었다.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길종갑의 실경산수도였다.

 

듀류산풍경2022 캔버스에 아크릴, 267X940cm

작가가 사는 화천면 사내면은 조선중기의 화가 조수걸이 그린 ‘곡운구곡도’의 땅이다.

조수걸의 ‘곡운구곡도’가 평온하다면, 길종갑의 ‘곡운구곡도’는 날이 서 있다.

 

산치성 2009 캔버스에 아크릴, 130X160.5cm

삶의 터전인 두류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작품에서 따뜻한 작가의 체온이 느껴졌다.

"소박한 찰나의 삶도 소중하다"는 작가의 말이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다산별곡 2020 캔버스에 아크릴, 267X940cm

곡운구곡(谷雲九曲)의 작가로 알려진 길종갑은 그동안 4.3미술제, 평화미술제,

광주40주기 기념전 등의 단체전에도 참여하며 사회비판적 보폭을 넓혀왔다.

 

산불 2021 캔버스에 아크릴, 170X267cm

그는 산수화를 그리지만, 그 풍경 속에 사람이 있다.

마치 삼각지 그림처럼 두서없는 유쾌함을 풀어내기도 하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해주며 작은 사람들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그는 화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다.

다들 편하게 살려고 고향을 떠나지만, 팔순의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낯에는 호미로 밤에는 붓으로 농사짓고 있으니, 옛날의 ‘주경야독’인 셈이다.

 

어머니와 함께 포즈를 취한 길종갑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있겠냐마는 치열하게 살아간다.

임대 창고 빌려 쓰는 그의 화실은 사는 집보다 더 컸다.

주변 환경을 그려 “화천인문기행”이란 화첩을 만드는 등, 미처도 제대로 미쳤다.

작가의 야생성이나 원시성도 작품과 괘를 같이한다.

 

2015년12월 작업실을 방문한 정영신씨와 대화를 나누는 길종갑작가

그 원시성에 끌려 육년 전 바이칼 찬바람에 옷을 벗긴 적도 있다.

그를 모델로 끌어들여 강원도 작가들의 기획전 “강렬하게, 리얼하게”에 출품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그 작업은 자연 속에 동화된 인간의 원시성을 드러내는 ‘신체발언’ 프로젝트였다.

30여년 전부터 시작했으나 사진 규격이 실제처럼 너무 큰데 따른 제작비 부담이나

여러 가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미루어 온 일이었다.

20여명을 촬영한 마지막 주자에 길종갑 작가가 걸린 것이다.

 

작가의 이야기도 한 번 들어보자.

 

“주변을 돌아보며 소소한 대상과 대화를 나누는 건 이야기를 찾는 거지요.

그리고 그림 속에 우리가 살아온 터전의 소소한 부분까지 말하고 싶었어요,

환경 문제는 대학 시절부터 작품에 개입 시켜 왔는데,

세밀하게 표현하다 보니 작품이 점점 커지게 되었어요.

그림으로 보는 장편소설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다산별곡 2020 캔버스에 아크릴, 267X940cm

'그림다운 그림' 그런 것을 그리고자 하는 감수라는 수동성과 지극히 찬란한 곳에는

지극한 슬픔이 배어 있곤 하더라는 아픈 통찰, 그 둘 사이가 길종갑 그림의 터전인 듯하다.

이 둘이 서로를 누르고 제압할 듯 힘을 겨루지만, 이제껏 늘 승리는 전자(前者)에게로

돌아가곤 했던 전장(戰場). 사랑과 슬픔이 싸운다는 것!

'민중'미술 아닌 민중‘'미술’'의 한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이다“

 전시 서문에 박응주 평론가가 적었다.

 

장사날 2011 캔버스에 아크릴, 194X300cm

이 전시는 오는 23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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