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선 만지산에 들렸다.
일에 쫓겨 차일피일 미루다, 그 많은 더릅이 피어버려 못 먹게 되었다.
쌉쌀한 맛에 소주한 잔 하려던 생각은 고사하고, 선물할 곳도 많아 걱정이지만 어쩌랴!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꼭 가는 집이지만, 요즘은 기름 값 걱정에 그마저 못 갈 때가 많다.
이번엔 야채파종과 축대를 보수하려 했으나, 막상 부딪쳐보니 생각보다 만만찮았다.

언 땅이 풀리면 밭을 오르는 계단이 허물어져, 봄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해야 하는 일인데다,

돈 못 버는 주제에 야채라도 많이 심기위해 빈 땅을 개간했으니 접힌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고추가 주종이었으나 개간 못한 땅엔 옥수수를 심었는데, 윗집 최종대씨가 걱정스레 말했다.

“밭에 전기철망 치지 않으면, 멧돼지가 쑥대밭 만듭니더”

그렇게까지 해 가며 농사지을 생각은 없어, 사람이 먹던 짐승이 먹던 하늘의 뜻에 맡기기로 했다.

차라리 노동이 필요 없는 딸기 같은 과일이 더없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러나 살던 집은 손 볼 곳이 많아도 노동력으로만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아마 귤암리에선 제일 오래된 집이 우리 집일 것이다.

한 때 동강 댐이 무산되며 주민들 보상책으로 정부에서 주택건설비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정겹던 옛집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국적불명의 이상한 집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옛집의 불편한 점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래된 집이라 수시로 손을 봐줘야 하는데다, 수세식화장실과 샤워시설이 없으니,

개량주택에 길든 여인네들은 질색이다. 그러나 군불 지펴 따뜻한 온돌에 더러 눕는 그 맛이 쥑인다.

불과 반세기밖에 지나지 않은 집이지만, 구옥을 하나라도 지키고 싶은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사진만 팔리면 신용불량자 신세도 면하고 집수리도 할 작정이었으나, 매번 공염불이 되고 만다.

예전엔 떠돌다 힘들면 마음편이 쉬려 정선 집에 갔으나, 이젠 일할 때만 정선가는 꼴이 되었다.

낡은 집이 남은 내 수명까지 버텨주면 고마우련만, 허물어진 내 몸보다 못하니 그게 문제로다.

차라리 잠자다 무너져내려 같이 마감했으면 좋겠다는 푸념에 아내의 핀잔을 받기도 한다.

가족 생각은 아랑곳 않는 무책임한 말에 자괴감은 느끼지만, 이 모순투성이 세상이 싫은 걸 어쩌겠는가.

그런데, 이젠 한 가지 고민이 더 생겼다.

한적한 시골에 살려면 이웃이 좋아야하는데, 염치없는 사람이 옆집으로 이사 온 것이다.

본래 살았던 노성수씨가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집이 팔렸는데, 새로 이사 온 사람의 무례가 도를 넘고 있다.

이사 올 때부터 이웃과의 인사도 없이, 재 측량한다며 남의 집에 빨간 막대를 꽂아 불쾌하게 만들었다.

우리 집 마당을 자기 주차장처럼 사용하는데다, 자기 땅도 많은데 남의 땅에 고추를 심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일까?

서울서 살러 온 사람들이 지역주민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도 이러한 개인주의적인 이기심 때문이다.

이제 정선마저 싫어졌으니, 더 이상 내 쉴 곳은 없다.

사진,글 / 조문호




















정선 만지산 골짜기에도 봄이 왔다.

마당의 목련은 처녀가슴처럼 부풀었고,
할미꽃도 수줍은 듯, 고개 내민다.

자연은 온통 봄소식 전하느라 바쁘건만,
만지산 사람들은 싸우느라 정신없다.

원주민과 이주민들의 기 싸움질이다.
마치 정치판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툇마루의 낡은 가림 막은 깃발처럼 펄럭이고,
시멘옹벽이 무너져 주춧돌을 협박한다.

함께 살자던, 자연마저 나를 버리려는가?
낯 술에 취해, 울 엄마 무덤을 찾았다.

미주알 고주알 하소연하다, 잠들어버렸다.
꿈에라도 기다렸으나, 아무런 기척이 없다.

사진,글/ 조문호














'동강할미꽃보존연구회'가 주최한 제10회 동강할미꽃 축제가

지난 4월1일부터 3일까지 정선, 귤암리 ‘동강생태체험학습장’에서 조촐하게 열렸다.

행사장에는 서덕웅 보존회장을 비롯하여 전정환 정선군수, 차주영 정선군의회의장,

한종수 정선읍장, 김수복 정선군 문화예술과장 등 많은 인사들과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높은 벼랑에 핀 동강할미꽃의 처연한 자태를 감상하며 정선의 봄을 맞이했다.

이제 동강할미꽃축제는 어린이들이 즐겨 찾는 축제로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동강할미꽃들과 함께 열리는 사생대회나 백일장이 크게 기여한 듯 했다.

이 날 떡메 치는 재미도 솔솔 했지만, 어디 이웃과 함께하는 재미에 비할소냐.

귤암리 부녀회에서 마련한 음식과 막걸리를 마시며 봄의 여흥을 마음껏 즐긴 것이다.

이처럼 마을축제란 주민들이 화합하는 자리가 되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잘 안 된다.

농사철에 접어들면 쉴 겨를이 없지만, 이 날 만큼은 만사를 재쳐두고 나와야 했다.

그리고 정선 문화예술인들이 그렇게 많지만, 모습을 드러낸 분은 김우영씨 한 분 뿐이었다.

예술한다는 사람들이 그러니, 농사일에 바쁜 주민들만 탓할 일도 아닌듯 싶다.

내가 사는 만지골은 지하수를 둘러싼 원주민들과 이주민의 분쟁이 극에 달하고 있다.
지하수 펌프나 배관을 보수하는데 따른 비용분담으로 발생한 사건이란다.
축제장에서 만난  전정환 군수께 지하수 관리비용을 군에서 부담할 수 없냐고 물었더니,
즉석에서 한종수 읍장을 불러 해결방법을 모색하자며 걱정해주셨다.

한종수 읍장은 앞으로의 유지보수비를 주민들에게 부담시키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문제는 그 갈등의 골이 한계를 넘어 버렸다는 점이다.

이웃 간에 내용증명이 오가는 등 소송까지 불사할 감정싸움으로 비화해, 손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원주민들과 이주민들의 분쟁은 이제 귤암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오래 전부터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이들이 산골로 몰려들며 생긴 일인데,

대개들 '가까히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거였다.

도심에서 이웃과 교류 없이 살아 온 이들이 동네 주민들과 어울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축제라도 나와 얼굴을 부딪쳐야 하는 것 아닌가?

더욱이 강원도 정선지역은 예로부터 산골에 갇혀 살아, 외지인에 대한 배타적인 습성이 몸에 배어있다.

난, 정선 들어온 지 20년차지만 외지에 나돌아다녀 그런지, 아직까지 데리고 온 서자 취급이다.

그렇지만 함께 어울려 잘 살고 있지 않은가?

마을의 정서보다 원칙을 따지는 분들이 늘어나며 이런 분쟁이 터진 것이다.

싸우는 양측에서 서로 협력을 요구해 더욱 난처하게 만든다.

이미 내집에 대한 관리와 의결권은 이웃 최종대씨에게 위임한 상태라 뒤늦게 개입할 문제도 아니지만,

편 가르기로 비화된 흙탕물에 휘말리기는 더 더욱 싫기 때문이다.

부디 서로 양보하여 평화로운 마을이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사진,글 / 조문호







































































조양강 산내울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다.

강가에는 버들강아지의 하얀 솜털이 하늘거린다.
산내울에 따뜻한 봄기운이 일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게 있다.
뼝대를 수놓는 동강할미꽃 찾아 방방곡곡에서 사진인 들이 몰려온다.
꽃이 피면 나비가 날아들 듯 카메라가 몰려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야생화 찍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미처 몰랐다. 다 어디다 쓸까?

아니면 사돈 따라 장에 가듯, 남이 찍으니까 따라 찍는 것일까?

예쁜 꽃을 보면 누구나 찍고 싶은 마음이 일기마련이다.

그런데 꽃이 좋으면 꽃만 찍지, 왜 못된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위험한 벼랑에 무리하게 기어올라, 꽃 주변에 있는 마른 풀을 뜯어내거나,

심지어는 스프레이로 꽃망울에 물을 뿌리기도 한다.

물론 모든 사진인 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 몰지각한 사진인들의 추태가 전체 사진인 들을 욕 먹이는 것이다.

야생화 자체를 찍는 것이 아니라, 공모전이나 노리는 초보 짓이 틀림없을게다.


야생화를 찍으려면, 자연환경을 다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 찍어야 한다.

꽃도 좋지만, 꽃의 습성이나 주변여건을 함께 담아야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진인의 자세가 되어있지 않고, 사진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들로

사진한다는 말 꺼내기가 민망스럽다. 


올 해로 열 번째를 맞는 동강할미꽃축제는
오는 4월1일부터 3일까지 정선 병방산 '동강생태체험학습장' 일원에서 열린다.

축제는 옷바우 제례를 시작으로 나만의 동강할미꽃 심기, 학생백일장, 떡메치기,
동강할미꽃 분재 및 사진전시, 마을풍경 그림전시, 동강할미꽃 10년사 자료 전시,

한반도지형 및 수리봉 포토존 운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아우라지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떡메 한 번 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사진,글 / 조문호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귤암리 동강 변 뼝대(벼랑)에 석회암 바위를 뚫고 피어난 동강할미꽃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연분홍, 청보라, 붉은 자주색 꽃이 하늘을 향해 초롱초롱 빛을 낸다.
 


 ‘동강할미꽃’의 고장 강원도 정선 기행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으로 알려진 ‘동강(東江)’은 강원도 정선의 주강이다. 동강 물길 51㎞ 중 태백이 5㎞, 영월이 14㎞인데 정선은 32㎞다. 동강에서 봄철에 유난히 주목받는 것이 있다. 암벽 틈 사이로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동강할미꽃’이다. 고개를 숙이는 여느 할미꽃과 달리 깎아지른 기암괴석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신비스럽게 꽃을 피워 보석 같은 꽃향기를 뿜어낸다. 강인한 생명력이 경이롭다.


동강할미꽃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15㎝ 정도의 꽃을 피운다. 꽃대 전체에 흰 털이 많다. 잎은 뿌리에서 나는 깃꼴겹 잎으로 작은 잎 7∼8장으로 이뤄진다. 동강 주변의 정선, 영월, 평창의 석회암 바위틈에서 자라는 한국의 자생 야생화다. 1997년 한 식물사진가에 의해 발견돼 세상에 알려졌으며 2000년 6월 ‘동강할미꽃’이란 이름을 얻었다. 가장 늦게 봄이 드는 강원도 땅에 살지만 3월말부터 4월 초순에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현란하게 화려하지 않지만 잔잔한 잔영을 남기는 아름다움이다.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우리 꽃이다.


할아버지 수염을 한 동강고랭이. 정선 동강변에 동강할미꽃과 함께 자란다.


처음 동강할미꽃이 발견된 곳은 정선군 귤암마을이었다. 수직 절벽이 동강할미꽃의 자생지다. 이름은 할미꽃이지만 전혀 할머니 같지 않다. 수줍은 새색시 마냥 가냘프고 고운 미녀 같은 꽃이다. 연분홍, 청보라, 붉은 자주색 꽃이 하늘을 향해 초롱초롱 빛을 낸다. 동강을 붉게 물들인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면 동강할미꽃도 활짝 열었던 꽃잎을 서서히 닫는다.  

동강할미꽃을 맞이하러 가는 길은 쉽지 않다. 꼬불꼬불한 동강변 도로를 한참 달려야 한다. 길 한 켠에 ‘낙석주의’ 표지판이 긴장감을 준다. 그렇게 가는 길에 만나는 ‘동강할미꽃 군락지’라는 표지판이 반갑다. 동강할미꽃은 장미나 튤립처럼 흐드러지게 피지 않는다. 군락지라고 해서 빠르게 지나치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을 부릅뜨고 바위벽을 찬찬히 살펴야 그 틈에서 손을 들고 있는 보랏빛 꽃을 마주할 수 있다. 그 빛은 장미의 붉은색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다.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병방치 스카이워크.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한반도 지형과

휘돌아가는 동강의 풍광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귤암리는 53가구에 138명이 사는 마을이다. 정선에서 유일하게 온대식물인 감나무가 재배 되는 곳으로 예부터 감꽃이 만발해 귤화리라고 칭하던 ‘귤’자와 의암이라는 자연부락 이름에서 ‘암’자를 따왔다. 주민들은 세계 유일종이며 한국특산종인 동강할미꽃을 보존하기 위해 2005년 ‘동강할미꽃 보존·연구회’를 창립했다.

귤암리 동강생태체험학습장 및 동강 유역에서 4월 1일부터 3일까지 제10회 동강할미꽃축제가 개최된다. 동강할미꽃 분재 및 사진전시, 마을풍경 그림전시, 동강할미꽃 10년사 자료 전시, 한반도지형 및 수리봉 포토존 운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동강할미꽃 보존·연구회 서덕웅 회장은 “동강할미꽃축제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축제라기 보다 자연의 고마움을 자연 속에서 느끼고 아름다운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한 것”이라며 “척박한 환경 극복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나는 동강할미꽃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배우면 좋겠다”고 말했다.

귤암리 동강생태체험공원에서 올려다보면 병방산(兵防山·861m)이 웅장하게 서 있다. 위로는 천층 절벽이요,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 강물이라 한 사람만 지켜도 천군만마가 근접하지 못할 요새지여서 이름 붙여진 곳이다. 그 산 중턱에 병방치라는 옛길이 있다. 1974년 강변으로 통행할 수 있는 호박길(동강로)이 생기기 전까지는 산 아래 귤암리 주민들이 정선 5일장터에서 생필품과 비료, 시멘트 등을 운반했던 생명의 길이었다. 병방산의 허리를 가로질러 오르는 고갯길의 경사를 낮추기 위하여 36굽이 뱅글뱅글 돌아 통행했기에 뱅뱅이재라고 불린다. 다람쥐도 한숨짓고 나는 새도 쉬어가는 길이다. 

병방치에 서면 굽이치는 동강의 아름다움이 가슴 뻥 뚫리는 청량감을 준다. 깎아지른 듯한 산세를 따라 뱅뱅 돌아가는 옛길을 따라 가면 동강변 할미꽃마을에 이르게 된다. 약 3㎞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정선에서 요즘 ‘뜨는’ 곳이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송중기·송혜교 주연의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인 고한읍 ‘삼탄아트마인’이다. 함백산 자락에 위치한 옛 삼척탄좌 정암광업소의 폐광시설을 이용해 시간의 흔적과 예술의 희망을 캐는 콘셉트로 구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예술광산으로, 지난해 ‘한국관광 100선’으로 선정됐다. 1964년부터 2001년 10월 폐광되기 전까지 3000명이 넘는 광부가 석탄을 캐던 삶의 터전이었다. 갱도로 내려가는 승강기와 석탄을 나르던 레일 등이 모두 보존돼 있다.


여행메모 
영동고속도·42번 국도 이용 3시간 소요… 곤드레나물밥 별미
 


곤드레나물밥

 

영동고속도로 새말IC에서 나와 42번 국도를 타고 평창읍을 지나 비행기재터널을 통과한 뒤 7㎞가량 가면 광하교다. 이 다리를 지나 강변을 타고 4㎞ 정도 더 가면 ‘동강 할미꽃 축제’가 열리는 정선 귤암마을이다. 약 3시간 걸린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정선행 시외버스가 있다. 

정선읍내에서 59번 국도를 따라 가다 남면에서 38번 국도로 갈아타고 고한읍을 지나면 삼탄아트마인에 다다른다. 지난해 한국관광100선에 포함된 삼탄아트마인은 탄광 문화와 예술이 결합된 공간으로 문 닫은 뒤 멈춘 과거의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다. 4층부터 전시 공간 10여 곳을 둘러보면 석탄을 캐서 모으던 시설에 미술 작품을 가미한 레일바이뮤지엄을 거쳐 기억의 정원 등이 있는 야외 공간으로 나온다.

정선은 곤드레나물의 고장이다. 정선읍내의 싸리골식당(033-562-4554)은 곤드레나물밥(사진)만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아라리촌주막(033-563-0055), 동박골식당(033-563-2211), 동광식당(033-563-3100), 짐포리식당(033-562-2479) 등도 맛집이다. 

[스크랩/ 국민일보] 정선=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예전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서낭당이 도처에 있었다.
대개 서낭신이 붙어사는 오래된 나무나 돌 더미를 서낭당이라 했으나,
곳에 따라서는 사당, 즉 당집을 지어 서낭신을 모시기도 했다.

서낭당은 잡귀나 병을 막아주며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역할 외에도
마을 어귀에 자리 잡아 먼 길에서 돌아오는 가족들이 서로 만나거나 헤어지는
작별의 장소이기도 했다. 마음의 평안까지 안겨주는 곳이었으니,

이 얼마나 신성하고 드라마틱한 장소였던가?

이렇게 오랜 세월 민중과 함께 해 온 서낭당이 이젠 대부분 사라졌다.
군사정권이 들어서며 우리 고유의 의식과 전통을 깡그리 없애 버린 것이다.
새마을 운동이란 깃발아래 씨를 말려 버렸다.

그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종교는 손대지 않았다.
미신이라 내쳤지만, 다른 종교도 결국 마음의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니던가
힘센 다른 나라 눈치는 보면서 국민 아니 조상은 거지 발싸게 처럼 얕본 것이다.
그런 짓을 했으니 어찌 천벌을 아니 받겠는가?

우리 마을 만지산 서낭당이야기하려다, 괜히 열 받았다.
그렇게 서슬 퍼른 칼날에도 살아남은 곳이 내가 사는 정선 만지산 서낭당이다.
그만큼 깊은 산골에 숨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해마다 만지골 사람들이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기도 하고,
몇 년 전에는 만지산에 산삼 심으러 온 서울의 ‘농심마니’들도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무당을 불러 서낭당축제를 개최할 만큼 애착을 가진 곳이다.

그런데 올 들어 이 골에 자꾸 우환이 생기는 것이다.
모두 아흔은 넘겼으나 만지골의 어르신 두 분이 차례로 돌아가시더니,
두 달 전에는 옆집에 사는 노성수(60)씨가 갑자기 목숨을 잃었다.
과음으로 팔을 헛짚어 유리에 동맥이 끊기는 끔찍한 사고가 난 것이다.

지난 8일 밤늦은 시간 아내와 서낭당 앞에 무릎 꿇고,
제발 우환을 거두어 달라며 서낭신께 빌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만지골의 재앙을 거두어 주소서!
내친김에 이 사악한 세상까지도 바로잡아 주소서!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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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군 귤암리는 인심좋은 산골마을로 장수마을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동강할미꽃마을로 더 잘 알려진 이곳은, 산 좋고 물 좋은 천혜의 비경에 파묻혀 있다.
그런 자연환경과 더불어 순박하게 살았으니 모두들 장수할 수밖에...

지난 25일, 아랫만지골의 최연규씨 모친 유명철(94)씨께서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27일 만지산으로 오른 상여 행렬은 전통적인 장례문화를 지켜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선소리꾼의 어허넘차 소리, 그리고 땅 다질 때 부르는 달구소리 등 전통장례문화 전반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귤암리는 산과 강에 둘러싸인 산골마을이라 상여 나가는 주변 풍경들이 한 폭의 그림이다.

그리고 모든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일을 놀이처럼 즐기는 잔치 한마당이었다.
구성진 선소리꾼의 달구소리 한 구절이 잠시 인생무상을 깨우쳤다.

오허어 달구요~ 오허 달구여~


인간백세 산다 해도, 오허 달구여~
잠든 날과 병든 날과, 오허 달구여~
걱정 근심 하는 날과, 오허 달구여~
종사지액 다 제하면, 오허 달구여~
인간 사십 살길 없네. 오허 달구여~

사진,글 / 조문호

 

 

 

 

 

 

 

 

 

 

 

장수마을 정선 귤암리의 전통장례문화 복원을 제안 한다.

 

 

장수마을로 지정된 정선 귤암리는 산과 강에 둘러싸인 청정마을이라 상여 나가는 주변 풍경들이 너무 아름답다.

 

규격화된 장례식장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화장하는 것이 대세인 요즘,

상을 당한 정선 귤암리의 최정규, 최연규씨 댁 전통 장례식은 각박한 삶에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이제 그러한 상여길은 민속축제장이나 가야 볼 수 있다.

 

전통문화는 박제화된 형식을 잇는 것보다 실생활에 활용될 때 더 가치가 있다.

지금부터라도 특정지역을 지정해 전통문화를 생활에 이어가는 곳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정선 귤암리를 전국 유일의 전통장례문화 보존지역으로 정할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7-8년전 귤암리 '동강할미꽃 축제'에서 상여놀이를 재현한 적 있으나 아쉽게 단발행사로 끝나고 말았는데,

이젠 축제의 부대 행사로서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이어가자는 것이다.

귤암리에 거주하는 70세 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신청 받아 그 분이 돌아가시면

예전의 풍습대로 마을에서 장례를 치러 주자는 것이다.

 

상두계도 조직하고 상여를 보관하는 상여집도 마련해 귤암리만의 전통장례문화를 복원하자는 것이다.

사실 옛날 시골의 초상집은 잔치집이나 마찬가지였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망자의 명복을 빌며 어울리고 단합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요즘은 전국적으로 각양각색의 중복된 축제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축제 홍수 속에 산다.

불필요한 예산낭비라는 지탄으로 축제를 없애는 지역은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도 생겨났다.

그래서 이젠 귤암리의 최씨상가처럼 실질적인 축제성 전통민속들이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은 더 논의되어야겠지만, 일단 신청자가 사망하면 부고를 '정선군청' 홍보실로 보낸다.

행정관서에서 언론사에 보도 자료를 배포해 전통장례문화를 홍보하자는 것이다.

일반인은 물론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학자 또는 사진작가들이 찾아와 기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되는데,

장례비용의 증가에 따른 일정부분을 군에서 지원해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 예산은 지역 홍보에 기여하는데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일단 귤암리 마을 원로회의에서 먼저 협의돼야 할 사안이지만, 정선군의 긍정적인 검토를 제안한다.

 

 

 

 

 

 

 

 

 

 

 

 

 

 

 

 

 

 

 

 

 

 

 

 

 

 

 

 

 

 

 

 

 

 

 

 

 

 

 

 

 


 

정선의 장수마을로 불리는 귤암리 아랫만지골의 최정규, 최연규, 최성규, 최윤규씨의

모친 유명철(94)씨가 지난 25일 노환으로 소천하셨다.

지난 27일 ‘정선장례식장’에서 옮긴 운구행렬은 오전10시경 귤암리 자택에 도착했다,
제를 올린 상주들이 꽃상여에 태워 선산으로 올랐는데,

상여꾼들의 구성진 어허넘차 소리가 만지산에 메아리 쳤다.

오호 너구나 넘차
너호 너호 너기나 넘차 너흐

명사십리가 해당화야~ 나무여~
꽃이 진다고 설워마라~ 나무여~
명년 삼월이 돌아오면~ 나무여~
너른다시에 피련마는~ 나무여~
우리 인생은 한번가면~ 나무여~
어느 시절에 돌아오나~ 나무여~

마을주민을 비롯한 문상객들은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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