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사진집 ‘청량리 588’에 묶인 사진들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조문호(68)씨가 찍은 1984~88년 서울 전농동 588번지 성매매 업소 밀집지 풍경이 담겼다. “세상은 성매매 여성들더러 더럽다 하지만 그들은 빈곤하고 달리 돈을 벌 수단이 없을 뿐”이란 게 조씨의 말이다. 거리에 의자를 내놓고 다리를 꼰 채 앉아 있는 성매매 여성들을 찍은 조씨의 사진. 조문호씨 제공


나쁜 짓은 강제지 매매가 아니다. 오죽하면 성-몸을 팔까. 생계는 모질고 시장은 비정하다. 언짢다. 여전히 인권이 사치인 그들의 실존이, 여성한테 들씌워진 차별ㆍ혐오 이중 굴레가.

 

 

[정희진의 낯선 사이]성적 자기 결정권과 무관한 성

결혼 제도 바깥의 성에 대한 규제는 국가가 가족에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의 문제다. 최근 ‘간통죄’(이상한 단어다) 위헌 판결은 이 법이 가족을 보호하는 데 더 이상 효력이 없음을 인정한 것 같다. 국가에 가족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처럼 사회복지 비용을 전적으로 가족 내 여성의 성역할 노동으로 떠넘기는 사회에서, 가족은 가장 안전한 세원(稅源)이다.

우리는 미국과 달리 배우자의 ‘외도’(더 이상한 단어다)가 가정을 파괴하지 ‘않는다’. 가족이 친밀한 공동체라기보다는 자녀양육, 입신양명의 단위로 도구화되었기 때문에 혼외 사랑은 가족 붕괴의 범퍼다. 집 밖에서의 친밀감으로 내부의 갈등과 지겨움을 견뎌내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보호해서가 아니라 가족 해체에 대한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준 예다.

성적/자기/결정권은 자유에 관한 권리가 아니다. 무엇이 성적인 것인지, 나는 누구인지, 결정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근대 인문학을 총동원해도 규명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 단어가 출현한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성적 자기 결정권’은 시민권 운동에 이은 1970년대 미국의 성 해방 투쟁에서 등장했다. 이 권리는 그간 성적으로 억압되었던 여성과 동성애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이성애자 남성은 5000년 동안 ‘해방’되어 왔기 때문에 애초부터 논외였다. 일반 남성에게 성적 자기 결정권은 권리가 아니라 기득권이다.

이후 1990년대 초 한국 사회. 법정에서 “나는 사람이 아닌 짐승을 죽였어요”를 외친 어린이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에서 성적 자기 결정권은 중요한 개념이었다. 여성의 성을 순결 차원으로 보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었다.

특별법 이전에도 처벌법(소위 정조에 관한 법)이 있었지만, 이때 성폭력은 여성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 순결을 빼앗는 것을 의미했다. 여성의 성은 자신의 몸에서 분리되어 남성들 사이에서 ‘뺏고 빼앗기는’ 대상, 즉 남편, 가족, 국가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이다.

이처럼 성적 자기 결정권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다. 모든 자유가 그렇듯 타인의 권리와 충돌한다. 이 때문에 다른 인권 개념처럼 약자의 권리일 때만 의미 있는, 상황에 따른 권리다. 간통죄, 성매매 모두 성적 자기 결정권과 무관하다.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된 2004년에도 논란은 대단했다. 여성의 몸을 구매하는 것을 인권(행복 추구권)이라고 주장한 남성들, 생존권 차원에서 합법화를 요구한 일부 여성들, 성산업의 심각성과 여성에 대한 폭력 현실을 지적한 여성들이 있었다. 문제는 대화가 불가능한 현실이다. 남성은 생계 차원에서 성 판매를 하지 않는다.

남성들 간의 차이는 보편적인 ‘계급 문제’로 인식되지만, 여성들 간의 차이는 ‘여성 문제’로 치부된다. 남성 간의 계급투쟁은 당연시되지만 여성에게는 ‘자매애’가 강요된다. 성산업에 종사하지 않는 여성이 관련 발언을 하면 내용과 상관없이 남녀, 여성주의자, 종사자 모두에게 비난받는다. 언제나 당당한 집단은 구매 남성들이다.

10여년 전 여성부나 현재 여성가족부를 포함한 성매매 반대 입장의 주요 내용은, 당시 여성부의 표어대로 “성을 사고파는 것은 범죄입니다”다. 나는 이 문구에 늘 당황한다. 성매매가 범죄인 것은 성을 매매해서가 아니다. 성매매는 성별, 성차별 제도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정권이 아니라 여성 인권 문제다. 성(몸) 매매가 왜 불법인가? 누구나 노동과 임금을 교환해서 먹고산다. 남녀가 같은 일에 종사해도, 여성이 ‘더 파는 것’처럼 보이는 성차별이 있을 뿐이다. 손발, 머리 등 몸의 어느 부분을 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어떤 이들은 ‘지식인’이고, 어떤 이들은 ‘노가다’로 분류된다. 거듭 강조하는 바, 성매매는 매매가 아니라 성별이 문제다.

너무 비대하고 괴이해서 국제사회에서도 특이한 사례인 한국의 성산업 규모까지 문제 삼을 능력은 없다. 다만 찬반 주장 이전에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구매자와 판매자가 압도적으로 남녀로 나뉜 직업이 성매매 말고 또 있는가. ‘창녀’와 ‘창남’은 같은 지위의 단어인가. 같은 인구수와 역사를 갖고 있는가. 성매매 제도는 여성 전반을 성적 낙인 속에 가둘 수 있는 여성 혐오의 시작이다. 왜 이 직종은 자영업이 힘든가. 왜 인신매매가 흔한가. 왜 기술이나 지식, 근무 연수가 아니라 나이가 소득을 좌우하는가.

성매매는 자기 결정권과 무관하다. 남녀의 성에 대한 이중 잣대에서 출발하는,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가장 오래된 질문이다.


[경향신문] 정희진 / 여성학강사

 

 

 

[양선희의 시시각각] "최고 악질 포주는 나라다"


“최고 악질 포주는 나라다.” 어느 집창촌 여성의 말이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성매매를 법으로 금지했다. ‘성매매 특별법’ 이전에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 있었다. 성매매 특별법에선 인신매매 등 강제 성매매의 경우엔 피해자를 보호하고, 성매수자인 남성도 처벌한다. 하지만 과거엔 성매매 여성들만 불문곡직하고 처벌했다. 성매매 여성들은 툭 하면 단속에 걸려 벌금을 바치니 나라가 악덕 포주라는 거다. 법으로만 보자면 성매매 여성에겐 ‘성매매 특별법’보다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 훨씬 가혹했다.

 그럼에도 성매매 여성들이 현행법에 훨씬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건 법 자체의 문제보다 ‘생계형 성매매’에 대해 가혹해진 환경 때문일 거다. 과거 나라는 성매매에 대해 이중적이었다. 법으론 금지하면서도 집창촌은 번성했다. 보건소들은 주기적으로 여성들의 위생검사를 해줬고, 미군부대 주변의 성매매 여성들에겐 이 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선별적 단속으로 벌금을 거둬들였고, 그 안에서 벌어졌던 착취는 적당히 묵인했다. 성매매산업은 그렇게 위법과 묵인 사이를 교묘하게 오가며 인신매매까지 일삼을 정도로 악랄해졌다.

 2000년 종암경찰서에 김강자 전 서장이 부임했던 때를 기억한다. 그는 지금 생계형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제한적 공창제’를 주장하지만 당시엔 ‘성매매와의 전쟁’이 뜨거운 아이콘이었다. 그는 관내 대규모 집창촌이었던 미아리 텍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한동안 그가 업소 단속을 지휘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그랬던 그가 어느 순간 단속보다 성매매 여성들의 보호자로 돌아섰다. 포주들과 마주 앉아 화대의 분배 비율과 휴일 등의 영업 원칙을 정했다. 미아리 텍사스를 벗어나려는 여성들은 빠져나오도록 했고, 자활훈련도 지원했다. 그 모습에 ‘공권력은 저렇게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를 또렷이 기억하는 건 나도 그보다 10년 앞서 종암서에서 경찰기자를 시작했고, 처음으로 집창촌과 성매매 여성들을 접했으며, 이후 그곳은 내게 숙제처럼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의 나도 아마 최근 인터넷 댓글에 넘치는 ‘몸 팔아 편하게 돈을 번다’며 질타하는, 정의감에 불타는 청춘의 대열에 있었을 거다.

 그러나 그들을 보면 알게 된다. 성매매밖에 할 게 없는 ‘실존적 삶’이라는 게 있다는 걸 말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던 순간의 막막함과 먹먹함을 잊을 수가 없다. 혹자는 쉽게 말한다. “의지를 갖고 식당에서 설거지라도 하면 먹고살 수 있다.” 한데 종일 설거지라도 할 수 있는 체력도 못 타고난 데다 부모 복까지 없는 여성도 있다. 뼈와 근육이 약해 늘 앉아만 있는 성매매 여성이 있었다. 그가 사회에서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여성가족부는 탈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지원한다. 지난해 868명이 취업이나 진학을 했고, 월 60만~90만원을 받는 일자리 제공 사업에 562명이 참여했다. 성매매 특별법이 탈성매매를 돕고 빠져나올 길을 제시한 건 분명하다. 그러나 생계형 성매매 여성들은 범죄자로 규정해 삶의 터전에서 내쫓는다. 탈성매매의 의지조차 가질 수 없는, 우리 사회 가장 후미진 곳에 사는 그들을 어디로까지 내몰아야 하나.

 “성매매는 공공에 유해한 직업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최근 위헌심판 청구 중인 성매매 특별법의 매도자 처벌 조항(제21조 1항)이 합헌임을 주장한 변호사의 논리다. 정의로운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란 그렇게 일도양단으로 나뉘지 않는다. 구질구질해도 삶은 삶이다. 이 조항의 위헌성은 의문이다. 사회마다 지향하는 풍속의 기준이 있고, 풍속이 문란해지는 건 막아야 한다.

 하지만 약자들의 생계 문제를 법 조항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실존적 삶’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입법과 정책이 그래서 필요하다. 그들은 제일 약한 국민이다. 나라는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헌재에만 맡겨놓지 말고 입법부와 정부가 정책적으로 ‘어떻게’에 대한 고민을 제발 해주기 바란다.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스크랩 / 한국일보 4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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