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내가 어릴 적에 장(場)이 열리는 날이면 온 마을 사람들은 잔칫날처럼 들썩거렸다. 안동 아재의 소달구지가 동구 밖에 이르면 깨순이 엄마 보따리가 제일 먼저 실렸다. 뒤이어 마을 사람들 보따리가 하나둘 올라가면 사방이 초록으로 덮인 신작로 길을 빠져나갈 때까지 뒤따라가다가 돌아왔다. 봄이면 들판에 앉아 있던 자연도 덩달아 장에 나와 그 지역만의 삶의 이야기를 초록빛으로 품어냈다. 후미진 장 골목에서는 갈퀴와 도리깨, 체와 쟁기를 만들었고, 정월 보름을 앞두고 농악놀이에 쓸 짚신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팔았다.

대장간 앞에는 날이 무뎌진 호미와 낫을 벼르려고 노부부가 앉아 있었고, 텃밭에서 뜯어온 채소와 농로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가지고 나온 박씨 아짐은 생산자이면서 판매자였다. 또한 장터 끝 골목에는 엄마 따라온 삼식이가 새끼 돼지가 도망갈까 봐 새끼줄을 붙들고 동그마니 앉아 있었고, 털북숭이 복숭아를 머리에 이고 온 순덕이, 소금물에 우린 감을 베어 먹던 주근깨투성이 깨순이도 있었다.

이렇게 장은 자연과 흙과 나무에서 흘러나온 푸르디푸른 이야기가 살아 있어 움직이는 박물관이 됐다. 지금 장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그러나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민들이 지역 농산물로 만들어가는 농민 장터가 살아야 한다. 장은 단순히 뭔가를 사고파는 장소를 뛰어넘어 인간의 삶과 정이 생생히 살아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해석돼야 한다. 장을 통해 소통하는 백성의 삶은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왔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오일장은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34년째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장터를 장터답게 만들 계기는 무엇일까 숱하게 고민했다. 사진 한 컷 촬영하지 못하고 파장 무렵까지 장꾼들과 장에 나온 농민들과 이야기만 하다 돌아오기도 했다.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도 자신이 사는 곳에 어떤 보물이 숨어 있는지 책이나 텔레비전에 소개된 것 말고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다. (중략)

이 책은 내가 이전 책들에서 다룬 적이 없었던 장터와 지역 문화재를 찾아다니며 작업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여기 소개한 장 말고도 지금 작업 중인 장이 열 곳이 넘는다. 30여년 전 흑백필름으로 작업했던 예전 장터 모습과 요즘 모습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30년 세월이 많은 것을 바꿔놓았으나 장에 오는 사람들이나 장에서 파는 물건들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더 크게 말하자면 장에 오는 사람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불과 55년 전인 1965년에는 버스비가 1원이었고, 쌀 한 말 값이 360원이었다. 우리 사회가 근대화 이후 엄청나게 발전했음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장터에 가면 고향 냄새와 맛, 소리와 감촉을 느끼고 싶어 구경하러 나온 사람처럼 장을 몇 바퀴나 돌며 헤집고 다닌다. 어떤 물건이 새로 나왔는지, 난전에서 무엇을 파는지 알고 싶다. 계절 따라 파는 물건이 다르기에 사계절 모두 장에 가봐야만 그 생리를 알 수 있다.

겨울철 구례 산동장에 가면 산수유 열매로 장 안이 온통 새빨갛다. 이처럼 장터는 그 지역의 삶이 그대로 펼쳐진 한 폭의 풍속도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면서도 인정 넘치는 백성의 문화 공간이다. 내게 남은 숙제는 지역마다 서로 다른 장의 특색을 잘 살려낼 고유한 문화를 찾아내는 일이다. 우리네 시골장은 선조들의 역사이고 우리의 현재이자 아이들의 미래다. <5~7쪽>

『장에 가자』

정영신 지음│이숲 펴냄│248쪽│18,000원

출처 : 독서신문(http://www.readersnews.com)

정영신 작가의 철칙은 장터에서 절대 카메라를 안 꺼내고, 항상 반나절은 할머니들과 이야기 나누고 사귀는 데 공들인다는 것이다. 사투리를 써서 외지사람이 아닌 것처럼 다가가는 것이 그 비법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바닥에 앉아 있으면 자신도 바닥에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할머니 말씀을 귀담아 들어 배우러 온 아랫사람임을 온몸으로 표현한다고 했다. 그렇게 다가가니 할머니들은 하나만 물어봐도 아주 상세하게 알려준다고 했다.

 

 

오일장 600곳 농촌여성의 삶 사진에 담다

어르신 우울증·치매 예방하는 장터의 순기능

고령사회, 귀농귀촌인과 농촌공동체 되살려야

 

정영신

농촌 할머니 희로애락 카메라에 담다

1958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정영신 작가는 어려서부터 소설가를 꿈꿨다. 신춘문예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시면서, 많은 사람을 관찰할 수 있고 토속적인 말을 들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600여 개 오일장을 찾아다녔다.

“카메라가방에 사탕과 담배만 넣어 다녔어요. 사탕과 담배만 있으면 장터 사람 모두와 친구가 됐죠. 장터에서 무슨 물건 팔고, 어디 구역 사람이 담배를 좋아하는지 사탕을 좋아하는지 알게 됐죠.”

정영신씨는 장터에 가면 할머니들에게 살갑게 다가가 말을 걸고, 점심을 먹고 있으면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인연을 만들어나간다고 했다. 할머니들과 친해지면 농장과 집에 놀러가면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다양한 정보를 수집한다고 했다.

“할머니 얼굴에는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어요. 대화해보면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자식자랑, 동네자랑을 해주시죠.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말속에는 할머니들의 지혜가 들어있습니다.”

장터사람들을 사귀어 놓고 나중에서야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하니 정영신씨의 사진들은 하나 같이 인물의 표정과 행동이 자연스럽다. 지난 9월 정영신씨는 장터에서의 기록을 모아 ‘어머니의 땅’ 사진전을 개최하고 동명의 사진집을 냈다.

그러면서 정영신씨는 청년들이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지 말고 동네 시장에 가서 할머니 손을 잡고 말을 붙여보는 것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문학을 하기 위해 많은 할머니와 대화해본 결과, 책보다 더 많은 것을 할머니에게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또 할머니들도 자신을 아는 척 하고, 모르는 사람이어도 다가와 관심 가져주면 참 좋아하더라고 정영신씨는 말했다.

장터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장소

1980년대 장터는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보다 구경 오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장 중에 장인 난장을 많이 찾아다녔어요, 마을에서 농사짓는 할머니가 하루 팔아서 재밌을 양 만큼만, 버스 타고 이동할 수 있는 무게만큼만 보따리에 갖고 온답니다. 욕심 없이 장에 오니까 한 번에 많이 파는 것도 싫어해요. 사람이 그리워 장에 나왔는데 좌판에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앉아 있냐고 그래요. 뭐라도 펴놔야 사람들이 구경하고 당신도 사람 구경하지 않겠냐 하십니다.”

할머니들은 집에만 있으면 다른 생각 들고, 텔레비전만 보게 되면 병나겠어서 적은 돈을 벌어도 장터에서 물건 파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한다.

“장터는 농촌여성들이 왕이에요. 남자들은 차 안에만 들어가 있죠. 그래서 할머니들이 장에 나오는 걸 더 좋아하는 것 아닐까요? 집에만 있으면 남편 군소리만 듣는데, 장터에 나오면 내 세상이 되니까요.”

'어머니의 땅' 사진집 표지/ 눈빛출판사/ 가격35,000원

 

농촌여성 이름 알려 성평등 의식 높여야

할머니들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서비스 마인드도 남성에 비해 어렵지 않게 표현한다. 손님들에게는 남성보다는 아직 여성에게 친절을 기대하고, 물건을 사고 싶은 심리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장터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사람도 여성이고, 농촌에서도 농사일을 연결해주는 사람은 여성인데 어째서 여성의 지위는 남성과 공평하지 않은지 정영신씨는 의문을 품었다.

농촌 현실이 바뀌려면 정영신씨는 농사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농촌여성들이 당당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물건을 자신 있게 판매할 때 구매하는 손님도 즐겁다고 했다.

“장터에 직접 도토리묵을 쒀서 판매하는 자매 할머니를 만났어요. 가져오자마자 순식간에 동이 나더라고요. 도토리묵 이름은 뭐냐고 물었더니 그냥 우리가 만들었다 말하고 끝이었어요. 맛이 좋으니까 인기리에 팔리는 건데, 두 사람의 이름 붙여서 도토리묵으로 팔면 손님들도 호칭 생겨서 더 애정을 가질 거라고 말했어요. 농사에 가치를 높이려면 자신만의 브랜드가 있어야 진정한 자신의 상품이 되는 거니까요.”

정영신씨는 장터에서 농산물 팔 때도 지역명, 농장이름 붙이지 말고, 꼭 자신의 이름을 붙여야 더 즐겁게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방법을 소개했다.

귀농귀촌인과 소통해 농촌 고령화 극복해야

정영신씨는 앞으로는 과학이 농업에 접목되면서 농사짓는 사람이 최고인 세상이 될 거라고 봤다.

“귀농하는 사람들은 더 여유 있게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농촌으로 옵니다. 귀농인들은 농사지으면서도 사람들 불러서 팜파티 열고 세미나 갖고 시낭송을 해요. 기존 농사짓던 원주민들은 바깥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농촌의 변화를 버거워 해요. 여러 이유가 갈등이 돼 귀농귀촌인을 배척합니다.”

자연 속에 살면서 농산물을 가꾸는 농업인들이 왜 행복하다는 말 대신 농사가 힘들고 사는 게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하는지, 행복하다고 말하는 농업인은 없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농업인의 목소리가 장터에서 자주 들려온다고 했다.

“옛날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농장에 가서 일손 보태며 두레로, 품앗이로 농사지으면서 시름을 잊었죠. 요즘은 할머니들이 혼자 농사짓고 혼자 논다고 말하세요. 농촌이 단절돼 갈수록 남편만 찾고, 자녀들에게 볼멘소리를 하게 되는 환경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정영신씨는 농촌이 고령화 되면서 전통시장이 위기라고 했다. 읍면에서 열리는 장터에 가면 할머니들이 “우리 죽으면 장도 없어질 것”이라고 걱정한다고 했다.

대형마트 확산에 전통시장 지키려면…

농촌의 문제는 산적해있지만 그럼에도 전통시장은 계속 이어져야한다고 정영신씨는 말했다.

“사람들은 편리하다는 이유로 대형마트만 이용해서 장터에 갈 때마다 할머니들은 마트가 생겨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장사를 못한다고 하소연하세요.”

1만 원 어치만 사도 배송을 해주는데 할머니들은 물건을 어떻게 팔아야 되나 고민이 많다고 했다.

“그럼에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뤄지는 거래를 장터는 끝까지 지키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1000원짜리 머리빗을 사도 장터에 단골집만 찾는 손님을 맞이할 때, 하나를 사더라도 찾아오는 손님이 있는데 할머니들은 어떻게 장을 안 나오겠냐며 말하세요. 자본주의 사회여도 장터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정이 흐르는 장소로, 물건만 바뀔 뿐 장터를 이용하는 마음은 변치 않을 겁니다.”

 

농촌여성신문 / 민동주기자

 

'코리안 타임스' '어머니의 땅' 인터뷰 기사

[출처] 인터뷰 – 정영신 사진작가 “장터는 사람과 정이 흐르는 삶의 현장”|작성자 인사동 이야기

 

“비러먹을 넘! 아직 배때지가 덜 고파서..”

이 말은 동자동 김씨 영감이 아들 같은 옆방 노씨에게 한 말이다.

엊그제 ‘쪽방상담소’에서 밑반찬을 나누어주었는데,

타러 가자는데 안 간다니 뱉은 욕이다.

 

‘비러먹다’는 말은 ‘빌어먹다’ 옛말로 남에게 구걸해 먹고 사는 것을 말하는데,

반찬 얻으러 가는 자체가 빌어먹는 일 아닌가?

얻으러 가는 놈이 빌어먹는 놈인데,

안 간다는 사람을 왜 빌어먹을 놈이라고 욕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쪽방 사는 빈민 모두가 빌어먹는 사람에 다름아니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는 것이나 구호단체에서 보내 주는

물품들을 받는 자체가 얻어먹는 일이 아니던가?

 

하기야! 자본주의 세상에서 남의 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도 다 빌어먹는 사람이다.

‘손바닥만한 땅때기 한 평만 있어도 빌어먹고 살지는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에서부터 사장과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주종 관계다.

그러니 다들 갑의 자리에 서기 위해 돈 벌려고 눈을 벌겋게 설치지 않는가?

 

그리고 전문 경력이나 기술보다 앞서는 것이 돈이다.

몇십 년을 연구하여 개발해도 창업 자본이 없으면

그 분야에 아무 것도 모르는 자본가한데 빌어먹는 것이 세상 이치다.

가진 자들은 자손 대대로 갑의 위치에 살고, 없는 자들은 대대로 빌어먹는다.

 

없어도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노씨는 줄 서서 얻는데는 잘 나서지 않는다.

그냥 준다는데도 가지 않으니, 영감 입장에서는 답답한 것이다.

두 달 전부터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2주에 한 번씩 밑반찬을 나누어 주고 있다.

‘대한적십자’에서 보낸 ‘희망풍차’란 밑반찬 나눔인데, 다들 기다리는 품목이다.

 

노씨 대신 같이 가 보니, 의외로 줄 설 정도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주민들을 격주로 나누어 분산했으니, 줄 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받은 비닐봉지를 풀어보니, 콩조림과 멸치조림, 짜장이 각각 담겨 있었고,

단감 두 알도 보너스로 들어 있었다.

 

그 정도면 일주일쯤은 라면 신세를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방 없는 쪽방 주민으로서는 그보다 고마운 선물이 없다.

 

반찬은 있으나 밥이 없어, 옆방에서 일회용 밥 하나를 빌렸다.

"젠장, 빌어먹는 짓도 가지가지 하네"

 

사진, 글 / 조문호

 

 

 

 

말 풍경∙말 풍선

[사진∙말∙천국=Photography∙Text∙Utopia=Photextopia]"

사진∙Photography ↔

아이콘∙Icon-인덱스∙Index-심벌∙Symbol에 관한 썰(說)"

 

이강우展 / LEEGANGWOO / 李康雨 / photography 

2021_1027 ▶ 2021_1109

 

이강우_말 풍경∙말 풍선 PHOTEXTOPIA_C 프린트_70×47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갤러리 인덱스

GALLERY INDEX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5 인덕빌딩 3층

Tel. +82.(0)2.722.6635

www.galleryindex.co.kr

 

 

사진∙이미지! 그대를 향한 헌사(獻辭) ● 사진! 그대와 나는 애증의 관계이다. 이제 나는 그대를 거역할 수 없다. 그대는 나에게 매우 각별하다. 그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그대와 나는 숙명적 동반자이다. ● 빛으로 농밀하게 빚어진 그대! 참으로 매력적인 그 자국! 진정 그대는 수려하고 화사하고 강렬하고 육감적이고 즉각적이다. 그대를 수놓은 색깔과 명암과 농담도 정말 섬세하고 오묘하고 싸하고 느낌적이다. 그대는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오롯이 낚아채어 과거로 남겨버린다. 그대에게 찰나와 그 연쇄는 자신이 세상에 존재해야할 바로 그 이유이다. 그대는 매순간을 즐기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대의 흔적은 곧잘 존재와 인식이라는 까탈하고 난해한 차원의 문제로 치환된다. 그리고 종종 그것은 신화적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려진다. ● 그대의 시선은 늘 외부로 향한다. 그대는 나로 하여금 세상을 내다보거나 들여다보도록 만든다. 그대는 자신을 통해 나를 반추하도록 유도한다. 그대는 부유하면서 자신을 소비하도록 이끈다. 그대는 과거의 사건이나 장면을 기민하게 현시하고 즉각적으로 지시한다. 그대는 그 힘으로 나의 눈과 의식을 예리하게 찌르고 불현듯 기억을 호명한다. 그리하여 그대는 나로 하여금 과거를 현재로 착시하고 거기에 직시하도록 인도한다. 그대는 얼마든지 자신을 증식하도록 나에게 자신의 몸을 내맡긴다. 진정 그대가 상시적으로 베푸는 복제와 전파의 은혜는 나에게 하해와 같다. 정녕 그대가 보시하는 무한증식으로의 해탈은 인류에게도 축복이다.

 

이강우_썰(說)-사진과 말의 밀당 Pushing and Pulling between Photography and Saying_

이미지, 거울, 텍스트, C 프린트_108×540cm_2021

이강우_썰(說)-사진과 말의 표리 Two Sides between Photography and Saying_

이미지, 거울, 테스트, C 프린트_90×450cm_2021

이강우_말-말을 해야 한다∙말도 쉬어야 한다∙말은 달려야 한다_

C 프린트, 이미지, 텍스트_18×324cm_2021

 

자연은 자신의 근원적 질서에 따라 조화로우면서도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류는 자신의 사회이념과 시대정신과 굳은 욕망으로 대지의 곳곳에 깊숙한 외상(外傷)을 남긴다. 그대는 그러한 현상들을 예리하고 리얼하고 세밀하게 포획하는 남다른 능력을 갖췄다. 그대가 대상을 단일시점으로 납작하게 압축해서 물질화하고 정보화하는 능력은 경탄스럽다. 사각의 평면에 균일하고 균질하게 현시된 그대는 바늘로도 찔리지 않을 만큼 견고해 보인다. 그렇게 정밀하게 구현된 그대의 환영 체는 또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 같다. ● 그대는 삶과 사회의 현실에 대한 밀착과 노출에 안성맞춤이다. 진실성의 신화를 몸에 두른 그대가 발휘하는 사회적 영향력이나 여론형성능력도 만만치 않다. 그런 그대를 선점하거나 점유하려는 주체들(개인∙집단)이 벌이는 경쟁은 항상 치열하다. 그대는 인간사(개인∙가족∙단체∙사회∙국가)의 대소사를 전형적인 방식으로 기념한다. 그대는 자신을 통해 성∙연령∙계층∙계급별로 구조화된 질서와 스타일과 그 차이를 노출시킨다. 그리하여 그들 각자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어주고 공고한 제도의 틀을 다시금 각인시킨다. ● 그대는 여행과 찰떡궁합이다. 여행자와 더불어 그 즐거움을 만끽하며 자신의 재능을 한껏 드러 낸다. 그런데 그 이면에 숨은 한 의미가 흥미롭다. 그대는 여행자를 따라가며 곳곳을 배경으로 한 지배자적 형식과 승리적 감각이 어우러진 기념물로 남는다. 이때의 그대는 여행자가 그 장소에 대해 갖는 일종의 정복 내지 소유 의식의 발로이자 그 표상 체라 할만하다. ● 그대가 엄정하고 객관적인 모습을 갖추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대에게는 주체(인간∙사회)의 이념과 의지와 선택과 감각이 필연적으로 개입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대에게 작용하는 그러한 주관성을 어느 정도까지 최소화할 수는 있겠다. 그대는 자신이 가진 어쩔 수 없는 나약함을 애써 방어하거나 감추려하지 않는다. 줄곧 자신에게 밀어닥칠 수많은 간섭이나 압력에 고스란히 자신을 열어둔다. 그리하여 그대는 자신에 대한 각각의 반응과 개입과 재단과 쓰임새를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이강우_말이 필요 없을 법한 사진 - 뜬 구름 속으로 날아오르다_

C 프린트_112×90cm_2021

이강우_말을 부르는 사진 - 철암 2006_C 프린트_40×120cm_2021

이강우_말을 부르는 사진 - 사북 2006_C 프린트_40×120cm_2021

이강우_내가 말을 가장 많이 쓴 사진–1979 부산마산민주시민항쟁도

_혼합재료_300×1100cm_1999

 

그대는 화려한 기술과 빼어난 감각으로 나의 눈을 사로잡고 심리와 결핍을 자극하며 욕망을 부추긴다. 결국 나는 그대에게 포섭되어 그대의 포로가 되고 만다. 그대가 던지는 현란한 유혹이나 내밀한 추파를 외면하기 어렵다. 그 누구라도 방심하는 순간 거기로 빨려 들어가 명멸하고야 만다. 그대는 은밀하게 도촬을 즐기다가 예기치 않은 시점에-요사스런 방식으로-전격 등장한다. 그대의-찰거머리 같은-파파라치 컷은 단숨에 사회로 퍼지며 대중의 이목을 확 끌어당긴다. 그리고 수많은 가십과 소문을 횡행하게 만들어 사회적 쟁점을 흐리거나 국면을 전환시킨다. ● 그대는 일상의 친숙한 동반자인 반면 삶과 문화로 포장된 제도이자 구조화된 권력이다. 그대는 자신의 그러한 상반적 면모를 굳이 감추려하지 않는다. 물론 그대는 자신의 그러한 이중성을 교묘하게 위장하거나 은밀하게 숨길 줄도 안다. 그대는 인류의 삶과 문화와 사회에 풍요로움을 안겨준 것만은 아니다. 그대는 지배 권력과 함께 하면서 인류에게 뼈아픈 상처를 안기는 데에 크게 일조해왔다. 아직도 그대는 인류에 대한 관찰∙감시∙관리∙통제∙격리∙통치∙지배의 수단으로 사랑받는다. ● 그대는 나를 두드리고 일깨우고 주무르는 이미지요 물질이요 정보요 미디어이자 메시지이다. 그대는 실재∙허상, 존재∙인식, 기록∙표현, 순수∙실용, 과학∙예술 등의 영역을 부단히 오간다. 그대에게서 여전한 자랑거리는 실재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유사적 재현성이 아닐까? ● 그대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화가가 이미지 생산을 주도하고 일부계급이 그 소유를 독점했었다. 그대의 출현과 산업화와 관련기술 발전은 이미지 생산∙유통∙소비∙소유의 전반을 혁신시켰다. 이제는 폰 카메라와 1인 다중 미디어 시대로 넘어오며 그것의 대중화가 더더욱 촉진 중이다. 그 지형도 많이 변하여 지금은 그대를-예전처럼 숙련된 전문가가 아니라-대중이 주도한다. ● 정보로 치환된 그대는 확장된 유통망과 다양한 소통망을 따라 세상에 상시적으로 전파되고 공유된다. 그대에 대해 사람들이 던지는 각양각색의 시선과 반응(댓글)은 그대를 만든 주체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요로로 자리 잡았다. 이제 그대를 매개로 해서 많은 사람들은 예전처럼 나르시시즘을 은밀하게 탐닉하기보다 공개적으로 즐긴다.

이강우_사진의 문맥을 채집하기 Collecting the Context of Photography_

이미지, 단어, 텍스트, C 프린트_29.7×42cm×10_2021

이강우_썰(說)-사진과 말의 밀당 Pushing and Pulling between Photography and Saying_

이미지, 거울, 텍스트, C 프린트_108×540cm_2021

 

현재 그대의 활동 반경은 드넓고 그 영역도 다양하다. 인류가 관장하고 있는 가시 세계에서 초거시∙초미시 세계에 이르기까지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최근 과학∙기술 분야에서 그대가 수행하는 다양한 첨단의 역할과 그 업적은 실로 놀랍다. 그대가 열어주는 비가시 세계의 경이로운 광경들에 그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 그대는 이 시대의 생생한 화석이자 기념비로 칭송받는다. 그런 만큼 그대는 어떤 절대자로서의 성상에 비견될만하다. 그러하기에 그대는 내게 경외의 대상이다. ● 사진∙이미지! 그대의 수명은 무한하다. 반면 내 인생은 너무 짧다. 아! 사진과 관련하여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그대는 나름의 '당파적 관점과 논리'를 등에 업고 세상에 자신만의 '독자적인 존재성(Index)'을 한껏 뽐낸 바 있다. 그런 그대가 한쪽에서는 예술의 바다에 한 다리를 걸친 채 꾸준히 노를 저어왔다. 이제 예술에서 그대는-그대가 펼쳐온 표현의 차원과는 별개로-그대 자체만으로도 예술적 의미와 가치의 대상으로 후하게 대접받는다. ■ 이강우

 

 

Vol.20211027d | 이강우展 / LEEGANGWOO / 李康雨 / photography

아시안 시티스케이프 Asian Cityscape

 

김경숙展 / KIMKYUNGSOOK / 金敬淑 / photography 

2021_1028 ▶ 2021_1107 / 월요일 휴관

 

김경숙_Asian Cityscape, Macao_디지털 크로모제닉 프린트_150×150cm_201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80425a | 김경숙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사간동 78번지)

Tel. +82.(0)2.720.5114

www.kumhomuseum.com

 

 

다중도시 환타지 ● 『아시안 시티스케이프(Asian Cityscape)』라는 제목으로 선보이는 김경숙의 이번 전시는 대한민국 서울을 포함하여 아시아에서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는 관광 도시를 주제로 하고 있다. 도시는 그 성격상 비상하는 도시와 침체하는 도시 그리고 정체된 도시로 나눌 수 있다. 김경숙의 카메라에 담긴 도시들은 아시아의 도시 중에서도 유구한 역사가 흐르는 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도시들이다. ● 서울은 조선의 600년 수도로 성곽으로 둘러싸인 구도심과 한강 이남으로 확장된 신 도심이 있다. 「아시안 시티스케이프, 서울」은 중앙에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위치하며, 하단으로 북촌한옥마을과 구도심의 소규모 건물을 배치하고, 상부에 남산 타워를 중심으로 좌측에 여의도에 있는 리차드 로저스의 파크 원, 아키텤토니카의 IFC 빌딩 그리고 우측으로 라파엘 비뇰리의 탑 클라우드와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현대산업 사옥이 위치하고 있다. ● 김경숙작가는 그동안 실내건축과 건축 분야를 부단히 왕래하면서 작업을 했고, 이후 사진을 전공하기까지 김경숙 삶의 궤적을 함께 한 오랜 시간의 흔적이 묻어있고 또한 많은 고민의 결과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김경숙의 작품이 도시의 어두운 부분을 강조하거나 도시의 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자들을 대변하기 위한 고발적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경숙은 훌륭한 건축가의 손으로 빚어진 작품들을 그만의 고유한 시각으로 촬영하고 그 반대편에서 의연히 서 있는 건축가 이름도 없는 건축물들을 도시의 구성물로 함께 놓음으로써 도시의 공생적 측면을 추구하고 또한 도시의 다중성을 함께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생각한다. ■ 이상림

 

김경숙_Asian Cityscape, Bangkok_디지털 크로모제닉 프린트_150×150cm_2020
김경숙_Asian Cityscape, Beijing_디지털 크로모제닉 프린트_150×150cm_2019

 

시티스케이프 ● 김경숙 작가의 작품은 매우 다양한 건물을 한 장에 모아놓은 사진들이다. 각각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품마다 특정한 나라의 한 도시가 가진 형식과 외관이 다른 현대 건물과 전통 건축물이 혼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작가는 선정된 도시에서 가장 높은 빌딩(High-Rise) 1위부터 15위까지를 조사하여 일일이 촬영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으며 도시와 국가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을 촬영한다. 마지막으로 그 도시를 구성하는 서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곳을 촬영한다. 이로써 1차 이미지 채집이 끝난다. 이후 작업실로 돌아와 한 작품당 수일~수십 일에 걸쳐 포토샵으로 이미지들을 일일이 '따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에 따라 '따놓은' 이미지를 한 화면에 앉힌다. 대부분의 경우 가장 높은 빌딩(High-Rise)을 화면의 위에 앉히고, 서민의 삶이 보이는 장소는 아래 배치한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문화적 장소, 건물을 화면의 중심에 놓는다. 이로써 한 도시의 이미지가 완성된다. 하나의 도시를 한 프레임에서 보여준다. 몇 문장으로 과정을 설명하였지만, 11개 나라의 도시를 이동하고 동일한 빛을 기다려 촬영하고, 컴퓨터로 돌아와 복잡한 이미지를 '따내는' 수공업적 작업이 육체적으로 쉽지 않았음을, 작업해 본 사람들은 쉽게 짐작할 것이다.

 

김경숙_Asian Cityscape, Hanoi_디지털 크로모제닉 프린트_150×150cm_2019


김경숙_Asian Cityscape, Hong Kong_디지털 크로모제닉 프린트_150×150cm_2019

김경숙 작가는 이번 시리즈를 통해 '야누스적 도시'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야누스의 얼굴', '야누스적 역할' 등 관용적 표현에서 야누스는 서로 반대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야누스(Janus)는 로마신화에서 문(門)의 수호신. 전의(轉意)하여, 모든 것(연, 월, 일, 4계(季), 기도 등)의 처음과 끝의 신'을 의미한다. 즉, 도시의 양면성과 더불어 각 도시의 모든 것을 한 프레임에 담는 결과를 가져왔다. ● 작가가 힘써 모으고 오랫동안 한 클릭 한 클릭 마우스 작업을 한 작품 내의 도시의 골목길과 화려한 건물을 눈으로 따라다니는 시각적 경험을 하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에는 여행에서 보았던, 혹은 가보지 않았더라도 그 도시 사람의 삶과 목소리와 도시마다 특유의 냄새가 떠오를 것이다. 관람자가 이런 경험을 하기를 바란다. 최선을 다한 작가의 작품이 완성되는 것은 관람자에 의해서이다. ■ 김동욱

 

김경숙_Asian Cityscape, Jakarta_디지털 크로모제닉 프린트_150×150cm_2020
김경숙_Asian Cityscape, Kuala Lumpur_디지털 크로모제닉 프린트_150×150cm_2020

 

도시의 이미지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표현한다면 ● 도시의 이미지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도시의 모든 역사적, 문화적 특성, 도시를 대표하는 건물, 사람들과 자연을 한 화면에 담아, 하나의 프레임으로 그 도시를 파악할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나의 오랜 숙원이었다. 해외 도시를 여행하면서 도시마다 정체성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큰 행복이었다. ● 한 도시를 대변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거기에는 유명한 고층 건물, 전통 주거지역, 시민들의 생활상, 지역 특성, 전통의상, 고유음식, 상가건축, 식생, 역사적인 장소와 기념물, 문화적 특성을 보존한 곳,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 등이 있을 것이다. 한 도시를 구성하는 이런 다양한 요소 중에서 나는 그 도시만의 특색이 묻어나는 고층 건물, 서민 주거지역, 역사적/문화적 건축물, 식생을 선정하였다

 

김경숙_Asian Cityscape, Seoul_디지털 크로모제닉 프린트_150×150cm_2021

대상 도시를 선정한 기준은 먼저 해외여행객이 많이 찾는 10대 아시아-태평양 국가(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마카오,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대만)를 선택하고 거기에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나라(베트남, 몽골)를 더하여 총 12개 국가로 목록을 만든 후 각국의 수도를 채택했다. 실제 촬영은 2019년 3월 1일에 시작하여 2020년 2월 2일까지 10개국을 촬영을 끝냈고, 대만은 팬데믹으로 인하여 촬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2021년 6월 30일까지 서울 촬영을 계속하여 11개 도시를 각각 한 화면에 압축한 작품을 완성하였다. ● 도시는 사람이 모여 사는 장소이다. 근대 이후로 도시는 과밀화로 인해 공간은 점점 수직화되고 인간성은 황폐해지는 경향이 있다. 근대도시는 그 영역을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으로 분리하여 출발하였다. 도시의 풍경을 만드는 것은 도심의 초고층건물과 변두리의 저소득층 주거지역이다. 초고층건물은 도시디자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며 한 도시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그 지역의 발전상을 나타내는 랜드마크이다. 반면 저소득층 주민들은 서로 품앗이를 하고 가진 것을 베풀며, 유익한 생활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김경숙_Asian Cityscape, Tokyo_디지털 크로모제닉 프린트_150×150cm_2019
김경숙_Asian Cityscape, Ulan Bator_디지털 크로모제닉 프린트_150×150cm_2019

 

도시의 가치가 점점 높아지는 현재 상황에서 진정 귀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있는 풍경, 사람이 있는 도시야말로 진정 훌륭한 도시다. 그래서 도시를 움직이는 인간들의 활동에 활력이 없어진다면 이에 대한 재생이 필요하다. ● 각 도시만의 특징에 따라 적합한 주거 양식이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여러 형태의 삶이 공존하고 그런 공존에 적합한 주거 양식에도 좀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 호화로운 고층 건물이든, 소박한 서민형 건물이든 모두가 도시에 중요한 일부이고, 도시인의 삶을 이루는 유기적 요소이다. 내 작품의 상부와 하부 풍경처럼 사람들의 삶과 그를 담는 집이 점점 양극화되는 현상이 조금이라도 줄었으면, 그래서 작품에서 보듯 반대적 요소들이 나름 조화롭고 아름답게 어우러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김경숙

 

Vol.20211028e | 김경숙展 / KIMKYUNGSOOK / 金敬淑 / photography

며칠 전 ‘노숙인, 길에서 살다’ 책 몇권을 배낭에 넣어 나갔다.

아직 못 챙겨 준 사람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 그런지, 공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어떤 전도사는 몸이 편치 않은 이에게 축도를 올렸고,

몇몇은 모여앉아 잡담을 나누었다.

 

공원에 책 줄 사람은 남기씨 뿐이었다.

일부는 쪽방으로 찾아가 전해주었고, 서울역에선 지은이밖에 주지 못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았다.

농담도 하지 않고 뭔가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책 날개에 적힌 약력 때문일까?

작업하러 쪽방에 들어 왔다고 생각했는지 친밀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걸 염려해 여태껏 언론사 인터뷰 요청도 거절하지 않았던가.

 

사실 빈민들의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려면 책만 낼 것이 아니라

널리 알리기 위해 언론 도움도 받아야 했다.

 

그나저나 앞으로 편한 관계로 지내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걱정되었다.

그뿐 아니라 쓸쓸한 가을 날씨마저 우울하게 만들었다.

계절을 타는지 만사가 귀찮고 돌아다니기도 싫었다.

 

혼술은 청승맞아 정동지에게 전화 걸어 술 한잔 사 달라 했다.

둘이서 술 마시며 이런저런 하소연으로 시름 달랬다.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 새겼던 말도 곱씹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항상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현실을 인식시켜 세상을 바로잡는 데 기여해야 한다.”

 

얼마나 계도에 보탬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정말 힘들고 어렵다.

소주잔에 모든 시름과 가을까지 담아 마셔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인터넷에 떠도는 작가 미상의 1950년대 장터 주막이다

정영신의 ‘한국의 장터’ 사진전이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오는 11 9일부터 1231일까지 열리는데,

한 달 더 연장될 수도 있단다.

 

정영신사진, 1990년 순창장

 

얼마전 인사동에서 열린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전시장에

눈빛출판사이규상대표와 돈의문박물관마을전시팀장 전영주씨가 오셨더라.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정영신의 한국의 장터사진전을 두 달간 열고 싶다는데,

작가 출품비까지 준다기에 귀가 번쩍 띄었다.

 

그런데, 도대체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어디 있는 곳인가?

그동안 어지간히 졸랑거리며 다녔는데, 모른다는 게 남세스러웠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돈의문박물관마을은 한양도성 서쪽 성문 안 첫 동네로

역사적 가치와 흘러간 근현대 서울의 삶과 기억들을 고스란히 품은 곳이었다.

서울형 도시재생 방식으로 재탄생한 도심 속 마을의 역사적 문화공간이라는 것이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이웃한 종로구 교남동 일대와 더불어 

2003 '돈의문 뉴타운지역으로 선정되면서

기존의 건물을 모두 허물어 근린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한양도성 서쪽 성문 안 첫 동네로서

새문안 동네의 역사적 가치를 알리고 마을의 삶과 기억이 보존된 작은 마을 그 자체를

박물관마을로 남겨 시민의 문화 자산으로 조성하고자 했다

마을 건물은 최대한 살려 리모델링 했으나 

일부 집을 허문 자리에는 넓은 마당을 만들었다

 

근현대 건축물 및 도시형 한옥, 100년의 역사를 지닌 골목길 등

정겨운 마을의 모습을 그 자리에 남겼다.

많은 시민이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의 장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박원순 시장 재임 시 만들었으나 홍보가 미흡했는지

아직 서울시민에게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현재 돈의문박물관마을은 ‘근현대 100기억의 보관소’ 컨셉으로

새롭게 단장을 마쳐 시민들을 맞이한 것이다.

40개 동의 기존 건물은 그대로 두면서 본래 조성 취지인 

'살아있는 박물관마을'이라는 정체성을 되살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일 년 내내 전시체험공연마켓 등이 열리는 '참여형공간으로 채워

전면 재정비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찾아가는 길은 정동길 따라 올라가면 '경향신문사'가 있고

그 건너편 큰길 건너에 '강북삼성병원'이 보인다.
'강북삼성병원' 바로 옆행촌동 넘어가는 좁은 골목길 건너편이 돈의문박물관마을이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서대문이었던 돈의문이 있던 자리였다.
현재 강북삼성병원 자리는 1920년대 세워진 초기 유한양행 자리였고,

그곳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사셨던 경교장이 있던 곳으로

지금도 강북삼성병원뒤쪽 주차장 입구에 초라하게 남아있다.

경교장은 1968년 고려병원(강북삼성병원의 전신)이 그곳에 터를 잡았고

이후 2014그 일대는 돈의문 뉴타운이 건설되면서 재개발을 하게 된다.

 

돈의문박물관마을자리는 원래 근린공원 부지였으나

개발 계획이 바뀌어 박물관마을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돈의문은 새문이라는 별칭이 붙었고,

돈의문 안쪽 동네는 새문안동네로 불렸다고 한다.

 

네비의 안내에 따라 가보았더니,

주말이 아니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문득 북촌한옥마을이 떠 올랐는데, '돈의문 박물관' 마을 전체가 박물관이었다.

오래된 주택과 좁은 골목가파른 계단이 같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마을 여기저기에는 잊혀진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목마가 반겼고, 간첩을 신고하는 딱지가 보였고,

한 번쯤 들려본 것 같은 극장간판도 보였다.

 

그리고 이곳에는 어린이 하면 생각나는 인물, 방정환 선생님에 대한 스토리도 볼 수 있는 곳이다.

방정환 선생님이 태어난 곳과 생애 마지막을 보낸 곳은 돈의문 박물관에서 매우 가깝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는 '돈의문 역사관'이 자리 잡고 있다.

역사관은 하나의 건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네 개 건물로 분산되어 있었다.

그리고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월요일이 휴관이란 걸 잊지 마시라.

 

돈의문 박물관 전시장을 찾아가니, 전시팀장 전영주씨가 반겼다.

전시 공간은 작가들 전시장으로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받으며 효과적으로 우리 장터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점으로 남은 것은 주말마다 작가가 나와

엽서에 서명해주는 시간을 만들려 했으나 코로나 때문에 서울시와 협의를 해야 하고.

장터 사진집은 물론, 이야기 그림책조차 판매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 말라면 안 하면 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운영자들의 생각이 안타까웠다.

 

아무튼, 전시 기간에는 사진인 보다 부모들이 자식들 손 잡고 와 주시면,

자식들에게 엄마 아빠가 살았던 예전 모습을 자식들에게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기대하시라!

사라져 가는 장터의 추억을...

 

사진, / 조문호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온전하고 신속한 추진을 바라는 쪽방 주민들의 집회가 지난 13일 오전 11시부터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진행되었다.

 

“내가 사는 동자동, 내가 살아갈 동자동‘이란 슬로건을 내건 이번 집회는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모임‘, ’2021 홈리스 주거팀‘, ’1017 빈곤철폐의날 조직위원회‘,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공동 주최했다.

 

이날 동자동에서는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김정호 이사장, 동자동사랑방 윤용주 대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모임 김영국 위원장을 비롯하여 선동수 간사장, 박승민 활동가, 김호태, 양정애씨 등 30여 명의 주민이 모여 오전 7시30분경 세종시로 출발했다.

 

10시 30분경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홈리스행동‘의 이동현 상임활동가를 비롯한 여럿 명이 먼저와 준비작업을 하고 있었다. 다들 서둘러 나오느라 식사를 못한 터라 준비한 도시락으로 식사부터 했다.

 

국토교통부 청사 주변에는 전국 각지에서 찿아 온 단체의 집회와 갖가지 현수막으로 어수선했다. 누군 ’저런다고 들어줄까?‘지만, 옛 말에 ’우는 아이부터 젓 물린다’란 말이 있듯이 안 하고 내버려 두는 것보다야 백배 낫다.

 

그런데 이번 집회에는 색다른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것 같더라. 여기저기 우산을 배치하는데, 우산에는 각기 다른 글자가 적혀있었다.

 

'홈리스행동'의 이동현씨 진행으로 시작된 주민 좌담회에는 동자동의 김호태, 백광현, 김영자, 앵정애씨가 나와 여러 가지 애로점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김호태씨는 비가 오면 방에 물이 흘러 방 주변으로 도랑처럼 물 고인 흔적이 남아 있다며 사는 꼴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점은 어느 쪽방 건물이나 비상구가 없다고 했다. 만약 불이라도 나면 다닥다닥 붙은 쪽방 건물들은 가파르고 좁은 출입 계단뿐이라 대형참사를 면키 어렵다고 말했다.

 

백광현씨는 건물주인들의 횡포를 꼬집었다. 어느 날 방문마다 안전진단을 이유로 방을 비우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강제퇴거 시키고는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해 다시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양정애, 김영자씨는 동자동은 고향 같은 동네인데, 재개발 소식에 큰 희망을 품고 산다고 했다, 우리도 이웃과 어울려 커피라도 한 잔 나누어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며 좋아했는데, 혹시라도 잘 못 될까하는 걱정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유행가 ‘안동역에서’와 ‘내 나이가 어때서’에다 ‘서울역에서’와 ‘공공개발 어때서’로 가사를 바꾸어 노래 부르는 순서가 되었는데, 대표 가수로 차출된 백광헌씨의 노래솜씨가 보통은 아니었다.

 

동자동에서

 

동자동에 갇혀버린 허무한 세월이여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을 생각하며

남은 인생 희망을 품는다~

지금까지 살아 온 시간

길고도 험했는데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공공주택 사업아~

지금에야 집 같은 집 꿈을 꿔 본다.

공공개발~ 눈물이 난다

 

공공개발 어때서

 

야~야~야~ 공동개발 뿐이죠

우리는 공공개발 원해요~

마음은 하나요 공공개발 뿐이죠

건물주가 우리 집 지어 줄까요~

물이 새도 나몰라

방세만 받으면 끝

돈만 아는 집 주인들 뿐이죠~

세입자 사는 건 관심들도 없고요

오로지 방세만 받으면 끝

싫으면 나가라

우리들은 투명인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요~

 

이어 발언에 나선 주민협동회 김정호이사장은 가까이 지내던 전 이사장 유영기씨와 아끼던 후배 한정민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사람답게 한 번 살아보지도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사람이 죽어도 금방 알 수 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건물주들은 사람이 죽어도 나몰라라 하며 오직 방세 받는 데만 혈안이 되었다며, 이젠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다고 결의를 다졌다.

 

‘동자동 사랑방’ 윤용주 대표는 공공주택사업의 차질 없는 추진으로 사회에서 배제된 쪽방 주민들이 안정된 주거환경 속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모임 김영국 위원장은 공공주택사업추진 조직에 쪽방촌 주민대표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며 당사자 의견도 반영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장했다.

 

‘양동쪽방 주민회’ 용명중 위원장은 충분한 물량공급으로 개발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우리도 교도소 독방 같은 쪽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연대 발언으로 나선 세종장애인차별철페연대 문경희 대표의 설움을 토해내는 울부짖음은 듣는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흔들림 없는 시행을 촉구하는 요구서를 김정호, 윤용주, 김영국 주민대표가 차례대로 낭독하며 국토교통부 담당자에게 전달했다.

 

이어 ”공공개발 환영한다. 적정면적 제공하라. 임대주택 확대하라“란 글이 적힌 우산을 펼쳐 들고 청사 주변을 행진하는 가두퍼레이드를 펼쳤다. 아마 청사에서 일하던 담당자들이 내려보았다면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행진을 마친 뒤 주민 몇 분이 차례대로 청사를 바라보며 요구 사항을 외쳤는데, 마지막 발언에 나선 김정길씨는 ‘쥐하고 바퀴벌레와 사는 열악한 삶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이젠 정부에서 개발업자나 투기꾼들 배만 불리는 민간개발보다는 서민들을 위한 공공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서민들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수십억의 돈이 권력자 로비 자금이나 사례비로 나가는 등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대장동 사건을 지금 겪고 있지 않는가? 동자동 공공개발을 시범으로 전국으로 확대 추진하길 촉구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요구서 전문]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흔들림 없이 신속히 추진하라

 

지난 2월5일 발표된 ‘서울역 쪽방촌 정비방안’에는 전국 최대의 쪽방촌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공공주택사업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 서로 이웃이 되고 가족과 같이 살아가기에 쪽방촌을 떠나지 못했던 쪽방 주민들에게는 개발로 인해 쫓겨나는 것이 아닌 보다 안정된 주거환경 속에서 이웃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은 쪽방촌 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에 큰 의미를 두고 추진되는 사업이다. 따라서 이번 사업이 쪽방촌 주민들이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자로 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과정에 쪽방 주민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사업추진 조직(TF)에 쪽방촌 주민대표의 참여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이번 공동주택사업 계획을 추진함에 있어 논의 구조에 주민(대표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반드시 보장하여 당사자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쪽방 주민들의 열악한 주거환경개선에 의미를 두고 있는 이번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쪽방 주민을 시혜와 공급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협력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2, 공공임대주택 입주 후에도 주민 스스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 가꾸어 갈 수 있도록 개발계획에 동자동 주민 자치 조직의 활동 공간이 포함되어야 한다.

 

‘동자동 사랑방’과 ‘사랑방 마을 주민 협동회’는 풀뿌리 주민 자치 조직으로 2007년부터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인권과 권리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쪽방촌의 유일한 주민 자치 조직으로 지난 10년 이상 지역에서 주민 협동공동체 실현을 위해 힘써 온 주민조직들이 개발 완료 후에도 계속 그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사무실)과 주민 스스로 다양한 마을 행사와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터, 공원)이 확보 되도록 디자인되어야 한다

 

3, 충분한 물량 공급으로 이번 개발 범위 안에 포함되지 못한 동자동 인근의 쪽방 주민들을 포함 할 수 있는 물량을 공급하여 최악의 주거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에 발표된 임대주택 1,250가구가 충분한 공급량인지에 대해서 재고될 필요가 있다. 사업 지구의 경계나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범위 밖의 쪽방 주민들과 고시원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이번 계획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고 함께 입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4, 쪽방은 사라져야 한다.

 

반지하나 고시원보다 못한 것이 쪽방이다. 지난해 1월 영등포 쪽방촌을 시작으로 대전, 부산에 이어 네 번째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대한 공공주택사업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서울에는 남대문로5가(양동), 돈의동, 창신동, 전농동 쪽방촌이 남아 있고 대구와 인천에도 쪽방촌이 있지만, 이곳에 대한 공공주택사업 추진 계획은 없다. 쪽방 주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주거환경 속에서 건물주들의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쪽방은 노후하여 오래전부터 재개발 계획이 수립되었지만, 건물주들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개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 남아 있는 쪽방촌에 대한 주거 문제를 빠른 시일안에 해결해야 한다.

 

최후의 주거 쪽방. 쪽방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배제되고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살고 있다. 공공주택사업으로 쪽방촌 주민들이 안정된 주거환경 속에서 시혜에 의존하는 삶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국토부는 이상의 요구를 반드시 수용하기 바란다.

 

2021년 10월 13일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흔들림 없는 시행 촉구 국토부앞 집회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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