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정영신의 장터순례(2) 경북 경주 건천장 (2013.1.15)

-짐보따리 늘때마다 이야기보따리도 술술~

슬레이트 지붕·함석 미닫이문…
전통시장의 맛과 멋 고스란히
닷새마다 한번씩 침묵을 깨우는
할머니들의 생기가 넘치는 곳

포토뉴스

 

 

 

“아지매, 무슨 소리 합니꺼. 오늘 새벽에 바로 가져온 거라예. 마, 사기 싫으면 사지 마소.”
채소 파는 박씨 아저씨가 흥분을 한다.
“아, 그기 아이고, 함 물어 보는 거 아입니꺼. 물어 보지도 못하는기요.”
물건을 사려는 손씨 아주머니도 지지 않고 대꾸한다. 한푼이라도 싸게 사려고 물건에 트집을 잡아 보려다 들킨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간다.
“좀 깎아 주이소. 아이마 좀 더 넣어 주든가.”

박씨 아저씨는 덤과 함께 마음까지 봉지 속에 담는다. 장터에선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값을 깎거나 더 달라고 조르고, 파는 사람은 남는 게 없다며 입씨름을 하는 풍경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다가 정이 들면 서로 단골이 되어 장날마다 만난다는 게 경북 경주 건천장 채소 장수 박씨 아저씨 이야기다.

닷새마다 경북 경주시 건천읍 건천리 신경주농협 사거리 50m 안쪽에 장이 펼쳐진다. 1914년에 개설된 건천장이다. 이 장터는 옛날 장옥을 지금껏 유지하고 있어 전통의 멋과 맛이 그대로 묻어난다. 장옥을 덮고 있는 슬레이트 지붕과 함석으로 된 미닫이문은 시간을 뒤로 거슬러 가는, 일부러 만들어 놓은 풍경처럼 보인다.
하지만 닷새마다 찾아오는 장날이면 지금도 함석문 여는 소리가 회색으로 번지며 잠들어 있던 들녘의 침묵을 깨우고, 장터는 이윽고 사람들 사는 이야기로 생기가 돈다.

누군가가 꾹꾹 눌러 뒀던 콩이며 깨를 들고 나와 장터 한쪽 양지바른 곳에 펼쳐 놓았다. 주인은 온데간데없고 물건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그새 나타난 김씨 할머니(78)가 “이 할마이보다 이놈들이 더 잘나 보이제” 하며 빙긋이 웃는다. 할머니는 드넓은 밭에 콩을 심어 놓았는데, 어느 고랑에서 순이 가장 먼저 돋아나고 어느 콩대에 마지막으로 해가 스며드는지 훤히 안다고 한다. 장날이면 그 햇살도 김씨 할머니 보따리에 숨어 따라 나온다.
날도 추운데 집에서 쉬지 장에는 왜 나오셨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지구가 꽁꽁 얼어붙어도 장에는 나온다”고 답한다. 짐 보따리와 함께한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는 할머니는 “장에 나오는 것이 낙”이라고 한다. 할머니 옆에서 시골의 흙과 나무에서 흘러나왔을 법한 푸르디푸른 이야기를 쪼그리고 앉아 들었다.

 집에 혼자 있기 싫어 농사지은 것 몇가지 들고 나온다는 시골 할머니들. 그들이 소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장터다. 할머니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사람 사이의 끈끈한 정”이라면서, 빙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다. 그러면서 고단한 인생사를 털어놓기도 한다.

시골 장터에 있으면 고향에 온 것 같다. 고향을 지켜 온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낸 시간이 오롯이 살아 있어서다. 옷가지와 버선을 파는 한씨 할머니(80)는 장터 함석문을 여닫은 지 벌써 53년이다. 53년째 단골로 오다 정이 들어 장날마다 놀러오는 친구도 여럿이다. 오늘은 콩 두어대를 갖고 나온 단골 할머니 손님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년배 할머니들 취향에 딱 맞는 물건을 갖추어서인지, 한씨 할머니 가게는 이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 이곳에 앉아 있다 보면 요즘 참깨 한되가 얼만지 콩 한되가 얼만지는 대번에 알 수 있다. 할머니들 입에서 많은 이야기꽃이 피었다 사라지고, 몇몇 이야기는 바람 따라 건넛마을까지 전해지기도 한다.

 여자들의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던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은 방물장수라 불리던 여자 행상에게 물건을 사면서 바깥세상 돌아가는 소식이며 이웃 동네의 잡다한 사건·사고를 접했다. 건천장에서 만난 싹싹한 총각 이효준씨(28)는 그 옛날 방물장수처럼 온갖 화장품을 짊어지고 농촌 마을과 시골 장터를 찾아다닌 지 올해로 2년이란다. 효준씨는 생선 파는 이씨 아주머니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칠해 주면서 서비스라고 했다. “장터 아주머니들과 친해지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며 말끝을 흐리는 효준씨. 그의 미소가 건강해 보인다.

 파장 무렵이 되자 어물전에서는 여인네들이 모여 소주 한잔씩을 주고받는다.
“몸과 속이 퍼졌을 때 이만한 기 없데이.”
장을 지키는 사람들이나 장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장날은 여전히 축제날이다.

새해를 맞아 한정식선생께서 마련한 오찬회가 지난17일 정오무렵 인사동"수연"에서 있었다.

 

오찬 모임에는 한정식선생님을 비롯하여 전민조, 조문호, 이규상, 김보섭, 이재준, 정영신,

한진희씨등 여덟명이 오랫만에 모였는데, 반주를 곁들인 식사가 끝나자 '수연'주인장께서

"손님도 없으니 노래 한 번 하라"며 노래방 기계를 끌어냈다.

뜻 밖에 벌어진 노래판에서 돌아가며 십팔번을 불렀는데, "눈빛출판사" 이규상씨의 노래솜씨가

압권이었다. 노래도 노래지만 광대 빰치는 말솜씨와 몸짓에 모두들 배꼽을 잡았다.

연극영화과 출신다운 그의 숨은 재능에 감탄해 한마디했다.

 

"출판사 때려 치우고 같이 장에 돌아다니며 약이나 팝시다"

 

 

2013.1.18

 

 

 

 

 

 

 

 

 

 

 

 

 

 

 

 

청송지역 장터를 촬영하다 일정에도 없는 얼음골 빙벽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지난 13일 오후 청송 부남장에서 진보장으로 이동하는 중에 눈이 번쩍 뜨이는 빙벽을 만났으나

때 마침 그 곳에서 청송아이스클라이밍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어 그냥 지나쳐야 했다.

그 이틑날 아침, 영덕장을 찰영하고 청송장으로 이동하는 길에 얼음골을 다시 찾았다.

모든 행사가 끝나 철수하는 시간이라 차량으로 빙벽입구까지 들어갈 수 있었는데,

한 두사람만이 빙벽을 오를 뿐 조용하고 자유로워 좋았다.

 

청송 얼음골 빙벽은 규모도 국내 최대이지만 얼음이 만든 다양한 형태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얼음약수터 주변으로 연결된 빙화도 아름답지만, 청송가는 도로 주변 풍경들도 일품이었다.

전 날 밤 내린 서리가 나무가지에 눈꽃을 피워 보는이로 하여금 가슴 설레게하였다.

 

2013.1.17

 

 

 

 

 

 

 

 

 

 

 

 

 

 

 

 

 

주왕산이 병풍 친 산골마을, 청송군 부동면 이전마을의 주산지를 찾았다.

주산지는 오래전부터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즐겨찾는 촬영지로 알려졌으나

김기덕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에 의해 더욱 유명해졌다.

 

지난 13일의 마지막 촬영지는 청송 진보장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주산지에 가보자는 아내의 말을 물리칠 수도 없었지만,

진보에서 40분정도의 위치인데다 마침 진보장 작업이 빨리 끝나 주산지를 들릴 수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관광객들은 대부분 빠져 나가고 반들반들한 빙판길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주차장에서 3킬로 정도를 걸어가니 주산지의 겨울풍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주산지 사진하면 연상되는 것이 신록의 왕버들 물빛 그림자와 물안개 자욱한 몽환적 가을풍경들이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겨울풍경은 또 다른 모습의 주산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눈 덮힌 저수지와 고사목의 왕버들 열 댓그루가 전부지만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인적없는 주산지의 고요와 수령이 다한 왕버들의 고고한 모습에 취해 카메라를 잡았다.

 

2013.1.17

 

 

 

 

 

 

 

 

 

 

 

 

 

사진가 정인숙씨의 "겨울산" 풍경사진전 개막식이 지난 9일 오후 6시 아라아트 3층전시실에서 열렸다.

전시작들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작업한 눈내린 산의 고고한 풍경이었다.

전시장을 메운 차거운 겨울산들은 보는이로 하여금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기술적 방법에 앞서 작가가 겨울산을 보는 시선이 편안했고, 대하는 마음이 포근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개막식에는 작가 정인숙씨를 비롯하여 민예총의 많은 문화계 지인들이 비롯한 사진인들이 참석해 전시를 축하했다.

정치인 백기완씨, 민속학자 심우성씨, 사진가 정범태씨, 조각가 심정수씨, 서양화가 김용태씨,

'사진예술'발행인 김녕만씨, 아라아트 대표 김명성씨가 차례로 축사를 했다.

그외 참석한 분으로는 사진가 김일창, 박옥수, 김영태, 고 헌, 곽명우씨, 서양화가 신학철, 정복수,

이청운, 민정기씨, 미술평론가 유근오, 최석태씨, 음악인 김상현씨를 비롯한 100여명이 참석하였고,

뒤풀이는 인근의 부산식당에서 있었다.

 

이 전시는 오는 22일까지 계속되오니 많은 관람을 바랍니다.

 

2013.1.10

 

 

 

 

 

 

 

 

 

 

 

 

 

 

 

 

 

 

 

 

 

 

 

 

 

 

 

 

 

 

 

 

 

 

 

 

 

 

 

 

 

 

 

사진가 정영신의 장터순례(1) 경남 거창장 (2013.1.5)

"저 호랑이 담요 속에는 뭐가 있을까?"

지리산·덕유산 자락에 위치
옷걸이엔 꽃처럼 걸린 곶감
길 위엔 무말랭이·깻잎절임…
언몸 녹이며 ‘따뜻한 정’ 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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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트기 시작한 장터 바닥에 경운기가 들어서더니 길바닥 위로 빨간 담요가 눕는다. 담요 위에는 노부부가 기른 배추가 장보러 나와 다소곳이 앉아 있다.
배추가 얼까봐 호랑이가 그려진 담요를 덮어 주는 이씨 할머니(73)는 전문 장사꾼이 아닌 지역 주민이다. 장날이면 영감님 경운기를 타고 농산물을 갖고 나오는 것이다. 장터는 이렇게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민이 주인이다. 새벽 장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그 지방 정서가 묻어나는 진짜 삶을 엿보게 된다.

 1968년 거창공설시장이 들어서면서 상설시장과 오일장이 함께 열리는 거창장(경남 거창군 거창읍 중앙리)이 영호강 둔치를 따라 펼쳐진다. 난장에는 장돌뱅이보다 지역 주민의 농산물이 더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겨울날 장터는 추위와 싸우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쓰다 버린 양철 냄비 등에 갈탄 몇개 담아 놓고 불을 껴안고 있는 게 전부다. 이곳 난장에서 장사하는 할머니들도 양철통 밑에 촛불 두어개 켜 놓고 앉아서 물건이 팔릴 때까지 견딘다. 다른 이들은 장에 나와 있으면서도 물건을 섣불리 풀려고도 하지 않아 보따리가 수직으로 서 있다. 보통 때는 해도 뜨기 전에 할머니들이 나와 자리다툼으로 언성을 높이곤 하는데, 추운 날에는 할머니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 서로 난로를 빌려 주기도 하고 촛불 의자에 번갈아 앉아 있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지리산과 덕유산 자락에 위치한 거창장은 다른 장과 다르게 계절별로 장 색깔이 뚜렷하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아껴 두었던 농산물을 조금씩 갖고 나올 뿐이다. 겨울에는 ‘장터의 꽃’으로 곶감이 많이 나온다. 시골 농가에서 말린 곶감들은 꽃봉오리처럼 옷걸이에 걸려 있다.

 거창읍 양평리에서 사과 농장을 하는 성씨 아주머니(59)는 사과와 밭에서 기른 채소를 갖고 나왔다. 감이며 우거지 말린 것과 무말랭이를 펼쳐 놓고 모닥불이 있는 곳만 찾아다닌다. 주인이 없어도 난전에 펼쳐져 있는 물건에 손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장사가 목숨줄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소일거리 삼아 나오는 사람도 있다. 우두커니 혼자 집에 있자니 사람이 그리워 장터로 나온다.

 대구에서 온 부부 장돌뱅이는 새벽부터 나와 손님들을 맞는다. 부부는 옷가지 등을 5000원에서 8000원에 파는데, 보따리를 풀기도 전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잘만 고르면 횡재할 수 있어 장날이면 일찍부터 나와서 기다린다는 젊은 친구도 있다.

 시골 장터를 찾는 재미는 뭐니 뭐니 해도 그 지역의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또한 그 지역의 역사와 전통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기도 하다.

 장날이면 자연도 할머니 보따리에 숨어 나와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어렸을 적 장날은 마을의 축제였다. 동구 밖을 나서는 동네 어르신들 뒤로 아이들도 하나둘 따라가곤 했다. 엿장수 가위질 소리에 맞추어 동요도 부르고, 약장수 옆에 쪼그리고 앉아 신기한 동물들을 구경하다가 엄마를 놓칠 때도 있었다. 이렇듯 옛날 장터는 시골 농가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물건들과 많은 사람들을 접할 수 있는 복합적인 문화공간이었다.

 지금 우리는 집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동네나 마트나 편의점들이 있어 필요한 물건은 언제든 살 수 있다. 그러나 시골 장터에 가면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끈끈한 정이 살아 있다. 아흔을 넘긴 할머니가 간장에 절인 깻잎 한 통 갖고 나와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거창장이 열리는 1, 6일이면, 자연의 소리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리로 바뀌어 장터 속으로 스며든다. 

 ●정영신:1958년 전남 함평 출생으로, 1987년부터 전국의 시골 장터를 기록해 온 사진가이며 소설가이다. 개인전 <정영신의 시골 장터>(2008, 정선아리랑제 설치전), <정영신의 장터>(2012, 덕원갤러리) 및 다수의 단체전을 열었다. 지은 책으로는 <시골 장터 이야기>(2002, 진선출판사), <한국의 장터>(2012, 눈빛)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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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 1월호(24일 목요일)에 게재된 정영신의 글입니다.

"시금치 할머니"

눈이 내린 겨울장터는 장작불의 훈훈한 공기가 바람 길을 따라 장터 안으로 들어간다. 예산역전장을 찾았을 때도 눈발이 듬성듬성 내리는 영하의 날씨였다. 농번기철이 아닌 겨울에는 사람들이 장터로 모여들기 때문에 활기가 넘친다. 새벽부터 장터입구에 장작불을 지펴놓고 전을 피면서 몸을 녹이는 모습은 겨울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길이 미끄러워 아들의 리어카를 타고 나온 이씨(83세)할머니는 마당에 가득 쌓인 시금치를 팔기위해 장터에 왔다. 수레에 방석을 깔아놓아 편안하게 장에 나올 수 있었다며 아들자랑이 대단하다. 장세 몇 백 원이면 해 질 때까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장날이면 새벽부터 집안이 부산하다며 소녀 같은 미소를 띤다.

이씨 할머니는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아들이 장에 데려다 주지 않아, 장터풍경을 떠올리며 오늘은 장에 누가 나왔을까 궁금해 한다고 했다. 유모차 같은 손수레를 의지한 채 친구가 장터에 나오면 두 손을 붙들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마치 햇빛이 마중 나오는것만 같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비닐봉지에 시금치를 꾹꾹 눌러 담아주는 정성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장에 나오는 할머니들은 장터골목을 끼고 난장에서 장사를 한다. 겨울이면 촛불 두세 개로 난로를 만들어 추위를 이기는 실정이다. 허나 이씨 할머니는 아들이 땅바닥에 이불을 깔고 연탄화덕까지 준비해 줘 따뜻하게 장사한다. 아들이 수레에서 시금치를 가져와 할머니 앞에 펼쳐 놓으면 상점이 만들어진다. 할머니는 연신 아들을 화덕 앞으로 불러 세우지만 할머니 뒤에서 서 있을 뿐이다.

이천 원이면 시금치를 봉지가득 담아 갈 수 있는데도 할머니가 장사하니까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많다. 장이 끝나갈 때까지 팔리지 않은 시금치는 주위에 있는 장꾼들에게 나누어 준다. 추위 속에서 장사하는 엄마를 위해 따뜻한 물을 건네는 아들의 손등을 어루만지는 할머니모습, 그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이 아닌 마음속에 담아본다. 번듯한 자리는 아니지만 엄마와 아들이 펼치는 노점이 한겨울 장터의 이름 없는 들꽃처럼 아름답다.

파장 무렵이면 아들은 수레에 이불을 깔고 엄마를 번쩍 안아 태운다. 장사가 잘되는 날이면 엄마와 아들이 외식을 한다. 국밥집에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엄마와 아들을 사진 속에서 훔쳐보고 싶다.

정영신(사진가,소설가)

지난 16일, 이틀간에 걸쳐 거창장, 하동 악양장, 사천 완사장, 고성장을 거쳐 마산 어시장을

마지막으로 울산과 부산지역, 그리고 경남의 오일장 92곳 촬영을 마무리했다.

마산 어시장은 상설시장이지만 경남 지역을 대표할만한 큰 시장이기에 포함시켰다.

 

약3개월에 걸쳐 경남지역의 장들을 답사한 결과 12개 지역의 면소재지 장들이 사라졌고,

한두 명의 장꾼으로 간신히 명맥을 지키는 장도 여럿 있었다.

머지않아 읍 소재지의 장만 살아남고 면 소재지 장들은 대부분 사라질 것으로 판단된다.

시골에 사람들이 없으니 장돌뱅이들이 모여들지 않고, 왠만한 농가에는 자동차가 있어

좀 멀어도 물건이 많은 큰 장들을 찾다보니, 돈 없고 힘없는 노인들의 외로움만 커져가고 있다.

 

고성장을 촬영하고 마산으로 이동하는 도중 이강용씨로 부터 전화가 왔다.

이강용씨의 아뜨리에에서 차 한 잔 나누는데, 이종호씨로부터 빨리 오라는 전갈이 빗발 같았다.

자신이 운영하는 레스트랑 ‘알베토’에서 경남지역 촬영 완료를 축하하는 파티를 준비해 두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는 이종호씨를 비롯하여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김보현씨와 와인 소믈리에 배정한씨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식탁에는 와인 잔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와인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가며 여러 가지 와인의 향과 맛을 즐기는

최고의 만찬 시간을 가졌다.

 

축배를 들면서도 마음은 무거웠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친구와 아우들의 후원에 힘입어 경남지역은 잘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새해부터 시작하게 될 경북지역을 비롯한 나머지 장터들이 문제였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말을 꺼냈다. “서울 집 팔아 장 찍는데 씁시다.”

미쳐도 단단히 미쳐간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아내의 용기가 대견스러웠다.

새해부터 “농민신문”에 연재하게 될 장터기행 원고료도 확보되었으니,

다른 신문이나 잡지에도 제안해 보자는 말로 넘겼지만 확실한 대안은 될 수 없었고,

코딱지 만한 연립주택이지만 아내에게는 마지막 남은 재산이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기야 오래전부터 정선에서 여생을 보낼 작정을 했었고, 장터작업의 가치에 비한다면

서울 집도 부질없는 욕심에 불과하지만 서울생활을 정리하기가 아직 일렀다.

장모님의 건강 문제도 그렇지만, 무슨 애인같이 매달렸던 인사동이 마음에 걸려서다.

정선 산다고 인사동을 잊을리야 있겠냐마는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부부는 손발이 너무 잘 맞아 탈이다.

대개 한 사람이 미치면 한 사람은 말려야 하는데, 도무지 그게 되지 않는다.

그동안 아내는 남자도 감당하기 힘든 강행군을 말없이 따라 주었고,

강추위로 연약한 얼굴이 망가져도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이젠 장터를 찍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에 더해 일 자체의 재미까지 느끼는 듯하다.

대개 시골 장들을 돌다보면 장 서는 날짜들이 엇갈려 갔던 길을 반복해서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국토의 지리를 익혀가는 재미와 오밀 조밀한 시골 마을들의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어 가는 것이다.

이제 겨우 한 고비를 넘었을 뿐이지만 '시작이 반"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대상을 보는 눈이나 접근하는 방법은 물론, 일의 추진력까지 높아져

머지않아 좋은 결실을 볼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긴다.

 

2012. 12. 30

 

 

 

 

 

 

 

 

 

                                          경남지역 작업을 위해 후원해 주신 이종호, 정남규, 조성제씨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기 당신의 어머니·아버지가 보이나요?
 
오마이뉴스|2012.10.28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손주놈 오면 줄라고 넉 달 동안이나 시렁에 매달아 놓았는디, 손주놈은 안 오고 돈도 아쉽고 해서 장에 갖고 나왔는디 맛 좀 보시랑게잉, 맛있제이?" - 구례 오일장터에서 만난 곶감 파는 할머니자전거를 타고 섬진강가 여행을 하다 곡성시장, 구례시장, 화개장터, 하동시장을 연이어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읍이나 작은 도시에서 재래시장을 마주칠 때면 겨울에도 마음이 푸근해지면서이런 시장들 사진을 모아 전시회도 하고 책도 내는 '장터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해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1987년부터 올해까지 이십 오년간이나 강화도에서 제주도까지 한국의 장터를 찍고 기록해온 사람이 사진집 < 한국의 장터 > 를 냈다. 역시 '인생도처유상수'라더니 먼저 실행하고 앞서가는 고수가 꼭 있다. 아무튼 전국의 전통 재래시장터에 매달려 이십여 년을 찾아가 지속적으로 사진을 찍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저자의 애정과 열정이 대단하다. 이런 일에 남녀를 구분하고 싶진 않지만 저자가 여성이란 점도 책속의 사진들 다시 한 번 보게 된다.저자는 처음에 장에 가면 소설의 소재와 주인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신춘문예를 준비하던 87년 본격적으로 장터를 찾게 됐다고 한다. 기 싸움 하듯 흥정하는 상인과 손님, 놀라운 입담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아저씨 같은 장터를 지키는 사람들을 만나 친해지면서 그곳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그렇게 전국 각지의 장터를 찾아다닌 지 벌써 25년. 그동안 가본 장터만 300여 곳이고, 장터의 사람과 풍경을 기록한 사진은 줄잡아 4000여장에 달한단다. 사진집 < 한국의 장터 > 엔 그중 추려낸 82곳의 오일장터와 400여 장의 사진들이 등장한다. 소설가라는 또 다른 직업을 가진 여성 작가다운 생생하고 세밀한 장터 묘사도 사진과 더불어 돋보이는 훌륭한 포토에세이집이다.장터에 관한 최초의 인문학적 보고서



▲< 한국의 장터 > 정영신 글·사진, 눈빛아카이브 펴냄
ⓒ 눈빛아카이브

 

장터라는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그 지역의 생활문화를 꽃피우는 무대요, 전국에 흩어진 장터들은 우리가 소중하게 지키고 보존해야할 생활문화 박물관이다. (본문 가운데)저자가 25년 동안 찍어온 장터 사진에는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마수걸이(맨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를 잘 했다며 기뻐하는 아주머니, 혹시라도 장터에서 사돈을 만날까봐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온 할아버지, 힘든 일을 마치고 시장 구석에서 담배를 태우고, 목을 축이는 사람들 등 그의 사진에는 우리네 서민들의 눈물과 웃음이 함께 한다. 탐욕스런 자본주의의 물결이 잠시 멈춘 곳이기도 하지만 대형 할인 마트에 아이들과 젊은 사람들을 뺏겨 버린 침체된 장터의 면면도 볼 수 있다.전국 82곳의 오일장터에서 찍은 400여 장의 사진들과 글을 감상하다보면 장바구니 사이로 목을 내민 강아지의 눈과 마주쳐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어리기도 하고, 호박 몇 개 채소 몇 단이나마 팔러 나온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를 보며 애잔한 심정이 들기도 하고, 사라져 가는 우리만의 아름다움과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에 책장을 못 넘기고 사진 속에 눈길이 멈추는 순간들이 많아 사진집이지만 쉬이 다 읽기 어려운 책이다.사실 다큐멘터리 사진의 의미는 이런 데 있다. '작품'으로서의 예술성에만 묶이지 않고 진정성이 담긴 기록에 충실할 때 다큐멘터리 사진은 감동과 공감을 얻는다. 그리고 사진의 예술성은 바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형성된다. 모든 예술이 인간의 삶과 유리되어서는 별 의미가 없지만, 특히 인간과 그 삶의 기록에서 벗어나서는 의미를 얻기 어려운 게 사진일 게다.이 책은 오일장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여행 안내서이기도 하다. 전국 오일장을 총 9개 도별로 분류하고, 다시 가나다순의 군 단위로 나누어 정리했으며, 각 장마다 오일장이 열리는 장날과 지역특산물, 저자의 에피소드와 사람들의 사연, 전래 이야기 등을 같이 넣어 독자들이 장터 정보를 쉽고 흥미롭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크게는 강원도 동해 북평장에서 전라도 보성강가의 시골 석곡장, 배추를 팔면서 점도 봐준다는 제주 서귀포 고성장터 할머니까지 가보고 싶은 데가 한두 곳이 아니다. 저자가 알려준 장터 구경하기 팁 중의 하나로 오일장터는 파장 무렵이 가장 재미있다니 참고할 만하다.



▲삶과 죽음, 즐거움과 애잔함이 모두 공존하는 우리네 장터
ⓒ 정영신

 

흑백의 장터 사진에서 느끼는 삶의 속살장터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다양한 삶을 보게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 같다.제주 할망들은 또 다른 우리 엄마들을 이야기한다. 물질을 하고, 밭농사를 짓고, 남은 시간에는 장터에 나와 온갖 것을 팔아 가정경제를 살리고 자식을 교육시킨다. 이 땅의 엄마들이 있기에 산업이 발전해 가고 경제가 살아나고 농촌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고향을 찾아가듯이 오일장을 찾았다면 고향과 같은 색깔을 만날 것이다. (본문 가운데)책 속 사진들과 글에서 저자는 장터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외형적으로만 관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애환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사진들이 모두 흑백이라는데 있었다. 촬영 초기 1987년의 사진은 물론 2010년대의 장터 사진도 모두 흑백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흑백사진으로 찍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건 무슨 이유일까?칼라색감을 배제한 흑백사진은 뭔가 본질적이면서도 직관적인 힘을 지녔다. 풍경사진도 그렇고 특히나 인물이 들어간 사진은 그 사람의 겉모습보다는 표정 속에 숨은 내면에 대해 잠시 생각에 빠지게 한다. 풍경은 풍경대로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느끼게 되고. 사진을 찍은 후 시간이 한참 흘러도 느낌 있게 감상할 수 있는 '사진 누리기' 하기에 제격이다. 디지털 카메라에 흑백사진기능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는 이유를 알 것 같은 사진집이다.여름이면 따가운 햇살에 양산을 받쳐 들고 겨울이면 손난로에 의지해 떨면서도 떠들썩한 장터 바닥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흑백사진은 정겨우면서도 눈물겹다. 힘든 일을 마치고 장터 구석의 선술집에서 목을 축이는 사람들,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봇짐을 머리에 얹고 집을 향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는 할머니, 봄에는 분무기를 고치고 여름엔 장화를 수선하며 30년 넘게 장터를 지킨 '맥가이버' 할아버지, 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의 흑백사진은 내 뇌리에 오래도록 잔영으로 남을 것 같다.그런 흑백의 사진들 중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무척 힘들게 찍었을 장터에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 사진이 무척 인상적이다.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요, 한 권의 책"이라며 인간의 표정에서 삶을 읽으며 많은 글을 썼던 발자크의 말마따나, 여러 표정과 삶의 흔적 주름이 담긴 얼굴사진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나름대로 상상하는 것도 즐겁고 내 삶을 성찰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장터에 가면 내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그립고 마음 짠하게 된다.
ⓒ 정영신

 

이런 전통 재래시장들이 지역은 물론 나라의 내수 경제 활성화와 도시와 마을의 공동체 붕괴 방지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임을 잘 아는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도시에 대형마트가 마구 들어서는 것을 규제하는 것은 물론 유명 관광지를 제외하곤 기존의 대형마트나 백화점들도 주말과 공휴일에는 개점을 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떤가. 책을 읽다보니 동네에서 가까운 서울 망원동 월드컵시장 상인들이 떠오른다.수년 전 생겨났던 대형할인마트가 인근에 또 들어서려 해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재래시장이 타격을 받을 것이 자명하자, 이에 맞서 시장 상인들이 저항하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003년 이후 7년 사이에 전통 재래시장은 178곳이 문들 닫았고, 기업형 수퍼마켓이 695곳 늘었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일제 강점기 때인 1914년 일본은 우리나라 각 면소재지에 시장을 1개씩 개설하라는 시장 규칙을 공포하였다고 한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지역 경제를 살려 물산을 착취할 목적이었다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사회적 약자인 서민들을 보호하고 지역경제와 마을 공동체를 살리는데 있어 일제 강점기시대만도 못한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다.덧붙이는 글 |< 한국의 장터 > (정영신 글·그림 | 눈빛 아카이브 | 2012. 08 | 2만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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