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석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전갈을 받고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부산 남포동에서 '한마당'이란 대폿집 할 때 처음 만났으니, 그 인연도 30년이 넘었다.

단골이었던 최민식선생께서 내민 ‘휴먼’ 사진집이 아니었다면 내 신세가 이렇게 고달프지는 않았을 것이란 원망도 했지만,

돈은 없지만 사진으로 마음 부자를 만들어준데 대한 고마움이 더 앞선다.

한 때는 부산에서 사진학원 차리자는 선생님의 제안에 혹해, 민태영씨가 운영하던 파고다 공원 옆의

“서울사진학원” 수강생이 되어 사진공부보다 학원 운영을 염탐하던 시절도 있었다.

“어차피 죽으면 아무 것도 없어요. 사진이라도 많이 남기라”던 선생님의 말씀이나,

때로는 덜 논리적인 예술과 철학을 논하시던 그 때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여지껏 선생님이 추구하는 인간애를 바탕에 둔 사회기록이라는 사진의 기본은 잘 따라왔으나

선생님처럼 그렇게 치열하게 찍지는 못했다. 여자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노는 것 좋아하다 보니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정영신씨를 만나 장터사람들에 푹 빠져 살지만...

 

 

어제 밤에 뜻밖의 꿈을 꾸었다.

환갑이 훌쩍 넘은 내가 신문사 사진부에 신입으로 들어간 것이다.

지금은 퇴직한 구자호씨가 부장으로 있었고 그 외는 잘 모르는 젊은 친구들뿐이었다.

위에서는 회장댁 사모님이 돌아가셨으니 사진찍으러 가라하고, 구부장은 사건현장에 가라고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망설이든 차에 갑자기 최민식선생께서 오래전 하셨던 말씀이 떠 올랐다.

"죽은 사람 껍데기 찍지말고 산 사람 찍어라"던 생각이 떠올라 구부장의 말을 따랐다.

 

그 이틑 날, '눈빛'의 이규상사장으로 부터 "최민식선생께서 소천하셨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그 꿈이 신통하기도 했지만 시사하는 바가 컸다.

치열한 작가정신에 대한 충고였고,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가십시오.

죽기 전에 얼마나 더 많은 것을 기록할진 모르지만 더욱 더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일하겠습니다.“

 

 

201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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