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이틀간에 걸쳐 거창장, 하동 악양장, 사천 완사장, 고성장을 거쳐 마산 어시장을
마지막으로 울산과 부산지역, 그리고 경남의 오일장 92곳 촬영을 마무리했다.
마산 어시장은 상설시장이지만 경남 지역을 대표할만한 큰 시장이기에 포함시켰다.
약3개월에 걸쳐 경남지역의 장들을 답사한 결과 12개 지역의 면소재지 장들이 사라졌고,
한두 명의 장꾼으로 간신히 명맥을 지키는 장도 여럿 있었다.
머지않아 읍 소재지의 장만 살아남고 면 소재지 장들은 대부분 사라질 것으로 판단된다.
시골에 사람들이 없으니 장돌뱅이들이 모여들지 않고, 왠만한 농가에는 자동차가 있어
좀 멀어도 물건이 많은 큰 장들을 찾다보니, 돈 없고 힘없는 노인들의 외로움만 커져가고 있다.
고성장을 촬영하고 마산으로 이동하는 도중 이강용씨로 부터 전화가 왔다.
이강용씨의 아뜨리에에서 차 한 잔 나누는데, 이종호씨로부터 빨리 오라는 전갈이 빗발 같았다.
자신이 운영하는 레스트랑 ‘알베토’에서 경남지역 촬영 완료를 축하하는 파티를 준비해 두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는 이종호씨를 비롯하여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김보현씨와 와인 소믈리에 배정한씨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식탁에는 와인 잔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와인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가며 여러 가지 와인의 향과 맛을 즐기는
최고의 만찬 시간을 가졌다.
축배를 들면서도 마음은 무거웠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친구와 아우들의 후원에 힘입어 경남지역은 잘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새해부터 시작하게 될 경북지역을 비롯한 나머지 장터들이 문제였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말을 꺼냈다. “서울 집 팔아 장 찍는데 씁시다.”
미쳐도 단단히 미쳐간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아내의 용기가 대견스러웠다.
새해부터 “농민신문”에 연재하게 될 장터기행 원고료도 확보되었으니,
다른 신문이나 잡지에도 제안해 보자는 말로 넘겼지만 확실한 대안은 될 수 없었고,
코딱지 만한 연립주택이지만 아내에게는 마지막 남은 재산이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기야 오래전부터 정선에서 여생을 보낼 작정을 했었고, 장터작업의 가치에 비한다면
서울 집도 부질없는 욕심에 불과하지만 서울생활을 정리하기가 아직 일렀다.
장모님의 건강 문제도 그렇지만, 무슨 애인같이 매달렸던 인사동이 마음에 걸려서다.
정선 산다고 인사동을 잊을리야 있겠냐마는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부부는 손발이 너무 잘 맞아 탈이다.
대개 한 사람이 미치면 한 사람은 말려야 하는데, 도무지 그게 되지 않는다.
그동안 아내는 남자도 감당하기 힘든 강행군을 말없이 따라 주었고,
강추위로 연약한 얼굴이 망가져도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이젠 장터를 찍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에 더해 일 자체의 재미까지 느끼는 듯하다.
대개 시골 장들을 돌다보면 장 서는 날짜들이 엇갈려 갔던 길을 반복해서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국토의 지리를 익혀가는 재미와 오밀 조밀한 시골 마을들의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어 가는 것이다.
이제 겨우 한 고비를 넘었을 뿐이지만 '시작이 반"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대상을 보는 눈이나 접근하는 방법은 물론, 일의 추진력까지 높아져
머지않아 좋은 결실을 볼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긴다.
2012. 12. 30
경남지역 작업을 위해 후원해 주신 이종호, 정남규, 조성제씨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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