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많아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다.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으나, 몸이 버텨내지 못한다.

고질병인 호흡장애와 원인모를 두통에다 기력까지 쇄진하니, 사는 것 자체가 비참해 진다.

 

 

 

한 때는 심한 호흡장애로 입원도 했으나, 기관지 확장제인 ‘테오란-비’를 먹고 ‘아노로 엘립타’를 매일 흡입하는 식으로 버텨냈는데, 이젠 마스크까지 써야 하니 죽을 지경이다. 밖에 나가지 않는 게 상책인데, 갑자기 날씨마저 더워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다.

 

 

 

바람이라도 씌러 서울역광장으로 나갔더니, 노숙하는 박씨가 죽은 사람 만난 듯 반긴다. “형님! 오랜만에 만났는데 술 한 잔합시다” 술 생각이 간절한 모양인데,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아 같이 마신 게 화근이었다. 서너 잔 마셨는데, 갑자기 숨이 가빠지며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박씨가 “어디 아픈가베! 빨리 병원 가보라”며 술잔을 거두었다.

 

 

 

한참을 엎드려 있었더니 어지럼증이 좀 안정 되었다. 영문을 모르는 지은이는 “술을 혼자 많이 마셔 벌 받았다”며 낄낄댄다. 어디서 구했는지 헬멧을 쓰고 목에 채인 까지 감고 있었다. 지은이를 보니 갑자기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비록 노숙하는 처지지만 아무런 걱정 없이 즐겁게 살아간다.

 

 

 

그래! 아무 것도 없는 게 속 편할거다.

 

 

 

나 역시 아무것도 없는데, 난 왜 편하지 않을까? 나에게는 쪽방도 있고, 좋아하는 동지도 있고, 케메라도 있지 않은가? 그 세 가지만은 아무리 생각해도 버릴 수가 없었다. 아직 수양이 덜 된 것 같았다.

 

 

 

곳곳에 쓰러져 자는 노숙인이 널려 있었다. 밥 얻어먹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으니, 잠 잘 일 밖에 더 있겠는가? 어쩌면 그들도 나처럼  아플지 모르겠다. 아파 딩굴다 눈감으면 아무도 슬퍼해 줄 사람도 없다. 짐승보다 못한 삶이지만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정치꾼들은 걸핏하면 복지복지 노래 부르지만, 말짱 개소리다.

 

 

 

그래도 그냥 들어 갈 수는 없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 있는 한 이 짓은 반복할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다. 세상에 별의 별 병이 많지만, 이 병도 마약처럼 하나의 정신병에 속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관속에 들어가 눕는 게 상책일 것 같았다. 관 치고는 큰 방이지만, 계단 오르는 일이 너무 힘들다. 쉬엄쉬엄 올라오긴 왔는데, 오자마자 그대로 뻗어버렸다. 숨을 못 쉬어 자다 죽는 것도 괜찮을 텐데, 그런 복이 내게 올 리는 없다.

 

 

 

누워 있어도 할 일이 눈에 어른거려 미칠 지경이다. 지금쯤 정선에 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집을 지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병이 된 것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2일 오전10시부터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 주민대책모임’과 ‘정의당’이 공공주택사업 추진을 위한 현장간담회를 열었다.

 

 

 

지난달에는 건물주들의 대책위와 ‘국민의 힘’이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정의당’은 정부에서 발표한 공공개발이 차질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의 힘’에서는 개발이익이 우선인 민간재개발을 부추기고 나선 것이다.

 

 

 

분양하여 돈을 벌어야하는 민간개발은 도시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주택지는 15%, 상업지는 5%만 공공임대주택을 지으면 되지만 공공개발은 공공주택 특별법에 따라 공공임대주택을 35% 이상 지어야 한다. 동자동의 경우 전체 주택 중 52%가량을 공공임대주택으로 짓는다고 발표했으니, 건물주들은 용산지역 전체 부동산시세 하락까지 들먹이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간담회가 열릴 동자동 새꿈공원은 아침부터 쪽방주민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며 건물주들의 목소리가 강해지며 민간재개발로 바꾸려는 낌새에 주민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쪽방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정의당과의 간담회 소식에 한 가닥 희망을 갖고 나온 것이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을 위한 현장간담회에는 정의당에서 배진교 원내대표와 심상정 의원이 참석했고, 주민 대표로는 ‘동자동사랑방’ 김호태 대표와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김정호 이사장,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집행위원장이 발제 및 토론자로, ’동자동사랑방‘ 박승민 활동가가 사회를 맡았다. 간담회가 열린 새꿈공원에는 기자들과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하여 간담회를 지켜보았다.

 

 

 

인사말에 나선 동자동사랑방 김호태 대표는 첫마디에 “이제 대표직을 내려놔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며 마지막 자리임을 시사하는 아리송한 말부터 꺼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민간개발이 되면 주택 값이 뛰어올라 아무 것도 없는 쪽방주민들은 살 수가 없다며, 공공재개발을 흔드는 세력을 나무랐다. "건물주들은 여기 살지도 않습니다. 전기가 나가도 고쳐주지 않고 겨울에 보일러도 하루에 두 번 밖에 안 틀어줍니다.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전기장판도 못 쓰게 합니다. 한 번은 너무 추워 보일러를 더 틀어달라고 부탁하니 3만 원을 받아 갔습니다. 돈 내기 싫거나 맘에 안 들면 나가라는 식이에요." 건물주들은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며 “우리와 같이 살면 자기들은 죽는다”고 말했단다.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란 간판으로 바꾸어 단 후암특별계획1구역 재개발 준비추진 위원장의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동자동에 거주하는 소유주는 10%에 그친다고 말했다. 많은 소유주들이 동자동에 살지 않으면서 투자를 목적으로 건물을 소유한다는 자백인 셈인데, 관리인을 통해 월세는 하루만 늦어도 쫓아내지만 비싼 월세를 현금으로만 꼬박 꼬박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는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반 지하방보다 더 열악한 공간이 쪽방이라고 말했다. 겨우 한 몸 누일 좁은 공간에서 문이 없어 비닐로 바람을 막고 화장실이 없어 공공화장실을 이용하는 상황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라며 “소유주의 재산권보다 거주자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이 공공재개발의 의미”라고 말했다.

 

 

심상정 의원은 ”내 무덤 위에 공공임대를 지으라“, 용산참사 피바람 각오하라”며 빨간 깃발을 내걸던 건물주들이 갑자기 ‘쪽방 주민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민간개발“ 운운하며 상생하자는 현실에 큰 비애감을 느낀다고 했다. “물새고 천장 내려앉아 어려움을 외칠 때는 눈 막고 귀 막고 있던 분들이 아니냐며, 동자동개발은 40년간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삶을 버텨온 주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와 정치권에서 해야 할 일은 집 가진 자들의 개발 이익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집 없는 서민들이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라며, ‘국민의 힘’ 오세훈씨가 서울시장이 되었지만, 시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민간재개발을 요구하는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규탄의 메시지를 보냈다. '민간재개발을 해야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번 개발은 수 십 년간 최저주거기준에도 미달하는 삶을 살아 온 동자동 주민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며 "공공주택은 생색내기로 조금 만들고, 나머지 주택을 가지고 시세차익을 노리는 그런 개발은 절대 반대 한다"며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은 집 가진 이들이 개발이익을 더 추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게 아니라 집 없는 서민들이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분들이 집 걱정 없이 두 발 뻗고 주무실 수 있도록 저와 정의당이 공공주택사업을 확실히 챙기겠다"며 약속했다.

 

 

 

동자동 주민협동회 김정호 이사장은 적어 온 글을 차근차근 읽으며, 붉은 깃발과 과격한 현수막은 가진 자들의 횡포라고 꼬집었다. 건물주들은 더 좋은 집을 지어 주겠다지만, 개발이익이 우선인 그들로서는 입에 발린 헛소리라고 말했다. 건물주들이 찾아와 “요구하는 게 뭐냐?‘고 묻는데, 화장실도 갖고 싶고 밥해 먹을 부엌도 갖고 싶다. 우리도 이제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말했단다. ”공공개발이 안 되면 대한민국 무너진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의미와 쪽방 주민 주거권 강화방안을 비롯하여 동자동 쪽방촌의 현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공공개발의 장점은 공공임대주택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다는 점과 선(先)이주·선(善)순환을 꼽았다. 선 이주·선 순환은 지구 내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 해 이주 단지를 만들어 쪽방 주민을 임시 거주하게 하고 공공주택이 건설되면 이주하게 하는 방안으로 원주민들이 동네를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재개발 방식으로는 순환개발과 전면철거가 있는데, 순환 개발은 사업이 오래 걸리는 만큼 비용이 든다. 개발 이익이 우선인 민간재개발은 전면철거를 하지만, 공공재개발은 시간과 돈을 들여서라도 순환 개발을 선택한다”고 부언했다.

 

 

 

주민 질의 시간이 되자 처음엔 물어볼게 없는지 서로 마이크를 미루던 주민들이 나중엔 마이크 없이도 여기저기서 공공개발의 필요성과 공공개발을 원한다는 말들을 쏟아내며 정의당에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간담회가 끝난 뒤 의원들은 주민들 안내로 쪽방촌의 비참한 현실을 돌아보며 현장간담회를 마무리했다.

 

사진, 글 / 조문호

 

 

 

당집처럼 붉은 깃발을 펼럭이며 ‘용산참사 피바람 각오하라’는 험악한 글이 나 붙은 거리도 이제 익숙한 동자동 풍경이 되어 버렸다.

 

 

 

그토록 공공주택 건설을 강하게 반대하던 재개발조합에서 갑자기 ‘동자동 주민대책위’로 간판을 바꾸어 달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며 쪽방 주민들을 회유하려 들고 있다.

 

 

 

이 문제는 지난 2월 정부에서 동자동 쪽방촌을 공공주택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시작되었다.  LH와 SH를 공동사업시행자로, 서울역 근처 동자동 일대에 공공주택 1450호와 민간분양주택 960호를 짓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쪽방 주민들은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게 되었고,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임시거주지도 제공한다는 발표에 빈민들의 기대가 컷다.

 

 

 

이미 지난 2월19일 주민들의 의견 청취를 마쳤고, 올해 안에 국토교통부가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완료하면 내년부터 지구계획 승인과 보상 절차가 진행된다. 2023년 임시이주와 공공주택단지 착공에 들어가며 입주는 2026년이고 2030년에 민간분양 택지개발이 완료되는 사업이다.

 

 

 

그러나 이 지역 토지·건물주들이 추진한 동자동재개발조합에서 공공개발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는데. 갑자기 쪽방주민들에게 “더 좋은 집을 지어주겠다”고 달래며 쪽방 전체 주민을 대표하는 듯한 '동자동 주민대책위'로 간판을 바꾸어 다는 위선적인 전략을 취한 것이다.

 

 

 

동자동 재개발조합은 2018년부터 만들어졌지만 여러 장애에 걸려 여지 것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재개발조합에서 못하는 것을 정부에서 해 주겠다는데, 왜 눈에 쌍심지를 켜는지 모르겠다. 떨어지는 떡고물이 적어서 일까?

 

 

 

그 강경했던 거리 펼침막을 지난 달 중순부터 두리뭉실한 내용으로 바꾸어 달았다. “쪽방 주민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민간개발,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가 만들겠습니다.”  재개발조합을 좌지우지하던 여인네 직함도 “동자동 주민대책위원장”으로 바뀌었더라. 누가 완장을 채워주었는지 모르지만, 갈수록 가관이다. 대개의 쪽방 건물주들은 투기꾼에 다름아니다.

 

 

 

쪽방 주민들도 비열한 그 따위 수법에 넘어가지 않는다. 주민들의 협동체인 “동자동 사랑방”에서 건물주들의 붉은 깃발에 맞서 “공공주택환영”이란 글귀를 곳곳에 써 붙이며 음흉한 공작에 대처했다. 주민들은 건물주들의 위선에 분통을 터트리며 “공공주택 개발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7일에는 새꿈공원에서 쪽방주민들이 찍은 특별한 사진전도 열었다. 자신이 사는 주변 환경을 핸드폰으로 찍어 보여주는 사진전이었다.  사진작가들의 주관적인 앵글보다 주민들이 찍은 가식없는 현장사진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이처럼 리얼한 현장 사진을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방에 물이 새도 그만, 공동화장실이 막혀 용변을 못 보아도 모른채 하며 건물관리는 뒷전이었지만, 비싼 방세는 하루만 늦어도 쫓아내는 악덕업주들이 아니던가? 방세 또한 계좌이채도 안 되고 오로지 현금만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더럽게 벌어 탈세까지 하려드는 것이다.

 

 

 

건물 소유주들이 공공개발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은 민간개발에 견줘 그들에게 돌아오는 개발이익이 적어서다, “내 무덤 위에 공공임대주택을 지어라”며 극력 반발하던 소유주들이 이제 와서 ‘쪽방 주민들과 함께’하겠다며 알랑방귀 뀌는 꼴 사나운 수작들을 어찌 두고 볼 수 있겠는가? 

 

 

 

평당 임대료로 치면 고급아파트보다 더 비싼 동자동 쪽방은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짐승우리보다 못하지만 정부가 지급하는 주거급여가 오르면 월세도 따라 올렸다. 건물주들은 동자동에 살지도 않고 관리인을 통해 월세만 꼬박꼬박 받아 챙기는 주제에 이제 와서 ‘함께하자’ ‘우리 얘기도 들어 달라’고 나서니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동네에 붙인 유인물에는 “저희는 쪽방 주민 여러분들을 내쫓을 생각이 전혀 없다. 닭장 같은 쪽방에서 또 다른 쪽방으로의 이전이 아닌 집다운 집, 질 좋은 집을 지어드리고 싶다”는 말을 적어 놓았다. 그런 입에 발린 소리를 믿을 사람이 있겠는가? 이미 2015년부터 후암동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해 개발을 추진했지만, 소유주들끼리 합의가 안 돼 실패했다. 그땐 쪽방 주민들 의견은 물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공공주택 계획이 발표된 이후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간주도 재개발을 공약한 오세훈 시장이 당선된 게 문제였다. '국민의 힘'은 지난 달 중순 건물소유주들과 간담회를 열어, 정부의 공공주택 사업을 ‘재산권 침해’라 비판하며 가진 자들의 편을 들기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건물주들의 목소리보다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빈민들의 삶을 살펴보고 대처해야 한다. 당리당략보다 동자동 공공주택개발 사업이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표본이 될 수 있도록 망설이지 말고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건물주들은 당장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란 위장 간판부터 내려라.

그리고 정부의 공공개발 사업에 적극 협력하라.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더냐?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쪽방 사는 손행복씨가 한 달 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무리 가는데 순서가 없다지만 처음 만났을 땐

나보다 훨씬 건강했고 세 살이나 적었다.

 

행복하게 살라고 이름까지 행복으로 지었으나 그의 삶은 불행했다.

오죽하면 연고자를 찾지 못해 임종한지 한 달 만에 장례를 치루었겠는가?

 

정선 집이 불탄 일로 실의에 빠져 방구석에만 처 박혀

만나자는 사람이나 전화조차 기피하고 있었지만

손행복씨의 마지막 가는 길은 배웅하지 않을 수 없었다.

 

29일 아침 아홉시에 백제화장터로 간다기에 따라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모이기로 약속한 ‘동자동 사랑방’에 시간 맞추어 나왔으나,

사정이 생겼는지 먼저 가고 없었다.

 

마침 ‘서울역쪽방상담소’ 전익형실장이 찾아와 자기 차로 가자고 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지, 하늘에서 눈물 같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백제화장터에는 ‘사랑방주민협동회’ 김정호이사장과 선동수간사장

조인형씨 등 여섯 명이 와 있었다.

 

시신은 별다른 장례절차 없이 바로 화장하는 줄 알았는데,

다들 ‘그리다’라는 추모공간에 모여 있었다.

 

서울시에서 무연고 빈민을 위해 마련해 둔 추모공간은 처음 보았는데,

세상을 떠난 박원순시장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더라.

 

공영장례장인 ‘그리다’는 연고 없이 돌아가신 무연고 사망자와

장례를 치루지 못하는 빈민들을 위해 서울시에서 마련한 빈소라고 한다.

 

장례의식을 진행하는 담당자 이야기로는 하루에 평균 두 명이 이용한단다.

 

그 곳에 영등포쪽방에서 온 장홍준씨 시신도 같이 안치되어 있었다.

 

다들 식순대로 예를 올리며 먼저 떠난 이를 추모했다.

 

조인형씨는 슬픔을 참지 못해 눈물을 훔쳤으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일 뿐, 고난의 세상을 떠난 자는 편안할 것이다.

 

가진 자는 죽음이 두렵겠지만 아무 것도 없는 빈손들은 홀 가분 할 것이다.

 

부디 차별 없는 평등의 세상에서 편히 잠드시길 빕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온 종일 정신 나간 사람처럼 천장만 바라보고 누웠다.

먹기도 싫고, 컴퓨터도 싫고, 자다 깨다만 반복한다.

 

가끔은 정선 집이 불탄 것을 잊고 일 할 것을 생각하다

뒤늦게 정선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힘이 쫙 빠진다.

 

난, 정선 집에 많은 것들을 가져 쪽방에 살아도 항상 마음은 부자였다.

다 태우고 모든 걸 잃었으니, 쪽방사람과 똑 같은 동격이 되었다.

 

관리인 정씨가 꼼짝을 하지 않으니, 방문을 열어보고 어디 아프냐고 묻는다.

그때 사 일어나 몸을 추스르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런 생각도 목적도 없이 뚜벅뚜벅 공원으로 걸어갔다.

모든 것은 그 풍경에 그 풍경이고 그 얼굴에 그 얼굴이었다.

 

강씨는 보자마자 사진 찍어달라며 포즈부터 취한다.

혼자 술 마시던 정씨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반색한다.

 

술 한 잔 하라는 권유를 마다하고, 역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서울역광장은 노숙자와 비둘기의 천국이다.

 

노숙자는 사람에게 얻어먹고, 비둘기는 노숙자에게 얻어먹는다.

무소유의 삶을 누리는 공존의 장이다.

 

노숙자 지은이가 짐을 끌고 어디로 가고 있었다.

차도 건너 편 외딴 곳에 둥지를 만들어 놓았더라.

 

짐이 많아 치우라는 역무원 등살에 피신한 것 같았다.

터줏대감 가오인지, 그는 항상 짐을 쌓아놓고 산다.

 

나를 보고 멀리서 달려와 손을 치켜들고 포즈를 취해 준다.

똥색인 내 얼굴을 살피더니, 무슨 걱정 있냐고 묻는다.

 

가진 것 없는 노숙자들은 아무런 걱정이 없다.

이젠 나도 가진 게 없으니 걱정할 것 없는데, 아직 미련이 남았나보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사진, 글 / 조문호.

 

말 없는 노숙인 천씨가 어렵사리 뱉어 낸 첫 말이

‘세상을 원망하랴! 마누라를 원망하랴’다.

가족은 어디 사냐? 는 물음에 내 뱉은 뜬금없는 말이다.

 

이 친구는 다른 노숙인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 넋 나간 듯 역전에 앉아 항상 묵묵부답이었다.

 

어디서 발목까지 다쳐 깁스 한 사연을 물었더니,

그때서야 처음으로 말문을 연 것이다.

힘이 없어 발을 헛디뎌 부러졌단다.

 

그는 잔재주 못 부리고 적극적이지도 못해

직장과 가정을 잃은 지가 십 여년이 훌쩍 넘었단다.

믿었던 가족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응어리져

사람 자체가 싫고, 말하기도 싫단다.

 

예전에는 부모 잘 못 만나 물려받은 것 없고 배우지 못한,

 타고 난 노숙인들이 많았으나

요즘은 돈 벌지 못해 집에서 쫓겨난 사람이 많다.

 

노숙인이 많이 생겨 난 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국전쟁으로 생겨난 노숙인 세대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대개 아이엠에프 사태에 밀려 난 세대다. 

 

지금은 또 다르다.

돈 못 벌어 가정불화로 쫓겨난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돈 못 면 아내는 물론 자식에게도 버림받는 세상이다.

 

영악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비정한 세상이라

팔자소관으로 돌리기에도 억울한 삶이다.

 

고통스러운 하루하루의 삶은 차지하고라도

꿈마저 잃어버린 그들이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일까?

 

죽을 자신이 없어, 죽지 못해 산단다.

하기야! 죽을 용기로 나선다면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버림받은 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여지 것 선거운동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이번 선거는 다른 선거와 달랐다.

동자동 재개발을 그대로 추진할 수 있는 여권 후보의 당선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우선 서울역에 가서 코로나 사전검사부터 받았다.

최근 받은 음성 확인이 없으면 아무데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받기가 지겹지만, 어쩌겠는가?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정기총회도 비대면으로 열렸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치러지는 서면 총회인데,

임원 선출하는 투표장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형식적인 선거이긴 하지만, 기존 임원에 한 표 던졌다.

 

다음 날부터 쪽방 촌 주민들의 표를 결집하기 위해 며칠에 걸쳐 동자동을 누비고 다녔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다들 외출을 자제하는 터라 쪽방을 찾아 다닐 수밖에 없었다.

 

어떤 분에게는 찍어 둔 기념사진을 전해주기도 하고,

또 다른 분에게는 출판에 따른 사진사용 동의서를 받아가며

여당후보가 당선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빈민 스스로를 위한 일이라 반대하는 사람은 없지만,

투표장에 나가지 않을 경우를 염려해서다.

 

투표장보다 사전선거가 열리는 서울역이 더 가깝기에

서울역 사전투표장으로 갈 것을 안내 했는데,

어떤 분은 손이 떨려 도장이 선에 물렸다며 걱정했다.

 

서울역에 자리잡은 노숙인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두 달 전 코로나 감염자가 100여명으로 늘어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감염된 노숙인은 생사조차 알 수 없다.

그들이 없어졌다고 노숙인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디서 왔는지, 다른 노숙인들이 하나 둘 몰려들었다.

 

서울역전에서 죽치는 낯선 노숙인들은 선거엔 관심도 없었다.

“어느 놈이 되어도 마찬가지”라지만,

문제는 노숙인 대개가 주민등록증이 없다는 점이다.

주권 행사를 할 수 없는 노숙인 표가 아까웠다.

 

도시락 나누어 주기만 기다리는 그들에게는

한 장의 투표 권 보다 배를 채울 빵이 더 절실했다.

 

그들의 시름을 덜어 줄 정치인은 어디에도 없다.

쪽방 촌에는 선거유세차가 수시로 들락거리지만,

서울역에서 표를 구걸하는 사람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거지는 사람도 아닌 모양이다.

왜 쪽방촌보다 위급한 노숙인을 방치할까?

정치인들의 노숙인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

 

쪽방 촌 골목골목에는 붉은 깃발이 나부꼈다.

동자동재개발을 반대하는 건물주의 항의 시위다.

몇 년 동안 재개발을 못해 안달이더니,

그들이 해결 못하는 일을 추진하려는데, 왜 반대할까?

한 푼이라도 보상을 더 받기 위한 치졸한 작태다.

 

지난 6일은 꼼짝하지 않고 방을 지키기로 했다.

방소독한다는 벽보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올지도 몰라 숙제처럼 남은 전시리뷰를 쓰기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아무리 머리를 짜도 할 말이 없었다.

할 말이 없다기 보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헷갈렸다.

들여다 보고 있으니, 머리가 지끈지끈해 덮어버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탁받지도 않은 이런 일을 왜 찾아다니며 고민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작가는 비슷한 내용의 전시를 해마다 여는데, 같은 이야기를 재탕 할 수도 없었다.

고생스럽게 써주고 욕먹는 일도 한 두번이 아닌데, 국 쏟고 뭐 데이는 격이었다.

리뷰 쓰기 싫어 전시장 출입을 삼가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그래, 이제부터 보아야 할 전시들은 빠짐없이 찾아보고,

대신 청탁을 받았거나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전시리뷰를 쓰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무슨 평론가도 아닌 주제에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결심을 하고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노크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소독하는 분들이 찾아왔다.

좁은 방이라 분무기 호스를 한번만 돌리니 간단히 끝났다.

벽에 덕지덕지 붙은 사진이 신기한지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쪽방을 수없이 다녀 보았지만, 침대까지 들인 방은 처음이란다.

 

이제 투표결과를 기다릴 일만 남았다.

한 표라도 보태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니,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위안했다.

 

그런데, 출구조사가 심상치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억장이 무너졌다.

이토록 비참한 패배는 없었다.

평소 안 하던 내 짓거리에 표가 반란을 일으킨 걸까?

 

오시장 임기동안 재개발 사업을 깔고 앉을 확률이 많은데,

빈민들의 꿈이 물거품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제 죽기 살기로 싸우는 방법 밖에 없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 주변에 코로나 감염자가 퍼져 비상 걸린 지가 두 달이 지났다.

감염된 많은 노숙인들이 사라졌으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동안 살아남은 노숙인은 물론 동자동 쪽방 빈민들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사전검사를 받아야 밥집이건 보호시설에 출입할 수 있었다.

 

더 이상 확진가가 나오지 않자 서서히 긴장감이 풀릴 수밖에 없었는데,

나른한 봄바람 타고 다시 서울역 노숙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긴장감이 풀림에 따라 마스크를 벗거나

반쯤 걸치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언제 다시 확진자가 생겨 이차 재난이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은 병 걸리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이 배고픔과 외로움이다.

 

그리고 동자동 쪽방 촌도 마찬가지다.

나이 많은 노약자나 일부를 제외하고는 수시로 공원을 들락거린다.

 

이제 검사받는 것도 지겨울뿐더러,

목련이 만발한 봄날 어찌 쪽방에 갇혀 살수만 있겠는가?

 

죽고 사는 문제는 운에 맡긴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는 사람은 없다.

특단의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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