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서울역쪽방상담소’ 규모를 2배 이상 확장하여 기존 시설에서 약 100m 떨어진 용산구 후암로 57길 9-12로 이전해 지난 12월 10일 개관했다.

 

2014년 6월 문 연 서울역쪽방상담소`는 주민들의 복지나 인권 등 애로사항을 들어 지원 사업을 펼쳤으나, 고질적인 주민 줄 세우기 등 주민편의 보다 운영편의에 치중해 주민들의 많은 불만을 사기도 했다.

주민 공동이용시설이자 복합 커뮤니티 센터로 탈바꿈한 ‘서울역쪽방상담소’는 그동안 ​여러 곳에 흩어져있던 세탁실, 샤워실, 화장실, 쉼터, 자활작업장 등을 한 건물 안에 조성해 원스톱 통합복지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다.

 

‘서울역쪽방상담소’는 서울시내 쪽방상담소(서울역, 남대문, 돈의동, 영등포, 창신동) 5개소 중 하나로 서울역 인근에 있는 동자동 쪽방 주민 약 천 백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이용수요가 가장 많은 상담소이자 이용자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다.

 

​서울시에서는 쪽방상담소 이전을 위해 인근 건물을 지난 해 새로 매입했다고 한다. 여인숙이 밀집한 골목건물을 매입하여 1월부터 건물 구조 보강, 엘리베이터 설치 등 리모델링 공사에 착수해 11개월 만에 공사를 마쳤다. 이전한 ‘서울역쪽방상담소’는 지하2층~지상4층으로 기존 상담소 보다 규모가 2배 이상 커졌다.

​지하1층의 ‘돌 다릿골 빨래터’, 지하2층 샤워실은 위생 관리가 어려운 쪽방 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이다. 인근 쪽방 주민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같은 층에는 쪽방 주민이 모여 공동으로 작업할 수 있는 자활작업장도 설치했다.

 

​지상1층에는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하여 쪽방 주민뿐 아니라 자원봉사자들도 이용할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 꾸몄다. 2층 상담실에선 복지상담, 정서지원, 생필품 후원 연계 등 주민들의 욕구에 맞는 맞춤형 생활안정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상3~4층에는 쉼터, 프로그램실, 정보화교육실 등을 설치했다. 쉼터는 에너지 취약계층인 쪽방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추위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다. 프로그램실, 정보화교육실에서는 쪽방 주민들에게 건강, 인문교양, 컴퓨터 활용법 등 다양한 교육을 지원하게 된다.

 

이전한 장소는 여인숙들이 밀집한 골목이다,

 

​상담소 운영을 담당하게 될 서울시 복지정책실의 김선순 실장은 “쪽방주민들은 열악한 주거와 생활환경에 노출돼 있고 대부분 취약계층으로 공공의 복지서비스가 가장 절실한 분들이다. 새롭게 문을 연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한 곳에서 보다 쾌적하고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시설과 프로그램을 확충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층별 시설개요>

4층 정보화교육실, 프로그램실, 다목적실

3층 프로그램실, 쉼터, 문서고, 화장실

2층 사무실, 상담실, 화장실

1층 안내데스크, 커뮤니티 공간, 주차장

지하1층 안내데스크, 돌다릿골 빨래터, 장애인 화장실, 창고

지하2층 샤워실, 자활작업장, 화장실

 

본래 장소인 새꿈어린이공원 옆의 희망나눔센터가 멀리 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하는 이 위중한 시기에

줄 세우는 김치 나눔이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있었다.

 

자선단체에서 보내 온 김치를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나누어 주는 연례 행사인데,

쪽방 주민들에게는 겨울을 날 수 있는 유일한 부식이라 다들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린다.

이번엔 량이 많지 않았는지 알리지도 않고 나누어 주었다.

김치 나누어 주는 것을 몰랐는데, 옆방의 정씨가 공원에 줄섰다고 귀띔해 주었다.

 

아무리 전염병으로 외부 출입을 자제하지만, 안 나갈 수 없었다.

다들 어떻게 알았는지, 많은 사람이 줄서 있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먹을 것 찾는 사람들을 보니, 사는 게 전쟁이었다.

 

그렇게 줄 세우지 말라고 노래를 불러도 듣지 않더니,

한동안 코로나가 그들의 나쁜 버릇을 고친 줄 알았다.

편리한 시간에 찾아가는 방법이 서서히 정착돼 가고 있었는데,

왜 줄 세우는 병이 다시 도졌는지 모르겠다.

 

수량이 일정하지 않으면 구역이나 등급별로 주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많은 김치를 건물 안으로 들이는 어려움이야 있겠다.

그렇지만, 동사무소에서 주는 나눔은 절대 줄 세우지 않는다.

메시지를 보내오면 틈나는 시간에 찾아 가면 되지않던가?

 

왜 쪽방상담소란 조직을 만들어 거지 길들이는 악역을 맡겼는지 모르겠다.

 

다들 점염병에 주눅 들었으나 모처럼 동네사람 만나니 반갑긴 반갑더라.

모처럼 동자동 새꿈 공원에 웃음꽃을 피웠다.

 

옛날 유행가 자락이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방역을 따르자니 정이 울고, 정을 따르자니 방역이 운다.”

 

김정심씨를 비롯하여 몇몇 사람이 어울려 술을 마셨는데, 

황춘화씨는 나를 보더니 죽은 서방 만난 듯 반색하며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잡은 손에 카메라를 들이대니, 옆에 있던 김정심씨 말이 걸작이다.

“이제 큰 일 났다. 저 사진 올라가면 조작가 색시 한데 머리 다 뽑힌다”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에 안 서러웠다.

술친구이자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빈자리가 너무 큰 것 같았다.

모처럼 이웃 만나 기분 좋았으나, 나를 보니 아들 용성이 생각이 난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용성이 따라 가고 싶단다.

 

하기야! 힘든 세상 무슨 미련이 있어 감옥살이 해가며 살고 싶겠나?

모진 목숨 스스로 끊을 용기가 없을 뿐인데, 코로나 따라 가는 것이 어쩌면 편할지도 모르겠다.

 

난, 동자동에서는 주식이 라면이라 김치가 없으면 안 된다.

어렵사리 김치는 탔으나, 김치 들고 사진 찍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전염병으로 마음도 편치 않아 먼저 들어왔는데,

오는 길에 홈리스 자활센터 최성원 목사를 만나 기념사진도 찍었다.

 

 낑낑거리며 4층까지 올라오긴 했는데, 방이 좁아 들여 놓을 곳이 없었다.

매 년 김치 탈 때마다 후회하는 것이 냉장고다.

 

오래 전 동자동에 입주할 때 정영신씨와 중고 냉장고를 사러갔는데,

내가 우겨 제일 작은 사무실용 냉장고를 샀기 때문이다.

좁은 방에 큰 냉장고가 버티면 너무 답답할 것 같은 배 부른 생각을 한 것이다.

 

살다보니 냉장고가 작아 냉동은 물론 반찬도 제대로 넣을 수 없었다.

냉장고를 비워 억지로 밀어 넣긴 했는데,

냉동 칸에 닿은 부분이 얼지 않을까 모르겠다.

 

나눔 덕분에 올 겨울 부식은 해결했으나, 걱정도 따랐다.

한 사람이라도 확진자가 있었다면, 동자동에 줄 초상난다.

하기야! 노숙자들이 그렇게 무방비로 어울려도 걸린 사람이 없었으니,

코로나가 거지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제발 줄세우는 짓은 그만 끝내라.

 

사진, 글 / 조문호

 

한 때 서울역전을 떠돌던 부랑자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작년 동지 날 보고 처음이니 일 년 가까이 된 것 같았다.

내복도 안 입은 행색을 보니 정신이 온전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기야!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 해도 용타 싶다.

 

한 보름 가까이 장돌뱅이 정영신씨 '장에 가자‘ 따라다니느라 바빴다.

덕분에 술도 제밥 얻어 마셨고 반가운 분도 많이 만났다.

코로나가 번진 일 년 동안 만난 사람에 버금갈 정도다.

그렇게 많이 만나도 별탈 없는 걸 보니, 아직 죽을 때는 아닌 것 같다.

 

동지 덕에 먹고 자는 문제도 쉽게 해결되었다.

낮 시간은 충무로와 동자동을 오갔지만, 밤에는 녹번동에서 개겼다.

 

다시 복귀했으나, 환경이 바뀌어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쪽창을 여니, 시베리아 벌판같은 찬바람이 몰아쳤다.

나야 문만 닫으면 얼어 죽을 염려는 없지만, 노숙자들은 어떻게 버틸까?

아무리 생각해도 얼어 죽는 사람도 생길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정오 무렵에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역전으로 갔다.

허급지급 허기를 메우는 자도 있고,

여기 저기 웅크려 잠들었거나, 드러누운 사람도 있었다.

간밤의 추위에 잠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었겠는가?

 

노숙왕 김지은씨 한데 물었다. “간밤에 얼어 죽은 사람 없냐?‘고...

“사람이 그래 쉽게 죽나? 어젯밤은 맛배기에 불과한데...‘

 

몇 일 사이 김지은씨를 비롯한 몇 몇 부랑자의 움막이 모두 철거되고 없었다.

하필 추운 날 골라 철거하는 것은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모진 목숨,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사는지 모르겠다.

죄가 있다면 배우지 못해 사기를 제대로 칠 줄 모르는 죄뿐인데...

 

나도 어디가서 뭘 좀 먹어야 했다.

마침 엊그제 쪽방상담소에서 배급 탄 식권 두 장이 있었다.

한 장은 ‘한강오리탕’집 만원짜리 식권이고, 한 장은 ‘청국장’집 팔천원짜리 였다.

둘 다 13일까지 사용할 수 있어 비상식량으로 꼬불쳐 둔 것이다.

 

그러나 동자동 ‘청국장’ 집에 들어가다 문전박대 당했다.

“한 시 반 이후에 와요. 점심시간은 안 돼요”

쪽방 촌 거지행색에 앉기도 전에 쫓아 낸 것이다.

그 자리에서 식권을 찢어버렸다.

 

어떠한 이해득실로 식권을 발행했는지 모르지만,

위선의 자선이라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

 

두 번째는 후암시장 부근에 있는 ‘한강오리탕’으로 갔다.

이집은 지난 여름에 갔더니, 친정아버지처럼 살갑게 챙겨주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 대하는 태도는 똑 같았다.

주인의 곱고 아름다운 천성이 몸에 베어있었다.

 

옆에 있는 ‘경향신문’을 가져다보니, 죽일 놈의 전두환이가 일면에 나왔더라.

밥맛 떨어 질까봐 얼른 넘겼는데, 정말 신문 볼 것 없었다.

 

이어 정갈한 밥상이 나왔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오리탕을 먹었다.

코에서는 콧물이 눈에서는 눈물이 범벅될 정도로 맛있었다.

 

고맙다! 이게 온정이고 자선이다.

얻어먹는 각설이도 언젠가는 그 빚을 갚는다.

시간 맞추어 가족사진이라도 한 장 멋지게 만들어드려야겠다.

 

부디 ‘한강 오리탕’이 대박 나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돈이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돈 앞에는 혈육도 친구도 없는 비정한 세상이다.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돈이 아니라 마음이라 생각한다.

 

강남에 사는 부자가 다 행복한 것도 아니고,

쪽방 사는 빈민들이 다 불행한 것은 아니다.

세상을 살다보니, 돈 때문에 망가지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복권에 당첨되어 흥청망청 쓰다 쪽박 차는 경우도 보았고,

소박하게 살던 사람이 개발로 졸부가 되어 돈 장난으로 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돈이 권력으로 바뀌어 망가지는 명사도 숱하게 보아왔다.

 

인사동에서 건물을 몇 채나 가진 부자가 돈 밖에 모르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관광객이 사라져 그만 두었지만, 싸구려 잡화상 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이 많은 아내와 공부해야 할 자식까지 동원해 장사에 매달렸다.

살날도 많지 않은데, 그 돈이 아까워 어떻게 죽을지 모르겠다.

 

나도 그렇지만, 대개의 쪽방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배짱은 편하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 이전에는 돈에 쫒겨 허둥댔지만,

세상에서 밀려나 욕심조차 놓아버리니, 얼마나 홀가분하겠는가?

 

며칠 전 동자동 새꿈공원으로 모처럼 동네 마실을 갔다.

가을 흔적만 뒹구는 공원에는 사람들이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입구에서는 누군가 빵을 한 상자 가져와 여럿이 둘러 서 나누어 먹었다.

대개 없는 사람들이 정이 많아, 뭔가 생기면 나누는 걸 좋아한다.

 

한 쪽 구석에는 나와 같은 건물 사는 서씨 혼자 앉아 소주를 깠다.

소주 한 병 사들고 가서 술 친구가 되었다.

서씨는 평소에 말이 없어 혼자 노는 경우가 많아, 나도 딱 할 말은 없었다.

소주 석 잔 마시는 동안 말 한마디 없이 침묵만 흘렀다.

 

심심해 내가 먼저 영양가도 없는 말을 꺼냈다.

“서형! 한 가지 물어 봅시다”, “뭔데요?”

‘만약에, 서형이 복권에 걸려 일억이 생긴다면 뭐부터 하고 싶소?‘

 

한 참을 머뭇거리다 하는 말이 “아무리 생각해도 쓸데가 없네”

손가락을 꼬무락거리더니, 1억을 100명에게 주면 얼마지?“

내가 ‘백만원 아니요’ 했더니,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났단다.

 

"밤중에 서울역 가서 노숙하는 사람들 자리에 백 만원씩 두고 싶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 돈을 보면 얼마나 좋겠나?.

어떤 사람은 쪽방에 들어와 같이 살 수도 있고, 밥도 굶지 않고...”

 

정말 귀 똥 찬 생각이라, 서씨가 갑자기 달리 보였다.

없는 사람이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은 생각이었다.

돈 맛을 알아 돈에 중독된 사람은 절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다.

서씨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복권 한 장 사보자!

그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위하여...

 

사진, 글 / 조문호

 

이제 날씨가 제법 추워졌다.

쪽방이라도 있는 사람은 걱정할 것 없으나, 길바닥에서 자는 노숙자들이 걱정이다.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추워진다는데, 그들을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지난 26일은 자정이 넘도록 잠이 안와 밖에 나가 보았다.

골목매점 앞은 잘 모르는 사내가 마스크를 이마에 걸친 채 자고 있었다.

아마 술 마시다 잠든 것 같은데, 거리로 내 몰린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서울역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다들 광장 구석에서 두더지처럼 자고 있었다.

 

오래된 고참 노숙자들은 나름의 움막이라도 있어 찬바람은 피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저 정도 움막 하나 짓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것도 언제 철거될지도 모르는 움막이 아니던가?

 

두 번째는 이불 하나라도 기어이 사수하는 대개의 노숙자다.

온 몸을 이불에 돌돌 말아 잠드니 죽고 사는 문제는 하늘에 맡길 뿐이다.

 

문제는 갑자기 쫓겨 나 아무 대책 없는 초짜 노숙자들이다.

아무리 잠들고 싶지만, 추워서 잠이 오겠는가?

문제는 그 고통을 잊으려고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노숙자들 중에 유독 알콜 중독자들이 많은 것은

육체적 고통은 물론 모든 걱정까지 잊어버리고 싶어서다.

 

해마다 거리에서 죽어나는 무연고자가 300명을 넘는다.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는 대개 생활전선에서 쫓겨 난 부랑자들이다.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그들은 국민이 아니고, 사람도 아닌가?

 

온 세상이 다 보는 서울역 광장 상황을 정치인들이 몰라서 방치할까?

알고도 외면한다면 간접 살인이나 마찬가지다.

기초생활수급자 규정을 보완하여 그들도 쪽방에서 살게 하라.

 

여러분들도 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을 만나면 관심 좀 가져주세요.

하나님과 부처님께 바칠 돈 삥땅쳐서라도 그들에게 적선하세요.

하나님도 부처님도 그걸 원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직업처럼 손벌리는 앵벌이는 물론

술에 절어있는 알콜 중독자에게는 절대 돈 주지 마십시요.

알콜 중독자에게 돈을 주는 것은 빨리 죽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들은 강제 수용시켜 치료받게 해야 합니다.

보건복지부 담당자는 즉각 그들을 수용하여 치료하라.

 

다들 무슨 전생의 죄가 그리 많아 짐승보다 못하게 사는지 모르겠다.

신이시여! 제발 세상 조율 좀 해주세요.

 

사진, 글 / 조문호

 

노숙자의 절반은 알콜 중독자로 볼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차가운 날씨에 술이 취해 잠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들이 술을 자제하며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려면

강제 수용하여 치료받게 하는 방법뿐이다.

 

지난 23일 정오 무렵, 산책하러 동네로 내려갔더니,

송범섭씨가 마치 장물애비처럼, 손목시계를 몇 개나 들고 있었다.

한 개 오천 원에 판다는데, 쪽방 촌에 시계 필요한 사람이 있겠는가?

필요하다면 밥 얻어먹는 시간이라도 알아야 할 핸드폰 없는 노숙자들뿐인데,

그들에게 무슨 돈이 있단 말인가?

 

새꿈공원으로 올라가니 주차장 모퉁이에서 노숙하던 병학이 일행이 사라지고 없었다.

자리가 깨끗하게 청소된 걸 보니, 어디로 쫓겨난 듯 했다.

멀리 공원 안쪽에서 누군가 노숙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보니, 쫓겨 난 그들이 공원 안으로 자리를 옮겼더라.

병학이는 이불 속에 파묻혀 자고 있었고, 옆에 있던 봉남이가 반색을 했다.

 

술이 고파 물주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데, 주머니엔 천 원짜리 한 장 뿐이었다.

“천원 가지고 무슨 술을 사?‘라며 시큰둥했다.

병학이가 자서 심심했던지, 날더러 가지 말라고 붙잡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니네 가족은 서울에 사냐?고 물었더니, 사연을 줄줄이 쏟아냈다.

 

운전면허증부터 꺼내 놓으며 집에서 이혼 당해 쫒겨 나온 이야기를 했다.

택시기사로 일하며 살았는데, 그 놈의 술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운전해야 할 사람이 술을 너무 좋아해 일 나가지 않는 날이 많으니, 누가 그를 쓰겠는가?

결국 직장 잃은 가정불화로 집에서 쫓겨나게 된 사연 사연을 털어놓았다.

“자식은 없냐?”고 물었다니, 갑자기 딸년이 보고 싶다며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슬피 울어대는지 옆에 있는 나까지 눈물이 나더라.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괜히 쓸데없는 걸 물어 초상집 분위기를 만들었다.

자리가 민망해 일어나니, 대뜸 하는 말이 “천원만 더 갖다 줘”란다.

자식이 보고 싶어 그렇게 슬피 울다가도 술값 걱정을 하는 것을 보니, 술이 무섭기는 무서웠다.

이제 오십대 중반이면 한창 일 할 나이인데, 보통 일은 아니었다.

 

작년 이맘 때 비명에 간 용성이도 술 때문에 죽었는데,

술 값 구걸에 못 이겨 술값 준 적 있는 내가 죽인거나 마찬가지였다.

하루속히 알콜중독자를 강제 수용하더라도 구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매일같이 국회에서 개지랄만 떨지 말고 사람 살릴 걱정 좀 하라.

 

사진, 글 / 조문호

 

이제 날씨가 제법 쌀쌀해 졌다.

빈민들이야 코 구멍 한 쪽방이라도 있지만 노숙하는 부랑자가 걱정이다.

지난 화요일의 ‘새꿈공원’에는 몇 명 안 되지만, 쪽방주민보다 노숙자가 더 많았다.

썰렁한 공원에서 웅크려 자는 이도 있고, 몇몇은 술로 몸을 데우고 있었다.

웅크려 자는 머리 위에 걸린 ‘비주택 거주자 주거 상향사업’이란 현수막이 무색했다.

 

쪽방 밀집지역에 사는 ‘비 주택 거주자 이주지원을 위한 주거상향사업’이 시작 된지 몇 개월 되었으나

동자동 쪽방주민들에게 외면 당 하고 부랑자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쪽방 촌에 사는 대부분의 빈민들은 가구도 없이 몸뚱이 하나뿐이라 외곽의 임대 아파트를 원치 않는다.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 방만 넓으면 뭐하냐?‘는 것이다.

 

교통 요충지인 동자동에서야 어디든 쉽게 나 다니지만, 외딴 곳에 가면 외출 한 번 하기도 쉽지 않다.

또 하나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은 그동안 줄 세워 구호물품으로 생색내며 빈민들을 길들여 온 탓이다.

그러니, 동자동에서야 굶어 죽을 염려는 없지만, 임대아파트에 가면 얻어먹을 곳이 사라지는 것이다.

일괄적으로 시행하지 말고, 사정에 맞는 다변화 지원 정책을 펼쳐야 한다.

영등포 쪽방촌의 성공 사례를 참고하기 바란다.

 

당장 잘 곳도 없는 부랑자는 그 사업에 해당 되지도 않는다.

된다 해도 주민등록상의 문제나 단절된 가족 때문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신세다.

아무리 좋은 복지정책을 펼쳐도 빈민들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으면 헛수고일 뿐이다.

 

하기야! 정치라는 게 본래 그런 거지 뭐...

집이 없어 길에서 얼어 죽는 사람 걱정보다, 생색내어 표 얻는 것이 먼저니까.

 

사진, 글 / 조문호

 

다 잊어버리고 싶어도 저질러 놓은 일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정선은 물론 동자동과 인사동마저 물리치고 싶지만

무슨 악연이 있는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여기가면 저기 생각, 저기가면 여기생각, 숨겨둔 첩 처럼 뒤가 밟힌다.

 

해가 서울역 머리 위로 기울며, 또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

요즘은 전시장이나 사람 모이는 곳을 잘 가지 않으니

정선과 녹번동, 그리고 동자동만 다람쥐 채 바퀴처럼 돈다.

하는 일도 없이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이러다 멍청이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 만사가 귀찮아지는 걸 보니 아마 갈 때가 된것 같다.

 

내일 새벽일찍 정선 떠나려면 녹번동으로 가야했다.

가기 전에 인사동서 소주나 한 잔할까? 했으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약속 없는 혼 술이 싫어서다.

 

지하도에는 요구르트로 허기 메우던 노숙자의 한숨 소리가 들리고,

휴게소에는 밥집 문 열기만 기다리는 부랑자들의 지루함이 엿 보인다.

나도 밥 얻어먹기 위해 녹번동 가는 지하철을 탔다.

 

그래도 반겨주는 사람이 있으니, 복은 많은 놈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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