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일이 눈앞에 닥치고 말았다.

동자동 쪽방촌에 전염병 확진자가 생겼다는데,

문제는 쪽방의 화장실이나 주방 등 사는 공간 대부분이 공용이라 격리란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들 겁먹어 방에서 꼼짝을 안 하니, 굶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제 날씨가 쌀쌀해 침낭을 꺼내놓고, 라면을 끓여 허기부터 메웠다.

 

다들 뭐하나 궁금해 쪽방 건물 4개 층을 다 돌아봐도

방문 열린 곳은 아래층 장섭씨 뿐이었다.

 

이 친구는 책 읽는 것을 즐겨 온 종일 책만 읽는다.

 

밖으로 나갔더니, 사람 없는 공원엔 찬바람이 일었다.

천원으로 밥 먹는 ‘식도락’은 도시락으로 바뀌었고,

말 그대로 사랑방 역할을 해 온 ‘동자동 사랑방’조차 출입을 제한했다.

 

마침 ‘민족사랑교회’에서 도시락을 나누어 주고 있었는데,

일 돕던 정심씨가 고맙다며 날 꼭 껴 안아주네.

사진찍고 처음 받아 본 환대에 얼떨떨했으나.

날씨가 쌀쌀해 그런지 따뜻한 여자 품이 좋더라.

 

요즘은 밖에 나오는 분이라고는 고물 줍는 조인형씨,

몸 아픈 분들에게 도시락 배달해주는 원용희씨,

공원 주위를 맴도는 이남기씨 등 몇몇 밖에 안 된다.

그 외는 목숨 내놓고 사는 노숙자들뿐이다.

 

어쩌면 쪽방에 갇혀 티브이만 끼고 사는 사람보다 노숙자가 나은지도 모르겠다.

허구한 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으니, 이 시국에 누가 그렇게 즐길 수 있겠는가?

늘 취해 해롱해롱하니, 코로나도 피해 갈 것이다.

 

어쨌거나 정신 바짝 차려 쪽방촌의 감염은 막아야 한다.

자칫하면 동자동에 줄 초상난다.

 

 

코로나를 내 쫓는 굿이라도 한 판 벌일까보다.

 

사진, 글 / 조문호

 

성민교회에서 쪽방주민들에게 추석선물을 나누어 주는 행사를 갖기로 했으나,

인근건물에 확진자가 생겨 취소되었다는데, 아쉽기는 하지만 다행인것 같았다.

 

동자동에 코로나 확진자가 생겼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노약자들이 많아 줄초상 칠 수도 있는 것이다.

 

새꿈공원에는 선물 받으러 나와 허탕 친

'친절한 금자씨'가 아닌, 친절한 은자씨가 아양 떨었다.

너무해용!”

나 더러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코로나 보고 하는 말이다.

 

이남기씨와 술 마시던 한보는 '술 한 잔 사겠다'고 시비를 건다.

손에 집어 준 포도 한 알을 안주로 해장술을 마셨다.

 

정선에서 일하느라 곤죽이 되어 몸이 천근만근인데,

한보가 준 소주 덕에 몸이 풀렸다.

 

술도 마약인가?

 

사진, / 조문호

 

 

서울역 광장은 부랑자들 삶의 터전이다.

이리 저리 쫓겨 다니는 불청객 신세지만, 유일하게 소통하는 공간이다.

 

지난 14일에 찾아 간 서울역광장에는 낯선 부랑자들이 몇몇 보일 뿐 허허로웠다.

서울역광장에서 터줏대감 행세를 하는 김지은은 비닐 움막을 만들어 누워 있었다.

그 옆에 누구의 거처인지 알 수 없으나, 예쁘장한 박스집이 지어져 있었다.

언제 철거될지 모르지만, 부서지기 전에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부랑자의 집이다.

 

개처럼 기어들어가고 기어 나와야 하는 집이지만,

그들에게는 부자동네 강남 아파트가 부럽지 않은 생활공간이다.

노숙자에게 비나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흔한 일은 아니다.

 

움막 주인을 기다리며 사진을 찍고 있으니, 낯선 사내가 다가 와 시비를 건다.

자기 집은 아니지만, 왜 남의 사유물을 찍느냐는 것이다.

“재산권 침해야! 카메라 내놔”

지켜보던 김지은이가 “야~ 우리형님이야”라는 한마디에 바로 꼬리 내린다.

 

살벌한 부랑자 세계에서는 빽 중에 최고의 빽이 아닐 수 없다.

사진을 여러번 찍혀 본 지은이는 자기를 찍으란다.

“사람도 없는 개집 찍지 말고, 잘 생긴 나를 찍어라”는 것이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듯이 사물보다 사람이 더 사진적이라는 것을 안다.

 

김지은은 서울역 부랑자 중에 유일하게 멋을 부리는 사나이다.

2016년 겨울,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모델료 내라며 트집 잡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동자동 사는 개털임을 알고부터 무장해제되었는데,

유일하게 서울역의 따끈따끈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협력자이기도 하다.

 

또 한 사람 서울역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은 조인형씨다.

건너 편 쪽방에 사는 그는 알미늄 깡통을 줍기 위해 매일같이 나온다.

고물 중에서도 가볍고 돈 나가는 캔만 줍는데, 벌이가 수월찮다.

그의 비좁은 쪽방은 갖가지 고물이 방주인을 쫒아 낼 형국이다.

 

서울역에서 남영동 방향으로 300미터 쯤에 ‘자리한 밥집 부근에는

밥 주는 시간이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도 일찍부터 줄을 서고 있었다.

그들은 기다리는데 이골 난 사람들이다.

지금은 허기 메울 밥을 기다리지만, 종국엔 천국 행 열차를 기다린다.

 

서울역과는 대조적으로 동자동 거리는 한산했다.

다들 쪽방에 들어 앉아 알 까는지 꼼짝을 않는다.

세상에 아무 미련도 없지만, 죽기는 싫은 것이다.

그래! 악착같이 살아보자. 쥐 구멍에도 볕들 날 있겠지.

 

사진, 글 / 조문호

 

‘죽어도 좋아’란 말은 영화 제목이 아니라

오갈 때 없이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들이 내뱉는 체념의 말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시달려도 시원한 물 한 컵 마실 수 없으니,

산다는 것 자체가 지옥이나 다름없다.

유일하게 그들을 위안해 주는 술도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한 낮에는 마실 수가 없다.

아무리 이열치열이라지만, 오늘같은 더위에는 버텨내질 못한다.

 

다들 누워서 해 넘어가기만 기다리는데, 차라리 누웠을 때 조용히 데려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들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한쪽에선 시끌벅적한 찬송가 소리가 그들을 유인했다.

천당가고 싶으면 자기들이나 가지, 왜 불쌍한 부랑자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코로나로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데, 한데 끌어 모아 어쩌겠다는 말인가?

 

'신천지'와 '사랑제일교회' 사건으로 온 국민이 고통 받는 걸 몰라서 하는 짓인가?

무슨 놈의 물 귀신 심보인지 모르나, 하나님에 미처도 더럽게 미쳤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는지 모르겠다.

죽고 나면 한 줌의 흙에 불과한 것이 인생인데, 천당은 무슨 천당?

그 광신도 무리 말처럼 세상의 종말이 온 것이 아니라, 돈에 병던 개독교의 종말이다.

 

동자동 쪽방에 사는 최완석씨가 노는 곳은 서울역광장이다.

대개의 쪽방 사람들이 새꿈공원에서 노는데 반해, 왜 그는 노숙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할까?

 

쪽방조차 없는 빈털털이가 더 인간적이란다. 이심전심이다. 

그래서 개털 주제에 술도 대부분 그가 산다.

 

어떤 사람은 그를 미친놈이라 구박하지만, 그가 미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미쳤다.

 

서울역 광장을 하릴 없이 돌아 다녔더니, 온 몸에 땀이 범벅이다.

그늘에 앉아 같이 쉬고 싶어도 거리두기란 강박관념에 가까이 하기 싫었다.

 

어쩌면, 다들 부랑자는 멀리하니, 그들 세계만이 안전지대 일수도 있다.

오히려 내가 그들을 감염 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동자동 '새꿈 공원'으로 옮겼다.

쪽방 촌 사람들은 티브이를 끼고 살아 그런지, 나라에서 시키는 말을 참 잘 듣는다.

온 종일 곰처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외출 한 번 하지 않는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생수를 나누어 주었으나, 사람이 없으니 물이 남아돌았다.

시원한 물이 아니라 그런지, 나온 사람조차 관심 두지 않았다.

 

담배 피우는 박상민군과 두 할머니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뿐 한적했다.

이제 어디로 갈까? 갈 곳은 많아도 가고 싶은 곳이 없다.

 

사진, 글 / 조문호

 

 

 

난, 담배 없이는 못 견딘다.

호흡기에 문제가 생겨 의사가 담배를 끊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해도 끊지 못한다.

매일 약 먹고 흡입기 빨아가며 피운다.

담배란 있는 사람이 피우는 것이 아니라 없는 사람이 피우는 한숨이다.

차라리 팔지나 말지, 세금만 잔뜩 올려 언제까지 불쌍한 중독자들 피 빨아 먹을 것인가?

 

피우지 말라는 나쁜 담배를 팔기는 왜 팔아?

나야 하루에 반 갑 정도 밖에 피우지 않지만,

쪽방에 사는 대부분의 흡연자들이 하루에 한 갑은 더 피운다.

많이 피우는 사람은 기초생활수급비 절반이 담배 값으로 날아간다.

문둥이 코 구멍에 마늘을 빼 먹지, 어찌 없는 사람들 고혈을 빠냐?

빈민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옛날 군인들이 피우던 화랑담배 같은

질 낮은 면세 담배라도 팔아, 밥은 안 굶도록 해야 할 것 아니가.

 

더구나 코로나 때문에 사람도 못 만나게 하는 시국에 흡연자들 끼리 모여 담배피우는 것은

코로나 감연의 큰 구멍인데, 담배 피우다 병에 걸려 죽으라는 말이나 뭐가 다르나?

담배 금지령도 못 내리고, 계속 세금만 착취하려면 차라리 대마초를 합법화 하라.

담배보다는 대마가 중독성이 약하고 위해도 적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던가?

 

더 이상 국민들을 흑사리 쭉지로 알지마라.

강남에 아파트 몇 채나 가진 국개의원들이 없는 놈의 설움을 어찌 알겠는가?

주택가격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고 정부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데도 왜 그냥 두냐?

집 값 오른다고 무조건 아파트를 건설하는 게 상책이 아니라, 두 채 가지면 손해 보도록 만들어라.

부동산 문제를 잡으려는 의지만 있다면 양도 차액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환수하면

어느 미친놈이 돈 안 남는 부동산투기를 하겠는가?

혁명하듯 결정하지 않으면 가진자들의 저항에 부딪혀 영원히 해결하지 못한다. 

가진 놈들 장난에 없는 놈만 죽이는 이 따위 속임수 정치 언제까지 할 것이냐?

이제 냄비정치는 끝내라.

 

더 이상은 힘들어서 못살겠다.

차라리 감방에나 넣어다오.

공짜로 주는 밥 얻어 먹으며 담배 한 번 끊어보게...

 

 

사진, 글 / 조문호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어 노숙하는 부랑자들은 몸 부칠 곳이 없다.

 

대부분의 노숙인들이 짐은커녕 그 흔한 우산하나 지니지 않는다.

신출내기들은 이것저것 챙겨 다니지만, 점차 하나하나 버리게 된다.

살다보면 아무 것도 없는 무소유의 편안함을 깨닫는 것이다.

 

비가 내리면 그 많던 서울역 인근의 노숙인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몸 피할 곳은 물론, 밥 얻어먹을 곳도 마땅찮다.

다들 음습한 곳으로 숨어들어 물에 빠진 새양쥐처럼 오들오들 떤다.

 

비가 그친 지난 3일에서야 서울역광장에 다들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서 비를 피하다 왔는지, 끼리끼리 만나 잡담을 나누었다.

몇 몇은 지하철 통풍구를 평상처럼 더러 누워 젖은 몸을 말렸다.

 

서울역광장 쪽에서 누가 불렀다. “조기자! 사진 한 판 찍어줘”

계단에 이기영씨와 홍홍임씨가 앉아 있었다.

웬일로 나왔냐니까, 심심해서 사람 구경하러 왔단다.

하기야! 쪽방에 있어보았자 덥고 답답하기만 할 텐데,

서울역이라도 나오면 다양한 군상들을 만날 수 있어 지루하진 않을 것이다.

 

요즘 안 보이는 노숙인이 많아 쓸 만한 사진을 찍은 사람은 사진 사용동의서를 받아두는 것도 일이다.

다들 좋아서 찍어 시비 걸 사람은 없겠으나,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받아두라는 주변의 충고 때문이다.

 

이기영씨도 삼년 전 겨울에 찍은 사진이 생각나, 동의서를 내 밀었다.

사진집에 당신 사진이 들어가야 한다고 했더니, 두 말 않고 사인해 주었다.

여지 것 10여명 밖에 받지 못했으나, 한 사람도 거절한 사람은 없었다.

거절은커녕, 다들 “어떤 사진이냐?”며 좋아했다.

 

여지 것 출판을 서둘지 않는 것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문화재단의 출판지원이 없다면 무리해서 만들 필요가 없다.

최소한 자기 사진이 실린 분들에게 책 한권은 증정해야 할 것 아닌가?

다행스럽게 정영신씨의 ‘장터문화답사기’는 지원책에 선정되어 곧 출판된다고 한다.

 

동자동이 재개발되어 다들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 사진집으로나마 추억해야 할 것 아닌가?

 

 그 때까지 살아남는다면, 정선 땅을 팔아서라도 캠핑카부터 구할 작정이다.

필요한 짐을 차에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며 사진찍다 길에서 죽는 것이 꿈이다.

처음이고 마지막인 내 꿈은 꼭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

 

사진, 글 / 조문호

 

코로나는 밖에도 못나가게 겁주고, 날씨까지 후덥지근해 죽을 지경이나.

쪽방촌 사람들은 곰처럼 비좁은 골방에서 잘도 버텨낸다.

방이 답답해 밖에 나와도 사람이 별로 없다.

 

일찍부터 자리 깐 노숙인 몇몇이 지하도에서 시간 죽였고,

공원에는 고작 술 취해 잠든 정씨와 술친구를 기다리는 유씨를 만났을 뿐이다.

 

차라리 그 얼굴에 그 얼굴이지만, 옆 방 사람들 만나는 것이 편할 것 같았다.

담배 한 갑 사들고 다시 쪽방에 올라갔으나 문 열린 방이 별로 없었다.

다들 더운 날씨에 방문 걸어놓고 뭐하는지 모르겠다.

기껏 티브이 채널이나 돌릴 텐데, 마치 사랑 놀음 하듯 은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젊은 사람 둘만 방문을 열어 놓았는데,

몇 달 전 이사 온 박상민군은 고장 난 지포라이터 분해하느라, 들여다보아도 안중에도 없었다.

박군은 올해 24살인데, 한창 공부할 나이에 왜 쪽방에서 빈둥대는지 궁금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해 부모의 허락을 얻어 쪽방 생활을 한다는데, 아마 정박아인 것 같았다.

 

사진을 찍고 이 것 저것 물어보니, 말없던 평소와 달리 친근하게 대했다.

쪽방 사는 젊은이들을 “멀쩡한 놈들이 일은 안하고 논다”며 손가락질 하지만,

대개 정박아거나 건강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인생 막장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늙은이들 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다.

 

저녁때가 되어 라면을 끓이려니, 열흘 전에 동사무소에서 준 식권이 생각났다.

복날 먹으라고 ‘한강오리’에서 준 삼계탕 식권인데, 후암시장까지 가기가 귀찮아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쪽방 촌에 있는 가난한 노인들에게 다 주었으니 몇 백 장은 족히 되었을 텐데, 얼마나 혼잡할까 싶었다.

여지 것 경험으로 맛보다는 끼니 때우는 식권으로 여기며 찾아갔다.

 

가끔 시장 갈 때 지나치던 음식점이지만, 처음 가는 식당이었다.

들어가며 식권부터 내미니, 계산대의 젊은 아낙이 반색을 한다.

편한 자리를 안내하며 살갑게 대하는데, 마치 평생 가보지 못한 딸네 집에 들려 밥상 받는 기분이었다.

정갈한 밑반찬에 삼계탕이 나왔는데, 삼계탕은 얼마나 맛있는지. 밥알 하나 남기지 않았다.

들어갈 것 다 들어간 정성이라 맛있을 수밖에 없는데다 주인의 따뜻한 마음까지 느껴지니,

어찌 그 감동의 맛을 말로 다 하겠나?

생각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선이었다.

 

“오랜만에 감동 무운 삼계탕 맛, 지기더라.

인자 동자동 누가 오마 여 모실끼다.

삼계탕에 감동 무니, 그 감동 디게 오래가네.“

 

후암시장 입구 있는 ‘한강오리’삼계탕 기억하세요.

 

사진, 글 / 조문호

 

 

오래 전 신파극에나 나왔던

‘사랑을 따르자니 친구가 울고, 친구를 따르자니 사랑이 운다“는 대사가 생각나는 시국이다.

 

정치건, 성이건 모든 걸 편 갈라 등 돌리고 사는 세상이라 그럴 것이다.

가끔 SNS에서 안면 바꾼 날 선 공방을 보며, 이제 갈 때가지 갔다는 생각이 던다.

 

비운의 삶으로 세상을 떠난 박원순 시장을 두고 벌이는 정치공방은 구역질 난다.

티브이에 자주 등장하여 여성을 대변한다는 뻔뻔스런 상판대기들 보는 것도 지겹다.

속 보이는 짓거리가 부끄럽지도 않을까?

 

나 역시 한 때 미투에 지목될 만큼 여자를 좋아했지만, 돈과 권력이 없어 문제가 없단다. 

그러나 이젠 여자가 무섭고 싫어졌다.

오죽하면 처와 딸을 가진 사내로서 여성에 혐오감을 가지겠는가?

 

그 가슴 두근거리던 아름다움과 처연했던 감정을 어찌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기나긴 세월, 남자는 늑대로 여자는 여우로 치며 잘 어울려 살았다.

 

이제 그만 끝내라. 제발 죽은 사람 두 번 죽이지 마라.

 

-2막-

 

“돗자리를 따르자니 돈이 울고, 선풍기를 따르자니 몸이 운다“

쪽방 주민들에게 선풍기와 돗자리 나누어 주던 날, 줄 선 서씨가 뱉은 말이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니,

돗자리가 필요하지만 값 비싼 선풍기가 탐이나 하는 말이다.

 

작년 여름에도 선풍기를 주었으니, 고장나지 않았다면 다 있다.

비좁은 쪽방에 모셔 둘 자리도 없건만, 대개 선풍기를 가져간다.

기껏 팔아야 오천원 남짓 받지만, 단 돈 오천원에 자기 몸을 파는 것이다.

 

지난 17일, 모처럼 새꿈공원에 줄서라는 벽보가 나붙었다.

‘이마트’에서 선풍기 300대, 서울시 50플러스센터 직원들이 대자리 380개를 후원해

동자동 쪽방 빈민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공고였다.

 

줄 세워 나누어주지 말라고 몇 년 동안 나팔 불어도 시정되지 않더니,

‘코로나19’ 덕에 그나마 고쳐진 줄 알았다.

물론 많은 분량의 물자를 지하로 내려야 하는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시간 있을 때 찾아가는 방법이 별 탈 없이 정착되어가는 중이라 당혹스러웠으나,

한 편으론 반가운 면도 있었다.

 

다들 꼼짝 않고 방에 쳐 박혀 살아, 사람이 그리웠다.

미운 정 고운 정 같이 살아 온 세월이 얼마더냐?

 

모처럼 만난 벗들의 반가운 눈 꼬리가 초생 달처럼 징거러운데.

다들 마스크를 썼지만 서로 알아채고 끈적댔다.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싱글 벙글하는 분위기에 다들 해방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 행렬은 4년 간 지켜 본 중에 가장 긴 줄이었다.

정해진 낮 2시보다 30분이나 빨리 갔으나

이미 줄 선 사람의 행렬은 골목골목을 돌아 오백 미터가 넘었다.

 

선풍기도 선풍기지만, 다들 사람 만나고 싶어 나왔을 것이다.

처음엔 마스크를 썼으나, 코로나에 의한 거리두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다닥 다닥 붙어서서, 마스크를 벗어버리거나 반쯤 걸친 사람이 더 많았다.

자칫 한 명이라도 감염되면 쪽방 빈민들 줄 초상 날 지경이었다.

 

더운 날씨에 줄은 줄어들지 않고 힘든 시간이 길어지니,

노인들의 불만이 여기저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는 쪽 쪽 번호표를 줬으면, 이렇게 무더운 땡볕에 줄 설 일은 없지 않느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으면 일하는 사람을 두 군데로 나눠야 할 것 아니가? 씨발 넘들아!”

 

얼마나 “서울역쪽방상담소“ 욕을 많이 해대는지, 내가 할 욕을 잃어버렸다.

제발! 너희들 편리보다 주민을 먼저 생각하라.

“우리가 남이가?”

 

사랑도 좋고 친구도 좋은 세상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