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쪽방에서 버텨야 하는 빈민들의 삶은 비참하다.

짐승도 이렇게 열악한 조건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뜨거운 바람을 돌리는 선풍기 소리가 숨통을 조여 온다.

컴퓨터 열기에 온 몸이 후끈거린다.

 

나야 나가 있거나 다른 데서 잘 때가 많지만

쪽방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차라리 쪽방조차 없는 노숙인은 그나마 낫다.

병 걸려 죽는 것조차 두렵지 않으니 외롭지도 않다.

 

요즘 밖에서 쪽방 사람들 만나기는 어렵지만,

노숙인들은 매일같이 둘러앉아 술판을 벌인다.

무료급식소 줄어든 게 탓이지만 굶어 죽지는 않는다.

막걸리로 허기 메우며 자유롭고 즐겁게 지낸다.

 

가끔 여성 노숙자도 있는데, 그들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나 역시 말 걸기도 어렵지만 사진 찍히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세상에 노출되기 싫은 그들만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서울역 노숙자 성비 통계에 의하면 3.3%에 불과하니,

가뭄에 콩 나듯 만나기도 어렵다.

요즘은 미투 폭풍으로, 여자 노숙인은 대하기조차 두렵다.

이 날도 우산 두 개로 몸을 숨긴 여성 노숙인을 보았다.

 

남편 폭력이나 정신병 등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왔겠지만,

남자에 비해 노숙생활이 힘든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모든 원인은 돈이 원수다. 기초생활수급도 못 받는 처지라

이 어려운 코로나 시국에 어떻게 버티는지 모르겠다.

 

코로나에 다들 벌어먹기 어렵지만, 영향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돈 많은 부자야 말할 것도 없으나, 건물 임대 업자들은 안전 빵이다.

장사가 안 되던, 살기가 어렵던, 임대료는 꼬박꼬박 받아 챙기지만

한 번 올라간 임대료는 내릴 줄 모른다.

 

빈민들로서는 남의 이야기 같지만,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빈부 격차도 날이 갈수록 벌어져, 한 번 거지는 영원한 거지다.

상대적 박탈감에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다.

 

동자동에도 문 닫는 가게들이 속출하고 있다.

식당 문 닫은 자리에 자동차 정비소가 들어섰다.

그것도 외제 승용차를 주 고객으로 하는 정비소다.

 

빈민을 대상으로 하는 업종은 대개 힘들지만,

부자를 고객으로 하는 장사는 된다는 이야기다.

또한 밥은 집에서 먹는 것이 안전하지만,

이동수단은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을 찾는 이유도 있겠다.

 

이제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맡기고,

다들 거리로 나와 노숙해야 할 것 같다.

구차하게 오래 사는 것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 낫다.

 

사진, 글 / 조문호

 

간밤에 비가 쏟아져 쪽방에서도 시원하게 잠들 수 있었다.

아침에 라면 끓이며, 서랍에 넣어 둔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핸드폰을 거는 전화로만 사용해 걸려온 전화를 가끔 확인해 본다.

거리두기의 한 방법이나, 이틀 동안 걸려온 전화는 한 통밖에 없었다.

 

요즘은 전시장 개막식은 물론 사람 모이는 술자리는 잘 가지 않는다.

숨쉬기가 힘들어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이나, 사람들이 서서히 멀어져 갔다.

입력된 번호에 전화를 걸었더니, ‘용산주거복지센터’란다.

용건은 LH공사를 통해 전세자금을 대출해 줄테니, 이사할 의향이 없냐는 것이다.

그 것도 무려 구천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대출해 준다고 했다.

 

세상 물정을 잘 몰라 전세 값이 그렇게 많이 올랐는지도 몰랐다,

예전 같았으면 그 돈으로 집을 사고도 남을 돈이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는 신용불량자에게 큰돈을 대출해 준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전세금을 담보해 두면 떼일 염려야 없겠지만, 이자는 갚아야 할 것 아닌가?

 

짐작컨대, 동자동 쪽방 촌 재개발을 앞두고 외곽으로 몰아내기 위한 방법 같았다.

짐도 없이 혼자 사는 빈민들이 임대주택이나 전셋집이 무슨 소용있겠는가?

 

대충 먹어 치우고 공원에 나가 보았다.

간밤에 내린 비에 노숙하는 병학이가 어떻게 잤는지 궁금했다.

 

잠자리에 가보니 깔판을 텐트처럼 쳐 놓고 있었는데,

끼니는 뭘로 해결했는지 돌 팍에 숟가락만 놓여 있었다.

술친구와 어울려 밤새 젖은 몸을 술로 말렸다.

 

공원을 북적였던 쪽방사람들은 한 둘 뿐이고, 빈자리를 비둘기가 차지했다.

어떤 이는 쪼그려 커피 한 잔에 시간 죽이고, 어떤 이는 빗자루 춤을 췄다.

머지않아 다들 쫓겨날 텐데, 이제 남은여생을 어떻게 보낼 건가?

 

재개발 하려면 주민 대책부터 세우고 추진해야 할 것 아닌가?

 

전셋집이나 임대아파트 같은 넓은 집은 필요 없다.

정붙이며 살아 온 외로운 사람들, 함께 살게 해다오.

 

사진, 글 / 조문호

 

거리두기로 오나가나 독거의 외로움은 깊어만 간다.

다들 꼼짝을 안 해 만날 수도 없지만, 만나도 눈인사나 나눈다.

매일같이 모여 앉은 부랑자들은 주위의 시선도 따갑지만,

나 역시 감염에 일조하는 것 같아 어울리기를 꺼린다.

 

몇 달이 넘도록 주눅 들게 하는 ‘코로나’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니다.

무더운 쪽방에서 도망쳐 와 녹번동 정영신씨 집에서 지내다,

생각나면 돌아가는 반복된 나날을 보내는데,

컴퓨터와 노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가 되어 버렸다.

 

지난 24일은 인삼드링크 받아가라는 벽보가 나붙었다.

공원은 한가했으나, 입구에 진을 친 병학이 아지트는 여전했다,

그 날 낯선 노숙자 한 사람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를 많이 다쳤다.

먹는 게 없는데다 술기운에 몸을 가누지 못해서다.

 

신고 받은 119 대원이 달려왔으나 그들이 할 일은 없었다.

머리가 찢어져 병원에 옮겨야 했으나, 당사자가 손을 내저었기 때문이다.

한 푼도 없는 거지 치료비를 누가 낸단 말인가?

상처를 꿰매야 하지만, 머리에 붕대만 감아놓고 떠나 버렸다.

 

무덥고 갑갑한 붕대 따위는 이내 벗어 던져버렸다.

술로 소독하려는지 연신 술만 퍼마셨다. 삶에 애착이 없어 보였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고통은 피할 수 없다.

무소유의 자유도 눈앞에 닥친 고통 앞에서는 개소리에 불과하다.

 

어떤 놈은 돈을 쌓아두고도 돈 욕심에 눈이 벌겋게 설치는데,

아무 것도 없이 살아도 기초생활 수급비도 못 받아 먹는 불쌍한 신세다.

불공평한 현실을 탓해봤자 무엇에 쓰겠는가?

 

그들과 달리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원희룡씨를 길에서 만났다.

원씨는 후원자로부터 도시락을 받아와 전해주기도 하고,

고물을 주워 모아 파는 등 무슨 일이던지 닥치는 대로 한다.

한 푼이라도 벌어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시골가족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서다.

 

할 일없이 혼자 사는 독거나, 방황하는 부랑자에 비한다면 선택받은 삶이다.

인삼액기스는 받았냐며 쪽방촌 정보부터 알려준다.

이제는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줄 세우지 않아 언제든지 찾아 가면 된다.

진즉부터 그렇게 하면 될 일을 한 번에 끝내려는 속셈에 고집 부린 것이다.

 

상품을 주는 물품보관소에 들렸더니, 직원들 뿐이었다.

나누어 준지가 며칠 되었건만 많은 물건이 남아 있었는데,

다들 바깥출입을 하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영양이 부족한 쪽방 노인들에게는 좋은 선물일 텐데...

 

상자에는 ‘제일제당’에서 보낸 ‘통째로 갈아 넣은 인삼 한 뿌리’라고 적혀있었다.

진짜 인삼을 갈아 넣었는지 뜨물 같은 흰 액체에서 인삼 맛까지 났다.

과분한 선물인 것 같았으나, 노숙자는 이런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그들은 몸 생각을 하지 않아, 줘도 좋아하지 않는다.

외로운 쪽방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윙윙 되돌아가는 선풍기 바람 맞으며 티브이 채널만 돌리고 있다.

가끔 인삼 액기스로 몸보신도 하겠으나, 그 넘치는 정력은 어디다 쓸까?

각자도생하는 세상, 혼자 재미있게 노는 방법이나 연구해야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쪽방은 외롭고 뜨거운 감옥 이라지만, 이제 불안하기 까지 하다.

고령자 많은 종로 쪽방 촌에 코로나 확진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더구나 감염 경로조차 알 수 없다는데, 남의 일이 아니었다.

코로나가 취약계층을 파고든다는 점은 불길한 징조다.

 

클럽 등 유흥주점과 대형 물류센터의 집단감염도 큰 부담이지만,

사회 취약계층이 집중된 쪽방 촌이나 고시원 같은

사각지대에서 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수많은 노약자가 희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제는 돈의동 쪽방 촌을 소독하는 장면이 티브이에 방영되었다.

동자동 방역은 언제 하는지, 대책은 있는지 궁금했다.

녹번동에서 돌아와, 등짐 풀기가 무섭게 내려왔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 알아보기 위해서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무더운 날씨라 축축 늘어졌다.

 

새꿈어린이공원이 가까워오니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왜 이리 그리운지 보고 싶은지, 못 맺은 운명 속에 몸부림치는

병들은 내 가슴에 비가 내린다박재란의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용성이 엄마 황춘화씨가 술이 취해 청승맞게 부르고 있었다.

병들은 내 가슴에 비가 내린다는 대목에서는 비가 아니라 눈물을 쏟아냈다.

먼저 떠난 용성이 생각에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만 것이다.

 

요즘은 가급적 술자리를 피하나, 이 장면에서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이른 시간부터 마셨는지, 그늘을 비켜 선 술자리는 햇볕에 노출되었고,

여기 저기 빈병이 나 딩굴고 있었다.

 

마스크 쓴 나를 알아본 유정희씨가 막걸리 두병만 사달라고 눈을 깜빡였다.

먼저, 자리를 그늘로 옮기고 쓰레기부터 치우라고 했다.

막걸리 두병에 소주 한 병, 그리고 꽈배기 하나를 사 주었다.

단돈 오천 원에 일곱 명이 희희낙락이다.

 

제 버릇 개 못 주듯, 카메라를 끄집어냈다.

서럽게 우는 황씨를 습관적으로 찍찍 갈기니, 카메라 싫어하는 차군이 손사래 친다.

처음 보는 낮선 사내는 자기를 찍어달라며 얼굴을 들이댄다.

이럴 때는 집어넣는 게 상책이다. 싫어하는 자가 있으면 통사정해도 찍지 않는다.

 

눈물을 거둔 황씨가 막걸리를 따라주었는데, “이 술을 어쩔까?” 망설여졌다.

일 할 것인가? 퍼질 것인가? 이 술 한 잔이 하루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어울려 마시다보면 코로나 감염을 걱정하지만,

어쩌면 접근하기 싫어하는 부랑자 자리가 안전지대인지도 모른다.

한 참을 망설였지만, 그만 일어섰다.

 

동자희망나눔센터로 자리를 옮겨 동자동 방역 대책을 알아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단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그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맨날 뒷북 치는 행정인걸 어쩌랴!

 

힘없이 돌아오는 발길에 황춘화씨 노래가 겹쳐진다.

목숨보다 더 귀한 사랑이건만, 창살 없는 감옥인가 만날 길 없네"

 

 

사진, / 조문호

 

 

 

징그러운 코로나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 비정한 세상에 함께 어울리는 것을 거부하며 방구석으로 몰아넣는다.

세상사는 방법과 질서를 하나하나 바꾼다.

 

쪽방 사람들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들 꼼짝 하지 않으니, 사람만나기가 어렵다.

노숙인은 한결같지만,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게 낫다.

 

날씨까지 정신 나갔는지, 한 여름을 방불케 한다.

4층은 달구어진 옥상 열기에 찜질방이 되어버렸다.

다들 팬티만 입고 살아 벌써부터 십구금이다.

 

옆 방 사는 김씨는 교도소에서 지내는 게 더 편하겠단다.

차라리 코로나에 걸려 죽고 싶지만,

사람대접 한 번 받아보지 못한 게 억울해 죽을 수도 없단다.

 

사람들 발길이 줄어든 공원도 낯설기 그지없다.

거리는 담배 피우러 나온 회사원만 서성일 뿐, 한적하다.

골목 구석에서 외로움 달래는 자의 술잔만 허허롭다.

 

이제, 무료급식과 모든 지원이 줄어들어 살기도 힘들어졌다.

슈퍼마켓은 문 열었지만, 빈민들을 위한 푸드마켓은 문 닫은 지 몇 달째다.

아랫 공원은 거지들 들락거리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가 버렸다.

 

코로나 핑계로 줄이고 생략해, 외롭고 배고파 못 살겠다.

 

코로나가 사람들 정신 차리게 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여지 것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었으나, 코로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또 하나 신통한 것은 빈민들 줄 세우는 일도 사라졌다.

 

몇 년동안 길들이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나팔 불었지만 쇠귀에 경 읽기더니,

코로나가 ‘서울역쪽방상담소’ 직원들 버르장머리를 고쳐 버렸다.

지금처럼 하면 될 걸, 왜 그렇게 고집 부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 역시 쪽방에만 처박혀 있으니 할 일이 없어졌다.

별 일 없는 동자동보다 녹번동 정영신씨 집에서 개길 때가 더 많아졌다.

올 여름엔 정선에서 무너지기 직전인 집이나 수리할 작정이다.

 

녹번동에서 편한 밥 얻어먹자니, 사모님께 알랑방귀를 뀌어야 살아남는다.

청소나 설거지는 물론, 궂은 일은 모두 내 차지다.

식모 아니, 식부의 설음을 알랑가 모르겠다.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하다 그릇 깨는 일은 다 반사고,

너무 열심히 해, 할 때마다 팬티가 다 젖는다.

그보다 더 귀찮은 것은 담배 피우러 밖으로 들랑거리는 일이다.

 

누군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소리라지만,

길 잃은 사나이의 비애를 여인네들이 어찌 알겠는가?

 

 

사진, 글 / 조문호

 

부랑자는 하늘에서 날아 온 외계인인가?

 

육신 하나 달랑 남았지만, 기초생활 수급도 못 받는다,

부자도 다 받는 코로나 긴급재난기금도 못 받았다.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거나, 집에 갈 수 없어서다,

가족에게 버림받으면, 사회도 버려야 하는가?

 

약자 인권 유린이 알려지면 세상이 시끄럽지만,

노숙인은 길에서 죽어가도 아무렇지도 않다.

 

무슨 죄로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정부는 왜 노숙인 문제를 방치하는가?

 

지금이라도 전수조사에 들어가 노숙인 등록부터 실시하라.

돈이 가장 절실한 그들도 긴급재난기금을 지급하라.

 

사진, 글 / 조문호

 

세상에 아무 미련이 없다.

죽지 못해 연명할 뿐이다.

 

주린 배는 채워야 하지만, 이내 체념한다.

 

구걸한 막걸리로 허기를 메운다.

그 술에 종일 땅바닥을 헤맨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 광장에 눈부신 햇살이 비치면,

노숙자들 고단한 하루도 시작된다.

 

서울역 김씨는 부랑생활에 이골 났다.

 

오래전 사진 한 장에 거지가 사람으로 찍혔단다.

사진 놔둘 곳도 없지만, 옆 사람에게 자랑해댄다.

 

빵 한 조각 보다 사람대접을 받고 싶단다.

버림받고 살아 사람을 그리워한다.

 

세상은 거리 두라지만, 그들에겐 안 먹힌다.

마스크도 없이 하루 종일 어울린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아 전염병도 얼씬 못한다.

육신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 깊다.

 

따뜻한 말이 듣고싶다. 정에 굶주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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