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좁은 공간에서 티브이를 끼고 산다

세상을 내다보는 유일한 통로지만, 마약에 가까운 중독성이 있다.

요즘은 티브이가 온통 코로나 바이러스 겁주는 방송 뿐이라

쪽방 사람들은 방에서 꼼짝도 않는다. 말 잘 듣는 착한 백성들이다.



난, 티브이 중독성에 등 돌린 지 오래되었지만, 페북은 더 심했다.

가진 자들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티브이보다 더 상세히 보게되니 

사람 좋아하는 인간이 사람에 대한 혐오감이 생길 정도다.

오죽하면 사람 만나기가 싫어 핸드폰을 꺼 놓거나, 방에 갇혀 있을 때가 더 많겠는가?



지난 10일 녹번동에서 어울려 마신 후유증에 몸이 말이 아니다.

그 다음 날 소주 석 잔에 맛이 가 진땀까지 흘리며 빌빌거렸으나, 술과 원수지기는 싫다.

아껴 오래 먹어야겠다.

그 날처럼 온종일 어울려 코가 비틀어지게 마실 기회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겠는가?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으니, 죽어도 고다.



요즘은 아무 생각 없이 천정만 쳐다보는 시간이 제일 편하다.

예전엔 하루 종일 쪽방에 갇혀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도 동화되어 가는 것 같다. 아니 동화가 아나라 편했다.

방에서 담배를 피우던 딸딸이를 치던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잖은가? 

그러니 독신자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12일은 비가 부슬부슬 내려 또 술 생각이 났다.

술병이 나서 골골거리는 형편인데도, 정말 대책 없는 인간이다.

그렇지만 혼 술은 절대 안 마신다. 라면을 끓여 속이나 풀었다.

 


밖에는 날씨가 포근해, 마치 봄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동네를 돌아다녔으나, 술 마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술은 핑게일 뿐, 사람들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동자동은 마치 민방위 훈련하듯 조용했다.

할매의 고함소리도 술꾼들의 술주정도 들을 수 없었다.



전 날도 누군가를 기다리던 이남기씨만 만났을 뿐이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 혼자 누워있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고민이 있는지, 고독을 즐기는지,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동자동에서 아는 사람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지난 9일은 동자동에 사람이 없어 서울역으로 갔다.

토요일도 아닌데, 무슨 집회를 하는지 소란스러웠다.



문정권을 저주하는 문구로 뒤덮인 봉고차에서 흘러 나오는 확성기소린데,

엄청난 소음으로 주민들을 괴롭히는 이런 짓은 제재할 수 없는 것인가?



마스크를 쓰고 술은 어떻게 마실 것인지, 막걸리 가진 천씨가 약 올렸다.

‘한 잔 줄까? 말까?’ 술잔도 없잖아~



그런데, 서울역에도 노숙자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다들 ‘다시서기’에서 티브이나 보는 줄 알았는데,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다’는 텐트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나누어 주며, 예수 믿으라는 설교가 한 창인데,

예수님 찾으면 전염병이 얼씬도 안하는 갑다.

다들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설교를 들었다.

한 장뿐인 마스크는 걸레나 마찬가지라, 안 쓰는 게 낫다.



양지바른 곳에서 죽치는 몇몇 거사들이 있을 뿐, 서울역도 한산했다.



이제 곧 전염병이 물러나며 따뜻한 봄날이 찾아 올 것이다.

다들 방에서 나와 슬슬 몸이나 풀자.

동자동의 봄을 찾자.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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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점염병에 주눅 들어 갇혀 살지만 감옥살이는 이제 싫다.
기다리는 사람도 반기는 이도 없지만 쪽방에서 벗어나는 것이 맘 편하다.
불편한 몸이지만 서울역 주변을 돌아다니다 구경거리 있으면 구경하고
힘에 부치면 어디서나 눈 감으면 된다.




이젠 면역이 되었는지 피부가 무뎌졌는지 춥지도 않다.
모든 게 마음 하나 놓으면 편안해진다.
차라리 잠들어 저승 간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세상만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사가 아니더냐?




통행에 방해 된다 나무라지도 말고, 불쌍하다고 휠체어를 밀지도 마라.
어차피 혼자 떠돌 수밖에 없는 나그네 길 아무도 간섭마라.
꿈에라도 할미를 만나고 싶고, 날 버린 자식 손이라도 잡고 싶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이남기씨는 올해로 예순 아홉인데, 나보다 네 살 적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술을 좋아해도 점잖게 마신다는 것과 동자동에 들어온지가 20년이 넘은 고참 이란 것 정도다.




지난 2일 ‘새꿈어린이공원’에 나가보니, 공원은 한적했다. 날씨가 추워 다들 방콕하는 것 같았다.

잘 안 가는 다방에 들어갔는데, 그 곳은  ‘동자희망나눔센터’에 있는 찻집이다.

본래 목욕탕 자리를 서울시에서 매입해 쪽방주민 편의시실로 사용한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사무실과 회의실, 샤워시설을 비롯해 차도 파는데, 쪽방 주민이면 천원에 마실 수 있다.

주민들이 커피 뽑는 다방 마담 역활을 하지만, 싱겁 떨다간 바로 미투다.
난, 자판기 스타일이지만, 여기서도 옛날 다방커피 맛은 볼 수 없다.

괜히 신년이라 천원짜리 폼 한 번 잡아본 것이다.




“아지매~ 달달한 다방 커피 한 잔 말아주이소” 했더니, 대뜸 ‘라떼’면 되겠어요?라고 물어왔다.

라뗀지 로똔지도 모르면서 그냥 달라 했다.

커피 한잔 시켜놓고 그대 오기만 기다리니, 마침 이남기씨가 들어왔다.
이 친구는 커피 마시러 온 게 아니라 화장실 사용하러 왔는데, 차 한 잔 하라며 불러 앉힌 것이다.




콧물이 대롱대롱 매달려, 감기에 좋은 따뜻한 레몬차나 마셨으면 좋으련만, 좋아하지도 않는 커피를 시켰다.
기자근성이 슬슬 발동해, 이남기씨의 살아 온 인생사를 캐묻기 시작했다.



이남기씨는 전라도 나주에서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양친 밑에 태어나,
어렵사리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때부터 인생의 쓴 맛을 보기 시작했는데, 84년도에 무작정 상경했단다.




이발소에 들어가 머리나 감겨주다, 어쩌다 이발 기술을 배워 밥이나 얻어먹고 살았는데, 
그 곳에서 나와 공사판 노가다로 전전하다 목수 일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살이는 만만치 않았다. 하루 일당으로 간신히 살아가는 그에게 갑자기 불운이 닥친 것이다.
어느 날 공사판에서 일하다 떨어져 팔목이 부러졌다고 한다.

더 억울한 것은 사고로 보상받은 돈이 고작140만원이란다.
더 이상 일할 처지가 못되어, ‘희망여인숙’에 거주하다 동자동에 들어 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일찍부터 수급자로 간신히 입에 풀칠하고 살았는데, 초창기의 수급비란 쥐꼬리만 했다.

힘들게 사는 쪽방 살이의 유일한 낙은 술 뿐이었는데, 쪽방살이에 길들고, 술에 길들어 산지가 어언 20여년이 넘어버렸다.
빈민들 사는 게 다 비슷비슷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총각딱지를 못 떼었다는 것이다.
사내로 태어나 여인네 품속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하냐? 아니, 그건 인간으로 태어나 죄악에 가깝다.




조용조용 신세타령하던 이씨가 갑자기 정치이야기에서 돌변하기 시작했다.
고함을 지르며 얼마나 욕을 해대는지, 찻집에서 쫓겨 나와야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찔렀는데, 테러도 마다할 듯 분노했다.
인간적인 노무현 대통령까지 욕하는 걸 보니,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이 작용한 듯 싶었다.
보수정권에서야 기대하지도 않았겠지만,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나아질까 나름으로 혼신을 다한 것 같았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을 거쳐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까지 맞았으나, 빈민들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치하는 놈들은 다 똑같은 인간”이라며 정치에 대한 불신이 증오에 가깝도록 깊어진 것 같다.




쫓겨나와 공원으로 가니, 원종훈씨가 술판을 벌여놓았더라. 막걸리 한 잔에 분노를 다독이는 이남기씨가 안쓰러웠다.
분통 터트리게 된 구체적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으나, 다시 노발대발 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하기야! 이남기씨 삶에 비하면, 나는 잘 살았던 것이다.
좋은 부모 밑에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공부도 했고, 하고 싶은 것 하며 꼴리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정치나 세상에 대한 불만이 많아 씨팔 조팔하는데, 그야 오죽하겠나?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의원들께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정부 예산에서 눈곱만큼만 떼어내도 어렵게 사는 사람들 다 보살필 수 있다.
정치도 돈도 모두 사람 생존에 우선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새해부터 바람막이조차 없어 비닐 덮어쓰고 벌벌 떠는 홈리스가 거리에 늘렸다.
제발, 서민들 민생에 신경 좀 써주었으면 고맙겠다.

사진, 글 / 조문호















한 해가 저물어가는 동자동 풍경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한적한 공원에서 김영수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슴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어니언스의 ‘편지’였다.



얼마 전 아들을 떠나보낸 황춘화씨는 좋아하는 술도 마다한 채 공원을 서성거린다.
“아~ 재미없는 노래말고 신나는 노래 좀 해봐요”

노래 자체가 슬프기도 하지만, 황씨 취향에 영 맞지 않는 모양이다.



악보를 뒤적이던 김씨가 이번엔 ‘처녀 뱃사공’을 부른다.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그 노래는 좀 알겠는데, ‘목포의 눈물’ 같은 건 할 줄 몰라요?”
부르는 노래나 신청한 노래나 비슷한 노래인데, 김씨는 수준타령한다.




하닐없이 공원을 돌아다니던 원용희씨가 비시시 웃는다.
한 해를 떠나보내는 송가 치고는 쓸쓸한 풍경이다.




“이건 예고편이고, 내일 경자양 오마 재미있게 한 번 놀아보자고..“



사진, 글 / 조문호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죽어 간 홈리스 추모제가 지난 22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렸다.



거리에서 쪽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두지 않았다.

뒤늦게 열린 추모제에 300여명의 추모객들이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2019 홈리스 추모제’는 '홈리스행동'을 비롯한 40개 사회단체가 주축이 된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에서 마련했다.

매년 동짓 날,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이 추모제는 올해로 열 아홉번째다.



현수막에는 “거리와 시설, 쪽방, 고시원 등의 열악한 거처에서 삶을 마감한 홈리스를 기억 한다”는 글이 적혔고,

사진도 없이 이름만 적힌 166명의 홈리스 영정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거처도 없이 떠도는 홈리스가 영정사진을 어떻게 가질 수 있으며, 있어도 어디다 보관하겠는가?



추모제가 열리는 중에도 서울역 주변 곳곳에 홈리스들이 떨고 있었다.

말로만 민생복지, 민생복지 나발 불지, 다들 마음은 콩 밭에 가 있다.



올해 숨을 거둔 홈리스 사망자 숫자도 사회 활동가들이 확인한 것으로, 정부는 사망자 전수조사에 손을 놓았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2005년 서울에서만 300명, 2009년엔 350명이 사망했단다.

아마 연고자 없는 홈리스가 매년 300명 이상 운명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추모제가 열리기 전에는 서울역 주변 홈리스들에게 동지팥죽을 나누어 주었다.

다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죽으로 허기를 달래며, 오랜 추억에 젖었다.

동짓날만 되면 팥죽 먹으러 서울역으로 온다는 노숙자도 있었다.



추모제는 춤꾼 이삼헌씨의 위령무 공연으로 시작되었다.

떨어지는 꽃잎이 흩뿌려진 그들의 넋인 냥 처연했다.



위령무 공연이 끝난 후, 동료 홈리스를 떠나보낸 친구들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홍난이씨는 고 정금안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정씨는 남편 폭력에 견디지 못해 서울에 도망쳐 와 노숙생활을 했단다.

장애가 있으나 빈 병이나 폐지를 주워 모아 어렵게 살면서도

홍씨에게 라면이나 담배를 사주는 등 인정 많은 언니라고 추억했다.




이름대신 ‘행복’이라 밝힌 한 남자는 고시원에서 숨진 고 나승욱씨를 추억했다.

2년 전 나씨와 홈리스 야학에서 만나 같이 컴퓨터도 배우고 도배학원도 다니며 동거 동락한 추억을 떠 올렸다.

숨진 후 오랫동안 고시원 방에 방치됐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했다.




고 연영철씨의 상주를 맡았던 동자동 쪽방촌 송범석씨는 ‘빈민들이 사람답게 살 권리’를 호소했다.

대부분의 쪽방 계단이 좁고 가파른 데다 조명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에 사고를 당했는데,

돈도 없어 제 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노래 교실 수강생들이 나와 ‘떠나가는 배’를 불렀고,

가수 정태춘씨는 홈리스 사망자를 위해 ‘서울역 이씨’를 불렀다.

이 노래는 정태춘씨가 2005년 홈리스 추모제 참석을 위해 급히 지은 자작시인데,

그 뒤 곡을 붙여 ‘서울역 이씨’로 앨범에 담았다고 한다.



정태춘의 ‘서울역 이씨’


서울역 신관

유리 건물 아래 바람 메마른데

그 계단 아래 차가운 돌 벤취 위

종일 뒤척이다

저 고속전철을 타고

천국으로 떠나간다.

이름도 없는 몸뚱이를 거기에다 두고

예약도 티켓도 한 장 없이

떠날 수 있구나

마지막 객차 빈자리에 깊이 파묻혀

어느 봄날 누군가의 빗자루에 쓸려

소문도 없이 사라져 주듯이



모던한 투명 빌딩

현관 앞의 바람, 살을 에이는데

지하철 어둔 돌계단 구석에서

종일 뒤척이다

저 고속 전철을 타고

천국으로 떠나간다.

바코드도 없는 몸뚱이를

거기에다 두고

햇살 빛나는 철로

미끄러져 빠져 나간다.

통곡 같은 기적소리도 없이

다만 조용히

어느 봄날 따사로운 햇살에 눈처럼

그 눈물처럼 사라져 주듯이

소문도 없이 사라져 주듯이





정태춘씨는 노래에 앞서 “이 비만과 빈곤의 어이없는 공존. 저 모든 거짓과 환상과 그 역겨운 문명과 시스템,

사회로부터 버려져 쓸쓸히 죽어간 모든 이를 추모 한다”고 말했다.



이어 추도사를 올린 홍난이, 행복, 송범석씨가 함께 나와 권리선언을 낭독했다.

“홈리스로 살게 하는 조건에 눈 감는 세상, 홈리스의 존재를 부정하는 세상,

자립과 자활만을 강요하는 세상, 부실하고 불충분한 지원만을 내세우는 세상이야말로

홈리스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원인임을 우리는 안다”며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권리와 추모와 애도를 누릴 권리, 집다운 집에 살 권리,

제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몇 년 전 홈리스 당사자가 한 말을 한 번 들어보라.


“우리에게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그 질문은 네가 잘못 살아 거리 잠을 자게 된 거 아니냐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는 개인의 불행에 대한 사회의 책임이 빠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서 요구하는 것은 최소한의 잠자리와 일자리, 치료받을 권리입니다.

그것은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주어져야 하는 당연한 권리입니다“



추모제가 끝난 후, 166명의 사진없는 영정이 새겨진 플랜카드를 든 추모객들이

서울역 주변과 지하철 2번 출구부터 13번 출구까지 행진했다.

행진하는 중에도 서울역 주변은 노숙자들이 여기 저기 웅크려 떨고 있었다.



죽음을 방관하는 이 야만의 세상에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국민들이 뽑은 국회의원들은 밥그릇 싸움에 눈이 뒤집혔고.

복지부동의 공무원들은 돈 생기지 않는 일은 알아도 모른 채한다.

가진 자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 약자를 짓밟는데, 가난한 빈민들에게 세계 경제 11위가 무슨 소용이냐?



돈이 남아 돌아 쓸데없는 곳에 낭비되는 돈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만분의 일이라도 빈민 복지에 사용하면 어디가 덧나냐?

토목공사를 벌이거나 비싼 무기나 수입해야 떨어지는 게 있지,

남는 게 없는 빈민들 복지에 왜 신경 쓰겠나? 


 

“에이~ 천벌 받을 놈들, 하늘이 무섭지 않나”

제발, 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죽을 수 있도록 하라.


사진, 글 / 조문호











































































































이삼헌씨가 위령무를 추고 있다.


연고 없이 세상 떠난 이를 추모하는 ‘홈리스 추모제’가 지난 동짓 날, 서울역광장에서 열렸다.


동자동 조인형씨가 추모제단에 국화를 헌화하고 있다.

정부에서 사망자 전수조사에 손을 놓고 있어, 빈곤 활동가들이 집계한 올 해 사망자만 166명이란다.
실제론 서울에서만 300명 이상이 죽어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추모제단


동자동 쪽방에 거주한 열여덟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정사진도 남기지 못한 채, 이름만 남겼다.


추모객들

거리에서 죽은 노숙자는 시신이라도 제 때 수습되었지만,
방안에서 외롭게 죽어 간 사람은 시신 섞는 악취로 알게 되었다.


동자동 송병섭씨가 연영철씨에 대한 추모글을 읽고 있다.

동자동에선 가파른 계단에 굴러 떨어져 죽은 두 사람 외에는 대부분 술 때문에 죽었다.

독약인줄 알지만 이승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동자동 조인형씨가 잘가라고 손을 흔들고 있다.

서둘러 떠난 그들을 기억하러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추모제에 갔다.
무대 앞 현수막엔 올해 죽은 홈리스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꼼꼼이 살펴보니, 아는 분도 여럿 있었다.
더구나 연영철씨는 옆방에 살던 후배가 아닌가.
4층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쳐 전신이 마비되었는데,
돈이 없어 수술시기를 놓쳐 병원에서 고생만하다 올 여름 세상을 떠났다.


연영철씨가 입원한 중앙병원에 병문안 간 정선덕씨 2018. 4

병문안은 여러차례 갔지만, 서둘러 화장해 장례를 지켜보지 못했다.
살아 생전 더 따뜻하게 손잡아 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방문 앞에 앉은 연영철씨. 2017. 9

요리사 출신이라며, 언제가 맛있는 음식 한 번 만들어 대접하겠다는 말을 여려차례 했지만,

재료도 주방도 없는 쪽방에서 뭘 한단 말인가?


방에서 식사하는 연영철씨. 2018, 7

유달리 연예인들과 미녀들을 좋아해, 비좁은 방안에는 캘린더의 미녀사진을 덕지덕지 붙여 놓았다.
이제 부질없는 미련일랑 다 버리고 홀연히 먼길 떠나셨네요.


사진가 노은향씨가 보낸 내의를 전달받는 연영철씨. 2017.12


당신이 좋아하는 가수 정태춘씨가 불러 준 ‘서울역 이씨’는 잘 들었는가요?
부디 모든 것 잊고 편히 잠드소서!


가수 정태춘씨가 홈리스추모제에서 '서울역 이씨'를 부르고 있다.


그 옆에는 지난 달 심장마비로 죽은 정용성씨의 영정사진도 있었다.
착하기 그지없는 녀석인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어미는 어쩌라고 혼자 가버렸는가?



처음 만났을 땐, 사진만 찍으면 돈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몇 번은 주었으나, 사진인들이 길들인 버릇 같았다.
그 이후부터 있어도 못 준다고 했더니, 더 이상 손 내밀지 않았다.


방안에 앉은 정용성씨. 2018, 9

항상 말은 없지만 잔정이 많아 만나기만 하면 배시시 웃었다.
술자리를 같이 하면 안주도 먹으라며 사과조각을 쥐어주기도 했다.
어머니와 술친구가 되어 어지간히 술에 쩔어 살았는데,
옥탑방으로 오르다 수 없이 넘어져 상처 아물 날이 없었다.


아래 층에 사는 정재헌씨가 살아 온 이야기를 나누다 설움에 북받쳐 울고 있다.

좌로부터 황춘화. 정용성, 정재헌씨 2018, 10


그런데 이 녀석은 나이가 아들 햇님이 또래인데, 날더러 늘상 행님이라 부른다.
하기야! 어미를 옆에 두고, 아버지라 부를 순 없지 않은가?


정용성씨 어머니 황춘화씨, 2019, 5


젊은 나이에 장가는 커녕 세상 맛도 모르고 갔으니, 더 슬픈 것이다.
갑작스럽게 죽어 장례를 치루고서야 알게 되었다.
빈소에서 아들 죽음이 실감나지 않았는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뒤늦게 만나서는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바가지로 쏟아냈다.


2017년 11월 동자동 추석잔치에서,,,

운다고 떠난 자식이 돌아 올 수 있겠냐마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터지겠는가?
죽은 자식보다 황춘화씨가 더 걱정이었다.
이제 옥탑방에서 살지 말고 낮은 층의 작은 방으로 옮기라고 부탁도 했다.




그런데, 죽은지도 몰랐던 전경희씨의 영정사진도 있었다.
한 동안 보이지 않아 잊었는데, 올 2월 심장마비로 죽었단다.
2년 전 대부도의 ‘아름다운 동행“에 함께 한 적도 있었다.
식당 벽에 붙어 있는 술 광고 속의 미녀를 보며 “이쁜 여자 보니 춘정이 동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젊을 때 바람께나 피웠겠다“며 꼬리웃음 치던 모습이 눈에 선한다.


대부도 기념관에서 김정심씨와 기념사진 찍는 전경희씨, 2017.11

그 외 신기식, 이삼석, 최상섭씨를 제외하고는 동자동 살았지만, 모두 낯설더라.
평소 바깥 출입은 않고 방안에서만 살았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좌우지간, 모르는 분을 포함하여 비명에 간 166분의 이름 앞에 고개 숙였다.


홈리스 야학 합창단이 '떠나가는 배'를 부르고 있다.


부디 아무런 원망말고, 그냥 팔자가 사나워 먼저 떠난다고 여기세요.

이 더러운 세상, 더 살아 무슨 영광을 보겠습니까?

고생스런 이승을 마무리하였으니, 저승에선 잘 산다는 믿음 하나로 위안 삼으시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문호합장



추모객들이 서울역 주변을 행진하고 있다.










































2019 홈리스추모제가 오는 22일(동지) 서울역 광장에서 열려...



16일 낮 2시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행동 등 41개 단체가 ‘2019 홈리스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여인숙에서, 대합실에서…연고없이 떠난 166명의 영혼을 기리다


1959년생 신아무개씨는 지난 10월3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여인숙에서 숨졌다.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그가 갑작스럽게 숨진 이유도, 연고자도 알 수 없었다. 동료는 있으나 가족이 없는 그의 죽음은 ‘무연고 죽음’으로 분류되었다. 1959년생 윤아무개씨도 지난달 20일 노량진역 대합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마찬가지로 숨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가족이 있으나 그의 주검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윤씨 역시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났다.


홈리스행동 “홈리스에게 적절한 주거 환경 마련해야”


16일 낮 2시 서울역 광장엔 이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한 고운 레드카펫이 깔렸다. 카펫 위엔 166개의 액자가 가지런히 놓였다. “1957.12.3~2019.3.4 고 김종용님”, “1982.?.?~2019.4.6 고 신애란님”. 액자 속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서울의 거리와 쪽방 등에서 연고 없이 숨진 166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세상을 떠난 날짜와 장소가 적혀 있었다. 살아서 꽃길을 걷지 못했던 이들의 영전엔 166송이의 장미가 놓였다. 2019 홈리스(노숙인) 추모주간을 맞아 설치된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다.


홈리스행동 등 41개 시민단체가 꾸린 ‘2019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은 이날 낮 2시 서울역 광장에서 ‘2019 홈리스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한해 열악한 거처에서 삶을 마감한 이들을 추모하고 노숙인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주최쪽은 정부가 홈리스에게 적절한 주거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언에 나선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지난 10월에 발표된 정부 대책에는 주거취약계층에게 임대주택 2천호를 제공하겠다고 나와 있다. 이는 매년 정부가 책정해온 숫자다”라며 “2018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비주택 가구가 45만 가구인데 2천호 공급이 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공급계획이라 할 수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6일 서울역 광장에 설치된 ‘홈리스 기억의 계단’


지난 10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중구 양동지구 재개발 사업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양동지구엔 남대문 쪽방촌이 몰려 있다. 이 활동가는 “서울시와 중구청의 양동재개발구역 계획을 보면 쪽방 주민을 위한 계획은 단 한 글자도 없다. 공원이 세워지든 건축물이 세워지든 주민 못 들어가는 건 명약관화다”라고 짚었다. 이어 그는 “쪽방 주민들이 쫓겨나는 개발이 아니라 다시 주거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양동 쪽방 개발 거주민에 대한 대책 마련하라”나 “양동지역 정비계획보다 쪽방주민 주거대책 우선이다”는 손팻말을 들기도 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거리와 시설, 쪽방, 고시원 등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이들을 추모하는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계단에 마련돼 무연고 사망자 등 이름이 적힌

액자 앞에 장미꽃이 놓여 있다. 41개 시민사회 단체의 연대체인 ‘2019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은

이날부터 22일까지 ‘홈리스 추모주간’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무연고자 166명 떠나는 길 레드카펫과 장미꽃으로 추모 


기자회견에선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한 ‘명의도용 범죄’ 피해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개정된 전자금융거래법에선 통장이나 카드를 대여해준 이에 대해서도 예외없이 징역형이나 벌금을 매긴다. 명의범죄 피해자들을 가해자 공범으로만 취급하는 국가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며 “경제적으로 궁박하고 사회경험이 부족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똑같은 책임을 묻는 것은 실질적 평등이 아니다. 실제로 이익을 보거나 소득을 얻지 않은 사람이 모든 채무 부담을 지고 평생을 국가 빚에 신음하는 결과 또한 정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올해로 열아홉 해를 맞은 홈리스추모제는 22일 저녁 6시 40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다. 추모제에선 추모발언과 노래공연, 홈리스 권리선언 등의 행사가 진행된다.


한겨레 / 강재구 기자 j9@hani.co.kr


 



추위 따라 찾아 온 자선행사가 얼어붙은 동자동을 녹이고 있다.
뜸 했던 동자동 나눔 행사가 날씨 탓인지 연이어 열린 것이다.
작년에 이어 찾아 온 ‘KT임직원’들의 방한복 나눔과 ‘삼성’ 후원으로 ‘사랑의 열매’에서 주는 식료품 나눔이다.




지난 11월26일은 KT에서 방한복 나누어준다는 벽보가 나붙었다.
거지도 나름의 패션이 있어, 옷이라고 아무거나 입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옷을 줄줄이 걸어놓고, 순서대로 하나씩 골라 입게 했다.




매번 그렇지만, 여기 저기 살피고 사진 찍느라 꼬리 줄에 서기 마련인데, 작년에는 입을만한 옷이 없어 허탕 쳤다.
올해도 기대하지는 않았으나, 운이 좋은지 검은색 롱 패딩이 여러 개 남아 있었다.
눈 짐작으로 하나 골라 입었는데, 좀 무겁긴 해도 담요처럼 따뜻하며 부티까지 났다.




동자동의 많은 사내들이 같은 옷을 골라 입었는데, 똑같은 디자인의 헌옷이 모두 어디서 나왔을까?
옷 안쪽에 이름 적은 조그만 쪽지를 붙여놓은 걸 보니, 임직원에게 나누어 준 옷을 다시 수거한 것 같았다.




내가 받은 옷 주머니에는 젖어 말라붙은 휴지뭉치와 함께 오백원짜리 동전 하나가 들어 있었다.
주머니를 제대로 뒤지지 않고 넘긴 것 같으나, 보너스로 생각하고 잘 썼다.




지난 4일은 식료품 나누어 준다는 벽보가 나붙었다
이왕 줄 것이면 주민 숫자대로 주면 좋으련만 800개 선착순이라 적혀있었다.
그 부족한 200여개 때문에 또 긴 줄을 서야하지 않는가?
배분하는 쪽방상담소 담당자 머리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나도 모르겠다.




그 날은 날씨가 추웠지만, 회원증을 바코드로 바꾸어 시간은 많이 단축되었다.
선물상자를 하나 받아 풀어보니, 쌀과 라면, 김, 통조림 등 꼭 필요한 식료품만 들어 있었다,




그리고 지난 2일에는 동사무소에서 떡값 받아 가라는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5만원이 들었는데, 명절도 아닌데 무슨 떡값일까?.
주더라도 수급비 통장에 넣어주면 될텐데,..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피차 번거롭지 않은가.




쪽방 촌에 신경 써 주는 것은 고맙기 그지없지만, 쪽방상담소의 줄세우는 관행은 여전했다.

동자동 밖의 다른 빈민들도 이처럼 줄 세워 도움 주는지 모르겠다.




옷 받는 날 서울역 지하도는 여전히 추위에 떠는 노숙자들이 많았다. 
쪽방이 없어 방한복이 더 절실한 그들은 왜 도움 받을 수 없을까?
거지도 쪽방 있는 거지와 쪽방 없는 거지를 차별 하네.




아무튼, 올 겨울 얼어 죽지 않도록 도와주어 고맙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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