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위가 꼬리 내려 가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 밖에 나가 살랑거리기 좋지만, 쪽방은 아직 덮다.
그래서 동자동 입구나 공원에서 자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여름 철 동자동 주변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쪽방주민들이다.

사방이 뚫려 시원한 곳 놔두고 성냥갑 같은 방에 갇혀 땀 찔찔 흘릴 필요 있겠는가?


 

공원에 나갔더니 최씨가 개를 안고 나왔더라.

피치는 최씨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고 새끼다.

그 좁은 방에 털숭이 끼고 자느라 땀띠 깨나 생겼을 거다.


 

내가 동자동에 주민 신고식 한지가 오늘로 딱 삼년 되었다.

기념할 소식이라도 있나 싶어 똥개 똥 찾듯 동내를 살피고 다녔다.

사람 죽어 나간 자리 다른 사람이 채웠을 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바뀌지 않듯, 다른 사람도 바뀌지 않았다.

완장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완장 좋아하고,

칼자루 쥔 서울역쪽방상담소나리들 막힌 것도 여전하더라.

술에 중독된 사람들은 사는 것도 개판이었다.


 

그동안 새 삶을 찾아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구급차에 실려 죽어가는 사람만 숱하게 보았다.

동자동은 강민시인의 시처럼 이승의 간이역이고, ‘신판 고려장이다.


 

잘 못된 것을 아무리 바꾸자고 방방 그려도 쇠귀에 경 일기다.

좆통수 불어도 동자동은 돌아가고 세상도 돌아간다는 것인지...

사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다 죽는 거지 별 것 있겠나?



아직 꿈을 못 깨 돈 돈하는 사람이 있는데, 죽고 나면 말짱 도루묵이다.

버티고 사는 날 까지는 재미있게 살자. 잘못된 것은 싸워서라도 편하게 만들자.

행복은 권력자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몇일 후 동자동 사랑방의 추석 잔치에서 신명나게 한 판 놀자.


노세 노세 늙어 놀아, 죽고 나면 못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차면 기우나니라

 

사진, / 조문호















 





지난 20일 정오 무렵, 동자동에서 짜장면 잔치가 벌어졌다.
‘한국새생명복지재단’과 ‘모리아교회’가 마련한 “사랑의 짜장면 나눔 잔치“다.
쪽방촌이라 간간히 음식 나누는 자리가 있긴하지만,
짜장면은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해, 군침 흐르는 음식이 아니던가.




빈궁한 어린 시절, 중국집에서 먹던 짜장면 맛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짜장면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지만, 오랜 세월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게 짜장면이다.
짜장면 나누어주는 ‘모리아교회’로 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배식하는 순서가 잘 못 되었더라.
금방 솥에서 나온 면을 짜장면에 비벼 먹으면 얼마나 맛있겠는가?
오는 사람 순서대로 받아가 먹게 하면 면도 굳지 않고 일하는 사람도 편할 텐데,

한꺼번에 모아 주니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얻어먹는 주민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 좀 섭섭했는데,
맛이야 어떻던 획일화, 광고 화에 신경 쓰는 것 같아 심기가 꼬였다.




짜장면을 받아보니, 이미 면이 뭉쳐져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면발에 군침 흘리며 들어 왔는데, 이렇게 불려 먹여야 속이 시원한가?
덩어리 진 면을 한 올 한 올 풀어 비볐지만, 역시 짜장면은 짜장면 이었다.




먹는 시간이 오 분도 걸리지 않아 그런지, 먹은 사람은 금세 나가 버렸다.
맛은 있어도, 한 그릇 더 달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짜장면을 그리워한 것은 맛도 맛이지만, 아득한 향수 때문일 것이다.




자리 비어가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목사께서 한마디 하신다.
“한 사람도 잘 먹었다는 사람 없고 고맙다는 사람 없네”
사실 그렇기야 하지만, 목사가 수양이 덜되었거나 동자동 사정을 잘 몰라 하는 말이다.




설사 그런 생각이 들어도 목회자가 뱉을 말은 아니다.
“고맙다는 인사 받으러 베푸는 것은 아니 잖은가?”
그리고 주민들을 줄 세워 길들여 놓은 자업자득이다.



여지 것 수시로 줄 세워 나눠주었으니, 당연히 주는 것으로 아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자선을 내 세운 활동이 스스로 일어나는 자립심을 잃게하고 안주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사육하며 길들인다”고 악을 쓰며 발발거리지 않았던가.




다들 짜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교회 봉사 활동하는 주민들이 공원이나 사람 모인 장소까지 배달했으니,
동자동 사람은 물론 노숙자까지 짜장면 맛은 다 보았을 것이다.
‘은혜짜장선교단’이란 단체에서 짜장면을 배식하며 선교 할동을 하는 모양인데,
배식 시간만 지체되지 않았다면 짜장면 맛은 어디 내 놓아도 손색없었다.



짜장면하면 오래 전 중국집 주인이 손님에게 퍼부었다는 욕이 먼저 떠오른다.
70년대 중반 쯤, 부산에 살던 친구 신윤택씨로 부터 들은 이야기다.
얼마나 실감나고 재미있게 중국집 주인 말을 옮기는지,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배꼽을 잡았다.




그 무렵에는 중국집 골방에서 술 먹으며 연애걸 때가 많았단다.
다들 여관에 갈 처지가 못 되니 중국집에서 음식 시켜먹다 말고

감정을 주체 못해 일칠 때가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문만 걸어놓고 정염을 불태웠으니, 낡은 창호 틈으로 어찌 소리가 들리지 않겠는가?




그걸 들으며 중국집 주인이 투덜거리며 욕을 하더라는 것이다.



“나뿌노므 새끼들~
짜자이에 가시들어 아야 아야 해,
보리차 달라 조지씻고,
시보루달라 보지닦아
나뿌노므 새끼들~“




나쁜 놈이 아니라, 죽어도 좋은 거지 뭐~


사진, 글 / 조문호



마지막 만찬이냐?

잘 처 먹었으면 치워야 할 것 아니냐?

나뿌노므 새끼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주민들 이주대책에 대한 상담을 하고 있네요.


쪽방촌이 몰려있는 동자동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떠날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 한 잔 술로 시름 달랜다.



저승사자처럼 달려오는 구급차에 긴 한숨 쓸어내린다.




그들은 꿈도 희망도 버린지 오래다.
희망이란 한낱 말 장난으로 여긴다.



저주받은 삶은 죽음이 축복일 뿐이다.




죽는 것이 편하지만, 그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죽지 못해 사는 것과 살기 위해 죽지 못하는 것은 뭐가 다른가?




틈틈이 ‘용산소방서’에서 나와 보살펴준다.
죽는 사람 데려가는 일만 아니라 뜨거운 공원을 시원하게 적셔 준다.
맥 놓은 빈민들 혈압도 재 준다.




그러나 찜통 같은 쪽방은 방치한다.
움직이면 살고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죽으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더러운 꼴도 안 보겠지만,
이를 부득부득 갈며 살아야 한다.




나쁜 놈들이 잘사는 빈부의 악순환은 끝내야하기 때문이다.

사진, 글 / 조문호




















김상현씨로부터 말복 날 삼계탕 한 그릇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해방촌고기방앗간의 이태주씨가 자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해방촌은 같은 용산구라 가깝기는 하지만, 신세진 적이 많아 송구스러웠다.


 

그리고 정의당 동물복지위원회에 소속된 아들이 복날에 채식해요라는 캠페인을 벌이는 터라,

그 날 하루만큼은 육식을 금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사람간의 정이 더 중요한 세상이라, 조햇님이가 벌이는 캠페인에 따르지 못했다.


 

약속한 일요일 정오 무렵, 해방촌에 갔으나 버스노선을 몰라 좀 헤맸다.

해방촌고기방앗간에 들어가니, 이태주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상차림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오기로 한 모양이었다.


 

씨름 선수처럼 덩치 좋은 젊은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눈에 익은 친구도 여럿 있었다.

가까운 친구거나 후배들인 모양인데, 끈끈한 정이 느껴졌다.


 

그동안 해방촌고기방앗간을 운영하는 이태주씨를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참 정이 많은 친구였다. 요즘 이런 사람 보기 힘들다.

다들 살기 바빠 그런지 남을 배려하기보다 제 식구 챙기기 바쁘다.

더구나 손님 많은 말복에 장사할 생각은 않고

가까운 사람 불러 모아 정 나눈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촌놈이 오랜만에 목에 때 벗길 작정으로 엊저녁까지 굶은 터라

김상현씨도 오기 전에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간만에 살려고 먹는다는 생각에서 해방되었다.

이 집에 올 때마다 배가 터지도록 먹는데, 그 날은 삼계탕에다 콩국물도 내 놓았다.

다들 반가운 사람들과 어울려 맛있게 먹었다.

 

    

식사가 끝난 후 바쁜 사람들은 먼저 일어나고,

김상현, 김삼환씨 등 몇 분만 남았는데, 뒤 이어 맥주와 케익이 나왔다.

난 허리가 아파 한 달 가까이 밀밭에도 못 가보았지만,

통풍에는 맥주가 원수지간이라 아이스커피만 쫄쫄 빨았다.



그런데 이태주씨가 이름도 모르는 귀한 술을 한 병 가져온 것이다.

맛만 본다며 한 잔 받았는데, 일단 향이 기가 막혔다.

다들 단숨에 들이켰으나, 몇 차례 나누어 마시며 역시를 연발했다.

술의 향도 향이지만, 취기가 퍼지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하기야! 촌놈이 즐겨 마시는 소주에 어찌 비길 수 있겠나.

무엇이던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니 다들 돈 벌려고 난리 치는 것 아닌가.


    

단 한 잔의 술과 한 모금의 연기에 이렇게 마음이 넉넉해지다니..

김상현씨가 들려주는 정감 있는 음악에 푹 빠져, 도저히 행복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싶었다.


 

주책스럽게 눈물까지 흐르기 시작했다.

늘 가까이 있는 행복도 모르고 산 후회였는지도 모른다.


 

한 잔의 술이 자극했겠지만, 마음을 휘어 잡은 것은 사람 사는 정이었다.

한마디로 이태주씨의 인간미에 감동 먹은 것이다.


 

,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배려는커녕, 늘 벌집 쑤셔 놓듯 일만 벌이고 다니지 않았던가. 

여지 것 잘못 살아 온 업으로 그러지만, 자책이야 왜 없겠는가.


 

혼자 감정에 빠져 청승을 떨고 앉았는데 뒤늦게 선비 내 가족이 왔다.

음악을 배우는 선비양이 김상현씨에게 한 수 배울 작정인 것 같았다.

더구나 음악 경연이 한 달 후에 있다며 노래 한 곡을 불렀는데, 제법이었.


 

몸집만큼 성량도 풍부하고 가창력도 뛰어났다.

정확한 발성 등 시정할 점을 김상현씨가 지적해 주었는데, 일단 음악적 끼가 보였다.

머지않아 만나보기 어렵겠다는 농담까지 했다.


 

늙은이는 눈치껏 빠져 줘야 하는데, 너무 오래 퍼져 있었다.

더구나 다섯 시에 이준기씨를 만나기로 하지 않았는가.

시간이 늦어 서두르니, 이태주씨가 동자동 친구들 술 한 잔 받아 주라며 용돈까지 쥐어주었다.

너무 황송했지만, 고마운 뜻이라 받아들였다.



늦을세라 택시까지 타고 갔는데, 이준기씨가 먼저 나와 있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일은 무슨 일요? 복날 행님하고 술 한 잔 할라고 불렀지요

의리의 사나이로 통하는 준기씨는 절대 술을 얻어먹지 않는다.

종종 남에게 술값까지 쥐어주는 인정 많은 사나이다.



 그날도 잘 아는 사람이 갑자기 죽어, 술이 한 잔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내가 모처럼 술 한 잔 살려고 했으나 한사코 손사래 쳤다.

행님! 와 이라요. 급수로 치마 내가 행님보다 한 급 위가 아인기요.”

다리가 불구라 장애등급 수급자란 말인데, 정말 못 말리는 친구다.

그 날도 술자리를 기웃거리는 친구에게 오천원을 손에 쥐어 주었다.



다음에 중국집에서 내가 한 턱 쏠 테니 가까운 사람들 연락하라고 했더니,

웃긴다는 듯 씩 웃었다. “행님 술이 목구멍에 넘어 가겠소?”

개 무시하는 것 같아 신사임당 지폐를 보여 주었더니, 내 돈은 위조지폐라며 감방가기 싫다는 것이다.



 좌우지간, 술 한 잔 사려면 이준기는 절대 부르면 안 된다.

이 야박한 세상에 사람이 너무 좋아도 탈이라니까...

이젠 받기보다 갚아야 할 때라,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동자동은 사람 냄새를 풀풀 풍겨 너무 좋다.

가진 자들은 욕심에 눈이 멀었지만, 없는 자들은 욕심을 버려 사람이 잘 보인다.

저승 대기소 같은 동자동이 그래서 좋은 거다.

 

사진, / 조문호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잘려고 자리에 누웠지만, 너무 더워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하루만도 공동화장실에서 물 뒤집어쓰기를 세 차례나 했다.
자정이 훨씬 지났건만,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밖에 나가보니, 술 취한 사람이 길 가운데 큰 대자로 뻗어있었다.
차 다니는 길이라 일으켜 세웠으나, 너무 취해 힘에 부쳤다.
지나갈 차가 기다렸지만, 도와 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핸들을 꺾어 피해가면 될 텐데, 기어이 버텼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 도움을 받아 인도로 옮겼으나,
좀 있으니 경찰차가 싸이렌을 울리며 달려왔다.
아마 승용차 운전자가 112에 신고한 모양이었다.
사정을 이야기해 돌려보냈지만, 참 야박한 세상이더라.




날씨가 더워 길가에 잠든 사람만 있고, 공원에는 사람이 없었다.
술자리가 어지럽게 널린 걸 보니, 조금 전 까지 여럿이 술을 마신 듯 했다.
어떻게, 자리가 파하면 치우고 가야지 몸만 빠져 나간단 말인가.
옆에 재활용품과 쓰레기 모우는 포대기도 있는데도...
몇 몇 몰지각한 인간들 때문에 동자동 빈민 전체가 욕먹는 것이다.



사실, 공원에서 술 마실 수 없으나, 불쌍해서 눈감아 주는 것 아닌가?
아무리 사회가 폐인을 만들었지만, 최소한의 질서는 지켜야 한다.
주변에서 젊은 놈들이 일은 안하고 술만 마신다며 손가락질해도,
사는 게 너무 안 서러워 감싸 안았던 것도 사실이다.
엉뚱한 사람 욕먹이지 않도록, 해 끼치면 강력하게 대처해야 겠다.




방에 돌아와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는데, 누가 방문을 두드렸다.
옆에 사는 정선덕씨가 콩국수 한 그릇을 말아 왔는데, 벌써 점심 때란다.
입맛이 없어 끼니를 거른 터라 고맙기 그지없었다.
가끔 구두까지 닦아주어 부담스러울 때가 많은데, 보답은 해야 할 것 같았다.
정선에서 일하느라 삼일 간이나 떠나 있어, 궁금한 게 많았다.




나가보니, 누군가 보따리를 오트바이에 실어 이사하는 것 같았다.
날씨가 더우니 공원도 한가했다.
‘용산소방서’에서 무더위 안전캠프를 차려 놓았으나, 파리만 날렸다.
하기야! 이처럼 더울 때는 꼼짝 않는 것이 상책이다.
숨까지 안 쉴 수있다면 더 좋겠지만...




생필품 나눠준다는 벽보가 붙어 있어 지하 쉼터로 찾아갔다.
더워 그런지 먹거리가 없어 그런지 줄 선 사람이 없었다.
마침, 옷으로 보이는 구호물품이 들어와 물건을 내리고 있었다.




배급품을 받아보니, 살충제와 모기향, 토시, 펜티, 쫄티 등 다섯 가지나 있었다.
당장 필요한 물건이 여럿 있어 요긴하게 쓸 것 같았다.
그런데, 고마운 상품들을 어디서 보냈는지, 알고나 받아야 할 것 아닌가?
주민들에 대한 배려이기 이전에 보낸 사람들의 성의를 생각해서다.




주민들도 지킬 것은 지키고, 협조할 건 해야 하지만,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도 주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좀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더 이상 물러 설 수 없는 사람들, 좀 어여삐 봐다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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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또 누군가 북망산천 가는구나 싶었다.
구급차가 ‘해 뜨는 집’ 앞에 세워, 누군지 걱정되었다.
그 집은 잘 아는 사람이 여럿 살기 때문이다.




쪽방촌에 사람 죽는 것이 다반사기는 하지만,
좋은 친구들이 가면 살아 남은 사람이 외롭다.
똑 같은 동네사람이라도 잘 아느냐 덜 아느냐에 따라 다르니,
인간이란 게 참 몰인정하고 간사하기 그지없다.




물어보니, 이제 막 팔순에 접어든 김씨 노인이란다.
이 분은 이웃과 소통 없이 혼 술을 즐기는 분이라 다들 잘 모른다.
옆 방의 김병택씨 이야기 들어보니, 고개부터 절래절래 흔들었다.
술 취해 넘어지는 “쿵”하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는 것이다.




이 날도 "쿵"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 의식이 없더라는 것이다.
소방서원들이 심페소생술 한다고 난리쳤으나, 힘들 것 같았다.
환자가 실려 간 후 방문을 열어보니, 기가 막혔다.
아마 사는 것을 포기한 것 같은데, 자살이나 마찬가지였다.



방에 음식이라고는 한 톨 없고, 빈 막걸리 병뿐이었다.
선풍기도 없는 방에서 술만 마셨으니 천하장사인들 견딜 수 있겠나?
빈 속에 술만 마신 걸 보니, 수면제 대신 술을 택한 것 같았다.
다들 목숨을 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나무라겠으나, 죽는 것이 편한지도 모른다.




팔십이면 살만큼 살았지만, 더 이상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나?
떠나고 나니 배웅 나온 이웃들도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나둘 사라졌다.
애달피 울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 가운데, 쓸쓸하게 막내린 것이다.
부디 저 세상에서라도 귀신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소리가 지겹다.
쪽방의 더운 바람을 돌리지만, 그것마저 꺼버리면 질식한다.
정선에서 허리를 다쳐 일주일째 더러 누워있다.
약을 먹어도 신통찮아 쉴 수밖에 없는데, 컴퓨터가 유일한 소식통이다.
라면과 미숫가루가 넉넉하니, 먹을 것은 걱정 없다.






가끔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는데,
정선덕씨가 심어 놓는 고추와 오이가 잘 자랐더라.
얼마나 정성을 들였으면, 징그럽게도 컸다.
옥상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동자동의 또 다른 풍경이다.
늘어놓은 빨래와 꾀죄죄한 옥탑 방에서 따뜻한 사람냄새가 난다.






어제 아침엔 꼼짝하지 않는 내가 걱정되었던지,
건물 관리인 정선덕씨가 죽을 끓여 내밀었다.
고맙지만, 죽을 좋아하지 않아 부담만 되었다.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 눈 감은 김에 스르르 갔으면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산목숨이다.





구부정한 폼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몸을 추스렸다.
친절한 은자씨가 방정맞게 앉아 아이스케키를 먹고 있었다.
천천히 아껴 먹으려고 핥아먹어, 한 입 얻어먹을 수도 없었다.
날씨가 더워 유난히 얼음과자가 그리운 날이다.






공원 쪽으로 올라가니 낮선 학생들이 우글거렸다.
용산고등학교 전기과 학생들이 동자동에 봉사활동 하러 나왔단다.
건물 주인들이 해 주지 않는 공사를 학생들이 하는 모양인데, 도움 될지 모르겠다.
작년 여름에는 내 방도 전기가 나가 곤욕을 치룬 적이 있지만,
대부분 돌출된 외부선이 아니라 건물내부의 오래된 전선이 문제다.
결국 천장을 뜯어내는 공사를 하였는데, 학생들로서는 역부족일 것이다.






원용희씨는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도시락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를 불러 세워 지난 번 야유회에서 찍은 사진을 전해주려니,
‘서울역쪽방상담소’ 전익형실장이 나를 좀 보잖다.
지난 달 주민간담회에 참석한 글을 보았다며, 그 지적에 대한 변명이었다.
그 날 준 일회용 곰탕은 답례가 아니라 있는 물건을 주었단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줄 세우는 짓을 그만둘 수 없냐고 다그쳤더니,
줄 세우지 않는 방법이 있으면 좀 가르쳐달라는 것이다.
‘푸드마켓’으로 보내어 필요한 물건을 거기서 골라가도록 하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푸드마켙’은 용산구청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쪽방상담소와 상관이 없단다.
그래서 옥상옥인 쪽방상담소를 없애고, 그 일을 동사무소에 통합시키라는 것이다.






오히려, 시간을 여유 있게 해도 일찍부터 줄 서는 사람을 탓하기도 했는데,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너 자신도 줄을 서지 않냐?"는 말처럼 들렸다.
물건이 탐나서가 아니라, 줄을 서야 그 일을 기록할 수 있지만, 줄서는 사람 고충을 느끼기 위해서다.

그래야 바꾸라고 말할 것 아니가?






날씨가 더워 공원 곳곳에 드러누워 자는 사람들이 있었다.
도시락을 돌리던 원용희씨가 찾아 와, 한 개 남았다며 날더러 먹으라고 주었다.
고맙게 받기는 했으나, 밥 생각이 없어 청소하는 황옥선 할머니에게 넘겼다.
다들 입맛이 없으니, 술만 마시고 자는 것 같았다.






더운 선풍기바람 돌듯 다들 그래그래 살아가고 있었다.
건물주는 돈벌이에 급급하고, 일하는 사람은 편한 방식만 고집하고,
가진 것 없는 빈민들만 모든 걸 감수하지만, 인정 하나는 변치 않았다.
그래도 바람이 부니, 죽지 못해 잔소리를 해댄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에 새로운 노숙자 한 사람이 입성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이불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나타났다.
잠자리 때문에 챙겨 왔으나, 거추장스럽기 그지없다,
밥 얻어먹으러 가거나 화장실 갈 때마다 보따리를 들고 다닐 수야 없지 않은가?
길가에 잠깐 두고 가지만, 언젠가는 환경미화원의 손에 들려간다.
그 때야 비로소 노숙자로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버리면 마음이 한 결 편하다는 것을...






교회 벽 앞에는 쪽방사람이 꽃밭을 만들어 놓았다.
얼마나 꽃밭이 그리웠던지, 떠도는 화분으로 꿈을 모았더라.
비록 한 평짜리 쪽방 인생이나, 꿈을 펼쳤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한 쪽에는 수박장사가 수박을 잔뜩 풀어 놓았다.
그러나 장소를 잘 못 골란 것 같다. 쪽방 촌엔 수박이 팔리지 않는다.
돈도 돈이지만, 다들 좁은 방에 혼자 있는데 그 큰 수박을 어떻게 처분하겠는가?






그리고 동자동을 길들이는 ‘서울역쪽방상담소’는 변하지 않았다.
그토록 줄 세우지 말라고 노래 불렀으나, 쇠귀에 경일기다.
몇 일전 롯데에서 선물을 보냈는데, 숫자는 주민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량이란다.
량이 모자라 줄 세울 수밖에 없다지만, 푸드마켓에 넘기면 되지 않는가?
거기서 필요한 것 골라 가면 될 텐데, 그렇게 생색내고 싶은가?






물건을 타기위에 일찍부터 나와 지루한 시간을 보냈는데,
박스를 열어보니 거의 백화점 수준이었다.
필요 있는 상품도 있었으나, 필요 없는 상품도 많았다.
그 다양한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골고루 전해주는 방법은
푸드마켓에 넘기는 방법 뿐 인데, 갑 질 거리를 넘기기 싫은 모양이다.






박원순 시장님! 제발 쪽방상담소 일을 동 사무소에 통합시키세요.
갑 질하는 일자리 창출해 무슨 똥바가지 덮어쓰려고 그러십니까?

그만 하십시요.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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