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쪽방에도 어김없이 봄바람이 분다.
지난 9일 오후에는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지 잔뜩 찌푸렸는데, 그런 날씨는 내 몸이 먼저 알아챈다.






찌푸둥한 몸을 이끌고 공원으로 나갔더니, 이미 사람들은 젖어있었다.
비가 아니라 술에 젖어 세상시름 다 녹였다.
그들의 텅 빈 가슴 위로 꽃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 날따라 흐드러지게 핀 목련이 슬퍼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무슨 말인지도 알아듣지 못할 혀 꼬부라진 소리가 나를 반긴다.
세상에 여기처럼 인심 좋은 곳은 없을 게다.
담배와 술은 기본이고, 그 철천지원수 같은 돈도 나눠 쓴다.
공원의 비둘기조차 빈자들의 술안주를 축낸다.





다들 취했으나, 정용성씨가 소주 두 병을 더 사왔다.

할 술이 떨어져 사왔겠지만, 술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주량에 맞추어 알아서 마시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다.






한 쪽에선 장기로 상대의 수를 탐색하였고,
한 쪽에선 욕설로 상대의 정을 확인하였다.
못할 놈들의 “씨발넘아”는 사랑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가끔 생각 차이로 실랑이가 생기고 큰 소리도 나지만, 옆에 있는 경찰초소 보안관이 판결 내린다.






이 꿀꿀한 봄날에 어찌 술 생각이 없겠냐마는 술을 자재 했다.
‘알중’들의 술자리를 부추긴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의식해서다.
요즘 노숙자 술 마시는 사진을 올리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다.






멀쩡한 놈들이 일은 안 하고 술만 마신다는 질책을 여러 번 들었다.
노인들도 폐지를 줍거나 일 하는데, 뭐 좋다고 그런 놈을 찍느냐는 거다.
대꾸는 안하지만, “잘난 놈보다 못난 놈이 정겹다‘고 구시렁거린다.






일하는 사람들은 희망이라도 있지만, 이들은 희망조차 잃은 사람이다.
그들의 죄라면 부모 잘 못 만나, 가진 것 없고 못 배운 죄 뿐이다.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이 스스로의 목숨을 재촉하는 것이다.






술 없이는 못 사는 불쌍한 사람들, 너무 나무라지 말라.
“새벽종이 울렸네”의 새마을 시대도 아니고, 죽자 살자 일만하는 시대도 지났다.
그런 욕심들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뒤늦게 안면은 있으나 잘 모르는 아낙이 나타나 계속 시비를 걸어왔다.
싫어하면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은 기본인데, 왜 다른 사람까지 찍지 말라는 것인가?
가끔 심통 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일체 대꾸하지 않는다.






이대영씨가 사진작가라고 해도 소용없고, 정용성씨가 기자라 해도 소용없었다.
뒤에서 나를 지켜보다 카메라만 꺼내면 고함을 질러댔다.
결국은 황춘화씨의 “우리 편이야!”라는 혀 꼬부라진 한 마디가 그 여인의 입을 막았다.






우리 편이란 한 마디가 그렇게 친근할 수 없었다.
“그래, 우린 모두 한 편이야!
세상은 편 가르기에 눈이 뒤집혔지만, 모두 우리 편으로 만들어버리자“






노래 가사처럼 ‘아픈 가슴 빈자리에 하얀 목련이 진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월에 받은 빵사진 



토요일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던 ‘한강교회 브레드 미니스트리스’의 자선이 8년 만에 끝났다.



지난 10월, 빵나눔에서 선물을 주기 위해 퀴즈문제를 내고 있다



지난 달 부터 사정이 어려운지 빵의 량이 줄더니, 급기야 손을 들고 말았다.
그러나 참 고마운 사람들이었고, 훌륭한 일을 했다.
배고픈 사람들을 살렸으니, 정부에서 표창장이라도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2017년 11월 비오는 날, 빵을 타기 위해 길게 줄지어 있다.



말이 그렇지 8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토요일마다 한 결 같이 베푼다는 것이 말처럼 싶지 않다.
그 빵은 어려운 사람이나 노숙자들의 생계를 잇는 생명줄이었다.



지난 11월 찍은 사진, 빵을 타서 허급지급 먹는 노인,



빵의 량도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 일주일은 버틸 수 있는 량인데다, 빵을 탈 때 마다 카드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열두 번을 찍으면 컵라면 한 박스를 선물로 주는데, 그 라면을 받기위해 더 열심히 빵 타러 나왔다.



지난 9월에 찍은 빵나눔 사진


왜냐하면, 다들 몸이 불편하여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움직여 먹어라는 배려였고 유인책이기도 했다.
빵을 나누어 주는 봉사원들도 모두 친절했지만, 타 먹는 사람들도 새치기 하는 사람 한 번 본 적 없을 정도로 질서정연하다.


단지 아쉬운 것은 줄 세우기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지난 2월에 찍은 방봉지



난, 그들보다야 낫지만 밥 해먹을 공간이 없는데다, 그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좋아 열심히 타 먹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빵을 뺏어먹는 것 같아 늘 꼬리 줄에 붙어 빵을 놓칠 때가 많았다.



지난2월에 찍은 사진, 봉사원들이 주민들에게 도장 받을 카드를 만들어주고 있다.



없는 사람들이 잔정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한 번은 빵이 없어 돌아서는데, 누가 뒤에서 빵 봉지를 손에 쥐어 주었다.
돌아보니 강완우씨였는데, 자기 받은 빵을 건네고는 씩 웃으며 총총히 사라졌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순정의 드라마가 아니겠는가.



지난 2월 찍은 사진, 빵을 받기 위해 길게 줄서 있다.



나야 인사동 친구나 사진하는 후배들 만나 면 고기도 얻어먹지만, 그들은 빵과 반찬 없는 밥이 유일한 영양 공급원이다.



지난 2월 찍은 사진, 빵을 받기 위해 길게 줄서 있다.



줄서 기다리며 서로 나누는 농담 따먹기도 가지가지다.
“딸딸이를 치니 먹은 게 없어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등 별의 별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다 나온다.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는 고상한 학문이 아니라 생존 자체다.



 3월26일, 힘없어 땅에 퍼져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주민,



문제는 한 3년 정도 얻어먹다 보니, 이젠 밥보다 빵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처음엔 맛있는 고급 빵도 있어 가방에 넣어 다니며 나누어 먹기도 했다.
2년 전 촛불시위로 광화문광장을 들락거릴 땐 그보다 좋은 도시락이 없었다.



3월26일, 휘어진 허리로 힘들게 걷는 할머니



한 번은 정의당 깃발을 들고 광화문광장에 나온 아들 햇님과 나누어 먹었는데,
얼마나 요긴하게 먹었는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배고픈 자식을 먹이고 싶은 부모마음이야 똑 같을 것이다.



3월23일 골목앞 풍경



이젠 빵을 사 먹는 수밖에 없으나, 돈 없는 노숙자들이 걱정스럽다.
돈은 없고 배가 고프면 장 발장 같은 사람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월23일, 고물을 옮기기 위해 손 수레를 끌고간다.



노숙자 지원센터인 ‘다시서기’에서라도 심각하게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
팔고 남은 빵을 제과점에서 싸게 수거한다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3월23일, 하나은행 봉사원들이 계단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빵 나눔이 없어진 지난 토요일의 동자동 새꿈공원은 평소와 달리 한산했다.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있는 ‘동자희망나눔센터’ 앞 계단에 하나은행 봉사원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3월23일, 하나은행 봉사원들이 계단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주민들의 환경 개선을 위해 도와주는 것은 고마우나, 멀쩡한 그림을 지우고 다시 그릴 필요가 무언가?



3월23일, 하나은행 봉사원들이 계단에 그린 그림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봄단장은 좋으나, 쪽팔리게 하나은행 로고를 커다랗게 새겨 놓았다.
꼭 그렇게 생색을 내야 하는가?



3월23일, 그림에 하나은행  로고가  그려져 있다.



봄은 왔건만, 동자동의 봄은 요원한 것 같았다.
정치인들은 입만 벌리면 서민복지를 노래 부르지만, 빈민들의 삶은 피폐하기 짝이 없다.



3월26일, 목련 나무아래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주민들



공원의 목련조차 차마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기력이 없어 길에 퍼져 앉았거나, 잠든 사람이 여기 저기 늘려 있었다.



3월23일, 힘없이 쓰러져 졸고있는 노숙인



생사의 기로에서 허덕이는 사람이 도처에 늘렸는데,

서울역 대합실 티브이에서 나오는 뉴스라고는 하나같이 간 뒤집어지는 소리뿐이었다.



3월23일, 벤취에 누워 단잠에 빠진 노숙인



정치하는 계집이 나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반문특위니 성 접대니 씹 지랄 같은 소리나 지껄였다.
권력 가진 놈들의 추악한 짓거리에 치가 떨린다.



3월26일 저녁, 서울역 지하도 입구에 자리를 잡은 노숙인들



“씨바~ 제발 사람 좀 살자”


사진, 글 / 조문호


















해피빈

2월 이슈데이 / 이미령



추석 노래자랑 ⓒ조문호


2017년 어버이날, 동자동 새빛 공원에 처음으로 사진전이 열렸습니다. 주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줄에 매단, ‘빨랫줄 사진전’이었습니다. 이웃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자기 얼굴이 있으면 가져갈 수도 있었습니다. 어버이날과 추석을 택해 세 차례 전시를 했으나, 꺼리는 이들이 있어 더 이상 사진전은 열지 않기로 했답니다,

동자동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 조문호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2017 추석 빨랫줄 사진전, ⓒ조문호


고층 빌딩 사이 숨겨진 작은 동네


3년 전 어느 날, 후배가 보여준 쪽방촌 동영상이 선생님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쪽방행을 선언했습니다. 고심하여 선택한 곳은 동자동. 교통이 편리하고, 친구들이 많은 인사동과 가깝기 때문입니다. 바로 건너편 서울역은 유동 인구가 많지만, 동자동은 한낮에도 조용합니다. 고층 빌딩 사이에 위치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쪽방촌은 한 층에만 다닥다닥 붙은 방이 여덟 개. 방음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몸을 누이면 남는 공간이 거의 없습니다. 화장실과 세면대는 공동으로 사용해야 해, 요리를 포기하는 집도 있습니다. 그나마 월세는 보증금 없이 약 23만원으로 저렴합니다.



어버이날  ⓒ조문호



가난하지만 정 많은 이웃들이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주민 대부분이 나이가 많고, 혼자 살기에 맥없이 누워 있을 거라 막연히 상상합니다. 하지만 마음 맞는 이웃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일상의 즐거움을 찾는 분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동자동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집은 훨씬 따뜻하고 깔끔했지만, 친구가 없어 심심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길지 않을 텐데 마음 편히, 즐겁게 살고 싶다고 합니다. 서울역 노숙인들도 동자동 이웃입니다. 가진 것이 없기에, 오히려 더 호쾌히 배풀기도 합니다. 주머니 속에 단돈 만 원밖에 없어도, 친구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빌려줍니다.



어버이날  ⓒ조문호



돈에 오염되지 않은 가난한 자들이 남았습니다.



선물나눔  ⓒ조문호



가난을 줄 서서 확인 받고 싶지 않습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동자동에는 긴 줄이 늘어섭니다. 수량이 한정적인 ‘후원 물품 배급’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줄을 세우기 때문에 오히려 비교적 건강한 사람들이 많이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 많고 병든 사람들은 줄을 설 기력이 없습니다. 조문호 선생님은 순번을 정해 골고루 물품을 배분하거나 늙고 아픈 사람들에게 직접 물건을 가져다 주는 게 어떠냐고 여러 번 건의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줄을 세우는 것이 활동을 홍보하기에 좋고, 물품을 나눠주기에도 편리하니까요.



추석 음식나눔  ⓒ조문호



기부하고 싶은 것과 필요한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수품이라고 생각하는 물건은 정해져 있습니다. 겨울에는 전기장판, 여름에는 선풍기. 전기장판과 선풍기는 소모품이 아니기에, 한 개만 있으면 몇 년을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매년 새로 기부가 들어옵니다. 쪽방에는 창고도 없어 난감합니다. 매번 받는 쌀과 김치, 라면도 좋지만 가끔은 새로운 맛도 궁금합니다. 쪽방에는 부엌이 없어 조리를 못하는 가구도 있습니다. 후원품을 줄 세워 나눠주기 보다 남영동 ‘푸드마켓’처럼 각자 필요한 물건을 조금씩 고르게 하면, 필요한 만큼만 가져갈 수 있습니다. 물건이 제 쓰임을 다하는 셈입니다.



2018 어버이날 빨랫줄 사진전 ⓒ조문호



작품 사진과 일반 사진의 경계는 따로 없습니다. 보는 사람이 판단할 몫입니다.


이런저런 불편한 점을 앞장서서 건의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찍혔다’는 조문호 선생님. 그래도 이미 3년 가까이 이곳에 살았더니 ‘좀 별난 이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더 이상 사진전은 하지 않지만, 사진 찍히는 즐거움을 안 이웃들의 요청으로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한 사람, 한 사람 공들여 촬영합니다. 영정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이웃도, 그냥 자기 얼굴을 모으는 걸 좋아하는 이웃도 있습니다.



선물나눔  ⓒ조문호



“진실한 사진이 가장 좋은 사진입니다.”


앞으로 계속 동자동에 거주하실 거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가능한 한 계속 있고 싶다고 답하셨습니다. 이미 재건축 조합이 들어서, 몇 년 후에는 모두가 쫓겨날 것 같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이곳에 살며 동자동의 마지막을 기록할 예정입니다. 동자동에도 우리처럼 다양한 개성과 취향을 가진 개인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함께 응원하는 희망찬 새봄
여러분의 기부금 만큼 네이버 해피빈에서 함께 기부합니다.




인터뷰하는 이미령씨 ⓒ조문호


지난 달 ‘해피빈’ 이미령씨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올린 동자동 글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뭔지도 모르고 만나기로 했는데, 인터뷰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노출되는 것이 싫어 쪽방촌에 관한 언론 인터뷰를 거절해 왔으나,

공익단체의 기부를 위한 인터뷰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사진찍는 이미령씨 ⓒ조문호


어렵사리 동자동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예쁜 아가씨가 예쁜 선물까지 사왔네요.

경찰 조서 받듯 충실하게 답했더니, 인터뷰기사를 보내 왔습니다.



이미령씨가 준 선물 ⓒ조문호












지난 16일 오후1시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제9차 정기총회가 열렸다.
총회 하루 전에 볼 일이 있어 울산 내려 갔으나, 다음날 아침에 바로 돌아와야 했다.
사랑방마을 정기총회가 자주 열리는 총회도 아니지만,

다들 밖에 잘 나오지 않아 한꺼번에 동네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울산 내려 간 김에 인근의 장터나 유적지를 찾아 사진을 찍었으면 좋으련만, 지체할 수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으나, 정영신씨 고물차가 말썽을 부려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추었다.




총회가 열리는 동자동 '성민교회'에 들어서니, 반가운 분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선동수 간사의 보고에 의하면 위임한 30명을 포함하여 170여명으로 성원이 되었다고 했다.




2018년도 감사보고와 승인, 사업 결산보고가 이어졌고, 임원선출도 따랐다.
이사장에 유영기씨, 부이사장에 조두선씨, 사업이사에 김정호씨, 조직연대이사에 양정애, 윤용주씨,

교육홍보이사에 임수만씨, 감사에 최순규, 정시영씨가 선임되었다.




그리고 작년 년 말까지 주민들의 출자금이 총 2억5천6백만원이라고 했다.

전년도에 비해 3천8백만원 가량 줄어들었으나 전체 조합원 389명이 출자한 돈으로는 적은 돈이 아니었다.

평균 65만원 정도를 출자한 셈인데, 나는 2016년 부터 출자했으나 아직까지 24만원 밖에 못했다.



출자한 사람의 대부분이 가난한 기초생활수급자라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었다.

저축을 안 해도 담배 값이 없어 허둥댈 때가 많은데, 결국 돈을 쓰지 않는다는 거다.



난, 돈이란 죽고나면 아무 소용없다는 낙천적인 생활습관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젊은 시절부터 저축을 생활화하지 않아, 요 모양 요 꼴로 살지만 하고 싶은 것은 다하고 산다.



마약 같은 돈에 끌려 다니지 말고, 돈은 돌고 돌아야 한다는 생각도 변함이 없으니,

죽을 때까지 철들기는 틀린 것 같다.



그런데, 요즘 큰 건물가진 친구들도 내막을 살펴보면 자산보다 부채가 더 많더라.

임대수익도 예전 같지 않은데다, 팔려고 해도 세금 제하고 나면 빚더미에 앉아야 한다는 거다.




결혼도 않고 즐기며 사는 요즘 젊은이들이 현명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나라 꼴이 걱정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어렵게 살면서도 열심히 저축하는 동자동 사람들이 존경스러운 것이다.

한 평생 고생하며 사람답게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마지막 까지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산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다.

육십대까지야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저축해야 겠지만,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은 이해되지 않는다. 

물려 줄 사람도 없는 독신인데, 과연 누굴 위해 종을 울려야 할까?

사진, 글 / 조문호




















































일년 전 정선에서 십년 넘게 처박억아 둔 먼지투성이 액자를 끄집어낼 때 본색을 드러낸

폐질환은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할 천형의 병이 되고 말았다.





그 때는 심한 호흡장애로 입원까지 했으나, 기관지 확장제인 ‘테오란-비’를 먹고
‘아노로 엘립타’를 매일 흡입하는 식으로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통풍으로 자이로릭까지 매일 먹어야하니 약통을 끼고 사는 편이다.
약 타러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들리는 게, 생활화 된지 일 년 가까이 되었는데,
담당의사가 묻는 말은 항상 똑 같다.






의사 : 담배 끊었습니까?
나 : 아뇨
의사 : 하루에 몇 개피나 피웁니까?
나 : 반 갑요.
의사 : 안 끊으면 죽습니다.
나 : 안 죽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의사 : 술은 얼마나 마십니까?”
나 : 소주 한 병 정도 마시지만, 혼자 있을 때는 안 마십니다.
의사 : 술과 담배를 반으로 줄이세요
나 :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그냥 꼴리는대로 살다 죽는 것이 편하겠네요.






대책 없다는 듯이 “약이라도 잘 챙겨 드세요”라며 진료를 끝낸다.
한 달에 한 번씩 주고받는 대화가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반복되는데,
처음 몇 번은 고문처럼 느껴졌으나,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답한다.






지난 5일은 ‘진주청국장’ 누님의 팔순이라 양재동에 갔다.
모처럼 남매가 만났으니, 어찌 술이 없을 수 있겠는가?
다들 맥주를 마셨으나, 혼자 소주를 마셨다.
기분 좋아 옛이야기들 곱 씹으며 즐거운 시간 보내다 돌아왔다.





서울역에서 내려 지하도로 나가니, 노숙하는 천씨가 죽은 사람 만난 듯 반긴다.
“아제! 어디 갔다 오요? 술 한 잔합시다”
소주를 사주었으면 그냥 올 것이지, 같이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종이컵에 따라 두 잔 정도 마셨는데, 몸에 신호가 왔다.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어지러워,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천씨가 “와 그라요? 이제 다 됐구나”며 지하도 밖까지 부축해 주었다.
길 모퉁이에 앉아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가누었다. 






뿌옇게 뒤 덥힌 미세먼지까지 가쁜 숨에 한 몫 하는 것 같았다.
빨리 가는 게 상책이라 집 앞까지 왔으나, 4층까지 오를 자신이 없었다.
저만치 김원호씨와 동네사람들이 보였으나,
나보다 나이 많은 늙은이들에게 부축해 달라는 부탁을 할 수 없었다.






한 칸 오르고 쉬기를 수십 번 했는데, 드디어 4층 입구의 박씨 신발이 보였다.






“천국 오르기가 너무 힘들다”며 복도를 들어서니,
마치 저승사자 같은 놈이 한 쪽 구석에 버티고 있었다.
자세히 쳐다보니, 술에 젖어 사는 옆방의 알중 최완석이었다.






관속에 들어왔으니 이젠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아 뻗어 버렸다.
숨 못 쉬고 자다 죽는 것도 괜찮을 텐데, 죽는 것도 그렇게 쉽지 않았다.
저녁 무렵에서야 정신이 들었는데, 라면 국물 생각에 물을 끓이다 생각 했다.
술과 담배를 끊겠다는 것이 아니라, 낮은 방으로 이사 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장터에서 점쟁이 할매들이 정영신씨에게 여러 번 들려주었다는 끔찍한 말이 기억났다.
“빌빌거리며 엄청 오래 살 겠네”



사진, 글 / 조문호













다들 가족과 즐겁게 지낸 정초에
무슨 놈의 천형의 죄를 지었는지,
지하도의 돌부처가 되어버렸다.
죽느냐? 사느냐? 아무 생각도 없다.

신이시여!

이제, 자리를 바꾸소서!

사진, 글 / 조문호











길 잃은 자 몰려드는 곳이 서울역이다.
오 갈 데 없는 방랑자의 종착역이다.






가진 것이 없으니 욕심이 없고,
희망이 없으니 일하지 않는다.
더러는 빈자의 자부심을 위안 삼는다.





육신은 무너졌고, 정신은 황폐하다.
천국의 복음보다 컵라면 한 그릇을 믿으며,
막걸리로 시름 달랜다.






이젠, 지하도에 자리 깔면 끌려 나온다.
야생의 삶이 서서히 길들어 간다.






온 종일 ‘다시서기’에서 티브이보다,
밥 때 되면 줄 서서 밥 타먹고,
밤 되면 합숙소에서 잔다.


“바르게 살자” 새마을 구호처럼...






굴하지 않는 역전의 용사도 있다.
끝까지 바람찬 광장에서 버틴다.
파지박스를 벽 삼아 두더지처럼 잔다.






왜 추운데서 개고생 하는가?
“길들기 싫은 노숙자의 자존심이다.”


세상을 원망하며 죽음을 재촉한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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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타러 온 강병국씨



한강교회 ‘브레드 미니스트리스’에서 동자동 빈민들이게 빵을 나누어 준지도 어언 팔년이 가깝단다.
한시적 나눔이 아니라 비가 오나 눈이오나 빠지지 않고 빵을 나누어 준 것이 더 고맙다.






빵 나눔은 토요일마다 동자동 새꿈 공원에서 150여명에게 전달된다.
빵 탈 때마다 도장을 찍어주어, 열 번을 찍게 되면 보너스로 컵라면 여섯 개도 덤으로 준다.

빠지지말고 받아가라는 배려인데, 어떤 이는 라면을 타기위해 빵을 타는 사람도 있었다

빵을 탄 사람에게 커피 한 잔 타주는 맛도 괜찮다.

.






주방이 없는 쪽방사람들은 밥해먹기도 까다롭지만, 노숙자는 해 먹을 수도 없다.
대개 빵이나 라면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 역시 대부분 빵으로 해결한다.






주는 분량도 아끼면 일주일까지 먹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량이 많이 줄어들었고 질도 많이 떨어졌다.
그전 같았으면 남길 빵이 없었지만, 요즘은 맛 없는 빵이라 남아돌기 일수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니, 2주가 지나도 빵이 부패하지 않았다.
부패한 빵을 먹게되면 더 큰일이지만, 도대체 방부제는 얼마나 많이 넣었을까?

그러나 빈민들에게 방부제나 위생 따위는 사치일 뿐이다.

죽어도 시체 썩을 염려는 없겠다 싶었다.






그래도 꾸준히 베풀어주는 한강교회 ‘브레드 미니스트리스’가 고마웠다.
빵을 나누는 것은 가난한 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었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줄 세우지 말고 전해주는 방법은 없을까?
어떤 주민은 블로그에 올린 ‘빵 나눔’ 댓글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지금 눈은 아지랑이 피듯 어지럽고, 혈압은 아침부터 오릅니다.
저는 빵이 꼭 필요하거든요. 그렇지만 줄서는 게 너무 싫어요. 아직 배가 덜 고픈가 봐요.
줄 설 때마다 괴롭고 눈물나며, 서러움이 느껴집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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