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워 그런지 대개의 동자동 노인들이 입 맛을 잃은 것 같다.
병원에 누운 환자처럼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살기위해 억지로 먹는다.
라면으로 허기를 메우는 것이 다반사지만, 가끔은 밥도 먹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사는 쪽방 건물 일층에 있는 광주식당은 간판도 없는 코 구멍한 가게다.
2인용 테이블 두 개로 영업 했으나, 된장찌개, 김치찌개가 주 메뉴였다.
일인분 오천 원으로 입맛 잃은 노인들이 가끔 들리지만, 장사가 통 되지 않았다.

 

 

 

 

젊은 회사원들을 받는 주변 식당들은 붐볐지만, 이 곳은 파리만 날렸다.
나 역시 그 전에는 이 삼일에 한 번씩 들려 밥을 먹었으나,
장사가 되지 않아 점포 내 놓은 지 한 달이 넘었다.

 

 

 

모처럼 '동자동 사랑방'에서 운영하는 ‘식도락’에 들렸다.
밥 값으로 천원을 내는 이 곳은 가난한 사람들이 허기를 메우는 밥집이다.
그들에게 생명줄 같은 식당이지만, 입맛을 찾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콩나물 국에 밥 말아 살기위해 억지로 한 술 뜬 것이다.

 

 

 

몇일 전 의학전문기자 김철중의 생로병사에 ‘어르신, 껌 좀 씹으시죠’라는 기사를 읽었다.
나이가 들수록 껌을 자주 씹어야 좋다는 것이다.
껌 안에 침샘을 자극하는 성분도 있고, 칼슘 보충제가 첨부된 것도 있단다.
껌 씹는 자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보다 침 분비량을 10배 가까이 늘리며,
그 때문에 입속 박테리아의 증식이 줄어든다고 한다.
충치를 일으키는 산(酸)의 생성도 억제한다니, 칫솔질이 부실하면 껌이라도 자주 씹으라고 권했다.

 

 

 

그리고 의료용 대마 성분이 있는 '칸나비디올 껌'도 있다는데,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는 이 껌을 입에 달고 골프를 친다고 했다.
'우즈 껌'은 계산되고 기획된 스포츠 의학으로 집중력과 기억력을 높여준다고 말했다.

 

 

 

 

사실, 대마가 청각, 시각, 미각 등 사람의 오감을 예민하게 하는 것은 틀림없다.
대마종류에 따라 성분 차이는 있지만, 어떤 대마초는 음식 맛에 빠져들게도 만드는데,
그런 성분을 추출하여 식욕촉진제로 활용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미국의 정신과 의사 줄리 홀랜드와 앤드류 웨일 등이 집필한 대마 백과사전 '올 어바웃 카나비스'가 번역되어 나왔다.

'도서출판 세상의아침'에서 대마초의 약리적 작용을 내용으로 하는 '대마초 약국'에 이어

이번에는 대마의 다양한 약리 작용에 관한 분석에 머물지 않고 역사, 문화, 정치적 논쟁까지 다룬 책이다.

대마가 궁금한 분들은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라.

 

 

 

그동안 당치도 않는 마약올가미로 손을 놓고 있으나, 이제부터라도 다양한 약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미 외국에서는 여러 가지 약효가 입증된 수많은 특허들을 독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무 것도 없다.
마약으로 각인 시켜놓은 국민들 눈치 보느라, 알면서도 모른 체 하는 정치인들은 모두 끌어내려야 한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에 밀집한 대개의 쪽방은 악덕 투기꾼들이 소유하고 있다.
다른 곳에 살며 입주한 주민을 대표로 내세워
계약서를 쓰게 하고 관리하며 돈을 거두어 간다.
선불인 월세는 현금으로만 받아 탈세를 하지만, 모두들 방관한다.






대개의 쪽방이 오랫동안 시설보수를 안 해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몸을 씻을 사워시설이 없는데다, 공용으로 쓰는 재래식화장실에서 식기를 세척하는
짐승만도 못한 환경에 살지만, 집세는 하루만 늦어도 쫓겨난다.






대개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내가 사는 4층의 쪽방 한 달 임대료는 23만원이다.
한 층에 아홉 개의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옆방의 티브이소리가 들릴 정도로 방음도 되지 않는 숨 막히는 공간이다.






평당 가격으로 치면 타워펠리스 보다 비싼 월세를 내면서도
비가 새거나 전기시설에 문제가 생겨도 손봐달라는 말조차하기 어렵다.
불편을 하소연하거나 조금만 그들의 비위에 거슬리면 곧 바로 쫓겨난다.
갑 질도 그런 갑 질이 없다.






배운 것도 없고 돈도 힘도 없는 쪽방빈민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뿐인 불쌍한 사람들을 언제까지 당하게 할 것인가?






지난 19일 오후 다섯시 ‘서울시청’ 동편에서
쪽방 주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세수문화제(세 번째 수요일)'가 열렸다.
‘동자동 사랑방’과 ‘빈곤사회연대’, ‘홈리스 행동’에서 마련한
‘세수문화제’에는 100여명의 주민들이 참여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강제 퇴거 OUT”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 건 이 날 행사에 앞서
동자동에서 쪽방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주거권 교육을 세 차례 실시했다.
그 교육 내용을 토대로 쪽방 주민들의 목소리를 서울시에 전달하는 행사였다.






개발이나 건물주의 욕심으로 하루아침에 쫓겨나도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웠던
당사자들이 힘을 모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빈곤사회연대’의 윤애숙씨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수문화제’는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과 ‘동자동사랑방’ 김호태 대표로부터
‘쪽방주민 주거권 돌아보기’란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서울시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의 문제점에는 ‘홈리스행동’ 박용수 회원이 발언했다.
쪽방 재개발 문제를 중심으로 한 쪽방주민 발언으로는 홍선호씨,
서울시 저렴 쪽방 정책의 문제점에는 김병택씨가 발언했다.






유영기씨 등 쪽방 주민 세분이 나와 주거권 보장을 위한 쪽방 주민들의 요구안을 발표했다.
첫째 “지주가 아닌 주민이 주인 되는 개발을 실시하라”
둘째 “모든 비 적정 주거지에 대한 주거기준을 마련하라”
셋째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사업 개선하라”고 했다.






동자동의 이대영, 안만정씨를 비롯하여 아랫마을 홈리스야학의
노래교실 회원들이 나와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고,
임채희씨는 홈리스의 삶에 대한 자작시를 2편 낭송했다.
마지막으로 서울시장 면담을 요청하는 종이비행기 날리기 퍼포먼스로 ‘세수문화제’를 마무리했다.






쪽방 촌에 공공의 강력한 개입을 요구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하루빨리 사람답게 살 대책을 마련하라.



사진, 글 / 조문호






















































왕년에 잘 나갔다는 김씨
열다섯에 집나와 오십여 년을 서울역에서 놀았던 세월
주먹질에 7년 받아 법정소란으로 3년 보탠 것은 계급장
그 가오에 백발만 서렸구나.




왕년에 돈 좀 만졌다는 이씨
사람 좋아 흥청망청 다 날리고
집 쫓겨 나 사십여 년을 떠돈 세월
그 가오에 주름만 늘었구나.




빛바랜 왕년의 가오를 안주삼아
죽음 재촉하는 독주를 들이킨다.



사진, 글 / 조문호

















밤 깊은 서울역
홈리스들이 총 맞은 병사처럼 쓰러져 잔다.



어디선가 여린 선율의 바이올린소리 들린다.

거리의 악사가 들려주는 ‘아베마리아’다.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그들보다 가진 자들이 더 많지 않은가?




고통스런 삶이냐? 자유로운 삶이냐?
추운 날은 고통이고, 더운 날은 자유롭다.




처음 힘들 때는 고통스럽게 보였지만,
내가 익숙해지니 자유롭게 보이더라.




상대적이라 아무도 단정 못 한다.
그들에게 돌을 던지지 마라.

사진, 글 / 조문호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그제, 반가운 손님 온다는 까치가 울었다.
"길 위의사람‘을 찍는 성유나씨였다.
늙은이가 굶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밥 먹이러 오겠단다.






서울역에 마중가니, 노숙자 한 명이 납작 엎드려 모자를 치켜 세우고 있다.
누군지 알 수 없어 동전 몇 닢 던졌으나, 미동도 않는다.
옆엔 고개 숙인 남자가 웅크린, 화려한 서울의 뒷모습이다.






서울역 11번 출구에 나와 기다리고 있으니, 유나씨가 나타났다.
아르바이트까지 빼먹고 왔다기에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동네 안내라도 해주고 싶으나, 비오는 날이라 공원에 사람이 없다.
김장수씨가 있었으나, 유나씨 카메라에 시비를 건다.
카메라보다 낯선 여인에 대한 관심이다.






커피라도 대접하고 싶어 내 방으로 안내했다.
홀 애비 냄새 풍기는 쪽방에 볼 것도 없지만, 유심히 살펴보더라.
사는 게 별 것 있겠냐마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기 힘들어 두 군데나 일하러 다니지만, 카메라가 유일한 위안이란다.
힘든 세상, 마음먹기 따라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






밥 먹으러 갔으나, 갈만한 곳이 없었다.
가끔 들리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자 했으나, 기어이 고기 집에 가잖다.
고기가 있으면 술이 따라야 하고, 술이 따르면 시간이 길어지지 않는가.
나야 있는 게 시간뿐이지만, 갈 길이 바쁜 사람인데...






골목을 서성이던 동네 아줌마의 쳐다보는 시선이 따갑다.
낯선 여인과 팔짱 낀 모습에 봄 사건 났나 싶은 모양이다.
매일 지나쳐도 가지 않는 ‘대우정’에 들렸는데, 퇴근한 직장인으로 만원이었다. 
오후 여섯시만 되면 늙은이는 사라지고, 젊은이로 불야성을 이루는 두 얼굴의 동네다.





2층 한 쪽 구석에 자리 잡아 소주 한 병과 불고기를 시켰다.
나도 직장인처럼 여인까지 대동한 거룩한 만찬을 즐겼다.
술이 모자랐으나, 모자라는 미덕을 즐기기로 했다.

유나씨 덕에 오랜만에 사람 사는 맛을 보았다.



사진, 글 / 조문호










‘KT와 함께하는 정다운 주민 나들이’가 지난 22일 ‘화담 숲’에서 있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추진한 이 여행은 KT가 협찬했다.




오전10시 무렵, 버스 두 대로 출발한 이 날 소풍은
동자동 주민에게 모처럼 주어지는 신나는 외출이었다.




다들 근사한 옷을 갈아입고 나와 낯선 사람처럼 보였다.
옷만 잘 입으면 신분까지 격상되어 보였으나, 난 그게 안 된다.
‘옷 잘 입은 거지가 밥도 더 얻어 먹는다’는 옛 말도 있으나,
새 옷이 왠지 불편하다. 그 날은 깜빡 잊어 틀니까지 두고 나왔다.




경기도 광주의 ‘화담 숲’으로 떠난 이날 소풍은 80명을 모집했으나 65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선착순이라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에 불과했다.




공짜로 밥 먹여 구경시켜주는데도 무관심한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다들 할 일없이 방에 앉아 티브이나 보고 있을 텐데...
아마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모든게 귀찮은 것 같았다.




쪽방상담소 김갑록소장과 전익형실장을 비롯하여
김정길, 임수만, 전인중, 원용희, 최갑일, 이인숙, 한종희, 김정심, 김유례,
심경섭, 이난순, 이배식, 홍홍임, 김용철씨 등 반가운 사람을 많이 만났는데,
사진 찍히는 것을 유독 좋아하는 이경기씨가 나를 제일 반가워했다.
점심은 곤지암의 ‘초월보리밥’에서 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화담’은 엘지의 구본무 회장 아호인데, 그가 생전에 조성한 숲이란다.
안내판에는 ‘내가 죽더라도 그 사람이 이 숲만큼은 참 잘 만들었구나는 말을 듣고 싶다.’는

구본무씨가 생전에 했던 말이 적혀 있었으나, 과욕으로 생각되었다. 



 
자연이란 그대로 두는 게 최선이지, 인위적인 환경이라 호감이 가지 않았다.
타 지역에 있던 노송이나 회귀종 나무들을 무더기로 옮겨놓고,
도보로 산책할 수 있는 완만한 길에 모노레일을 깔아 놓았다.
이끼원, 자작나무숲, 소나무 숲, 분재원, 암석정원을 비롯하여 한옥주막과 찻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화담 숲’에 들어가는 입장료는 만원이고, 모노레일 타는 데는 팔천 원이었다.
취미삼아 조성한 숲마저 장삿속을 보이는 재벌의 속성은 어쩔 수 없었다.




협찬으로 입장료는 해결하지만, 지난번에 떠난 대부도 여행이 훨씬 나았다.
장관을 이룬 철새들의 비행도 좋았지만, 입장료 아껴 ‘동춘 서커스’를 보지 않았던가?
차라리 화담 숲’보다 지척에 있는 남산 길을 산책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나들인지 들러린지 헷갈리는 소풍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쪽방에 처음 왔을 때, 이해되지 않는 일이 한 둘이 아니었다.
물려줄 가족도 없고 오래 살지도 못할 사람이 돈을 이불 밑에 파묻어 둔다던지,

줄 세워 나눠주는 선물에는 목을 매지만, 더 좋은 문화혜택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술과 담배를 즐기는 사람 외에는 하루 종일 좁은 방에서 외출 한 번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기거한지 3년이 가까워오니 나도 모르게 서서히 길들어 가고 있었다.

서민 복지를 위한다는 사탕발림의 정책들이 재기할 수 없도록 주저앉히며,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사라는 빈민보호구역처럼...


 

나 역시 건강에 문제가 생겨 주민들과의 술자리를 자제하니, 하루 종일 꼼짝 않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을 때가 많다.

이젠 일기 쓰듯 블로그에 올리는 일조차 귀찮아 졌다.



몇 일전 샘터편집장 이종원씨가 찾아와, 요즘 왜 동자동 소식을 올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할 말을 잃었다.

대개의 동자동 사람들이 모든 걸 포기하듯, 죽고 나면 아무 소용없는 일에 매달리기 싫어진 것이다.

 


더구나 일기장처럼 올린 사진에, 딴지를 걸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도 초상권이 있다거나, 왜 관심 없는 이야기를 올리냐는 것이다.

관심이 없으면 보지 않으면 되고, 그래도 눈에 거슬리면 페친을 끊으면 될 것 아닌가?

그가 못한 일을 대신 끊어주었지만, 씁쓸했다.


 

이종원씨가 떠나고 난 뒤, 그동안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다시 힘을 내는 계기가 되었다.

오래된 사진을 정리하는 일이 더 급해, 마무리 할 일을 서두르기로 다짐했다.

아파 누워버리면 끝장인데, 더 미룰 일이 아니었다.


 

요즘 갑자기 날씨가 더워 그런지,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많다.

의욕을 잃어 술 취한 사람도 있지만, 더운 쪽방에서 탈출한 사람들이다.



서울역 주변에도 여기 저기 모여 술을 마셨고,

그 날 밤은 열심히 사는 원용희씨까지 길거리에서 술을 마셨다

.

 

좋지 않은 일이 있는 모양인데, 얼마 전에는 주민들에게 돈을 빌려 도망친 사건도 있었다.


 

3년 전 동자동에서 합동결혼식까지 올린 김만귀씨가 심경섭, 김정호씨 등 많은 사람의 돈을 빌려 날라버린 것이다.

밝혀 진 액수만 2,400만원이라는데, 쪽방 사람들에게는 적은 돈이 아니다.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악착스레 모은 돈을 사기꾼 입에 털어 넣어 버렸다.


 

쪽방 촌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섞여 산다.

순박한 사람들 속에 깡패, 양아치, 사기꾼도 있지만,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지 않으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예전엔 큰 사건만 터지면 서울역 부근에 사는 전과자부터 조사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기야! 불쌍한 사람 등쳐먹는 그 놈인들 편하겠나?


 

이달 초순에는 옆방에 사는 건물 관리인 정선덕씨가 방문을 두드리며, 라면받으러 공원에 나가자고 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주선으로 대한결핵협회에서 결핵검진을 하는데, 엑스레이를 찍으면 라면 열개를 주었다.



다들 건강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라면 때문에 검진을 받는 것이다.

목숨보다 라면이 더 급한 사람들이다.


 

지난 17일은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주민간담회를 열었다. 반상회 성격의 주민 자치회지만 다들 관심이 없다.

쪽방상담소 체제가 바뀌기 전인, 도망친 김만귀씨가 위원장으로 있을 때는 20-30명 정도 나왔으나, 그 절반도 나오지 않았다.

참석한 분은 쪽방상담소 전익형 실장을 비롯하여 김원호, 김정길, 전인중씨 등 열 명 밖에 되지 않았다.


 

하는 이야기가 올 여름 날씨가 더운 날에는 지하에 있는 회의장에 나와 자라거나,

몇 일후에 있을 화담 숲나들이에 참여해 달라는 등 통상적인 공지사항이었다.

일회용 곰탕 몇 개 담긴 봉지로 걸음 값을 대신했지만...


 

제발 신바람 나는 좋은 일이 아니라면, 이런 형식적인 회의는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뭔가 자율적으로 하는 것처럼 구색이나 맞추는 이 따위 일에 왜 시간을 소모하는가?


 

지난 20일은 샘터이종원 편집장이 쪽방을 방문하기로 했다.

몇일 전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난감했다.

내가 도와준 서울문화투데이와는 어쩔 수 없이 인터뷰를 했으나, 일체의 인터뷰를 거절하기 때문이다.


 


이종원씨는 작년에 만나적도 있지만, 사진가 김수길씨 친구라 딱 잘라 거절할 수 없는 처지라 문자를 씹었더니,

그 이튿날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인터뷰 못할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동자동이야기를 빼고 하겠다기에 마지못해 승낙한 것이다.


 

오후 세시 무렵, 공원 앞에서 이종원씨를 만나 방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사는 이야기에 동자동 이야기가 빠질 수 없어 걱정스러웠다.

좀 있으니, 남원에 사는 사진가 최선호씨가 주소만 들고 쪽방으로 찾아왔다.


 

프로필 사진만 찍는 것이 아니라 골목에서도 사진을 찍었는데, 지나가던 이배식씨가 쳐다보며 한마디 거들었다.

사진 찍는 사람이 오늘은 찍히는 신세가 되었네


 

일을 마치고 식당에 들어가 소주 한 잔 나누었다.

많은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술 자리에서 이런 저런 하소연을 했다.

술만 들어가면 쓸데없는 소리를 해대는 버릇이 뒤늦게 걱정되었다.

편집장께서 잘 걸러 옮겨야 할 텐데...


 

21일은 동자동 공원에서 오랜만에 박성일씨를 만났다. 넓은 집으로 이사 했다며 집 구경 가자고 했다.

따라가 보니 아내 박소영씨 혼자 있었는데, 집이 꽤 넓었다. 거실까지 있었지만, 옮겨놓은 짐은 별로 없었다.


 

좋은 집에 어떻게 들어오게 됐는지 궁금했는데,

구세군에 어려운 사정의 편지를 보내는 등 곳곳에 도와달라는 SOS를 보냈다고 한다.

덕택에 구천만원의 대출을 받아 입주하게 되었는데, 그 이자는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노숙 10년에 쪽방생활 16년차인 박성일씨는 3년 전 박소영씨와 짝을 맞춰 동자동에서 합동결혼식을 올렸으나,

쪽방에서 뚱뚱한 아내와 함께 살기가 어려웠다. 여기 저기 옮겨 다닌 지가 여러 차례지만, 이제 한시름 놓은 것 같다.


 

그런데, 몰랐던 소식도 전해 주었다. 동자동 주민 100여명이 변두리 임대주택으로 이사 갔다는 것이다.

어떤 조건으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동자동 개발에 따른 물밑작업은 아닌지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자기도 김만기에게 돈을 빌려주었으나, 돈이 급한 아내의 채근으로 간신히 받아냈다며 한숨을 썰어 내리기도 했다.


 


22일은 경기도 광주에 있는 화담 숲으로 단체 나들이를 했다.

마침 김용철, 김정심씨가 옆자리에 있기에 은근히 마음을 떠 보았다.

두 분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결혼해 같이 살면 어떠냐고 말했더니, 한사코 손사래 쳤다.

기초생활수급비가 깎여 더 살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아마 주거비 20만원이 줄어든다는 말인 것 같은데, 오나가나 그 놈의 돈이 원수다.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기초생활수급비를 탈 수 없는 사각지대의 노숙자도 많지만,

조금만 수입이 생겨도 잘리거나 삭감되어, 아예 일을 하지 않게 만드는 기초생활수급 규정을 빨리 개정해야 한다.

자립하는 일이 어렵기는 하지만, 최소한 희망은 주어야 할 것 아닌가?


사진, / 조문호






















 

 





외로운 쪽방 사람들을 위해 서로 짝 지어주는 일은 어떨까?

하루 종일 티브이만 보고 있는 것 보다 서로 말벗이 되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밥도 같이 해 먹으니 서로 편하지만,

아프면 도와줄 수 있어 혼자 쓸쓸히 죽는 고독사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8일은 동자동 사는 김용철씨가 ‘해 뜨는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단다.
몇일 전, 김치 나누어 주는 곳에서 만났는데, 방세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며 엄청 좋아했다.






‘해 뜨는 집’은 서울시가 2013년 경, 달세 상승을 막기 위해 만든 쪽방인데,

동자동 저렴 쪽방 110개 중 절반에 가까운 51개가 모여 있는 곳이다.

그러나 건물 외벽만 노란 페인트로 꾸며 놓았지, 시설은 다른 쪽방과 다를 바 없다.

한 평 남짓의 좁은 방에 공동화장실을 사용하지만, 달세가 한 달에 16만원이다.

23만원에서 30만원 정도하는 다른 쪽방에 비하면 훨씬 싸다.






그렇지만, 동자동 쪽방주민이 사는 숫자의 10분의 1정도니,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사람이 죽어 나가야 방이 비니, 운이 좋아야 들어갈 수 있는 방이다.
김용철씨가 옮긴 방은 먼저 사용하던 방과 크기는 비슷하나, 한 달에 14만원을 절약할 수 있단다.

있는 사람에게는 14만원이 별것 아닐 수도 있으나,

한 달에 40만 원 정도로 살아가야 하는 쪽방 주민에게는 큰 돈이 아닐 수 없다.






지난 8일 오전 10시무렵, 이삿짐 옮겨주려 갔더니, 벌써 옮겨 놓았더라.

하기야! 짐이래야 별것 없으니 몇 번 들어 옮기면 끝이다.

김용철씨는 마지막 남은 티브이를 가지러 갔다며 없고,

옮겨 놓은 짐은 이웃의 김정심씨가 정리해 주고 있었다.

자기 살림처럼 얼마나 알뜰하게 챙겨주는지 고마웠다.





그런데 냉장고도 없이 여름을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겠다.

큰 병에 담아둔 커피를 마시라며 한 잔 따라주는데, 맛을 보니 변해 있었다.

좀 있으니, 낑낑대며 티브이를 들고 오는데, 그 것도 고장 난 티브이라는 것이다.

나오지 않는 고물 티브이를 버리지, 왜 힘들게 챙겨 와 선반 위에 모셔둘까?






그런데, 여지 것 김용철씨를 비슷한 연배로 생각하고 반말을 찍찍했는데,

주민등록증을 보니 여든 네 살이었다. 무려 열두 살이나 많은 대선배였다.

겉으로 젊게 보여, 속으로 김정심씨와 같이 살면 서로 도움이 될 것 같았는데,

본인 생각은 어떤지 한 번 물어보아야 겠다.





마음만 맞다면야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둘이 살기는 좁지만, 두 사람 방세 모아 큰방으로 옮기면 될일이다.

중매를 잘하면 술이 석잔이고 잘 못하면 빰이 세대라지만,

빰 맞을 각오로 한 번 추진해 보아야 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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