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은 하릴없이 동자동을 돌아다녔다




앰블랜스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더니, 누군가 구급차에 실려 간다,
동자동에선 구급차에 실려 가는 게 흔한 일이라 다들 죽음조차 초연하다.
저승 대기소 같은 쪽방에서 죽을 날만 기다린다. 



 
어린이 없는 '새꿈어린이공원'은 날씨가 쌀쌀해 그런지 한산했다.
김용철, 김정호씨가 공원을 어슬렁거렸고, 한 노인은 어설프게 기타를 쳤다.
햇살을 받은 막바지 단풍이 공원을 붉게 물들였건만, 아름답고 정겨워야 할 공원이 왜 처연하게 느껴질까?




하루하루를 희망 없이 사는 사람들은 술이 약이다.
공원 앞 쓰레기터에 자리 잡은 지경학씨 노숙 텐트는 술꾼들 아지트다.
눈치 보이는 공원보다 다들 이곳으로 몰려든다. 




그 날은 윤 용, 황우현씨 등 여러 명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지경학씨는 술자리에서 물러나 의자에 앉았는데, 오랜 노숙생활에 찌들어 연신 콜록거렸다.




전기장판이라도 사용하게 어디 전기 좀 끌어올 수 없냐고 물었더니, 꿈도 못 꾼단다.

안 그래도 구청에서 빨리 철거하라는 독촉이 빗발쳐 다른 데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황교안이는 청와대 앞에서도 전기를 끌어와 전기난로까지 켰는데,
너는 왜 안 되냐?“며 염장 지르는 소리를 해댔다.
권력 있는 놈과 거지가 같을 수 있겠나? 평등이란 말은 사전에나 존재한다.




좀 있으니, 목발 짚은 이준기씨가 절뚝이며 나타났다.
나도 올 때 술을 사왔으나, 이준기씨도 사와 술이 넘쳤다.
이곳은 술 담배 인심 하나는 끝내주는 곳이다. 아무나 사고 아무나 마신다.
비둘기조차 같이 먹는다.



좀 있으니, 벌침 놓아주는 젊은이가 나타났다.
몇 년 전부터 동자동을 들락거리는 양반인데, 몸 아픈 사람에게 벌침을 놓아준다.
어디서 잡아오는지 벌을 프라스틱 통에 담아 다니며 공짜로 놓아 주지만, 난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다.




이 날도 벌침을 한 번 맞아 보라고 권했다.
매번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정력도 좋아지냐고 물었더니 손가락 등에 맞으란다.
핀센트로 벌을 끄집어 내 한 방 놓았는데, 따끔하긴 했으나 간단이 끝났다.
이 나이에 정력이 좋아 진들 어디에 쓰랴?




술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는 군대이야기 아니면 잘 나갈 때 이야기뿐이다,
다들 시간만 보내고 사는지라 “세월이 약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 날은 황씨가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절호의 찬스가 생겼으나 놓쳤다는 것이다.
나쁜 짓이라 거절했는데, 제안만 받아들였다면 팔자가 달라졌을 것이라 했다.
생각할수록 후회스럽다며, 일생에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기회를 놓쳐 평생 고생한다고 했다




내가 한 마디 거들었다.
“돈과 권력은 언젠가 사라져도 가오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사진, 글 / 조문호















임대주택 탐방할 주민을 모집하는 벽보가 오래 전부터 동자동에 나 붙었다.
동자동을 재개발하기 위한 작업이 추진 중인데다 

‘대책 없는 쪽방주민 집단이주 중단하라“는민들의 입장이 상충하는 상황이라 임대주택 탐방을 신청했다.

동자동 주민으로 임대주택을 신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난, 동자동 빈민들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절대 이주할 뜻이 없음을 먼저 밝혀둔다.

주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힘을 보태기도 하겠지만, 동자동 사람들의 삶을 마지막까지 기록하기 위해서다.

이주하더라도 임대주택에 갈 것이 아니라 정선 만지산 집을 수리해 돌아가야 한다.



주택 탐방일로 정해진 15일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였다.

집합장소로 정해진 '서울역쪽방상담소' 체력 단련실이 있는 곳에서는 아침부터 김치 배급이 있었다.

한 쪽 벽에 ‘'제2차 임대주택및 지역탐방"이라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서울시'와 '서울주택공사'를 등에 업은 '용산주거복지센터'에서 주최하는 행사였다.

예상했던대로 동자동 쪽방주민들은 몇 명 나오지 않았다.

총 열 아홉명으로 대부분 남영동에서 온 사람이고 아는 사람은 이배식씨 뿐이었다.



'용산주거복지센터' 담당자가 나와 임대주택 탐탕에 대한 취지와 일정을 소개했고, '서울역 쪽방상담소'에서도 보충 설명했다.

옆에는 참가자에게 줄 선물장자 20개가 ‘임대주택 및 지역탐방자 선물’이라는 딱지를 붙여 보란듯이 쌓여 있었다.

다들 45인승 관광버스를 타고 탐방에 나섰는데, 하필이면 임대주택 탐방지역이 동자동으로 옮겨오기 전에 내가살던 곳이었다

수시로 장 보러 다니던 불광동 '대조시장' 옆에 버스를 세워 놓고 시장에서 백여미터 떨어진 연립주택에 들어갔다.

임대주택 탐방 온 주민들이 살 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몇 년전 동자동에서 살던 분이 옮겨 와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전에 연락된 듯한 세 가구를 방문했는데, 15평에서 18평 쯤 되는 각기 조금씩 다른 구조였다.

결론적으로 어디를 가던 이 정도 집을 얻어 살 수 있다며, 이주 신청을 권장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볼 때는 한 평 남짓한 쪽방에 사는 독신이 살기에는 부담스러웠다.

대부분의 주민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임대료야 수급비에서 보장되지만, 그 공간을 채울 가구나 생활용품도 없다.

썰렁한 집인데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집만 넓으면 무엇 하겠는가?

여지것 타 지역으로 이주한 주민들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도 다들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동자동처럼 자주 나누어주던 구호물품도 받을 수 없으니 더 싫은 것이다.

동자동 재개발을 위해 주민들을 이주시키려면 이 같은 땜질식 이주정책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지금 거주하는 동자동은 서울역과 가까운 교통이 편리한 지역인데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이웃이 있다.

먼저 지하철역과 가까운 지역에 빈민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계획된 아파트 건설이 선행되어야 한다.

'서울주택공사'에서 7평에서 10평 정도로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필요한 만큼 지어야 한다.

외곽 지역이거나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하지 않다면, 불편한 만큼의 보상은 재개발조합에서 부담해야 한다.


 

다들 임대주택 탐방을 끝내고 서오능으로 옮겨 ‘남원추어탕’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빈민들이 오랫만에 맛있는 추어탕으로 영양 보충하는 시간이었다.



식사 후 서오능 구경하는 것이 마지막 행사 일정인데, 비가 내려 불가능할 것 같았다.

입구에서 단체사진이나 찍자며 데려 갔는데, 현장에 도착하니 비가 오지 않았다.

가을을 떠나 보내는 서오릉이지만 인적조차 없었다. 빗물에 젖은 단풍은 애잔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왕능은 세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서오릉에 들어가니 초입에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과 속세와 성역을 구분하는 금천교가 있었다.

홍살문부터는 제향을 올리는 공간인데, 왕의 업적을 기록한 비각과 왕의 신주를 모시는 정자각이 있었다.

맨 윗부분은 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능침 공간으로 무인석과 문인석, 석호 등의 호위를 받는 봉분이 자리했다.

왕릉에 따라 구조물과 석물 등이 조금 식 다른데,

그 규모를 보면 왕과 함께 그 시대의 권력이 사라지고 있는지, 이어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숱한 정치적 파란을 일으킨 장희빈 릉도 돌아보았다.



긴 세월 녹번동에 살며 서오릉 앞을 수없이 지나쳤건만, 한 번도 들려보지 못한 자책이 들었다.

다른 분들은 유적에 대한 관심보다 저물어가는 단풍에 취해 서오릉 길을 산책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퀴즈로 선물을 나누어주는 시간도 가졌는데,

관광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뽕짝 음악이 소음되어 괴롭히기도 했다.



처음 떠난 장소로 돌아와 준비된 선물을 받을 차례인데, 쪽방상담소 실장이 올 때가지 기다리라고 했다.

준비한 선물상자를 그냥 나누어주면 될 것을 왜 기다리게 하는지 궁금했는데,

준비된 선물에다 다른 선물박스를 하나 더 보태주는 것이다.

상자에는 된장, 고추장, 김, 통조림, 라면 등 여러가지 식료품이 골고루 들어 있었다.

무거워도 가져갈 수는 있으나, 왜 많은 선물을 집중적으로 안기는지 모르겠더라.

주민에게 골고루 나누어야 할 선물을 몇몇 사람에게 모아주는 이러한 형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입 맛대로 나누어주는 불평등한 분배가 쪽방촌 완장부대를 만들어내며, 주민을 길들이는 경우로 비약되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남거나 적은 량의 물품이 들어오면,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는 노숙자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비효율적인 주거복지 프로젝트도 재고했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8일은 동자동 쪽방사람들이 김치 타는 날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겨울을 나려면 김치가 유일한 반찬이라 없어서는 안 될 부식이다.

2주일 전부터 날자를 바꾸어가며 두 차례나 붙은 벽보에는 8일 오후3시부터 450명 선착순이라 적혀 있었다.

동자동 쪽방에 사는 빈민 수가 천명이 넘는데, 반 밖에 못 받는다고 생각하니, 올 겨울 김치 맛보기는 틀렸다 싶었다.



혹시나 하여 나누어 주는 시간보다 늦게 나갔는데,

추측한데로 김치 받으려고 줄 선 사람이 공원을 돌아 400명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그 때까지 나누어 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나마 날씨가 춥지 않아 기다릴 수 있었는데, 번호표가 없으니 몇 명째인지 알 수 없었다.

450명이 넘으면 기다릴 필요가 없지 않는가?



나 뿐 아니라 주변에 줄 선 사람들도 걱정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서울역쪽방상담소'의 전익형 실장이 오늘 타지 못해도, 다음 주에도 나누어준다며 안심시켰다.

지금 줄 선 사람이 몇 명이나 되냐고 물었더니, 사람이 많아 파악할 수 없다며 돌아갔다.

생각이 바뀌었는지, 좀 있으니 줄 선 인원수를 세기 시작하더니, “줄 선 사람은 다 탈 수 있다”고 했다.



내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정확하게 두 시간이 걸렸는데,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서울역쪽방상담소’ 회원증을 내놓았더니, 김정길씨가 바코드로 바뀌었다며 사무실 가서 등록해 와야 된다고 했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일주일 전부터 알렸는데 왜 협조하지 않느냐고 신경질을 부리며 다음에 타라고 욱박질렀다.

벽보를 보지 못해 등록하지 못했는데, 일부러 안 한 것처럼 말하는 그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직원도 아닌 주민인데, 그가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내 세우는 완장 부대일까?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주민들에게 일괄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벽보로 알리는 것만 고집할까? 지정된 벽보 판도 없는데...

나야 그래도 돌아다니다 나붙은 벽보를 볼 기회라도 있지만,

방에 박혀 사는 노인네들은 모르고 지나 칠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주민등록증에 바코드 하나 붙여 와 어렵사리 김치는 탔다.

누구의 도움인지는 모르나 올 겨울 반찬 걱정은 덜었는데, 김치가 예년과는 달랐다.

김치를 스치로폼 박스에 담지 않아, 김치가 익어 신김치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김치를 공짜로 얻어먹었으면 누가 보낸 것인지 알고는 먹어야 할 것 아닌가?

고맙게 생각하며, 우리가 도울 게 있으면 보답하는 것이 도리다.

그리고 김치나눔 봉사라면 직접 나누어주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물질적 가치보다 주는 사람 마음이 전달되어야 하니까..




혹시 그게 아니라, 지자체 예산으로 만들어진 김치라면 나눔이라기보다 배급이다.

배급이라면 전 주민에게 일정량을 골고루 나누어 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주민들 어려움은 생각치 않고, 일하는 사람 편리에 따르는 그런 복지라면 이제 집어치우라.

주민들 줄 세워 길들이지 말라고 노래 부른지가 삼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고 있다.

'쇠귀에 경 읽기'인데, 잘 못된 것이라면 고쳐야 할 것 아닌가?



부자나 거지나 다 같은 사람이다.

이 정부에서 내 세우는 기치가 무엇이더냐?

바로 “사람이 먼저 다!”


사진, 글 / 조문호















날씨가 추워지면 대개의 동자동 사람들은 방안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거리에 방치된 노숙자들만 주차장 구석에 모여 앉아 술로 시간을 죽인다.



한산한 공원 주변을 돌아보니, “쪽방주민 집단이주 중단하라”는
주민대책위에서 내건 현수막이 오늘의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동자동 재개발을 위해 주민들을 외곽으로 이주시키려는 작업이 추진되지만,
나간 사람들도 다시 돌아오는 실정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딴 지역인데다,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쪽방 촌에서는 수시로 여러 가지 생필품을 나누어주었지만, 요즘은 예전같지 않다.

줄 세워 주민들을 길들이지 말라는 비난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외곽으로 내 몰기 위한 작전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누어주는 구호물품도 대개가 유통기간이 임박한 상품이 많다.

시중에 팔기 힘든 상품으로 선심 쓰는 기업들도 비인간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나 역시 라면 같은 것은 바로 끊여먹지만, 자칫하다가는 유효기간을 넘길 때가 종종 있다.




방안에서 밥해 먹을 수 없어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선호하는 라면 외는 쉽게 손이 가지 않아 유효기간을 넘기게 된다.



노숙하는 친구들은 유효기간이 지나도 괜찮으니 갖다 달라지만,
내가 못 먹는 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겠나?



쉽게 내 뱉는 인권이니 평등이라는 말은 먼 나라 이야기 같다.
국회에서도 쌈박질만 할 것이 아니라, 오갈 때 없는 빈민들 대책에 적극 나서라.
버림받은 가난한 사람들은 유효기간이 지난 인간인가?

사진, 글 / 조문호













날씨가 추워지면 오갈데 없는 홈리스가 제일 걱정이다.




두꺼운 옷으로 바꿔 입을 옷이 있나. 꺼내 입을 내복이 있나.
흔해 빠진 전기장판 하나 없지만, 있어도 쓸데도 없다.




차디 찬 시멘트바닥에 신문지 깔아 고슴도치처럼 웅크렸지만
통로에서 몰려오는 찬바람에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




맞바람이라도 피하려 종이 집을 만들어 자니,
사람인지 물건인지 헷갈리기 십상이다.
어차피 사람대접 못 받을 바에야 물건으로 팔렸으면 싶다.




부품은 고물이지만, 살아있는 로봇이 아니던가?
"어디 돈 많은 부자 양반 없나요, 인간 로봇 하나 들이면 어떻겠소?
그마저 안 된다면 관처럼 똘똘 뭉쳐 화장이라도 좀 해 주소"

사진, 글 / 조문호















추석이 되어도 보름달빛은 골고루 비쳐주지 않았다.
동자동 공원에서 잠깐동안 지켜 본 가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다.




허기져 먹을 것이 필요한 노인이 공원을 찾았는데,
그만 발을 헛디뎌 공원계단에서 넘어져 버렸다.
“쿠당”하는 소리와 함께 굴러 떨어져,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몸을 살펴보니, 머리에서 피가 흘렀고 붕대를 맨 팔목에서도 피가 흘렀다.
119 요원들이 달려들어 응급조치 후 병원으로 이송하려 했으나
한사코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손사래 친다.
온 몸이 상처투성인 것으로 보아 한두 번 넘어진 것이 아닌 듯 싶다.




요양원에 계셔야 할 분이 살기위해 움직이니 수시로 넘어지는 것 같았다.
다리에 힘이 없다고 굶어 죽을 수야 없지 않은가?




머리에 부딪힌 게 염려되어, 집에 데려달라는 애원을 마다하고 병원에 이송시켰다.

병원비가 없는 노인의 걱정같은 건 구조 절차에 묻혀버렸다.
노인이 원하는 것은 약이 아니라 빵이고, 삶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좀 있으니, 경찰차에서 술 취한 젊은이가 끌려 나왔다.
아마 술이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것을 순찰하던 경찰이 공원으로 데려온 것 같았다.




대개의 노숙자나 쪽방촌 사람들이 아무 곳에나 쓰러져 자는 것은 힘이 없기 때문이다.
먹은 것이 부실하여 탈진한 상태이니 술을 조금만 마셔도 인사불성 되어 뻗어 버린다.




눈만 뜨면 고통을 잊으려 다시 술을 찾게 되고, 마시면 쓰러져 자는 일상이 반복된다.
알콜 중독자라는 낙인을 찍어 방치한 이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보름달님~ 이 불쌍한 사람들에게도 빛을 비쳐주소서!

사진, 글 / 조문호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마련한 동자동 추석맞이 한가위 잔치가
지난 12일 오전8시부터 오후3시까지 동자동 새꿈 공원에서 열렸다.
올 해로 열 번 째 맞는 ‘동자동 추석맞이 한가위 잔치’는
주민협동회인 ‘동자동 사랑방’에서 주민 후원금으로 치루는 순박한 동네잔치다.



주민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음식 만들어 함께 나누는 잔치라,
돈으로 치루는 다른 축제와는 비교 할 수 없는 값진 축제다.




이 축제가 마음에 드는 것은 축제마다 나타나는 기관장이나 정치인이 없다는 점이다.
잔치에서 만난 김병택씨는 “어떻게 주민들이 협동하는 이 큰 행사에
‘서울역 쪽방상담소’ 직원들이 한 사람도 나오지 않냐?”는 것이다. 
서울시에 민원 넣겠다며 사진자료를 달랬으나,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십년 동안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즉 힘을 키워 왔잖은가?
힘만 키우면 못할 게 없다. 잘 못된 것들은 다 바꿀 수 있다.
사실, 복덕방 같은 느낌이 드는 '쪽방상담소'란 요상한 이름의 조직은 필요 없는 조직이다.
동사무소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별도의 관리업체를 두어 주민들 길들이는 것이다.




잔치 날 비 온다는 일기예보에 걱정도 했으나, 다른 곳만 내리고 동자동은 피해 갔다.

날씨도 시원했고, 주민들의 참석률도 작년보다 훨씬 높았다.
천 이 백여 명의 주민 중에 삼분의 일 정도가 나왔으니, 성공적인 잔치마당이었다.
거지 취급 받는 관에서 치루는 행사와는 다른 잔치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무언의 메시지를 던져 주는 잔치였다.




일 년 동안 동자동을 떠난 분들을 추모하는 차례 상도 차렸더라.
한 달에 평균 두 명 꼴로 동자동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모아둔 영정사진에는 옆방에 살던 연영철씨도 있었다.
방문 틀에 붙여 두었던 신파극에나 나올만한 유한마담 같던
그 포스터 사진의 주인공은 저승에서 만났는지 모르겠다.




추석 차례에 이어 윷놀이와 투호놀이 등의 놀이에다

반주를 곁들인 닭 개장까지 먹으며 반가운 사람들을 한자리에 만났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거기다 노래자랑에서 신명까지 풀어냈으니, 쪽방사람들 살 판 난거지.
모처럼 무대에서 폼 잡으며 동네사람 엉덩이 흔들게 했으니, 스타가 따로 있겠나?
그 신명을 쪽방 깊숙히 가두고 사느라 다들 고생했다.




이 잔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루 종일 방에 처박혀 사는 음지 사람들이 대부분 나왔다는 것이다.
한꺼번에 많은 이웃들을 만나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의미있는 자리였다.
이제 살면 얼마나 살 것이며, 만난들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겠나?




도영씨가 진행요원 옷을 입혀 술 한 잔 마시지 못했지만, 넘쳐나는 신명에 엉덩이가 절로 들썩였다.

흘러간 유행가 자락에 맞춰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이날 노래자랑에서 최경호씨가 선망의 일등을 먹었고,
장애인 부부인 김성호씨 노래와 김진희씨의 수화가 이등,
최춘자, 황옥선, 임한영, 이대영씨가 삼등에서 육등까지 골고루 상을 받았다.




모두 한가락들 했으나, 내 년에는 나도 한 번 도전할 욕심이 생기더라.
틀니 갈고 닦아 한 번 나가 볼 생각인데, 밑져야 본전 아니겠는가?
쪽이야 한 두 번 팔린 것도 아니고...




봄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사진, 글 / 조문호

















































































































































그 지긋지긋한 더위가 물러가니, 어김없이 추석이 다가왔다.

다들 귀성 준비하며 선물을 보내거나 음식 장만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돌아갈 고향마저 잃은 동자동 사람들은 마음도 몸도 한가롭다.


 

인생 막장인 쪽방촌에 들어오기 전만 하더라도

명절만 되면 여기저기 돈 구하느라 전전긍긍하던 사람들이 아니던가?

다 포기하고 나니 잡다한 걱정은 끼어 들 틈조차 없다.


 

힘들어도 살아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걸 지켜보며 추억이라도 떠 올리지 않는가?

이젠, 세상에 대한 원망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다 타버린 촛물처럼 내려앉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속담처럼,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나은가?

모진 목숨 차마 끊지 못할 뿐, 저승을 그리는 사람이 더 많다.

술 한 잔에 모든 근심걱정 내려놓고, 실없는 웃음만 흩 날린다.


 

지난 9일은 동자동 멋쟁이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 잡고 동네 마실 나왔더라.

그래도 이 분들은 의지하고 사는 분이 있어 행복한 편인데,

요즘 할멈 건강이 신통찮아 운동 삼아 자주 나오신다.


 

골목에선 틈틈이 모아 둔 깡통을 손 수레에 옮겨 싣는 이씨의 표정이 넉넉했다.

고물 판돈으로 추석 장보러 갈 것이란다.

이 정도가 동자동의 희망적인 소식이라면 희망적이다.


 

지난 10일 오전에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로 골목이 소란스러웠다.

옆 건물에 사는 젊은이가 갑자기 호흡에 문제가 생겨 119를 불러 놓고, 병원가려고 길가에 나와 있었다.

미안해 내려와 기다렸으나, 구급요원 보기는 좀 떨떠름한 모양이다.


 

태풍 링링도 동자동에선 나뭇가지 정도만 부러트리고 도망쳤다.

삶의 의욕을 잃은 쪽방 사람들은 태풍도 두렵지 않다.

방에서 꼼짝 않거나, 술에 모든 것을 맡긴 체념한 사람들이다.

길바닥에 잠든 이들, 꿈이라도 행복 했으면 좋겠다.


 

지난11일은 오전10시부터 동자희망나눔센터'2층에다 추석명절 공동 차례상을 차렸다.

서울역쪽방상담소김갑록 소장과 주민 송범섭씨 등 몇 명이 차례를 지냈는데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다들 고향을 잃어 조상까지 잊었단 말인가?

큰 절 올리고 약과 하나 얻어 내려오니, 공원에선 이른 시간부터 술판이 벌어졌더라.




그런데, 용성이네 두 모자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애미는 허벅지와 정갱이가 벌겋게 피멍이 들었고, 용성이는 온 얼굴에 상처투성이였다.

술에 젖어 사는 사람들이 5층 옥탑 방 까지 오르내리다 보니, 수시로 넘어져 몸이 성한 날이 없다.


 

얼마전만해도 아들 용성이가 술 끊었다는 말을 전하면서,

자식 자랑보다 술친구를 잃은 허전함의 그늘이 더 짙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둘다 기분 좋게 취해 있었다.

정은 얼마나 많은지, 큰 컵에 소주를 벌컥벌컥 따라주고, 안주하라며 사과까지 나눠준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과 살기 위해 죽지 못한다는 말은 어느 것이 정답인가?

정답은 없다그냥 꼴리는 대로 살자.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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