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더워서 난리를 쳤는데,
오늘은 술로 더위를 마취시켜 버렸다.
알딸딸하니 훨씬 살만하더라.






그래도 잠이 안와, 담배 한 대 물고 옥상에 올라갔다.


아이고! 깜짝이야.

건물 관리하는 정성덕씨 아지매가 먼저 자리 깔았네.






왕왕거리는 개소리에 깨어나 날 반겨주는데,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는 ‘오빠는 잘 있단다.’ 노래가 나오네.







행여 미투에 휘말릴까, 사진만 찍고 내려왔다.
나온 김에 동네 순찰 한바퀴 돌았다.





바람 통하는 비탈 건물 명당자리에는 다들 자빠져 자고,
영달이는 더워도 그림 좋은 자리에 자리 잡았네.






새꿈 꾸려 새꿈공원에 갔더니, 아이구! 이게 왼 떡이냐?
술도 넉넉한데다, 잠 못 자는 놈들 다 모였네.






문신으로 폼 잡는 영철이를 비롯하여
추교부, 유정희 등 동자동 골통들이 판 벌여 놓았네.





삼양동 빨래터 아제가 따라주는 술을 졸라 빨아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노래는 금지다.

살아남기 위한 풍찬노숙의 철칙이다.






하나 둘 쓰러져 자기 시작해 비틀비틀 쪽방으로 기어올랐더니,
옆방의 완석이는 치질이 도졌는지 똥꼬를 내놓고 자더라.





나도 찬물 몇 박 뒤집어쓰고 기어들었으면 그냥 자빠져 자지,

또 일기 쓰느라 씰데 없는 짓거리나 한다.



사진, 글 / 조문호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다들 더위 먹은 개처럼 헉헉거린다.

팻말 들고 구원 받으라는 전도사도 덥긴 마찬가지다.
이놈의 날씨는 하느님 말씀도 듣지 않는다.
날씨도 세상도 다 미쳤나보다.





그래도 늦은 밤이 되면 좀 살만하다.
노숙거사처럼 아무 곳이나 누울 배짱은 없으나
설렁 설렁 돌아다니는 것만도 시원하다.

비탈 건물 계단은 맞바람이 통하니 천국이 따로 없다.
낯 시간은 얼씬도 못하지만,
밤 늦은 시간은 우리들 세상이다.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요즘의 쪽방 사람들은 참고 견디는 인내의 한계가 어디인지 실험하는 것 같다.

다들 찜질방처럼 발가벗고 살지만, 아무도 탓하는 이는 없다.

후덥지근하게 돌아가는 갇힌 바람은 선풍기가 아니라 온풍기다.

뜨거운 바람이 거슬려 잠간이라도 선풍기를 끄면 땀이 팥죽처럼 흘러내린다.

건물이 햇볕에 잘 달구어져, 찜질방이 쪽방을 형님이라 부를 지경이다








그렇지만 다들 폭염을 견뎌내는 그들만의 노아우가 있다.

한계에 부딪히면 화장실에 가서 물 한 두 바가지 뒤집어쓰면 되고,

그도 안 되면 술 한 잔 마신 후, 공원이나 바람 통하는 그늘에 뻗어버리면 된다.

그렇지만, 쪽방 사는 사람들도 가오가 있어, 아무데나 눕지는 않는다.

더워 곤죽이 되어도 견딘다. 그래서 여름철은 노숙하는 친구들이 상팔자다.






옆 건물의 이기영씨는 무더운 여름 나는데, 이골 난 사람이다.

덥다고 생각하면 더 힘드니, 아예 신경을 끈다는 것이다.

가끔 찬물 적신 타올로 몸을 식히지만, 이열치열이라며 운동까지 한다.

나더러도 근육 운동을 하라지만, 개가 들어도 웃을 소리다.

이기영씨는 몸에 살이라도 남았지만, 난 뼈다귀뿐이라 개 달라 들 까 두렵다.





다들 지하철로 가면 시원하게 지낼 수 있건만, 끝가지 방에서 버티는 곰들이 존경스럽다.

옷을 몸에 걸치는 순간 땀에 젖기도 하지만,

비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더운데 힘만 빠져, 가만있는 게 상책이란다.







지난 토요일은 대전에 작업실이 있는 조성기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선배님! 서울역에 왔는데, 동자동 있으면 같이 식사나 하시죠?”

빵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지라, 움직이기 싫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식당가에 내려가니 다른 분과 같이 왔는데, 안면이 많아 보였다.

예전에는 포항에서 사진을 했다지만, 지금은 군부대에 근무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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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씨는 미술은행에 사진을 한 점 팔게 되었다며, 액자 맡기러 서울 왔다고 했다.

요즘 같이 어려운 경기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는데, 조금이나마 숨통이 터일 듯 했다.

고등어구이에다 시원한 냉커피까지 얻어 마시며, 더위를 피하는 시간이 되었다.






손님들이 떠난 후 지하도로 내려갔더니, 처음 보는 사내가 지하도를 안방처럼 누워 있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그런지, 맛이 살짝 간 것 같았다.

노숙을 해도 최소한의 예는 갖추어야 하는데, 저러다 역무원에게 쫓겨난다.

저런 게 민폐라는 것이다. 다른 노숙자까지 힘들게 하니까...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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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10일 현장에서 만난 강호씨가 포즈를 취했다.



이 무더운 여름철에 부식 타느라 줄서서 기다리는 쪽방 주민들 보니 또 속이 뒤집어진다.

지난 해 정수현 소장 때, 핏발 세워 가며 간신히 시정한 줄 세우지 않기가

올 2월부터 ‘온누리복지재단’ 김갑록 소장 팀으로 바뀌며 또 다시 재연되고 있다.

쪽방 주민들에게 식료품이나 물건을 나누어줄 때, 시간 정해 줄 세우지 말고 날자만 고지하라.

전담 직원이 출근하는 시간부터 퇴근하는 시간까지 편한 시간에 찾아가게 하라.

몸이 불편하여 나오지 못하는 분도 많은데다, 보기에도 좋지 않고 주민들을 타자화하여 자립심을 잃게 한다.

양이 부족할 것을 염려하는지 모르지만, 등록된 주민 수만큼 분량을 확보한 후 지급하던지,

그렇지 않다면 주민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차례대로 지급하면 될 것 아닌가? 



지난 6월26일, 김치 받으려는 주민들의 행렬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나와 길게 줄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너희들은 보기 좋더냐?

더구나 요즘은 장마철이라 비도 잦지만, 노인들이 무더운 햇볕에 노출된다는 게 만만치 않다.

주는 입장에서는 하는 일을 떠 벌여 과시하고 싶은지 모르겠으나, 받는 사람들 입장은 죽을 맛이다.

아무리 거지지만 거지 취급받는 꼴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줄을 세우게 되면 받는 사람은 두 번씩도 받지만, 몸이 불편하거나

줄서기 싫어하는 주민들은 받지 못하니 불공평하기 짝이 없다.

나누어 준 후, 찾아가지 않는 분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전화도 해 보고,

이상이 있다면 방문해 보는 것이 원칙 아닌가? 혼자 지내다 고독사하는 일도 다반사인데...

제발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는 행정을 펴라.

부족분도 재고도 없애기 위해, 들어 온 물품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편의성은 있겠지만,

항상 주민들 입장부터 생각하라.



비가 온 지난 6월26일, 김치 받으려는 주민들의 행렬



그리고 어떤 물품이 어디에서 얼마만큼 지원되는지도 투명하게 공개하라.

보내는 분의 고마운 뜻을 알아야 할 권리도 있지만, 그런데서 비리가 생기는 것이다.


그동안 매주 화요일에 지급하는 부식 나눔을 지켜볼 때마다 울화가 치밀었으나,

지난 달부터 동자동 사진을 더 이상 SNS에 올리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공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지난 6월19일, 계란10개를 타오는 주민 모습


몇 개월 전 ‘동자동사랑방‘에서 벌인 어버이날 행사 때 있었던 일이다.

작년 추석 이후에 찍은 사진을 나누어 주는 빨래줄 전시를 하는데,

'사랑방조합' 김정호씨가 전시를 제지해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그 당시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으나, 지나고 보니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떠 벌려 나누어 줄 것이 아니라 번거롭더라도 찾아다니며 전해 준다면 그 보다 좋을 수 없다.

사실 그걸 몰라서가 아니라, 사진촬영에 반감 가진 주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퍼포먼스 성격의 의도도 깔렸다는 것도 솔직히 고백한다.

그래서 일 년에 두 번씩 해왔던 빨래줄 전시는 이제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찍히기 싫어하는 사람은 찍을 필요도 없지만, 사진 값도 절약된다.




비가 온 지난 6월26일의 주민들



그리고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와 ‘동자동 사랑방’ 카페에 부지런히 올려 온

사진과 글도 가급적 올리지 않기로 작정했다.

한 두 사람의 반감보다 개인적 프라이버시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자구책이다.

이젠 올려도 공익을 위한 알림이나 본인의 요구에 의한 사진이나 글만 올리기로 했다.


그랬더니, 인터넷을 이용하는 젊은 친구들은 오히려 왜 올리지 않느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분도 있다.

시시콜콜 동자동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기들이 찍힌 사진까지 올라와 은근히 기다렸는데,

요즘은 ‘동자동사랑방’ 카페에 들어가도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나눔의 현장에서 만난 강 호씨도 그 이야기를 꺼내며,

자기사진이라도 올려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동안 소식 올리지 못한 사정을 이야기하다보니, 말이 길어져 버렸다.



양파10개를 나누어준 7월3일, 주민들은 나누어주는 오후1시 30분이 되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다.



다시 한 번 ‘서울역쪽방상담소’에 간곡히 부탁드린다.
더 이상 주민들을 뙤약 볕에 줄 세우지마라.
언제까지 주민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탁상행정을 계속할 것인가?

이 또한 우리사회에서 청산해야 할 적폐 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무김치를 나누어준 7월10일의 주민행렬
















[빈민운동 사진가 최인기씨, 6월 25일 종자동에서]



지난 25일, 빈민운동가이자, 사진가인 최인기씨가 동자동을 방문했다.
청계천 사진집이 나왔다며, 책을 한 권 가져 온 것이다.
어렵게 만든 사진집이라 사고 싶었으나, 기어이 주겠다는 것이다.

그를 알게 된지는 동자동에 들어 온 이후였으니, 한 이년 가까이 되었다.
노점상 집회나 근로자 집회에 가면 항상 그를 만날 수 있었는데,
만날 때마다 차를 대접하거나 밥을 샀다.
보나마나 돈 안 되는 사진 찍으며 빈민 운동하느라 어려울 것은 뻔한데, 
신세지는 것이 결코 편치는 않았다.
아마 어려운 사람을 두고 보지 못하는 그의 천성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이번에 펴낸 청계천 사진집은 사진이기 전에 최인기의 삶 자체였다.
그는 사진을 예술의 사진보다 가난한 이들의 삶을 알리며
저항하는 도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핍박받는 노점상을 대변하며, 그들의 삶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그 모든 것에는 사람이 우선하고 있었다.

원로사진가들이 찍은 오래된 청계천 판자촌 사진들이 지나치며 찍은 사진이라면,
노무라 목사의 청계천기록을 이은 그의 사진은 주민의 한사람으로 온 몸으로 찍었다.
그 책에는 사진뿐만 아니라 청계천이 바뀌는 과정 과정에서,
빈민들을 핍박한 내용이 일지처럼 적혀 있었다.
잘못된 도시정책에 저항해온 이들의 사진 역사책이었다.

이명박은 청계천복원공사를 강행하며 가난한 노점상과 철거민을 내 몰았다.
오세훈은 시민들의 추억과 삶의 공간인 동대문운동장을 허물었다.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설 때마다 죽어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 뿐이었다.
그 밀고 당기는 긴박한 순간순간을 최인기의 카메라는 놓치지 않았다.

난, 최인기를 사진가로서 보다 빈민운동가로서 더 좋아한다.
잔머리 굴리지 않고, 빈민들의 열악하고 핍박받는 현실을 기록하며
주민들과 함께 싸워 온 지칠 줄 모르는 그 투지를 좋아한다.

청계천은 최인기가 청소년기를 보낸 고향 같은 곳이다.
아버지는 청계천에 있는 출판사에 다녔고,
어머니는 신 평화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셨다고 한다.
그가 살았던 삼일아파트의 옥상과 복도는 그들의 놀이터였다.
도시를 돈으로만 보는 인간들은 빈민들의 삶은 물론
최인기의 유년기 추억마저 송두리째 앗아갔다.
가난한 이들의 삶이 짓밟히며 공동체가 파괴되는 악순환을 지켜본 것이다,

도시 공간의 공공성은 권력 있는 한 두 사람에 의해 구성 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함께 논의되었을 때 성립할 수 있다.
이제 낡은 청계천과 을지로의 골목도 우리 문화의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도시가 되어야한다. 화려하고 새 것만 좋은 것은 아니다.
정책입안자들도 가진 자보다 없는 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최인기는 “저는 이 사진 책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불편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편하지 않음을 통해 이 공간에 대한 의미를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합니다”고
작업노트에 적고 있다.


사진집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하지만, 지속적인 빈민 기록을 위해 한 권 구입 합시다.



“청계천사람들”, 삶과 투쟁의 공간으로서의 청계천


펴낸 곳 : 리슨투더시티
270페이지, 가격 35,000원







그동안 해온 사진 작업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공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피할 수 없다는
오래된 인식을 바꾸게 되었다.

대개 본인이 원하거나 묵인할 때 찍지만,
더러는 원하지 않을 경우도 있다.






흔한 예로 잠든 노숙인을 찍을 때가 그렇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아닌 것도 아닌데, 
찍고나서 양해를 구한다 해도 찍는 순간은 도둑사진일 뿐이다.
사람을 위해 사람을 찍는다는 공익에 대한 명분도
한 사람의 프라이버시 앞에서는 무참하게 무너져 내린다.



뒤늦게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 일주일 전부터
습관처럼 찍어 온 동자동 사진도 이전처럼 노출할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마음을 굳힌 것은 어저께 장경호씨 집에서 찍은 사진 때문이다.
알리지 말라는 후배의 말에도 사는 처지가 딱해 노출시켜 버린 것이다.
본인이 보았는지 모르지만, 심한 자책에 시달린 것이다.
사람을 위한다며 당사자의 뜻이 무시된 사진이 어디 이 뿐이겠는가?
그래서 사진을 내리며 생각을 바꾼 것이다.






평생을 사람만 생각하며, 사람을 찍어 왔지 않았던가.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도 어쩌면 헛소리일 뿐이다.
종국엔 지구의 모든 것이 사라질테니까.

그러면 앞으로 동자동과 인사동 사진은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통하는 사람 대 사람의 일대 일 기록 말이다.
이제부터 블로그에 올리는 사진도 본인이 수긍할 수 있는
다섯 장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여기에 올린 사진은 지난 토요일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부탁한 쪽방주민 조인형씨와 노숙하는 유정희씨다.
조인형씨는 빵 타기 위해 찬송가 적힌 순서 표를 들었고,
유정희씨는 머물고 있는 처소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날따라 원로사진가 황규태선생께서 동자동을 방문해 맛있는 음식을 사 주셨다.
나뿐 아니라 동자동 친구 이기영씨 까지 고마워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1일 오후6시30분 ‘KDB생명타워 동자아트홀’에서 후암특별계획 동자 재계발사업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신동표씨 사회로 열린 이날 주민설명회는 오정자 준비위원장을 비롯하여 김영환 장노 등 170여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그 많은 참석자 중 동자동 쪽방 주민은 한 사람도 없었다.

거리에 공지된 내용은 주민설명회였으나,

실제로는 외지에 사는 건물주나 지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명회였으니,

쪽방에 세 들어 사는 주민이 있을 리 만무했다.






오는 7월13일 오후7시에 같은 장소에서 조합설립준비위원회 설치에 관한 주민총회를 개최한다는 공지도 있었는데,

주민총회가 아니라 지주총회로 이름을 바꾸어야 할 것 같았다. 

그 날 의장과 임원을 선출하고 운영규정이나 재개발사업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개발부지 평수는 13,600평이라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으나 대략의 청사진만 보여 주었다.

재개발사업을 조합방식보다 한국자산신탁에 의뢰하는 신탁방식이 공기도 당길 수 있고 비용도 절약 된다는 설명이 따랐다.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려면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되면 천 여 세대가 넘는 쪽방주민들은 거리로 내 몰릴 수밖에 없다.

노숙자를 양산하지 않으려면, 개발에 앞서 빈민들의 주거대책부터 마련되어야 한다.






쫓겨 날까바 불안에 떠는 빈민들의 걱정부터 풀어다오.
서울시에서 빠른 시일 내에 이주 대책을 마련하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2일 이른 아침,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인사동 지킴이 공윤희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 왔는데,
느닷없이 동자동으로 찾아 오겠다는 것이다. 
위치를 묻기에 서울역 11번 출구로 나오라며, 일어나야 했다.






동자동 새꿈 공원의 풍경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마치 가난을 조롱하는 듯한 선거 현수막이 낯설 뿐,
그 아래는 노숙자들과 쪽방 빈민들의 고단한 삶이 너부러져 있다.
이른 시간부터 술을 마시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공윤희씨를 만나 커피 한잔 사들고 쪽방으로 올라왔다.
조촐한 살림을 살펴보더니, 침대는 누가 만들었냐고 묻기도 했으나,
은평 구의원에 출마한 조햇님이가 걱정되어 온 것 같았다.






요즘은 걱정해 주는 사람이 너무 많아, 오히려 내가 부담스럽다.

기대에 못 미치면, 무슨 면목으로 얼굴들겠는가?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위안했으나, 마음은 편치않았다.






노숙자를 비롯하여 가난한 사람이 많은 이 지역은 대부분 선거에 무관심하다.

당장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이 더 급하지만, 정치 하는 놈은 말만 앞선다는 것이다.

썪은 정치판을 통채로 바꿀 수는 없을까?





그래도 동자동은 '사랑방조합' 덕에 정의당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지만,

지역 출마자가 없어 서울시장이나 비례대표만 표를 줄수 있을 뿐이다.

누가 당선되던, 제발 가난한 사람이 소외되지 않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다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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