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여름 날씨다.
따끈따끈하게 달구어진 옥상 열기로 쪽방은 찜질방이 되어버렸다.


올 여름 지낼 생각하니 아찔하다.
정선으로 피난 갈 작정이나, 노숙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여름은 노숙, 겨울은 쪽방이라 하지 않는가?






지난 달 어버이 날에는 동자동과 서울역 주변에 노숙자들이 너무 많았다.
안쓰러운 행색이지만, 지나치는 사람들의 그들에 대한 시선은 차갑다.
“멀쩡한 것들이 일안하고 논다”는 투다.






다 사정이 있다. 일방적으로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물론, 젊은이도 있고,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나
대개 지병이 있는 환자들로 술 없이는 못 견디는 알콜 중독자다.
모든 희망이나 삶의 의욕마저 잃은 사람들이다.






노숙자들은 아이엠에프 금융위기에 급속히 불어났다.
한 마디로 살벌한 돈 전쟁에서 패한 패잔병들이다.
사업이나 가정만 파탄나지 않았다면, 거리로 내몰릴 가능성이 거의 없던 평범한 시민들이다.
간혹은 사회적 규범에 갇히기 싫은 히피 기질의 노숙자도 몇몇 있으나 극소수일 뿐이다.






길에서 자는 노숙의 노자를 길 노(路)자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노숙자라는 말은 바람 속에서 먹고 이슬을 맞으며 잔다는
사자성어인 풍찬노숙(風餐露宿)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러니 길 노(路)자가 아닌 이슬 노(露)자를 쓰는 노숙자(露宿者)다.
이슬 맞고 자는 거지가 생겨난 지가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인간의 복지를 최우선시 한다는 요즘 같은 세상에
기초생활수급 혜택마저 받을 수 없는 그들을 너무 냉대하지 마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부터 거두어다오.






‘다시서기’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신경 쓰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그들도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까다로운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이제 벼랑에 몰린 그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을 다 같이 고민해야 한다.






노숙자는 하늘에서 떨어진 괴물이 아니라, 똑같은 사람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아래 사람 없다”는 말은 결코 헛소리였던가?


사진, 글 / 조문호


















몇 일전 ‘뮤아트’ 김상현씨로부터 이태주를 비롯한 몇 명과 식사 한 번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걱정해 주는 후배들이 고맙기는 하나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매번 얻어먹기가 편치않았다.
글쓰는 문인들과 함께 한다는 이야기를 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몰랐다.






지난 23일 오전 김상현씨가 찾아와 손님들이 기다리는 공원으로 내려갔다.
그 곳에는 '고기방앗간'을 운영하는 이태주씨와 처음 보는 최진희와 박호경씨도 있었다.
그런데, 최진희씨는 나 줄려고 김밥을 잔뜩 말아 왔더라.
공원 옆에 노숙하는 친구들에게 다 주고 싶었으나, 가져온 분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다섯 개만 주었다.
남은 량도 혼자 먹기 벅찬 량이었으나, 일단 쪽방에 올려놓아야 했다.





냉장고에 김밥 넣어두려 쪽방으로 가는데, 김용만씨가 자전거를 타고 오며 불렀다.
아마 누군가의 부탁으로 도시락을 나눠주는 모양인데, 딱 하나 남았다며 날 주었다.
이 친구는 참 착한 친구인데, 전해 주는 표정이 받는 사람 표정보다 더 밝았다.
여지 것 사진이나 옷 같은 물건을 나에게 받기만 했기에,
모처럼 도시락이라도 하나 전해주니,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동자동 사람들이 맨 날 얻어만 먹었지, 언제 베풀어 본 적이 있겠는가?
나 역시 동자동에 와서야 남에게 베푸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체득하였다.
다들 쪽방에 올라갔으나, 방이 적어 다 들어갈 수도 없었다.
받은 김밥과 도시락을 챙겨두고, 기념사진만 찍고 내려왔다.






이태주씨가 예약해 둔 식당은 명동의 ‘오리백숙집’이라 했다.
동자동에서 걸어가는데,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기다리던 또 한분을 만났다.
김정은씨라 했는데, 다들 글 쓰는 모임에 함께 하는 분이었다.
온라인에서는 자주 만나지만, 가끔 이런 모임도 있다는 것이다






아들 햇님이가 마흔 두 살인데, 세 아가씨도 비슷한 또래였다.
그런데, 세 아가씨 모두 처녀라니, 욕심 생기더라.
여지 것 장가도 못간 아들이 있으니 며느리 삼고 싶은 생각이 어찌 없겠는가?
애비 마음이야 어쩔 수 없지만, 처녀나 아들이나 사람이 없어 결혼 못 했겠는가?
오늘 만난 처녀들도 다들 사정이 있겠지만,
햇님이도 단칸방에서 노모와 외할머니를 모시고 사니, 어찌 결혼할 엄두를 내겠는가?






그런데, 명동이 이태주씨 고향 같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 나누고, 구멍가게 주인까지 그를 반겼다.
그 짧은 시간에 아는 사람을 몇 사람이나 만났는지 기억도 분명치 않다.
더구나 친형이란 분을 만났는데, 이태주씨 에게 용돈까지 주었다.
이태주씨는 동자동에서도 살았지만, 명동에서도 오래 산 듯 했다.






나그네들만 북적이는 명동에서, 아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는 것이 신기했다.
요즘은 같은 동네 살아도 정 나누지 않으니, 누군지도 모르며 살아가는 세상 아니던가?
모든 건 상대적이다. 이태주씨가 정을 주니 가능한 것이겠지.






예약해 두었다는 식당에 갔더니, 예약시간보다 빨라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예약손님만 받을 정도로 손님이 많은 모양인데, 얼마나 맛있을지 기대되었다.
손님이 많은 집은 미어터지고, 없는 집은 파리만 날려야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니, 없는 사람은 늘 가난하게 살아야 할 운명의 장난인 것이다.






시간이 되어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으니, 이태주씨 친구인 김종국씨도 찾아왔다.
그 자리에서 김정은씨가 시화 액자를 꺼내 남자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너무 고마운 분인데, 이름도 요즘 뜨고 있는 김정은이가 아니던가?
‘명백한 생“이라는 제목의 시였는데.“저주의 피를 토 한다”라는 대목이 머리에 박혔다.






온갖 한약재들이 들어 간 오리백숙이 나왔는데,  좀 색다른 맛이었다.
시를 생각하니 그 맛있는 음식이 차마 목구멍에 넘어 가지 않았다.
남은 음식을 싸 가지고 나왔는데, 찻집에서 커피까지 얻어 마셨다.






다들 헤어진 후 김상현씨와 동자동으로 돌아오다, 차 안에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매번 남에게 도움만 받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어저께 지하철을 기다려다 보았던 '촛불'이란 시가 떠올났다.
“나는 당신을 위해 눈물로 땅을 적시고, 대지에 입을 맞추려는 촛불입니다.“

난, 누구를 위해 과연 몸을 태운 적이 있었던가?

사진, 글 / 조문호
































몇일 전 '동자동 희망나눔센타'에 들렸더니, 주민들이 종이공예 수업을 받고 있었다.
요즘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는 붓글씨, 종이공예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가르치고 있다.
돈벌이와 연결될지는 모르지만, 보람 있는 여가생활로 작가적 품성을 기르는 것이다.




입구에는 임대주택 이주자 신청을 받는다는 공고가 붙어 있었다.
그렇지만 신청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임대주택 이야기에 다들 손사래를 쳤다.
“어렵게 사는 것이야 마찬가진데, 방 좀 넓다고 대수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는 사람도 없는 모르는 곳에 징역 갈 필요 없다고 했다.
좁고 후진 쪽방이지만, 밥 한 끼라도 얻어먹기 편하고,
아는 사람 많은 쪽방에서 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역이라는 교통이 좋은 점도 작용하는 듯 했다.




하루하루를 힘들게 연명하니, 그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살면 얼마나 살 거라고, 그냥 한 곳에서 살고 싶은 거다.
가족도 친구와의 연락도 끊겼는데, 가면 외로워서 못산다고 했다.




신청마감일이 지난 23일 다시 들렸더니, 마감일은 내일까지 연기되어 있었다.
아래 공고를 참고하여 넓은 공간이 필요한 주민은 서둘러 신청하기 바란다.
짝이라도 있는 분은 비좁어 살 수 없지 않은가?

사진, 글 / 조문호







입주신청 받는 임대주택













'희망과 나눔 경로잔치'에는 할아버지 보다 할머니가 더 많고, 할머니들은 아지매 처럼 젊어 보이네요.
지난 16일, '갈월사회복지관'에서 마련한 ‘2018 희망과 나눔의 경로잔치’는 남영동, 동자동 어르신들을 초청한 자리였습니다.
비록 올해 만의 일은 아니지만, 자리를 메운 70%가 할머니였어요.

할머니가 별로 없는 동자동의 할아버지들이 간혹 보였지만,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남영동에서 오신 것 같아요.




이제 여성 전성시대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미투 사건으로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합니다.

여자들이 경제권까지 잡았으니, 사내들은 찍소리 못하고, 눈치 보느라 눈물 흘릴 일만 남았어요.
남녀평등이란 말은 입에 발린 소리고, 어차피 강자와 약자가 존재할 수 밖에 없지요.
저승 계신 영감님들이 보면 미치고 팔딱 뛰겠으나, 돌고 도는 게 인생인데 어쩌겠어요.




그 판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이 삼십 년 전, 남편의 월급이 마누라 통장에 들어가며 시작되었지요.
월급 받은 돈으로 생색내고, 가오 잡던 사내들이 무기를 뺏겼으니, 그만 꼬리 내린거지요.
사실은 돈이 좌지우지하는 더러운 세상을 여인들이 물려받은 것입니다.
몸은 편할지 모르지만, 돈의 노예가 되기 시작한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경노잔치가 작년과는 많이 달라졌네요.
작년에는 젊은 각설이가 나와 할머니 등에다 가짜 거시기를 비벼대는 추태도 벌였습니다.
할머니들을 웃기려 한 짓이기겠지만, 열받아 시정을 촉구했었는데, 이번엔 달라져도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축사를 하는 관리나 폼 잡는 인사들도 연어처럼 자식에게 희생될 수밖에 없는 부모 이야기를 풀고,

어떤 사람은 어르신을 업어 주기도 하네요.




손자 같은 어린애들 불러 재롱도 떨게 하고, 어떤 분은 하모니카로 옛 향수에 젖게도 합디다.
선물로 타올과 떡을 나눠 주고, 식당으로 안내해 밥도 챙겨주었지만, 오직 반주만 없었어요.
할머니들이 많아 그런지 모르지만, 경노잔치에 반주 한 잔 없는 것이 좀 그렇네요.



더러운 세상, 술이 약이란 건 잘 아시잖아요.

취하지 않고 어찌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으며, 취하지 않고 어찌 사랑 할 수 있겠습니까?


꽃이 피었으면 나비도 날아 들게 해야지요.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고, 더불어 사는 거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수요일엔 하늘이 무너질 듯한 천둥소리를 내며
장대 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누구보다도, 동자동 공원 앞에서 노숙하는 친구들이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인네 치마폭 같은 조그만 천으로 가리고 앉았으나,
쏟아지는 빗물을 감당하기엔 속수무책이었다.






이불을 비롯한 모든 살림은 흥건하게 젖어버렸고,
노숙자들은 물에 빠진 쥐처럼 웅크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주제에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이곳은 서너 달 전, 방세 보증금 50만원을 다 까먹고
쪽방에서 쫓겨 난 사람이 임시 숙소로 사용하던 곳인데,
서울역 주변의 노숙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며, 그들의 피신처가 된 곳이다.






본래 쓰레기나 폐품을 모아두는 막다른 길 모퉁인데다,
한적한 구석을 주차된 차들이 가려주어 쉽게 노출되지 않는 점도
거처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당사자가 아닌 시민 입장에서야 없애는 것을 원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서울역 주변을 어수선하게 하는 것 보다 낳지 않겠는가?






지금은 이덕영, 원종훈, 이경환, 강 원, 김창원, 박상일씨 등
여러 사람이 밥 타먹는 시간이나 자활 나가는 시간외는
언제나 함께 머무는 노숙인들의 쉼터가 되어버렸다.






햇볕이나 비를 피하기 위해 조그만 천으로 하늘을 가렸으나,
쏟아지는 비는 그대로 흘러 내렸다.
비가 잦은 요즘은 수시로 빗물에 젖을 수밖에 없는데,
그들은 갈아입을 옷도 없는 단벌거지가 아니던가.





서민복지를 입이 아프도록 노래 부르지만,
큰 그림보다 바닥에서 헤매는 이런 일부터 좀 도와주어야 한다.
그 흔해 빠진 천막하나 쳐주는 것이 그리 어렵겠는가?






자활로 쪽방에 들 형편이 될 때까지, 임시방편으로 천막 하나 쳐 다오.
외관보다 더 급한 것이 사람의 생명이다.
사람 나고 돈 나지, 돈 나고 사람 났던가?



사진, 글 / 조문호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은 적은 없었다.
입이 호강한 건지 고생한 건지 도저히 분간이 안 된다.

지난 토요일은 동자동 노숙자들과 어울려 한 잔했는데,
마침 ‘뮤아트’ 김상현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조폭 두목이나 탈 듯한 검은색 밴츠를 타고. 술 마시는 현장까지 찾아 온 것이다.






같이 놀던 노숙하는 친구들 볼까 황망하게 차에 올라탔다.
마음이 다급해, 막걸리 두병 사주기로 한 약속마저 잊어버린 것이다.
멀찍이서 쳐다보는 눈길이, 마치 정앙중보부에 끌려가는 것처럼 보았다.
차에는 뮤지션 김상현씨를 비롯하여 ‘고기방앗간’ 이태주씨,
재즈피아니스트 박상민씨가 타고 있었다.






해방촌에서 ‘고기방앗간’을 운영하는 이태주씨로부터
오래전부터 식사 한 번 대접하겠다는 걸, 여지 것 미루어 왔던 터다.
해방촌이면 같은 용산구에 있으니 지척이 아니던가.
이태주씨는 오래전에 동자동에서 살아 이곳 사정도 훤히 알고 있었다.
내 사는 것이 안타까워, 원도 한도 없이 먹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고기방앗간에 도착해 보니, 아래층은 방앗간 음식이 맛있다는 소문이 났는지

방앗간 참새들이 가득 자리를 메우고 있었고, 이층 한적한 곳에 준비해 두었다.


피아니스트 박상민씨의 ‘The lonly one’과 김상현씨의 ‘imagine“등
향수에 젖어들게 하는 멋진 피아노 연주로 분위기를 잔득 돋우었다.






현역 육군소령인 조대현씨가 음식을 갖다 나르기 시작했는데,
먹어 치우기 바쁘게 다른 음식들이 쏟아져 나왔다.
피자로 시작하여 스파게티와 스테이크가 줄줄이 나왔고,
마지막에는 바다에서 급송해 왔다는 회까지 가져 왔는데,
도저히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고급 위스키마저 눈에 들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후, 김상현씨가 동자동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술이 떨어져 빈병만 쳐다보고 있는 동자동 친구들에게
늦게나마 막걸리를 사줄 수 있었다.






김상현씨는 내 사는 것을 본다며 쪽방까지 따라 올라 왔는데,
제과점에서 빵을 잔뜩 사 온 것이다. 그 날은 토요일이라 빵 탄 날인데...
좌우지간, 먹을 복이 터진 하루였다.
소처럼 되새김질만 할 수 있다면, 며칠 동안 먹지 않아도 될듯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가 없는 사람에게 스테이크를 드려 미안하다며, 아침식사로 닭죽을 끓였다는 것이다.
이가 빠져도 갈비까지 녹여 먹을 수 있다며 허풍을 떨어댔다.






김상현씨가 타고 온 택시에 실려 다시 해방촌으로 갔는데,
그 자리에는 전활철씨와 아들 시원이와 딸 예원이도 함께 왔었다.
닭죽은 물론 백숙까지 잔뜩 먹어 치운 것이다.






이태주씨 덕에 연 이틀 동안 맛있는 음식을 포식할 수 있었다.
거지 주제에, 이렇게 과분하게 먹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잊었던 음식 맛을 일깨워준 이태주씨 내외에게 감사드린다.
사진이라도 멋지게 한 판 찍어줘야 할 텐데...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토요일은 아침부터 반갑지 않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허기 때우려 새꿈 공원에 빵 타러 갔더니, 마음까지 축축했다. .
비가 와도 빵 주는 '한강교회'사람이나, 빵 타기 위해 줄 선 노숙자나 힘든 것은 다 마찬가지다.





난, 노숙자는 아니지만, 빵으로 끼니 때우기를 즐긴다.
어디서나 간단하게 먹을 수 있으니, 버릇 된지 오래다.
그러니 빵 나누어 주는 행렬엔 노숙자들이 더 많다.
그 빵이면 삼일을 버틸 수 있으니, 노숙자에겐 최고의 밥이다.






오후에는 공원 아래 둥치 튼 ‘황야의 무법자’ 캠프에 들렸다.
그 곳은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환대받는 곳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지들 주머니보다 내 주머니가 더 무거우니까.
막걸리 세병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송가까지 나온다.






원종훈을 좌장으로 이경환, 강 원, 박상일 등 넷이서 지키지만,
조연배우처럼 왔다 갔다 하는 거지도 많다.
그 놈의 담배 값이 너무 비싸, 술보다 더 목 타게 하는 것이 담배다.
한 대 얻어 피우려고, 담배 피우기만 기다리는 시선들이 따갑다.






버려진 천으로 하늘을 가렸지만, 마시다 보면 온몸이 비에 젖을 수밖에 없다.
속옷까지 젖어 우들우들 떠는 원이의 이빨 부딪히는 소리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쪽방에 기어올라 입지 않는 겨울 옷을 갖다주니,
지 애비 같은 나를 “형님은 죽으면 천당 갈 것”이란다. 이 썩을 놈~






그날 술상 안주는 푸짐했다.
어디서 얻었는지 해물탕 그릇이 놓여 있고, 빵 타는 날이라 술상에 빵 봉지가 너부러졌다.
비닐 벗긴 빵은 이미 빗물에 물러 버렸고, 종이 막걸리 잔에도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경환이 부르는 ‘긴 머리 소녀’에 갑자기 죽은 적음선사가 생간난다.
머리 털 하나 없는 중놈이 부르는 청성 맞은 노래에 다들 배꼽 잡지 않았던가.
그런데, 경환의 노래는 나를 슬프게 했다.
적음선사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노래에 경환의 애환이 실려 있었다.






공단에 들어간 어린누이는 없지만, 말 못할 소녀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기 때문이다.
집나간 지 오래된 애미보다 찰떡이 목에 걸려 돌아가신 할매가 보고 싶단다.
다들 눈물 마른지 오래지만, 이 날은 빗물이 눈물 되어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올 해로 아홉 번째인 동자동 사랑방마을어버이날 잔치가

지난 57일 오전10시부터 오후2시까지 동자동 새꿈 어린이공원에서 열렸다.



 


매년 어버이날마다 쪽방 주민들을 위로하는 어버이 잔치가 동자동 사랑방주관으로 열려왔다.

주민에게 모금한 돈으로 손수 음식을 장만하는 등 서로 정 나누는 의미 있는 자리다.

다들 꽃 달아드리는 이웃의 손길을 다소 어색한 눈길로 바라보았으나,

따뜻하고 흐뭇한 마음이 번지는 게, 금세 느껴졌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쪽방 촌에 거주하는 분들은 대개 자녀가 있어도 찾아오지 않거나,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며 살아가는 외로운 분들이다.

그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음식을 대접하며,

모처럼 이웃과 어울려 대포 한잔 나눌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날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식사 대접에는 공원에서 술을 못 마시게 하지만,

이 날만은 '동자동사랑방'에서 제공한 술을 마실 수 있으니,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미역국과 밥, 부침개, 족발, 소주, 막걸리, 음료수 등 준비한 음식들을 사랑방 식구들이 부지런히 날랐고,

주민들은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는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주민들과 약속한 빨래집게 사진 나눔전도 열었다.

이번에는 사진가 정영신씨의 프린트 협찬으로 가능했는데,

공원에 쳐 놓은 빨래 줄에는 작년 추석 이후에 촬영된 85장과,

지난 빨래줄 전시에 걸었던 사진 중에 추가로 원하는 15점 등 모두 100점을 내 걸었다.



 


그런데, 뭔가 착각한 동자동 사랑방임원 한 사람이 사진 설치에 제동을 걸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행여 잔치 분위기를 헤칠까 대꾸하지 않은 채, 설치 예정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지나서야 걸었지만,

이건 분명 짚고 넘어 갈 사안으로, 당사자의 사과와 사랑방조합의 공식 견해를 요구할 것이다.



 


서로 돌려보기 싶도록 빨래 줄에 건 사진들은,

본인이 갈 때 거두어 가기로 되어 있으나, 잊어버렸는지 행사가 끝났는데도 절반이 남아 있었다,

나 역시 안애경, 류성조, 정영신씨 등 손님 맞느라 사진을 챙겨 드리지 못했다.

어쩌면 사진을 빌미로 다시 술 한 잔 나눌 수도 있으니,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미처 만들지 못한 사진이나 추가로 촬영된 사진은 올 추석에 돌려드릴 작정이다.

동자동 사랑방추석잔치는 고향 떠나기 하루 전에 치루지만,

빨래줄 사진 나눔 전은 작년처럼 추석 당일에 실시할 예정이다.

고향이나 가족을 찾아 갈 수 없는 분들을 위한 배려이니, 착오 없으시길 바란다.



 


그리고 본인 사진이 없다고 서운해 하지 말고, 혹시 거리나 공원에서 만나면

어이~ 사진 한 판 멋지게 찍어 줘라고 말을 하라, 결국 남는 건 사진뿐이다.

그 기록들이 가난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역사가 될 것이다.





행사가 끝난 후, 찾아 온 손님들과 어울려 서울역 284’에서 열리는 “Market EuRang"에 들려

젊은 작가들이 펼치는 공예의 일상화전도 들려보고, 서울역 맛집에서 늦은 점심도 먹었다.

돌아오다 보니, 서울역 주변에서 쓰러져 자는 김지은씨 등 노숙하는 친구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들은 어버이날 행사조차 끼일 수 없으니, 카네이션은 커녕 따뜻한 밥 한 끼 챙겨먹지 못한 것이 뻔하다.

빈속에 독주만 들이켰으니, 저렇게 쓰러져 잘 수밖에...




 

행사를 치룬 공원에는 몇 몇 분들이 남아 한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이상준씨는 나에게 전해 주라며 김도이씨가 맡겨 두었다는 비누와 향이 든 선물 봉지를 주었다.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을 텐데그의 고마운 마음 잘 간직하겠다.




 

옆에 있던 이기영씨가 나를 불렀는데, 갑자기 호칭이 달라졌다.

평소에는 어이~“라며 만만하게 대하는 친구가 "조기자, 나 좀 보세라고 점잖게 말하지 않는가.

닭발을 먹고 있어 "닭발에 걸려 헛소리냐고 대꾸했더니,

나에 대해 모르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것이다.




 

찾아 온 여인들과 총총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여러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았다.

이기영씨야 인터넷을 하지 않으니 아무 것도 몰랐으나,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간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기자라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았다.



    

 

배운 짓이 사진 찍는 일과 글 쓰는 일 뿐이니, 이곳에서나마 보탬이 되면 좋지 않냐고 말했으나,

예전처럼 편안한 사이가 지속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기자와 주민 사이에 생기는 거리감 같은 경계가 쉽게 해소될 수 없을 듯 하다.

여지 것 가장 우려해 왔던 일이 현실로 다가 온 셈이다.



 


이날 잔치에는 동자동사랑방김호태 회장을 비롯하여 많은 주민들이 협력하여 일사불란하게 치러졌는데,

외부 손님으로는 예술감독 안애경씨와 사진가 정영신, 김 헌씨, 그리고 류성조, 이보영씨 등

여러 명이 함께하여 보람된 어버이날 행사를 도우며 지켜보았다.

 

다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어, 내년에 다시 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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