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동지 날은 해마다 서울역에서 홈리스 추모제가 열리는 날이다.

‘홈리스 행동’을 비롯하여 ‘동자동 사랑방’등 40개 반빈곤인권사회단체가 연대한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에서 추진한 행사로,

무연고 홈리스 사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문화제다.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분향소가 마련되어 서울역광장을 오가는 시민들이 헌화하기도 했다.

인간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가난과 병에 시달리다 죽음에 이른 무연고 사망자들의 죽음을 사회에 알려 추모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야하는 홈리스의 복지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거리나 쪽방에서 외롭게 죽은자를 추모하는 자리지만, 무관심한 사람이 더 많았다.

국민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살펴야 한다는 말들은 하나, 말 뿐이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지하도에서 연명하는 홈리스 이야기를 꺼냈더니, 한 친구가 핀잔을 주었다.

게으르고 술만 마시는 그들은 어쩔 수 없다며,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했다. 너무 열 받아 한 마디했다.

“눈에 비는 거로 판단하지마라. 니가 그 사람들 사정이나 한 번 들어 봤나?

돈이 사람을 망치는 세상의, 한 희생자일 뿐이다. 어쩌면 돈에 길던 니가 더 잘 못 산긴지 모른다.“






세상이 정해놓은 논리에 순응하지 못해 비참하게 죽었는데, 누가 그들의 죽음에 돌을 던질 수 있겠나?

추모제가 열린 날은 다른 날에 비해 덜 추웠지만, 홈리스의 삶은 일 년 내내 혹한의 겨울이다.






매년, 거리에서 죽어가는 노숙자나 쪽방 촌 빈민들이 300여명이나 된다,

그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절실하지만,

편안히 눈감을 수 있는 장례라도 제대로 치루어 주어야 한다.






그 날 서울역광장에서 한 해 동안 세상을 떠난 빈민들을 추모하며, 살아남은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들에게 안정적인 주거와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죽어서나마 영혼이 구천을 떠돌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 많은 무연고 사망자 중에 영정사진이라고는 세 사람 밖에 없었고, 다들 이름만 적혀 있었다.

무슨 놈의 팔자가 그토록 기구하여, 죽어가면서도 자기 얼굴 한 장 남기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추모제에서는 각종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법률상담, 홈리스 사진관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소리 없는 이들의 삶을 기록한 ‘홈리스 생애기록’이란 책도 출판해 나누어 주었다.

홈리스들은 책 자체도 짐일 뿐인지라, 책보다는 ‘동자동 사랑방’에서 끓여 준 동지팥죽을 더 찾았다.






오후7시부터 시작된 추모제 본 행사에는 다들 촛불을 들고 무연고 사망자들을 넋을 기렸는데,

'동자동 사랑방' 차재설씨가 나와 안타까운 추모사를 낭독했다.

쟁가수 박준씨와 ‘노들장애인야학’의 박경석씨의 노래도 있었지만, 마음에 불을 지핀 건 김가영씨의 추모노래였다.

‘새로운 선택’이란 노래도 마음 아팠지만, ‘오! 자유여, 오! 기쁨이여, 오! 평등이여, 오 평화여’ 라고 열창한 노래에 피가 끓었다.






추모공연이 끝난 후 죽은 홈리스의 은신처이기도 했던 서울역 구내를 비롯한 일대를 한 바퀴 도는 추모행진을 하며 구호를 외쳤다.

홈리스 차별을 철폐하라”, “홈리스 인권을 보장하라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1세라지만, 홈리스의 평균수명은 48세라는 걸 잊지 말자.

홈리스의 죽음은 스스로 택한 죽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방치한 죽음이다.

그들도 인간답게 죽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 빈소도 빌리지 못한 채 냉동 보관되다 화장터로 직행한다. 

더 이상 홈리스의 죽음을 방치하면 천벌 받는다.






이 날 추모제에는 '동자동사랑방'의 선동수간사를 비롯하여  김장수, 조두선, 김정호, 차재설, 김호태, 이난순, 유한수,

윤용주,, 박희봉, 홍홍임, 조인형, 유영기씨 등 많은 동자동주민들이 나와 팥죽을 나누어 주는 등 일 손을 도왔다.


우연히 행사장에서 옛 사우 박옥수씨를 만났는데, 요즘은 충무로에서 철수하고 집에서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쪽방사람들이 추운 날씨에 어떻게 지내는지, 다들 걱정되는 모양이다.
사진하는 정영신씨가 지난 12일 동자동을 방문했다.





내 사는 것도 보고 싶겠지만, 용성이 모자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수면바지 두 개와 먹거리를 사가지고 왔는데,
온 김에 송범섭씨와 장애인화가 윤용주씨도 만나보라고 했다.

 





그 들 살아 온 이야기 들어 보면 책 몇 권 읽는 것보다,
더 값진 공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방 아래층에 사는 송범섭씨 방부터 찾았는데,
그 방은 항상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방이 작아 세 사람 앉으니, 꽉 찼다.






한쪽에는 약봉지가 줄줄이 놓여있고,
한쪽에는 나비 접기 위해 모아 둔 종이 봉지도 있었다.
이 친구는 늘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희망을 갖고 산다.





쪽방상담소 봉사요원으로 일하며, 틈만 있으면 희망의 나비를 만든다.
한 때는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으나, 이젠 달라졌다.
얼마 안 되는 기초생활수급비를 아껴 적금까지 들며 꿈을 키운다.






세 번이나 결혼에 실패하며 희망과 좌절을 반복했지만,
모든 욕심 버렸으니, 더 이상 좌절할 것도 없다.






두 번째는 장애인화가 윤용주씨 방을 찾았다.
들여다보니, 좁은 방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몇 일전 성당에서 치룬 그림전이 성공적으로 끝나 의욕이 충천했다.






작업에 몰두하다보면 다리의 통증마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젠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보라는 부탁도 했다.
그 정도 의욕이고 투지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가 절망의 늪에서 헤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술의 힘이다.






세 번째는 오층 옥탑 방에 사는 황춘화씨 방을 찾았다.
쪽방에서 두 명이 살 수 없어, 높고 가파른 옥탑 방을 얻어 사는 데,
방안에 있어도 입김이 절로 나왔다.






전기장판으로 간신히 온기를 유지하지만, 말이 방이지 창고나 마찬가지다.
두 모자는 큰 냄비에다 술국을 끓여놓고 있었다.






황춘화씨는 40여년 전 남편의 폭력에 견디지 못하여 어린 용성이를 안고 집을 나왔다고 한다.
그 뒤 폭력을 휘두르던 남편은 다른 사람에게 맞아 죽었단다.





자활봉사로 떠돌며 공중화장실 청소에서부터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마저 힘이 미치지 못하니, 동사무소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돌려주었다고 한다.






이젠 힘든 일을 할 필요는 없으나, 늘 아들과 술로 소일하고 있다.
함께 마시다 차례대로 쓰러져 자지만, 행복해 보였다.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이 혼자 사는 쪽방에서,
사랑하는 두 모자가 즐겁게 사니, 그 게 행복이 아니겠는가?





두 사람 모두 술기운에 젖어 살지만,
서로 챙겨주며, 술도 조금씩 절제시켰다.
오히려 나더러 술 좀 적게 마시라며 용성이가 충고했다.






세 사람 살아 온 이야기만 옮겨도 책이 몇 권은 될 것이다.
정영신씨는 작은 위안이라도 주고 싶어 왔지만, 오히려 위안을 받은 것 같다.
어느 누가 그들을 보고, 세상에 불만이 있겠느냐?



사진, 글 / 조문호


























윤용주씨의 한국화전이 지난 3일 후암동 천주교회를 장식했다.

전시장엔 이른 시간부터 주민들의 축하 발길이 이어졌다.
‘동자동사랑방’ 선동수 간사장을 비롯하여 조두선, 강동근, 유영기, 이난순씨 등
많은 분들이 작품을 감상하며, 전시를 축하하고 있었다.






윤용주씨는 작품을 돈으로 환산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겠다고 했으나.
다들 그냥 가져가지 않았다. 하나 같이 어려운 처지인데도
몇 만원씩이라도 모아 서로 정 나누고 있었다. 이게 사람 사는 맛이다.






여지 것 많은 전시를 보아 왔지만, 이 보다 더 성공적인 전시는 없었다.
이번 전시에 30여점을 내걸었으나 여섯 점만 남았는데,
그마저 가져가기로 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작품의 질이 높고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함께 나누었다는 사실이다.






엄청난 돈을 들여 근사한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들도 한두 점 팔리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전시장마다 파리 날리는 실정인데다, 전시가 끝나도 작품을 집에 쌓아놓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윤용주씨 전시는 달랐다.

단 하루 전시로 이만한 관객이 다녀가기도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전시된 작품들이 모두 주인을 찾아 벽에 걸린다는 사실이다.






모든 작품을 팔아도 큰돈은 아니지만,
다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이젠 작가 윤용주 만의 색깔을 찾아 작품의 질을 높이는 일에 정진해야 한다.
또 다른 윤용주씨의 변신을 기대하며,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 글 / 조문호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빈민들의 죽음에 따른 공영장례 지원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가족이 있으면 기초생활 수급자도 제외되고, 운구차와 빈소의 지원도 없다.
서울시의회 공영장례 조례를 계기로 장례의 보편적 복지 의제 중 하나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존엄한 장례를 진행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장례시간 3시간에다 장례비용 40만원으로 어떻게 한 사람의 존엄한 마지막을 보장할 수 있겠나?’
서울시의회가 추진하는 ‘공영장례 조례’를 둘러싸고 터져나온 질문이다.
지난 11월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장례를 치룰 형편이 안 되는 사람에 한해, 
공공이 지원하는 조례를 발의해, 18일 상임위 논의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실용성 없는 조례”라는 비판도 따른다.
‘2017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7일 오전 10시 서울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지원하고 기본적인 장례 절차라도 보장하는 공영장례 조례를 마련할 것과  

공영장례안 전면 수정"을 요구했다.




 

사람의 존엄한 마지막을 위해선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한국소비자원이 2015년 조사한 한국인 평균 장례비용은 1443만원이다.
대부분 부조를 받아 장례비용을 충당한다. 그러나 경제력을 갖춘 가족이 없을 땐 사정이 달라진다.
기초생활수급자 유가족에겐 장제급여 75만원이 지원되지만, 시신을 수습하기도 빠듯한 돈이다.






홈리스행동 등 시민단체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전국의 무연고 사망자는 1232명인데, 
이들 중 80~90%는 실제로 가족이 있지만 비용 등의 문제 때문에 장례를 포기한 경우로 추정한다.
이번 서울시의회 조례는 보건복지부가 노인 돌봄대상자에게 제공하는,
장례서비스 집행기준 범위인 40만원 안에서 지원하도록 정하면서 실효성 논란이 커지게 됐다.
3시간 동안 빈소를 차리기도 어려운 금액이기 때문이다.





30여년 살았던 동자동의 김씨는 지병으로 입원하기 전, 마을 주민들에게 장례를 치러달라는 유서를 남겼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장례라도 치루어 달라는 호소다.
무연고 사망자인 김씨의 시신은 마을 주민들과 '동자동 사랑방'에서 거두어 장례를 치러 주었다.

동자동의 경우는 '동자동 사랑방'이라는 주민협력단체가 있어 가능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공영장례에 대한 지원 대상도 논란이다.

이번 조례는 지원 대상을 무연고 사망자와 연고자가 미성년자이거나 장애인, 75살 이상 노인인 경우만으로

한정하면서 많은 기초생활수급자가 제외됐다.
무연고 사망자는 안치실에서 바로 화장장으로 가는 ‘직장’이라는 방식의 장례를 치른다.
이번 지원 방안에서, 가족이 있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직장’ 이상의 장례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장례를 치루려면, 가장 큰 고민이 빈소마련과 운구차 임대인데,
적십자회가 2016년부터 공공운구차 제공을 중단하면서 많은 빈민들이 어려움을 겪고있다.
조례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공공의 빈소와 장의차부터 지원하고, 최소한의 경비는 보장해야 한다.

당신은 이처럼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고 싶나?


사진, 글 / 조문호





두 발 없는 지체 장애인 윤용주(54세)씨의 한국화전이
오는 3일 후암동 천주교회에서 개최된다.

동자동에 들어 온지가 13년 된 윤용주씨의 인생은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세월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어려운 역경을 딛고 일어선 결실이라 더 아름답다.
아름다운 진경산수를 먹물의 짙고 옅음으로 드러낸 수묵화도 있으나,
대부분 화려한 꽃이 어우러진 채색화가 주를 이루었다.
그가 그려낸 붉은 꽃이 핏빛인양 처연하게 보인 것은,
그림 한 점 한 점에 다시 일어서려는 결기가 엿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IMF가 만들어 낸 희생양이다.
전주에서 건설회사 하청업체를 운영하다 부도나며 비극은 시작되었다.
술로 한탄의 세월을 보내다 가족에게 버림당했고,
서울의 고시촌과 쪽방 촌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기나 긴 체념의 세월은 건강을 돌 볼 여유조차 없었다.
천식과 고혈압, 신장질환, 뇌전증, 폐기종, 당뇨 등 그의 종합병원 수준인데,
몇 년 전 합병증에 의해 혈관이 막혀 다리가 썩기 시작했다.
지난 해만 해도 오른쪽 다리만 절단하였으나,
이젠 두 다리를 모두 잃은 1급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그에게도 한 가닥 희망이 생겨났다.
30대에 상업화가로 활동한 이력을 알게 된 사진가 김원씨가
그림을 그려보라며 사준 화구가 용기를 내게 했다.

20여년 중단되었던 한국화였지만, 그의 집념은 단숨에 세월을 되돌렸다.
한 사람 눕기도 불편한 그 비좁은 쪽방에서 틈만 있으면 붓을 잡았으니,
옛 솜씨가 다시 살아나며 한의 무게까지 입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8월, 제2회 국제장애인미술대전에 출품한 작품이
특선으로 뽑히므로 당당하게 재기하게 되었다.






전시를 이틀 남긴 지난 1일 동자동 ‘새꿈공원’앞을 지나다 그를 만났다.
전시가 눈앞에 닥쳐 할 일도 많을 텐데,
자신의 발 역할을 해주는 전동휠체어가 고장 났다고 했다.
마침 봉사단체와 연락이 닿아 휠체어를 실어 보내고 있었는데,
표정도 밝지만 뚜벅 뚜벅 무릎으로 걷는 걸음에 힘이 실려 있었다.






절망과 희망의 엄청난 차이를 실감하는 자리였다.
인간의 강한 의지 앞에는 몹쓸 병마도 무릎 꿇게 한 것이다.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쪽방사람 모두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는 없을까?

내일은 후암성당에서 열리는 윤용주씨 한국화 보러가자.
다들 윤용주씨의 재기를 축하해주며, 대견한 그의 등 한번 두드려주자.
우리도 그림 한 점 방에 걸어두고, 희망 한 번 싹 틔워 보자.

사진, 글 / 조문호




이 사진은 지난 해 9월 촬영한 사진으로

그 때는 왼쪽 다리도 있었고, 그림을 그리지도 않을 때였다.








지난 26일 ‘갈월종합사회복지관’에서 ‘나누미와 함께하는 따뜻한 겨울나기’ 행사가 열렸다.
'사단법인 나누미'가 주관하고 'JUBILEE CHURCH'가 협찬한
이 행사는 쪽방촌 사람들에게 겨울침낭을 나누어 주는 훈훈한 자리였다.






동자동 주민 등 250여명이 참석한 복지관에는 성장현 구청장을 비롯하여
진 영 국회의원 등 여러 명이 나와 축사를 했다.


그런데, 민간단체에서 나눔 봉사활동하는데 국회의원이나 구청장이 왜 나타나 공치사하는 줄 모르겠다.

더구나 구청장은 다 끝난 시간에 나타나, 주민들을 다시 자리에 앉혀 늦게 온 변명만 늘어 놓았다.

제발 좋은 일에 속보이는 짓 하지마라.


그리고, 겨울 침낭은 쪽방주민보다 노숙인들이 더 필요한 물건이다.

물론, 다음에 노숙인들에게도 전달해 준다는 이야기는 했으나, 길에서 떨고있는 그들에게 먼저 전달해야 했다.






나누미 이사장인 박종환목사는 인사말에서 따뜻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로 97세의 할머니와 94세의 할아버지가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할머니가 눈을 감은 지 열 일곱 시간 후에 할아버지도 따라 눈을 감았다는데,
평소 화목하게 사시며 장수한 노부부의 행복한 죽음을 주위에서 부러워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분들의 세상사는 방법이 남 달랐단다.
두 분의 공통된 점이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는 것이다.






방에 갇혀 폐쇄적인 삶을 사는 쪽방 주민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문제다.
방에서 티브이만 끼고 하루 종일 지낼 것이 아니라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어울리라는 것이다.

결국 이웃과 정 나누는 것이 보약이다.

사진,글 / 조문호




















세상 뒤집힐 것 같은 천둥소리에, 무슨 죄가 그리 많은지 화들짝 놀랐다.
살 빠진 우산하나 받쳐 들고, 행여 별일 없나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바삐 가는 젊은이가 한 둘 보였으나, 동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민방위훈련이라도 하는 듯, 공원은 적막 속에 쌓여있었다.
비에 젖은 쓸쓸한 풍경은 마치 인간이 사라진 미래를 보는 듯 침울했다.






사람이 그리워 무작정 공원 옆에 있는 쪽방 건물로 올라갔다.
다들 방안에서 알 낳는지, 인기척도 없었다. 
연락도 없이 두드릴 수가 없어 3층으로 올라갔더니,

원용희씨가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어느 방이나 마찬가지지만, 쪽방은 한 사람만 더 들어가도 답답하다.
방에 억지로 끼여 앉았는데, 방이 좁아  다리도 펼 수 없었다.
한 달에 난방비를 포함하여 17만원이라니, 싸긴 싸더라.

남대문경찰서 조사계 조순경인데, 조사할게 있다며 너스레를 떨어댔다.






세상에! 쉰밖에 안된 나이에 마누라와 생이별한지 30년이 가깝다고 했다.

마누라는 상주에서 농사 짓는데,
코딱지만한 땅덩이라 양식 정도 해결할 정도란다.
이제 다 큰 아들과 딸 뒷바라지가 장난이 아니라는 거다.






30여년을 돈 벌기 위해 서울 변두리로 전전하며 폐지를 줍는 등, 안 해본 일이 없단다.
지금은 카톨릭 평화의 집에서 도시락 나눔을 도와주며, 한 달에 28만원 받는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비까지 합하여 80만 원 정도 생기지만, 매달 50만원을 시골에 보내 준단다.
30만원으로 방세 내며 사는데. 줄담배인 담배 값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런대도 “사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말하는 천하태평이다.
아내와 자식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은 추석과 구정뿐이라는데,
명절만 이산가족 만나는 날이었다.






항상 웃으며 힘들어도 세상 원망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착하게 사는 순진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온갖 세상 설음 다 가진 듯, 불만에 찬 내 모습이 비쳐졌기 때문이다.





당신은 소원이 뭐냐고 물었더니,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란다.
자식들은 시골에서 살지라도, 마누라라도 데려와 함께 살고 싶다는 것이다.
수입이 조금만 더 생기면 두 사람이 살 수 있는 큰 방으로 옮길 것이라며, 부푼 꿈을 키웠다.

지금은 천주교 세례 받을 준비도 한단다.






이 험한 세상을 착하게만 사니, 힘들게 살 수 밖에 없다.


서울시에서 가난한 원용희씨에게 영구임대주택 한 칸 줄 수 없나?

30년 가까이 서울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남들처럼 제대로 된 댓가도 못 받은채 희생했으니, 자격은 있을 듯 싶다.
다른 사람은 짝이 없어 외롭게 살지만, 있는 짝도 생이별한 채 살아야 하나?



사진, 글 / 조문호


















토요일은 빵 타는 날이다.
추적추적 비 맞으며 나갔는데,
심하게 젖을 정도는 아니었다.
날씨 때문에 빵 나눔이 없을까 걱정했는데,
잔뜩 줄지은 사람들 보니, 눈물겹더라.






비오는 데도 바리바리 싸들고 온
‘한강교회’ 봉사원들의 마음도 그렇지만,
빵 타려 비 맞고 선 사람들이 얼마나 찡하던지...






진 찍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사진 찍지마~ 초상권 침해야.”
돌아보니 ‘구글 보지’로 알려진 유영철이었다.
비시시 웃으며, ‘이거 형 먹어’라며 금방 받은 빵 봉지를 내 밀었다.
나도 받았다며 밀쳤더니, 추워 보인다며 윗도리를 벗어 주었다.

이 어찌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순정의 드라마가 아니겠는가?






그를 끌고 ‘광주식당’으로 들어가,
된장찌개 1인분에다 막걸리 한 병 시켰다.
밥 한 그릇을 나누어 막걸리와 마셨는데,
술 마시며 털어 놓은 그의 가족사가 엿 같더라.






마누라가 다른 남자와 붙어먹는 꼴을 목격하고,
집 나온 지가 몇 년째인데,
얼마 전에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에도 가지 못했단다.






감정이 격해지는 영철이 더러 ‘광주식당’ 주모가 나가라고 성화다.
남의 가슴 아픈 사연보다 자리 차지한 게 싫은 모양인데,
그의 망가진 모습을 더러 본 듯했다.






광주식당 주모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
망가진 모습으로만 판단하고, 망가진 이유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 모두들 정상이 아니다.
정신병적인 증상이 드러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속에 가두고 사는 차이일 뿐이다.
사실, 양성 환자보다는 음성 환자가 더 위험하다.






인간을 이렇게 만든 주범은 바로 돈이다.

돈이 필요 없는 새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까?
정말, 돌아버리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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