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년 말이 되면 빈민을 돕는 온정의 손길이 이어진다.

그러나 온정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른다.

선물을 전해주기 위해 줄 세우는 것은 빈민을 길들이는 나쁜 관습이다.

물건을 얻기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당사자의 자괴감을 한번 생각해 보았는가?

그 쪽팔림이 싫어 줄서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하루 전에 붙인 벽보를 보고 줄을 서야하니

몸이 아파 밖에 나오지 못하는 분은 주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정작 구호품이 필요한 분은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전해주는 물품들은 중복되거나 당장 필요 없는 물건이 많아 좁은 방에 쌓아두는 불편도 따른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처럼 무조건 받고 보는 나쁜 관습에 길들어 점점 뻔뻔해진다.

항상 당당하지 못하고 주는 갑의 눈치를 살피게 되는 것이다.

 

쪽방 사는 몇 년 동안 주구장창 물고 늘어진 게 빈민들 줄 세워 길들이지 말라는 문제였다.

줄 세울 때 마다 SNS에 까발려 담당 실장과 불편한 관계가 되었지만,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사실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공원에 쌓아놓고 줄 세워 주는 것이

빠른 시간에 처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그 많은 물건을 사무실에 들여 보관하는 일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확산되며 가급적 줄세우는 것을 자제 하는 듯 했으나,

지난 년말 나눔에는 물품 부피가 커서 그런지 다시 재연되었다.

 

지난 24일 오전11시부터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전기장판과 생필품을 나누어 준다는 벽보가 나붙었다.

30분쯤이나 지나서야 공원에 나갔는데, 이미 주민들이 선 줄은 돌고 돌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공원에는 나누어 줄 물품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먼저 받은 분 물품 박스를 확인해 보니 컵라면 열 개에다 된장과 고추장이 담겨 있었다.

가벼운 컵라면 부피에 된장 무게를 보탠 빛 좋은 개살구였다.

전기장판은 해마다 나누어주는 품목이라 남아돈다.

 

줄서기를 포기하고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갔다.

두 시간쯤 지난 뒤 다시 공원에 가보니 그 길었던 줄과 많은 물건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몇몇 사람만 남아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예년과 달리 받아야 할 분들의 신분이 전산화되어

주민등록증을 등록기에 대면 확인되므로 나누어주는 시간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필요한 물품이 필요한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고쳐지지 않는 것은 온정을 보내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적은 돈이지만 현금을 개인별 구좌에 입금시켜 주는 것이 가장 편리한 방법이지만,

상품을 현금으로 바꿀 수가 없다, 그리고 현금은 가급적 지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난으로 고생한 사람들이라 습관적으로 돈을 쓰지 않는다.

먹는 것까지 아끼는 그 꼬불치는 습관은 고칠 수가 없는 것이다.

죽고 나면 아무 쓸데없는 돈을 누굴 위해 이불밑에 묻어둔단 말인가?

 

제일 좋은 방법은 보내 온 구호물품 일체를 관할 푸드마켓으로 보내

정기적으로 필요한 물품을 골라가게 하거나, 아니면 상품권으로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럴려면 무엇보다 온정을 보내주는 분들의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번거롭게 선물 꾸러미를 준비할 필요도 없이 상당의 현금을 동사무소에 기부하면 된다.

 

줄세우는 관습을 고민하다 어저께는 지인 모임에서 그 문제를 꺼냈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조준영 교수께 좋은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어쩔 수 없단다.

상품의 다량구매로 기업끼리 상부상조하기도 하지만,

전해주는 물건의 부피에 따라 받는 사람 기대도 부풀 수밖에 없으니, 상대적으로 덩치가 커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줄 세우는 문제는 기어이 끝내야 한다.

길들이는 일제의 잔재를 세상이 바뀐 지금까지 답습할 수야 없지 않은가?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서라도 기부하는 방법에 대한 의식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더 이상 없는 사람 쪽팔리게 하지마라. 

 

사진, 글 / 조문호

 

 

돈에 떠밀려 죽었다.

비정한 세상이 죽였다.

 

비참하도록 슬프게 죽었다

돈에 병든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사람이기를 포기했다.

 

"내 주검에 침뱉지마라"

 

‘2021홈리스추모제’에서...

사진, 글 / 조문호

요즘 느닷없는 ‘인사동 이야기’ 사진전 준비하느라 똥줄이 탄다.

며칠동안 정신없이 지내다 액자를 맡긴 이제사 한시름 놓았다.

 

뭐보다 머리가 아픈 건 그 많은 사진에서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였다.

오늘의 인사동을 말할 수있는 '묵시록'에 걸맞는 이미지를 골라

흑백으로 바꾸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건 아니다 싶었다.

 

흑백으로 전환하면 사진의 리얼리티를 훼손하기도 하지만,

그 장면에 따른 컬러의 독특한 분위기가 사라져서다.

다시 스트레이트한 본래의 사진으로 바꾸었더니, 훨씬 감이 좋았다.

이제 사진자료들을 정리하여 알리는 일만 남았다.

 

돈 버는 일을 이렇게 열심히 했더라면 강남에 아파트라도 한 채 생겼을까?

돈을 우습게 여긴 스스로의 업이니 누굴 탓하랴 마는 평생 해온 일에 후회는 없다.

 

이제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니, 또 다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점점 힘들어지는 것을 보니, 일을 줄여야 할 때는 된 것 같다.

 

모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지난 이야기라도 끌적일 여유가 생긴것이다.

 

며칠 전에는 일손이 잡히지 않아 바깥 나들이를 했다.

'동자동 사랑방'에 커피 한잔 얻어 마시러 갔더니,

회의 중인지 사람들이 많아 새꿈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낙엽을 머리에 이고 고독을 씹던 가을남자 이대영씨가 반겨주었다.

혼술을 즐기는 이씨가 그 날따라 분위기에 쏠렸는지 술 잔을 권했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는 짹짹이 아낙의 술 공수로 한 병 두병 늘어 갔는데,

영등포에서 동자동으로 이사오기로 한 차씨 아주머니의 등장과

눈 먼 권관수씨 등 술꾼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권씨는 기자들이 몇 명 찾아와 인터뷰를 하고 갔다며 떠벌렸다.

현금을 안 주고 통장에 넣어준다고 불평 했지만, 인터뷰료 들어 올 건수 생겼다는 자랑인 셈이다.

 

요즘 케이비에스에서 연말 특집 제작한다며 동자동을 헤집고 다니는 모양이다.

오전에는 내방에도 찾아와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갔다.

아무튼, 빈민들의 현실이 알려져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눈먼 권씨는 소주를 패트병에 담아 가슴에 품고 다니며 마신다.

담배 한 가치는 항상 귀에 꼽고 다니는데, 어디 떨구었는지 담배 찾느라 여기 저기 더듬었다.

 

귀가 밝아 비둘기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섭하는 판에

잠바 속으로 담배 떨어지는 소리는 왜 못 들었는지 모르겠다.

 

낙엽이 떨어지는 공원의 술상은 어느 술상보다 멋졌다.

 

"하나님! 전기세 많이 나가니 에어컨 좀 꺼 주세요"라고 이씨가 허공에 외쳤다.

날씨가 점차 쌀쌀해 진다는 소리다.

 

 박씨는 뭐가 그리 눈에 거슬리는지 낙엽 떨어지기가 무섭게 쓸어담았다.

지저분해서가 아니라 소일거리로 하는 일이라 말릴 수도 없었다.

 

권씨는 보이지도 않으면서 짤짤이나 고스톱만 하면 딴다고 자랑질이다.

 

본격적인 추위가 몰려오면 다들 방에 처박혀 살아야하니,

오늘이 가을의 마지막 술상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봄이야 다시 오겠지만, 동자동의 봄은 언제 오려나?

 

사진, 글 / 조문호

 

 

노숙인 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시기가 한겨울보다 갑자기 추워지는 이때다.

갈아입을 방한복은 물론 내복조차 없으니, 온종일 바들바들 떨며 지낸다.

 

세상살이 고달프다지만, 노숙인보다 더한 사람이야 있겠는가?

추위를 이기려고 술을 찾게 되고, 술이 술을 마셔 다들 제 정신이 아니다.

술 때문에 노숙인 임시대피소에도 들어갈 수 없는데,

저러다 길에서 얼어 죽지 않을까 걱정이다.

 

요즘 들어 노숙하는 이들의 새로운 풍속도가 생겼다.

노숙의 길로 들어 선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다 버려도 못 버리는 것이 바로 핸드폰이다.

어디 연락할 곳이 있어서가 아니라 게임에 중독되어서다.

 

그러니 핸드폰을 꺼트리지 않으려면 충전할 곳이 필요해

충전 연결코드가 있는 지하도 요소요소에서 온종일 죽치는 것이다.

그런데, 핸드폰 사용료는 어떻게 마련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이야 지하도에 머물러 추위도 덜한데다,

알콜에 중독되어 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노숙인 보다 백배 낫다.

다들 자리 뺏기지 않으려고 한 자리에서 버텨

지나칠 때 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도대체 밥도 먹지 않고 화장실도 안 갈까?

 

하기야! 페이스북에 중독되어 하루 종일 핸드폰을 끼고 사는 세상에

그들인들 핸드폰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죽음의 골자기로 내몰린 노숙인을 걱정하는 정치인들은 왜 없을까?

복지공약을 밥 먹듯 쏟아내는 대선후보들이

노숙인들의 추위를 보살피려는 아량은 왜 베풀지 못할까?

당사자들 표야 없겠지만, 나라도 그런 후보에게 한 표 줄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비러먹을 넘! 아직 배때지가 덜 고파서..”

이 말은 동자동 김씨 영감이 아들 같은 옆방 노씨에게 한 말이다.

엊그제 ‘쪽방상담소’에서 밑반찬을 나누어주었는데,

타러 가자는데 안 간다니 뱉은 욕이다.

 

‘비러먹다’는 말은 ‘빌어먹다’ 옛말로 남에게 구걸해 먹고 사는 것을 말하는데,

반찬 얻으러 가는 자체가 빌어먹는 일 아닌가?

얻으러 가는 놈이 빌어먹는 놈인데,

안 간다는 사람을 왜 빌어먹을 놈이라고 욕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쪽방 사는 빈민 모두가 빌어먹는 사람에 다름아니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는 것이나 구호단체에서 보내 주는

물품들을 받는 자체가 얻어먹는 일이 아니던가?

 

하기야! 자본주의 세상에서 남의 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도 다 빌어먹는 사람이다.

‘손바닥만한 땅때기 한 평만 있어도 빌어먹고 살지는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에서부터 사장과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주종 관계다.

그러니 다들 갑의 자리에 서기 위해 돈 벌려고 눈을 벌겋게 설치지 않는가?

 

그리고 전문 경력이나 기술보다 앞서는 것이 돈이다.

몇십 년을 연구하여 개발해도 창업 자본이 없으면

그 분야에 아무 것도 모르는 자본가한데 빌어먹는 것이 세상 이치다.

가진 자들은 자손 대대로 갑의 위치에 살고, 없는 자들은 대대로 빌어먹는다.

 

없어도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노씨는 줄 서서 얻는데는 잘 나서지 않는다.

그냥 준다는데도 가지 않으니, 영감 입장에서는 답답한 것이다.

두 달 전부터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2주에 한 번씩 밑반찬을 나누어 주고 있다.

‘대한적십자’에서 보낸 ‘희망풍차’란 밑반찬 나눔인데, 다들 기다리는 품목이다.

 

노씨 대신 같이 가 보니, 의외로 줄 설 정도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주민들을 격주로 나누어 분산했으니, 줄 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받은 비닐봉지를 풀어보니, 콩조림과 멸치조림, 짜장이 각각 담겨 있었고,

단감 두 알도 보너스로 들어 있었다.

 

그 정도면 일주일쯤은 라면 신세를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방 없는 쪽방 주민으로서는 그보다 고마운 선물이 없다.

 

반찬은 있으나 밥이 없어, 옆방에서 일회용 밥 하나를 빌렸다.

"젠장, 빌어먹는 짓도 가지가지 하네"

 

사진, 글 / 조문호

 

 

 

 

며칠 전 ‘노숙인, 길에서 살다’ 책 몇권을 배낭에 넣어 나갔다.

아직 못 챙겨 준 사람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 그런지, 공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어떤 전도사는 몸이 편치 않은 이에게 축도를 올렸고,

몇몇은 모여앉아 잡담을 나누었다.

 

공원에 책 줄 사람은 남기씨 뿐이었다.

일부는 쪽방으로 찾아가 전해주었고, 서울역에선 지은이밖에 주지 못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았다.

농담도 하지 않고 뭔가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책 날개에 적힌 약력 때문일까?

작업하러 쪽방에 들어 왔다고 생각했는지 친밀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걸 염려해 여태껏 언론사 인터뷰 요청도 거절하지 않았던가.

 

사실 빈민들의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려면 책만 낼 것이 아니라

널리 알리기 위해 언론 도움도 받아야 했다.

 

그나저나 앞으로 편한 관계로 지내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걱정되었다.

그뿐 아니라 쓸쓸한 가을 날씨마저 우울하게 만들었다.

계절을 타는지 만사가 귀찮고 돌아다니기도 싫었다.

 

혼술은 청승맞아 정동지에게 전화 걸어 술 한잔 사 달라 했다.

둘이서 술 마시며 이런저런 하소연으로 시름 달랬다.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 새겼던 말도 곱씹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항상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현실을 인식시켜 세상을 바로잡는 데 기여해야 한다.”

 

얼마나 계도에 보탬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정말 힘들고 어렵다.

소주잔에 모든 시름과 가을까지 담아 마셔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온전하고 신속한 추진을 바라는 쪽방 주민들의 집회가 지난 13일 오전 11시부터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진행되었다.

 

“내가 사는 동자동, 내가 살아갈 동자동‘이란 슬로건을 내건 이번 집회는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모임‘, ’2021 홈리스 주거팀‘, ’1017 빈곤철폐의날 조직위원회‘,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공동 주최했다.

 

이날 동자동에서는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김정호 이사장, 동자동사랑방 윤용주 대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모임 김영국 위원장을 비롯하여 선동수 간사장, 박승민 활동가, 김호태, 양정애씨 등 30여 명의 주민이 모여 오전 7시30분경 세종시로 출발했다.

 

10시 30분경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홈리스행동‘의 이동현 상임활동가를 비롯한 여럿 명이 먼저와 준비작업을 하고 있었다. 다들 서둘러 나오느라 식사를 못한 터라 준비한 도시락으로 식사부터 했다.

 

국토교통부 청사 주변에는 전국 각지에서 찿아 온 단체의 집회와 갖가지 현수막으로 어수선했다. 누군 ’저런다고 들어줄까?‘지만, 옛 말에 ’우는 아이부터 젓 물린다’란 말이 있듯이 안 하고 내버려 두는 것보다야 백배 낫다.

 

그런데 이번 집회에는 색다른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것 같더라. 여기저기 우산을 배치하는데, 우산에는 각기 다른 글자가 적혀있었다.

 

'홈리스행동'의 이동현씨 진행으로 시작된 주민 좌담회에는 동자동의 김호태, 백광현, 김영자, 앵정애씨가 나와 여러 가지 애로점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김호태씨는 비가 오면 방에 물이 흘러 방 주변으로 도랑처럼 물 고인 흔적이 남아 있다며 사는 꼴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점은 어느 쪽방 건물이나 비상구가 없다고 했다. 만약 불이라도 나면 다닥다닥 붙은 쪽방 건물들은 가파르고 좁은 출입 계단뿐이라 대형참사를 면키 어렵다고 말했다.

 

백광현씨는 건물주인들의 횡포를 꼬집었다. 어느 날 방문마다 안전진단을 이유로 방을 비우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강제퇴거 시키고는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해 다시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양정애, 김영자씨는 동자동은 고향 같은 동네인데, 재개발 소식에 큰 희망을 품고 산다고 했다, 우리도 이웃과 어울려 커피라도 한 잔 나누어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며 좋아했는데, 혹시라도 잘 못 될까하는 걱정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유행가 ‘안동역에서’와 ‘내 나이가 어때서’에다 ‘서울역에서’와 ‘공공개발 어때서’로 가사를 바꾸어 노래 부르는 순서가 되었는데, 대표 가수로 차출된 백광헌씨의 노래솜씨가 보통은 아니었다.

 

동자동에서

 

동자동에 갇혀버린 허무한 세월이여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을 생각하며

남은 인생 희망을 품는다~

지금까지 살아 온 시간

길고도 험했는데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공공주택 사업아~

지금에야 집 같은 집 꿈을 꿔 본다.

공공개발~ 눈물이 난다

 

공공개발 어때서

 

야~야~야~ 공동개발 뿐이죠

우리는 공공개발 원해요~

마음은 하나요 공공개발 뿐이죠

건물주가 우리 집 지어 줄까요~

물이 새도 나몰라

방세만 받으면 끝

돈만 아는 집 주인들 뿐이죠~

세입자 사는 건 관심들도 없고요

오로지 방세만 받으면 끝

싫으면 나가라

우리들은 투명인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요~

 

이어 발언에 나선 주민협동회 김정호이사장은 가까이 지내던 전 이사장 유영기씨와 아끼던 후배 한정민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사람답게 한 번 살아보지도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사람이 죽어도 금방 알 수 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건물주들은 사람이 죽어도 나몰라라 하며 오직 방세 받는 데만 혈안이 되었다며, 이젠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다고 결의를 다졌다.

 

‘동자동 사랑방’ 윤용주 대표는 공공주택사업의 차질 없는 추진으로 사회에서 배제된 쪽방 주민들이 안정된 주거환경 속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모임 김영국 위원장은 공공주택사업추진 조직에 쪽방촌 주민대표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며 당사자 의견도 반영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장했다.

 

‘양동쪽방 주민회’ 용명중 위원장은 충분한 물량공급으로 개발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우리도 교도소 독방 같은 쪽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연대 발언으로 나선 세종장애인차별철페연대 문경희 대표의 설움을 토해내는 울부짖음은 듣는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흔들림 없는 시행을 촉구하는 요구서를 김정호, 윤용주, 김영국 주민대표가 차례대로 낭독하며 국토교통부 담당자에게 전달했다.

 

이어 ”공공개발 환영한다. 적정면적 제공하라. 임대주택 확대하라“란 글이 적힌 우산을 펼쳐 들고 청사 주변을 행진하는 가두퍼레이드를 펼쳤다. 아마 청사에서 일하던 담당자들이 내려보았다면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행진을 마친 뒤 주민 몇 분이 차례대로 청사를 바라보며 요구 사항을 외쳤는데, 마지막 발언에 나선 김정길씨는 ‘쥐하고 바퀴벌레와 사는 열악한 삶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이젠 정부에서 개발업자나 투기꾼들 배만 불리는 민간개발보다는 서민들을 위한 공공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서민들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수십억의 돈이 권력자 로비 자금이나 사례비로 나가는 등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대장동 사건을 지금 겪고 있지 않는가? 동자동 공공개발을 시범으로 전국으로 확대 추진하길 촉구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요구서 전문]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흔들림 없이 신속히 추진하라

 

지난 2월5일 발표된 ‘서울역 쪽방촌 정비방안’에는 전국 최대의 쪽방촌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공공주택사업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 서로 이웃이 되고 가족과 같이 살아가기에 쪽방촌을 떠나지 못했던 쪽방 주민들에게는 개발로 인해 쫓겨나는 것이 아닌 보다 안정된 주거환경 속에서 이웃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은 쪽방촌 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에 큰 의미를 두고 추진되는 사업이다. 따라서 이번 사업이 쪽방촌 주민들이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자로 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과정에 쪽방 주민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사업추진 조직(TF)에 쪽방촌 주민대표의 참여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이번 공동주택사업 계획을 추진함에 있어 논의 구조에 주민(대표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반드시 보장하여 당사자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쪽방 주민들의 열악한 주거환경개선에 의미를 두고 있는 이번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쪽방 주민을 시혜와 공급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협력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2, 공공임대주택 입주 후에도 주민 스스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 가꾸어 갈 수 있도록 개발계획에 동자동 주민 자치 조직의 활동 공간이 포함되어야 한다.

 

‘동자동 사랑방’과 ‘사랑방 마을 주민 협동회’는 풀뿌리 주민 자치 조직으로 2007년부터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인권과 권리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쪽방촌의 유일한 주민 자치 조직으로 지난 10년 이상 지역에서 주민 협동공동체 실현을 위해 힘써 온 주민조직들이 개발 완료 후에도 계속 그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사무실)과 주민 스스로 다양한 마을 행사와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터, 공원)이 확보 되도록 디자인되어야 한다

 

3, 충분한 물량 공급으로 이번 개발 범위 안에 포함되지 못한 동자동 인근의 쪽방 주민들을 포함 할 수 있는 물량을 공급하여 최악의 주거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에 발표된 임대주택 1,250가구가 충분한 공급량인지에 대해서 재고될 필요가 있다. 사업 지구의 경계나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범위 밖의 쪽방 주민들과 고시원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이번 계획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고 함께 입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4, 쪽방은 사라져야 한다.

 

반지하나 고시원보다 못한 것이 쪽방이다. 지난해 1월 영등포 쪽방촌을 시작으로 대전, 부산에 이어 네 번째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대한 공공주택사업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서울에는 남대문로5가(양동), 돈의동, 창신동, 전농동 쪽방촌이 남아 있고 대구와 인천에도 쪽방촌이 있지만, 이곳에 대한 공공주택사업 추진 계획은 없다. 쪽방 주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주거환경 속에서 건물주들의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쪽방은 노후하여 오래전부터 재개발 계획이 수립되었지만, 건물주들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개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 남아 있는 쪽방촌에 대한 주거 문제를 빠른 시일안에 해결해야 한다.

 

최후의 주거 쪽방. 쪽방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배제되고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살고 있다. 공공주택사업으로 쪽방촌 주민들이 안정된 주거환경 속에서 시혜에 의존하는 삶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국토부는 이상의 요구를 반드시 수용하기 바란다.

 

2021년 10월 13일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흔들림 없는 시행 촉구 국토부앞 집회 참가자 일동

 

 

 

 

2021.10.9

세상에! 이토록 천진난만한 늙은이가 어디 있겠나?

“비닐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시끄러워 잠이 오겠냐?”고 말했더니,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음악으로 들린다네.

 

지난 8일은 우산을 받쳐 들고 ‘새꿈공원’에 나갔다.

노숙하는 양반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다.

솔직히 말해 술 생각이 간절해 빗물 섞인 막걸리라도 한잔 얻어 걸칠 심사였다.

 

유씨는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고 병학이는 술이 취해 졸고 있었다.

다들 떨어지는 빗물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박씨 영감은 떨어지는 빗물이 거슬리는지 재활용품 비닐 포대에 들어가 있었다.

빗물이 거슬리기보다 자신의 육신도 재활용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무리 빗물 소리가 음악으로 들릴지언정 바닥의 찬 한기는 어찌 견디겠나?

차라리 물방울 음악에만 심취하도록 대마초라도 한 대 권하고 싶었다.

그래! 비 피하려고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받는 설움보다야 낫겠다.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피아노곡 ‘물의 요정’으로나 알고 들게나.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니, 사랑을 잃고 죽음을 지켜봐야 한다는

전설 속 물의 요정의 슬픔과 절박함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다.

물방울이 튀어 오르고, 때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잔잔해지는

물방울의 춤은 자연이 만들어준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부디 물방울 소리를 장송곡으로 여기며 천국 가는 꿈이라도 꾸게나...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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