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다섯시,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주민들의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폭우 속에 진행된 ‘동자동에 살고 있습니다’ 토크쇼에는 주민 백일장도 열렸다.

 

본 행사는 '동자동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와 빈곤사회연대에서 마련한 자리였다.

 

그날따라 폭우가 쏟아져 거리에 나붙은 벽보마저 속살을 보였다.

우려처럼, 텅 빈 공원은 빗소리만 요란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까워오니 폭우를 뚫고 김영국, 김정호, 박종근, 전도영씨가

짐을 나르기 시작했고, 뒤따라 선동수 김정길씨도 나타났다.

 

비를 맞아가며 천막을 치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악천후지만 포기할 일도 미룰 일도 아니었다.

 

좀 있으니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들이 합류하여 일사불란하게 준비를 마무리했다.

 

김장수, 송범섭, 조인형, 정재은, 강동근, 황춘화씨 등 주민들도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기 시작했다.

 

준비해 둔 수박화채를 나누어 먹은 후, 주민 백일장이 진행되었다.

 

동자동‘, ’지구지정‘, ’열대야등의 글자로 삼행시를 썼는데,

준비한 화선지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분이 참여했다.

 

얼마나 할 말이 많았던지, 구구절절 고개가 끄떡여지는 글들이 천막에 내 걸렸다.

 

참여한 주민에게 스티커를 한 장씩 주어 제일 좋은 작품에 붙이는, 주민들이 심사위원이었다.

 

영광의 대상은 여덟 개의 스티커가 붙은 김정길씨의 열 받는다‘가 받았.

 

우수상은 네 개가 붙은 김정호씨가 차지했고,

장려상은 세 개가 붙은 송범섭씨와 정재은씨가 각각 주민들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김영국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위원장이 시상했는데,

다들 절실한 상품이라 입이 벌어졌다.

 

2부의 토크쇼는 한 시간 쉬었다가 오후 일곱시부터 재개되었다.

 

첫 순서로 사랑방합창단에서 나와 모두 다 꽃이야란 노래를 불렀다.

 

이어 김정호 사랑방협동회 이사장의 사회로 토크 콘서트가 진행되었다.

첫 번째 이야기 손님으로는 오계순씨와 임성연씨가 나왔고,

두 번째 이야기 손님으로는 이재모씨는 나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들 쥐나 바퀴벌레와 같이 살아야하는 열악한 주거 환경을 탓하며

동자동 공공주택 지구지정을 조속히 발표하라는 요구가 쏟아졌다.

 

이재모씨는 얼마나 쪽방이 더웠으면, 설치할 자리가 없어 머리에 이고 살더라도

에어콘 하나만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는 하소연도 했다.

 

토크쇼가 끝난 후, ‘빈곤사회연대활동가 이원호씨가 나와

동자동 공공주택이 지연되는 사정과 공공주택의 필연성에 대한 강연을 했다.

 

동자동 공공주택 지구지정을 조속히 발표하여 주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라

주민들의 절박한 함성이 빗속으로 울려 퍼졌다.

 

김정길씨를 비롯한 여러 주민이 나와 다양한 요구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주민 가수 홍홍임씨의 내 나이가 어때서였다.

일절도 모자라 앵콜로 2절까지 부르는 기염을 토했는데, 짝쿵인 이기영씨가 신경 좀 쓰이겠더라.

 

바퀴벌레와 못 살겠다. 지구 지정 빨리하라

 

사진, / 조문호

 

 

 

시민단체 연합 “약자와의 동행은 허구” 비판

 

오세훈 서울시장이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하며 노숙인 쪽방촌 지원방안을 공개한 가운데 관련 시민단체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라며 서울시를 향해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사진은 2022홈리스주거팀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헤랄드경제/ 이영기 기자]

 

[헤럴드경제=김용재·이영기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하며 노숙인 쪽방촌 지원방안을 공개한 가운데 관련 시민단체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라며 서울시를 향해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노숙인·쪽방촌 관련 시민단체 연합인 ‘2022홈리스주거팀’은 12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노숙인·쪽방촌 관련 현실적인 지원방안과 오 시장과의 면담을 촉구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오 시장이 취임 후 첫 행선지로 창신동 쪽방촌을 찾고 3대 지원방안을 발표했지만 현재 쪽방주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엔 미흡하다”며 “쪽방이라는 물리적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 약자와의 대화 없는 약자와의 동행은 허구다”라고 비판했다.

 

서울시가 발표한 3대 지원방안은 ▷쪽방주민 무료식사 지원 동행식당 운영 ▷노숙인 급식확대 ▷쪽방촌 에어컨 설치 및 여름용품 지원 등이다.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폭염에 고스란히 노출된 사람들을 위한 대책이지만, 2022홈리스주거팀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12일 오전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열린 ‘노숙인·쪽방 주민을 위한 3대 지원방안 비판 및 오세훈 서울시장 면담 요청 기자회견’. 사진 출처 : 뉴스클레임(https://www.newsclaim.co.kr) 김동길 기자

홈리스행동은 전날 입장문을 내고 오 시장의 3대 지원방안과 관련해 “홈리스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미흡하다”라며 “폭염대책은 쪽방의 물리적 환경 개선 없이 불가능하다. 적정 면적의 임대주택 제공을 지속 요구해왔으나 이번 대책에 언급은 없었다”고 했다.

 

이들은 근본적인 주거환경 개선을 요구 중이다. 쪽방촌을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해 임대주택 등을 빠르게 공급하고 개발 과정에서 주거민들이 외면받지 않도록 세부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종만 양동쪽방주민회 부위원장은 “현재 1인 최소 생활 면적 기준인 14㎡는 2021년 기준”이라며 “서울시에 18㎡으로 올려달라고 여러 차례 건의했고 선거 때도 직접 말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영국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위원장 역시 “동자동 쪽방촌은 공공주택지구로 발표는 됐지만, 실제로 지구지정은 이뤄지지 않아 거주민들이 속만 끓이고 있다”며 “정치권이 하루 빨리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S] 커버스토리
동자동 쪽방촌의 불안한 미래

공공임대 절반 넘는 ‘공공개발’ 발표한 지 1년4개월이 넘었지만
민간개발·규제완화 요구하는 토지주 압박에 지구 지정조차 못해
“개발돼도 쫓겨나지 않고 이웃끼리 좋은 환경서 산다 좋아했는데…”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한 주민의 방. 대체로 1평 남짓한 이 동네 쪽방의 평균 월세는 23만4천원이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7일 오후, 초여름 볕이 쨍쨍한 한낮인데도 방은 어두웠다. 아니, 이곳을 ‘방’이라 부르는 게 정당할까. 얼핏 봐선 뭔지 가늠이 되지 않는, 오래된 식당 건물 옆 쪽문을 여니 성인 한 명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좁은 통로가 보였다. 6~7m 남짓 되는 통로 왼쪽으로 식당 뒷문, 2층으로 향하는 계단, 공용 화장실, 식당 창고, 그리고 그 ‘방’이 꾸역꾸역 뭉쳐 있었다. 3.3㎡(1평)를 조금 넘을 듯한 크기의 공간은 작은 싱크대와 미니냉장고, 철 지난 이불만으로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층이지만, 싱크대 위로 난 창으론 해가 거의 들지 않았다. 싱크대는 물이 나오지 않아, 덩그러니 자리만 차지할 뿐이었다. 나무로 된 방문은 손잡이가 떨어져 나가 잠기지 않았다. 김선근(63)씨는 여기서 7년째 살면서 매달 월세 26만원을 낸다고 했다. 3층짜리 이 건물엔 이런 방이 7~8개쯤 된다.
 
방이라 불러도 되는 걸까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 맞은편, 늘어선 고층 빌딩 뒤쪽 동자동엔 이런 쪽방 1163개가 건물 67동에 밀집해 있고 현재 1083명이 살고 있다(서울시 ‘2020년 서울시 쪽방 건물 및 거주민 실태조사’, 이하 실태조사). 건물 한 동을 쪼개 들어찬 방이 평균 17.4개, 다른 쪽방촌 주민들도 김씨와 사는 환경이 별로 다르지 않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2월5일 “전국 최대 서울역 쪽방촌”을 “명품 주거단지로 재탄생”시키겠다며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이하 공공주택사업)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실은, 자칫하면 깨질 것 같은 유리잔 같다.동자동 쪽방촌에 들어온 지 24년 된 김정길(76)씨의 방은 월세가 25만원이다. 크기는 김선근씨네와 비슷하지만, 그가 사는 방엔 싱크대가 없는 대신 작은 현관이 있다. 신발, 세숫대야 같은 생활용품 사이로 음료수, 즉석밥, 도시락, 양념 같은 식료품과 냄비, 그릇 등을 쌓아뒀다. 위경화증이 있어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그는, 밥에 뜨거운 물을 부어 불린 ‘죽’을 자주 먹는다. 조리하기 불편한 환경은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다. 실태조사에서 취사장을 갖춘 건물은 32.8%에 그쳐, 쪽방촌 주민 대부분은 방 안에서 휴대용 가스버너를 사용한다. 그나마 있는 취사장에도 설치된 수도꼭지의 수는 평균 2.6개에 불과하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주택당 평균 16.2명에 이르는 거주 인원이 2.6개의 수도꼭지를 나눠 쓰는 셈이다.

 

동자동 쪽방촌 한 골목에 7일 오후 노인들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하지만 정작 김정길씨를 괴롭히는 건 따로 있다. 그는 “쥐랑 바퀴벌레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다”는 말을 신경질적으로, 수십 차례 반복했다. “밤마다 천장에서 쥐들이 쿵쿵대며 축구를 하는 통에 너무 힘들다. 화가 나서 효자손으로 천장을 치면 잠깐 조용하다가 다시 뛰어다닌다. 바퀴벌레는 수도 없이 나온다.” 층간소음에 시달려도 예민해지기 마련인데 쥐들이 내는 소리라니, 예민해지지 않는 게 이상했다. 실제로 한국도시연구소가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을 상대로 2020년 1월 실시해 발표한 ‘비주택 거주자 주거지원 희망 수요조사’(이하 수요조사) 결과를 보면, 주민들이 건강에 가장 위협을 느끼는 요소로 추위·더위(65.1%)와 쥐·해충(64.3%)이 엇비슷하게 가장 많이 꼽혔다(복수응답).이와 관련해, 건강세상네트워크 등이 2012년 내놓은 ‘동자동 쪽방 주민 건강권 실태조사’에선 쪽방 주민의 주관적 기대수명이 당시 한국 남성의 평균 수명(77.3살)에 못 미치는 74.3살로 조사된 바 있다. 연구진은 “돈이 없어 필요할 때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열악한 주거환경이 주민들의 건강을 명백히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최저주거기준 이하의 열악한 쪽방에서 생활하고 있고 주거비 비중이 높으며 돈이 없어 쫓겨날까 봐 걱정한다. 또한 식비 부족, 열악한 구강 건강, 부엌 시설 미비로 인해 영양 상태가 부실한 경우가 많다. 이것만 보아도 동자동 쪽방 주민은 건강권이 아닌,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도 보장받고 있지 못하는 현실을 알 수 있다.”이 조사를 벌인 지 10년이 지났지만, 쪽방촌 주거환경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건물은 세월의 흐름만큼 더 낡았고, 당시 55.2살이던 주민의 평균 나이는 2018년 59.7살로 올라갔다. 실태조사에서 주민 가운데 고혈압, 당뇨, 관절염, 우울증 같은 지병이 있다는 이는 82.5%에 이렀다. 주민 김영국씨는 “여기 대부분 집이 지은 지 60년을 넘었고, 방은 한 평도 안 돼서 누우면 꽉 찬다. 물도 새고, 햇빛 안 들고, 냄새나고, 주거환경이 말 그대로 비참해서, 안 아픈 사람도 여기 와서 살면 아프게 된다. 그래서 1년이면 죽는 사람이 40명이 넘는다”며 “가진 게 없으니까 그냥 여기서, 죽지 못해 사는 것”이라고 했다.
 
주거급여 노리는 ‘빈곤 비즈니스’
 
쪽방촌 주민들은 이런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집주인에게 아무리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 자조조직인 ‘동자동 사랑방’의 정대철 사업이사는 “전기고 수도고, 고장 나서 뭐 하나 고쳐달라고 하면 집주인은 그냥 나가라고 한다. 따박따박 월세는 받아가면서 집수리는 안 해준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한 건물 옥상. 낡은 지붕을 천막과 플라스틱 슬레이트, 나무판자 등으로 덮어두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실태조사를 보면, 동자동 쪽방촌 주민의 평균 거주 기간은 10.3년으로 주민의 95.7%가 월세로 산다. 평균 월세는 23만4천원이고, 보증금은 없다. 한편, 주민의 74.6%가 기초생활 수급자고 평균 수급비 69만1천원이다. 백광헌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부위원장은 “수급비가 매달 20일에 들어오는데, 다음달 10일만 돼도 돈이 없다. 방값 27만원을 주고 나면 58만원 정도 남는데 전화요금, 전기료 같은 공과금이 8만원, 담뱃값이 15만원 든다. 요새 밥 한 끼가 1만원이 넘는데, 남은 돈으로 친구 만나 서너번 밥 먹으면 금세 돈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장실 하나를 10가구가 쓰는 이런 건물에서 집주인들이 주거급여를 노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엔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등이 있는데, 각각 지급 기준과 규모가 다르다. 이 가운데 1인 가구 생계급여는 올해 월 소득이 58만3444원(기준 중위소득의 30%) 이하일 때 58만3444원을 지급받는다. 1인 가구의 주거급여는 월 소득이 89만4614원(기준 중위소득의 46%) 이하일 때 최대 32만7천원(서울 기준)을 받는데, 임대차계약서에 명시된 방세가 이보다 낮으면 그만큼만 받을 수 있다. 주목할 대목은, 주거급여에 따라 쪽방촌 월세가 올랐다는 점이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2015년 주거급여가 생기면서, 그 전에 15만원 선이던 월세가 30만원 가까이로 다 올랐다. 그나마 월세에 공과금이 포함된 경우는 좀 낫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아 주민들의 부담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쪽방촌 건물주의 월세 운영이 빈곤의 고착화를 유도하는 ‘빈곤 비즈니스’로 비판받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착취도시, 서울>(이혜미 지음, 글항아리 펴냄)은 쪽방촌에 실거주하지 않는 건물주가 쪽방 월세로 매달 수백만~수천만원의 현금 수입을 올리는 구조를 생생히 밝혀낸 바 있다. 건물주의 70%가량은 쪽방촌이 아닌 곳에 살고, 강남에 거주하는 부유층도 적지 않다. 또한 건물주 가운데 20% 안팎은 여러 채의 건물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계약을 하고 월세를 받아가는 이는 집주인이 아니라 고용된 관리인이기 때문에, 쪽방촌 주민들한테선 “집주인 얼굴은 본 적도 없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건물주로선, 낡은 건물을 수리하지 않아도 싼 방에 들어오려는 ‘수요’는 늘 있고, 수급자를 세입자로 들이면 주거급여만큼의 월세를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데다 세금마저 안 내도 되는 현금 수입이 ‘쪽방촌 임대 사업’이다. 주민들이 “집주인은 무조건 월세가 들어오니 수급자를 좋아한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금세 수급자를 들여 월세 받아가기 바쁘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덴 이유가 있는 셈이다.
 
공공주택 꿈에 부풀었지만
 
정부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다. 2020년부터 잇따라 쪽방촌을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른 공공개발 방식으로 재정비할 계획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2020년 1월20일과 4월22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과 대전역 쪽방촌의 공공주택사업 추진계획을 각각 발표했다. 공공주택특별법은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된 구역에 공공임대 35% 이상, 공공분양 25% 이하 등으로 공공주택을 절반 이상 짓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간 재개발의 경우 공공임대 의무 비율이 15%(서울 기준)에 불과한 데 비춰보면, 공공주택 비중을 크게 늘린 것이다.
 
지난달 1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정부는 재개발로 세입자가 쫓겨나지 않도록, 사업 진행기간 동안 쪽방촌 주민들에게 임시 이주 공간을 제공하고 이후엔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선(先)이주, 선(善)순환’ 대책도 내놨다. 이 때문에 주거권 운동단체 등에선 이런 변화가 ‘용산 참사에 대한 정책적 속죄’라는 평가도 나왔다. 어쨌든 영등포 쪽방촌은 2020년 7월17일, 대전역 쪽방촌은 다섯달 뒤인 12월7일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됐다.이런 분위기 속에 정부가 지난해 2월5일 동자동 일대 4만7천㎡를 같은 방식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히자, 쪽방촌 주민들은 꿈에 부풀었다. 특히 공공임대주택을 전체 주택의 절반 이상인 1250호(전체 2410호, 공공분양 200호, 민간분양 960호) 짓겠다는 계획은 단순 수치로 볼 때 현재 쪽방촌 주민 대다수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백광헌 부위원장은 “여기 살던 사람이 임대 아파트 갔다가 되돌아오는 경우가 제법 된다. 이 동네에선 동자동사랑방에서 커피도 마시고, 왔다 갔다 하며 정드는 사람도 많은데, (연고가 없는) 다른 동네 임대 아파트에 가면 외롭고 수급자라고 무시당하니 그런 것”이라며 “생각도 못 했는데 갑자기 정부가 여기를 공공개발하겠다고 해서 전부들 꿈을 갖게 됐다. 쫓겨나지 않고 비슷한 이웃들끼리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됐다고 다들 좋아했다”고 말했다.
 
부딪치는 욕망들
 
하지만 주민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공공주택지구 지정은 지난해 말까지 완료됐어야 하고, 올해는 지구계획과 보상계획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올해가 절반 가까이 다 지나도록 공공주택지구 지정은커녕, 그 이전 단계인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조차 감감무소식이다. 사유재산 침해를 주장하는 건물주들이 공공개발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탓이다.공공개발에 반대하는 건물주들은 정부 발표 한달 남짓 뒤인 지난해 3월18일 ‘서울역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 창립총회를 열었다. 당시 보도자료에서 이들은 “소유주 70~80%가 반대의견서를 모아 (정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엔 국토부에 민간개발 정비계획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핵심은 민간개발을 할 테니, 공공개발에 적용하기로 한 용적률 확대(250%→700%)와 고도제한 완화(6~18층→40층)를 똑같이 민간개발에 적용해 달라는 것이다. 동자동 일대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여러 차례 민간개발이 추진됐지만 주민 반발, 사업성 부족 등의 이유로 번번이 좌초됐는데, 이들은 그 원인이 ‘개발 규제’에 있다고 본다. 오정자 주민대책위원장은 “집수리 안 해주는 문제만 갖고 얘기하는데, 이 지역이 개발된다는 얘기를 듣고 누가 돈 들여서 수리를 하겠나. 지난해엔 용산구의 새로운 정비 용역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정부가 주민 동의도 없이 갑자기 공공개발 계획을 발표한 것”이라며 “명백한 사유재산 침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쪽방 분들을 위한 개발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뭘 원하는지도 조사해보지 않았다. 공공개발처럼 규제를 풀어주면, 우리는 민간개발을 하더라도 쪽방을 더 좋게 지어줄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촌 한 건물의 공용 화장실. 이 건물에 거주하는 7명이 화장실 1개를 함께 쓴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공공개발에 찬성하는 건물주들도 있다. 이들은 오는 14일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앞에서 집회를 열어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 추진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들의 이해관계는, 공공개발에 반대하는 건물주와는 다르다. 조재형 ‘서울역 쪽방촌 주민대책위’ 총괄본부장은 “그분들은 토지주의 다수가 민간개발을 원한다고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소유 면적으로 보면 (쪽방촌의) 반이나 될까 말까 할 정도인데, 선동에 가까운 행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공개발을 요구하는 토지주는 대체로 소유한 땅이 넓고, 동자동에서 30~40년씩 산 사람도 있다. 반대하는 쪽엔 작은 규모의 지주가 많고, 대부분 민간분양권을 받고 싶어 한다. 민간분양권을 받으려면 주거용 건물에 실거주를 해야 하는데, 대부분 외부에 살면서 차익을 실현시키려는 투기세력이다 보니 공공개발에 반대한다”는 것이다.이들의 욕망은 쪽방촌 주민들의 욕망과도 다르다. 조재형 총괄본부장은 “공공개발이냐 민간개발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사업수지 분석을 해 보니, 동자동은 여건상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되는 게 용적률, 건폐율, 고도제한뿐만 아니라 공사비, 세입자 명도·이주비, 각종 금융비용 등에서 토지·건물 소유주에게 훨씬 실익이 컸다”며 “사유재산을 지키고, 쪽방 주민의 주거복지에 헌신한 토지주에게 보상해줄 수 있는 게 동자동 공공개발”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주민, 세입자, 토지 등 소유자 세 축이 모두 피해가 없는 범위 안에서 공공개발에 찬성한다”며 ‘정당한 보상’을 요구했다.사업에 책임을 진 국토부는 소유주들을 핑계로 좌고우면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땅값이 비싼 도심 한복판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라 다른 데보다 소유주들의 반대가 워낙 심하다. 찬성하는 소유주도 있다. 양쪽 의견을 다 듣고 설득하는 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반대 쪽이 제출한 정비계획안은 서울시와 용산구에 승인권이 있어 그쪽에서 검토 중”이라며 “국토부는 그 계획안에 쪽방 주민들의 이주대책이나 구제대책이 적절하게 마련돼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국토부의 이런 태도 자체가, 공공개발 계획을 바꿀 수 있다는 신호를 소유주한테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통해 권력이 교체됐다는 점도 주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다. 김호태 전 동자동사랑방 대표는 “시장에 이어(계획 발표 당시는 권한대행 상태) 중앙정부까지 바뀌니까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하지만 공공개발은 현 정부가 아니라도 ‘정부’가 하기로 한 것 아니냐”며 “없는 사람들 농락하지 말고, 약속을 지키라는 게 우리의 요구”라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촌의 한 방문에 붙어 있는 공공주택사업 촉구 포스터.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900년 서울역이 문을 연 이후 동자동은 주택가와 상가가 밀집한 지역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이 서울역과 용산구에 집중되면서 폐허가 됐다. 전후엔 피난민과 빈민이 몰려들어 판자촌을 이뤘고, 집창촌도 형성됐다. 서울역과 그 유동 인구를 따라 형성된 상권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도시빈민 밀집 지역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1970년대에 들어선 정부의 단속으로 판자촌이 철거되고, 성매매업소 다수가 여관, 여인숙으로 바뀌면서 지금의 쪽방과 유사한 형태의 주거지가 됐다. 외환위기 뒤인 2000년대 이후엔 노숙인과 하층 노동조차 구하기 힘든 사람 등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버려지는 인구집단”이 모여든 공간으로 변했다. 그렇게 동자동이 변해가는 동안에도, 부동산 투기와 개발의 욕망은 멈추지 않았다.(정택진, <동자동 사람들>, 빨간소금)동자동 공공개발은 이 ‘버려진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존엄을 되찾아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림 그리는 게 취미이자 특기인 김선근씨가 말했다. “공공주택에 갈 수 있으면 아휴, 감사하죠. 인물화, 추상화, 풍경화, 그림 그리는 게 내 특기니까, 거기서 살면 훨씬 더 많이,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정길씨가 이어받았다. “나도 그렇고, 주민들도 그렇고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몰라요. 하룻밤이라도 쥐 없고 바퀴벌레 없는 데서 자고, 그 집에서 죽고 싶어요.”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동자동의 김정길하면 몰라도 동자동의 김반장하면 모르는 이가 없다.

쪽방촌 청소에서부터 후원물품 도우미나 순찰을 도는 등

동네 반장처럼 바쁜 하루를 보내 붙여 진 이름이다.

 

2017, 11, 14 / 대부도에서 가진 아름다운 동행에서..

김정길(76)씨를 처음 만난 것은 6년 전이다.

음식 나눔이 있던 새꿈공원에서 만났는데, 뒤처리하는 모습이 남달랐다.

일을 돕는다기보다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하는 모습에 눈여겨 본 것이다.

그 뒤부터 행사가 있을 때는 물론, 가는 곳 마다 그의 모습은 빠지지 않았다.

 

2017,5,2 / 동자동 골목계단에서...

김정길씨가 동자동에 들어 온지는 39년째라 반 평생을 쪽방에서 보낸 셈이다.

공사 현장이나 음식점 등 막일로 전전하다 방세 싼 쪽방촌에 들어왔다는데,

봉사를 생활화하게 된 계기는 15년 전부터 교회에 나가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남을 돕는데 여생을 보내야 겠다는 생각으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닥치는 대로 일을 도운 것이다.

 

2017년 6월5일 / 거리에서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런 그가 작년 무렵, '케이비에스'와 '조선일보'에 연이어 소개되며,

갑자기 동자동 김반장으로 부상한 것이다.

 

2019, 5, 23 / 화담 숲에서 가진 동자동소풍에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옛 속담 처럼, 그의 봉사활동은 더 두드러질 수 밖에 없었다.

쪽방에서 내다버린 쓰레기에서부터 직장인들이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에 이르기까지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골목입구가 아침이면 티끌하나 없이 말끔해졌다.

 

2017,5,8 / '동자동사랑방'에서 마련한 어버이날 잔치 정리하는 모습

만날 때마다 청소를 끝내고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마 쪽방상담소 문 열기를 기다리는 듯 했다.

 

매번 매점 가는 길이라 카메라들 두고 와 청소하는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는데,

며칠 전에는 작정하고 내려와 쉬는 모습이라도 찍은 것이다.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는 김씨는

나와 비슷한 연배인데도 그가 10년은 더 젊어 보인다.

아마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부디 건강 잘 지켜 오랫동안 좋은 일 많이 하길 바랍니다.

 

나선 김에 서울역광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노숙인도 다시서기에서 재활하는 이가 더러 있으나, 김반장 처럼 무보수의 봉사는 아니다.

 

힘없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노숙인들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몇 개월 전부터 지하도 입구에 새로 온 노숙인이 자리 잡았다.

갈 때마다 가부좌한 자세로 깊은 생각에 빠진 모습이 다른 노숙인과 달랐다.

책을 정갈하게 모아두고, 난간에는 조화까지 모셔 두었다.

책은 가까이 두지만, 한 번도 책 읽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첫 장에 펼쳐놓은 군자의 삶이란 제목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의 말은 알아들어 반응은 하지만, 일체의 질문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이름은 물론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더 궁금했다.

 

거리로 내 몰린 노숙인이 어찌 온전한 정신을 가질 수 있겠나마는

정신질환자로 단언할 수도 없는 것이다.

 

아무쪼록 오갈 곳 없는 노숙인들을 한 곳에 정착시켜

더 이상 거리에서 죽는 노숙인이 없도록 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사진, / 조문호

 

 

동자동 ‘모리아교회에서 사랑의 짜장면 나눔 잔치를 열었다.

 

쪽방촌이라 음식 나누는 자리가 잦지만, 짜장면은 또 다른 별미다.

 

어린 시절 먹던 짜장면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긴 세월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게 짜장면이다.

 

지난 14일 정오 무렵, ‘식도락에 도시락 얻으러 갔더니,

줄 선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이기영씨만 국밥을 먹고 있었다.

 

이씨가 짜장면 주는 공원으로 가라는 것을 보니,

짜장면 나눔이 있어 도시락은 준비하지 않은 것 같았다.

 

새꿈공원으로 가보니 짜장면 냄새가 진동했다.

현장에서 면을 뽑아 삶아 주는 봉사원과,

줄을 서거나 짜장면 먹는 주민들로 공원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 번잡한 곳에서 누워 자는 노숙인도 있었다.

아무리 사는 게 귀찮은지 모르나, 한적한 곳으로 좀 옮겨주면 안 되나?

이런 노숙인 때문에 다른 노숙인까지 욕 먹인다.

 

3년 전에는 모리아교회 예배당에서 짜장면 나눔 행사가 있었다.

그때는 곧바로 주지 않고 예배당에 모아 기도한 후 먹게 했다.

시간도 지체 되었지만, 면이 불어 굳어버린 것이다.

 

목사더러 '베풀고 욕먹는 자선'이라며 나무라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금방 솥에서 건져낸 면을 비벼 먹으니 너무 맛있었다.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하느라 이빨 빠진 사이로 면을 걸어 쪽 빨았더니 콧 잔등을 치네.

쪽 팔릴 것이야 없으나 휴지가 없다.

 

그 날 긴 줄을 섰지만, 배식이 빠르니 금방 차례가 돌아왔다.

곱배기와 보통이 있었으나 대부분 보통을 찾았다.

짜장면은 맛도 맛이지만, 오랜 향수 때문일 것이다.

 

한 끼의 배를 채우기에 앞서 다들 소풍 나온 분위기였다.

좋은 자리 만들어 준 모리아교회에 감사드린다.

 

사진, / 조문호

 

 

간밤에는 너무 더워 방문을 열어놓고 잤더니, 온 몸이 떨려 일찍 잠을 깨야했다.

날씨마저 변덕스러운 우리나라 정책 같다.

 

감기가 걸렸는지, 연신 터지는 재채기에 코로나 환자로 의심받지 않을까 걱정된다.

라면 국물로 속 데우고 밖으로 나갔다.

 

골목 곳곳에는 빈민들의 시름이 깊었다.

복에 없는 쪽방촌 재개발이란 수레는 바람 빠진 바퀴 같다.

살지도 않는 악덕 건물주들의 반발로 국토부에서 지구지정에 손을 놓은 것이다.

 

열 받은 이씨의 푸념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왜 가만있는 사람들, 간에 바람 들게 하나?

차라리 몰랐다면 속 뒤집어지는 이런 일은 없을 것 아니가?

우리가 아파트로 옮겨 살면 몇 년을 더 살겠나?

죽고 나면 다시 가져 갈 집을 생색만 내면서...

 

듣고 있던 박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씨바~ 우리 사는 데가 방이 맞나? 개집도 그런 집은 없다.

요즘 개는 사람을 끼고 살지, 그런 곳에서 살지도 못한다.

방에 물이 세거나 전기가 나가도 모른다는 놈들이 방세는 하루를 넘기지 않고 현금으로만 챙겨간다.

쪽방에 우글거리는 바퀴벌레나, 그 돈 벌레들이나 다를 게 뭐있나?

차라리 폭탄이라도 터트려 다 같이 죽고 싶다

 

분위기가 살벌해져 사랑방조합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랜만에 만난 선 간사는 입구에서 담배를 피웠고,

김 이사장은 보지도 않는 게시판에 소식지를 붙였다.

커피 한 잔 얻어 마시며, 그간의 소식을 살펴보았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중단에 빈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곳은 이곳 뿐이다.

 

가진 자 편인 새 정부가 들어서며 재개발이 불투명해지자

대통령인수위 사무실과 용산집무실을 쫓아다니며 지구지정 촉구에 목소리를 높였으나,

소귀에 경 읽기다.

 

동자동은 빈민들을 위해서라기보다, 재개발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민간개발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삶을 포기한 막장 사람들이 그냥 쫓겨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가진 자 눈치 보지 말고, 계획대로 추진하라.

 

새꿈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낯선 젊은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불이 빗물에 젖어, 물침대에 누워 자는 노숙인도 있었다.

 

주민들의 사랑방 노릇 하던 휴게실은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옮겨가며 문 닫은 지 오래다.

 

아는 사람도 쉴 곳도 없는 새꿈공원이 왠지 낯설어보였다.

 

'친절한 은자씨' 만이 난간에 올라 마릴린 먼로같은 풍만한 육체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다시 무거운 몸을 끌고 돌아왔다.

 

가파른 계단을 타고 4층까지 오르자니 숨이 막혀 몇 번을 쉬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삶, 오르는 김에 옥상까지 올라갔다.

 

떨어져 죽기위해 올라간 것이 아니라, 삶의 흔적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화려한 서울 한 복판에 아직도 꾀죄죄한 자취들이 남아 있었다.

아니, 오히려 사람사는 냄새가 났다.

 

옆 건물 옥상을 지키던 개가 안 서러운 듯 바라보고,

불청객에 놀란 비둘기 한 마리가 후 두둑 날아갔다.

   

사진, / 조문호

 

 

지난 현충일 자정 무렵 서울역광장에 나가보았다.

오전에는 비가 내리며 날씨가 오락가락하더니, 밤에는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날씨 탓인지, 서울역광장은 두 세사람만 웅크려 잘 뿐 평소와 달리 한적했다.

 

노숙인들이 머무는 지하도로 내려가니, 십여명의 노숙인이 자고 있었다.

때마침 지하도 맞은편에서 서울역희망지원센터직원들이 몰려나왔는데,

지하도에 머무는 노숙인보다 더 많은 인원이었다.

 

노숙인에게 빵 봉지를 하나씩 나누어주며 지나갔는데, 나 한데도 빵 봉지 하나를 안겨 주었다.

봉지 안에는 두유 하나 빵 두 개, 마스크 한 개가 들었는데, 그 속에 편지 형식의 안내문이 접혀 있었다.

 

보호시설과 쉼터를 안내하며 말소된 주민등록을 복원시켜 기초생활수급을 돕겠다고 적혀 있었다.

가족관계가 정리되지 못해 해당되지 않는 노숙인도 많겠으나 더러 구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두사람도 아니고 직원들이 밤늦게 떼거리로 몰려나온 걸 보면. 노숙인 구제에 관한 지시가 내린 것 같았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될 일을 왜 여태 방치했을까?

아무튼, 모든 노숙인에게 도움주어 길에서 죽는 사람은 없기를 바란다.

 

빵 봉지를 챙겨들고, 다시 쪽방으로 올라갔다.

날씨가 더울 때는 쪽방 문을 열지만, 날씨가 쌀쌀해 다들 문을 닫아 놓았다.

유독 삼층 서씨 방문만 열려있어 들여다보니, 사람은 없고 온갖 잡동사니만 늘려 있었다.

잠잘 곳이 없을 정도로 빼곡한데, 내방처럼 조그만 목침대를 만들어 주면 좋겠더라.

침대 밑을 책장으로 사용하는 대신, 찬장으로 활용해도 되지 않겠나?

 

서울역쪽방상담소도 줄 세워 물건 나눠 주는 일에만 신경 쓰지 말고,

쪽방 공간을 조금이라도 넓게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목공 사업을 추진하라.

그리고 정부는 중단된 동자동 재개발 사업을 조속히 추진하여 빈민부터 구제하라.

 

사진, / 조문호

 

 

 

녹번동 사모님으로 부터 지령이 떨어졌다.

1일부터 3일까지 볼일이 많아 녹번동에 대기하라는 것이다.

당장 먹을 것 걱정 할 필요도 없는데다, 노닥거릴 상대가 생겨 반가웠다.

보따리 챙겨 갔더니, 예고도 없이 불화가 장춘씨가 나타났다.

그동안 왜 소식을 끊었냐고 물었더니,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단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눈물을 쏟아냈다.

생전에 모친께 모질게 한 욕설을 후회하며 슬피 울었다.

백순이 가깝도록 집에서 편안하게 사시다, 고통 없이 돌아가신 것은 고마운 일이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딸이 먼저 갔다면, 남은 엄마 마음은 어떻겠냐?며 위안했다.

이제 잔소리할 사람은 없으나, 그 텅빈 외로움은 어떻게 채울까?

 

그 날은 밤을 세워가며 사모님을 끌어안고 지낸 것이 아니라, 티브이를 끌어안고 용썼다.

지방선거 투표 결과를 지켜보며, 민심이란 것은 바람같은 것이라는 것을 재실감했다.

 

다음 날부터 정동지가 케이비에스 방송국에 인터뷰하러 간다기에 여의도도 가고,

한정식 선생 문병하러 서초동 요양원에 들리는 등 곳곳을 돌아다녔다.

인사동에서 공덕동으로, 공덕동에서 동자동으로, 시키는데로 기사의 소임을 다했다.

길은 밀려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으나, 영양가 없는 소리해가며 히히덕거렸다.

제발 아는 체 하지마라는 사모님의 난처한 웃음을 뒤로 넘겨가며...

 

그런데, 자가용 기사들의 제일 큰 애로점을 꼽는다면

언제 일이 끝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기다려야 하는 무료함일 것이다.

그렇지만 혼자 노는데 이골나 무료할 틈이 없다.

핸드폰이 고물이라 페북은 볼 수 없으나, 주머니에 카메라가 있는 것이다.

 

장미가 만발한 벤취에서 힘없이 앉은 노인의 외로운 하소연도 듣고,

인사동 거리를 살피거나, 옆방 김씨 자는 모습을 훔쳐보는 등, 한가할 틈이 없다.

가는 곳마다 시간은 오래걸리지 않았지만 여의도 인터뷰는 시간이 지체되어

주차장 공원을 돌아다니며 기암괴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개는 똥을 먹지 않지만,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옛 말이 딱 맞다.

돌맹이까지 풍만한 여인의 알 몸으로 보이니 이 일을 어쩌랴!

 

이야기하다 보니, 오래전 세상을 떠난 패션사진가 이창남씨가 생각난다.

한 때는 우리나라 패션사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잘 나갔다.

 

훌륭한 누드모델을 구하기 위해 미국 신문에 구인 광고를 낼 정도로

이방인 누드에 빠져 미국 대륙을 횡단하고 다녔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벌거벗은 인간을 노래한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당연한 이치지만, 세상의 주목은 받지 못했다.

아니, 운이 따르지 않았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우리나라 광고의 시대적 흐름이나 세대교체에 일거리도 점차 잃게 된 것이다.

돈 버는 족족 작업에 쏟아부어 남은 것도 없겠지만, 문제는 아내의 반역이었다.

미국에서 촬영하고 돌아오니, 아내가 말도 없이 이사를 간 것이다.

 

나중엔 아내가 운영하는 동대문시장 옷가게에 물건 실어주는 일을 돕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만나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문제는 그 무렵에 이창남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결심한 속내야 어찌 알겠냐마는 한 작가의 삶의 비애를 목도하는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업보가 아니라, 돈이 원수다.

부디 저승에서나 돈에서 해방되어 즐겁게 사시길 바랍니다.

 

괜히 조기사 신세타령에 이창남씨 이야기가 나와 짠해지네.

조기사야 사모님 모시는 걸 즐기지만, 아마 그는 힘들게 모신 것 같다.

 

누가 뭐래도 난 축복받은 인생이 틀림없다.

평생 하고 싶은 일 해가며 꼴리는대로 살았으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

돈이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도 않다. 역설로 없어서 더 편하다.

돈 많으면 저승 갈 때 택시라도 태워준다더냐?

 

그러나 단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들 햇님이 문제다.

십여년동안 정의당에서 약자의 권익을 위해 일해 왔는데, 가장으로서 생계는 책임져야 할 것 아닌가?

,생계난과 약자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은 구의원이 되는 길 뿐이었다.

거대 양당의 공천만 받으면 사기꾼도 당선되는 정치판 사정을 익히 알았으나,

4년 전 지방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 것을 지켜보며 희망을 가진 것이다.

다시 4년동안 주민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 올해는 당연히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참담했다. 4년전 지방선거보다 더 적은 지지를 받아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여덟 명이 출마한 은평 라선구는 민주당에서 두명 공천하고 국민의 힘에서 두명 공천했는데,

민주당에서 두명 당선되고 국민의 힘에서 한 명 당선된 것이다.

4위도 국민의 힘에서 가져갔으니, 결국 5위로 밀려 난 셈이다.

 

투표 결과는 사람 위주가 아니라 당이 좌지우지했다.

한 예로 지난번 민주당 공천으로 당선된 오모 후보가 이번엔 공천을 받지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고작 오백여표를 얻어며 순위에서 한 참 밀려나 버렸다.

낙선한 아들의 실망감보다, 후원하고 지지해 주신 분들 뵐 면목이 없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거대양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인 것이다.

주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거나, 평등이나 정의같은 건 아무 소용 없었다.

민심과 표는 떠도는 바람과 같을 뿐이었다.

 

머리 아픈 선거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아들 놈은 젊기나 하지만, 늙은이가 바쁘게 사는 것은 다들 이해하지 못한다.

 돈도 벌지 못하면서 혼자 바쁜, 나 역시 믿기질 않았다.

몸이 변덕을 부릴 때는 죽는 날을 예견할 정도로 힘들어 하지만

자꾸 거짓말이 되어, 이제 정동지도 믿지 않는다.

 

툭! 손만 대면 넘어갈 것 같으나, 한번 물면 죽어도 놓지 않고,

무슨 일을 벌이면 날밤을 까더라도 해치워야 잠이 온다. 일편 단심 민들레다.

대개의 노인들이 공짜 지하철 타고 다니며, 

탑골공원에서  장기판 훈수나 두는 현실에, 할 일이 많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감히, 카메라와 대마를 내려주신 신의 은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무관세음보살~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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