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무연고 사망과 고독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노년층뿐 아니라 20~50대 청장년층에서도 늘어나는 추세다. 무연고사와 고독사의 원인이 되는 빈곤, 관계 단절, 우울, 고립감 등을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다뤄야 하는 이유다. 영국과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처한다. 영국은 2018년 ‘외로움부’를 설립해 담당 장관직을 신설했고, 일본도 2021년 고독·고립 문제 담당 장관직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2021년 4월부터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고독사 실태조사를 하고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정부는 2022년 초 실태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립과 단절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뒤늦은 감이 있다. 무연고 사망과 고독사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고독사는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혼자 임종을 맞고 일정한 시간(통상 3일)이 흐른 뒤에 주검이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무연고 사망이란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연고자가 있지만 주검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경우를 뜻한다. 연고자는 부모, 자식, 형제자매 등만 인정된다. <한겨레21>은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609일 동안 공영장례를 치른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에 관한 자료를 분석했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의 도움을 받아, 무연고 사망자의 연령과 주거지, 사망 원인 등을 다각도로 살폈다. 6개월여 서울 영등포와 동자동 쪽방촌을 찾아다니며, 무연고 사망자들의 가족과 지인을 만났다. 공영장례가 치러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살아 있을 때 잘 보이지 않았고 죽고 나서야 무연고 사망자라는 숫자로 기록된 이 ‘투명인간’들의 지난 삶의 퍼즐을 모으고자 했다. 이들이 투명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 드러나야, 정부와 사회가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제1384호에서는 무연고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이들의 삶을 추적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고립이 심해지면서 지난 1년간 무연고 사망자가 크게 증가한 추세, 2020년 무연고 사망자 665명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관련 보도는 다음호 제1385호에서도 이어진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무연고 사망이 더는 우리 일상과 멀리 있지 않은 현실, 앞서 대책을 마련한 영국과 일본의 사례 등을 깊이 있게 다룰 예정이다._편집자주
환한 햇빛이 작은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무연고 사망자 허일남(66)이 살았던 서울 영등포구의 쪽방은 눈이 시릴 정도로 볕이 잘 들었다.
영등포구 무연고 사망자 134명
허일남의 생애 마지막 거처는 일세 5천원짜리 3.3㎡(한 평) 쪽방이다. 텔레비전이 있는 방은 일세 8천원, 없는 방은 5천원이다. 그의 방엔 텔레비전이 있지만 켜지지 않아 방값을 5천원만 냈다. 볕은 눈부셨지만, 방은 엉망이었다. 여닫이문 위쪽 유리는 다 깨져서 밖에서도 방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구겨진 신문과 이불, 먼지와 담배꽁초 등이 어수선하게 뒤엉킨 채, 빈방은 방치돼 있었다. 허일남이 많이 아파 경기도 군포의 요양병원으로 옮겨간 뒤 이 방에 들어온 주민이 작은 화재를 내는 바람에 이렇게 엉망이 됐다. 엉망이 되어버린 방의 모습은 허일남의 삶과 겹쳐 보였다. 그는 2019년 12월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패혈증이었다. 허일남이 살던 쪽방에서 가깝게는 10m, 멀어도 150m 남짓 떨어진 근처 쪽방에 살다가 무연고 사망한 이가 9명에 이른다.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치른 1216명의 주소지를 일일이 입력해, 같은 주소지에서 숨진 이들만 따로 뽑아낸 결과다.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1 2층짜리 쪽방 건물에 2명, 경인로2 4층 건물에 3명, 경인로3과 4의 건물에 각각 2명씩 같은 주소지에서 살다가, 차츰차츰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이들 9명은 어딘가 닮아 있었다. 가난했고, 몸과 마음이 아팠고, 술을 마셨다. 물이 낮은 곳에 고이듯, 빈곤과 질병이 쪽방들에 고였다. 9명 모두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사회적 관계망도 단절됐다.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로 주소가 시작되는 영등포 쪽방촌에는 이들 9명처럼 가난, 질병, 관계 단절, 알코올중독 등 바닥의 삶을 버텨내는 ‘투명인간’들이 모여 산다. 쪽방은 ‘약 0.5~1평 규모의 작은 방으로 보증금 없이 일세나 월세를 내는 무허가 숙박시설’을 뜻한다.1 1970년대 성매매집결지와 여인숙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영등포 쪽방촌에는 현재 67개의 쪽방 건물이 있다(2020년 말 기준). 그 안에 벌집처럼 쪽방 531개가 들어차 있고, 거주하는 이는 500명 안팎이다. 남성이 75%, 여성이 25%다. 기초생활수급자는 63%에 이른다.2 이곳의 평균 월세는 22만원이다. 단열과 난방은 물론이고 위생상태도 매우 열악하다. 쪽방 건물의 약 70%는 건물 등기부등본도 없는 무허가 건물이다. 쪽방 주인인 토지소유자들은 외부에 살면서 건물 관리인에게 전세로 건물을 임대해주고, 관리인은 쪽방 주민들에게 월세나 일세로 방을 빌려준다. 서울 쪽방 주민들의 월평균 소득은 70만3천원이고, 연락 가능한 가족이 없는 이가 66.4%에 이른다. 5~15년 거주한 주민(42.8%)이 가장 많고, 15년 이상(28.1%), 5년 미만(26.3%) 거주자가 그 뒤를 잇는다.2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이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서울의 25개 구청에서 받은 공문을 정리한 자료를 보면, 609일 동안 무연고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자치구는 영등포구(134명)다. 무연고 사망자 10명 중 1명(11%)은 영등포구에서 나왔다. 영등포 쪽방과 함께 종합지원센터, 임시보호시설 등 노숙인 지원 시설이 모여 있는 영향으로 보인다.
그들 삶의 퍼즐 조각을 모아보면,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무연고 사망자 삶의 실태가 어떠했고, 어떤 사회적 대책이 필요한지 어렴풋이나마 그려볼 수 있을 듯했다. 영등포 쪽방촌에서 이웃으로 살았던 ‘투명인간들’ 9명 삶의 자취를 따라가보기로 한 이유다.
이탁영(53)이 살았던 영등포구 경인로4 쪽방 복도. 그는 이 복도 맨 끝 왼쪽 방에서 살았다.
허일남 어릴 때부터 무너져내린 인생
허일남의 삶도 처음엔 그가 살던 쪽방처럼 밝은 볕과 함께 시작됐다. 그는 삼대독자 집안에서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귀한 아들을 얻었다는 의미로 ‘한 일’(一)자를 넣어 아들 이름을 손수 지었다. 영관급 장교인 아버지와 생활력 좋은 어머니가 꾸린 서울 종로 집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그의 시작은 행복했다.
행복은 길지 않았다. 아버지는 엄격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허일남에게 천자문을 가르쳤다. 허일남은 아버지가 무서웠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면 알고 있던 것도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틀리면 손찌검이 이어졌다. 영조가 아끼던 아들 사도세자를 뚜렷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잡았듯, 아버지도 허일남을 잡았다. 어린 허일남은 크게 주눅들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아내와 허일남을 두드려 팼다. 허일남의 둘째 여동생 허수영(62)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맞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퇴근해서 귀가하는 저녁이 되면 불안에 떨었어요. 또 폭력이 시작될 테니까. 그 어린 나이에 아버지란 존재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강한 아버지가 없어지지 않을 거 같으니까 내가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만큼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내가 그 정도였으니 피해 당사자였던 오빠는 오죽했겠어요.”
지옥에서도 시간은 흘렀다. 성인이 된 허일남은 군복무를 마쳤다. 밥벌이를 시작했다. 20대 중반이던 1980년대 초 한창 ‘말죽거리 신화’ 개발 붐이 일던 서울 강남에서 부동산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기도 했고, 남대문시장에서 옷 도매 일도 했다. 성악을 전공한 여성과 연애도 했다. 하지만 다시 지옥이 도래했다. 이번 지옥은 피해자였던 허일남 스스로 만들었다. 허일남도 술을 마셨다. 음주 뒤엔 난폭해졌다. 애인을 때렸다. 이를 본 허수영은 “무서웠다. 아버지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알코올중독의 부정적 결과 중 하나는 대를 잇는 중독의 세대전이 현상이다. 음주 지속과 중독 과정에서 삶이 서서히 붕괴돼간다. 일상 붕괴는 건강 악화는 물론 직장에서의 위기, 가족 갈등과 해체, 사회관계 고립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한다.3 1980년대 후반 이후 허일남은 “막 살았던 것 같다”(허수영).
20년 가까이 단절의 세월이 흘렀다. 2000년대 중반쯤 허수영은 오빠의 연락을 받았다. 50대 초반이 된 허일남은 서울의 한 알코올중독 전문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병원에서 꺼내달라”고 했다. 허수영은 “오빠가 거기에 있는 게 좋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허일남이 “이가 빠졌으니 치과 치료를 좀 받게 해달라”고 했다. 허수영은 치료 비용을 부담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뒤론 소식을 알지 못한다. 허수영은 “선하고 성실했던 오빠가 부모를 잘 만났으면 잘 살았을 텐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스크랩 / 한겨레21 / 글 김규남 기자 / 사진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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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부총리 아들 전화 한통에 '특실' 입원 종로 쪽방촌 확진자 "10일 째 방치"…치료 격차 만연 고시원에서 '재택 치료' 중인 확진자와 같은 화장실 사용
취약 거처에선 치료는커녕 기본적 생존권조차 위협
박종민 기자
CBS노컷뉴스 임민정 기자
최근 들어 길거리와 이른바 '쪽방촌' 그리고 고시원 등 비적정 거처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자가격리가 불가능한 공간에 방치되고 있어 큰 문제다.
위중증 환자와 병상대기 환자 숫자가 역대 최고치를 찍는 상황에서 노숙인 지원단체 등은 지난달 이후 서울 쪽방촌, 고시원 등에서만 확진자 170여명이 나온 것으로 집계했다.
얼마 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아들이 전화 한통으로 서울대병원 특실에 2박 3일간 입원할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비적정거주자들은 코로나 확진을 받고도 치료 받을 공간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평상시에도 의료시설 이용이 어려웠던 저소득층들은 코로나 19로 인해 '치료 격차'를 더욱 실감하고 있다. 어떤 계층에 속하는지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생존의 양극화 현상'이 코로나 시대에 들어 더욱 짙어지고 있다.
한 명 걸리니 옆방도 '우르르' 감염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촌에 위치한 A고시원. 고시원 곳곳엔 손 소독제와 동사무소에서 빌려왔다는 분무형 소독기가 자리했다. 확진자가 나온 이후 해당 고시원은 수시로 소독하는 게 일상이 됐고 입주자들은 먹고 씻는 일상을 빼앗겼다. 임민정 기자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촌에 위치한 A고시원. 스물여섯 명이 거주하는 해당 고시원에선 확진자가 9명 나왔다. 한바탕 코로나 바이러스가 휩쓸고 간 고시원에는 음성 판정을 받은 일부 입주자들이 남아있었다. 확진자 1명도 고시원에 남아 재택 치료를 받고 있었다. 확진자가 방 안에서 재택 치료 중임에도 화장실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탓에 음성을 받은 이들도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비닐장갑을 끼고 도시락을 옮기고 있던 고시원 사장 김모(61)씨는 "위험하니 가까이 오지 말고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며 주의를 줬다.
고시원 곳곳엔 손 소독제와 동사무소에서 빌려왔다는 분무형 소독기가 자리했다. 확진자가 나온 이후 해당 고시원은 수시로 소독하는 게 일상이 됐고 입주자들은 먹고 씻는 일상을 빼앗겼다.
A고시원 4층에 거주한다는 김모(42)씨는 "1층 사는 사람이 처음 걸렸다"며 "여기 공동 주방에서 밥먹고 얘기하다 1, 2, 3층까지 다 퍼졌다"고 답했다.
고시원 2층에 사는 김모(63)씨는 "밀접접촉자와 확진자가 옆방에 있어 불안하지만 어떡하겠느냐"며 "그게 현실인데 피할 수 없다. 방법이 없다"고 체념한 표정으로 답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촌에 위치한 A고시원. 고시원 곳곳엔 손 소독제와 동사무소에서 빌려왔다는 분무형 소독기가 자리했다. 확진자가 나온 이후 해당 고시원은 수시로 소독하는 게 일상이 됐고 입주자들은 먹고 씻는 일상을 빼앗겼다. 임민정 기자&nbsp;
A고시원 확진자들은 방에서 대기하다가 증상이 악화하자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사실상 좁은 방안에서 방치됐던 셈이다.
이들은 코로나 상황에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고시원 대표는 "지금은 어디든 아프면 안 된다. 큰일 난다. 병실도 없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늘어나자 주민들의 경계심도 더해졌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 원모(59)씨는 "저쪽 골목에 있는 집에서 감염자가 3명이나 나왔다. 동네가 난리가 났다"라며 손을 내저었다
이어 인근 고시원에서 확진자가 여럿 나왔다고 전하자 "전혀 몰랐다"며 "좁은 데서 서로 모르고 있다가 전염됐구먼"이라며 혀 끝을 찼다.
박승민 동자동 사랑방 활동가는 "코로나가 퍼지고 쪽방촌 주민들이 외부 사람을 꺼려한다"며 "고시원도 그렇고 동네에 개인 화장실이 있는 곳은 단 한곳도 없다. 밀접접촉자와 확진자가 어쩔 수 없이 같은 화장실을 쓴다"고 전했다.
이어 "심각성을 인지한 역학 조사관들이 거주지가 쪽방이라고 하면 우선순위로 방을 배치하려고 하지만 환자가 워낙 폭증하는 상황이라 빨리한다고 해도 늦다"라고 전했다.
"확진됐는데도 나몰라라"…취약거처 살펴야
서울 종로구 돈의동의 또 다른 쪽방촌. 지난달 40명에 달하는 확진자가 발생한 이곳에선 확진자가 10일 가까이 쪽방에 방치되기도 했다. 쪽방촌 곳곳에 '마스크 미착용 시 출입 불가'란 안내 문구가 붙어있었다. 임민정 기자&nbsp;
지난 10일 찾은 서울 종로구 돈의동의 또 다른 쪽방촌. 이곳도 코로나19에 잠식된 상황은 비슷했다. 지난달 40명에 달하는 확진자가 발생한 이곳에선 확진자가 10일 가까이 쪽방에 방치되기도 했다.
쪽방촌 곳곳에 '마스크 미착용 시 출입 불가'란 안내 문구가 붙어있었고 외부인을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폐지 줍는 일을 하는 한 60대 쪽방촌 주민은 "확진자가 많이 나와서 집에 있을 수 없다"라며 "옷 갈아입고 잘 때만 잠깐 머문다"라며 불안해했다.
쪽방촌 어귀에서 만난 70대 김모 할머니는 "11월쯤 주민 한 명이 밖에서 담배꽁초를 주워 피운 뒤로 아팠다"며 "모르고 있다가 요양보호사가 먼저 확진되고 같이 살던 주민 2명 감염됐다. 그 바람에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마스크 2장을 겹쳐 쓰고 있었다.
주민들은 감기와 같은 유사 증상만 보여도 퇴거를 종용받고 있다고도 했다. 쪽방에서 5년째 거주 중인 60대 한 주민은 "체온이 조금만 올라가도 그냥 코로나라고 소문을 낸다"라며 쪽방촌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원래 근처 노인회관에서 밥을 줬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끊겼다"라며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답했다. 쪽방촌 주민들은 감염 위기 탓에 방 안에 있을 수조차 없었고 끼니를 챙기기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와야 했다.
짙은 화장을 한 채 담배 연기를 내뿜던 노미숙(가명∙48) 씨가 버럭 화를 낸다. 옆에 앉은 한 남성 노숙인 때문이다. 담뱃재를 털면서 노 씨는 “난 나이 많아서 괜찮으니까 당신 걱정부터 하라”며 “곧장 집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등을 떠민다.
▲ 지난 8일 여성 홈리스 노미숙 씨는 지하철 서울역 13번 출구 ‘따스한 채움터’ 앞 거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란히 앉아 그가 보는 거리 모습을 담았다. ⓒ 최유진
지난 8일 오후 3시 무렵 지하철 서울역 13번 출구 앞 거리에서 노 씨를 만났다. 하루 세끼를 무료로 먹을 수 있는 ‘따스한 채움터’가 있는 곳이다. 그는 일주일에 사나흘은 아침 7시부터 종일 급식소 근처에서 지낸다. 배식시간이 되면 밥을 먹고 셔터를 내린 가게 앞이나 한적한 골목길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그는 “(급식소에) 가까이 있어야 사람 몰리기 전에 빨리 먹고 나온다”며 “날이 추워져서 낮에 볕 쬐고 (배식) 기다리는 것도 얼마 못한다”고 말했다.
▲ 서울역 인근 무료급식소 ‘따스한 채움터’ 입구에는 배식 일정과 이용자 준수∙조처사항이 게시돼 있다. 노 씨는 매주 사나흘은 이곳에 찾아와 하루 세끼를 먹는다. ⓒ 최유진
“여럿이 자는 데는 안 가” “지금은 길에 있기 딱 좋지. 해가 참 좋다니까. 겨울은 정말 너무 싫어.”
노 씨는 겨울이 무섭다. 추운 날씨에 해가 일찍 저물어 벌벌 떨면서 긴 밤을 지새야 하는 탓이다. 날씨가 춥지 않은 여름에는 바깥에서도 잠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부터는 그냥 밤을 새는 것이지 잠을 잘 수가 없다. 옷을 껴입고 종이 포장박스로 냉기를 막아 보지만 살을 에며 파고드는 냉기를 피할 수 없다. 밤은 왜 그리 길기만 한지, 벌벌 떨며 이제 새벽이 됐겠지 하면 겨우 자정이 지났을 뿐이다.
남성 노숙인들은 추위를 피하려고 없는 돈으로 소주라도 한 병 사 마시고 잠이 들지만 그것도 잠시, 술기운이 떨어지면 잠이 깬다. 여성 노숙인은 그럴 수도 없어 해 지고 새벽까지 열 서너 시간을 추위와 싸우며 견뎌야 한다. 그렇게 밤을 새고 나면 온 몸이 망가진 듯 쑤시고 아프다. 노 씨는 “(겨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돈 없어서 찜질방 같은 곳도 가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겨울이 와도 차라리 떨며 밖에서 지내지 ‘응급 잠자리’는 가지 않을 거라고 고집한다. 노숙생활을 시작할 무렵 일시 보호시설을 찾았다가 불쾌한 일을 당해서다. 불쾌한 정도면 괜찮은데 위험한 곳이 많다.
“요 근처에 여자만 자는 방도 있고, 잘 수 있는 데는 꽤 있지. 근데 나는 여럿이 같이 자는 데는 안 가. 차라리 길에서 잘 거야. 여자 방에 갔더니 험한 꼴 안 당하려면 할머니랑 끌어안고 자래. 싫다고 홀에 있는 카우치(couch)에서 잤지. 근데 남자 셋이 돌아가면서 옆에 와서는 이상한 소리 내고… 그게 완전 성희롱이지.”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어 다시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길거리나 지하도 등도 불안하긴 하지만 그나마 도망이나 칠 수 있어 한데서 자는 것이 편하다는 얘기다.
▲ 서울역 광장에 누워있는 남성 노숙인들. 노 씨는 이곳 광장에서 떼 지어 술 마시던 남성 노숙인들에게 거북한 농담을 들은 이후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 최유진
거리에서도 쉼터에서도 불안한 여성 노숙인
▲ 서울역 광장 한쪽에 서울특별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가 있다.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거리상담(아웃리치), 응급구호, 일시보호시설 연계 등을 지원한다. ⓒ 최유진 “여자들은 ‘다시서기센터’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한 네다섯 명? 남자에 비해서는 적지. 근데 나는 그냥 돈 생기면 찜질방이나 PC방으로 가. 애들이 많잖아. 일단 덜 무섭고....”
노 씨는 맞은 편에서 쳐다보는 남성 노숙인들 거동을 살피며 속삭였다. “진하게 화장하고 담배도 피우면 (남자들이) 쉽게 못 보는 것 같아. 못 피우는 담배를 그래서 입에 물고 있는 거야. 조금 남은 돈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목욕탕 가서 씻고 화장을 하지.”
그는 “PC방도 이상한 사람 오긴 하는데 조용한 데 자리잡으면 잘 만하다”며 “이제 돈 좀 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담배를 피우다 말고 손을 털었다. 저녁 6시가 다가오자 ‘따스한 채움터’로 향했다. 그를 지켜보고 서있자 가라는 손짓을 계속했다.
“옷 넣을 봉지 하나도 사야 한다니…”
“친척 집이 멀긴 한데, 갔다 오긴 했어요. 계속 있기가 그러니까 그런 건데, 갈 곳이 있긴 있는 거죠. 여기 내가 왜 있냐면, 그냥 편하니까 있는 거예요. 나도 애도 있고, 학교도 다녔고 지금 잠깐 이렇게 된 거지. 친척 집에 가면 되는데, 여기가 편해요.”
▲ 서울교통공사는 철도안전법 제48조 ‘역 및 열차 내 노숙행위 금지’에 따라 역 안에 노숙인이 다른 시민에게 피해를 줄 경우 퇴거 명령을 내린다. ⓒ 최유진
젊은 남녀들이 쌍쌍이 손잡고 거리를 거닌다.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와중에 어디선가 드르륵 바퀴 끄는 소리가 요란하게 다가온다. 낡아 다 떨어진 캐리어와 빵빵한 비닐봉지를 이고 다가오는 한 여인이 있다. 사람들은 힐끗 눈길을 주고서 이내 분주히 제 갈 길을 간다. 일부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놓고 외면하기도 한다. 그는 젊음의 거리에서 철저히 이방인이다.
지난달 중순 서울 성균관대 입구 사거리에서 김성아(가명∙42) 씨를 만났다. 그는 거리에서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오래 씻지는 못했다는 고백을 들으며 노숙 기간을 그저 짐작해볼 수밖에 없었다. 비닐봉지 안에 무엇이 들었냐고 묻자, “친척이 겨울 잠바 몇 개 챙겨준 걸 갖고 다닌다”고 했다. 낮에는 따뜻한데 새벽녘으로는 추워서 이불 대용으로 갖고 다닌다는 거였다. 그는 “요즘은 편의점에 가도 봉지를 돈 주고 사야 된다고 하는데 큰일”이라며 “(봉지가) 찢어질 것 같아 튼튼한 가방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날이 추워지면 다시 친척 집에 갈 것이라고 했다.
▲ 지난달 성균관대 입구 사거리에서 만난 김성아 씨가 늘 갖고 다니는 보따리. 비닐봉지에는 친척집에서 얻은 겨울 외투가 들어있다. ⓒ 최유진 쓰레기장 옆 ‘안전 잠자리’
김 씨는 마로니에공원 ‘어딘가’에서 잔다고 했다. 그는 “공원에 행사가 많으니까 심심하지 않다”며 “음악을 자주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근데 거기도 생각보다 남자들이 많이 자는 것 같은데... 내가 어디서 자는지 알면 어떡해? 일단 친척집 가기 전까지는 임시로 있어야지, 임시로.”
그는 “누가 날 따라다니지 않는지 걱정된다”며 “(캐리어가) 너무 시끄러워서 그런 것 같다”고 우려했다. “쓰레기장 옆에 있으면 (사람들이) 잘 다가오지 않아 해코지를 안 할 것 같다”며 “그래서 잠바 싸매고 쓰레기봉지 옆에서 잔 적도 있다”고 말했다.
▲ 지난 7월 신대방역에서 만난 여성 홈리스 박한이(가명) 씨는 가방 세 개를 갖고 여러 지하철역을 돌아다닌다. 공책에는 ‘남구로 월세 뺏겼다’는 내용이 반복해서 적혀 있다. ⓒ 최유진
남에게 피해 안 주려 해도 씻을 곳 없어
지난봄 서울 서초역 인근 한 커피전문점에서 겪은 일이다. 여자화장실을 가려던 사람들이 문을 열어보고는 곧장 자리로 되돌아왔다. 화장실에는 티슈에 물을 적신 채 발을 닦고 있는 한 여성이 있었다. 한참 뒤 그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바닥에는 머리카락 한 움큼이 뭉쳐 있었는데, 그가 쓸어 모아 놓은 것이었다. 그에게 궁금증이 생겼다. 마음 편히 씻을 곳은 없는지 묻고 싶었다. 봉지에 양말을 챙겨 넣는 그를 붙잡았다. 커피 한 잔 하시겠냐는 물음에, 그는 소리쳤다.
“여기 아니면 어디 가라고? 씻을 데가 없어.” 묵직한 책가방을 메고서, 빨랫감을 담은 봉지를 들고서 그는 급히 사라졌다. 아무것도 묻지 못했지만, 괜히 그를 도망치게 만든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 지난 3월 을지로입구역에서 만난 여성 홈리스 김미영(가명) 씨에게 어디서 씻는지 물었지만 “몰라”가 대답의 전부였다. ⓒ 최유진 전국 여성노숙인 2900여명, 거리에도 120여명
보건복지부의 ‘2016년도 노숙인 등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 노숙인은 전체 노숙인의 25.8%로 전국에 2,929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중 거리노숙인은 6.4%로 128명이다. 이 실태조사 결과에는 찜질방, PC방, 만화방 등에서 쪽잠을 청하는 이들은 포함돼 있지 않다.
사람들은 노숙인을 보면 “어쩌다 저 지경까지 됐누” 하면서 노숙인을 은근히 탓하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노숙인들도 좋아서 거리로 나앉지는 않았다. 오죽하면 집에서 나와 거리를 떠돌고 있을까?
서울역에서 만난 여성 노숙인 노미숙 씨는 한때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했다. 이후 학원을 운영했다. 서울 강남에 오피스텔을 갖고 있을 정도로 수입이 좋았다. 그러다 사업이 잘 안돼 실패했다. 이유를 물었지만, 그는 답하지 않았다. 사업 실패하고 오갈 데 없어 나왔는데, 노숙 생활을 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다고만 밝혔다.
노숙인 쉼터나 보호센터 봉사자나 관리자들 말을 들어보면 노숙인들이 홈리스가 되는 과정은 일정한 패턴이 있다고 한다. 당연히 잘살던 사람들이 노숙인이 되는 일은 별로 없고, 대체로 서민이나 중산층 가장들이 은퇴하거나 사업에 실패해서 거리로 나앉는 경우가 많다. 정년퇴직이나 명예퇴직을 하고 생계유지를 위해 퇴직금을 식당이나 자영업에 투자해 경험부족과 경기부진으로 실패하고, 그걸 살려보려고 집까지 담보로 잡혀 다 날리고 홈리스가 된다는 것이다. 집이 없어지면 자녀들은 가까운 친척집에 맡기거나 아내와 함께 처가에 맡기고 가장인 본인은 어디에도 갈 데가 없어 거리로 나앉는다는 것이다.
남성 노숙인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홈리스가 되는 반면 여성 노숙인들은 경우가 좀 다르다. 노 씨처럼 사업실패로 홈리스가 되는 사례도 있지만 돌볼 사람이 없거나 돌보아야 할 사람들이 내팽개쳐 거리로 나앉은 이가 많다. 여성홈리스 12명을 인터뷰해 제작한 다큐영화 <그녀들이 있다>를 보면, 가정폭력을 피해 나온 이도 있고, 미혼모로 살다 생계가 한계에 이르러 나온 이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당장 보호가 시급한 정신질환자들이 상당수에 이른다는 점이다.
강민수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간사는 "노숙 생활이 오롯이 개인 책임만은 아니기도 하다"며 "알코올중독까지 이른 건 개인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저마다 사연을 들어보면 사업 실패나 가정불화, 사별 등 가슴 아픈 이유들이 있다"고 말했다.
"남성 홈리스는 자발적으로 집에서 나오는 경우도 많다. 이를 개인 선택이니 전적으로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들의 생명까지 위험해진다. 실제로 거리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을 너무 많이 봤다. 어떻게 미리 손 쓸 수 있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구구절절 사연을 재고 따지기보다 생명을 일단 살리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보호 필요한 정신질환자도 많아
복지부 조사결과를 보면 여성 노숙인의 47.6%가 조현병, 우울증, 알코올중독, 약물중독 등 정신질환으로 진단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양시설의 여성 노숙인들은 80% 이상이 정신질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신대방역에서 만난 여성 노숙인 박한이(가명) 씨도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그는 지하철 플랫폼에 앉아서 끈임없이 무언가를 노트에 메모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가서 보니 ‘남구로 월세 뺏겼다’는 내용을 반복해서 적고 있었다. 취재를 위해 만난 여성 노숙인 중에도 상당수가 정신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방어할 수 없는 상태에 있어 당장 보호가 필요한 상태에 있다. 노숙인의 개인적인 책임도 없지 않지만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구멍 나고 고장 난 것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드러나고 있다.
‘홈리스’와 ‘노숙인’은 같은 뜻이 아니다. ‘노숙인 등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노숙인 등’은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노숙인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다. 한자 뜻 그대로 보면 ‘노숙인(露宿人)’은 이슬 맞으며 자는 사람이다.
강민수 간사는 “(노숙인에 비해) 홈리스는 집이 없는 사람, 즉 쪽방이나 고시원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까지 확장하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노숙인만이 아니라 홈리스 지원정책이 생겨야 주로 PC방에서 잠을 해결하는 노미숙 씨 같은 사람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서울시 홈리스 정책은 노숙인을 위한 정책이라기보다는 일반인들이 불편해하고 거리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거리노숙인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지난해 노숙인 1,045명 임시 주거 지원…82.4% 노숙 탈출’. 2018년 2월 7일자 서울시 보도자료 제목이다.
‘2018 홈리스추모제’ 주거팀은 “서울시가 (노숙인 탈출에 그치지 말고) 더 나은 주거로의 상향 이동을 위한 후속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노숙인을 거리에서 임시주거로 옮기는데 중점을 두지 말고, 임시시설 거주기간을 최소화하고, 임시거주하는 동안에도 노숙인들이 최소한 사람답게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숙인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국가가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내몰린 홈리스들을 위한 종합적이고 안정적인 보호시스템과 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