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7

지난 7일 오전 무렵, 동자동 쪽방에 반가운 손님 세 분이 찾아오셨다.

인사동에서 열었던 ‘어머니의 땅’과 '노숙인, 길에서 살다' 전시 보러 오셨다가

‘유목민’ 골목에서 술 한잔 나눈 인연에 불과한데, 급기야 가까워졌다.

 

김문경씨는 하남에 있는 ‘큰 나무 갤러리’ 대표였고

운현선씨는 '실버넷 뉴스'에 투고하는 프리랜서고

강은영씨는 간호사였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이 쪽방을 찾아온 계기는

술 마시다 동자동 집에 한번 놀러 오라 했는데, 진짜 오신 것이다.

 

더구나 김문경씨는 하남에 계시는데, 오전에 도착하려면 일찍 서둘렀을 것이다.

뒤늦게 알았지만, 그날이 그분 생신이라 송구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렇다고 쪽방에 접대할 음식은 물론 앉을 자리도 없지 않은가.

세분이 방안에 들어오니 방이 꽉 찼다.

아무것도 없는 방안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포스터나 사진 보느라 시간 보냈다.

 

서둘러 나와서는 골목 입구에 자리잡은 대우식당에 들어가 허기부터 메웠다.

전날 신학철선생 전시 뒤풀이에서 퍼마신 술로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인데,

시원한 국물이 들어가니 훨씬 편안해졌다.

옆에 있는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런데, 밥값은 물론 찻값까지 손님들이 내 버렸다.

아무리 얻어먹는 거지라지만, 몰염치도 이런 몰염치는 없을 거다.

생일선물로 사진이라도 한 장 드리고 싶다고 했는데,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있을지 모르겠다.

 

우연히 알게 된 인연이지만 "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지 않던가?

다들 고마웠습니다. 앞으로 좋은 인연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행복하고 건강한 나날 되십시오.

 

사진, 글 / 조문호

 

 

2021,9,22

 

추석은 잘 지내셨습니까?

저희들 사는 모습이 책과 전시로 소개된다네요.

많이 봐주시고 우리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버려주십시오.

우리는 하늘에서 떨어진 외계인이 아니라 똑같은 사람입니다.

가족과 사회에 버림받아 거리를 떠돌며 목숨을 이어갈 뿐입니다.

부디 절망의 벼랑에서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십시오.

 

2021년 10월 22일

김지은 합장

 

https://blog.naver.com/josun7662/222504873464

2021.9.21

서울역 주변에는 그림자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노숙인이 많다.

숨어 산다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지난날을 돌아보는 자체가 고통일 뿐이다.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심지어 이름까지...

 

그리고 누구에게도 간섭받기 싫어한다.

투명 인간으로 떠돌다 죽고 싶은 것이다.

 

‘서울역 다시서기 지원센터’ 지하 벽에는 노숙인들이 써 놓은 낙서가 많다.

 

“서러움과 슬픔이 가득 차고, 술과 욕설과 싸움이 난무하는 곳”

‘내 고향 솔치재“라는 글도 눈에 뜨인다.

솔치재라면 내가 살던 정선 지척에 있던 고개 이름이 아니던가?

낙서 중에는 백조 시인이 쓴 ’신비로움과 사소함의 동거‘라는 시도 있다.

 

”오랫동안 간절한 것은 신비롭고

한참 머무는 것은 사소롭다.

신비는 직장에서 잘린지 오래고

사소는 각방을 쓴지 오래다.

불황이 걷히지 않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오해가 풀리지 않아

바람 부는 날이 잦아진다.

신비로움과 사소함은 동거 중이다.

궂은날이 이내 지나가고

풀어헤친 머리를 야무지게 묶는다.

네가 내게로 온다“

 

백조 시인이 일 년 전에 쓴 글이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진다.

 

노숙인들의 술자리에는 말 없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이야기가 나와도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실 뿐이다.

말 없는 이들은 표정도 변화가 없다.

다 놓았으니 마음은 편할 것이다.

 

추석을 며칠 남긴 서울역광장의 밤은 한적했다.

다들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었더라.

 

오 갈대 없는 이의 명절이란 또 하나의 고통에 다름아니다.

 

다음 날은 쪽방촌 추석 선물 나누어주는 날이다.

웬일인지 ’새꿈공원‘에 선 줄이 길지 않았다.

다들 추석 선물이라 모자라지 않을 것으로 여겼나 보다.

옆방 사는 김씨는 마스크를 두고 와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나누어 준 선물 박스는 쌀이 들어 묵직했다.

육개장, 라면, 김, 고추장, 된장에 이르기까지 식료품 종합세트였다.

대개 내용물이 비슷비슷해 된장과 고추장은 지난번 것도 있어 남아돈다.

 

낑낑거리며 사층까지 올려놓고 라면 끓일 물을 올리는데,

때맞추어 교회 청년들이 도시락을 전해 주네.

 

고맙게 받아먹었으나, 부끄러웠다.

남의 도움에 길들어 산다는 것이...

 

사진, 글 / 조문호

 

 

2021.9.14

‘노숙인, 길에서 살다’ 출판기념전

 

조문호展 / CHOMOONHO / 趙文浩 / photography

2021-09232021-1004

노숙인, 길에서 살다 / 이숲출판사 / 가격 25,000원 / (2021,6 동자동)

 

-작가 사인회 : 9월25일과 10월2일, 오후1시부터 5시까지-

‘유목민’ 골목 담벼락

서울 종로구 인사동 16길

사람보다 짐승이 더 사랑받고, 사람보다 돈을 더 우러러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재물 지상주의에 밀려나 가족에게 버림받고 거리를 헤매는 노숙인들이 많습니다. 더러 사업 실패로 밀려난 사람도 있으나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다 노숙의 길로 들어선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에 의해 가난이 대물림 되었기에 대부분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하니 운신조차 힘들어 술로 위안하며 아무도 가보지 못한 천국행 열차를 기다립니다.

 

2019, 2 / 서울역 지하도

 

그들은 영양 결핍과 만성적인 수면 부족으로 여러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무슨 천형의 죄를 지어 짐승보다 못하게 살다 길에서 죽어야 하며, 죽음을 방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방관보다 더 슬픈 것은 노숙인들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입니다. ‘젊은 놈들이 일 안 하고 술만 마신다’지만 신체적 장애가 있거나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2017, 3 / 동자동

대개 인간적이거나 마음 여린 사람들이 생활전선에서 쫓겨나게 되는데, 가면 갈수록 물질문명에 밀려나는 능력 없는 자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잘 살수록 빈부의 격차가 커져 절대 빈곤자는 계속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제 국민들의 공감 아래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그들을 구제하는 것은 줄 세워 밥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쪽방이라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2018,5 / 동자동

그들은 빈민들에게 주는 기본적인 혜택마저 별의별 까다로운 규제에 걸려 소외되고 있습니다. 삶의 고통을 잊기 위해 술로 연명하며 죽음을 재촉합니다. 한국인 평균수명이 81세라지만, 노숙인의 평균 수명은 48세로 한 해에 거리에서 죽어가는 무연고자가 300명을 넘습니다. 서울역광장에 머무는 노숙인 최씨는 “차라리 코로나에 걸려 죽는 편이 낫겠다.”고 말합니다.

 

2017,12 / 서울역광장

쪽방 사는 빈민들도 추위나 비를 피할 곳만 있을 뿐이지, 그 비참함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춥거나 더운 비좁은 쪽방 공간은 차지하고라도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려면 아침부터 줄을 서야 합니다. 식기마저 지저분한 화장실에서 닦아야 해 위생이란 말은 사치스런 말일 뿐입니다. 옆방에 살던 멀쩡한 사람이 가파른 계단에서 넘어져 목숨까지 잃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2018,5 / 동자동

빈민들을 줄 세워 나누어 주는 것도 불편하지만, 정치인들은 빈민들을 이용하는 자선 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얻어 먹어려고 줄 서는 것이 비참하고 부끄러웠으나, 세월이 지나니 서서히 길들어 갔습니다. 줄 세우지 말고 시간 날 때 찾아가도록 해 달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 모이는 것 자체를 제한하지 않습니까? 동사무소에서 할 일을 ‘쪽방상담소’란 별도의 조직을 두어 강제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2017,1 / 동자동

정작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가파른 계단의 손잡이 설치나 수시로 합선을 일으키는 오래된 전선의 정비는 물론 짐 둘 곳이 없어 다리도 펼 수 없는 쪽방에 선반을 만들어주는 등 꼭 필요한 일은 나몰라라 합니다. 물론 방세 받는 건물주들이 할 일이나 시설보수란 어림반푼어치도 없고, 방세가 한 달만 밀려도 쫓아냅니다. 월세도 현금으로만 꼬박꼬박 받아 탈세를 밥먹듯 하는 악덕건물주들은 왜 단죄하지 못합니까?

 

2016,10 / 동자동

그러나 쪽방에 사는 빈민들은 절반이 기초생활수급자라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염려는 없지만, 길에서 사는 노숙인의 비참한 삶은 눈 뜨고 못 볼 지경입니다. 줄 세워 나누어 주는 식료품 배급마저 그들은 받을 수 없습니다. 정부는 물론 세상이 포기한 버려진 사람들입니다. 빈민들을 위한 복지라는 말은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2021, 1 / 서울역광장

저는 5년동안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사연을 기록해 왔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쪽방촌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살아 남기 위해 온 것이라 제대로 된 카메라도 없습니다. 똑딱이 카메라 하나 달랑 챙겨 온 것은 일기처럼 나의 생활 주변을 기록하기 위해서입니다. 연필처럼 항상 주머니에 지니고 다니며 가감 없이 보이는 대로 찍었습니다. 주관이 개입되는 글을 보완하는 장치로서 말입니다. 그 동안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으로 남긴 것이 이번에 펴낸 ‘노숙인, 길 위에 살다’ 포토 에세이 집입니다.

 

2020,3 / 동자동

이 책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죽음에 내몰린 노숙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고, 쪽방촌 악덕 건물주들의 방해로 머뭇거리는 쪽방촌 재개발이 하루속히 이루어져, 빈민들의 삶이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0,10 / 동자동 새꿈공원

 

다른 나라에서도 못하는 부랑자 구제를 우리가 선진적으로 해결합시다. 빈민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정치인들 몫이므로, 이 책을 정치인들이 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어딜 가나 밥 먹여주고 잠 재워주는 환경을 만드는 대신, 노숙은 못하도록 단속해야 합니다. ‘사람이 먼저다’는 문대통령이 내세운 기치가 빈말이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조문호

 

 

조문호展 / CHOMOONHO / 趙文浩 / photography

 

 

 

 

 

지난 월요일 오후엔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쪽방 거지는 걱정할 것 없으나 길거리 사는 거지는 지랄 같다.

이불 삼은 종이 박스도 젖어버리지만, 몸 젖는 것보다 마음 젖는 것이 더 서럽다.

노숙인들이 비 오는 날, 술을 더 많이 마시는 이유다.

 

다들 비 피할 곳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누군가 랩처럼 비닐을 몸에 감고 버티는 자도 있었다.

깡다구로 버티는 것일까? 아니면 움직일 기력조차 없는 것일까?

무슨 천형의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으로 살아야 할까?

 

 

그래도 지은이는 우산을 하나 챙겨들고 서울역광장을 돌아다녔다.

똑같은 노숙자지만 지은이는 낙천적으로 산다.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불평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 옷이 그 옷이지만 나름대로 바꿔 입어가며 멋을 엄청 부린다.

 

만들어 주기로 한 시진을 준비하지 못해 일부러 눈 마주치기를 피했으나

멀찍이서 보고 다가와 사진 찍어달라며 포즈부터 취해준다.

다음엔 꼭 사진을 뽑아오겠다고 변명했더니,

밀린 사진이 석 장이라며 찍은 회수까지 기억했다.

 

지하도를 건너오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 인사를 한다.

그는 마스크 쓴 나를 알아보는데,

나는 마스크도 쓰지 않은 그를 왜 기억하지 못할까?

치매 환자라며 이름이 뭐였더라고 머리를 조아리니,

박완호예요 박완호라며 어이없어한다.

 

그런데, 자칭 인사동 광대라는 자가 서울역엔 어떻게 진출했나?

하기야! 나 역시 인사동 찍사가 서울역 부근에서 놀지 않는가.

서울역광장은 거지들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동자동으로 건너와 공원에 갔더니, 젖은 땅에 앉아 여럿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누군가?

근 일 년 가까이 종적을 감추었던 유정희가 나타난 것이다.

너무 반가워 젖은 자리에 끼어 앉았는데, 그동안 감방에서 몸조리하고 왔단다.

싸움판에 끼어 덤터기를 썼다는데, 폭력전과 별까지 달았다며 씁쓸해한다.

 

사진사용 동의서를 받기 위해 일 년 가까이 서류를 갖고 다녔는데

원고 마감하고 나서야 나타났다며 안타까워했더니,

형님! 우리 사이에 그런 게 뭐 필요합니까?”라며 오히려 섭섭해한다.

 

나 역시 그의 말처럼 찍힌 사람들에게 사인받으러 다니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만약 찍힌 사람이 고소를 해도 이왕 단 별, 몇 개 더 단다고 나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출판사 등 제삼자에게 줄 피해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위의 충고를 외면할 수 없었다.

노숙하는 친구들은 머무는 곳이 일정치 않아 만나지 못하면 부득이 사진을 뺄 수밖에 없었다.

 

출감기념으로 소주 두 병 사 와서는 빗물에 칵테일해 마셨다.

그런데, 건너 자리에 있던 상일이가 내 옆으로 옮기더니 말을 붙인다.

다들 나에 대한 호칭을 형이나 어르신 아니면 사진작가라 붙이는데, 이 친구만 늘 사장님이라 부른다.

~ 배도 안 나오고 이래 삐적 말라빠진 사장이 어딧노?”라며 싫어해도 자기는 그 말이 편하단다.

 

오래전 상일이가 나온 사진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아는 친구가 그 내용을 찾아주어 보았다는 것이다.

결론은 어려운 처지를 알려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인들은 노숙하는 친구를 범죄자처럼 피하지만,

이야기를 해 보면 다들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다.

이 야박한 세상에 착하게만 사니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한 자리에서 끝장을 보지만, 몸이 축축해 더 마실 수가 없었다.

쪽방에 올라와 옷부터 갈아입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는 중에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가짜 미투로 독박 쓴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최효준씨가 쪽방을 방문하겠다는 것이다.

달짝한 복분자 술을 한 병 사왔는데, 부족한 알콜 농도는 복분자로 보충했다.

 

사진, / 조문호

 

 

 

며칠 전 아침 무렵 공원산책에 나섰다.

그 때까지 잠에서 못 깬 노숙자도 있었고,

초장부터 술로 달래는 노숙자도 여럿 있었다.

 

밥 배급은 점심 때 부터 시작하니 다들 빈속일 것이다.

빈속에 들어가는 짜릿한 맛을 알랑가 모르겠다.

나 역시 엊저녁 마신 술에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었다.

 

참아야지. 참아야지를 연발했으나 순식간에 무너졌다.

공원입구 술자리에 한동안 안 보였던 병학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역 확진자 실려 갈 때 저승 따라 간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을 위해 어찌 축배를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연을 들어보니, 코로나 걸린 것이 아니라 감방에 다녀왔단다.

죄목이 절도죄라는데, 임자를 알 수 없는 텐트를 잠깐 옮긴 죄였다.

 

그들이 머문 자리는 비에 노출된 곳이라 텐트가 절실했을 것이다.

오래 전 비를 피하지 못해 낭패 당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았기 때문이다.

몸 젖는 것이야 샤워 쯤으로 생각하나 이불은 물론 담배마저 젖어버린다.

 

2018.5.17촬영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오들오들 떠는 것이 안 서러워 옷을 갖다 준 적도 있다.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장 발장은 빵을 훔쳐 잡혀 갔지만

집을 훔친 그 역시 생계형 신판 장 발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2018.5.17촬영

쪽방으로 올라 와 페북질에 빠져 있으니, 고맙게도 한 젊은이가 도시락을 전해준다.

살기 위해 먹었으나, 배가 덜 고파 지껄이는 헛소리에 다름아니다.

 

가볼 곳이 있어 일어서니, 맞은편 김씨도 나서고 있었다.

어디를 가는지 이 더운 여름철에 정장을 차려 입었다.

 

반질반질한 구두는 파리 똥도 미끄러질 것 같았는데,

아직까지 많은 자금을 빌려 바다 야시장을 개발하려는 허황된 꿈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지척에 있는 ‘KP갤러리’를 찾아갔.

그곳에는 임창준의 기원의 장소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텅 빈 전시장을 돌아보며 빈 자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사진, / 조문호

 

 

서울역광장에 머무는 노숙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노숙인 단속반이 들이닥쳐 외곽으로 쫓겨나야 했다.

단출한 짐을 가진 노숙인들은 잠깐 외곽으로 옮겼다 다시 자리잡으면 되겠으나

짐을 많이 가진 김지은씨만 피박을 썼다.

 

서울역광장에서는 제일 오래된 고참이지만 단속하는 경찰 앞에는 찍 소리도 못했다.

많은 짐이 모두 쓰레기봉지로 들어갔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심지어 라면 담긴 봉지마저 집어넣자 그것만은 간신히 돌려받았다.

단속반이 사라지면 또다시 하나하나 주워오겠지만, 그 시간만큼은 말끔하게 치워졌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노숙자가 노숙자에게 갑 질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힘센 노숙자가 누워있는 노숙자에게 일어나라며 지팡이로 후려치자 지팡이를 잡고 통사정 한다.

단속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행동인지 모르지만, 권력자에 빌붙는 완장부대가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단속하는 경찰 역시 완장부대에 다름 아니다.

그런 완장부대의 잔재는 노숙자들 뿐 아니라 쪽방촌에도 종종 볼 수 있다.

쪽방상담소 일 돕는 자들의 갑 질은 물론 심지어 모범방범대 마저 그런 우월감이 묻어난다.

독버섯처럼 사회 곳곳에 기생해 온 완장부대의 잔재가 아닐 수 없다.

 

완장부대란 말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지만 꽤 오래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의 홍위병들이 찬 완장은 사람 죽이는 완장이었고,

일본 놈들에게 빌붙어 온갖 만행을 저지른 일제의 완장부대는 물론, 한국전쟁 때도 완장이 설쳤다.

 

대개 완장 찬 사람은 건달이 많았는데, 완장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었다.

완장을 채워준 권력자의 뒷배를 믿고 갑 질을 해대는데,

옛말에 때리는 서방보다 말리는 시어머니가 더 밉다는 말이 있듯이

권력자보다 그 밑에 빌붙은 완장부대가 더 미운 것이다.

 

한국사회는 완장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쩡한 사람도 완장만 차면 눈에 뵈는 것이 없어진다.

문제는 권력자가 자신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으로 완장을 채워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충성을 위해서는 정의나 법도 따지지 않는다.

 

공직도 하나의 완장에 가깝다.

완장을 차면 국민도 안보이고, 나라도 안 보이고 오로지 임명자의 입맛만 맞춘다.

정권마저 완장을 채워주는 자들과 완장을 차는 사람으로 구분될 뿐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완장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평등이고 공정이고 말짱 공염불에 불과하다.

 

사진. / 조문호

 

다들 찌푸리고 사는 동자동 쪽방 촌에도 늘 행복하다는 이가 있다.

서울역 주변을 떠돈 지 10년차인 위씨(66세)인데, 그는 개미보다 매미의 팔자를 타고 났다.

 

지난 9일 깊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서울역광장에 나갔다.

쪽방과 달리 시원한 바람이 불어 가을의 향취가 묻어났다.

노숙인들은 총 맞은 병사처럼 여기 저기 쓰러져 자고 있었다.

 

그중에는 내외간인지 남녀가 같이 누워 자는 이도 있었고, 한 할머니는 그때까지 자지 않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붓이 아니라 여러 자루의 볼펜으로 반복적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는데, 얼마나 힘차게 그렸으면 스케치북이 닳아 떨어질 정도였다.

궁금증이 발동했으나 저리 가라며 손사래 쳤다. 야심한 밤인데다 여자라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었다.

 

날이 밝으면 다시 찾을 생각으로 돌아서는데, 버스정유장 벤취에서 노래 소리가 들렸다.

오래 전 ‘다시서기’에서 일했던 위씨가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를 부르고 있었다.

너무 반가워 그동안 왜 그렇게 보이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이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쪽방에서 산다며 너무 좋아했다.

 

간섭하는 사람이 싫어, 낯에는 자고 사람들이 잠든 한 밤중에 혼자 나와 논단다.

얼마나 기타를 많이 쳤으면 기타줄 하나는 끊어져 있었다.

이젠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 너무 행복하다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가족으로부터 버림당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족을 버렸다“며

기타하나 들고 나와 떠돈 지가 어느 듯 십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고 한다.

처음엔 대학로 주변을 떠돌았으나 끼니를 해결할 수 없어 서울역으로 진출했단다.

 

천성이 기타 치며 노는 것을 좋아하니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이젠 이가 빠지고 기타 줄마저 끊겨 볼품없는 노래였지만, 멜라니 사프카의 ‘더 새디스트 씽’을 불렀다.

회한이 묻어났다.

 

“난 울지 않겠어. 내색도 하지 않겠어.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할거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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