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쪽방촌 주민들, 30도 넘는 더위 피할 곳 없어

"서울시 에어컨 설치 도움 안되고 쉼터는 너무 좁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김정호씨 집 천장 모습. 플라스틱판이 얹혀있다. ©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문 열기가 겁납니다."

31도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20일 오후 3시. 김정호씨(62)가 지내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에는 천장이 없었다. 대신 지붕 모양의 철골 윗면을 얇은 플라스틱 패널이 간신히 덮고 있었다. 김씨가 집 문을 선뜻 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패널 때문이다. 플라스틱 판이 태양열을 그대로 흡수해 방 전체를 찜통으로 만든다. 

쪽방촌의 살인적인 폭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평 남짓한 쪽방에는 겨우 이불을 깔고 누울 좁은 공간만 있을 뿐이다. 에어컨은 언감생심이다. 김씨는 "창문이 있는 방은 A급"이라며 "대부분은 창문이 없어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창문이 있어도 별로 다르지 않다. 김씨는 창문 없는 방에서 6년을 살다 월세 3만원을 더 내고 창문이 있는 지금의 방으로 옮겼다. 그러나 단열 기능이 없는 건물이라 그 역시 여름이 고통스럽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쪽방촌 주민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며 에어컨 설치 등을 발표했지만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김씨는 "정상적인 쪽방에는 에어컨을 달기 어렵다"며 "복도에 공동 에어컨을 달아도 밖과 차단되지 않아 냉기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도로 옆 인도에 걸터 앉아있다.©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재개발 갈등속 더위 피해 거리로 나온 쪽방촌 주민들

동자동 쪽방촌은 1년 넘게 재개발 이슈에 휘말려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2월 동자동 쪽방촌 일대를 공공주도로 재개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토지 소유주 등이 '사유재산 침해'라며 반대해 지구지정도 못하고 있다. 

동자동주민대책위는 지난 12일 서울시와 만나 공공재개발 대신 민간재개발사업안 제출을 제안했다. 서울시는 당시 사업안이 제출되면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아직 민간재개발사업안이 제출되지는 않은 상태다.

재개발이 지지부진한 사이 쪽방촌 주민들은 올해도 폭염에 고통받고 있다. 

이들이 더위를 피하겠다며 자주 찾는 곳은 바람이 잘 통하는 대로변이다. 이곳에서 17년을 산 동자동 사랑방마을 대표 윤용주씨(61)는 "더위가 심한 날에는 여기 건물 앞에 돗자리 펴고 자는 사람이 많다"며 바로 앞 고가 오피스텔을 가리켰다. 

실제 이날 윤씨가 가리킨 오피스텔 옆 인도에는 쪽방촌 주민 열명 남짓이 걸터앉아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며 더위를 잊으려 하고 있었다. 

윤씨에 따르면 이들은 돗자리나 박스를 깔고 더위를 피해 잠에 들었다 새벽 어스름이 깔린 후 이슬비로 몸이 축축해지면 방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오피스텔 주민들이 이들을 노숙자로 오인해 신고하는 일이 잦아 그마저도 쉽지 않다. 

서울역 쪽방안내소는 동자동 쪽방촌 상담소 지하 2층에 쉼터가 있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실효성이 없다며 불만이다. 쉼터는 작업장과 남녀 샤워실 사이 5평 남짓한 공간이다. 등록된 쪽방촌 주민 880여명에 비하면 턱없이 좁다. 

 

새꿈어린이공원 무더위쉼터. ©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근처 새꿈어린이공원 무더위쉼터 또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이날 공원 쉼터에 설치된 그늘 천막에서는 주민 10여명이 선풍기를 튼 채 앉아 있었다. 저녁에는 그늘 천막이 걷힌 자리에 종교단체가 야간 더위를 피하라며 천막을 친다. 그러나 윤씨는 "야간 천막에서 술판이 벌어진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지옥고(지하·옥탑·고시원) 아래 쪽방'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곳 주민 중에는 65세 이상 노인이 40%, 장애인이 30%나 된다. 이들에게는 기약 없는 재개발이 아닌 당장 오늘의 더위를 식혀줄 방안이 더 절실해 보인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위치한 김정호씨 집.©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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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 거리. 우측에 테이프로 막아 놓은 창이 보인다.   사진=박효상 기자

중세 유럽에서는 창의 숫자로 세금을 매겼다. 창은 곧 부의 상징이었다. 그 후로 500여 년이 흐른 지금, 유럽에서 약 8900km 떨어진 한국은 어떨까. 어쩌면 여전히, 창이 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있지 않을까. “창 있는 방은 26만 원, 없는 방은 18만 원” 창은 곧 돈. 사람이 살아선 안 되는 공간에서조차 돈에 따라 삶의 등급이 나뉘고 있었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지난 6월부터 두 달간 서울·경기 지역의 고급주택과 아파트, 다세대 주택, 고시원, 쪽방을 돌며 이곳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를 통해 얻은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창에 비친 삶의 격차를 조명한다. 이번 기획을 통해 우리 사회가 창 없는 삶을 생각하고, 이들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자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이병수씨의 쪽방. 이중창으로 리모델링 했다.   사진=최은희 기자

창이 바뀌자 집이 제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이병수(가명·62)씨가 사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 한 쪽방. 리모델링된 이중창이 설치돼있다. 폭은 1.14m, 높이는 0.98m다. 전에 살던 곳의 두 배가 넘는다. 더는 숨 막히는 더위에 밤잠 설치지 않는다. 겨울철 칼바람을 맞는 일이 사라졌다. 공중에 떠다니던 먼지는 창을 통해 빠져나간다. 수시로 나오던 잔기침도 잦아들었다.

창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창은 채광, 환기, 신체·정신 건강 등에 영향을 준다. 때로는 삶과 죽음도 가른다. 지난 2018년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사건이 대표적이다.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최저주거기준을 다룬 법은 2004년에서야 도입됐다. 이전에 지어진 주택에는 소급해 적용하지 않는다. 법이 생겼지만, 기준에는 여전히 빈틈이 많다. ‘적절한 설비’를 갖춰 채광·환기·방음을 충족하거나 법정 기준을 따르라는 식이다. 고시원·쪽방 등은 최저주거기준 적용조차 받지 않는다. 사람이 살고 있어도 주택이외의 거처(비주택)로 분류돼 사각지대다.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고시원의 최저 창 기준을 마련했지만 갈 길이 멀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은 ‘표준주택 규정’을 통해 창과 관련한 상세한 기준을 명시한다. 채광되는 방향으로 최소 1개의 창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 등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주방과 화장실 창이 필수다. 강력한 행정조치도 한다. 영국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최저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불량주택에 임대제한이나 강제철거를 명령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창의 최소 조건은 무엇일까.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의견과 해외 법령을 참조해 안전과 인간 존엄성을 지킬 창의 기준을 살펴봤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이 구현한 창의 최소 기준.   CG=윤기만 디자이너

① 채광 가능한 방향으로 난 1개 이상의 창

최소 1개 이상의 창을 해가 드는 방향으로 설치해야 한다. 일조권은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 권리다. 영미권 선진국은 1945년부터 적어도 1개의 창을 통해 빛을 누릴 권리를 보장했다. 사람다운 삶을 위해서는 적절한 채광창이 필요하다.

② 하루 4시간 햇살 확보

최소 하루 4시간 자연광이 들어와야 한다. 햇살을 받아야 만들어지는 비타민D는 당뇨, 고혈압, 골다공증, 만성피로 발생 확률을 낮춘다. 빛은 행복감을 높이는 세로토닌 호르몬 합성에도 관여한다. 적절한 일조량은 우울 완화에 효과가 크다.

빛 한 줌 들지 않는 공간에서 건강은 빠르게 나빠진다. 2020년 기준 고혈압·당뇨·관절염 등 지병이 있다고 답한 쪽방 주민은 82.5%다. 마음의 병을 앓는 이도 많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이 빈곤 주거 거주자 30명을 대상으로 국립정신건강 센터에서 만든 우울·스트레스 척도 진단 면접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우울 중증 17명, 심각은 9명에 달했다. 정상 범위에 속한 이는 2명에 불과했다.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골목에 붙은 대자보.   사진=민수미 기자

③ 폭 0.5m, 높이 1m 그리고 최소 개폐 면적

창은 실외와 접해야 한다. 최소 폭 0.5m, 높이 1m 크기를 확보해야 한다. 창은 최소 폭 0.5m, 높이 0.5m 열려야 한다. 주거 취약계층에게 창은 비상구다. 창이 없는 방, 복도로 난 창은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 미국 표준주택규정에 따르면 창은 1/2 이상 개폐 가능해야 한다. 성인이 건물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크기만큼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④ 이격거리 최소 3m 이상

건물과 건물 사이 이격거리는 최소 3m 이상이어야 한다. 대다수 고시원·쪽방 건물은 주변 건물과 다닥다닥 붙어 있다. 창을 열면 바로 담벼락인 경우도 있다. 조망은커녕 사생활 보호조차 어렵다. 빈곤 주거 중 사생활 침해를 호소한 비율은 19.5%다.

전문가는 주거 취약계층의 창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재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창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방풍재를 덧대는 방식으로라도 보완해야 한다”며 “사람은 누구나 쾌적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한국의 최저주거기준은 강제력 없는 권고에 불과하다”며 “선진국은 빈곤 주거에 대한 논의를 100년 전부터 했다. 한국 사회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자문 강재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장명훈 청년다움건축&디자인 대표, 차상곤 주거문화개선 연구소장,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교수

찜통 같은 쪽방을 탈출하여 바람 통하는 길목에 자리 잡았다.

정신 나간 상민이만 횡설수설할 뿐,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다.

 

공원에는 음식점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선풍기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릴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다시 쪽방으로 올라가는 무료한 일상이 반복된다.

물 한 바가지 뒤집어쓴 후, 수도승처럼 좌정하여 스스로를 돌아본다.

 

요즘 몸도 아프지만, 자책감에 더 시달린다.

'가족보다 사진이 더 중요하냐?'는 때 늦은 반성 때문이다.

예전엔 타고난 팔자라며 자위했으나 지금 생각하니 죄악에 가깝다.

 

그리고 사람이 좋아 사람만 찍어 온 사람이 사람만나기가 싫어졌다.

아니, 사람이 싫다기보다 사람 찍을 자격도 없는지 모른다.

전시장 들리는 일을 비롯하여 사람 만나는 일을 피해 가며

동자동과 녹번동만 오간지가 벌써 두 달째다.

 

무슨 일이든 즐겁게 살면 그만이지만, 그동안 주변 사람들 마음 다치게 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쓴 소리로 많은 사람을 잃었다.

늦었지만 전시리뷰나 사사로운 내용은 올리지 않기로 작정했으나, 잘 지켜질지 모르겠다.

 

마지막 소원이라면 동자동이 재개발되어 주민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지만,

죽기 전에 재개발된 쪽방에서 살아보기는 틀린 것 같다.

 

공영개발보다 민간개발에 힘이 실리고 있는데, 아무리 용적률을 조정하여 많은 세대를 수용한다지만

거지 사는 아파트를 돈 많은 분양자들이 찾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쓰서라도 쪽방주민을 내보내려고 하겠지만, 주민들을 몰살시키지 않는 한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자난달 초순, 오세훈시장이 창신동 쪽방촌에서 약자와의 동행을 선언하며 쪽방에 에어컨을 달아주겠단다. 

서울에 있는 쪽방이 삼천오백여개나 되는데, 150대로 어디다 붙인단 말인가?

코구멍 만한 쪽방이라 복도에다 에어컨을 설치하여 모든 방문을 열게 한다지만,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차라리 층마다 생수기라도 놓아 시원한 물이라도 마음대로 마실수 있도록 해주는 게 더 좋다.

 

또 한 가지 혜택은 쪽방 주민들에게 한 끼 팔천원 상당의 식권을 매일 한 장식, 년 말까지 준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씩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골라 먹을수 있는 일인데,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용수칙을 살펴보니 마음 상하는 대목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먼저 '동행식당'으로 지정된 식당에서 식사하기 전에 명부를 작성해야 하고,
이용자가 많은 혼잡한 시간을 피해 가급적 세사람 이상 가야 한다고 적어놓았다,

똑 같은 밥값을 주는데, 왜 이리 규제가 많은지 모르겠다.

 

밥 값이 팔천원을 초과하면 모자란 돈은 내야하지만, 남는 돈은 돌려주지 않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았다.

식당 이용 시 청결한 복장을 갖추라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쪽방 주민을 거지로 취급한다는 말이 아닌가?

 

대화도 없이 일방적 동행을 외치는 오세훈시장님!

제발 헛발질 그만하시고. 동자동 공영개발에 힘 좀 보태주세요.

 

요즘 내가 하는 일은 함께 싸울 쪽방 사람들 정면사진 찍기다.

서울역 전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동지들 사진첩을 만들 계획이다.

여태 내가 찍어 온 초상사진은 상대의 눈동자에 주목해 왔다.

눈빛에서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진으로 말하는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사실적 기록만을 고집해 왔다.

사진은 사진이어야 한다는 고) 이명동선생 말씀을 새겨 왔는데,

사진 최고의 가치는 허상을 쫓는 게 아니라 진실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하기야! 해석이나 의도에 따라 왜곡될 수밖에 없어 사진이라고 모두 진실할 수도 없겠다.

 한 장의 예술이기보다 한 장의 사진을 원한다는 뜻이다.

시대를 증언하는 사진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누군가의 사진첩에 남아 오랫동안 그 때를 추억할 수 있는 사진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작금의 세상은 거리 스냅사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버렸다.

초상권이란 지나친 권리 주장에 사진가들이 찍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거리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라져, 자연스러운 스냅사진을 만나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렇지만 찍힌 자의 명예를 훼손하지도 않는데, 무조건 막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

다큐사진가라면 대중의 잘못된 과잉방어에 승복해서도 안 된다.

 

나는 가급적 상대방을 바라보며 찍은 후,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준다.

처음엔 흠칫 놀라지만, 이내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만약 상대가 싫어한다면 그 자리에서 지워주면 그만이다.

그리고 나중에 법적인 문제가 생겨도 포기해서는 안 될 문제다.

벌금 낼 돈 없으면 감방 갈 각오하면 된다.

 

몸 아프다는 신세타령하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버렸다.

동자동 이야기에서부터 사진이야기에 이르기 까지 메주 알 고주 알 늘어놓았는데,

모든 게 무위로 끝나는 막바지에 접어 들었다는 말이다.

미련도 후회도 없지만, 가족을 거두지 못한 못남이 어깨를 짓누른다.

 

사진, / 조문호

 

 

재개발 논의 1년 넘도록 평행선...지구지정도 못해
정부 공공개발 방침에 토지주 사적 재산권 침해 맞서
용적률 700%로 완화하는 정비계획 수정안 통과 기대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촉 쉼터로 향하는 골목길. 사진.신미정 기자

[데일리임팩트 신미정 기자]

 

기록적인 폭염, 푹푹찌는 여름철은 모두에게 힘든 계절이다. 특히 재개발 이슈가 1년 넘게 미뤄진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에겐 더욱 그렇다. 창문도 없는 한 평 남짓한 방에서 답보 상태에 지쳐가는 주민들의 여름나기를 들여다봤다. 

3일 오전 비가 내린 후 용산구 서울역 부근 동자동 쪽방촌 일대를 방문했다. 서울역 희망공동체에서 구호물품 지급이 한창이었다. 몇몇 주민들은 밖에나와 이야기를 하고 일부는 구호 물품을 받으며 분주하게 이동 중이었다.

골몰을 따라 올라가니 한 여성이 강아지와 함께 문 앞에 앉아 있었다. 쪽방촌에 온 지 10년이 넘었다는 이 여성은 “방이 너무 후끈후끈해서 나왔다”며 “창문이 있긴 하지만 너무 작고 옆에 바로 건물 벽에 붙어서 있으나 마나하다”라고 말했다.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에어컨이 있는지 물으니 “건물을 헌다는 소문이 있어서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후보시절 공약이었던 ‘약자와의 동행’의 일환으로 서울시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에어컨 설치작업을 실시한 바 있다.

동자동 쪽방촌은 재개발 논의가 나온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태다.

지난해 2월 국토교통부는 동자동 일대를 공공주도로 재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자동 일대를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른 택지개발 방식인 공공주택지구로 조성해 공공임대주택 1250가구, 공공분양주택 200가구, 민간분양주택960가구 등 총 2410가구 공급을 목표로 연내 공공임대주택 지구지정을 완료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같은 계획은 토지 소유주들의 반발로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역 동자동 준비대책위원회(대책위)는 국토부의 행위에 대해 ‘주민 동의 없는 사유재산 침해’라고 주장하고 있어 현재까지 지구지정도 못하고 있다.

 

동자동 쪽방촌에 걸려있는 현수막. 사진.신미정 기자

결국 국토부는 한발 물러서 대책위에 정부가 계획한 세대 수를 채울 수 있는 민간 개발 계획안을 가져오면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국토부는 서울시에 계획안 검토를 요청했다.

다행히 지난달 서울역 동자동 준비대책위원회는 국토부, 서울시와 논의를 거쳐 ‘역세권 장기전세주택 사업’을 적용해 정비계획안을 마련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역세권 장기전세주택 사업은 역세권 부지(350m 이내)에 주택을 건립하면 용적률을 500%에서 최대 700%까지 완화하는 대신 증가한 용적률의 50%를 장기전세주택으로 확보하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일괄적으로 500% 용적률을 적용받았으나 역세권 위상에 따라 차등 적용한 것이다.

동자동 대책위는 용적률 최대 700%까지 적용받으면 공공개발이 아닌 민간개발로 국토부가 당초 계획한 2410가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계획안이 나오고 국토부의 검토를 거칠 때까지 몇 개월이 걸릴지 몰라 올해도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생활도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동자동 쪽방촌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언젠가는 동자동 쪽방촌 지역에도 큰 빌딩들이 세워질 것”이라며 “주민들이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우리사회의 소외계층으로서 최대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쪽방촌은 밥 주고 물주고 옷까지 챙겨주는 공짜천국이다.

기업이나 사회단체에서 보내온 물건을 수시로 나누어 준다.

 

그 일은 '서울시립 쪽방상담소라는 이름조차 별난 조직에서 주관한다.

서울에 쪽방상담소가 있는 곳은 동자동을 비롯하여 영등포, 남대문, 돈의동, 창신동 등 다섯 군데다.

동사무소를 두고도 별도의 조직을 만들었는데, 주된 일이 줄 세워 물건 나눠 주는 일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달에는 연이틀 동안 나눔 행사가 이어졌다.

명절이나 한더위에 나누어주는 연례행사나 마찬가지다.

이번엔 '서울역 희망공동체',한국가스공사’, 열매나눔재단’에서 보내 온 식료품이었다.

생수에서부터 라면, , , , 통조림, 티셔츠 등 없는 것이 없다.

 

난생 처음 맛보는 인스턴터 식품도 있고, 빨아먹는 죽도 가지가지였다.

주는 것만 잘 챙겨먹어도 누구처럼 뿌옇게 부티가 날 것 같있다.

방부제를 너무 많이 먹어 죽어도 시신 썩을 염려도 없다.

 

선착순 육백 명이라는 벽보 따라 긴 줄을 서야했다.

천 명이 넘는 동자동에 다들 600개만 보냈다는데, 600개란 숫자는 어떻게 산출된 거냐?

평소 줄서는 사람이 600명을 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벽보를 보지 못한 사람이나 힘없는 노약자는 매번 소외된다.

발 빠르고 뻔뻔스러운 자만 얻어먹는 배급인 셈이다.

문제는 모자라는 수량을 핑계 삼아 줄을 세운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날씨가 춥거나 무더운 악천후도 신경 안 쓴다.

 

보내온 물품을 나누어주려면 줄 세우는 방법이 제일 쉽기야 하겠지만,

한 편으로는 홍보 효과를 노리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자립심을 잃게 만들어 의존케 하는 빈민 길들이기라며,

줄 세우지 말라고 몇년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쇠귀에 경 읽기였다.

 

줄 세우기는 노약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물론 심한 모멸감을 준다.

요즘 젊은이들의 줄서기 문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물건을 사기 위해 줄 서는 것과 얻기 위해 줄 서는 차이지만,

배급은 일제강점기부터 국민을 길들여 온 나쁜 잔재다.

 

같은 나눔이라도 동사무소 물품 나눔은 줄 세우지 않는다.

지원하려면 주민 모두에게 공급할 수 있는 량을 요구하여,

동사무소처럼 시간 날 때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

 

일률적으로 나누어주는 물품에는 본인이 필요 없는 물품도 많다.

소량의 지원품은 용산구에서 운영하는 푸드마켓으로 넘겨

필요한 상품을 골라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푸드마켓도 공짜로 주어서는 안 된다. 시중보다 싼 가격으로 공급하라.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쪽방촌 이외의 빈민들도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공영임대주택을 배당받아 다른 지역으로 떠난 주민들이 돌아오는 것으로 보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다들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로워 못 살겠다지만, 줄 세워 나눠주는 먹거리에 대한 미련은 없었는지 모르겠다.

 

더러는 자존심을 지키며 줄 서지 않는 주민도 있다.

이준기씨는 줄을 서지 않은 채, 물끄러미 구경만 하고 있었다.

줄 선 내 모습이 한심했겠지만, 똑같이 줄서서 느끼며 기록하는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서서히 길들어 나도 모르게 뻔뻔해졌다.

쪽방 살이를 오래하다 보니, 고맙다는 말조차 잊어버렸다.

비참하게 사는 것도 서러운데, 인성마저 망가졌다.

 

사진, / 조문호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을 찾아 "약자와 동행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모습.

[주장] 단발성 대책 아닌 '쪽방촌 공공임대주택' 등 근본 대책 필요

 

불볕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장마까지 겹치며 높아진 습도에 몸을 조금만 바삐 움직여도 금세 땀에 젖는다. 평년보다 이른 더위에, 기상청은 향후 3주는 평년보다 기온이 높을 것으로 전망해 폭염으로 인한 고통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쪽방과 같은 더위나 추위에 취약한 주거에 사는 이들에게 있어 폭염은 더욱 다루기 힘든 고통으로 다가온다.
  
매해 5월이면 서울시는 '여름철 노숙인·쪽방주민 특별보호대책'을 발표한다. 이 대책의 핵심은 쪽방상담소나 노숙인시설 등에 에어컨을 놓고 '무더위 쉼터'를 열거나, 야외 무더위 쉼터를 설치해 더위를 피하게 하는 것이다. 올해 역시 서울시는 5월 26일, 같은 대책을 발표해 노숙인 시설 10개소, 쪽방 지역은 14개소에 무더위 쉼터를 설치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쉼터는 전체 쪽방 주민의 6%밖에 품지 못하는 규모, 감염병 전파에 취약한 집합 시설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주거지를 떠나 혹서기를 보내도록 권한다는 점이 가장 문제다. 무더위 쉼터를 택할 경우 시원할 수는 있겠지만, 자기 생활이 깃든 '방'은 통째로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기존 폭염 대책은 쪽방 주민을 마치 '계절적 이재민'으로 간주하는 것과도 같았다. 이런 정책이 현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약자 동행' 주장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그가 내놓은 폭염 대책의 한계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일, 취임식 뒤 첫 행보로 서울 '창신동 쪽방촌'을 찾았다. 오 시장은 취임 이틀 전에도 '돈의동 쪽방촌'을 찾았던 터라, 일주일 새 두 차례나 쪽방촌을 방문하는 이례적인 일정이었다. 아마도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자신의 서울시 정책 브랜드를 강조하고 드러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오 시장은 이 자리에서 '노숙인·쪽방 주민을 위한 3대 지원방안'을 발표했는데, 그 중 하나가 쪽방 주민 폭염 대책이었다. "쪽방 주민들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시 예산과 민간후원을 활용해 에어컨 150대 설치와 추가 전기요금을 지원(7~8월 중 추가요금, 가구당 5만 원 한도)"하고, "여름철 침구 3종 세트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50대라는 물량은 서울지역 쪽방 건물의 절반도 채 안 되는 것으로, 나머지는 폭염 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에어컨이 설치될 건물도 각 실(방)별 설치가 아닌 건물별/층별 설치로, 냉방 효과를 크게 기대하긴 어렵다. 오 시장 스스로도 6월 29일 돈의동 쪽방촌을 방문해 에어컨이 설치된 것을 보고는 "크게 시원하지는 않겠는데 (...) 에어컨 하나로 한 8개 방을 같이 쓰다 보니 턱없이 용량이 부족할 것 같다"라고 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틀 뒤 아무런 개선 없이 똑같은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 살인적 폭염을 다루는 데 적합한 장치가 에어컨이라 하더라도, 여기에만 의존한 폭염 대책은 분명 한계가 있다. 서울지역 쪽방 건물 중 '목조' 건물은 43.2%(2021년 서울시 실태조사)에 달한다. 건물이 노후화해 발생하는 안전 문제와 건물주들의 저항, 내부 전력의 문제 등을 함께 고려할 때 에어컨 설치 대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거 대책 빠진 폭염 대책은 임시방편

 

▲남대문로5가 쪽방 복도에 설치된 벽걸이 에어컨. 쪽방 12개가 이 에어컨 하나에 의지하고 있다.

 
공조설비가 없는 쪽방의 특성상, 복도에 놓인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서는 방문을 계속 열어 놓아야 한다. 이럴 경우 안전과 사생활 침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남대문 쪽방 주민인 홍아무개씨는 "그럼 맨날 방문을 열고 살란 말이냐. 사람들이 오며 가며 들여다 볼텐데 어떻게 열어 놓고 살 수 있냐"고 했다. 옆에 있던 주민 박아무개씨는 며칠 전 새벽, 방문을 열고 자던 중 도둑이 들어 도둑 발목을 붙잡았다는 일화를 얘기하기도 했다. 더구나 쪽방촌 여성 주민들에게 '방문 열고 생활하라'는 건, 사생활은 물론 자기 안전을 포기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모든 쪽방에 작은 에어컨을 달면 문제가 해결될까? 앞서 말했듯, 목조 등 쪽방의 취약한 구조와 낡아 손상된 건물의 상태가 이를 버텨내기 어렵다. 게다가 쪽방의 32.9%는 아예 창문이 없다(2020년 서울시 실태조사). 건물주들에 대한 보상과 대대적 조치를 통해 모든 쪽방에 에어컨을 놓는다 해도 쪽방 주민의 삶은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 최근 쪽방 주민 이아무개씨는, 최근 손바닥만 한 화상을 입었다고 내게 말했다. 방 안에서 휴대용 버너로 끓인 찌개 냄비를 옮기다 실수로 허벅지에 떨어뜨렸고, 그 일로 꼼짝없이 한 달을 비좁은 방에 갇혀 지내야 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쪽방 주민 김아무개씨의 사례는 에어컨 설치가 만능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그는 지난달 관리자에게 요청해 맞은 편으로 방을 옮겼다. 음식을 만들 때 나온 수증기가 방을 못 빠져나가 방 안에 곰팡이가 피고 천정 벽지마저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방을 옮겨 다행이라는 말에, 그는 '옮긴 방도 곧 다시 그렇게 될 것'이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밥 해먹을 수 있는 별도의 부엌이 생기지 않는 한 이 두 사람이 겪은 문제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과거 관리자가 살던 내실로 옮겨 넓고 밖으로 난 큰 창문이 있는 동자동 쪽방에서 살게된 이아무개씨을 만났다. 그에게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좀 견딜만하지 않느냐 물었다. 그러나 창틀 밖 벌어진 틈으로 비둘기들이 들어와서 깃털과 배설물은 물론 얼마 전에는 알도 두 개 낳았다고, 그래서 창문을 닫고 산다고 했다. 에어컨은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언제까지 단발성 대책만 낼건가... 쪽방촌 공공주택 등 근본책 고민해야
 

▲서울역 인근 한 쪽방 주민의 방. 살림에 필요한 물품들을 수납하기 너무 좁다.


단발성, 프로그램식 폭염 대책으로는 쪽방 주민들의 주거 고통을 해소할 수 없다. 낡은 데다 구조적으로도 취약한 쪽방 건물은 개보수한다 해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2012년~2014년까지 영등포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했고, 2016년부터 쪽방을 임차해 개보수한 후 재임대하는 '저렴 쪽방'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쪽방의 주거환경 개선 효과는 미미하게 나타났고, 결국 이 사업은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마감되었다.

대안은 있다. 쪽방을 헐고 그 자리에 임대주택을 지어 주민들이 재정착하도록 돕는 '선(先)이주 선(善)순환' 방식의 대안이 그것이다. 2020년 1월 20일, 영등포 쪽방을 시작으로 해 정부-지자체 합동으로 이 방식이 제시되었고 주민들에게서 환영받고 있다. 근거 법령과 주체에 따라 방식은 공공주택사업(영등포 쪽방, 동자동 쪽방), 도시정비형 재개발(남대문로5가 쪽방-양동 지구, 창신동 쪽방)로 나뉘나, 둘다 현 쪽방 위치에 공공주택을 짓고, 쪽방 주민이 다시 살게 한다는 것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런 개발은, 기존 쪽방을 전면 철거하고 원 쪽방 주민을 강제퇴거 시켰던 폭력적인 개발 역사와 단절한다는 점에서도 과거로부터의 전환이라고 할 만하다.

문제는 건물주들의 저항이다.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은 건물주들 반대로 발표 이후 첫 단계인 공공주택 지구지정조차 못하고 있다. 그동안 양동 쪽방 주민들은 계획발표 당시 472명이던 숫자가 작년 1월 230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창신동 쪽방 역시 계획이 발표되기 시작한 2020년 388명이던 주민이 2021년 말 235명으로 40% 가량 줄었다. 공공임대주택 등 세입자 대책을 '비용'으로만 인식하는 건물주들에 의해 쪽방 주민들이 퇴거 당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쪽방 건물주들은 공공주택사업을 반대하거나, 주민들을 내쫓는 방식으로 '선 이주 선 순환' 쪽방 개발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서울시나 자치구의 대응책은 아무것도 없다.


  
폭염 대책 넘어 주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7월 12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지역 쪽방 주민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훈 시장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폭염 대책만으로는 쪽방 주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쪽방'이라는 한계적 주거 자체를 바꾸는 정책이 필요하다. 쪽방 지역에 대한 공공임대주택 건설과 주민 재정착을 위한 공공주택사업, 도시정비형 재재발 사업의 흔들림 없는 추진은 폭염 대책을 포함한 쪽방 대책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쪽방 주민들이 한결같이 내왔던, 굳이 오세훈 시장이 쪽방에 방문하지 않더라도 들을 수 있었던 쪽방 주민들의 요구이자 목소리다.

지난 13일, 서울 동자동·양동·돈의동 등지의 쪽방 주민들과 단체활동가들은 서울시청 앞 기자회견을 열고 "'약자와의 대화' 없는 '약자와의 동행'은 허구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쪽방 주민 등 홈리스 당사자와 면담하고 대화하라!"며 오 시장 면담을 요청했다. 또한 오는 20일까지 답변을 줄 것을 요구했다.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오세훈 시장의 정책 기조가 과연 진실인지는, 곧 확인될 것이다. 

 

오마이뉴스 / 이동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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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설치된 야외무더위쉼터에 주민들이 모여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너무 덥잖아. 낮이고 밤이고 방에 있으면 돈 없고 임도 없으니 여기 앉아서 놀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 오른편에 시작하는 후암로60길은 남대문5가 경로당까지 130여 미터(m) 이어진 오르막길이다. 경로당 맞은편에는 낡은 건물이 10여채 모여있다. 이곳은 동자동쪽방촌 또는 서울역쪽방촌이라 불린다.

기상청이 서울에 폭염경보를 내린 4일 오후 동자동쪽방촌 주민들은 대다수가 방 밖에 나와 있었다. 오후 1시 서울의 기온은 섭씨 31도를 웃돌았지만 방안에는 습도가 높아 견디기 어려운 탓이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이날 서울의 최고기온은 35도에 이른다.

30년 이상 서커스배우로 활동하다 이곳에서 10년째 생활하고 있다는 A씨 역시 남대문5가 경로당 인근 옹벽 아래 앉아있다. 옹벽 아래에는 쿨링포그가 설치돼 있어 불과 한두 걸음 바깥쪽 길가보다 시원했다. 쿨링포그는 물안개를 분사해 주변 온도를 낮추는 장치다. 기온이 26도가 넘으면 자동으로 물안개를 뿜는다. 이날은 오전부터 물안개를 뿜어내고 있었다.

A씨는 서울시립 남대문쪽방상담소(쪽방상담소)에서 나눠준 여름이불과 간편식을 받으러 나온 길이었다. 물품은 챙겼지만 다시 방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방이 너무 더워 낮이고 밤이고 밖에 나와 있다"고 했다.

 

서울에 폭염경보가 내려진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쪽방촌에 설치된 쿨링포그가 물안개를 뿜어내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경로당 앞 야외무더위쉼터에도 주민 6~7명이 모여있었다. 쪽방상담소에서 자원봉사 중인 양동일씨(47)는 야외무더위쉼터천막 아래 테이블을 펴놓고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씨는 더위에 지친 동네 주민들이 오면 아이스박스에서 얼린 생수병을 꺼내 준다. 쪽방상담소는 야외무더위쉼터를 찾는 동네주민이라면 누구나 장부에 이름과 주소를 적고 얼음물을 받아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B씨는 "두 세 시간 이상 선풍기를 틀면 선풍기가 열을 받아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며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후 1시에 야외무더위쉼터에 나와 앉아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동자동쪽방촌 건물은 보통 한 층에 0.5~2평 크기 방 8~15개와 화장실 1개가 있다. 건물이 4~5층 규모여서 살고 있는 주민은 20~50명에 이른다. 선풍기가 과열되면 주민들은 층마다 한 개씩 있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한다. 샤워 후에는 선풍기가 식기를 기다리는 동안 야외무더위쉼터나 쿨링포그 아래로 모인다.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쪽방촌의 모습. 남대문5가 경로당 맞은편에 10 여채의 낡은 건물에 180~250 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무더위가 계속될수록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이곳 주민들에게는 최근의 물가상승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라면을 사 먹거나 커피를 사서 나눠 마신다. 낮부터 막걸리나 소주를 마시기도 한다. 동자동쪽방촌에 2개 남은 '구멍가게'에서 가장 잘 팔리는 품목 역시 소주, 막걸리, 라면 등이다.

10년째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박규언씨는 "밀가루값이 오르면서 과자, 라면 등 안 오른 게 없다"며 "과자는 이제 너무 비싸서 잘 안 가져다 놓는다"고 했다. 박씨 가게의 하루 매출은 3만~5만원 수준이다. 그나마 기초생계비가 지급되는 매달 20일부터 2~3일간은 하루 매출이 10만원까지 오르기도 한다.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이곳 주민의 3분의 2가량은 기초생활수급자"라며 "매달 82만원 남짓의 지원금을 받는다"고 했다.

쪽방촌의 월세는 25~35만원 수준이다. 전기세와 수도요금 등 공과금은 월세에 포함된다. 한때 동자동쪽방촌에는 450여명이 살았지만 재개발을 앞둔 현재 180~200여명의 주민만 남았다.

기상청은 폭염과 열대야가 6일까지 이어지다 전국에 장맛비가 예고된 7일부터 한풀 꺾일 것으로 전망했다.

 

머니투데이 /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후두둑 떨어지는 빗물이 낡은 봉창을 두드린다.

반가운 손님일까 반색하지만,

덜덜거리던 선풍기가 아니라고 고개 흔든다.

 

장마철은 쪽방살이에 걱정거리를 몰고온다. 

천장에 물이 새어 이불이라도 젖을까 전전긍긍하지만,

다행히 비새는 곳이 없어 한숨 돌린다.

 

시원하게 내리는 장대비가 쪽방 열기는 식혀주지만,

 뼈마디가 쑤시는 골병은 때 만난듯 고개드는구나.

요즘들어 늙어가는 게 하루가 다르다.

 

몸이 편치않아 꼼짝하기 싫지만, 약속 때문에 안 나갈 수도 없었다.

김용철씨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자유로울 수 있었다.

 

'경기여인숙' 입구에서 비 피하던 송범섭씨는 빚쟁이 처럼 독촉한다.

지난번에 찍은 사진은 왜 안 주는 거야?”

한꺼번에 뽑아 줄테니 좀 기다리라고 다독였다.

 

생수 타러 나온 주민들이 서울역쪽방상담소앞으로 몰려들었다.

빗속에 줄 지어 선 모습이 왠지 짠하게 느껴진다.

 

정재은씨를 만나 담배 피우는 중에 반가운 분이 나타났다.

개미 팔자가 아니라 매미 팔자를 타고났다는 기타맨 위씨였다.

 

온몸이 비에 젖었는데, 몸만 젖은 게 아니라 마음도 젖었다.

오늘 새벽에 옆에 살던 양반이 천당 갔어!“

흘러내리는 빗물이 눈물인 양, 슬픈 웃음을 흘린다.

 

어쩌면 편안한 곳으로 갔으니,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자들은 비가 추적추적 내려도 긴 줄을 서야 하지만,

모든 원한과 미련을 훌훌 떨치고 세상을 떠났으니, 얼마나 홀가분하겠는가?

 

서울역전은 천국 가는 대기소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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