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은 공공-민간개발 갈등에 지구지정도 못해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과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의 모습. 좁은 골목 안에 낡은 건물이 밀집돼 있다. [이가람 기자]

 

"너무 답답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개발이 잘 된다면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어 좋겠지만 또 쫓겨나면 이만큼 저렴한 가격에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 없거든. 이런 어려움을 나라에서 잘 살펴 줬으면 좋겠어."

여름에는 실내보다 실외 생활이 더 나을 정도로 극심한 폭염에 시달리고, 겨울에는 난방은 커녕 수도가 동파돼 씻지도 못하는 1평 남짓한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촌. 노후 건물을 촘촘하게 쪼개 한 달에 15~30만원 수준의 월세를 받는 쪽방촌은 지옥고로 불리는 반지하·옥탑방·고시원보다 더 열악한 주거시설이다.

현재 서울에는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다섯 개의 쪽방촌이 존재한다. ▲영등포 쪽방촌 ▲동자동 쪽방촌 ▲양동구역 쪽방촌 ▲창신동 쪽방촌 ▲돈의동 쪽방촌 등이다. 과거 1960년대 급격한 도시화·산업화 과정에서 밀려난 빈곤층이 모여들면서 조성됐다.

지난 16일 오후에 찾은 서울 쪽방촌들은 벌써 몇 년째 지역개발 이슈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최근 영등포 쪽방촌 정비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나머지 쪽방촌들에 대한 개발논의 활성화 기대감이 나오고 있지만, 거주민들과 소상공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아직 개발사업이 진척되거나 구체적인 보상 및 이주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20년 넘게 쪽방촌을 전전하고 있다는 A씨는 "어디나 비슷할 것"이라며 "공용이 아닌 개인 화장실을 써 보고 싶었는데 죽기 전에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오르막길 안쪽에 걸터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던 B씨는 "창문이 고장 나서 열 수 없고 곰팡내도 좀 나서 밖으로 나와 쉬고 있다"며 "재개발이 될 거라고 하니 주인이 돈을 들여 집을 고쳐 주지도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스케줄대로라면 국토교통부가 진작 개발 플랜을 제시했어야 했지만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며 "선진국에서는 공청회나 이벤트 등을 통해 주민들하고 논의하는 시간을 오래 가지는데 우리나라는 커뮤니케이션적인 부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쪽방촌. 최근 공공주택지구 사업시행을 위한 지구계획이 승인·고시됐다. [사진 제공 = LH]


특히 쪽방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동자동 쪽방촌은 공공개발과 민간개발로 소유주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아직 지구지정도 되지 못했다. 쪽방촌 입구에는 '사유재산 빼앗아서 공공주택 만드는 게 공익이냐'는 문구가 적힌 검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쪽방촌 주민들을 도와주는 센터에서 일하는 C씨는 "공공개발을 하면 우리가 입주할 수 있는데 민간개발이 되면 쫓겨날 게 분명하다는 사람들과 빠르게 착수할 수 있는 민간개발을 선택하되 서울시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이 있다"며 주민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종교시설에서 식사를 받아가던 D씨는 "돈도 없고 갈 데도 없어서 버티고 있다"며 "한 달에 20만원 주면서 살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고 손가락으로 한 건물을 가리켰다. 폭이 50㎝가 될까 싶은 좁은 입구와 깨진 외벽이 눈에 들어왔다. 전기 설비가 오래되고 전선이 뒤엉켜 안전사고에 그대로 노출된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화재 발생 시 소방차 진입도 불가능해 보였다.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 중인 E씨는 "그래도 정부에서 신경 쓰겠다고 말했으니 변화가 있을 것 같다"면서도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또 희망 고문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어떤 방향이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내보내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7월 취임식을 마친 뒤 곧장 쪽방촌을 찾은 바 있다. 동행식당 지정 및 운영, 노숙인 공공급식 확대 및 급식단가 인상, 에어컨 설치 등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 추석 연휴에도 쪽방촌 곳곳을 돌며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서울시 쪽방촌 상담소 관계자는 "최대한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라며 "공동이용시설 리모델링이나 상담을 통한 보호시설 입소 등도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는 2026년 말까지 공동주택 782채를 건설해 쪽방민과 신혼부부, 청년층에게 양질의 역세권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다. 동시에 공공사업자들이 주도하는 최초의 쪽방촌 개발사업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영등포 쪽방촌을 제외하고는 그나마 양동구역 쪽방촌이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민간주도로 재정비를 추진한다고 발표하면서 공공임대주택·사회복지시설·업무용오피스시설 등을 짓는 내용으로 정비계획을 확정한 상태다. 임대주택 건설이 시작되면 주민들은 임시 이주 공간으로 이동하게 된다.

[매일경제 / 이가람 기자]

 

동자동 사는 신문황씨는 이제 팔순을 갓 넘긴 형님 같은 분이다.
다들 추석이라지만, 갈 곳도 연락할 곳도 없다.
좁은 방을 가득 메운 짐에 치어 누울 자리도 없지만, 항상 싱글벙글 웃으신다.
돈 쓸 줄을 모르니 돈 걱정 없고, 영화를 누려보지 못했으니, 세상 미련도 없다.

길 가다 마음에 드는 그림 주워모아 쪽방을 전시장 만들고,
좋아하는 것들은 다 모아 놓아 백화점을 방불케 한다.
그리움은 액자 속에 넣어두고, 오늘도 살아 있음을 자축한다.
다 부질없고 속절없는 삶이건만, 텅 빈 외로움이 짐이다.

 

사진, / 조문호

 
한 사람이 간신히 올라 갈 수 있는 건물 입구에 앉아 바람을 쐬고있다. 옆에는 공공개발을 반대한다는 건물주의 붉은 깃발이 걸려있다.

동자동 쪽방촌으로 옮겨 온지도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젠 쪽방살이에 제법 익숙해 졌으나, 한여름만 되면 여전히 곤욕을 치러야 한다.

낯 시간에는 길가에 자리를 펴거나 시원한 곳을 찾아 떠돌지만, 밤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다들 해수욕장 처럼 옷을 벗고 사는데, 우리 층에는 여성이 있어 방문도 열어두지 못한다.

선풍기로 잠을 청하지만 밤새도록 후덥지근한 바람을 쐬니, 아침이면 얼굴이 퉁퉁 붇는다.

생지옥이 따로 없으나, 스스로 자청한 일이라 누굴 원망하랴?

 

내가 사는 쪽방을 ‘관사 403호’라 부른다.

정부에서 주는 주거비로 사용하니 관사가 아니겠는가?

한 층에 아홉 개의 쪽방이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건물이라 요상한 냄새마저 풍긴다.

나야 몸에 배어 잘 느끼지 못하나, 찾아 온 손님마다 코를 컹컹거린다.

냄새를 잘 맡는 정동지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냄새란다.

오래된 목재건물의 퀴퀴한 냄새와는 또 다르다며 거지촌 냄새라고 못 박았다.

 

고장난 컴퓨터 손 봐주러 온 정영신 동지

계절적 이재민을 양산하는 쪽방은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보다 못하고, 교도소 독방보다 못하다.

여름에는 찜질방 같은 방에서 땀을 뻘뻘 흘려야하고, 겨울에는 차거운 냉골에 떨어 감기를 달고 산다.

최저 주거기준인 4평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1.5평 남짓한 쪽방이라 한 몸 누우면 꽉 찬다.

그 좁은 곳에 쥐와 바퀴벌레까지 함께 살아야 하니 더 이상 무슨말을 하겠는가?

 

코 구멍만한 방이지만, 이불을 깔면 침실이 되고, 라면을 끓이면 주방이 되고,

자판기를 두드리면 작업실이고, 컴퓨터로 영화를 보면 거실이 되는 요술 방이다.

창문이 하나 있으나 옆 건물과 붙어 있어 햇볕은커녕 비둘기 똥만 덕지덕지 붙었다.

 

아홉 명이 사용하는 재래식 공용화장실도 지저분하기는 마찬가지다.

세면장은 물론 설거지까지 하는 곳이라 아침이면 나라비를 서야한다.

요즘은 샤워까지 자주해, 급한 볼일을 보려면 공원 화장실을 찾는게 상책이다.

 

이것이 쪽방촌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편적 주거 실태다.

쪽방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임시정거장이 아니라, 늪지대로 전락된 지 오래다.

다들 노숙자 신세를 피해 쪽방에 발을 들였으나, 열에 아홉은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문제는 건물주들의 횡포다.

세입자들의 처지를 악용하여 사람이 살 수 없는 방에 평균 23만원의 선 월세를 받아 챙긴다.

이는 서울 평당 아파트 월세의 5배에 달하는 액수다.

가난한 사람들의 자립을 위해 쓰여야 할 세금과 피땀 흘려 번 빈민들의 돈이 자본가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돈벌레들은 그 돈을 모아 또 다른 건물을 사들이며 탈세를 밥 먹듯이 한다.

 

쪽방건물은 치밀한 먹이사슬 구조로 얽혀있다.

세입자들은 건물주를 볼 수가 없다. 대개 관리인을 통해 모든 일을 처리한다.

건물주들은 등기부 상의 주소지를 허위 신고하여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고,

관리인은 쪽방 일을 맡아 주는 대가로 무료로 쪽방 한 칸을 얻어 산다.

 

보통 쪽방 계약은 구두로 이뤄진다.

'방 있음'이라고 적힌 벽보의 전화번호를 보고 연락해 계약한다.

정식 부동산 계약서도 보증금도 없다. 최저주거기준을 만족하는 '주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월세를 먼저 내지 못하면 곧 바로 쫓겨난다.

 

동자동에 명기된 쪽방 건물 소유주 124명 중 88명이 쪽방 건물이 아닌 곳에 살고 있다

현 건물주들의 정체는 정치인, 중소기업대표, 강남의 고급빌라 소유자, 인터넷 스타강사,

투기로 쪽방건물을 매입한 청년과 고등학생에 이르기 까지 각양각색이다.

투기목적으로 쪽방건물을 구매했거나 부모로부터 상속 또는 증여받아 건물주가 되었다.

아예 가족 비즈니스 형태로 쪽방건물을 여러 채 매입하여 수익을 올리는 이도 있다.

 

쪽방촌 건물주에게는 평균 한 달에 1.750만원의 수익이 생기지만, 모두 현금으로 받아 세금 한 푼 안 낸다.

벽지가 너덜거리고 비가 새어도 보수 작업을 해주지 않으니, 건물 관리도 걱정할 필요 없다.

무허가 숙박업이라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의 보호를 받지 않아, 여러모로 남는 장사다.

 

더 억장이 무너지는 사실은 쪽방 사람들을 바라 보는 부정적 시선이다.

게으르다는 인식이 만연해, 기초생활수급자를 ’기생수‘라고 줄여 부르며 ’기생충‘ 취급을 한다,

부자가 아닌 서민들조차 정부지원금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빈민들을 손가락질한다.

열심히 일해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가만히 앉아 나라 곳간만 축낸다지만,

대개 일할 수 없는 노인이거나 장애인이 많은 쪽방촌 실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진짜 기생충은 따로 있다. 비정한 도시에서 부당 이득을 취하는 돈벌레들이다.

피 냄새를 맡은 흡혈귀처럼, 말라비틀어진 자들의 목에 빨대를 꼽고 고혈을 빨아들인다.

그 단맛을 못 잊어, 정부에서 고시한 공공개발을 막으려고 발악이다.

 

'사람나고 돈 낳지, 돈 나고 사람 낳냐'

더구나 공정을 내 세운 정부가 아니던가?

국토교통부는 더 이상 악질 자본가들의 눈치만 보지 말고,

하루속히 동자동 공공개발 지구지정 하라.

 

사진, 글 / 조문호

 

 

 

 

 

무허가 숙박업, '법 보호'조차 받지 못해
건물주, 보수 작업 필요 없는 '남는 장사'
쪽방 벽지·장판 등 기본 관리 전혀 안돼
서울시 공공개발 추진에 건물주 "반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고급 빌라에서 바라본 연립주택 밀집 지역. /연합뉴스

쪽방촌 건물주에게는 매달 1750만원씩 수익이 발생한다. 이마저도 순수 현금으로 챙긴다. 건물 관리도 쉽다. 관리인이 있긴 한데, 인건비는 들지 않는다. 무료로 방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건물 관리도 따로 할 필요 없다. 벽지가 다 뜯기고 거미줄도 쳤지만, 따로 보수 작업을 하지 않는다. 무허가 숙박업이어서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의 보호를 받지 않아 여러모로 남는 장사다. 쪽방촌 건물주는 이렇게 돈을 번다.

 

수천만원대 월세 수익을 내고도 건물 관리를 하지 않는 건물주가 있다. 법망에서 벗어나 건물 관리·보수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세입자에게 보증금과 계약서도 받지 않아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일명 '무적 임대 사업자'인 셈이다.

'김현우의 핫스팟'은 27일 쪽방촌이 모여 있는 서울 돈의동·창신동·영등포동·동자동 일대를 찾았다. 이들 지역엔 평균 38곳 쪽방 건물과 900여 개 방이 있다. 세입자는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 혹은 65세 이상 홀몸 고령자 등이다. 방 크기는 작게는 3평, 큰 방이라 해도 5평이다. 

 

기자가 하루 동안 생활한 서울시 동자동에 위치한 한 쪽방. 창문이 뜯겨 커튼으로 막고 있다. /김현우 기자

세입자는 정부에서 기초생활비와 주거지원금 등 50만원을 받는다. 이 중 절반 이상은 쪽방 월세로 낸다. 동자동 쪽방에서 5년여간 생활한 김정민 씨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월세가 빠져나가면 15만원 남는다. 이걸로 한 달 식사를 챙긴다. 현재 무적자이기 때문에, 계좌가 없어서 현금으로 월세를 납부하고 있다"고 했다. 

기자는 이날 만난 김씨가 생활하는 5평 남짓 방에서 하루를 지냈다. 장판은 곳곳이 뜯겨 시멘트가 훤히 드러났고 벽지는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창문도 깨졌지만, 신문지와 커튼으로 임시방편 막아놨다. 키가 174cm인 기자가 누웠을 때 다리를 다 펼 수 없을 만큼 작은 공간이다.  

해당 건물의 경우, 월세는 35만원이다. 방이 총 50개다. 이를 통해 건물주는 매달 1750만원씩 월세를 받아 간다. 쪽방촌 임대 사업 구조는 건물주·관리인·세입자로 구분된다. 건물주는 관리인을 지정한다. 관리인은 무료로 쪽방에 거주할 수 있는 혜택을 받는다. 세입자는 관리인에게 월세를 주고, 관리인은 건물주에게 월세를 송금하는 방식이다.

 

쪽방 임대 사업 구조 /여성경제신문

이런 구조다 보니 주인-대리인(agency problem) 문제도 발생한다. 동자동 세입자 모임 동자동사랑방 윤용주 운영위원은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 "건물주들은 물이 새고 천장이 무너져도 집수리를 한 번도 안 해줬다"면서 "지난해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던 세입자 한 분이 방에서 돌아가신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도) 방세 내놓으라고 한 사람들이다. 주민들을 혐오하면서도 돈만 벌어가는 사람들"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돈이 없어도 월세를 꼬박꼬박 내는 우리는 다른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벽지와 장판 보수만 해주면 된다. 사람이 살 수 있게만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물주가 쪽방에 실거주하는 경우는 드물다. 2021년 2월 기준 서울시가 조사한 쪽방 현황 자료에 따르면, 동자동에 명기된 쪽방 건물 소유주 124명(법인포함) 중 88명이 쪽방 건물이 아닌 곳에 살고 있다. 쪽방 건물은 대부분 자녀와 공동명의 또는 상속된 경우이고, 돈의동 쪽방촌의 경우 전체 66채 건물 중 56채가 한 소유주가 2채 이상 보유하고 있는 다주택 소유자다.

 

쪽방촌 건물주 실거주 실태 /서울시,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건물 보수 등 관리 필요 없는 일명 '꿀 임대업'

쪽방은 대부분 '무허가 숙박업'이다. 따라서 건물주는 건물 보수 작업 등의 의무가 없다. 세입자 입장에선 공중위생관리법·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때문에 건물주는 세입자에게 보증금도 받지 않아도 된다. 계약서 작성 의무도 없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기 때문에 건물주 입장에선 세입자를 내쫓기도 쉽다. 예를 들어 세입자가 월세를 내지 않는다면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면 된다. 세입자 입장에선 주소지가 있어야 생계급여 및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해서 쪽방에 입주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백광헌 동자동 주민 모임 부위원장은 본지에 "건물주는 손해 볼 게 전혀 없다. 매달 현금으로 월세를 받고, 보수 작업 등 관리하지 않아도 쪽방에 살려는 사람은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누가 쫓겨나거나 죽어서 나가면 바로 다음 날 사람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정부는 '서울역 쪽방촌 주거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2월, 정부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주거환경 개선이 목표다. 

공공주택 특별법에 따른 해당 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동자동 일대 4만 7000㎡를 2021년~2030년까지 개발하는 것이 골자다. 공공임대주택 1250호, 공공분양 200호, 민간 960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 계획이 발표되자 동자동 쪽방 건물주들은 "사유재산을 빼앗는 공공개발을 반대한다"면서 민간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맞섰다. 현재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하반기로 예정됐었던 ‘지구 지정’을 미루고 있다.

 

서울시 영등포동에 위치한 한 쪽방 /김현우 기자

박종만 양동쪽방 부위원장은 "지난해 쪽방촌 거주민 중 사망한 인원만 30명, 몸이 안 좋아져 요양병원 간 분이 30명 이상이다. 방문이 안 열려서 들어가 보면 사람이 죽어있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정치인들이 쪽방촌이나 최저 생계층에 대한 정책을 발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치권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의 얘기에 귀 기울여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정부와 국회는 집만 만들어주면 끝난다고 생각한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 지 한참 지났지만, 소유 숫자는 절반 조금 넘은 상황"이라면서 "새로 지어진 집들은 다주택자에게 돌아갔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활동가는 "쪽방촌 세입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면서 "정부가 건물주 눈치를 보고 시간을 끌고 있다. 그 시간 동안 세입자들은 계속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갈 곳 잃은 세입자의 마지막 안식처인 이곳 동자동을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으로 만들어달라는 게 우리의 마지막 부탁"이라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 김현우기자

동자동 이상준씨 (78)

무더위를 식히려 ‘새꿈공원’에 갔더니, 동자동의 원로 이상준(78)씨가 나를 불렀다. 삼성 콤펙터 카메라 하나를 가져 와 쓸 수 있는 카메라인지 한번 봐 달라는데, 아무런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수리점에 가야 할 것 같았다오래된 기종인데다 아무런 보조 기구도 없어, ‘돈 들여 수리할 필요가 있겠냐?’고 했더니,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이상준씨는 동자동 내력을 훤히 알지만 노출되는 것이 싫은지 인터뷰를 사양해 왔는데, 이날은 어쩐 일인지 응해주었다. 고물 카메라 덕에  이상준씨가 살아온 내력을 들을 수 있었는데, 부산 초량에서 살다 동자동 쪽방촌에 온 지는 오십 년이 되었고, 지금 사는 쪽방에서만 십칠 년을 살았단다그런데, 거지 왕초로 알려진 전설적인 시인 이현우가 자신의 삼촌이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그 뿐 아니라 천상병 시인과도 잘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이현우 시인은 김관식, 천상병시인과 함께 문단의 3대 기인으로 불리는 분이 아니던가?

 

방랑 시인’, ‘절망 시인’, ‘거지 시인등 별명도 가지가지인 이현우 시인은 193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아나키스트 낙산 이종하씨가 부친이며, 찔레꽃으로 유명한 대중 소설가 김말봉씨를 계모로 둔 유복한 가문이었다. 등록금을 술값으로 탕진해 중퇴했지만, 만해 한용운과 조지훈, 신경림 시인이 적을 두었던 동국대 국문과를 다녔고, 이후 조지훈의 추천으로 자유문학에 한강교에서가 추천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는 날카로운 안광과 귀족적인 풍모를 가진 보헤미안으로, 강렬한 시의 주인공이었다. 극작가 신봉승 선생은 이현우 시인의 문학을 절망의 강가에 선 에뜨랑제의 노래라 했고, 화가 하인두 선생은 그의 시를 절망의 호곡이며 허무의 가락이라 이름 붙였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전후 세대의 우울과 절망에 국한 시켜서는 안 된다. 문성효 문학평론가는 그동안 이현우 문학이 절망의 관점에서만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해석되어 왔다고 지적하며, 절망의 시인이라는 편견 때문에 자신의 문학 속에서 전개한 실존적 사유의 열망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인이 마주했던 전후의 궁핍하고 절망적이었던 상황이 현재의 각박한 사회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가, 나아가 어떻게 그 고민을 공동체적인 고민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가하는 시인의 실존적 고민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이현우는 생래적으로 어두운 그늘같은 비극적 인자를 몸에 지니고 태어난 것 같았다. “크고 맑은 눈망울과 귀공자 같은 얼굴, 가녀린 몸매에서 풍기던 퇴폐적인 분위기의 소유자였다유심’ 201312월호에 소개되었지만. 생전에 유품은 물론 초상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다.

 

화가 주경업 씨가 그린 이현우 시인의 초상화.

1950년대 중반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폐허나 다름없는 명동의 몽파르나스 동방사롱, 엠프레스 음악다방이 있는 인근 주점에서 김관식, 천상병, 박봉우, 송기동, 이호철, 고은 시인과 어울렸다. 명동과 서울역을 떠돌며 술로 세월을 보냈다는데, 가까운 문인들에게 돈을 얻어 거지들과 술을 마시는 독특한 방랑벽도 가난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 김말봉여사는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였고 여러 신문사에 소설을 연재해 원고료도 상당했다고 한다. 그가 거지꼴로 떠돌다 집에 들어가는 날에는 새 양복을 지어 입힐 정도였으나, 항상 며칠 가지 못했다. 때로는 서울역 앞 양동의 사창가에서 밤새 술을 마시다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지만, 그런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어머니가 와서 돈을 지불하고 풀려났다고 한다.

 

그렇지만, 전후 시인 중 이현우처럼 유려한 언어 감각을 가진 시인도 드물었기에 시인 김규태는 이현우에게 시 한 편에 삼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그의 시작을 종용하기도 했으나, 이현우 시인이 어느날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1983년 무렵 이인영 시인이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서울행 열차에 그를 태워 보낸 이래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거지들과 어울린 탓에 삼청교육대에 끌려갔거나, 행려병자로 알고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는 등 이런저런 소문만 떠돌 뿐 그의 행방은 묘연했다.

 

2017.1.27.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하는 이상준씨

그 뒤 이현우 시인의 실종을 안타까워하던 강민시인과 주변 지인들이 유고집 출판을 서둘렀다. 1994년 강민 시인이 대표로 있던 무수막출판사에서 이현우 시문집 다시 한강교에서를 출간한 것이다. 천상병 시인의 유고시집 가 출판된 이후 그의 생존이 확인된 것처럼, ’다시 한강교에서는 시인을 찾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으나 불행하게도 이현우 시인은 세상에 모습을 더러 내지 않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그의 이름과 함께 시문집도 절판되었다.

 

강민 시인께서 돌아가시기 전 이현우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곧잘 하셨는데, 서울역 일대에서 거지 왕초로 지냈다는 등 귀가 솔깃한 옛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었다. 그러나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아 그가 나타나지 않는 한 아무도 그의 행방을 몰랐다고 한다. 가끔 친구가 근무하는 직장에 거지 행색으로 불쑥 나타나 약간의 돈을 얻어 가기도 했다지만, 그의 방랑벽이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원인이 어떤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아마 전후 팽배해있던 허무주의 때문이 아닌가 추측만 할 뿐이다.

 

이현우 시인은 동자동과 서울역 노숙인과도 연관이 있어 여기저기 이현우시인의 자료를 찾기 시작했으나, 제대로 찍힌 프로필 사진 한 장 없었는데, 동자동에서 조카를 만나게 될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상준씨 덕에 생각지도 못한 이현우 시인의 동자동 연고지를 찾아 낸 것이다. 이상준씨 말로는 평소 말이 없는 분이기도 하지만, 그리 친화적인 성격은 아니라고 했다. 부산에서 동자동으로 이사 오며 쪽방촌 사람들이나 서울역 부근의 노숙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는데. 한 참 뒤 어머니의 집은 동자동에서 상도동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동자동 집은 이현우시인이 가끔 들린 집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몇 개월 전 헐리고 말았다. 그는 유품 한 점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 불우한 시인이다.

 

절망의 곡조를 읊조렸던 이현우 시인의 시전집 끊어진 한강교에서

지난 20222열린서원에서 출판되어 그의 전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이현우 시인이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

헛된 꿈이나마 시인의 환생을 기원해 본다.

 

사진, 글 / 조문호

 

 

끊어진 한강교에서

 

그날,

나는 기억에도 없는 괴기한 환상에 잠기며

무너진 한강교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미 모든 것 위에는 낙일(落日)이 오고 있는데

그래도 무엇인가 기다려지는 심정을 위해

회한과 절망이 교차 되는 도시

그 어느 주점에 들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 30도 넘는 더위 피할 곳 없어

"서울시 에어컨 설치 도움 안되고 쉼터는 너무 좁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김정호씨 집 천장 모습. 플라스틱판이 얹혀있다. ©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문 열기가 겁납니다."

31도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20일 오후 3시. 김정호씨(62)가 지내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에는 천장이 없었다. 대신 지붕 모양의 철골 윗면을 얇은 플라스틱 패널이 간신히 덮고 있었다. 김씨가 집 문을 선뜻 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패널 때문이다. 플라스틱 판이 태양열을 그대로 흡수해 방 전체를 찜통으로 만든다. 

쪽방촌의 살인적인 폭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평 남짓한 쪽방에는 겨우 이불을 깔고 누울 좁은 공간만 있을 뿐이다. 에어컨은 언감생심이다. 김씨는 "창문이 있는 방은 A급"이라며 "대부분은 창문이 없어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창문이 있어도 별로 다르지 않다. 김씨는 창문 없는 방에서 6년을 살다 월세 3만원을 더 내고 창문이 있는 지금의 방으로 옮겼다. 그러나 단열 기능이 없는 건물이라 그 역시 여름이 고통스럽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쪽방촌 주민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며 에어컨 설치 등을 발표했지만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김씨는 "정상적인 쪽방에는 에어컨을 달기 어렵다"며 "복도에 공동 에어컨을 달아도 밖과 차단되지 않아 냉기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도로 옆 인도에 걸터 앉아있다.©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재개발 갈등속 더위 피해 거리로 나온 쪽방촌 주민들

동자동 쪽방촌은 1년 넘게 재개발 이슈에 휘말려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2월 동자동 쪽방촌 일대를 공공주도로 재개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토지 소유주 등이 '사유재산 침해'라며 반대해 지구지정도 못하고 있다. 

동자동주민대책위는 지난 12일 서울시와 만나 공공재개발 대신 민간재개발사업안 제출을 제안했다. 서울시는 당시 사업안이 제출되면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아직 민간재개발사업안이 제출되지는 않은 상태다.

재개발이 지지부진한 사이 쪽방촌 주민들은 올해도 폭염에 고통받고 있다. 

이들이 더위를 피하겠다며 자주 찾는 곳은 바람이 잘 통하는 대로변이다. 이곳에서 17년을 산 동자동 사랑방마을 대표 윤용주씨(61)는 "더위가 심한 날에는 여기 건물 앞에 돗자리 펴고 자는 사람이 많다"며 바로 앞 고가 오피스텔을 가리켰다. 

실제 이날 윤씨가 가리킨 오피스텔 옆 인도에는 쪽방촌 주민 열명 남짓이 걸터앉아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며 더위를 잊으려 하고 있었다. 

윤씨에 따르면 이들은 돗자리나 박스를 깔고 더위를 피해 잠에 들었다 새벽 어스름이 깔린 후 이슬비로 몸이 축축해지면 방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오피스텔 주민들이 이들을 노숙자로 오인해 신고하는 일이 잦아 그마저도 쉽지 않다. 

서울역 쪽방안내소는 동자동 쪽방촌 상담소 지하 2층에 쉼터가 있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실효성이 없다며 불만이다. 쉼터는 작업장과 남녀 샤워실 사이 5평 남짓한 공간이다. 등록된 쪽방촌 주민 880여명에 비하면 턱없이 좁다. 

 

새꿈어린이공원 무더위쉼터. ©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근처 새꿈어린이공원 무더위쉼터 또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이날 공원 쉼터에 설치된 그늘 천막에서는 주민 10여명이 선풍기를 튼 채 앉아 있었다. 저녁에는 그늘 천막이 걷힌 자리에 종교단체가 야간 더위를 피하라며 천막을 친다. 그러나 윤씨는 "야간 천막에서 술판이 벌어진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지옥고(지하·옥탑·고시원) 아래 쪽방'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곳 주민 중에는 65세 이상 노인이 40%, 장애인이 30%나 된다. 이들에게는 기약 없는 재개발이 아닌 당장 오늘의 더위를 식혀줄 방안이 더 절실해 보인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위치한 김정호씨 집.© 뉴스1 임세원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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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 거리. 우측에 테이프로 막아 놓은 창이 보인다.   사진=박효상 기자

중세 유럽에서는 창의 숫자로 세금을 매겼다. 창은 곧 부의 상징이었다. 그 후로 500여 년이 흐른 지금, 유럽에서 약 8900km 떨어진 한국은 어떨까. 어쩌면 여전히, 창이 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있지 않을까. “창 있는 방은 26만 원, 없는 방은 18만 원” 창은 곧 돈. 사람이 살아선 안 되는 공간에서조차 돈에 따라 삶의 등급이 나뉘고 있었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지난 6월부터 두 달간 서울·경기 지역의 고급주택과 아파트, 다세대 주택, 고시원, 쪽방을 돌며 이곳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를 통해 얻은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창에 비친 삶의 격차를 조명한다. 이번 기획을 통해 우리 사회가 창 없는 삶을 생각하고, 이들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자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이병수씨의 쪽방. 이중창으로 리모델링 했다.   사진=최은희 기자

창이 바뀌자 집이 제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이병수(가명·62)씨가 사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 한 쪽방. 리모델링된 이중창이 설치돼있다. 폭은 1.14m, 높이는 0.98m다. 전에 살던 곳의 두 배가 넘는다. 더는 숨 막히는 더위에 밤잠 설치지 않는다. 겨울철 칼바람을 맞는 일이 사라졌다. 공중에 떠다니던 먼지는 창을 통해 빠져나간다. 수시로 나오던 잔기침도 잦아들었다.

창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창은 채광, 환기, 신체·정신 건강 등에 영향을 준다. 때로는 삶과 죽음도 가른다. 지난 2018년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사건이 대표적이다.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최저주거기준을 다룬 법은 2004년에서야 도입됐다. 이전에 지어진 주택에는 소급해 적용하지 않는다. 법이 생겼지만, 기준에는 여전히 빈틈이 많다. ‘적절한 설비’를 갖춰 채광·환기·방음을 충족하거나 법정 기준을 따르라는 식이다. 고시원·쪽방 등은 최저주거기준 적용조차 받지 않는다. 사람이 살고 있어도 주택이외의 거처(비주택)로 분류돼 사각지대다.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고시원의 최저 창 기준을 마련했지만 갈 길이 멀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은 ‘표준주택 규정’을 통해 창과 관련한 상세한 기준을 명시한다. 채광되는 방향으로 최소 1개의 창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 등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주방과 화장실 창이 필수다. 강력한 행정조치도 한다. 영국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최저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불량주택에 임대제한이나 강제철거를 명령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창의 최소 조건은 무엇일까.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의견과 해외 법령을 참조해 안전과 인간 존엄성을 지킬 창의 기준을 살펴봤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이 구현한 창의 최소 기준.   CG=윤기만 디자이너

① 채광 가능한 방향으로 난 1개 이상의 창

최소 1개 이상의 창을 해가 드는 방향으로 설치해야 한다. 일조권은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 권리다. 영미권 선진국은 1945년부터 적어도 1개의 창을 통해 빛을 누릴 권리를 보장했다. 사람다운 삶을 위해서는 적절한 채광창이 필요하다.

② 하루 4시간 햇살 확보

최소 하루 4시간 자연광이 들어와야 한다. 햇살을 받아야 만들어지는 비타민D는 당뇨, 고혈압, 골다공증, 만성피로 발생 확률을 낮춘다. 빛은 행복감을 높이는 세로토닌 호르몬 합성에도 관여한다. 적절한 일조량은 우울 완화에 효과가 크다.

빛 한 줌 들지 않는 공간에서 건강은 빠르게 나빠진다. 2020년 기준 고혈압·당뇨·관절염 등 지병이 있다고 답한 쪽방 주민은 82.5%다. 마음의 병을 앓는 이도 많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이 빈곤 주거 거주자 30명을 대상으로 국립정신건강 센터에서 만든 우울·스트레스 척도 진단 면접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우울 중증 17명, 심각은 9명에 달했다. 정상 범위에 속한 이는 2명에 불과했다.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골목에 붙은 대자보.   사진=민수미 기자

③ 폭 0.5m, 높이 1m 그리고 최소 개폐 면적

창은 실외와 접해야 한다. 최소 폭 0.5m, 높이 1m 크기를 확보해야 한다. 창은 최소 폭 0.5m, 높이 0.5m 열려야 한다. 주거 취약계층에게 창은 비상구다. 창이 없는 방, 복도로 난 창은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 미국 표준주택규정에 따르면 창은 1/2 이상 개폐 가능해야 한다. 성인이 건물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크기만큼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④ 이격거리 최소 3m 이상

건물과 건물 사이 이격거리는 최소 3m 이상이어야 한다. 대다수 고시원·쪽방 건물은 주변 건물과 다닥다닥 붙어 있다. 창을 열면 바로 담벼락인 경우도 있다. 조망은커녕 사생활 보호조차 어렵다. 빈곤 주거 중 사생활 침해를 호소한 비율은 19.5%다.

전문가는 주거 취약계층의 창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재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창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방풍재를 덧대는 방식으로라도 보완해야 한다”며 “사람은 누구나 쾌적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한국의 최저주거기준은 강제력 없는 권고에 불과하다”며 “선진국은 빈곤 주거에 대한 논의를 100년 전부터 했다. 한국 사회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자문 강재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장명훈 청년다움건축&디자인 대표, 차상곤 주거문화개선 연구소장,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교수

찜통 같은 쪽방을 탈출하여 바람 통하는 길목에 자리 잡았다.

정신 나간 상민이만 횡설수설할 뿐,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다.

 

공원에는 음식점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선풍기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릴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다시 쪽방으로 올라가는 무료한 일상이 반복된다.

물 한 바가지 뒤집어쓴 후, 수도승처럼 좌정하여 스스로를 돌아본다.

 

요즘 몸도 아프지만, 자책감에 더 시달린다.

'가족보다 사진이 더 중요하냐?'는 때 늦은 반성 때문이다.

예전엔 타고난 팔자라며 자위했으나 지금 생각하니 죄악에 가깝다.

 

그리고 사람이 좋아 사람만 찍어 온 사람이 사람만나기가 싫어졌다.

아니, 사람이 싫다기보다 사람 찍을 자격도 없는지 모른다.

전시장 들리는 일을 비롯하여 사람 만나는 일을 피해 가며

동자동과 녹번동만 오간지가 벌써 두 달째다.

 

무슨 일이든 즐겁게 살면 그만이지만, 그동안 주변 사람들 마음 다치게 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쓴 소리로 많은 사람을 잃었다.

늦었지만 전시리뷰나 사사로운 내용은 올리지 않기로 작정했으나, 잘 지켜질지 모르겠다.

 

마지막 소원이라면 동자동이 재개발되어 주민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지만,

죽기 전에 재개발된 쪽방에서 살아보기는 틀린 것 같다.

 

공영개발보다 민간개발에 힘이 실리고 있는데, 아무리 용적률을 조정하여 많은 세대를 수용한다지만

거지 사는 아파트를 돈 많은 분양자들이 찾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쓰서라도 쪽방주민을 내보내려고 하겠지만, 주민들을 몰살시키지 않는 한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자난달 초순, 오세훈시장이 창신동 쪽방촌에서 약자와의 동행을 선언하며 쪽방에 에어컨을 달아주겠단다. 

서울에 있는 쪽방이 삼천오백여개나 되는데, 150대로 어디다 붙인단 말인가?

코구멍 만한 쪽방이라 복도에다 에어컨을 설치하여 모든 방문을 열게 한다지만,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차라리 층마다 생수기라도 놓아 시원한 물이라도 마음대로 마실수 있도록 해주는 게 더 좋다.

 

또 한 가지 혜택은 쪽방 주민들에게 한 끼 팔천원 상당의 식권을 매일 한 장식, 년 말까지 준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씩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골라 먹을수 있는 일인데,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용수칙을 살펴보니 마음 상하는 대목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먼저 '동행식당'으로 지정된 식당에서 식사하기 전에 명부를 작성해야 하고,
이용자가 많은 혼잡한 시간을 피해 가급적 세사람 이상 가야 한다고 적어놓았다,

똑 같은 밥값을 주는데, 왜 이리 규제가 많은지 모르겠다.

 

밥 값이 팔천원을 초과하면 모자란 돈은 내야하지만, 남는 돈은 돌려주지 않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았다.

식당 이용 시 청결한 복장을 갖추라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쪽방 주민을 거지로 취급한다는 말이 아닌가?

 

대화도 없이 일방적 동행을 외치는 오세훈시장님!

제발 헛발질 그만하시고. 동자동 공영개발에 힘 좀 보태주세요.

 

요즘 내가 하는 일은 함께 싸울 쪽방 사람들 정면사진 찍기다.

서울역 전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동지들 사진첩을 만들 계획이다.

여태 내가 찍어 온 초상사진은 상대의 눈동자에 주목해 왔다.

눈빛에서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진으로 말하는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사실적 기록만을 고집해 왔다.

사진은 사진이어야 한다는 고) 이명동선생 말씀을 새겨 왔는데,

사진 최고의 가치는 허상을 쫓는 게 아니라 진실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하기야! 해석이나 의도에 따라 왜곡될 수밖에 없어 사진이라고 모두 진실할 수도 없겠다.

 한 장의 예술이기보다 한 장의 사진을 원한다는 뜻이다.

시대를 증언하는 사진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누군가의 사진첩에 남아 오랫동안 그 때를 추억할 수 있는 사진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작금의 세상은 거리 스냅사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버렸다.

초상권이란 지나친 권리 주장에 사진가들이 찍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거리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라져, 자연스러운 스냅사진을 만나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렇지만 찍힌 자의 명예를 훼손하지도 않는데, 무조건 막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

다큐사진가라면 대중의 잘못된 과잉방어에 승복해서도 안 된다.

 

나는 가급적 상대방을 바라보며 찍은 후,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준다.

처음엔 흠칫 놀라지만, 이내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만약 상대가 싫어한다면 그 자리에서 지워주면 그만이다.

그리고 나중에 법적인 문제가 생겨도 포기해서는 안 될 문제다.

벌금 낼 돈 없으면 감방 갈 각오하면 된다.

 

몸 아프다는 신세타령하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버렸다.

동자동 이야기에서부터 사진이야기에 이르기 까지 메주 알 고주 알 늘어놓았는데,

모든 게 무위로 끝나는 막바지에 접어 들었다는 말이다.

미련도 후회도 없지만, 가족을 거두지 못한 못남이 어깨를 짓누른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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