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잡으려, 강원도 리얼리즘 작가들이 모였다.
“순실뎐”이라 이름 붙인 시국전을 열기 위해서다.

요즘, 암울한 시대에 저항하는 전시들이 연이어 열린다.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순실뎐’은 서울의 “병신무란 하야제’에 이은

두번째 전시로, 뒤이어 열릴 광주전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이 전시는 갑자기 마련된 전시라, 엉겁결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난 13일, 작가 모임에서 제안 한 적은 있으나, 결정되진 않았다.
그 이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전시 내용이 신문에 소개되었다는
넋전 굿을 하는 양혜경씨의 전화를 받은 것이다.

몇 일전 미술평론하는 최형순씨의 부탁으로 사진자료를 보내긴 했으나,
내년 기획전을 위한 자료 요청인 줄 알았다.
급기야 연락했더니, 이메일로 전시안내를 했다는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메일을 열어보지 않아, 나만 모르고 있었던거다.
신문에 사진까지 실려 있어 빠질 수도 없는 입장이라,
소개된 사진 석장을 급히 출력해, 부랴부랴 춘천으로 가져갔다.

전시디피를 하는 30일 정오 무렵에는 여러 사람들이 준비하고 있었다.
다들 촉박한 일정이었지만, 부지런히 그려 왔더라.
기획자인 최형순씨를 비롯하여 김대영, 신대엽, 서숙희, 길종갑, 김용철, 백중기,
권용택, 전형근, 류정호, 박은경, 이광택씨 등 많은 분들이 와 계셨다.

뒤 이어 황재형, 황효창선생도 오셨고, “병신무란 하야제’를 기획한 장경호씨와

화가 박세라, 신승복, 안승환, 이종원씨 등 전시 작가는 물론, 반가운 분들을 많이 만난 하루였다.

오후5시에는 다들 둘러앉아 전시 취지와 작품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박근혜를 규탄하는 구호가 수시로 전시장을 메우기도 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박근혜를 구속하라’


['순실뎐'은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5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순실뎐 전시리뷰] http://blog.daum.net/mun6144/4089

































































































































































춘천의 민미협 회장 길종갑씨로 연락을 받았다.

강원도 작가들이 모인 산과 함께의 미팅이 있다며, 13일 오후1시쯤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나자고 했다,

일요일은 정영신씨와 데이트가 있는 날이지만, 춘천행 지하철에 올랐다.

 

도착하니, 모두들 식당으로 옮기고 있었다.

화가 황효창선생을 비롯하여 길종갑, 김대영, 신대엽, 서숙희, 김용철씨와 미술평론가 최형순씨 등 일곱 분을 나왔더라.

오찬 모임은 내년에 가질 전시 기획을 위해서라는데, 주제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 작가들의 의견을 모우기 위해서였다.

강원도가 내 세우는 산과 연결된 것도 좋지만, 현 시국과 관련된 저항전을 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결정하진 못했다.

 

'춘천문화예술회관'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란 민미협 교류전이 열리고 있었다.

강원도와 경남, 제주, 목포의 민미협 작가 교류전으로, 강원도 작가로는 황효창선생의 기타맨’ 

길종갑씨의 다산4곡청옥담’, 서숙희씨의 가로수 길‘ 등이 눈에 띄었다. 

외에도 강선주, 김영숙, 김용미, 김용애, 김준철, 민선주, 박재은, 신승복, 안성환,

윤운복, 이상근, 이샤우드, 이희린, 장선화, 조병연, 지명예, 최미경씨가 참여했고,

경남작가로는 김지영, 노경호, 신희경, 이경미, 이광영씨가

목포에서는 박대용, 박동근, 이복성, 조순현. 정현아씨,

제주에서는 김수범, 양미경, 정용성, 홍덕표씨가 참여하고 있었다.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으나 세월호와 관련된 노경호씨의 눈만 멀뚱멀뚱 뜨고 바라만 보았다‘,

정현아씨의 불꽃이 되어 다시피어나리홍덕표씨의 아이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등 시국을 풍자한 작품도 보였다.

 

생각치도 못한 전시를 보게 된 춘천나들이에서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분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돌아왔다.

뒤늦게 기획자 최형순씨로 부터 연락이 왔는데, 시국전을 열기로 결정했다며 촛불시위와 관련된 자료를 요청했다.

모두들 새롭게 작업 해야 할 부담은 있겠지만, 반갑기 그지없는 소식이었다.

 

벌써부터 내년에 열릴 강원도 기획전이 기다려진다.

아마, 그 때 쯤에는 박근혜가 구속되고, 정치판에선 대권 싸움으로 치열할테지...

 

사진, / 조문호



황효창작

길종갑작

서숙희작 일부

노경호작 일부

홍덕표작

김준철작























황재형작 '알혼섬' 2016 캔버스에 연필 162.2X112.1cm



‘춘천시문화재단’에서 기획한 “강렬하게, 리얼하게” -바이칼에서 강원 춘천까지-가 26일까지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열린다. 지난13일에는 역사학자 주재혁의 ‘바이칼과 아리랑’에 대한 강연도 있었다.
“바이칼호반 원주민 부리아드 코리족은 코리안(고려인)이란 종족이름을 가졌다, 이태리인처럼 가창력이 뛰어난 바이칼호반 코리족들은 ‘아리랑’가락이 본래 당신네 가락이 아니고 우리 가락이었다고 말했다”며 우리 민족의 뿌리였음을 강조했다.



길종갑작 '바이칼 답사기' 2016 캔버스에 아크릴 130X160.5
 

개막식에는 참여작가인 권용택, 김대영, 김용철, 길종갑, 서숙희, 신대엽, 이재삼, 황재형, 황효창씨를 비롯하여 미술평론가 최형순, 춘천문화재단 상임이사 이치호, 화가 함 섭, 장경호, 노용춘, 전강호, 도예가 신동여, 사진가 정영신, 하재은, 최용주, 목공예가 류정호, 시나리오작가 최근모 등 100여명이 참석했으나, 대개 모르는 분이 많았다.



권용택작 '바이칼-오대산천까지' 2016 캔버스에 아크릴, 먹 324X260.6



이 전시는 바이칼 현장답사를 해가며 우리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으려는 기획 의도는 좋았으나, 준비 일정이 너무 촉박했다. 그러나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민족 원형의 동질성이 작품 여기 저기 드러나 있고, 작품 곳곳에 선조들의 영혼이 떠도 는 것 같았다. 



이재삼작 '달빛' 2016 charcoal on canvas 80x194cm


 
이재삼의 작품 ‘달빛’은 ‘저 알혼섬이 영혼의 섬은 아닐까?’하는 몽환적 분위기로 끌어들였다. 물안개의 미묘한 질감 또한 이재삼의 목탄화가 아니면 아무도 살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황재형 역시 목탄으로 그린 작품이 있었다. 높은 절벽아래 이는 물빛을 담은 알혼섬’이란 작품은 대자연의 위엄 속에 마치 선조들의 혼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권용택의 작품 ‘바이칼-오대산천까지’는 바이칼에서 시작된 우리민족의 이동경로가 느껴지고 있었다. 수원화성과 오대산, 바이칼에 이르는 대서사가 한 프레임에 나누어지고 있었지만, 이질감 없는 동질성으로 응축되었다.
 


황효창작 '바이칼의 혼' 2016 캔버스에 유채 100X100cm



인형을 통해 우리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황효창의 ‘바이칼의 혼’은 나무에 얼 킨 오방색 천으로 우리 무속신앙의 원형을 보여주었으며, 길종갑의 작품 ‘바이칼 답사기’의 강렬한 원색적 터치는, 알혼 섬이 맑고 깊은 생동의 기운으로 넘치게 했다. 김대영의 ‘알혼섬의 사랑바위’는 그의 방식대로 오방색과 왕관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바이칼을 시원의 의미를 가진 민족의 양수로 표현하고 있었다. 김용철의 ‘바이칼의 노래’는 아리랑이라는 음악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동질성을 나타냈다.



김용철작 '바이칼의 노래' 2016 한지위의 아크릴릭 250x90cm



  서숙희작 '바이칼 가는 길-샤먼을 부르는 바람' 2016 리넨에 아크릴채색 117x73cm



또한 서숙희의 ‘샤먼을 부르는 바람’이라는 작품은 바이칼에 이는 바람을 그렸는데, 그 시적 분위기가 독창적이었다. 신대엽의 ‘아무 것도 아닌, 그러나 모든 것인’이란 작품은 옛 풍속도나 신선도처럼 시간을 초월하는 묘미가 있었다. 우리민족 고유의 가락 잡힌 낙천성이 깃들어 있었다. 난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사람에서 찾았기에, 실 한 올 걸치지 않은 남자의 몸을 바이칼 호수 변에 세우기도 했다. 




 신대엽작 '아무 것도 아닌, 그러나 모든 것인' 2016 리넨에 먹과 채색 210x400cm



전시장을 메운 작품들은 텅 빈 가슴을 어루만지는 한 구절의 시, 내면에 깃든 잠재력을 일깨우는 음악, 새로운 힘이 솟게 하는 춤사위 같이 감상자들을 피안의 세계로 끌어들이며, 우리의 장대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김대영작 '알혼섬의 사랑바위' 2016 캔버스 위 아크릴 193,9x130,3cm



전시를 기획한 미술평론가 최형순은 서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작가들이 바이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담은 아리랑으로 펼치는 우리민족의 이야기가 다채롭다. 강원도 작가들의 전국적인 유명세도 상상이상이다. 불의에 기웃대지 않는 작가적 자존심도 그 크기에 못지않다. 살아있는 땅의 역사에 살을 부비며 그 안에 깊숙이 배어있던 모습들도 그대로 들추어냈다.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려하는 진실의 태도를 거기서 배운다. 미래를 맞는 준비도 거기서 가능하다. 이들이 펼치는 그 미술 자체가 겨레의 노래이며 아리랑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글 / 조문호



조문호 작 '바이칼에서 길종갑' 2016 잉크젯프린트 110x 210cm








 


사진- 좌로부터 전시기획자 최형순씨와 참여작가 길종갑, 김대영, 서숙희, 조문호, 권용택, 신대엽, 황효창, 김용철, 황재형씨



‘춘천시문화재단’에서 기획한 “강렬하게, 리얼하게” -바이칼에서 강원 춘천까지-전시가

지난 13일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개막되었다.

이 전시가 기획되며, 오월 중순경 바이칼 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불만을 토로하며 망설이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바이칼 답사를 떠나는 취지는 이해되었으나 기간이 너무 임박해 자칫 중구난방의 전시가 될 확률이 높은데다,

결국 참여 작가들의 작업비를 여행경비로 소진하는 것이 가난한 작가 입장에서는 열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 웃기는 것은 내가 내놓은 남자 알몸 사진을 두고 말이 많았다는 것이다.
집행부를 향한 길종갑씨의 투덜거림으로 대충은 짐작했지만, 뒤늦게 황화백이 귀띔해 준 것이다.

‘춘천문화재단’ 관계자들의 생각인지, 미리 겁먹은 기획자 최형순씨의 생각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의 보수적인 안목으로 어떻게 전시를 추진하는지 걱정스러웠다.

전시장에 도착하니, 역사학자 주재혁씨의 ‘바이칼과 아리랑’에 대한 강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끝날 시간이 다 되어 사진만 찍고 강연은 듣지도 못했다. 그마저 멀리서 온 분들이 기다리고 있어 입구로 나와 버렸다.

화가 장경호씨를 비롯하여, 오래 전 모델에 되어주었던 도예가 신동여씨와, 화가 전강호씨가 와 준 것이다.

당사자들을 자신의 사진 앞에 세워 기념사진을 남기려는데, 갑자기 ‘우두둑 꽝’하는 굉음이 전시장을 메웠다.

돌아보니 강의 듣던 황재형화백이 뒤로 나 자빠지고 있었다.

황소 같은 황형의 무게를 프라스틱 의자가 감당하지 못해 의자 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몸은 커지만 예민한 양반이라 살아남았지, 나같이 멍청한 사람이라면 뇌진탕으로 갈 뻔한 사고였다.

정말 황화백은 대단한 분이었다. 바이칼 답사 때도 사진과 동영상으로 세세히 기록하는 열성을 보이더니,

출품작 여덟 점 중 전부가 바이칼을 소재로 한 신작이었다.

불과 한 달 보름동안 그 대작들을 다 그렸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다른 분들은 한 두 점도 힘들게 마무리했다는데, 이건 꼼짝 않고 그림에만 메 달렸다는 이야기다.

그의 투철한 작가정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막시간이 가까워오자 한 사람 두 사람 몰려들기 시작했다.
'춘천문화재단' 이치호 상임이사, 화가 함 섭, 노용춘, 사진가 정영신과 하재은씨, 목공예가 류정호씨,

시나리오 작가 최근모씨, ‘아트인라이프’상임이사 최용주씨가 있었으나, 대개 모르는 분이 많았다.

미술평론가 최형순씨의 간단한 작가소개가 있은 후, 황재형, 이재삼씨가 나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작품들을 둘러보다, 참여 작가들의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모두 불러 모았다.

아내더러 사진을 찍으라고 카메라를 넘겨주었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니 이재삼씨가 빠져있었다.

찍기 직전에 분명히 전시장에 있었는데, 어디로 빠졌을까? 귀가 막힐 노릇이었다.

어쨌든 이차까지 넘어 간 뒤풀이에서 꼴리는 대로 놀았고, 술도 어지간히 마셨다.
두 번 째 납치되어 간 곳은 어느 전망 좋은 호수 가였는데, ‘갤러리 파코도노’라 적혀 있었다.
놀란 토끼처럼 전시장을 비롯해 여기 저기 돌아다녔는데, 한 쪽에는 노래방기계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막걸리와 소주는 없을 것 같았는데, 대신 위스키가 나왔다. 누구 주머니를 터는지는 몰라도 신나 부렀다.

오랜만에 촌놈 목구멍에 때 벗기느라 바빴다, 술 마시랴! 사진 박으랴! 춤추랴! 노래 부르랴! 정신없었다.

아! 그런데 밤 열시가 되니 슬슬 불안해 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지막 전철이라도 탈 요량으로 살그머니 빠져 나와 버렸다. 재미있게 노는데, 간다면 판 깨기 십상이잖아.

그런데 그곳이 어딘지 한참을 걸어 나왔는데도, 택시는 물론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가게하나 찾아 콜택시 전화번호를 얻긴 했지만, 상봉역이 종점인 전철만 남아 있었다.

살았다 싶어 퍼져 앉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들여다 보니 장경호 전화였다.

“아이쿠! 장경호를 남겨두었구나”, 뒤늦게 사태파악을 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전화통에다 지랄 같은 욕을 퍼부어 댔다.

 미안한 마음도 잠시 뿐, 너무 열 받아 전화를 끊어 버렸다.

술이 취해 잠에 빠져들었는데, 얼마나 잤는지 승무원이 깨웠다.

택시비 적게 내려고 상봉역에서 돌고 돌아 독립문이 종착지인 3호선을 간신히 탈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한시가 넘었는데 , 일찍 온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별일 없느냐고 묻기에 장경호를 흘리고 왔다 했더니, 당신 치매아니냐며 나무랐다.

“야! 고마 자빠져 자자. 알아서 하 것지. 지가 한 두 살 묵은 아가? ”


사진,글 / 조문호






























































































































'춘천시문화재단'이 기획한 “강렬하게, 리얼하게”-바이칼에서 강원춘천까지-전이

7월13일부터 26일까지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열립니다.


시작되는 13일 오후1시부터 역사학자 주재혁씨의 ‘바이칼과 아리랑’이라는

주제의 특강이 있고, 개막식은 오후3시에  있습니다.


참여작가는 강원도에서 활동하는 권용택, 김대영, 김용철, 길종갑, 서숙희, 신대엽,

이재삼, 조문호, 황재형, 황효창씨 등 10명입니다.


많은 관심과 관람을 바랍니다.

사진은 지난12일 전시 준비를 하는 참여 작가들과 관계자들의 모습입니다.



























처음 출발한 이르쿠츠크 Delta 호텔 앞에 비친 물그림자다. 처음으로 셔터를 누른데 의미를 두었다.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마음에 내키지 않는 여행이라 마음이 어두웠는데, 사진에 그 감정이 담긴 것 같다.




‘춘천문화재단’에서 제안하고 미술평론가 최형순씨가 기획한 ‘민족 시원에서 강원 춘천까지’ 전람회 일환으로

시행한 바이칼 순례 길이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이어졌다. 

오는 7월13일부터 26일까지 ‘춘천문화회관’에서 열릴 계획인 “강렬하게, 리얼하게”전은 권용택, 김대영,

김용철, 길종갑, 서숙희, 신대엽, 이재삼, 조문호, 황재형, 황효창씨 등 강원도 작가 열 명이 참여한다.

우리민족 DNA속에 내재된 신화 속 선조들의 뿌리를 찾는 일로, 바이칼 호수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

작업에 반영시키는 프로젝트다.



화가 황재형씨


이르쿠츠크에서 출발한 버스는 자작나무숲과 완만한 구릉의 초원들을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 보이며,

네 시간을 넘게 달려서야 알혼 섬으로 들어가는 샤후르따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선착장 주변은 여름철 성수기를 대비한 공사로 부산했는데, 원형을 잃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미술평론가 최형순씨



바이칼호수가 시베리아의 푸른 심장이라면 알혼 섬은 바이칼호수의 심장이라 했다.
바이칼호수에 있는 26개의 크고 작은 섬 중에서 알혼 섬이 가장 큰 섬이라는데,

그리 높지 않은 언덕과 구릉지가 끊임없이 펼쳐져, 보는 이로 하여금 포근하고 차분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수많은 기암괴석들, 넓은 해변, 호수와 산, 하늘과 맞닿은 풍경들은 신비롭다 못해 신성하게 다가왔다.



화가 황효창



바지선에 실려 알혼 섬으로 들어갔더니, 사륜구동 우아직이란 요상하게 생긴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숙소가 있는 후지르 마을로 향했는데, 원주민 기사의 운전솜씨가 만만찮았다.

두 대 중 한 대는 번호판도 없었는데, 사고 나면 끝장이겠다는 생각으로 모두들 가슴을 조아려야했다.

비포장 길을 얼마나 달리는지, 마치 미쳐 질주하는 마차를 탄 기분이었다.


통나무로 지어진 숙소에 여장을 풀고, 해변이나 다름없는 호숫가로 몰려 나가니,

석양을 받은 호수는 금빛처럼 빛났고, 그 옆에 버텨 선 오방색 천에 감긴 신목에서 영험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저절로 큰 절을 올리며, 입에서는 주문이 흘러나왔다. 악업을 거두어 달라는...



화가 김용철



그 자리에서 20여 년간 끌어 왔던 작업, ‘생명’전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산과 바다나 늪지 등 전국의 성스러운 자연과 함께 담아 온 알몸 찍기에 화가 길종갑씨가

마지막 모델로 기꺼이 나서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찬 호수 물에 정갈히 몸을 적셔, 기를 모아 주는 열성까지 보여주었는데,

얼마나 물이 차거웠으면 고추가 자라목처럼 쏙 들어 가버렸다.

혹시 그 사진을 보게 되더라도 그 점을 널리 헤아려 주기 바란다.

아무튼 바이칼호수에 발만 담가도 몇 년을 더 살 수 있다는데, 온 몸을 담가 영생하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미안한 마음은 좀 덜었던 것 같다.



화가 길종갑씨



사실 ‘생명’전 작업을 20여년이 넘도록 마무리 하지 못한 것은 돈이 되지 않는 일인데다,

돈만 많이 들어가는 전시라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었다.

자연 속에 동화한 남자의 육신을 실제 크기로 프린트해 세우려면, 그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기획전의 주제와도 일치하는 것 같아 밀어부쳤던 거다.

그러나 이번에 출품해야 할 작품수가 여덟 점이라 나머지는 언제 본인에게 돌려 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늘 당사자를 만날 때마다 빚진 기분이었는데 말이다




화가 서숙희씨



이 프로젝트는 92년도부터 시작되었으나, 그동안 찍힌 사람 중에 두 분이나 저승으로 떠나버렸다.  

촬영에 응해 준 분들과, 전시 후 항상 집에 걸어두고 죽은 후에는 영정사진으로 쓴다는 약속까지 했는데, 

그게 지켜지지 않아 마음의 짐이 된것이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쑥스럽게 느낄지 모르지만, 금방 친숙하게 되고 알몸에 대한 잘 못된 관념에서 해방될 수 있는데,

대개의 일반인들은 손사레를 쳤으나, 흔쾌히 동조한 작가는 30여명이 된다.





먼저, 내 몸을 찍은 사진부터 프린트해 집에 걸어 두었는데, 처음에는 의아했으나 이내 익숙해지는 것을 보아 왔다.

내가 죽으면 영정사진을 쓰라고 아내에게 당부도 해 두었다. 별 슬프지도 않으면서 슬픈 표정을 짓는 것보다,

모두가 웃으며 저승길로 보내달라는 취지다.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데, 울고 불며 야단법석 떨면,

떠나는 망자의 마음이 편하겠나? 재수 없어 될 일도 풀리지 않을 것이다.

출품하게 될 ‘생명’전의 기획의도를 말한 다는 게, 엉뚱한 이야기가 길었던 것 같다.



화가 이재삼



바이칼 여행 중, 사람 입이 너무 간사하다는 것도 재차 실감했다.

몇 일동안 보드카 좀 마셨다고, 그 좋아하던 소주가 싱거워 못 마시겠더라.


숙소로 돌아와 러시아 전통사우나인 반야라는 독특한 체험도 했다.

이는 장작불에 달궈진 조약돌에 물을 끼얹어 거기서 나오는 열기로 체온을 덥히는 일종의 증기욕인데,

자작나무 잎으로 몸을 두들기니 은은한 자작나무향이 온몸을 감싸 올랐다.

그러나 모두들 술이 취해 들어갔으니, 땀께나 흘려야 했다.

자작나무로 몸을 두들기는 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줄 수밖에 없어,

내가 황효창선생에게 해 드리려 했더니, 쏜살같이 나가버리시네.

“설마, 시원하게 두들기지, 아프게야 할까?”




화가 신대엽씨



이튿날은 우아직에 실려 바이칼 북쪽 끝으로 내달렸다.

탁 트인 언덕위에 올라서니 어디가 호수고 어디가 하늘인지 분간하기 힘들더라.

시야는 온통 푸른색으로 물들어 버렸고 가슴은 벅차올랐다.

마치 가슴에 맺혔던 한이 깊은 호수로 스르르 가라앉는 것 같았다.

호수에 깔린 성스러운 공기, 성스러운 빛과 기운들이 내 몸속으로 베어드는 신성함에 빠질 수 있었다.


그런데, 도시락으로 싸왔던 '오물'이란 생선을 영 잊을 수가 없다.

생선을 쪄서 가져왔는데, 젓가락이 없어 손으로 먹은 것이다.

더러운 손으로 발라 먹었으니, 영락없는 원시인이었다.

옛날에는 대부분 그렇게 살았을 것인데, 모르는게 약이란 말이 정답이었다.



화가 김대영씨



첫날과 마지막 날, 두 차레에 걸쳐 세미나를 가졌는데, 우리민족과의 동질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황효창선생은 도처에 남아있는 샤먼의 흔적에서 확신을 얻었다는 말씀을 하셨고,

바이칼을 시베리아의 거대한 자궁이라 말해 온 황재형씨는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고향을 찾은 듯 편안하다고...

야시장에서나 숙소에서 만난 원주민들의 눈빛과 표정들도 한국 사람처럼 너무 편안했다.

구릉 곳곳에 피어있는 할미꽃도 친숙하지만, 솟대와 장승, 신목 등 우리의 문화와 동일한 것이 너무 많았다.

강강수월래를 닮은 전통놀이에서부터, ‘나무꾼과 선녀’나 ‘심청전’ 같은 전설들도 우리와 비슷했다.

이미 우리민족의 이동 경로나 DNA까지 조사한 역사학자들의 고증들이 있으니,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세미나에 참석한 작가들



그런데, 누군가 문제점을 지적했다.
 전시 일정이 7월 중순으로 잡혀있으니, 그동안 어떻게 백호 이상의 대작을 여덟 점이나 그릴 수 있느냐는 이야기였지만,

그건 아닌 듯 했다. 바이칼이 우리민족의 전체가 될 수 없듯이, 바이칼과 연계된 작품은 한 점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진부의 권용택씨가 산나물축제위원장을 맡아 못 오게 되었지만,

그 대신 목공예가 류정호씨가 참석해 나무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마디로 그는 나무박사였다.

그리고 이재삼씨의 만남도 특별했다. 작품만 좋은 게 아니라 삶의 철학이나 논리 정연한 말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또 한 가지 놀랜 것은 태백 황재형씨의 학구열이었다.

이미 바이칼이 우리민족의 시원이라는 확고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은 수많은 관련 기록들을 탐독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마저 부족해 카메라와 동영상으로 세세히 기록하는 것을 보고 혀를 내 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목공예가 류정호씨



한가지 마음에  걸렸던 일은 세미나에 참여한 분으로 부터 공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내가 떠나며 블로거에 올린 "바이칼 호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란 내용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했다.

취중인데다 자칫 회의 분위기를 망칠까봐 대꾸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는 되었다.


짐작컨데, 자기는 개인 돈으로 참가했는데,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느냐는 뜻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참여하기 싫어면 그만 두면 되겠지만, 솔직히 잘 못된 작가지원 시스템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없는 사람 입장으로서는 외국여행보다 작업에 실질적인 경제적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른 분들의 입장은 돈보다 진지한 체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그래서 내 입장만 생각한 편견이었다는 것을 그 분을 통해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이 모든 것 또한 당사자가 진위를 밝히지 않았으니, 잘못된 추정인지 모르지만...





 또 하나 밝히고 싶은 것은, 모든 분들이 바이칼의 아름다운 풍경사진을 바라고 있어나, 그 건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단지 ‘서울문화투데이’ 기행기에 쓸 자료로 몇 장 찍었을 뿐이다.

내가 관심있게 찍은 것은 우연히 지나치다 만난 칼호이저 야시장 사람들과 여기에 올린 작가들의 움직임이 전부다.

내가 기록하여 남기고 싶은 것은 오로지 사람이기 때문이다.

 

명색이 사진한다는 사람이 외국 여행에 똑닥이 카메라 하나 달랑 가져갔다면, 이해되지 않을 게다.

경찰 물대포에 망가져 쓸 수 있는 카메라가 이 뿐이기도 하지만, 그 것으로도 주변을 기록하는데 지장이 없다.




말이 너무 길어 마무리를 해야겠다.

바이칼을 출발하기 전에는 어려운 형편에 돈까지 구해야 하는 자체가 싫었지만,

와서 생각하니 힘들어도 보람된 여행이었다고 생각된다.

신의 은혜를 받아서인지 일도 슬슬 풀리는데다, 편견에 대한 스스로의 반성과,

부정에서 긍정적인 삶으로 바꾸는 계기까지 마련하였으니, 이보다 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지금은 바이칼이란 이름만 떠올려도 왠지 가슴이 뛰고 푸근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여건만 되어진다면, 아내와 다시 한 번 떠나고 싶다.



사진, 글 / 조문호





































류정호씨가 바이칼 선착장 주변에서 오래된 말 편자를 주웠다.




















이분들은 부산에서 관광 온 아주머니들이다.







물이 얼마나 차거운지 1분을 견딜 수 없을 정도이다.


'생명전' 모델이 되어주기 위해 몸을 정갈하게 해, 기를 받는 길종갑씨




위 세분이 부부와 동행했는데, 살다보니 모두 닮아간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김치식당이다. 모처럼 맛있는 김치찌게를 맛볼 수 있었다.
























우리의 장승을 만났다.  황재형씨가 한민족이 옮겨 간 경로를 설명하고 있다.




























































글 / 최형순[미술평론가]


작가는 홀로 있는 개인이 아니다. 미술에서의 작가 역시 다르지 않다. 사회에서,역사에 대한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작가는 없다. 그러기에 나른한 데카당스와 근거 없는 보헤미안으로서의 작가를 기대하지 말자고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하우저는 그렇게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기 우리의 현실을 줄기차게 말하고자 하는 작가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 백두대간의 한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해방둥이로 태어나 작가로 살았다는 것은 광복 70년의 무게만큼이나 미술에서도 뜻 깊다. 그들이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전시하는, 우리의 ‘산과 함께’ 담은 ‘70년’은 어떤 것일까. 진정한 강원미술의 의미를 물어도 될 만하지 않을까.

우리는 예술이 이런 것이라고 믿는다. 온 몸을 던져 살아낸 작가의 삶이 그대로 예술이라고 믿는다. 예술이 어떤 혈통을 타고나서 귀족처럼 태어나기 전부터 예술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듯,작품이 예술성을 담아야 예술이 되는 것이다. 지금 이곳 백두대간의 한 가운데서 함께 아리랑을 노래하는 그들의 미술이,그들의 삶이 지금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있기에 그것이 예술이라고 믿는다. 그 감동으로 전율하게 된다면,더 더욱 의심 없이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예술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기에 더 독한 패러독스를 내뿜게 된다. 황효창의 인형그림이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이유다. 술독에 빠진 인형이라니 기가차기 그지없다. 인형의 입을 틀어막은 그 권력이란 참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 개명하지 못했던 시대를 그렇게 견뎌온 1970, 80년대의 그림과 같이 오늘의 인형도 우리에게 도발을 멈추지 않는다.

광부화가로 이름난 작가 황재형. ‘광부의 옷’으로 중앙미술대전을 휩쓸고 ‘황지연작’을 그리던 그는 기어이 관찰자로만 기웃거릴 수 없다고 그곳에 들어가고야 만다. 30년이 넘는 작가로서의 활동기 대부분을 그곳에서 살고 있다. 이제 달라진 그곳의 현실도 계속 담아낸다. 탄광은 폐쇄되었지만 여전한 자본의 막장 극에 대해 할 말이 아직도 그곳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홍등가에 들어가 그들 삶의 현장을 담았던 사진작가 조문호도 강원의 작가가 되었다. 정선,영월,삼척의 두메산골 사람들을 담으려 정선에 터를 잡고 작업해왔다. 권용택 또한 그렇다.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가 실경을 찾아 강원을 찾았던 것처럼,강원의 산하를 담으려 정선에서 작업하고 있다.

신대엽,서숙희,백중기,김용철,김대영,길종갑이 그 세대를 이어 오늘의 리얼리티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아니다. 미화한 현실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니다. 거칠고 가슴 아픈 현실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이 미술(美術)이라고 오해하지 않을 일이다. 진선미,위악추가 모두 예술의 대상이고 희로애락 어느 것도 미술의 대상 아닌 것이 없다. 아름다움이란 그 예술이 빚어내는 감동의 크기에서 찾아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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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현 시국을 예술로 표현하다


동아일보 /2016,12,1 / 이인모기자


강원 예술인들 시국전 ‘순실뎐’ 열어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 중인 ‘시국전’에 전시되고 있는 황재형 작가의 작품 ‘속아 넘어가다(Buffaloed)’(왼쪽 사진).

넘어진 소를 표현하며 속이고 속는 세태를 풍자했다. 오른쪽 사진은 조문호 사진작가의 ‘광화문 시위’. ‘시국전’ 기획자 제공


강원 지역 예술인들이 암울한 현 시국을 예술적 관점에서 표현한 ‘시국전(展)’이 30일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개막돼 관심을 끌고 있다. 긴급 특별전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비선에 의한 국정 농단을 개탄하며 예술가로서의 의무를 지각하고 시민들과 뜻을 함께하기 위해 마련됐다. 5일까지 엿새 동안 열릴 예정으로 전시 타이틀은 ‘순실뎐’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황효창 강원민예총회장을 비롯해 권용택, 조문호, 김진열, 황재형, 길종갑, 서숙희 씨 등 작가 16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각각 100호 크기의 그림과 사진 1∼4점을 출품해 총 40여 점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광부 화가’ 황재형 작가는 ‘속아 넘어가다’를 풍자해 소가 넘어지는 장면을 묘사한 ‘Buffaloed’와 지난 대선 결과에 대한 느낌을 담은 ‘징후’를 전시 중이다. 조문호 사진작가는 국민의 광화문 시위와 유진규 마임이스트의 퍼포먼스, 양혜경 무용가의 넋전춤 등 시대의 몸짓을 담은 사진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미술평론가 최형순 씨는 “시국선언이 쏟아질 때 우리 예술가들은 촛불 집회의 머릿수 하나를 채우는 일로는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었다”라며 “이번 시국전은 예술가들에게 시국선언과 같은 의미”라고 밝혔다. 

이인모기자 imlee@donga.com



강원도 둥지 턴지 20년 만에 강원도 환쟁이들과 처음으로 질펀하게 놀았다.
강원도의 정체성을 보여주려는 전시 의도나 출품작들도 좋았으나,
같은 생각을 하는 꾼들과 함께하는 만남 자체가 더 좋았다.

그런데 전시가 시작되는 날, 아침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같이 가기로 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정이 생기기 시작했고,
사람 만나는 과정에서 헤매고, 뭔가 차질이 생기고 있었다.

시간은 늦었는데, 이놈의 지하철은 왜 그렇게 늦게 가는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한 시간 반이나 늦었는데, 모두들 뒤풀이 집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대개 고루하게 진행되는 개막식 자체는 좋아하지 않으나, 기록을 못해 안타까웠다.

아내와 전시장을 둘러보니, 조명이 설치되지 않은 어제 느낌보다 훨씬 좋았다.
이 강원도의 산울림을 서울까지 끌고 가고픈 생각이 충동질 했으나,
남아 있는 작가들과 뒤풀이 집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반가웠다!

세 번째 술자리지만, 기획자인 최형순씨를 비롯하여 황효창, 황재형, 신대엽, 서숙희,

백중기, 김용철, 김대영, 길종갑, 권용택씨 등 참여 작가 전부가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

'강원문화재단'의 오제환씨, '강원국제미술전람회' 팀장 김윤기씨, '김수근미술관'의 엄선미씨,

피리쟁이 함태근씨 등 많은 분들과 어울려 여흥을 즐겼다.
 
오전의 일들은 다 잊어버린채 즐겁게 술을 마셨는데, 술이 너무 달았다.

주는대로 쪼록 쪼록 마셨더니, 슬슬 객기가 도지기 시작했다.
송상욱선생의 십팔번 ‘부용산’을 황재형씨가 구성지게 불러 분위기를 돋구었고,

황효창선생께서 ‘세노야’를 부르는 등 노래판이 슬슬 벌어지기 시작했다.

백중기씨의 곡을 바꾼 동요에 춤까지 추며 난리법석을 떨어댔다.

난, 내가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건, 평소에는 꾸어다 놓은 보리쌀자루처럼 앉아 있다가도
술만 한잔 들어가면 백팔십도로 변해 망나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평소 잘 난 채하는 꼴이 싫어 그런지, 자신을 비하하는 막말도 예사로 해댄다.
그런데 지만 망가지면 되지, 죄 없는 마누라까지 끌어들여 늘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날도 결정적인 실구를 두 번이나 날렸다는 것이다.
돌아오며 아무 말 없는 아내의 표정을 쳐다보니, 심각했다.
얼마 전에도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싹싹 빌었는데, 큰일 났다.
집에 도착해서도, 잠을 자면서도, 일체의 말이 없었다.

다음 날 술이 깨니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나 내색도 못하고 전전긍긍했는데,
아침 겸 점심을 먹고는, 말없이 휙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애라 모르겠다. 방바닥에 자빠져 낑낑대다 다시 잠들어버렸다.
눈을 떠보니 오후 아홉시가 넘었는데,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다.

아내와의 소통이 끊겼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문이었다.
이건 립스비스로 될 일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진정성 있는 믿음을 줘야하는데,
문제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술을 마시지 말던지 벙어리가 되던지 두 가지 뿐인데,
이 더러운 세상 술 없이 산다는 것은 어렵고, 차라리 벙어리 되는 게 낳겠다.


사진: 정영신,조문호 / 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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