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니엡스가 처음 사진 인화에 성공한 때는 1826년. 니엡스를 만나 다게르는 이후 은판 감광제를 발명하여 빠르고 실용적인 사진 제작법을 보급했다. 당시 사진은 조물가 만들어낸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평을 들었다. 화가들은 더 이상 회회가 발붙일 곳이 없다고 괴로워했다. 이스트먼에 의해 롤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가 나오면서 빠른 속도로 사진기가 보급되기도 했다. 그 뒤 사진은 기록이 됐다. 개인의 기록은 최근 들어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에레즈 에이디든과 장바티스트 미셸이 지은 <빅데이터 인문학 진격의 서막>에는 2013년 4월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 결승점에서 벌어진 테러의 범인을 검거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연히 찍힌 고해상도의 용의자들 사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미 우리의 삶이 의도치 않게 기록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기록은 사생활 침해라는 어두운 그늘도 지니게 했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사진에 생활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다. 교실에서 필기 대신 칠판을 그대로 찍고, 친구들과의 일상생활도 사진으로 남겨둔다. 심지어 전혀 모르는 사람의 우스은 모습도 아무렇지도 않게 찍어둔다. 친구에게 삭제를 부탁하고 싶지만 그러는 친구가 주변에 없기 때문에 자신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진의 양면성을 보지 못한 결과다. 기록으로 남는 사진 한 장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생각하지 않는다.

봄과 겨울 사이 새봄의 출발을 알리는 봄비가 시나브로 내리고 있다. 내리는 빗물 사이사이로 그리운 얼굴들이 스며들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하고 싶다. 해피 클래식. 알함브라 궁전의 회상을 클래식 기타로 연주해 본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클래식 기타리스트 고 배영식 선생님으로부터 6년 동안 기타를 배웠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너무너무 행복하고 평화스런 시절이었다. 낮에는 구두닦이와 연탄배달, 아이스케키 장사 등으로 바쁘기만 했다. 밤에는 야간중학교를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다시 그렇게 살아라고 해도 아찔하다.

조문호 사진작가는 2015년 1월 부인 정영신(57)씨와 전국 장터 사람들을 찍은 사진전을 차렸다. 지금도 서울 인사동과 전국 장터들을 오가며 군상들을 담는다. 젊을 적부터 음악다방, 주점 등을 하며 자유인으로 살았고 대가 최민식의 작품에 이끌려 다큐사진에만 탐닉했다. 가산을 거덜 내는 대가도 치렀지만,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며 낮은 자들의 삶을 투시하는 도리를 배웠다. 항상 바닥을 생각하는 그 겸손한 시선 덕분에 80년대 풍속생활사의 가장 인상적인 기록이라 할 <청량리 588>이 나올 수 있었다. 작가는 사진 사진들을 추려 올해 2월 25일부터 3월 10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전시판도 벌인다.

80년대 중반 서울 전농동 588번지. 청량리역 사창가 여성들과 동고동락했던 조문호 사진가(68)는 자신이 지켜본 30여년 전 청량리 풍경을 하나하나 렌즈에 새겨넣었다. 588의 공간 풍경을 작가가 최근 사진집 <청량리 588>(눈빛)을 출간하며 되살려냈다. 85년 동아미술제에 선보였지만, 대부분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1984-1988년 청량리 사창가를 세밀화처럼 그려낸 기록이고, 겉과 속이 달랐던 5공화국의 사회적 풍경이기도 하다. 작가의 시선은 줄곧 그곳 인간 군상들의 표정과 움직임을 쫓는다. 강퍅한 2층 벽돌 슬래브 쪽방 건물들 속에서 과로와 슬픔에 찌든 사창가 여성들의 고단한 얼굴과 주름진 알몸, 앳된 초보 성노동자의 단아한 얼굴 등이 휙 문 앞을 스쳐가는 남자들의 실루엣과 얽힌다.

조문호 사진작가는 지난 1978년부터 부산시 중구 남포동에서 우연적인 필연, 필연적인 우연으로 만났다. 그야말로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슬프고도 기쁜, 불행에서 행복한 사진여행으로 만났다. 접객실에서 여인들은 다 해진 의자에 앉아 남자들의 주문을 기다린다. 그들의 앞 벽면에 있는 밀대걸레와 연탄보일러 탱크 등은 구질구질하지만 엄숙한 소품과도 같다. 조 작가는 재개발의 광풍이 몰아친 2012년 이후, 대형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선 청량리에 30여년 전 이런 풍경이 있었다는 사실을 날 서지 않은 사람살이 장면들로 보여준다. 평론가 이광수씨는 사진집에 실은 글에서 작가는 윤락녀들이 아니라, 그들이 사는 시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을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라져가는 작은 이들의 세상을 기록하는 조문호 사진작가. 소외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를 말하려 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우리와 같은 사람을 말하려 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우리와 같은 사람을 말하려 하는 사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눌변, 그것이 조문호 사진의 완성도를 높이는 힘이다. 사진은 우리 시대의 증언이며 동시에 기록이다. 역사의 현실 앞에서 카메라로 영혼의 시를 나는 쓰고 있다. 슬픔의 힘으로 눈물의 힘으로 기록하고 증언하고 싶다. 나는 사진이다. 나는 그림이다. 나는 노래다. 조문호의 청량리,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권태원 / 시인.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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