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넘게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보는이로 부터 궁금증을 불러 일어켰던

'송현동 부지'가 지난7일 시민들에게 임시 개방되었다.

이건희 기증관 건립과 문화공원 조성에 앞서, 약 2년간 녹지광장으로 활용한단다.

 

인사동 지척에 자리잡은 송현동부지는 서울광장 면적의 3배에 달하는 규모지만,

한 세기가 넘도록 일반인은 볼 수조차 없던 금단의 땅이 아니던가?

숱한 역경을 거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기에 더 반가운 것이다.

 

이 땅은 경복궁을 감싸고 있어 조선 시대는 왕족이 흩어져 살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 조선식산은행 사택이 들어서며 부터

4m에 달하는 높은 담이 올라 일반인은 볼 수도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광복 후에는 주한미국대사관 직원 숙소로 쓰이다, 1997년에야 돌려받은 곳이다.

소유권이 한국 정부에서 삼성생명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대한항공’으로 넘긴 것이다.

'삼성생명'이 미술관을 건립하려 했으나 아마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것 같다.

'대한항공'은 이곳에 7성급 한옥 호텔을 지으려했으나 그 또한 장애가 따랐다.

학교문제로 인허가에 번번이 제동이 걸리며 결국은 공공부지로 돌아오게 되었다.

 

서울시가 한국토지주택공사대한항공과의 3자 간 합의로 사들인 것이다.

7월 초 소유권이 대한항공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로 변경되었다는데,

서울시에서 보유한 강남구 서울의료원 남측부지와 맞교환 할 예정이라고 한다.

 

개방 첫 날인 지난 7일 오후 다섯 시 무렵, 열린송현을 찾아갔다.

때 마침 개장식에 맞춘 '가을달빛송현'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서울시장을 비롯한 300여명이 참석한다기에 서둘러 돌아보고 나왔다.

 

부지 전체를 둘러싼 4m 높이의 장벽을 철거하여 1.2m 돌담으로 낮추었고

넓은 잔디 광장 주변에는 코스모스와 백일홍 등 야생화 군락지를 조성해 놓았다.

북인사마당에서 바로 연결되는 송현광장의 접근성은 말할 것도 없지만,

도심 한 복판에 이렇게 넓은 평지가 생겼다는 자체만으로 하나의 사건이었다.

 

송현동 부지가 가로막았던 경복궁과 북촌은, 지름길이 트이며 더 가까워진 것이다.

인사동에서 광장을 가로지르는 보행로 따라 가면 경복궁과 광화문광장,

청와대에서 북촌 골목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새로운 관광코스다.

 

잔디광장 중앙에는 대형 달을 형상화한 지름 5m 크기의 달 조명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작은 달이 방사형으로 펼쳐지는 조명 조형물도 설치해 놓았다.

100년 만에 열린 공간이, 달빛 쏟아지는 가을밤에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는 의미라고 한다.

 

서울시는 임시개방 기간동안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한단다.

내년 5~10월에는 이곳에서 서울건축비엔날레가 열리고,

올해 처음으로 열린바 있는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내년에는 이곳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2025년 다시 문을 닫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건희 기증관을 포함한 문화공원으로 재단장하여 2027년에 재개관할 예정이라는데,

가급적 건축물이나 인위적인 설치물은 배제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숨 막힐듯 답답한 서울도심, 시원하게 그냥 두었으면 좋겠다.

 

사진, / 조문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경복궁 옆 송현동 부지가 올 하반기 개방된다.

굴곡진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긴 송현동 부지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금단의 땅이다.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들여다볼 수도 없던 송현동 부지가 시민에게 돌아오기까지 110년 걸렸다.

 

한때 조선시대 왕족과 명문 세도가가 살던 땅으로,

구한말 친일파 윤덕영과 윤택영 형제가 땅을 소유해 집을 지었다.

1938년에는 윤덕영 집이 일제 수탈기관인 조선식산은행에 넘겨지며 사택으로 쓰다

해방 후에는 미국으로 넘어 가 1940년부터 1990년까지 미 대사관 직원 숙소로 사용되었다.

 

미국이 부지를 반환하고 삼성이 국방부에서 1,400억에 사들이면서 송현동 부지는 민간 소유가 되었다.

그러나 삼성은 건축 규제에 부딪혀, 2008년 대한항공에 2900억에 팔았다.

 

대한항공은  7성급 한옥 호텔을 만들려고 했으나 교육청과 서울시의 반대에 부딪혔다.

 호텔 건설을 포기하는 대신 '복합문화허브'를 조성하려 했으나

한진 그룹 일가의 비리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에 걸려 손을 들게 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서울시에서 대한항공, 한국토지주택공사 3자 매매교환방식으로 송현동 부지를 확보했다.

대한항공에서 5580억 받고 주택공사에 넘긴 후, 다시 서울시 소유 땅과 맞바꾸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서울시 자료사진

 

그래서 송현동 부지(37117)가 녹지광장으로 바뀌어 시민의 품에 안기게 된 것이다,

서울광장의 약 3배이고 연트럴파크와 맞먹는 규모다.

 

서울시는 국제설계공모를 통해 이건희 기증관 건립을 준비하며 열린 공간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인사동과 북촌, 광화문, 청와대로 이어지는 지름길을 만들고,

그늘막과 벤치 등 시민 휴게시설과 공연 및 전시 공간도 꾸릴 예정이었다.

 

110년 넘게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공간인 만큼, 

최소한의 시설물만 배치하여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2024년까지 송현동 부지에 대한 조성을 끝내고,

2025년 이건희 기증관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오는 7월 새 광화문광장 개장 시기와 연계해 올 하반기 임시 개방할 예정이다.

최근 청와대 개방에 따른 광화문 일대 교통정체가 극심하여

송현동 부지를 임시 주차장으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송현동 부지는 관광버스 수백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고

국립현대미술관(서울) 뒷편과 맞닿아 청와대까지 걸어서

2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아 주차장으로 사용할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다.

 

다만 6월 말 임시 개방에 맞추어 녹지를 조성해야 하므로

청와대 1차 개방기간 동안만 주차장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 조문호

 

 

 

 



임대주택 탐방할 주민을 모집하는 벽보가 오래 전부터 동자동에 나 붙었다.
동자동을 재개발하기 위한 작업이 추진 중인데다 

‘대책 없는 쪽방주민 집단이주 중단하라“는민들의 입장이 상충하는 상황이라 임대주택 탐방을 신청했다.

동자동 주민으로 임대주택을 신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난, 동자동 빈민들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절대 이주할 뜻이 없음을 먼저 밝혀둔다.

주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힘을 보태기도 하겠지만, 동자동 사람들의 삶을 마지막까지 기록하기 위해서다.

이주하더라도 임대주택에 갈 것이 아니라 정선 만지산 집을 수리해 돌아가야 한다.



주택 탐방일로 정해진 15일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였다.

집합장소로 정해진 '서울역쪽방상담소' 체력 단련실이 있는 곳에서는 아침부터 김치 배급이 있었다.

한 쪽 벽에 ‘'제2차 임대주택및 지역탐방"이라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서울시'와 '서울주택공사'를 등에 업은 '용산주거복지센터'에서 주최하는 행사였다.

예상했던대로 동자동 쪽방주민들은 몇 명 나오지 않았다.

총 열 아홉명으로 대부분 남영동에서 온 사람이고 아는 사람은 이배식씨 뿐이었다.



'용산주거복지센터' 담당자가 나와 임대주택 탐탕에 대한 취지와 일정을 소개했고, '서울역 쪽방상담소'에서도 보충 설명했다.

옆에는 참가자에게 줄 선물장자 20개가 ‘임대주택 및 지역탐방자 선물’이라는 딱지를 붙여 보란듯이 쌓여 있었다.

다들 45인승 관광버스를 타고 탐방에 나섰는데, 하필이면 임대주택 탐방지역이 동자동으로 옮겨오기 전에 내가살던 곳이었다

수시로 장 보러 다니던 불광동 '대조시장' 옆에 버스를 세워 놓고 시장에서 백여미터 떨어진 연립주택에 들어갔다.

임대주택 탐방 온 주민들이 살 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몇 년전 동자동에서 살던 분이 옮겨 와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전에 연락된 듯한 세 가구를 방문했는데, 15평에서 18평 쯤 되는 각기 조금씩 다른 구조였다.

결론적으로 어디를 가던 이 정도 집을 얻어 살 수 있다며, 이주 신청을 권장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볼 때는 한 평 남짓한 쪽방에 사는 독신이 살기에는 부담스러웠다.

대부분의 주민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임대료야 수급비에서 보장되지만, 그 공간을 채울 가구나 생활용품도 없다.

썰렁한 집인데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집만 넓으면 무엇 하겠는가?

여지것 타 지역으로 이주한 주민들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도 다들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동자동처럼 자주 나누어주던 구호물품도 받을 수 없으니 더 싫은 것이다.

동자동 재개발을 위해 주민들을 이주시키려면 이 같은 땜질식 이주정책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지금 거주하는 동자동은 서울역과 가까운 교통이 편리한 지역인데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이웃이 있다.

먼저 지하철역과 가까운 지역에 빈민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계획된 아파트 건설이 선행되어야 한다.

'서울주택공사'에서 7평에서 10평 정도로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필요한 만큼 지어야 한다.

외곽 지역이거나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하지 않다면, 불편한 만큼의 보상은 재개발조합에서 부담해야 한다.


 

다들 임대주택 탐방을 끝내고 서오능으로 옮겨 ‘남원추어탕’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빈민들이 오랫만에 맛있는 추어탕으로 영양 보충하는 시간이었다.



식사 후 서오능 구경하는 것이 마지막 행사 일정인데, 비가 내려 불가능할 것 같았다.

입구에서 단체사진이나 찍자며 데려 갔는데, 현장에 도착하니 비가 오지 않았다.

가을을 떠나 보내는 서오릉이지만 인적조차 없었다. 빗물에 젖은 단풍은 애잔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왕능은 세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서오릉에 들어가니 초입에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과 속세와 성역을 구분하는 금천교가 있었다.

홍살문부터는 제향을 올리는 공간인데, 왕의 업적을 기록한 비각과 왕의 신주를 모시는 정자각이 있었다.

맨 윗부분은 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능침 공간으로 무인석과 문인석, 석호 등의 호위를 받는 봉분이 자리했다.

왕릉에 따라 구조물과 석물 등이 조금 식 다른데,

그 규모를 보면 왕과 함께 그 시대의 권력이 사라지고 있는지, 이어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숱한 정치적 파란을 일으킨 장희빈 릉도 돌아보았다.



긴 세월 녹번동에 살며 서오릉 앞을 수없이 지나쳤건만, 한 번도 들려보지 못한 자책이 들었다.

다른 분들은 유적에 대한 관심보다 저물어가는 단풍에 취해 서오릉 길을 산책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퀴즈로 선물을 나누어주는 시간도 가졌는데,

관광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뽕짝 음악이 소음되어 괴롭히기도 했다.



처음 떠난 장소로 돌아와 준비된 선물을 받을 차례인데, 쪽방상담소 실장이 올 때가지 기다리라고 했다.

준비한 선물상자를 그냥 나누어주면 될 것을 왜 기다리게 하는지 궁금했는데,

준비된 선물에다 다른 선물박스를 하나 더 보태주는 것이다.

상자에는 된장, 고추장, 김, 통조림, 라면 등 여러가지 식료품이 골고루 들어 있었다.

무거워도 가져갈 수는 있으나, 왜 많은 선물을 집중적으로 안기는지 모르겠더라.

주민에게 골고루 나누어야 할 선물을 몇몇 사람에게 모아주는 이러한 형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입 맛대로 나누어주는 불평등한 분배가 쪽방촌 완장부대를 만들어내며, 주민을 길들이는 경우로 비약되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남거나 적은 량의 물품이 들어오면,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는 노숙자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비효율적인 주거복지 프로젝트도 재고했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에 새로운 노숙자 한 사람이 입성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이불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나타났다.
잠자리 때문에 챙겨 왔으나, 거추장스럽기 그지없다,
밥 얻어먹으러 가거나 화장실 갈 때마다 보따리를 들고 다닐 수야 없지 않은가?
길가에 잠깐 두고 가지만, 언젠가는 환경미화원의 손에 들려간다.
그 때야 비로소 노숙자로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버리면 마음이 한 결 편하다는 것을...






교회 벽 앞에는 쪽방사람이 꽃밭을 만들어 놓았다.
얼마나 꽃밭이 그리웠던지, 떠도는 화분으로 꿈을 모았더라.
비록 한 평짜리 쪽방 인생이나, 꿈을 펼쳤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한 쪽에는 수박장사가 수박을 잔뜩 풀어 놓았다.
그러나 장소를 잘 못 골란 것 같다. 쪽방 촌엔 수박이 팔리지 않는다.
돈도 돈이지만, 다들 좁은 방에 혼자 있는데 그 큰 수박을 어떻게 처분하겠는가?






그리고 동자동을 길들이는 ‘서울역쪽방상담소’는 변하지 않았다.
그토록 줄 세우지 말라고 노래 불렀으나, 쇠귀에 경일기다.
몇 일전 롯데에서 선물을 보냈는데, 숫자는 주민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량이란다.
량이 모자라 줄 세울 수밖에 없다지만, 푸드마켓에 넘기면 되지 않는가?
거기서 필요한 것 골라 가면 될 텐데, 그렇게 생색내고 싶은가?






물건을 타기위에 일찍부터 나와 지루한 시간을 보냈는데,
박스를 열어보니 거의 백화점 수준이었다.
필요 있는 상품도 있었으나, 필요 없는 상품도 많았다.
그 다양한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골고루 전해주는 방법은
푸드마켓에 넘기는 방법 뿐 인데, 갑 질 거리를 넘기기 싫은 모양이다.






박원순 시장님! 제발 쪽방상담소 일을 동 사무소에 통합시키세요.
갑 질하는 일자리 창출해 무슨 똥바가지 덮어쓰려고 그러십니까?

그만 하십시요.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시에서 위탁 운영하는 '서울역쪽방상담소'는 '서울역노숙인상담소'로 명칭을 바꾸고,

동자동 쪽방에 대한 지원 업무는 동사무소(주민자치센터)로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민등록지도 없는 노숙인들의 진로를 고민해야 할 상담소가

쪽방의 이름을 달고 빈민들을 거지로 길들이며, 자괴감만 높이고 있는 것이다.





'쪽방상담소'는 지난 2000년 당시 대통령 업무 지시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현행법상 명시되거나 규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국적으로 열 곳이 있지만, 서울지역은 서울역, 돈의동, 동대문, 남대문, 영등포 등 다섯 곳으로

서울시와 각 소속 구청의 지원 아래 위탁 운영되고 있다.

상담을 통한 진로 문제를 주요 사업으로 만들어졌으나. 지금은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쪽방 촌은 한 두 사람이 들어갈 크기로 만들어 놓은 작은 방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보통 방 하나가 0.8평에서 1평 정도의 크기로 겨우 발을 뻗고 누울 수 있는 정도로 매우 좁다. 

7년 전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내 4개 구 9개 동의 287개 건물에 총 3,504개의 쪽방이 있다고 한다. 

쪽방에 거주하는 주민은 3,201명으로 그중 삼분의 일이 서울역에 인접한 동자동에 몰려있다. 





거주민의 약 40%가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이며, 홀몸노인과 장애인이 약 45% 정도를 차지한다. 

보통 방세는 일세와 월세로 계산되는데, 일세의 경우 하루에 만원, 월세의 경우 20만원대 초반 정도의 수준이다. 

쪽방촌 거주민들의 대다수는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며, 절반이 넘는 약 54%의 가구가 휴대용 버너로 취사를 한다.







그동안 ‘서울역쪽방상담소’의 활동을 2년 넘게 지켜보며, 문제점에 대한 시정을 요구해 왔다.
특히 보내 온 물품을 수시로 줄 세워 나누어 주었는데, 이는 주민들의 타자화로 자립심을 잃게하는 일이다.
그리고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일하는 이의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정수현씨가 소장으로 있을 때, 주민들 줄 세우지 말라는 요구를 줄기차게 한 결과 조금씩 개선되어 갔다.

그러나 올 2월 ‘온누리복지재단’으로 운영 주체가 바뀌고, 김갑록 소장이 부임하며, 오히려 전보다 더 못해진 것이다.

보여주기 위해 쪽방촌을 찾는 정치권 인사들 안내자 역활에 더 충실해 보였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운영 주체가 바뀌면서 매주 목요일마다 찾아가게 하는 밑반찬 지원이 사라졌고,
‘화요카페’라는 이름을 단, 식품들을 줄 세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한 번은 계란10개, 한 번은 라면5개식으로 화요일마다 나누어 주었는데, 쪽방 사람들에게는 밑반찬 지원이 더 절실하다.
주방 없는 쪽방의 살림살이는 김치나 짱아치 등의 밑반찬이 더 필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주민들의 필요보다, 보여주기 좋고 손 쉬운 그들의 생각이 중요했던 것 같다.






그 것도, 전 처럼 시간 나는 대로 찾아가는 게 아니고, 거지 구호물품 나누어 주듯 시간을 정해 줄 세웠다.
그렇게 생색을 내고 싶고, 그리도 갑 질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더구나 올 여름은 날씨가 얼마나 더웠나?
그 땡볕에 노약자들을 한 시간 이상 줄서서 기다리게 한다는 게 말이 되냐? 


 




제발! 빈민들을 거지로 보지 말고, 주민으로 보아 달라.
주민을 타자화 시키는 이런 짓거리야 말로 개가 들어도 웃을, 시대에 뒤 떨어진 일이다.






앞으로는 날짜를 정해 주민들이 직접 찾아가게 하고, 찾아가지 않는 분은 전화를 해야 한다.
고독사가 잦은 쪽방에서, 전화를 받지 않으면 한 번 찾아보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늘 상 받는 사람만 받아가고, 몸이 불편하거나 정보가 어두운 분은 매번 소외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한가위 공동차례상도 이런 식으로 하려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추석 당일에 지낼 제사를 삼일이나 앞 당겨 지낸다는 게 말이 되냐?
직원들도 명절에 쉬어야한다면, 제사를 주민자치회에 넘기면 될 것 아닌가?
증거자료로 사진이 필요하다면, 부탁만 하면 얼마든지 찍어 줄 수 있다.






정수현씨가 '서울역쪽방상담소' 소장으로 있던 지난 명절에는 그러지 않았다.
명절 당일 제사를 치 루어, 고향에 가지 못하는 주민들이 다 같이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그 때 나왔던 상담소 직원은 고향도 없고, 가족이 없어 나온 것이 아니다.
주민들에게 마음이 가지 않는, 편한 밥벌이로 여기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만약 공무원이 맡아 한다면 책임의식에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가지 대안으로, 공무원 중 한 명을 소장으로 발령하여 족방촌에 파견할 것을 서울시에 제안한다.
그의 책임아래 동네 인력을 활용하거나, 주민자치회를 활성화해 운영하라는 것이다.
'쪽방상담소'는 '노숙인상담소'로 명칭을 바꾸어, 본래의 취지대로 노숙인 상담과 진로에 전념하게 하라.

그리고 쪽방 지원 업무 전부를 동사무소에 통합시켜, 빈민을 차별화 하지마라.





빈민들은 짐승이 아니다. 제발 사람대접 좀 해다오.



조문호


















지난 18일 서울광장에서 ‘듣고, 보고, 말하다’라는 서울 복지 박람회가 열렸다.
그런데, 그날따라 날씨가 너무 추웠다.

‘듣고, 보고, 말하다’ 였지만, 귀도 얼고 입도 얼어 소통이 되지 않았다.

봄 가을, 좋은 계절 다 두고, 왜 이 추운 날 야외광장에 끌어 모았을까?

가난한 서민들은 추워야 제 맛이 난다는 말인가?






동자동 쪽방 주민들도 선물 준다는 미끼에 걸려 50여명이나 나갔으나, 추워 어쩔 줄을 몰랐다.

함께 간 ‘서울역쪽방상담소’ 정수현소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나서서 무릎에 덮을 수 있는

담요를 나눠주는 등 안간힘을 썼으나 별 도움되지 않았다.





도시락도 나누어 주었으나, 너무 추워 목구멍에 넘어가질 않았다.

먹다 말고 덮었는데, 정용성씨가 자기 도시락까지 먹으라며 안겨주었다.

그 추운 가운데도 다들 부스마다 돌아다니며 자질구레한 경품 받느라 바빴다.

가져간들 다 쓰레기에 불과 할 텐데...





복지에 대한 바램을 적어 나무에 메 달면 휴대용 칫솔을 주거나,

뺑뺑이를 돌려 해당된 항목의 프레임을 들고 사진을 찍으면 조그만 견과류를 주는 식이었다.






새파랗게 경직된 이성 구로구청장의 모습도 보였다.

오죽하면 무대에 오른 박원순 서울시장의 인사말도 간단했다.

서울의 복지정책을 알리기 위해 어제 밤에 잠 안자며 두 시간 동안 쓴 원고지만,

이메일이나 다른 방법으로 전해주겠다며, 인사만 하고 내려갔다.






이번 박람회는 서울시와 25개 자치구의 대표적인 복지정책을 내놓았다.

양천구는 50대 이상 남성 고독사 방지와 자존감 회복을 위한 프로젝트를 홍보하였고,

중구는 쪽방촌 공동사업장 ‘꽃피우다’를 소개했다.





광진구는 일과 육아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자녀동반근무제 키즈룸’을 내 놓았다,

그 외에도 복지 관련 협회, 복지시설, 시민단체들의 다양한 체험‧홍보 부스가 마련되었고, 

복지정책에 대한 법률ㆍ세무상담 서비스도 있었으나 날씨가 추워 제 기능을 못했다.






가수 홍진영씨의 축하공연에 이어 여덟명의 서울형 대표 복지사업 참여자들이 무대에 올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비롯해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청년수당,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등

여덟가지 의 ‘복지 이야기’로 다양한 체험 사례를 들려주었으나, 쇠귀에 경 잃기였다.






‘이제 말로 하는 복지정책은 집어치우고, 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정책을 펴라“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쪽방주민자치회의가 지난 4월7일 오후5시, ‘동자희망나눔센터’ 2층에서 열렸다.
이날은 쪽방주민자치회의 위원장을 선출하는 자리라, 정선에서 하던 일 중단하고 상경했다.
누가 맡느냐에 따라 주민들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보수 봉사 직이라 나서는 분들이 많지않다.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라고는 김병택씨 한 분이었는데,
그 분은 연세가 많아 적극적인 봉사가 어렵지만, 상담소 편을들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민자치회의를 끌어 갈 사람은 항상 주민 편에 서야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김장수씨가 김병택씨 선임에 제동을 걸었다.
“추천된 분이 좋은지 아닌지를 묻는 무기명 투표를 하자”는 것이었다.
찬성이 많으면 넘어가지만, 반대가 많으면 다시 추천받아 선출 하자고 했다.
그리고는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젊은 김만기씨를 추천한다고도 말했다.

맞는 말이다. 회의장에 불과25명밖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다들 주민자치에 관심가진 분들이라, 그 들의 의견을 들어야 했다.
이배식씨는 ‘권위나 경륜 있는 김병택씨가 되어야 한다’했고,
김장수씨는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서로 주민들의 동의를 구했다.

주민 투표를 실시한 결과 김병택씨를 찬성하는 표는 9표, 반대 표가 14표로 김병택씨가 신임을 얻지 못했다.

무효표도 두 장 나왔는데, 동그라미를 쳤다가 다시 액스 표를 쓴 것도 있고, 이름을 적은 표도 나왔다.

그런데 이해 되지 않는 것은 투표에서 떨어 진 김병택씨가 화를 버럭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린 것이다.

“신청자가 한 사람 뿐이면 그대로 해야지 왜 투표를 하냐?”는 것이다. 이게 무슨 공채하는 자리인가?

주민들의 대표를 뽑는데, 어찌 주민들의 의견을 묻지 않을 수 있겠나?

그리고 대가 없는 봉사 직에 목맬 일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열심히 하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것이 어른으로서 도리다.
쪽방주민자치회의 위원장 투표는 다음 달 자치회의로 미루어졌다.


상담소 직원은 필요 없는 물건과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는 물물교환장터를 연다는 공지를 했다.

사실, 필요 없는 물품들이 지원되어 비좁은 방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어떤 물품이 필요하냐고도 물었다. 바퀴벌레약, 모기장, 메트 등 몇몇 요구가 있었지만,

그 몇 사람 요구로 천여 명이나 되는 전체주민의 뜻을 수용할 수 있겠나?

진정으로 주민들에게 도움주고 싶으면 직원들이 회람을 돌려 몇 가지 정도의 물품을 신청 받아 합리적으로 택하던지,

아니면  예산에 맞는 상품권을 지급하여 주민들이 필요한 것을 구입하도록 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매일 아침 우유 한 팩 배달해 드리는 것보다 더 고마운 일은 없을 것이다.

다들 몸이 불편하여 잘 나오지를 못하니 먹는 것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좀 더 주민들의 실생활에 다가가는 실질적인 행정을 펼쳐주기 바란다.


주민들에게 물품을 지급할 때도 시간을 정해 줄 세우지 말라고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시정되지 않고 있다.

몸이 불편하여 나오지 못하는 분들도 많은데다, 보기에도 좋지 않고 주민들을 타자화하여 자립심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소량으로 보내오는 물품 때문이라지만, 물품내용에 불문하고 주민번호 대로 차례대로 돌아가며 지급하면 된다.

줄을 세우게 되면 받는 사람은 계속 받지만, 몸이 불편하여 게시물을 보지 못한 분들은 번번히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물품을 어디에서 얼마만큼 지원되었는지도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보내는 분들의 고마운 뜻을 알아야 할 주민의 권리가 무시되기도 하지만, 그런데서 비리가 생기는 것이다.


모든 일을 주민측 입장보다 상담소 편한 대로 진행하고 있는데, 도대체 상담소 직원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 날은 ‘서울역쪽방상담소’소장이라는 정수현씨를 처음으로 소개했다.

내가 동자동에 온지 육 개월이 넘도록 '서울역쪽방상담소'나 자치회의장을 여러차레 찾아 다녔지만 처음 보았다.

단상에 나와 그동안 몸이 불편했다고 한다.


비참하게 생활하다 홀로 비명에 돌아가시는 주민이 많건만, 그들은 아예 손놓고 있다.

손 놓은게 아니라 주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니, 알리가 없다.
언제까지 주민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이 따위 탁상행정을 계속할 것인가?
이 또한 우리사회에서 청산해야 할 적폐인 것을 명심하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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