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588"

 

전시일시 : 2015, 2, 25-3,10

전시장소 : 아라아트센터 2층전시실(인사동)

 

 

-작업노트-

 

이 땅의 환부요 시대의 치부로 일컬어지는 청량리588에도

사람이 살았고 따뜻한 인간애가 흐르고 있었다.

전농동을 기록한 오래된 필름 파일을 뒤적이다 그 소녀를 다시 보았다.

그 녀를 잊은 지도 어언 30여년의 세월이 되었나보다.

그토록 꿈 많은 소녀가 거기까지 가게 된 건, 가난한 부모 만난 죄 뿐이다.
그 때는 나라까지 가난했으니, 시대적 사회적 희생양에 다름 아니다.

당시 한참 고운 이십대였으니 이제 오십대의 아낙이 되었을 게다.
가난 때문에 무작정 상경하여 곳곳을 떠돌다 결국

사창가까지 오게 되었다며 슬피 울던 그녀의 눈망울이 아직도 선하다.

몸은 망가져도 끼니 걱정하지 않고 집에 돈까지 보내 줄 수 있어나,

구더기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의 멸시를 견딜 수 가 없었다고 했다.

 

그들도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다.

가엽다고 동정하지도, 몸 판다고 천대하지도 마라.

동등한 사람으로 함께 사는 깨어난 세상을 바라며 이 사진들을 내 놓는다.

 

그리고 세월에 묻혀 간,

그 시절 장면 장면들은 우리 사회사의 중요한 기록이고 역사다.


2015. 2
조문호

 

 

 

'그리움의 연서' 해설 중에서

 

조문호의 사진이 따뜻한 것은 그가 그 대상을 따뜻하게 바라보아서만은 아니다. 대상이 되는 그들이 그를 따뜻하게 바라보아서이기도 하다. 좋은 사진은 사진가와 대상의 교감에서 나온다는 그 명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이란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이란 순간적 찰라를 포착하는것이 아닌 사진가와 대상의 교감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함이다. 사라져 가는 것을 기록하는 것, 사람사는 세상을 기록하는 것, 무시당하고 소외당하는 작은 이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조문호의 ‘청량리588’은 바로 사라져 가는 작은이들의 세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그런데 정작 조문호의 ‘청량리588’이 다른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과 다른 것은 사진가가 그들의 소외된 삶을 도구로 삼아 소외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를 말하려 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우리’와 같은 사람을 말하려 하는 사실에 있다. 감히 사회를 위해, 역사를 위해,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는 웅변이 아니다.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눌변, 그것이 조문호 사진의 완성도를 높이는 힘이다.

-이광수 : 사진비평가-

 

 

-전시장 스케치-

 

 

 

 

 

 

 

 

 

 

 

 

 

 

 

 

 

 

 

 

 

 


                                                                                                    

 

-전시 작품-

 

 

 

 

 

 

 

 

 

 

 

 

 

 

 

 

 

 

 

 

 

 

 

 

 

 




 

[MBC 잠깐만 캠페인]

 

지난 3월9일부터 15일까지 방송되는 'MBC 잠깐만 캠페인'에 전국5일장 순례기의 저자 정영신씨가 방송합니다.
하루에 다섯 번씩 방송되는 ''MBC 잠깐만 캠페인'에 많은 관심바랍니다. 아래는 캠페인 일정과 방송내용입니다.

 

 

[MBC 잠깐만 캠페인1] 장터는 움직이는 인생 박물관 / 3월 9일 월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어느날 부턴가 무작정

푸근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우리네 장터를 순례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의 5일장을 다니며

소중하지 않은 만남은 없었는데요,

 

경기도 강화 풍물장에서 오랫동안

음식을 팔아오신 할머니가 그러시더군요.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지만,

이 일을 하고 있으니 내가 사는 거‘라구요.

 

장터에는 쉬지 않는 삶이 있고,

돈보다 귀한 사람살이의 정이 숨어 있는

움직이는 인생 박물관이나 다름 없습니다.

 

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2] 정 없는 장은 장도 아니다. / 3월 10일 화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요즘 많이들 가는 대형 할인점과는 달리

장터에서는 물건보다 사람이 중심입니다.

 

흥정을 하고 덤을 주고 받을 때도

정이 뚝뚝 묻어나는데요,

시골 장은 상품도 사고 팔지만,

훈훈한 인정도 함께 나누는 곳이죠.

 

어느 장터에서나 들리는

가장 우렁찬 소리는 뻥튀기 가게의

‘뻥~’하는 소리인데요,

이웃과의 정도 정감어린 이 소리에 맞춰서

더욱 커지고 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3] 글쓰는 할머니 / 3월 11일 수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몇 해전, 진해 경화장터에서

야채 파는 전찬애 할머니를

처음 만났습니다.

 

장사를 하다 말고 할머니는

종이에다 뭔가를 열심히 쓰셨는데요,

알고보니, 어린 시절부터 장터에서 일하며

힘들 때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글을 쓰면 신기하게도 힘이 났다고 해요.

 

평생 장-돌뱅이로 살아온 분들 중에

숱한 고비를 지혜롭게 이겨낸 경우가 많은데요,

그 분들의 생생한 장터 인생 이야기에서

세상 살이를 배워봅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4] 사람을 만나러 장터에 나오다 /  3월 12일 목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하루는 충북 진천장에서

홍시감 몇 개를 가지고 나온

할머니에게 여쭤봤어요.

'할머니, 이거 팔려고 장에 까지 나오셨어요? '

 

할머니는 ‘그냥 사람들 보고 싶은 마음에

나와봤어~~‘ 하시더라구요.

시골 장터에는 장날이 유일한 외출이고,

장에 나와야 친구 얼굴이라도

볼 수 있다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누군가와 얼굴 보는 일보다는

문자나 전화에 익숙해져가는 시대지만,

장터 곳곳에서는 늘 반가운 만남의 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5 정도단 할머니 / 3월 13일 금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노래와 춤이 취미라는

정도단 할머니를 만난건

전남 진도 오일장에서 였습니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손을 펼쳐 보이셨어요.

한 평생 맨손으로 칡을 캐는 바람에

거친 갈퀴손이 됐지만,

어머니로써 부끄럽지 않은 손이었죠.

 

우리네 시골 장터는 정 할머니 처럼

고단한 삶을 묵묵히 살아낸 이들의

땀과 눈물이 보석같이 빛나는 곳입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6] 어릴적 장날은 축제날 / 3월 14일 토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시골에 살던 어린 시절,

장날은 그야말로 축제의 날이었어요.

 

하얀 고무신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동네 어르신들 뒤로

장에 따라나설 때면,

얼굴엔 늘 웃음꽃이 피었는데요,

 

5일 마다 열리는 시골장의 정겨움은

소소한 일상에서 만나는

달콤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나봅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MBC 잠깐만 캠페인7] 시골 장터의 봄날 풍경 / 3월 15일 일요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저자 정영신

 

안녕하세요? 전국 5일장 순례기를 쓴 정영신입니다.

 

시골 장터에서는 봄소식을

봄꽃이 아닌 봄나물이 전해줍니다.

 

추운 겨울을 견뎌낸

원추리와 돌나물, 씀바귀...

이런 것들로 봄날 장터에는

봄나물 향기가 가득하지요.

 

겨울에 들렀던 경기 안성 5일장에는

봄나물을 캐 둘테니

봄에 꼭 다시 오라는 인정 많은

할머니도 계셨는데요,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봄나물 향기 맡으러 시골 장터로

향해봅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청량리588'전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지난 5일에는 시인 강 민, 이행자씨, 서양화가 김영덕, 박불똥씨, 미술평론가 박용숙씨, 무이도 예술촌장 정중근씨,

'예당국악원' 조수빈원장, 오마이뉴스 박 건 시민기자, 전통염색인 이명선씨 등 많은 분들이 다녀갔지만,

다른 개인전 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사진가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사느라 바쁘고, 일하느라 바빠,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사우들을 요즘 이산가족 만나 듯 만난다.

그동안 사는 곳은 물론 전화번호까지 몰라 연락주지 못했으나, 어떻게 알았는지 모두들 찾아 온다.

지난 7일에는 대전에 사는 이석필씨와 그의 조카 이주영씨를 비롯하여  박옥수, 양재문, 신동필,

유성준, 최영규씨를 만났고, 사진평론하는 최건수씨는 많은 아마츄어 사진인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지척에서 룩스갤러리를 인수하여 운영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늦은 시간에는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가  엄상빈, 이젬마, 김지연씨를 모시고 와 즐거운 주연을 가졌다


 

 

 

 

 

 

 

 

 

 

 

 

 

 

 

 

 

 

 

 

 


 

청량리 588’.

조문호 지음|이광수 해설|눈빛|136쪽|1만2000원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 그곳에 있던 사창가의 별칭이었다. 청량리역 주변이어서 그렇게들 불렀다.

사진작가인 저자는1984~1988년 이곳에 살면서 그곳 ‘삶’을 앵글에 담았다.

처음에는 사진기를 들이대다가 따귀도 맞았고, ‘어깨’들에게 몰매를 맞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 아가씨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인간’으로 대하는 사진가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미소까지 지었다.

그렇게 한컷한컷 찍힌 사진들은 ‘사창가’ 하면 먼저 떠오르는 선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거기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전한다. 이광수 부산외대 교수는 이렇게 해설을 붙였다.

“사진가 조문호는 사람을 일로 보지 않았고 시공간 속에 살던 사람을 보았던 것이다. 누구는 부모 잘 만나 공주로 지내던 시절, 누구는 구로공단에서 기계보다 더 기계 같은 공순이로 살고, 누구는 588에서 창녀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현실 속 사람을 보았다. 멀리 시골에서 돈 한 푼 없이 올라온 후 가난한 부모와 동생들 먹여 살리기 위해 별의별 일 다 해 보다가 결국 이곳으로 흘러 들어와 삶을 꾸역꾸역 이어 가는 사람들이다. 어깨 위에 놓여진 가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는 그 청량리역과 닮은 삶이다.”

 

▶1980년대, 아직까지 이곳은 금붕어 어항 같은 유리방이 아니었다. ‘신흥 여인숙’이란 간판 아래 나란히 앉은 여인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다.

 

▶침침한 뒷골목, 전등 아래 다리를 꼬고 앉은 여성의 모습에서 삶의 비릿함이 느껴진다.

 

▶해가 나면 이곳도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다. 가게 일을 보는 사람, 삼삼오오 모여 잡담하는 사람, 종종걸음으로 제 갈 길을 가는 사람.

처마 밑 고드름이 밤새 추위를 말해준다.

 

▶날이 채 풀리지 않았던가 보다. 햇살은 환하지만 두 발은 연탄화덕에 바짝 다가가 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세탁소 간판이 정겹다.

 

▶까만 밤 환한 불빛 아래 원피스를 차려 입은 여성이 문 밖 행인을 향해 추파를 던진다. 이번엔 통할까.

행인이 이미 지나쳐 온 앞 가게 여성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늦은 밤 문을 연 야식 리어카 앞에서 호객이 한창이다.

저자는 “가난이 지겨워 무작정 상경해 돈을 벌려고 곳곳을 떠돌았지만, 결국 사창가까지 떠밀려 오게 되었다며

슬피 울던 정숙이의 고운 눈망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면서 “세월에 파묻혀 간,

그 시절 장면 장면들은 우리 사회사의 중요한 기록이고 증언이며 역사였다”고 썼다

 

골목 둘러보기, 국밥 먹어보기 등 30년간 시골장터를 기록한 정영신씨가 말하는 장터에서 할 일

“이 물건 안 사가면 후회해유. 많이 줄게 들어가유.”(충남 예산장)
“맵고 달삭한 맛이 없고 너무 싱겁데이. 고치를 덜 말린나. 좀 꼬꼬부리하네.”(경남 합천장)

“아따 성님, 내가 언제 속입디여. 조까 믿으씨요.”(전남 함평장)

“물이 좋쑤과. 1킬로에 얼마우꽈.”(제주 모슬포장)

정영신(58·사진 오른쪽)씨는 30년간 시골장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소설가다. 전국 522개 장터를 빠짐없이 훑고 다녔던 그는 지난 1월 포토에세이집 <전국 5일장 순례기>를 펴냈다. 사진집 <한국의 장터>(2012)의 후속편인 이 책에서 장씨는 장터를 중계하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책 출판에 맞춰 남편 조문호(69·사진 왼쪽)씨와 함께 사진전 ‘장에 가자’를 연 정씨를 2월9일 서울 중구 인사동 아리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두메산골 주민을 찍던 남편은 9년 전부터 ‘운전기사’를 자처하며 정씨와 함께 장터를 돌아다니고 있다.

장보따리는 가방으로, 유모차로 바뀌고

장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1987년. 1년간 장터에서 “할매들과 놀다”가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어릴 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함평장이 열렸다. 엄마 따라 오일장에 가곤 했는데 그 추억이 아련했다. 신춘문예에 자꾸 떨어져서 사람을 더 알아야겠다, 깊이 소통해야겠다 싶어 장터로 향했다.” 그렇게 1년간 장터를 훑다보니 ‘변화상’이 눈에 들어왔다. 컬러텔레비전이 시골에까지 보급되면서 장꾼의 옷차림, 머리 모양이 바뀐 것이다. 그 모습을 정씨는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인사동 암실(지금의 스튜디오) ‘꽃나라’와 동아리 ‘진우회’를 오가며 사진을 배운 터였다.


변화상은 30년간 이어지고 있다. 할머니들이 장보따리를 이고 다니다 점차 가방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유모차에 싣고 다닌다. 장옥도 달라졌다. 난장이 줄어들고 번듯한 건물이 들어섰다. 그러나 장꾼은 반기질 않는다. “공무원들이 새 장옥으로 몰아넣어도 할머니들이 (시멘트가) 썰렁해 들어가질 않는다. 겨울에는 양지바른 곳에서 몸을 녹여야 하는데…. 오히려 역효과다.” 조씨가 말했다. 정씨는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장에 나오는 물건이 이 장이나 저 장이나 비슷해진 것을 아쉬워했다. 또 힘의 논리를 절감할 때는 엉엉 울기도 했단다. “20년간 장터의 명당 자리를 지키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바구니와 빗자루 등을 만들었는데 햇볕 잘 드는 곳이라 이웃 장꾼들이 어우러져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느 날 가보니 낯선 트럭이 그 자리를 차지했더라. 힘있는 자들이 할아버지를 내쫓아버린 거였다.”

안 돼요, 툭툭 건드리며 ‘이거 중국산이죠?’

그래도 전통과 인정을 맛볼 수 있는 장터가 아직은 남아 있다. 충남 예산장, 경남 합천장, 경북 경주 건천장, 전남 함평장, 전남 구례 산동장, 제주 모슬포장 등이 그렇다(상자 기사 참조). 장씨는 몇 곳은 10번도 더 가봤다고 했다. “석류를 맛있게 먹던 모습을 기억하고 할머니가 석류를 챙겨놓고 기다린다. 그 따뜻한 정이 그리워 발길이 자꾸 간다.”


가볼 만한 시골장터
주변 모든 좋은 것이 모여드는 곳

926년 개설된 충남 예산장 쌍송백이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에 펼쳐진다. 평소엔 주차장으로 쓰다가 장날이면 할머니들이 보따리를 풀어 난장을 꾸민다. 보따리에선 가을에 수확한 콩과 말린 나물이 쏟아진다. 파라솔도 계절마다 설치가 달라진다. 겨울에는 파라솔이 누워 바람막이로 쓰였다가 여름에는 일어나 햇살을 가린다.

 

경남 합천장에는 없는 것이 없다. 보리, 콩, 참깨, 들깨 등의 곡식을 비롯해 무, 배추, 고추, 양파, 마늘, 수박, 우엉, 토란, 감자에서 백작약, 구기자, 질경이, 당귀 같은 약재까지. 이 모든 것이 인근 마을에서 재배돼 장터로 흘러 들어온다. 예전엔 인근 늪지대에 사는 여인네들이 모두 가물치, 메기, 뱀장어 등 민물고기를 이고 와 팔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 수가 줄어들어 몇몇 할머니들만 눈에 띈다.

경북 경주 건천장 전통의 멋과 맛이 그대로 묻어난다. 장옥을 덮고 있는 슬레이트 지붕과 함석 미닫이문은 시간을 거슬러가는, 일부러 만들어놓은 풍경처럼 느껴진다. 장꾼들이 빙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며 고단한 사람살이를 부려놓는, 끈끈한 정도 변함없다.

 

전남 함평장은 100년이 넘었다. ‘두루 평평한 땅’이라는 이름 그대로 산지보다 평야가 많아 지역 특산물과 농산물이 넘쳐난다. 함평만에서 잡아온 수산물과 축산물도 거래된다. 함평장 뒤에는 육회비빔밥집이 즐비하다. 그날그날 들어오는 신선한 재료만을 이용한단다.


1956년 7월에 개설된 전남 구례 산동장 2일과 7일에 열린다. 구례장의 한 귀퉁이밖에 안 되는 조그만 장이지만 산수유를 수매하는 12월 초부터 1월까지는 성시를 이룬다. 산동면 58개 마을이 새벽부터 갖고 나온 산수유 때문이다. 산동은 전국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로, 1천 년 된 산수유 나무도 있고 생산량도 전국의 74%를 차지한다. 장에 나온 사람들은 “어째, 산수유 많이 땄는가?”로 시작해 “많이 따이소”로 인사를 끝낸다. 산동장은 오전 10시가 넘으면 서서히 파하기에 ‘파싹장’이라고도 불린다.

 

제주 모슬포장 공식 이름은 대정오일장이지만 모슬포장으로 더 유명하다. 제주답게 귤이 종류별로 나와 있고 자두며 복숭아, 참외, 수박 등 색색의 과일들이 화려하다. 어물전에선 갈치가 은빛을 뽐낸다. 장터 머리에선 바다가 보인다. “어디 감수꽈?”(어디 가십니까?)로 표현되는 구수한 제주도 사투리에서 토속적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장터에서 꼭 해야 할 것을 물었다. 장씨는 첫째, 할머니들과 눈을 맞추며 얘기하라고 권했다. “봄 장터에 가면 할머니가 캔 봄나물이 나와 있다. 3천원어치 쑥을 사면서 ‘참 예쁘게 다듬었어요’라고 칭찬해보라. 덤은 물론이고 첫사랑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 둘째, 골목을 둘러보라. 장터에 가면 흔히 큰길만 훑어보는데 고유한 특색은 뒷골목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골목을 둘러보며 그들만의 일상을 엿보는 것과 비슷하다. 셋째, 국밥 먹기.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식재료로 장터에서는 국밥과 밑반찬을 만들어 값싸게 내놓는다. 국밥집은 보통 장날과 장이 열리기 전날만 연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그날이 되면 장꾼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막걸리 잔을 부딪친다. 놓칠 수 없는 장터 현장이다.

장씨는 장터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설명했다. “툭툭 건드리면서 ‘이거 중국산이죠?’라고 묻지 마라. 그렇게 무례하게 굴면 자긍심이 강한 장꾼들이 크게 화낸다. 그들은 갖고 나온 물건이 얼굴이고, 장터가 살아온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이끌려 장씨는 30년간 장터를 들락거렸다. “장터는 사람과 물건이 만나는 곳이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세월과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느끼는 끈끈한 감정은 그대로다.”

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청량리588' 사진전을 준비하며, 25년 만에  다시 홍등가를 찾았다.

사 반세기가 지났으나 588의 골목과 집들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신기했다.

곳 철거 된다기에 서 너 집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는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단지 입구만 일률적인 샤시 문으로 교체되었고, 대기실에 앉은 여인들의 패션이 파격적일 뿐이었다.

잊었던 긴 세월을 후회하며, 남아있는 골목 풍경들을 하나 하나 기록했다.

 

전농동 588번지 일대 업소는 오히려 그때보다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업소 문은 걸려 있었고,
간혹 임대한다는 글귀가 유리창에 붙어 있기도 했다.  

 

‘아라아트’ 휴관일을 맞은 지난 2일,  ‘주간동아’의 현장 인터뷰 요청으로 다시 들렸다. 

가슴을 겨우 가린 브래지어와 엉덩이 골이 훤히 보이는 짧은 팬츠를 입고 앉은 여인들이

지나치는 이들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끌고 온 60대 초반의 아저씨가 일을 치룬 후, 아가씨의 배웅을 받기도 했고

선그라스를 놓고 나간 20대의 청년을 아가씨가 불러 세우는 등, 홍등가 풍경은 여전했다. 
 
“65층 주상복합 건물이 이 자리에 들어서면 어디로 갈 것이냐?”고
손님을 기다리던 성노동자에게 물어 보았더니,
“아저씨! 이곳은 절대 없어지지 않아요.” 우리가 끝까지 지킬 거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힘의 논리에서 버텨낼지 모르지만, 마지막 그 날까지 기록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정권 때 성매매 특별법을 시행하면서 성매매를 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백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고 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성적 파트너를 구하기 어려운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등

성적 소외자들의 해소 공간을 막아버리면, 성범죄만 더 늘어나게 된다.

'풍선효과'만 낳은 성매매 특별법 이후 성매매 수법과 장소도 더욱 교묘해졌다.

 오피스텔 걸, 안마방, 키스방 같은 변종 업소들이 더욱 성행하고 있다.

 당시 성 노동자를 강력하게 단속하던 김강자 종암경찰서장도 마지막엔 공창제를 부르짖지 않았던가.

최근 '성매매 특별법'이 헌법재판소의 도마 위에 올랐는데, 헌재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린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28일 오후 6시 30분, 사동집에서 조문호사진집 ‘청량리588’ 출판기념회가 조촐하게 열렸다.

최혁배변호사, 경기도미술관장 최효준씨, 만화가 박기정, 박재동선생, 가수 최백호, 시인 김신용,

조준영, 김명성씨, 서양화가 신학철, 장경호, 서길헌씨, 행위예술가 임경숙씨, 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부부,

사진가 김보섭, 곽명우, 고 헌, 정철균씨, 홍성식, 임경일, 강선화, 공윤희씨 등 50여명이 모였다.

연이은 전시라 메시지 외에는 별도의 통지를 하지 않아 50여명 밖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인공이 일찍부터 술이 취해 모임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출판기념회에 책도 꺼내놓지 않아 출판기념회가 아니라 술판기념회가 되어버렸다.

 

 



‘청량리588’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인사동 ‘아라아트’는 연일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19세 이하는 입장이 안 돼 어린이의 손을 잡은 가족들은 볼 수 없으나,
‘588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가진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이 모여 삼삼오오  들린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사진가들이 많이 다녀가시는데,
지난 28일에는 사진가 육명심, 한정식선생께서 일찍부터 들리셨다.
박진영씨와 어울려 오찬을 함께하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오후에 오신 사진가로는 전민조, 김보섭, 정철균, 이혜순, 김남기,
김종신, 정강기, 국수용, 류종민, 고 헌, 곽명우, 신동필, 은효진, 김종현씨를 비롯하여,
미술평론가 박영택씨,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와 안미숙 편집장 내외 등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