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찬 서울역광장에 노숙인 텐트촌이 만들어졌다.

코로나 감염을 걱정하여 인근 교회에서 제공한 텐트지만,

추위와 사투를 벌이는 노숙인으로서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쪽방 있는 사람이야 온 종일 티브이를 끼고 살지만,

티브이 없는 노숙인들은 텐트 안에서 뭘 할까?

밤 낯으로 잠만 잘 수야 없지 않은가?

 

신참 노숙인이야 핸드폰이라도 들여다보지만,

핸드폰 없는 오래된 노숙인들은 우두커니 멍 때린다.

마치 알 낳기 위해 둥지 안에 똬리 튼 암탉 같다.

 

노크 대신 헛기침하며 텐트 지프를 열어보니,

누가 먹을 것이라도 주는 줄 알았는지, 실망한 눈초리다.

정씨에게 담배 한 대 권하며 말문을 텄다.

 

집 한 칸 생겼다고 좋아 했으나, 짐을 다 넣을 수 없어 일부는 버렸단다.

기초생활수급 혜택 받아 쪽방에 들어가면 다 필요한 물건이란다.

 

정씨야 가족관계가 정리되어 노숙 신세를 면한다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정의 노숙인이 너무 많다.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것만도 서러운데, 더 이상 사지로 몰지 마라.

 

대선 후보들이 온갖 공약을 쏟아내고 있으나,

벼랑에 선 노숙인을 위한 공약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입이 마르도록 뱉어대는 공정과 평등이란 게 이런 것이더냐?

.

사진, 글 / 조문호

 

 

노숙인 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시기가 한겨울보다 갑자기 추워지는 이때다.

갈아입을 방한복은 물론 내복조차 없으니, 온종일 바들바들 떨며 지낸다.

 

세상살이 고달프다지만, 노숙인보다 더한 사람이야 있겠는가?

추위를 이기려고 술을 찾게 되고, 술이 술을 마셔 다들 제 정신이 아니다.

술 때문에 노숙인 임시대피소에도 들어갈 수 없는데,

저러다 길에서 얼어 죽지 않을까 걱정이다.

 

요즘 들어 노숙하는 이들의 새로운 풍속도가 생겼다.

노숙의 길로 들어 선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다 버려도 못 버리는 것이 바로 핸드폰이다.

어디 연락할 곳이 있어서가 아니라 게임에 중독되어서다.

 

그러니 핸드폰을 꺼트리지 않으려면 충전할 곳이 필요해

충전 연결코드가 있는 지하도 요소요소에서 온종일 죽치는 것이다.

그런데, 핸드폰 사용료는 어떻게 마련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이야 지하도에 머물러 추위도 덜한데다,

알콜에 중독되어 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노숙인 보다 백배 낫다.

다들 자리 뺏기지 않으려고 한 자리에서 버텨

지나칠 때 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도대체 밥도 먹지 않고 화장실도 안 갈까?

 

하기야! 페이스북에 중독되어 하루 종일 핸드폰을 끼고 사는 세상에

그들인들 핸드폰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죽음의 골자기로 내몰린 노숙인을 걱정하는 정치인들은 왜 없을까?

복지공약을 밥 먹듯 쏟아내는 대선후보들이

노숙인들의 추위를 보살피려는 아량은 왜 베풀지 못할까?

당사자들 표야 없겠지만, 나라도 그런 후보에게 한 표 줄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월요일 오후엔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쪽방 거지는 걱정할 것 없으나 길거리 사는 거지는 지랄 같다.

이불 삼은 종이 박스도 젖어버리지만, 몸 젖는 것보다 마음 젖는 것이 더 서럽다.

노숙인들이 비 오는 날, 술을 더 많이 마시는 이유다.

 

다들 비 피할 곳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누군가 랩처럼 비닐을 몸에 감고 버티는 자도 있었다.

깡다구로 버티는 것일까? 아니면 움직일 기력조차 없는 것일까?

무슨 천형의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으로 살아야 할까?

 

 

그래도 지은이는 우산을 하나 챙겨들고 서울역광장을 돌아다녔다.

똑같은 노숙자지만 지은이는 낙천적으로 산다.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불평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 옷이 그 옷이지만 나름대로 바꿔 입어가며 멋을 엄청 부린다.

 

만들어 주기로 한 시진을 준비하지 못해 일부러 눈 마주치기를 피했으나

멀찍이서 보고 다가와 사진 찍어달라며 포즈부터 취해준다.

다음엔 꼭 사진을 뽑아오겠다고 변명했더니,

밀린 사진이 석 장이라며 찍은 회수까지 기억했다.

 

지하도를 건너오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 인사를 한다.

그는 마스크 쓴 나를 알아보는데,

나는 마스크도 쓰지 않은 그를 왜 기억하지 못할까?

치매 환자라며 이름이 뭐였더라고 머리를 조아리니,

박완호예요 박완호라며 어이없어한다.

 

그런데, 자칭 인사동 광대라는 자가 서울역엔 어떻게 진출했나?

하기야! 나 역시 인사동 찍사가 서울역 부근에서 놀지 않는가.

서울역광장은 거지들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동자동으로 건너와 공원에 갔더니, 젖은 땅에 앉아 여럿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누군가?

근 일 년 가까이 종적을 감추었던 유정희가 나타난 것이다.

너무 반가워 젖은 자리에 끼어 앉았는데, 그동안 감방에서 몸조리하고 왔단다.

싸움판에 끼어 덤터기를 썼다는데, 폭력전과 별까지 달았다며 씁쓸해한다.

 

사진사용 동의서를 받기 위해 일 년 가까이 서류를 갖고 다녔는데

원고 마감하고 나서야 나타났다며 안타까워했더니,

형님! 우리 사이에 그런 게 뭐 필요합니까?”라며 오히려 섭섭해한다.

 

나 역시 그의 말처럼 찍힌 사람들에게 사인받으러 다니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만약 찍힌 사람이 고소를 해도 이왕 단 별, 몇 개 더 단다고 나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출판사 등 제삼자에게 줄 피해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위의 충고를 외면할 수 없었다.

노숙하는 친구들은 머무는 곳이 일정치 않아 만나지 못하면 부득이 사진을 뺄 수밖에 없었다.

 

출감기념으로 소주 두 병 사 와서는 빗물에 칵테일해 마셨다.

그런데, 건너 자리에 있던 상일이가 내 옆으로 옮기더니 말을 붙인다.

다들 나에 대한 호칭을 형이나 어르신 아니면 사진작가라 붙이는데, 이 친구만 늘 사장님이라 부른다.

~ 배도 안 나오고 이래 삐적 말라빠진 사장이 어딧노?”라며 싫어해도 자기는 그 말이 편하단다.

 

오래전 상일이가 나온 사진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아는 친구가 그 내용을 찾아주어 보았다는 것이다.

결론은 어려운 처지를 알려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인들은 노숙하는 친구를 범죄자처럼 피하지만,

이야기를 해 보면 다들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다.

이 야박한 세상에 착하게만 사니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한 자리에서 끝장을 보지만, 몸이 축축해 더 마실 수가 없었다.

쪽방에 올라와 옷부터 갈아입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는 중에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가짜 미투로 독박 쓴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최효준씨가 쪽방을 방문하겠다는 것이다.

달짝한 복분자 술을 한 병 사왔는데, 부족한 알콜 농도는 복분자로 보충했다.

 

사진, / 조문호

 

 

 

서울역광장에 머무는 노숙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노숙인 단속반이 들이닥쳐 외곽으로 쫓겨나야 했다.

단출한 짐을 가진 노숙인들은 잠깐 외곽으로 옮겼다 다시 자리잡으면 되겠으나

짐을 많이 가진 김지은씨만 피박을 썼다.

 

서울역광장에서는 제일 오래된 고참이지만 단속하는 경찰 앞에는 찍 소리도 못했다.

많은 짐이 모두 쓰레기봉지로 들어갔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심지어 라면 담긴 봉지마저 집어넣자 그것만은 간신히 돌려받았다.

단속반이 사라지면 또다시 하나하나 주워오겠지만, 그 시간만큼은 말끔하게 치워졌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노숙자가 노숙자에게 갑 질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힘센 노숙자가 누워있는 노숙자에게 일어나라며 지팡이로 후려치자 지팡이를 잡고 통사정 한다.

단속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행동인지 모르지만, 권력자에 빌붙는 완장부대가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단속하는 경찰 역시 완장부대에 다름 아니다.

그런 완장부대의 잔재는 노숙자들 뿐 아니라 쪽방촌에도 종종 볼 수 있다.

쪽방상담소 일 돕는 자들의 갑 질은 물론 심지어 모범방범대 마저 그런 우월감이 묻어난다.

독버섯처럼 사회 곳곳에 기생해 온 완장부대의 잔재가 아닐 수 없다.

 

완장부대란 말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지만 꽤 오래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의 홍위병들이 찬 완장은 사람 죽이는 완장이었고,

일본 놈들에게 빌붙어 온갖 만행을 저지른 일제의 완장부대는 물론, 한국전쟁 때도 완장이 설쳤다.

 

대개 완장 찬 사람은 건달이 많았는데, 완장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었다.

완장을 채워준 권력자의 뒷배를 믿고 갑 질을 해대는데,

옛말에 때리는 서방보다 말리는 시어머니가 더 밉다는 말이 있듯이

권력자보다 그 밑에 빌붙은 완장부대가 더 미운 것이다.

 

한국사회는 완장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쩡한 사람도 완장만 차면 눈에 뵈는 것이 없어진다.

문제는 권력자가 자신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으로 완장을 채워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충성을 위해서는 정의나 법도 따지지 않는다.

 

공직도 하나의 완장에 가깝다.

완장을 차면 국민도 안보이고, 나라도 안 보이고 오로지 임명자의 입맛만 맞춘다.

정권마저 완장을 채워주는 자들과 완장을 차는 사람으로 구분될 뿐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완장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평등이고 공정이고 말짱 공염불에 불과하다.

 

사진. / 조문호

 

다들 찌푸리고 사는 동자동 쪽방 촌에도 늘 행복하다는 이가 있다.

서울역 주변을 떠돈 지 10년차인 위씨(66세)인데, 그는 개미보다 매미의 팔자를 타고 났다.

 

지난 9일 깊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서울역광장에 나갔다.

쪽방과 달리 시원한 바람이 불어 가을의 향취가 묻어났다.

노숙인들은 총 맞은 병사처럼 여기 저기 쓰러져 자고 있었다.

 

그중에는 내외간인지 남녀가 같이 누워 자는 이도 있었고, 한 할머니는 그때까지 자지 않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붓이 아니라 여러 자루의 볼펜으로 반복적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는데, 얼마나 힘차게 그렸으면 스케치북이 닳아 떨어질 정도였다.

궁금증이 발동했으나 저리 가라며 손사래 쳤다. 야심한 밤인데다 여자라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었다.

 

날이 밝으면 다시 찾을 생각으로 돌아서는데, 버스정유장 벤취에서 노래 소리가 들렸다.

오래 전 ‘다시서기’에서 일했던 위씨가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를 부르고 있었다.

너무 반가워 그동안 왜 그렇게 보이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이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쪽방에서 산다며 너무 좋아했다.

 

간섭하는 사람이 싫어, 낯에는 자고 사람들이 잠든 한 밤중에 혼자 나와 논단다.

얼마나 기타를 많이 쳤으면 기타줄 하나는 끊어져 있었다.

이젠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 너무 행복하다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가족으로부터 버림당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족을 버렸다“며

기타하나 들고 나와 떠돈 지가 어느 듯 십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고 한다.

처음엔 대학로 주변을 떠돌았으나 끼니를 해결할 수 없어 서울역으로 진출했단다.

 

천성이 기타 치며 노는 것을 좋아하니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이젠 이가 빠지고 기타 줄마저 끊겨 볼품없는 노래였지만, 멜라니 사프카의 ‘더 새디스트 씽’을 불렀다.

회한이 묻어났다.

 

“난 울지 않겠어. 내색도 하지 않겠어.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할거야“

 

사진, 글 / 조문호

 

오래 전 노숙인 남씨가 인력시장에서 퇴짜 맞고 뱉은 하소연이다.

“씨발~ 노숙하는 놈은 사람 취급도 안 하네.

폐품은 재활용이라도 하는데, 폐품보다 못한 거 아이가?“

억장 무너지는 자학의 말이었지만 맞는 말이다.

 

지난 겨울 서울역에 코로나 확진자가 90명이나 쏟아질 때 남씨도 실려 갔으나

아직 감감소식인걸 보니 아마 고행의 여정을 끝낸 것 같다.

갖가지 지병에다 먹은 것조차 없으니, 살아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부디 저승에서나마 폐품이 아니라 사람대접 받고 살기를 바란다.

 

서울역광장에서 방황하는 노숙자를 바라보는 대부분의 시선은 부정적이다.

“멀쩡한 놈들이 일 안하고 빈둥거린다‘고 나무라지만,

배운 기술도 없는데다 제대로 먹지 못해 힘도 쓰지 못한다.

거기다 행색마저 지저분하니 누가 일을 맡기겠는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들을 위안하는 것은 오직 술 뿐이다.

술을 얻기 위해 구걸하고, 술이 취해 정신 놓는 일이 반복된다.

술마신 자는 노숙인 쉼터를 비롯해 어디에도 받아주지 않는다.

언제 올지 모르는 천국행 열차를 기다리며, 지옥 언저리를 맴돈다.

 

지난 주말의 밤 늦은 서울역 광장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대우빌딩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무색했다.

더러는 패잔병처럼 쓰러져 잠들었고, 몇몇은 가로등아래 둘러 앉아

세상 뒤엎을 음모라도 꾸미는 것 같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다.

 

사진, 글 / 조문호

 

지긋지긋한 더위와 싸워야 하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후덥지근한 바람을 되돌리는 선풍기소리 조차 짜증스럽다.

요즘 같은 더위의 쪽방은 대개 자물쇠가 잠겨있거나 방문을 열어놓고 있다.

 푹푹 찌는 찜통에서 탈출하여 어디선가 노숙하고 있을 것이다.

 

쪽 팔려 노숙은 안 한다는 맞은 편 김응수씨만 곰처럼 버티고 있었다.

코로나만 아니면 지하철이라도 탔으면 좋겠으나, 사람 접촉이 싫어 안 나간단다.

옆방의 최완석씨는 길 모퉁이에 자리 잡았더라.

이런 더위에는 정해진 거처도 없는 노숙자가 상팔자다.

 

몇 년 전에는 쥐가 천장 전선을 갉아 먹어 정전된 적이 있었는데,

더운 바람이라도 돌리는 선풍기가 작동 안 하니 잠시도 견딜 수 없었다.

원인을 못 찾아 낑낑대다 하는 수없이 노숙을 하게 되었는데,

맞바람이 통하는 건물 입구에 자리 깔아 너무 시원했다,

 

그러나 칼잠 자는 습관으로 귀를 땅바닥에 붙여 누웠더니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리가 시끄러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노숙자들이 그 시원한 장소를 탐하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시멘트 바닥에서 잠들어 그런지 그 이튿날 근육통으로 혼이 나,

다음부터 절대 노숙은 하지 않았다.

노숙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더워도 팬티만 걸치고 화장실 물을 뒤집어 써가며 방에서 버텨낸다.

이런 날은 녹번동에서 개기는 게 좋지만, 그 곳은 컴퓨터가 없어 일을 못한다.

사실은 컴퓨터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다 마지막 지하철을 놓친 것이다.

그의 컴퓨터 중독에 가깝다.

 

더위나 식힐 겸 서울역광장으로 나갔다.

자리 잡고 누운 이도 있지만, 광장을 오가며 시간 보내는 자가 더 많았다.

유독 정씨만 성경책을 들여다보고 뭘 옮겨 적고 있었는데,

노트에는 씨알이 될만한 성경구절이 깨알처럼 적혀 있었다.

 

어두워 눈 버린다며 밝을 때 보라고 말했으나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보고 또 보았는지 성경에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했다.

젊을 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 고시라도 붙었겠다고 농담 했더니 빙그레 웃는다.

네가 어찌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알겠냐?는 투다.

 

겨울은 쪽방, 여름은 노숙이라 듯이 요즘은 노숙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그러나 마음대로 눕지도 못하고 계단에 웅크려 자는 여인도 있었다.

무슨 사연으로 거리에 내 몰렸는지 모르지만, 안 서러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산다는 게 도대체 무엇이던가?

김씨는 무슨 꿈을 꾸는지 얼굴을 씰룩거리며 자고,

천씨는 어디 아픈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침이 오면 또 다시 더위와 싸워가며 밥 한술 얻어먹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할 수는 없을까?

 

요즘 뉴스에는 기본소득이니 어쩌니 나팔 불어 대지만,

거리에 내 몰린 노숙인의 생존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는 정치인이 없다.

국민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표를 존중하는 더러운 정치꾼들에게 무슨 기대를 한단 말인가?

누구의 노랫말처럼, 잠자는 하늘 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 광장을 배회하는 노숙인 중에는

세상에서 밀려 난지 얼마 안 된 초보도 끼어있다.

 

아직 세상에 미련이 많아 대개 지하도 구석에서 핸드폰이나 충전하며 시간 보낸다.

어떤 이는 담배 생각에 서울역광장 흡연구역을 맴돌며 담배구걸도 한다.

아무리 담배가 피우고 싶어도 수두룩한 재떨이 꽁초는 손도 안 댄다.

 

그런 초보들은 잠깐 보이다 이내 사라진다.

어딘가 비빌 구석이 생겼거나 일당 주는 일거리 따라 전전할 것이다.

간혹 영등포역이나 사람 많이 모이는 파고다공원 등지를 떠돌다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오는 노숙인도 있다.

 

하루가고 한 달 가는 세월 따라 그들도 하나하나 바뀔 수밖에 없다.

체납된 요금으로 핸드폰도 버리게 되고 등짐도 단출해진다.

그러나 그들이 즐겨 찾는 것은 밥보다 술이다.

 

채움 터에 가면 끼니는 해결할 수 있으니 술을 사기위해 구걸을 한다.

술이 모든 근심걱정을 사라지게 해 주는 마약으로 둔갑한 것이다.

노숙 생활이 알콜 중독자를 양산시킨다.

 

어제는 오전 여덟시 무렵 거리에 나왔다.

낯 시간은 가는 놈이나 있는 놈이나 만나는 것 자체가 짜증스러워서다.

동자동 새꿈공원엔 몇몇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침부터 술을 마셨다.

서울역광장도 술 마시지 않으면 대부분 누워있었다.

 

아직 코로나 검사받을 시간이 되지 않았으나, 대기 줄은 점차 길어지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에 쫓겨 옮겨가기 직전의 서울역광장 풍경이었다.

 

뜻밖의 노숙인을 만났다, 가구점하다 마누라에게 쫓겨 났다는 박씨를 일년 만에 만난 것이다.

너무 반가워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라며 노래까지 불렀다.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꺼내다가 사진 찍지 말라는 손사래에 얼른 집어넣었다.

사진 찍히는 것을 유달리 싫어했던 걸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별 어려움 없이 살았으나, 동료와 아내가 배신했다며 울분을 터트린 적이 작년 봄이었다.

이젠 모든 근심 걱정을 버렸는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얼굴이 편해보였다.

행색은 더 구질구질해 졌으나 그 것은 노숙인의 계급장에 불과하다.

 

그동안 영등포역에서 지냈는데, 고향 친구를 우연히 만났단다.

반가움도 잠시 뿐, 경계하는 눈빛에 속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행여 소문 퍼트려 누가 찾아올까 걱정되어 서울역으로 옮겨왔다고 했다,

그 사이 담배는 끊었고, 술도 서서히 줄여가고 있단다.

 

이 지경으로 만든 동료와 가족에 대한 미움도 이제 사라졌고,

돈에 대한 집착까지 사라지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란 말을 옛날에는 비아냥거렸으나, 이제 사 가치를 알겠다고 한다.

돈이 있으면 돈에 대한 욕심이 더 생기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돈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육신은 불편해도 마음은 편하다며, 세상이치를 환갑이 되어서야 깨우쳤단다.

 

아는 절집에 가서 일이나 도와주고 여생을 보낼 것이라며 웃는다.

자리 잡으면 연락해 달라며 처음으로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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