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은 녹번동에서 개기는 날이다.

만사를 재처 두고 이불 속에 딩구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친구도 싫고 꽃놀이도 싫은 걸 보니 갈 때가 된 것 같다.

 

오후 늦게서야 일어나 먹을 것을 찾는 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조해인 시인이 응암동에서 소주 한 잔 하잖다.

꾀죄죄한 몰골로 나갔는데, 봄바람이 제법 쌀쌀하더라.

 

‘호주방’이란 술집인데, 새로 생긴 술집 같았다.

소주방도 색시방도 아닌 호주방은 또 뭔가?

 

조그만 술집에서 오뎅탕을 안주로 소주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조해인씨는 애늙은이된 박한웅씨 아들 장가 가는 소식을 전해주었고,

김수길씨는 4월9일부터 인사동 ‘마루’에서 개인전을 한다고 했다.

 

그 날의 화두는 젊은시절 놀았던 신촌 방석집 이야기였다.

주머니 탈탈 털렸던 그 때의 끈적한 추억을 건져 올렸다.

빈속에 들이키는 짜리리한 소주 맛에 춘정을 녹였다.

 

사진, 글 / 조문호

봄바람은 코로나도 못 말렸다.

발길 끊긴 동자동 공원이 모처럼 북적였다.

 

살랑대는 봄바람에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확진자가 퍼져 한 동안 갇혀 지냈지만,

다들 음성이라 긴장이 풀릴 수도 있겠다.

 

상담소 빨래방에 이불 맡기러 나갔더니,

곳곳에 돈 냄새 풍기는 붉은 깃발이 꽂혔더라.

 

살풍경과 달리 봄볕 퍼진 새꿈공원은 정겨웠다.

 

군데군데 모여 앉아 따스한 봄볕에 몸 말리는데,

누군 술잔과 놀고 누군 화투와 놀았다.

 

시간이 갈수록 봄 바람에 감염된 사람은 늘어났다.

“우리가 살면 언제까지 사냐? 죽어도 고~다”

 

얼마만의 해방감이며 얼마만의 반가움이더냐?

쪽방상담소에서 심심풀이 새우깡도 풀었다.

 

새우깡 봉지위로 웃음이 남아돌아

봄바람 끌어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

 

“코로나야! 사람 그리워 못 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인사동,

전통의 거리인가. 예술의 거리인가.

 

오래 전에는 골동의 거리였고,

70년대부터 화랑가가 형성되었다.

 

전통과 예술이 어우러진 인사동도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었다.

 

노포는 문 닫고 새 가게가 들어섰다.

인사동 정취가 서서히 사라졌다.

 

골동가게가 화장품가게로 바뀌고

표구점이 옷가게로 바뀌었다.

 

술타령에 흥건했던 인사동 대폿집들,

예인들의 한숨이 시와 그림 되었다.

 

시를 안주삼아 술잔을 들었다.

시가 노래가 되고 노래가 눈물이 되었다.

 

밀어닥친 역병은 마지막 풍류마저 앗아갔다.

폭우와 달리 물러 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작가들은 눈치 봐가며 작품을 내 건다.

전시로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팔리기는 커녕 보는 이도 드물다.

가슴만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거리는 안방에서 탈출한 사람으로 분주하다.

버스킹의 음율은 장송곡 같다.

 

신이시여! 이제 광란의 춤을 거두세요.

인사동에 봄바람 일게 하소서!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다.
목련과 벚꽃이 흐드러진 '새꿈 공원'은
이른 시간부터 봄 술에 젖었다.




의리의 사나이 이준기는 땅바닥에 더러 누웠고,
싱겁이 이대영은 뭔 소린지 구시렁거린다.




이홍렬과 몇몇은 개똥 철학 논하고,

몇몇은 화투 놀이에 정신없다.




장난 끼 발동한 이기영은 목발을 휘둘고,

누군 넘어져 얼굴에 피 칠갑이다.




커피집 앞에 얼쩡거리니 주인 노발대발이다.
공원으로 내 쫓느라 생 똥 싼다.




경찰차 사이렌 소리는 음악이다.




하릴없는 유한수, 김원호, 정선덕은
어울릴 자리 찾아 골목을 떠돈다.




봄 술에 젖은 동자동 사람들,
그 부랑의 세월이 음습하다.


사진, 글 / 조문호

















봄은 부자 동네만 오는게 아니라 가난한 쪽방 촌에도 온다.
벚꽃이 흐드러진 동자동 공원에 봄바람이 살랑대니,
심란한 남정네들 삼삼오오 모여든다.

강호는 사과로 정염을 삭이고, 인봉이는 소주로 달랜다.
‘인봉이 상판대기는 왜 깨졌냐?’ 물었더니.
계단이 넘어져 얼굴을 때렸단다.

“야! 이놈에 봄바람아, 이 홀애비들은 어쩌라고 그리도 불어대냐?”
못 먹어 몸은 상했지만, 기어오르는 춘정마저 없을소냐?
목련은 쩍 벌어져 유혹하고, 발갛게 달군 복사꽃에 몸 둘 바 모르겠다.
애간장 그만 녹이고 술이나 한 잔다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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