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덕에 지난 18일은 코가 비틀어지게 마셨다.

 

광화문 가자미집에서 시작된 술자리는 종로 빈대떡집, 인사동 사동집’, ‘포도나무집’, ‘유목민’, ‘양귀비

옮겨가며 정오부터 늦은 밤까지 다섯 차례나 옮겨 다니며 마셨다.

그 뒤탈로 어제는 하루 종일 동자동 쪽방에 들어 누워 낑낑거려야 했다.

 

첫 술자리는 강민시인을 비롯하여 이인휘, 박몽구, 이수경, 홍명진, 김창규, 안상학, 송경동, 김이하씨

문인들이 모인 가자미집에서 시작되었고, 화가들이 모인 빈대떡집에서는 이인철, 장경호, 류연복, 성효숙,

성기준씨 등 많은 분들이 함께했다. 잠시 인사동 커피집에 계신다는 강민 선생을 뵈러 갔더니,

그곳에는 화가 강녹사선생을 비롯한 원로문인들이 모여 계셨다.


세 번째 '포도나무집'에서 열린 문학과 행동출판기념회에선 특별한 분을 만났다.

목포에 사시는 소설가 천승세선생으로 천상병선생 장례식에서 뵌 후 처음인데, 흐르는 세월은 잡을 수 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강란숙, 윤정모, 이공희, 이철경, 박재용, 정소성, 최찬규, 유순예, 한복희, 정명숙, 전비담, 김자흔,

노광래, 임경일, 서정춘, 이승철, 김명지씨 등 많은 분들을 만났다.

사동집에는 장순향, 이수환, 현 린씨가 있었고, 유목민에서는 이인섭, 고광록, 최병용씨를

양귀비에는 배성일씨도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술값을 누가 냈는지 모르겠다. 낼 돈은 없지만, 알고나 마셔야지...

 

사진, / 조문호
















































































지난 9월2일 오후6시, '인디프레스'에서 ‘한국현대 형상회화 2016’전이 열렸다.


이 전시는 화가 장경호가 인사동 ‘관훈미술관장’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열어 온 전시다.

한 푼 없는 가난한 화가 입장에서 매년 치룬 다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아직까지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형상미술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한 그의 고집이 아닌가 생각된다.

형상미술은 80년대 초반, 민주화가 진행 중인 시대에 격렬한 예술로서 시대적 위기에 맞선

인간과 삶의 문제를 풀어가던 우리 미술의 한 축이기도 하다.

그 무렵 세상 밖으로 밀려나온 민중미술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그 당시 한강미술관장으로 있을 때, 젊은 에너지를 일으켜 장경호를 민중작가로 보는데, 그 건 아니다.

민중미술보다 형상미술이 삶과 시대현실에 더 강하게 다가가게 했다는 점을 그는 간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경호는 화가이기에 앞서 이론가이고 기획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통해 잘 못된 세상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진정한 형상미술 작가가 얼마나 될까?

그 해답으로 장경호가 끌어낸 작가가 이번에 출품한 작가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술을 제대로 모르는 내가 보아도 참신하고 신선했다.

지난 해와 달리 박불똥에서 정복수로 일부 선수가 교체되었지만, 모두가 말하려는 개성이 뚜렷했다

공성훈, 성병희, 이샛별, 이세현, 이흥덕, 장경호, 정복수, 차혜림, 최경선, 최경태, 황세준씨 등 열 한명의 작품이 걸렸는데,

내가 몰랐던 또 다른 가치를 일깨우게 한 전시였다.

장비처럼 호방하게 생긴 장경호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 그림이 많지 않다.

왼 만하면 내 놓아도 될 텐데, 쪽팔리기 싫어 지우기를 반복하니, 그림이 남지 않는 것이다.

이번에 출품한,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도 좋지만, 오래전 본 최시형의 초상화가 더 강하게 머리에 남아있다.

올 해 중에 열릴 ‘나무화랑’ 초대전이 벌써 기다려지는데, 이 친구가 외로움을 너무 많이 타,

술 자리를 넘보아 그게 맘에 걸리지만, 살아남기 위해 잘 해낼 것으로 믿는다.

‘한국현대 형상 회원전’에 장경호이야기가 많은 것은 그가 주도하는 전시이기도 하지만,

형상미술하면 그를 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날 작가들 외에도 김세균 정의당 공동대표인 김세균선생, 미술평론가 최석태씨, 사진가 정영신, 강고운시인,

김정대 관장, 노광래 관장, '아라리오 서울'의 박선영씨, 배성일씨 등 많은 분들과 어울려 ‘청하’에서 취했다.


이 전시는 통인동에 있는 '인디프레스'(010-7397-8498)에서 21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에서 좋은 전시를 보았다.

지난 9일 ‘나무화랑’에서 유화가 장경호씨가 주동이 되어 판을 벌였더라.
원주의 김진열씨를 비롯하여 정복수, 성병희, 이샛별, 이세현씨 등 여섯 명이 뭉쳤는데,
작가의 면면들이 모두 색깔 있는 작가라 기대한 바도 컸다.

전시장엔 참여 작가들을 비롯하여 김진하관장, 하태웅, 배성일씨도 있었다.

반가움도 잠시, 전시장 한 가운데 서니 마치 고문실에 온 것 같았다.
전시장 구조도 그렇지만, 벽에 걸린 작품들이 하나같이
고통에 따른 상처로 얼룩져 있었기 때문이다.

거창한 서문도 제목도 없이, 그냥 작품으로 말하더라.
잘 못된 정치, 사회구조를 향한 풍자며, 바로 저항이었다.
거창하게 난리법석 떠는 여느 전시와 달리 조용한 울림을 주었다.

이 말없는 항변은 15일까지 이어진다.
안국역 6번 출구로 나와 인사동 대로에서 30m쯤 내려와 왼쪽 건물. 4층이다.
지나치는 걸음에 꼭 한 번 들려보라.
(전화 02-722-7760)


조문호




















 

 

지난 10일 이른 시간, 화가 장경호씨를 만나 술집에 마주 앉았다.

인사동 '툇마루'로 평론하는 최석태씨와 화가 김진두가 차례로 나타났다.

이차를 간다며 '백련'으로 옮겼더니 배성일씨와 헨리 윤까지 등장했다.

 

헨리 윤은 만난 지가 오래되어 무지 반가웠다. 아마 7-8년은 지난 것 같다.

한 때 인사동 '작은 뜨락'을 들락거리며 밤이슬에 젖은 적이 어저께 같은데...

펀드메니저가 '대한다인회'를 이끄더니 서양화와 사진에도 진출했었다.

이젠 시와 수필에도 등단했다니, 그의 예술에 대한 욕구는 끝이없어 보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 술이 취해 깜빡 잠들었는데, 다른집으로 옮기자며 깨웠다.

삼차로 들린 '무다헌'에는 먼저 자리 잡은 주객들로 부산스러웠다.

소주에서 위스키로 격상된 것은 좋았으나, 더 마시기 싫었다.

내가 무슨 이팔청춘이라고 코가 비틀어지도록 마실 형편은 아니지 않는가.

 

그 날은 돈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나 위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장경호씨의 '뒷동산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노래 소리 들어며 퇴각해야 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7일,  강민선생을 뵙기위해 인사동으로 나갔다.
일에 빠져 약속시간을 20분이나 늦어 송구스러웠다.

 

강 민, 김승환선생과 ‘포도나무집’에서 식사하며 딸기 술도 마셨다.

 

이차로 간 ‘유목민’에서는 이행자시인과 심우성선생,

장경호씨를 만났고, 늦게는 정기영, 허미자씨도 왔다.

 

해삼과 굴에다 밑반찬으로 더럽 까지 나와 술상이 그득했다.

낯 술에 약한데다 막걸리를 데워 먹었더니, 금세 올랐다.
술 취하면 돌아다니는 버릇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김주대시인의 문인화전과 조성제씨의 ‘우포늪’전에 들렸다.
인사동거리에서 김명성, 김주대 시인과 박진화 화백도 만났다.

늦게 간 ‘무다헌’에서는 너무 취해 모두 잊어버렸다.
얼마나 잤는지, 눈을 떠 보니 배성일씨가 와 있었고, 장경호씨는 취해 있었다.
주인장 강고운시인을 갑질 행세한다며 나무라고 있었다.

요즘은 갑의 수난시대다.
독수리도 까마귀 무리에 쫓기는 시대란다.
집에서도 갑보다 을이 더 편하던데, 왠 갑질 논쟁일까?

사진,글 / 조문호

 

 

 

 

 

 

 

 

 

 

 

 

 

 

 

 

 

 

 

 

 

 

 

 

 

 

 

 

 

광복절이었던 지난 8월15일, 아내와 함께 인사동에 나갔다.

배성일씨와 약속한 ‘툇마루’에는 그의 친구 양재순씨와 함께 있었다.
신소재로 개발된 알미늄이나 강판 프라스틱을 활용한 프레임의 한국 특판권을 가지고 있다는

양재순씨가 사진에 대한 자문을 얻겠다고 불러 낸 모양이었다.

그이가 가져온 샘플을 사진전시에 활용한다면 전시가 끝난 후 보관이 용이하고, 야외전시나 이동 전시 때도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용에 따라 어울리지 않는 사진이 있는데다 대중적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사진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어울리는 기획사진전을 열어  액자가게들을 공략하는 방법론의 이야기도 나왔다.

그리고 인사동이나 정선시장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 커플들을 멋지게 찍어주는 것도 한 방법이란 말도 했다.

“이 프레임 안에 갇히면 평생 헤어질 수 없다”는 식의 퍼포먼스를 벌여 즉석에서 만들어 주면

그 홍보효과로 프렌차이즈 업소가 늘어나지 않겠느냐는 등의 의견을 나누며 술을 마시는데,

난데없이 신학철씨와 장경호씨가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서울시청 앞으로 “세월호 특별법” 데모하러가다 막걸리생각이 나 잠시 들렸다는 것이다.

자리를 옮겨 마시다 보니 술은 좀 취했지만, ‘세월호 특별법’ 관철을 작당한다는데 함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운 날씨에 술마저 취해 서울시청까지 걸어가기가 힘들었다, 그럴때는 사진 찍으며 천천히 걸어가면 좀 나아진다.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 것 저 것 주변을 살피며 걷는데, 같이 가던 장경호씨가 힘 덜어 준다며 카메라를 받아 간 것이다.

갑자기 긴장감이 풀어지니 온 세상이 뽀얗게 보였다.
난생 처음 당한 일이라,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당시 시청 앞에서 강민선생님을 만날 때는 완전히 혼이 빠진 상태라 인사를 드렸는지 모르겠다.

다시 카메라를 돌려받아 사진에 몰두하니 정신이 좀 차려졌다.  술 취해 사진 찍는 버릇이 중독된 모양이었다.

인사동 술자리에서도 술이 취하면 카메라 들고 인사동거리를 한 바퀴 돌아 오면 나아지고 그랬다.

아마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벌써 죽은 목숨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날은 벗들과 작당하다 진짜 죽는 줄 알았다.

 

 

 

 

 

 

 

 

 

 

 




풍류사랑에서 풍류를 배우는 금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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